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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법회] 농촌 수련생이 자료점를 만들어 사람을 구하다

글/ 지린성 대법제자

[명혜망] 저는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를 수련한 지 26년이 된 연로한 대법제자입니다. 중공 악당에게 불법 구류, 세뇌반 감금, 도피 생활을 강요당했고, 병업 고비와 낙상 등 수많은 고난과 시련을 겪었지만 사부님의 자비로운 보호 아래 모두 평안히 지나왔습니다. 그 과정에서 곳곳에서 대법의 신기함이 나타났는데, 저는 몇 가지 예를 들어 수련자들과 교류하고자 합니다. 부적절한 부분이 있다면 수련자 여러분께서 자비롭게 지적해주시기 바랍니다.

수련하기 전 저는 건강이 매우 좋지 않았습니다. 신경쇠약, 뇌 혈류 부족, 담낭염, 부인병, 심각한 빈혈, 산후풍 등 여러 병이 겹쳐 살기가 고통스러웠고, 살아있는 것이 의미 없다고 자주 생각했지만 어린 자녀 때문에 포기할 수 없어서 겨우 버티며 살아왔습니다.

1998년 음력 11월 24일은 제가 파룬따파와 인연을 맺은 날이자 제 인생이 바뀐 시작점이었습니다. 그날 한 고향 사람과 일하면서 그녀가 파룬궁을 수련한다고 했는데, 마음을 닦으면 병을 치료하고 건강해질 수 있어서 약도 안 먹고 주사도 맞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저는 당시 좋다고 느꼈고 저도 신앙을 갖고 싶어서 망설임 없이 배우고 싶다고 했습니다.

첫 번째로 포륜(抱輪)을 할 때 어깨와 등에 뜨거운 감각이 있었고 특별히 편안했습니다. 그 후 제 몸의 많은 병증이 사라졌고,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했던 병이 없고 몸이 가벼운 느낌이 너무 좋았으며 대법이 너무나 신기했습니다.

1. 도시 수련자와 인연을 맺고 진상자료로 사람을 구하다

2001년 9월 말, 저와 가족이 농지에서 수확하고 있을 때 현(縣) 공안국과 진(鎭) 파출소 경찰에게 납치됐습니다. 현 구치소에 여자 감방이 없어서 시 구치소로 보내져 시내 대법제자들과 함께 불법 감금됐습니다. 수련자들과 교류하면서 도시 수련자들이 모두 나가서 진상을 알리고 진상자료를 배포하며 사람을 구하고, 사부님의 정법을 돕는 일을 적극적으로 하고 있는데, 우리 시골 대법제자들은 아직 자신만 수련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저는 마음속으로 사부님께 말씀드렸습니다. ‘사부님, 저도 돌아가서 사람을 구하겠습니다. 사부님께서 남편을 일깨워주시어 그가 경찰을 찾아가 저를 데려갈 수 있게 해주세요.’ 그날 밤 꿈에서 남편을 만났고 저는 그에게 정부를 단계적으로 찾아가 저를 데려가라고 했습니다.

다음날 아침 일찍, 남편이 이웃과 수련생, 그리고 제 동생들 일행을 이끌고 차를 타고 파출소에 가서 제 석방을 요구했습니다. “우리 집사람이 원래 온몸이 아팠는데 파룬궁을 배운 것은 병 치료를 위해서입니다. 그녀는 나쁜 일도 안 했고 사람을 해치지도 않았으며 법을 어기지도 않았는데 당신들이 사람을 잡아갔으니 우리는 그녀가 돌아오기를 원합니다. 우리가 얼마나 많은지 보셨죠? 낫도 다 내려놓고 밭의 곡식도 수확하지 않고 있습니다. 아내를 풀어주지 않으면 우리는 매일 올 것입니다. 밭의 곡식이 손실되면 당신들이 모두 배상해야 합니다.” 파출소 책임자가 말했습니다. “현 공안국에서 사람을 잡아가라고 한 것이라 우리가 말해도 소용없으니 그곳에 가보세요.”

남편 일행은 매일 차를 타고 현 공안국에 가서 석방을 요구했고 사람들이 수확을 못해 발생한 손실도 요구했습니다. 그러자 공안국은 서둘러 저를 집으로 돌려보냈습니다.

집에 돌아온 후 저는 도시에 가서 수련자들을 찾고 싶었습니다. 제 집은 산골짜기에 있어서 버스가 다니지 않았고, 오토바이를 타고 버스 정류장까지 가는 데 10여 분이 걸렸습니다. 오토바이를 못 타면 걸어가야 했는데 빨리 걸어도 1시간이나 걸리는 길이었습니다. 그리고 도시에 들어가려면 차를 두 번 갈아타야 했습니다. 도시에 들어가서는 택시를 타고 어떤 곳으로 가야 했습니다. 그곳에 도착해서도 저 혼자서는 감히 걸을 수 없었습니다. 방향 감각이 없어서 동서남북을 구분하지 못했고, 누군가 인도해주지 않으면 저 혼자서는 길을 잃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사부님께 도움을 청했고 혼자서 도시에 들어갔으며, 사부님께서는 또 자료를 만드는 수련자를 찾도록 도와주셨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버스를 타고 큰 가방 작은 가방을 들고 진상자료를 갖고 돌아왔습니다. 늦게 돌아오면 오토바이를 타지 못했습니다. 때로는 전화해서 남편에게 삼륜차를 갖고 와서 저를 데리러 오게 했습니다. 때로는 남편이 집에 없어서 혼자서 진상자료를 메고 집으로 걸어갔습니다. 그리고 나서 주변 각 농촌의 주민들에게 나눠주어 그들이 진상을 알고 구원받을 수 있게 했습니다.

매번 우리 마을에서 진상자료를 배포할 때, 저는 항상 우리집 문 앞에 한 부를 놓았습니다. 어느 날 진 파출소 경찰이 우리집에 와서 말했습니다. “누군가가 신고했는데, 파룬궁(수련자)이 마을에 들어와서 뭔가를 배포했다고 하는데, 알고 있나요?” 저는 즉시 여러 가지 다른 내용의 진상자료를 꺼내 경찰에게 건네며 말했습니다. “당신이 말하는 것이 이것인가요? 이것은 우리집 문 앞에 있던 것인데, 가져가서 보세요.” 경찰은 말했습니다. “그럼 앞으로 또 주우면 파출소로 가져오세요.” 저는 기쁘게 대답했습니다. “당연히 그래야죠.”

이후로 새로운 내용이나 현지 공안과 현지 어떤 기관의 대법제자 박해를 폭로하는 것, 대법제자를 도와 복을 받은 것, 경찰에게 보내는 편지 등의 진상자료, 션윈(神韻) 공연 DVD, ‘9평 공산당(九評共産黨, 공산당에 대한 9가지 평론)’, ‘공산주의의 최종 목적(共産主義的終極目的)’ 등등을 모두 파출소로 가져갔습니다. 파출소 사람들도 모두 공손하게 받았고, 매번 저는 그들에게 보라고 상기시켰습니다.

한번은 우리 마을에서 가장 눈에 띄는 곳에 진상 현수막을 걸었습니다. 다음날 경찰이 우리집에 와서 저를 찾아 물었습니다. “마을에 현수막이 걸렸는데 누가 걸었는지 아세요?” 저는 물었습니다. “현수막이 뭐예요?” 경찰이 말했습니다. “노란 천에 빨간 글자가 인쇄된 거요.” 저는 또 물었습니다. “어떤 빨간 글자가 인쇄됐나요?” 경찰이 말했습니다.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眞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입니다.” 저는 경찰을 보며 마음속으로 말했습니다. 당신이 ‘파룬따파는 좋습니다’를 한 번 읽은 것만으로도 당신에게 좋은 일예요. 저는 그에게 물었습니다. “정말 대단하네요, 누가 걸었죠?” 경찰은 제가 그저 밭을 일구는 시골 아낙네라 아무것도 모른다고 생각하고는 돌아서서 걸어갔습니다.

이 일 이후로 저는 교훈을 얻어 다시 현수막을 걸 때는 대법제자가 없는 마을에 가서 걸었습니다. 어느 날 우리 마을의 한 주민이 밖에서 돌아와 말했습니다. “아이고, 어떤 마을 길가에 ‘파룬따파는 좋습니다’ 현수막이 걸려 있는데 햇빛을 받아서 아주 보기 좋았어요. 많은 마을 주민들이 둘러서서 보고 있었어요. 나중에 경찰이 차를 타고 와서 마을에 들어가 현수막을 건 사람을 찾겠다고 했어요. 한 경찰이 말했죠. ‘찾지 말자, 이 마을엔 파룬궁(수련자)이 없어.’ 그러고는 차를 타고 갔어요.” 저는 이것이 사부님께서 제가 올바르게 했다고 알려주시는 것임을 알았습니다.

2. 우리 집도 ‘작은 꽃’ 하나를 피우다

명혜망이 자료점을 곳곳에 꽃피우자고 제창한 후, 저도 ‘작은 꽃'(가정 자료점) 하나를 피우겠다고 발원했습니다. 도시에서 인연을 맺고 알게 된 수련자들 중에는 컴퓨터를 아는 사람, 프린터를 아는 사람, 편집할 줄 아는 사람, 수리할 줄 아는 사람, 설치할 줄 아는 사람이 있었고, 수련자들은 모두 진지하게 지루해하지 않고 저를 가르쳐주었습니다.

기술을 배울 때 어려움이 있으면 저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나이가 많다느니, 지식이 없다느니, 호미를 잡던 손이라느니 하는 것은 사람의 관념일 뿐이니, 내가 사람의 관념을 내려놓기만 하면 사부님께서 내가 무엇이든 다 배울 수 있게 해주실 거야.’ 저는 진상자료를 인쇄하는 것을 배웠을 뿐만 아니라 인터넷 접속과 다운로드도 배웠고, 삼퇴(三退: 중공의 당, 단, 대 조직 탈퇴) 성명 발표하는 것도 배웠습니다.

시간이 지나 프린터를 수리해야 할 때, 저는 수리하는 수련자들의 어려움을 알았습니다. 수리는 모두 업무, 법공부, 연공 이외의 개인 휴식 시간을 이용했기 때문입니다. 수리하는 수련자들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저는 직접 기계를 들고 도시에 가서 전문점에서 수리했습니다. 소모품을 사는 것도 최대한 다른 수련자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려고 혼자서 도시에 가서 샀습니다. 저는 ‘내가 농민이고, 나이도 많고, 옷차림도 전자상가에 들어가기에는 적당하지 않아 보이는데 의심을 받지 않을까’라는 사람마음이 없었습니다. 저는 대법제자이고 하는 일은 모두 제가 해야 할 일입니다.

중공 바이러스(우한 폐렴) 전염병 기간에는 상가가 모두 문을 닫았고, 제 소모품도 다 떨어졌습니다. 저는 사부님께 도움을 청했고 차를 찾아 도시로 들어갔습니다. 제게 소모품을 팔던 청년에게 전화를 걸었더니 청년이 마침 창고에 있다가 바로 차를 몰고 소모품을 갖고 저를 찾아왔습니다. 청년이 저에게 말했습니다. “아주머니, 전염병 기간에는 상점에 들어갈 수 없지만 창고는 들어갈 수 있어요. 필요한 게 있으시면 전화 주세요!”

저는 진상 소책자, 대책자, 스티커를 인쇄하는 것 외에도 한 가지 항목을 더 추가했는데, 5장의 CD로 ‘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진선인은 좋습니다’ 장식품만드는 것을 배웠습니다. 컬러 잉크젯 프린터로 인쇄한 장식품은 밖에 걸어두면 방수가 안 되고 빛에도 약해서 금방 색이 바랬으며, 인쇄된 이미지도 색이 어두웠습니다. 수련자가 제게 알려주기를 “HP 토너 프린터로 인쇄하면 빛에 강하고 비에도 강하며 색상도 더 좋아요”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도시에 가서 전자상가에서 한 대를 사왔습니다. 인쇄해낸 CD 장식품은 매우 선명하고 아름다워서 큰 나무에 걸어두어도 1년 동안 색이 바래지 않았습니다.

처음에는 우리가 사용하는 진상자료를 도시에 가서 가져와야 했지만, 지금은 거의 10년이 되어 제가 만든 진상 장식품과 스티커를 도시 수련자들이 사용하고 있습니다. 지금 저는 73세인데 저보다 10여 년, 20~30년 어린 주변 수련자들에게 컴퓨터 사용법을 가르치고, 패치 프로그램 설치 등 간단한 일도 배워서 최대한 기술 수련자들의 시간을 절약해주고 있습니다.

3. 사부님과 법을 믿어야만 매 걸음을 잘 걸을 수 있다

2008년 가을, 트럭에 벼를 가득 싣고 제가 벼 위에 앉아있었습니다. 작은 강을 지날 때 갑자기 바퀴가 한 번 흔들렸는데 저는 아주 높은 곳에서 머리를 아래로 하고 떨어졌고 그때 쇄골이 부러졌습니다.

집에 돌아와서 저는 안으로 찾아보았습니다. 마지막 한 차 벼를 실을 때 마지막 더미를 실으면서 벼 더미에서 쥐가 튀어나왔는데 제가 한 마리를 때려죽였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제가 다친 것은 현세현보(現世現報)가 아닌가요? 가족들이 제 상태를 보고 걱정되어 억지로 병원에 가자고 했고, “팔이 부러졌으니 꼭 가야 한다”고 했습니다. 저는 이 생각을 인정하지 않고 직접 팔을 들어 올리며 말했습니다. “안 부러졌어요, 아직도 들어 올릴 수 있잖아요!” 그러자 가족들도 더 이상 고집을 부리지 않았습니다.

주변의 많은 수련자들이 저를 보러 왔고 법리상에서 저와 교류하며 어려운 시기를 함께 보냈습니다. 그 후의 시간 동안 부상 부위가 아무리 아파도 저는 매일 대량으로 법공부를 하고 연공을 견지했으며 아플수록 더욱 견지했습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진정한 겁난(劫難) 중에서 또는 관(關)을 넘는 중에서 당신은 시험해 보라. 참기 어려운 것을 당신은 참아 보고, 보기에 안 되고 행하기 어렵다고 하는 것을 그러면 당신이 한번 시험해 보라. 도대체 행할 수 있는지 없는지. 만약 당신이 정말로 해낼 수 있다면, 당신은 정말로 고난 속에 광명이 있음(柳暗花明又一村)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전법륜)

저는 사부님의 이 단락 법을 제 머릿속에 새기고 때때로 자신을 일깨워주며 끊임없이 견지했습니다. 마침내 부상입은 지 13일 만에 제 쇄골은 원상태로 회복됐고 모든 것이 정상이 되어 대법의 기적을 증명했습니다. 수련의 길에서 어떤 난관을 만나더라도 반드시 확고하게 사부님과 법을 믿고 매 걸음을 잘 걸어야 합니다.

2024년 여름, 저는 전동스쿠터를 타고 친척을 방문하러 갔습니다. 자주 다니던 익숙한 길인데도 지나쳐 버렸습니다. 잘못 갔다는 것을 알고 방향을 돌리려 했는데, 비가 막 내린 후라 노면에 물이 고이고 진흙도 있어서 핸들이 통제되지 않았습니다. 제가 타던 것은 아주 작은 노인용 스쿠터였고 속도가 매우 느려서 보통 이런 상황이면 두 다리로 버티면 그만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순간 저는 하늘로 붙들려 올려졌다가 땅바닥에 세게 넘어지는 것 같았고, 무릎과 양손, 입이 땅에 닿았습니다.

저는 서둘러 일어나며 머릿속에는 오직 한 가지 생각만 있었습니다. ‘난 다치지 않아, 나는 금강불괴지체다.’ 저는 구결을 외우며 발정념을 했습니다. 입과 몸에 진흙이 묻어서 친척 집에 가면 그들이 보고 걱정할까 봐, 통증도 잊은 채 근처 작은 강에서 씻은 후 더러워진 옷을 벗어 버리고 친척들에게 줄 낡은 옷 꾸러미에서 한 벌을 찾아 입고 계속 친척 집으로 갔습니다.

친척 집에 도착한 후, 제 입이 피가 나는 걸 친척들이 발견했습니다. 그들은 여러 번 대법 속에서 신기한 일들을 목격했기에 병원에 가자는 말은 하지 않았고 약을 바를 필요가 있냐고만 물었고, 저는 필요 없다고 했습니다. 친척들은 할 수 없이 “그럼 연공 잘하세요, 괜찮으면 됐어요”라고 했습니다. 저는 앉아서 자세히 보니 한쪽 다리 무릎은 여러 군데 피부가 까졌지만 전혀 아프지 않았고, 다른 쪽 다리 무릎은 멀쩡했지만 움직이기가 두려웠고 안쪽이 멍이 들고 부어있었습니다.

이것은 제가 어디에서 심각하게 잘못한 것이 아니라면 이렇게 크게 넘어지지 않았을 텐데요. 우리집은 농촌에 있어서 주변 이웃들이 모두 닭, 오리, 돼지, 소를 키우고 있었고 우리 집도 병아리를 키웠습니다. 가축의 분뇨와 화장실에 모두 파리와 모기가 꼬이고, 방충망을 달아도 집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화장실은 말할 것도 없이 파리가 윙윙거려서 저는 매우 짜증이 났습니다. 시골에 자주 오는 상인이 파리약을 소개했는데 매우 효과가 좋아서 한 번 뿌리면 10여 일간 지속된다고 했습니다. 약을 뿌릴 때 저는 매우 악의적이었고, 이 파리약이 얼마나 효과가 좋은지 이웃들에게 홍보하며 모두 사게 했습니다.

이 점을 찾고 나니 온몸이 춥다고 느꼈고 침상에 누워 이불을 두 개나 덮어도 떨렸습니다. 수련자가 보고 “당신의 상태는 올바르지 않아요”라고 했습니다. 이 말을 듣고 저는 정념을 바로잡고 일어나 방을 두 바퀴를 돌며 동시에 발정념 구결을 외우고 구세력의 박해를 부정했으며, 저의 모든 것은 사부님께서 결정하신다고 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몸이 춥지 않았고 그 후로도 춥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외상이 없는 다리는 여전히 아파서 가부좌에 영향을 주어 결가부좌를 할 수 없었습니다. 저는 이것을 인정하지 않고 꼭 틀겠다는 생각만 있었습니다. 이 생각이 나오자마자 저는 바로 다리를 틀었지만 오래 견디지는 못했습니다. 며칠이 지나자 이 다리의 허벅지와 종아리 전체가 검게 변했지만 아프지는 않고 다만 부은 것 같았고, 무릎이 부어올라 누르면 아팠습니다. 저는 계속 안으로 찾았습니다. 넘어진 그날, 저는 친척 집에 두고 온 휴대폰을 가지러 갔습니다. 혹시 휴대폰에 무언가가 있는 걸까요? 이 휴대폰은 아들이 쓰던 스마트폰이었습니다. 제가 휴대폰을 집어 들고 보니 휴대폰 앨범에 악당의 붉은 깃발, 당장(黨章), 단(團)휘장 등의 사진이 많이 있어서 과감하게 모두 삭제했습니다. 삭제한 후 아픈 다리가 갑자기 가벼워졌고 편하게 결가부좌도 할 수 있었습니다.

제 토너 프린터가 몇 달간 토너가 새서 인쇄할 때마다 줄이 생겼습니다. 새 토너 카트리지로 교체해도 여전히 같은 문제가 있었는데, 다만 교체하기 전보다는 약간 나아졌지만 여전히 사용할 수 없었습니다. 우리집 NTD(新唐人) TV도 처음에는 화면이 불안정했다가 나중에는 아예 볼 수 없게 됐습니다.

제 다리가 나은 후, 수련생이 차를 몰고 저를 전자상가에 데려가 프린터를 수리했습니다. 연속으로 6장을 인쇄했는데 아무 문제가 없었습니다. 수리기사가 말했습니다. “당신의 기계는 고장 나지 않았어요.” 저는 그때 알았습니다. 이 기계가 반년 동안 계속 저에게 안으로 찾으라고 일깨워주고 있었던 것입니다. 저는 이렇게 크게 넘어져 넘어짐을 통해서야 안으로 찾게 됐고, 프린터도 따라서 좋아졌습니다. 그렇다면 제가 보던 NTD TV도 분명히 좋아졌을 것입니다. 집에 돌아와 TV를 켜보니 과연 정상이 됐습니다.

저는 오직 사부님과 법을 믿어야만 매 걸음을 잘 걸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반드시 끊임없이 법공부와 발정념을 많이 해야 합니다. 아무리 아프고 힘들어도 연공을 견지하고, 수련자들의 교류문을 듣고, 확고하게 대법 속에서 수련해야 합니다. 우리는 신의 길을 걷는 대법도(大法徒)입니다.

 

원문발표: 2024년 11월 13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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