简体 | 正體 | 대법서적

[중국 법회] 14년간 반복되는 박해 속에서 법공부와 법 암기로 수련 상태를 조절하다

글/ 중국 대법제자

[명혜망] 저는 1998년에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를 수련하기 시작한 노수련생으로 올해 70대입니다. 1999년 7월 중공(중국공산당) 악당이 파룬따파에 대한 박해를 시작한 후, 저는 주저 없이 나서서 박해에 반대하고 대법을 실증했습니다. 하지만 법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고 수련 중에 빈틈이 있는 등의 요소로 인해 저는 여러 차례 납치됐고, 세뇌반과 구류소, 노동수용소, 감옥 등 검은 소굴에서 14년이나 박해를 당했습니다. 보통 집에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다시 박해를 당하곤 했습니다.

작년 연말에 감옥에서 집으로 돌아온 후 저는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성실하게 법공부하고 법을 암송하며 착실하게 안으로 찾은 결과, 마침내 수련 상태를 바로잡고 구세력의 배치를 부정하며 안정적으로 세 가지 일을 잘할 수 있게 됐습니다. 이제 저는 1년여 동안의 수련 경험을 사부님께 보고드리고 수련생들과 교류하고자 합니다.

1. 귀가 후 곤경에 빠지다

3년간의 억울한 감옥살이와 구사일생의 온갖 고통을 겪은 후 저는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귀가 후, 검은 소굴에서 당한 박해의 그림자를 떨쳐내기도 전에 또 다른 시련이 저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우선, 남편(수련생)이 제가 억울하게 감옥살이를 하는 동안 세상을 떠났습니다. 우리는 수십 년간 결혼생활을 하면서 생활면에서 그가 늘 저를 보살펴주었고, 집안일은 거의 다 그가 맡아서 했으며, 저는 밥조차 할 줄 몰랐습니다. 아들네가 멀지 않은 곳에 살고 있지만 저는 자주 그들을 찾아갈 순 없었습니다. 이제 저 혼자 독립적으로 생활하게 됐고 장보기와 요리, 집안의 이런저런 수리까지 안팎으로 모든 것을 혼자서 해결해야 했습니다. 혼자 사는 외로움과 남편에 대한 그리움은 저를 더욱 서글프고 무기력하게 만들었습니다.

주민위원회와 주민센터, 파출소도 여러 정도로 저에게 압박을 가했지만 더 큰 압박은 친척들로부터 왔습니다. 제가 여러 차례 박해를 당한 데다가 남편이 입원하고 세상을 떠날 때도 제가 감옥에 있었기 때문에, 원래 대법을 지지하던 친척들도 대법에 대해 의심하고 이해하지 못하게 됐습니다. 이번에 억울한 감옥살이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후, 아들과 며느리는 제가 나가서 진상을 알리는 것을 금지했고, 심지어 집에서도 대법에 대해 이야기도 못하게 했습니다. 제가 그들의 집에 가서 식사할 때 손님들에게 진상을 알리면 그들은 일부러 화제를 돌려 제가 이야기하는 것을 막았습니다. 늘 제 수련을 지지하던 여동생네도 나가지 말라고 하면서, 좋다고 생각하면 집에서 혼자 연공하라고 했습니다. 제가 전에 삼퇴(중공의 당, 단, 대 조직 탈퇴)를 시켜준 시동생 부부도 이제는 대법을 지지하지 않게 됐고, 심지어 전혀 믿지 않는다는 말까지 했습니다.

동시에 저는 경제적으로도 심각한 어려움에 직면했습니다. 제가 억울하게 감옥살이를 하는 동안, 여동생이 마작에 빠져 집안 돈을 다 잃었을 뿐만 아니라 제 은행 카드에 있던 몇 만 위안도 모두 빼서 잃어버렸습니다. 그 돈은 제 모든 저축이었습니다. 제가 카드를 여동생에게 준 것은 원래 변호사를 선임하라고 준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여동생이 모두 잃어버린 줄은 상상도 못 했습니다. ‘앞으로 생활은 어떻게 해야 할까?’ 집에 돌아온 지 며칠 되지 않아 사회보장센터에서 통지서를 보내왔는데, 억울한 감옥살이 기간에 받은 5만 위안의 연금을 반환하라고 했을 뿐만 아니라 앞으로의 연금도 매월 750위안만 지급하겠다고 했습니다. 정말 설상가상이었습니다.

가장 마음 아픈 것은 수련생들의 오해와 소문이었습니다. 예전에는 제가 검은 소굴에서 집으로 돌아올 때마다 수련생들이 안부를 묻고 매우 관심을 가져주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 집으로 돌아왔을 때는 이전에 저와 비교적 친했던 일부 수련생들도 저를 보러 오지 않았고, 어떤 이는 심지어 저를 피했습니다. 어떤 수련생이 저를 보러 왔을 때는 제게 문제를 지적하며 어조가 비교적 엄격했고, 단어 선택도 비교적 날카로웠습니다.

이런 예상치 못한 고비와 어려움들에 직면해 저는 잠시 멍해졌습니다. 제 마음이 너무 괴로워서 이불로 머리를 덮고 큰 소리로 울면서 마음속으로 사부님께 하소연했습니다. ‘사부님, 저는 너무나 억울합니다!’

2. 성실한 법공부와 법 암기로 수련 환경을 개선하다

저는 《전법륜》 책 속의 사부님 법상을 바라보았고 사부님께서는 미소를 지으며 저를 바라보고 계셨습니다. 사부님을 생각하니 저는 정신이 즉시 되살아났습니다. 저는 자문해보았습니다. ‘나는 대법제자인가? 대법제자의 사명은 무엇인가?’ 저는 이것이 구세력이 제게 설치한 또 하나의 난관임을 알았습니다. 저는 여기에 빠져들어서는 안 되며 반드시 이 난관을 뚫고 나가 계속해서 사부님의 정법을 도와 사명을 이행해야 합니다. 저는 사부님께서 여러 차례 법공부의 중요성을 강조하신 것이 생각났고 우선 법공부를 잘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저는 대법이 모든 것을 바꿀 수 있다고 굳게 믿었습니다.

저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법공부를 하고 법을 외웠습니다. 저는 2008년부터 법 암기를 시작했고, 법 암기 면에서 이미 비교적 좋은 기초를 다져놓았습니다. 마음가짐을 바로잡은 후 전념하여 법공부를 하고 법을 암기했습니다. 제가 이미 70세임에도 불구하고 사부님의 가지(加持) 아래 곧 다시 《전법륜》을 능숙하게 외울 수 있게 됐고, 더욱더 숙달되고 빨라져서 2시간 30분 만에 한 강을 외울 수 있게 됐으며, 일주일이면 《전법륜》을 한 번 외울 수 있게 됐습니다.

법공부할 때는 아무리 오래 공부하더라도 계속 결가부좌를 했습니다. 감옥에서 여러 해 동안 가부좌를 하지 못했기 때문에 정공(靜功)을 연마할 때 막 가부좌를 하고 나면 심한 통증이 왔지만, 아무리 아파도 저는 절대 다리를 내리지 않았습니다. 아파서 한겨울에도 옷이 다 젖을 정도였지만 저는 여전히 견뎌냈고 며칠이 지나지 않아 몇 시간씩 가부좌할 수 있게 됐습니다. 매일 《전법륜》을 공부하는 것 외에도 저는 다른 대법 서적들도 보았습니다. 한동안 《전법륜》을 외운 후에는 《전법륜》을 필사하기 시작했고, 3개월 만에 《전법륜》을 한 번 필사했습니다. 남은 시간에 저는 명혜망의 수련생들의 교류문을 보았는데, 그 가슴 뭉클하고 눈물을 자아내는 교류문들은 제가 분발하여 따라잡게 하는 동력이 됐고 감히 태만할 수 없게 했습니다.

제가 수련한 후 대부분의 시간을 검은 소굴에서 보냈기에 진정으로 마음을 가라앉히고 법공부할 시간이 매우 적었고, 이 몇 년 동안 낭비한 시간이 너무 많았습니다. 감옥에서 사악은 매일 저를 매우 적게 자게 했습니다. 집에 돌아와서 때로는 정말 푹 자고 싶었지만 저는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잘 알고 있었습니다. 저는 이미 검은 소굴에서 너무 많은 시간을 낭비했기에 사부님께서 거대한 감당으로 연장해주신 시간을 소중히 여겨야 했습니다. 저는 갈증 나는 사람이 물을 마시듯 법공부와 법 암기, 법 필사를 했습니다. 저는 매일 3시간만 자고 새벽 3시에 일어나 새벽 연공을 했으며 절대 게을리하지 않았습니다. 시간을 아끼기 위해 저는 한 번에 이틀 치 밥을 해서 그릇에 담아 전자레인지로 데워 먹었습니다. 때로는 일 때문에 시간이 지체되면, 저는 차라리 한 끼를 굶거나 잠을 줄이더라도 법공부는 보충했습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안에서 찾는 이것은 법보(法寶)”(각지 설법 9-2009년 워싱턴DC국제법회 설법)라고 하셨습니다.

대량의 법공부와 법 암기를 통해 저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이성적으로 자신의 수련 과정을 돌아볼 수 있게 됐습니다. 저는 안으로 찾아 자신의 집착과 빈틈이 있는 곳을 찾아보았습니다. 무엇 때문에 저는 여러 차례 사악한 박해를 당했으며, 왜 수련생들이 저를 그렇게 보는 것일까요? 저는 수련생들이 제게 지적한 문제들을 생각해보았는데, 수련생들은 제 가장 큰 집착은 명리심(名利心-명예욕과 금전욕)이고 또한 과시심과 환희심이 질투심과 뒤섞여 있다고 했습니다.

저는 자신의 수련 과정을 돌이켜보니, 진상을 알리고 진상자료를 배포하는 과정에서 정말로 자신을 실증하려는 마음이 있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자료를 배포하고 나면 득의양양해하며, 법공부할 때 수련생들에게 제가 오늘 얼마나 많이 배포했는지 이야기하고는 수련생들의 칭찬을 받으면 기뻐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과시심, 환희심, 명리심이 아닙니까? 그런데도 저는 알지 못했습니다. 때로는 수련생들이 선의로 일깨워줘도 기분이 좋지 않았고, 누가 자료를 잘 배포하고 진상을 잘 알린다는 말을 들으면 입으로는 “참 잘했다”고 말하면서도 마음속으로는 불편했는데, 이것이 매우 뚜렷한 질투심이 아닙니까?

저는 또한 협조 일을 할 때의 일처리하려는 마음과 일을 요란스럽게 하려는 마음, 당문화(공산당 문화)의 말투와 일하는 방식 등을 발견했습니다. 자세히 파고들어 가보니 많은 사람마음들을 발견했습니다. 이런 사람마음들이 바로 구세력이 박해하는 빌미가 된 것이 아닙니까? 저는 마음을 다잡고 수련 중에서 착실하게 수련해, 사람 마음이 나오면 즉시 잡아내 수련해 없애기로 결심했습니다.

법공부를 통해 저는 수련생들의 소문과 부정적인 시각이 저에 대한 시험이기도 하지만, 구세력이 수련생들 사이에 간격을 만들려고 하는 것이기도 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이 고비를 잘 넘어 구세력의 파괴를 부정해야 했습니다. 저는 일부러 설명하거나 해명하지 않았고 수련생들이 물어보면 몇 마디만 설명했습니다. 만약 수련생들이 믿지 않으면 저는 변명하지도 않았고 더욱이 수련생들을 원망하지도 않았습니다. 반년이 지난 후 수련생들은 저를 단체 법공부에 참여하게 했고 지금은 수련생들과의 관계가 이전보다 더 화목해졌습니다.

법공부를 깊이 있게 하면서 제 선한 마음이 증가했습니다. 저는 가족과 친척들의 태도에 영향을 받지 않고, 그들이 저를 어떻게 대하든 저는 그들에게 잘하고 선하게 대하며, 최대한 그들을 위해 생각했습니다. 저는 그들 각자의 생일을 모두 마음속에 기억해두고 선물과 축하를 보냈는데, 이는 이전에는 소홀히 했던 것입니다. 저는 아들과 며느리에게 말했습니다. “너희 아버지가 일찍 세상을 떠난 것은 중공 악당의 박해로 인한 것이지 절대로 대법 때문이 아니야. 우리는 모두 좋은 사람이 되려고 하는 것이고 너희도 직접 목격했지. 만약 내가 악당에 의해 여러 차례 박해당하지 않았다면 너희 아버지도 걱정으로 병이 들지 않았을 거야. 그리고 내가 너희 아버지를 잘 돌봤을 테니 그도 이렇게 일찍 떠나지 않았을 거야. 너희는 정말로 대법 사부님께 감사드려야 해. 만약 사부님의 보호가 아니었다면, 나는 진작 악당에 의해 고문으로 죽었을 거야. 그랬다면 너희는 아버지뿐만 아니라 어머니도 잃었을 거야.”

저는 또한 그들에게 말했습니다. “중국에서 파룬궁은 줄곧 합법적이었어. 중공 악당이 법을 집행하면서 법을 어기고 좋은 사람들을 박해하고 있는 거야. 우리는 단지 세상 사람들에게 중공 사교(邪敎, 사이비교)를 멀리해야만 신의 보호를 받고 재난을 피해 아름다운 미래를 가질 수 있다고 알려줄 뿐이야. 악당이 어떻게 민중을 기만하고 사망자 수를 숨기며 인명을 무시했는지 이번 신종코로나에서 보았을 거야.” 저는 그들에게 신문출판서 50호 명령 등 대법이 합법적임을 증명하는 관련 법률 문서들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들은 또한 제가 감옥에서 막 돌아왔을 때 몸이 매우 쇠약했으나, 집에서 법공부와 연공을 회복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건강이 크게 개선되고 정신도 좋아지고 기력도 왕성해지며, 사람이 젊어 보여 70대로는 전혀 보이지 않는 것을 보고 대법의 신기함을 보았습니다. 특히 제가 연금을 성공적으로 되찾은 과정은 그들이 대법 수련이 불법이 아니며 대법수련인의 강인함을 목격하게 했습니다.

서서히 그들은 관념을 바꾸어 예전처럼 제 수련을 지지하게 됐고, 진상을 알릴 때 지혜롭게 알리고 안전에 주의하라고 일깨워주기도 했습니다. 한번은 감옥경찰이 제 아들에게 전화를 걸어 소위 사후방문을 한다며 제가 잘 지내는지 물었습니다. 제 아들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여러분이 와서 귀찮게 하지만 않으면 어머니는 아주 잘 지내실 겁니다. 어머니는 합법적인 시민이니 더 이상 귀찮게 하지 말아주세요.” 경찰이 제 전화번호를 요구했지만 아들은 주지 않았습니다.

저는 지역사회와 주민센터 직원들이 제 집에 왔을 때 그들에게 진상을 알리는 것 외에도, 적극적으로 지역사회와 주민센터에 찾아가 그들에게 진상을 알렸고, 지역사회 서기 등 직원들이 성공적으로 삼퇴하도록 했습니다. 서기가 병에 걸렸다는 것을 알고 과일을 사서 문병을 갔더니 서기는 대법에 대해 더욱 좋은 감정을 가지게 됐습니다.

이렇게 성실한 법공부와 법 암기, 안으로 찾기, 착실한 수련을 통해 저는 가정환경을 바꾸었을 뿐만 아니라 수련생들과의 간격도 없애고, 일부 정부 직원들도 진상을 이해하게 됐습니다.

3. 진상을 알려 연금을 되찾다

중공 악당의 경제적 박해에 직면해 저는 소극적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연금을 요구하는 방식으로 진상을 알리기로 결심했습니다. 연금을 되찾을 수 있는지, 얼마나 되찾을 수 있는지가 첫 번째 목적이 아니라, 연금을 요구하는 과정에서 되도록 많은 사람을 접촉하고 접촉한 사람들 모두가 진상을 이해하게 하는 것이 목적이었습니다.

집에 돌아온 지 열흘여 만에 저는 수련생들의 도움을 받아 공의논단(公義論壇)의 법률 지식과 양식을 참고해 지역 사회보장센터와 인력자원사회보장국에 각각 ‘법에 따른 연금 지급 신청서’와 ‘법에 따른 직무이행 신청서’를 보냈습니다. 며칠 후 사회보장센터에서 서면 회신을 보내왔는데 제 합리적인 요구를 거절했습니다. 저는 각 부서를 직접 방문해 대면으로 진상을 알리기로 계획했습니다.

막 감옥의 가혹한 박해를 겪고 집에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다시 정부에 가서 진상을 알리려니 망설여졌습니다. ‘만약 또 잡히면 어떡하지?’ 저는 불안했습니다. 이때 한 목소리가 제게 말했습니다. ‘너에게는 사부님이 계시잖아! 뭐가 두려워?’ 저는 사부님의 법상을 바라보며 마음속으로 사부님께 말씀드렸습니다. ‘사부님께서 제자를 가지(加持)해 주시기 바랍니다. 저는 혼자 가서 알리겠습니다. 이것은 제 수련의 길입니다. 사부님께서 이미 길을 닦아주셨으니 저는 잘 걸어가기만 하면 됩니다.’ 저는 새벽 3시에 일어나 연공을 마치고 정념을 발하고 《전법륜》 한 강을 암송하고 나니 마침 8시 30분이 됐고, 그 후 사회보장센터 등 부서에 가서 진상을 알렸습니다.

처음에 센터의 담당 과장은 태도가 매우 강경했습니다. 매월 최대 750위안의 기본생활비만 지급하겠다고 하면서 몇 마디 듣기 싫은 말도 했습니다. “당신 같은 나이에 집에서 편히 노후를 보내지 않고, 아직도 이런 일을 하시네요. 국가가 허락하지 않는데 하지 마세요.” 저는 그의 감정에 휩쓸리지 않고 그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으며 말했습니다. “제가 오늘 진실을 알려드려야겠네요. 한편으로 법률상으로 보면 제 연금을 압류하는 것은 위법이고 헌법을 위반하는 것입니다. 제가 이미 신청서에 관련 법률 조문을 열거했습니다. 다른 한편으로 우리는 장쩌민과 중공에 의해 부당하게 박해받고 있으며, 우리는 법을 어기지 않았습니다. 제게 증거가 있습니다. 국가는 지금까지 파룬궁이 사교라는 법률 문건이 하나도 없고, 공안부가 인정한 14개 사교에도 파룬궁이 없습니다. 신문출판서 50호 명령은 이미 파룬궁 서적에 대한 금지를 해제했고, 형법은 분명히 법에 명문 규정이 없으면 죄가 되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증거들은 파룬궁이 중국에서 합법적이라는 것을 충분히 증명합니다. 그러므로 제가 3년형을 선고받은 것은 억울한 것이고 제 연금을 압류하는 것도 위법입니다.”

과장은 처음에는 “불가능하다”, “문서가 없다”고 하다가 또 자신들은 이런 것에 관심 없다고 했습니다. 저는 계속해서 말했습니다. “여러분은 진상을 알 권리가 있습니다. 여러분이 제 연금을 압류하는 근거가 된 소위 인력자원사회보장부 문서는 국가 법률, 헌법과 충돌하는 것이므로 무효이고 위법입니다. 사실 저는 여러분을 위해서도 생각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잘못을 저질러 처분받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중공은 늘 다 쓴 낡은 맷돌은 버리지요.” 저는 제가 감옥에서 당한 각종 비인간적인 고문에 대해 이야기했고 그들은 매우 놀라워하면서 지금도 이런 일이 있다는 것을 믿지 못했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제가 거짓말하는 사람처럼 보이나요?” 그들이 말했습니다. “아니요, 당신은 매우 선량하고 또 매우 이치에 맞게 말씀하시네요. 여사님은 거짓말을 하실 리가 없습니다. 70대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사고가 명확하시네요.”

그들은 제가 이토록 말을 잘하고 조리 있게 말하며 법률 지식도 매우 풍부한 것을 보고 제가 대학 학력일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저는 초등학교 학력입니다.” 그들은 모두 믿지 않았습니다. 저는 설명했습니다. “저는 어릴 때 성적이 매우 좋았는데, 제 아버지가 악당에 의해 우파로 몰려서 제가 중학교에 합격했지만 입학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대법을 수련했기 때문에 대법이 제게 지혜를 열어주어 이렇게 많이 알게 된 것입니다.” 과장이 말했습니다. “매월 2천 위안을 지급하도록 하죠.”

저는 또 그들에게 파룬따파가 세계에서 널리 전해지고 있는 상황을 이야기하고, ‘4·25’ 사건의 진상과 ‘톈안먼 분신’ 날조극의 진상, 중공 악당이 3년간의 중공 바이러스(우한 폐렴) 속에서 보여준 온갖 혼란상을 이야기했습니다. 또한 그들에게 휴대폰으로 ‘장자석(藏字石: 중국공산당이 멸망한다고 기록된 고대의 예언석)’의 사진을 검색해보라고 했고, 마지막에 그들은 모두 삼퇴를 했습니다.

한 부국장은 제게 2천 위안을 주는 것이 너무 많다고 생각하여 1천5백 위안만 지급하는 것에 동의했습니다. 저는 이것이 바로 행정재심의 방식으로 구정부와 구사법국, 법률사무소 등 기관에 가서 진상을 알리고, 동시에 시정부와 인민대표대회, 정치협상회의, 감찰위원회, 사법국, 인력자원사회보장국 등 기관에 진상 편지를 보내 더 많은 사람에게 진상을 알릴 좋은 기회라고 깨달았습니다.

사회보장센터에서 진상을 알린 후 저는 계속해서 검찰원과 사법국, 청원사무실, 인력자원사회보장국, 부녀연합회 등 부서에 가서 진상을 알렸습니다. 사부님의 가지 아래 제가 진상 편지를 우편으로 보내고 직접 방문하여 진상을 알린 것이 매우 큰 효과를 거두었습니다. 시와 구의 관련 부서들이 사회보장센터에 적절히 해결하라고 요구했고, 구에서는 여러 부서를 소집하여 회의를 열었으며, 사회보장센터 주임이 제게 좋은 말을 많이 하면서 더 이상 고소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제 연금이 원래 3천 위안이 조금 넘었는데, 사회보장센터가 매월 3천 위안을 지급하고 상징적으로 조금만 공제하기로 했습니다. 그들은 조금도 공제하지 않으면 위에 보고하기가 곤란하다고 말했습니다. 그당시에는 제가 막집에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인식이 제한적이고 또 우려하는 마음이 있어서 동의했습니다.

연금 문제가 해결된 후, 저는 원래 직장 지도자들에게 편지를 써서 억울한 감옥살이 기간의 생활보조금과 명절 위문금 등 각종 복지금 총 1만여 위안의 보충 지급을 요구했습니다. 직장에서 정법위원회에 전화로 문의했더니, 정법위원회 직원이 주지 말라고 했습니다. 저는 한편으로는 원래 직장에 가서 그들에게 진상을 알리고, 동시에 정법위원회 서기에게도 편지를 썼습니다.

정법위원회 서기는 편지를 받은 후 거리 정법 담당 부서기를 시켜 그의 친필 편지와 봉투에 담긴 1천 위안의 현금을 제게 전달하게 했고, 주민센터에 제 복지금 보충 지급 문제를 직장과 조정하라고 지시했습니다. 주민센터의 조정을 거쳐 직장 지도자들이 올해 연말에 몇 천 위안을 보충 지급하기로 약속했습니다.

이렇게 제 경제적 어려움 문제가 비교적 잘 해결됐고, 이는 제가 세 가지 일을 하는 데 더욱 유리했을 뿐만 아니라 가족과 친지들의 대법에 대한 태도도 바꾸어놓았습니다. 그들은 원래 연금을 되찾는 것이 전혀 성공할 가능성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제가 진상을 알려서 해냈고, 그들도 대법과 대법제자에게 진심으로 감탄하게 됐습니다.

4. 수련생들과 함께 협력해 진상 알리기

저는 집에 돌아온 후, 중공 악당이 전염병 방역을 한다며 일주일 동안 외출을 금지했는데, 8일째 되는 날 저는 바로 나가서 진상을 알리기 시작했습니다. 그 후 저는 매일 나가서 진상을 알려 사람을 구했고, 1년이 넘도록 매일 많을 때는 20~30명에게 삼퇴를 권했습니다. 저는 수련생들과 협력해서 진상을 알리면 효과가 더 좋을 것이라고 생각했기에, 줄곧 수련생과 함께 진상을 알리고 싶다는 소원이 있었습니다.

올해 초 제가 집에서 법공부를 할 때 창밖에 까치 여러 마리가 날아다녔습니다. 까치 한 마리가 창 밖 나뭇가지에 서서 몇 분 동안 가지 않아서, 저는 까치에게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眞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를 기억하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생각했습니다. ‘까치가 길조를 전하니 분명 좋은 일이 있을 거야.’ 며칠 후, 저는 법을 얻은 지 몇 년 되지 않은 A수련생을 만났는데 그녀도 마침 노수련생과 함께 짝을 이뤄 진상을 알리고 싶어 했습니다. 정말 마음먹은 대로 됐고 우리는 모두 사부님의 배치에 감사드렸습니다.

우리가 알게 된 후, 친구가 며칠 후에 농가 체험장에 놀러 가자고 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일기예보에서 그날 비가 온다고 해서 그들은 가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그날 아침에 정말 큰비가 왔는데 저는 마음속으로 말했습니다. ‘오늘은 비를 내리지 마라. 우리는 사람을 구하러 가야 한다.’ 몇 분 후 비가 정말 그쳤습니다. 친구들이 말했습니다. “비도 그쳤으니 가봐요.” 저는 A와 처음으로 협력해 진상을 알렸는데 우리는 매우 잘 맞았고, 그날 농가 체험장에서 모두 21명에게 진상을 알리고 삼퇴를 시켰습니다. 한 사람은 진상을 이해한 후 대법을 배우고 싶어 했고, 그 자리에서 바로 대법 서적을 청했습니다. 사부님께서 인연 있는 사람을 우리 곁으로 안배해주셔서 구원받게 해주심에 감사드립니다.

몇 년 전, 저는 한 수련생과 함께 이웃 성의 한 피서산장에 가서 진상을 알리다가 현지 촌 간부의 모함으로 불법 판결을 받았습니다. 올해 A와 다른 신수련생 B가 저를 인접한 또 다른 성의 피서지에 가서 진상을 알리자고 했는데, 그곳에는 전국 각지에서 30만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피서를 가곤 했습니다. 저는 그때 피서지에서 진상을 알리다가 박해당했지만 그것에 얽매이지 않고, 오히려 긍정적으로 교훈을 취하여 진상을 알려 사람을 구하는 것을 중시했고 기쁘게 동의했습니다.

우리 세 사람은 그곳에서 20여 일을 머물렀고 300여 명을 삼퇴시켰습니다. 비록 그녀들 둘 다 2019년에 법을 얻은 신수련생이었지만 모두 매우 정진했고 저에게 큰 도움이 됐습니다. A는 60세로 퇴직 교사인데 진상을 매우 잘 알렸고 B는 50대였습니다. A는 전에 저와 두 번 진상을 알린 적이 있었고 B는 처음 만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 세 사람은 매우 잘 협력했습니다. 저와 A가 진상을 알리면 B가 정념을 발하며 협력했습니다.

우리는 매일 새벽 3시에 일어나 5가지 공법을 연마하고 정념을 발한 후, 간단히 아침을 먹고 7시쯤 출발했습니다. 우리는 도보로 다니면서 인연 있는 사람을 만나면 진상을 알렸습니다. 10시 30분에 돌아와 간단히 점심을 먹고 40분 휴식한 후 법공부를 시작해서 밤 11시 30분까지 하고, 자정 발정념을 한 후에야 잠을 잤습니다.

처음에는 이렇게 빡빡한 시간 안배에 적응이 안 됐지만 법을 얻은 지 몇 년 되지 않은 이 두 신수련생이 이렇게 정진하는 것을 보니 법을 얻은 지 20여 년이 된 저는 깊이 부끄러웠습니다. 게다가 시간을 아끼기 위해 그들은 하루 두 끼만 먹고 저녁은 먹지 않았습니다. 제가 저녁을 먹을 때 그들은 명혜망에서 교류문을 보았습니다. 매일 우리는 《전법륜》 두 강을 공부하고, 그 다음 《정진요지》, 《홍음》, 사부님의 다른 설법을 공부했습니다.

A의 사람을 구하는 마음은 정말 저를 감동시켰습니다. 한번은 한 교사를 만났는데 A가 그에게 오랫동안 이야기했지만 그는 탈퇴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A는 슬퍼서 눈물을 흘렸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포기하지 않고 계속 1시간 이상 이야기했고, 마침내 상대방이 삼퇴하기로 동의했습니다. 저 자신을 돌이켜보니 탈퇴하기를 원하지 않는 사람을 만나면 저는 거의 A처럼 끈기 있게 하지 않았습니다.

B는 나중에 두려운 마음을 돌파해 혼자서도 진상을 알릴 수 있게 됐습니다. 어느 날 그녀는 오전에 다섯 명에게 진상을 알리고 탈퇴시켰습니다. 우리 숙소 근처에 사는 한 사람이 B의 진상 이야기를 듣고 매우 감동했는데, 그가 우리 숙소를 찾아왔을 때 B는 이미 떠난 후였습니다. 그는 500위안을 꺼내 제게 주면서 말했습니다. “그녀가 오늘 떠난다고 하지 않았나요? 왜 어제 떠났죠? 저는 원래 그녀에게 뭘 좀 사주려고 했는데, 또 그녀가 뭘 좋아하는지 몰라서요. 제가 이 500위안을 전해주세요. 그녀는 마음이 너무 좋아요. 이렇게 좋은 일을 제게 알려주다니요. 그녀가 이런 것들을 제게 알려주지 않았다면 저는 사람이 왜 사는지도 몰랐을 거예요.” 저는 말했습니다. “돈은 우리가 받을 수 없습니다. 대법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진상을 알려 사람을 구하라고 하신 거예요. 감사하시려면 대법 사부님께 감사드리세요!”

맺음말

얼마 전에 억울한 감옥살이에서 돌아온 한 수련생이 제게 물었습니다. “당신은 어떻게 돌아온 후 그렇게 짧은 시간 안에 상태를 조정하고 정법 노정을 따라잡을 수 있었나요?” 제 체험으로는 사람을 구해야 한다는 강렬한 사명감과 긴박감이 저에게 반드시 시간을 다투어 법을 잘 배우는 기초 위에서 세 가지 일을 잘하게 했습니다.

끊임없이 마음을 가라앉히고 법을 배우고 심성이 끊임없이 제고됨에 따라 일부 난관이 순조롭게 해결됐고, 세 가지 일을 하는 것이 갈수록 순조로워지고 사람을 구하는 힘이 갈수록 강해졌습니다. 파룬따파는 너무나 신기하고 정말로 전능합니다. 앞으로 저는 반드시 착실하게 수련하고 안정적으로 세 가지 일을 잘하여, 사부님의 자비로운 제도에 부끄럽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원문발표: 2024년 11월 13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4/11/13/484439.html
简体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4/11/13/484439.html

ⓒ 2024 명혜망.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