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대만 대법제자
[명혜망] 저는 대만 가오슝시 치메이구의 신수련생으로, 2023년 11월 1일에 법을 얻었습니다.
1. 인생의 부침을 겪으며
중국에서 25년간 사업을 하면서 인생의 방황도 겪었고 각종 고난도 겪었습니다. 50세가 됐을 때 간에 혹이 생기고 척추에 골극이 생겼으며, 쪼그리고 앉았다가 일어나면 쉽게 어지러웠습니다. 몸과 마음이 지칠 대로 지쳐 거의 한계에 다다른 것 같았습니다. 이런 상태에서 저는 자연스럽게 ‘인생은 무엇을 위해 사는가?’라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이런 생각이 들자마자 어떤 인연으로 수행의 길로 들어서게 됐습니다. 당시의 저는 매우 정진하고 열심히 배웠습니다. 비록 세상 사람들이 스승이라고 부르는 이들이 저를 잘 대해줬지만, 제 마음속의 진정한 의혹을 풀어주지는 못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3년마다 다른 법문으로 바꿔가며 수행했습니다.
옛사람은 “젊어서 뜻을 이루면 큰 불행이요, 큰 그릇은 늦게 이뤄진다”라고 했는데 정말 맞는 말입니다. 1997년 저는 광둥성 둥관에서 공장을 차렸는데 그때 중국의 의류 정보는 아직 국제와 연결되지 않았고 공장의 디자인 인재가 부족했으며, 심미안과 의류 공정이 매우 부족했습니다. 당시 의류 도매 생태계는 저가와 저이윤 경쟁이 주를 이뤘고, 많은 대만 상인들은 경쟁할 수 없다고 여겼지만 저는 이것이 사업 기회라고 봤습니다.
그래서 저는 짧은 시간 내에 몇 가지 전략을 활용했고, 생산을 시작한 후 모든 것이 예상대로 됐습니다. 반년 만에 500만 장이 넘는 스웨터를 판매해 1억 위안이 넘는 순이익을 냈습니다. 그때는 자면서도 웃을 정도였습니다.
젊어서 뜻을 이루니 젊은이의 오만함이 생겼습니다. 돈이 너무 빨리 들어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그때 내면은 물질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고객들도 저를 하늘로 치켜세웠고 걸을 때도 바람이 불었습니다. 먹고 마시고 도박하고, 풍류를 즐기며 지냈습니다. 인과응보도 빨리 왔습니다. 공장을 연 지 10개월도 안 되어 첫 번째 국세 조사가 왔고, 이어서 우한 노동개조소와 분쟁이 생겼습니다. 이 분을 삭이지 못하고 노동개조소와 소송을 했는데 시간과 돈만 낭비하고 결국 더 큰 손해를 보고 말았습니다. 몇 년이 안 되어 두 번째 세무조사가 왔고, 재앙이 잇따라 왔습니다.
당시 저는 상하이의 한 백화점에서 브랜드 체인점을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개업 발표회 전날 밤, 음주운전을 하다가 길가 기둥을 들이받아 쇄골과 왼팔이 부러져 거의 1년을 누워있었습니다. 상하이에서 제가 가진 70%의 주식도 주주들에게 빼앗겼습니다. 잇따른 불운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고, 44세가 되던 해에는 수출 거래처 세 곳이 동시에 파산하면서 그것이 결정타가 되어 모든 것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그래서 미국의 별장을 팔아 부채를 정리하고 인적이 드문 곳으로 숨어 남은 인생길을 고민했습니다. 이것이 제가 중국에서 25년간 사업했던 이야기의 축소판입니다. 영광스러운 시절부터 낙담까지, 남은 인생의 교훈으로 삼게 됐습니다.
2. 법을 얻은 인연
3년 전 아버지의 한마디 말씀 때문에 저는 중국에서의 사업을 접고 대만으로 돌아와 부모님의 마지막 인생길을 함께하게 됐습니다.
대만으로 돌아온 후 우연한 기회에 한 파룬궁수련생을 만났습니다. 그녀가 제게 수련서 《전법륜(轉法輪)》을 빌려줬고, 책을 받은 그날 저녁부터 매일 한 강을 배웠습니다. 다 배우고 나서 그녀가 9일 학습반에 참가하라고 했는데 저는 망설임 없이 갔습니다. 마치 어떤 힘이 저를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의 수련으로 밀어주는 것 같았습니다. 9일 학습반 첫날, 이 노수련생이 말했습니다. “《전법륜》이라는 주요 수련 대법 경서 외에도 50여 권의 설법이 있는데, 모두 《전법륜》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저는 망설임 없이 그녀에게 모든 설법을 주문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3. 불이법문(不二法門)에 대한 인식
9일 학습반 첫날 제1강을 다 보고 나서 이전에 배웠던 것들을 내려놓지 못해 불이법문에 대한 인식이 불분명했기에 이전의 인식으로 이야기를 했습니다. 이 수련생이 저에게 “앞으로 법공부를 하다 보면 알게 되실 것”이라고 했는데, 과연 사부님께서 《전법륜》 제3강에서 말씀하시기를 “당신이 두 척의 배에 발을 딛고 있다면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라고 하셨습니다. 사부님의 이 법에 의해 저는 불이법문에 대해 더욱 분명한 인식을 갖게 됐습니다.
그래서 저는 집에 있는 불당을 정리하기 시작했고, 이전의 불상들과 다른 법문의 책들을 모두 정리해서 내보냈으며, 이전에 저를 가르쳐주신 스승님들께 감사의 메시지를 보내 앞으로는 파룬궁 수련에만 전념하겠다고 알려드렸습니다.
4. 정진하며 착실히 수련
9일 학습반이 끝난 며칠 후, 수련생의 도움으로 주문한 모든 경서가 도착했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매일 한 권씩 직장에 가져갔고, 2개월 정도 만에 《전법륜》과 50여 권의 경서를 한 번씩 다 배웠습니다. 정말 수련생이 말한 대로 배우면 배울수록 얻는 것이 많았습니다. 사부님께서는 가장 알기 쉬운 언어로 우주의 큰 이치를 말씀하셨습니다. 각지 설법에서 사부님께서는 수련생들의 질문에 답하셨는데, 많은 것이 제가 이해하고 싶었던 문제들이었습니다. 이는 제가 이전에 가졌던 생명에 대한 의혹을 풀어주었을 뿐만 아니라, 사유도 더욱 넓어졌고, 사부님을 더욱더 믿게 됐으며, 파룬따파가 제가 수련할 유일한 법문임을 깊이 믿게 됐습니다. 저는 마치 지극한 보배를 얻은 것 같았습니다!
돌이켜보면 큰돈을 들여 동분서주하며 유명한 스승을 찾아다녔지만 많은 시간을 낭비했을 뿐 아무것도 얻지 못했습니다. 한 친구가 저와 다른 법문에서 함께 했었는데, 어느 날 저를 찾아왔다가 제 집에 와서 놀라며 왜 불당을 파룬따파 사진으로 바꿨냐고 물었습니다. 저는 “이제 파룬궁 수련에만 전념하기로 했기 때문”이라고 답했습니다. 저는 그에게 사부님의 경서를 배운 심득을 들려주었고 그도 흥미를 보였습니다. 몇 차례 교류 후에 그도 파룬궁 수련을 시작했다는 소식을 들었고, 진정한 파룬따파 수련생이 됐다는 것을 알고 내심 매우 기뻤습니다.
직장 근무시간이 비교적 자유로워서 저는 저녁에는 법공부를 하고 새벽 4시에 일어나 연공하고 발정념을 하는 등 수련인다운 태도를 가지도록 스스로에게 요구했습니다. 저는 일정 기간마다 사부님의 공법 교육 영상을 보고 《대원만법》도 보면서, 연공할 때는 최대한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천천히 둥글게 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연공한 지 4개월 정도 됐을 무렵의 어느 아침, 마치 사부님의 법신(法身)께서 앞에서 저를 가르치시는 것이 보이는 것 같았습니다. 그날부터 제 동작은 사부님께서 《대원만법》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그 손이 저절로 날아 움직여”와 같이 됐습니다. 동작이 음악의 구령과 매우 일치했고 내심도 매우 평온했으며, 동작이 조급하지 않고 여유로워져서 더 이상 숫자를 셀 필요도 없게 됐습니다.
5. 신기한 현상
지속적인 법공부로 제 내심은 점점 더 청정해졌습니다. 어느 날 밤 《미국법회 설법》 〈뉴욕법회 설법〉을 배우는데, 사부님께서 말씀하시길 “여러분에게 알려주겠다. 분자로 조성된 입자, 원자로 조성된 것은 말할 나위도 없이, 바로 분자로 조성된 것도 우리 가장 표면적인 이 입자보다 더 작은 층의 입자로 조성된 물질이라면 사람은 보지 못한다”라고 하셨습니다.
다음 날 새벽 4시에 일어나 동공을 연마할 때였는데, 하늘에는 많은 별들이 있었습니다. 제1장 공법을 연마할 때 온몸이 매우 크게 커진 것 같았고, 하늘의 별들이 갑자기 모두 몸 안에 있는 것 같았습니다. 당시 연공할 때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았는데, 이는 정말 기묘한 체험이었습니다. 이는 신심을 더해주었을 뿐만 아니라 더욱 용맹정진하게 했습니다!
6. 한 차례 병업관(病業關)을 넘은 체험
3개월 전 제4번 공법을 연마한 후, 갑자기 등이 매우 불편해졌는데 특히 왼쪽 등이 약간 아팠습니다. 다음날부터 점점 더 아파져서 3일째 되는 날에는 아파서 똑바로 누울 수도 없었습니다. 며칠을 고생하다가 참지 못하고 한의원에 가고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이것이 병이 아니라 업력이고 소업(消業)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통증을 참지 못하고 국술관에 가서 처리했는데, 그곳에서는 별문제 없고 아마도 근육과 경락이 염증이 생긴 것 같다며 고약을 붙여주었습니다. 하루를 붙였지만 소용이 없었고 여전히 아팠습니다. 다음날 다시 갔더니 국술관에서는 또 문제없다며 고약을 다시 붙이면 나을 거라고 했지만 전혀 효과가 없었습니다. 이때 사부님 말씀이 생각났고, 이것이 바로 소업이며 업을 밀어내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이를 악물고 매일 법공부와 연공을 강화했고, 연공하다가 너무 아플 때는 마음속으로 ‘사부님!’을 크게 외쳤습니다. 이렇게 한 달 정도를 버티니 마침내 넘어갔고, 온몸이 훨씬 상쾌해졌습니다. 이 고비를 넘은 후에도 약간의 병업관이 있었지만 이에 비하면 훨씬 수월했습니다. 이는 오직 사부님을 믿고 법을 믿기만 하면 관을 잘 넘을 수 있다는 것을 더욱 깊이 믿게 했습니다.
7. 사부님께서 제자를 보호하시어 재난을 피하게 하심
제 직장은 때로는 낮에는 텅즈(藤枝) 국립공원에서 일하고, 퇴근 후에는 또 자셴(甲仙)에서 야간 근무를 해야 했습니다. 7월 말의 태풍은 많은 비를 몰고 왔고, 이로 인해 도로는 산사태 위험이 매우 높았습니다. 8월 8일, 국립공원은 환경을 정리한 후 개장했는데, 아침에 한 동료가 발이 너무 아파서 휴가를 내고 산을 내려가 의사를 보러 갔습니다. 그는 12시에 저에게 전화해서 산길이 곧 봉쇄될 거라고 했습니다. 원래 그날 저는 4시 30분에 먼저 산을 내려갈 예정이었는데, 다행히 그날은 내려가지 않았습니다. 결과적으로 오후 4시 45분경에 도로의 한 산비탈이 무너졌는데, 만약 일찍 내려갔다면 그 시간이 바로 제가 산사태가 난 곳을 지나갈 때였을 것입니다. 저는 사부님께서 항상 제자를 보호하고 계신다는 것을 체험했고, 이 난을 없애주신 사부님께 감사드렸습니다. 이후에 저는 산에서 이틀을 더 보내고 내려왔습니다.
8. 법 얻은 인연을 소중히 여기며 분발하며 따라잡다
대법 수련 후 많은 기적이 제 몸에서 일어났고 저는 대법의 수혜자입니다. 그래서 저는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라고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지역의 수련 상황을 알게 됐는데, 초기에 법을 얻은 일부 수련생들이 나오지 않거나 수련하지 않게 됐고, 원래 정해놓은 반일(半日) 법공부도 지금은 잠시 중단된 상태였습니다. 저는 보도원과 교류한 후 그의 지지 하에 이전의 반일 법공부를 회복했고, 동시에 나오지 않는 수련생들을 방문하여 지역의 수련환경을 높이고 새로운 기상을 가져오길 희망했습니다.
제가 미술과 원예 전공이라, 어느 날 한 전화를 받았는데 요양원에 가서 분재 강좌를 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다른 한 수련생과 함께 가서 가르쳤고 모두의 호평을 받았습니다. 원측에서는 우리를 류구이(六龜) 지역사회에도 소개해 가르치게 했고 역시 환영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우리 둘은 분재 교육을 통해 어떻게 치메이구의 모든 지역사회로 들어갈 수 있을지 구상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이 생각을 보도원과 교류했고 찬성을 얻었습니다. 저는 이것이 지역 중생들에게 진상을 알리고 션윈이나 깐징월드를 추진하는 데 기반이 될 수 있는 한 방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맺음말
사부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당신들은 대법제자이기에 천상의 무수한 생명, 헤아릴 수 없이 무량한 생명들이 당신들을 부러워한다. 어떤 고층의 신이든, 그가 아무리 커도, 오늘 내가 그에게 와서 대법제자가 되라고 하면 일초도 필요 없이 나의 말이 떨어지기만 하면 그는 즉시 뛰어내려오는데 그야말로 좋아서 어쩔 줄 모른다. ――명백한 자는 다 알고 있는바, 그것은 자신을 구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의 세계의 무량한 중생도 구할 수 있다. 이는 미래 우주의 가장 대단한 일이다.”(각지 설법11-무엇이 대법제자인가)
이 법을 볼 때 저는 감동이 북받쳐 말을 할 수 없었습니다. 온몸이 진흙투성이였던 저를, 정법 최후에 사부님께서는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이렇게 늦게 법을 얻었으니 저는 오직 분발해 따라잡아야만 사부님의 자비로운 제도에 부끄럽지 않을 것입니다!
이상은 제 수련 심득체험입니다. 분명 부족한 점이 많을 테니 수련생 여러분께서 자비롭게 지적해주시길 바랍니다.
자비롭고 위대하신 사부님께 감사드립니다. 수련생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2024년 대만 법회 원고)
원문발표: 2024년 11월 2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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