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대만 대법제자
[명혜망]
존경하는 사부님 안녕하십니까.
수련생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저는 타오위안시에서 온 젊은 학생입니다. 우리집에서는 할머니, 아버지와 어머니가 제가 태어나기 전부터 수련을 시작하셨습니다. 다시 말해서, 저는 태어나자마자 부모님을 따라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를 배우고 수련했으며 지금까지 25년이 됐습니다. 이 수련과정을 돌아보면서, 저는 사부님의 자비와 대법의 아름다움, 그리고 대법제자로서의 사명을 체득했습니다.
1. 인생의 밑바닥을 처음 만나 수련의 의미를 깨닫다
어릴 때, 저는 자주 부모님을 따라 여러 대법 활동과 교류회에 참석했고, 부모님의 당부대로 세 가지 일을 잘했습니다. 하지만 중학교에 올라가서 입시를 특별히 중시하는 반에 들어간 후, 과중한 학업의 압박 속에서 저는 자주 밤을 새워 공부했고, 원래 수련인으로서 해야 할 세 가지 일도 들쑥날쑥하게 됐습니다. 성적은 좋아지기는커녕 오히려 점점 떨어졌고, 부모님과의 관계도 긴장됐으며, 자주 부모님께 말대꾸하고 짜증을 냈습니다.
이런 상태가 1년 가까이 지속됐고 어느 날 아침, 저는 갑자기 잠에서 깨어나 침대에서 일어나 중얼거렸습니다. “나는 법공부를 해야겠다.” 갑자기 불쑥 나온 한마디 말에 저는 이것이 저의 명백한 면이 깨어난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제가 다시 사부님의 경문을 집어 들었을 때 사부님께서 《스위스법회 설법》에서 하신 말씀을 읽게 됐습니다. “나는 당신들만 위해서가 아니라, 나는 모든 생명을 위해 온갖 걱정을 다 했으며 나는 모든 생명을 위해 거의 나의 일체를 소모하였다.” “그러나 당신들은 아는가? 당신들이 얻은 그것에는 나의 얼마나 많은 것이 그 속에 용해되어 들어있는지를? (박수) 물론 나는 나 자신의 일을 말하고 싶지 않은데, 나는 다만 당신들에게 내가 사부로서 이 일을 하고 있으므로 당신들도 소중히 여겨야 한다고 알려주고 싶을 뿐이다! 당신들은 반드시 잘 수련하여 이 기회와 인연을 놓치지 말라.”
이 경문을 읽는 순간 저는 눈물을 흘렸습니다. 저는 마침내 깨달았습니다. 부모님이 대법을 수련하는 가정에서 태어나 대법제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귀중한지를. 또한 어릴 때부터 사부님의 법리를 지침으로 삼았기에 제가 올바른 태도로 사람을 대하고 일을 처리할 수 있었고, 선생님들과 친구들이 말하는 품행과 학업이 모두 우수한 모범생이 될 수 있었습니다. 저는 마음속 깊이 사부님께 감사드리며 잘 수련하여 사부님께서 고심해서 안배하신 수련의 길을 헛되이 하지 않겠다고 결심했습니다. 또한 수련을 가장 중요한 위치에 놓았기에 긴장됐던 부모 자식 관계와 학업 성적도 점차 정상으로 돌아왔습니다.
2. 오랫동안 묻혀있던 집착을 깊이 파헤치고 제거하다
대학 시절 어느 해, 여러 수련생들이 우연히도 모두 저에게 학생캠프 참가를 권유했습니다. 제가 신청을 승낙한 후 오랫동안 의욕이 없었고 심지어 거부감이 들었습니다. 소극적인 태도는 제게 상태가 잘못됐음을 깨닫게 했습니다. 분명 대법 활동이고 서로 교류하고 비학비수(比學比修)할 수 있는 환경인데, 저는 왜 그렇게 거부감이 들었을까요?
마음속의 혼란과 저항감을 정리하기 위해 저는 앉아서 안으로 찾기로 했습니다. 학생캠프 참가에 대해 압박감을 느낀 것은 평소 법공부와 연공량이 부족했고, 진상을 알리는 항목에도 거의 참여하지 않았기 때문이란 걸 발견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학생캠프로 출발하기 전에 일상생활에서부터 시작해 법공부와 연공 시간을 늘리기로 했습니다.
아마도 사부님께서 제자가 변하고자 하는 마음을 보셨기 때문인지, 저는 법공부를 하면서 늘 곳곳에서 사부님의 일깨움을 볼 수 있었고, 그 과정에서 뜻밖에도 제가 오랫동안 깊이 묻어둔 집착을 찾아냈습니다. 기억하건대, 당시 사회는 성평등, 성희롱 등의 사건에 관심을 갖고 있었고, 관련 이슈들이 늘 확대 보도되고 부풀려지곤 했습니다. 이런 사회 풍조는 제가 중학교 시절 겪었던 이성으로부터의 언어적, 신체적 희롱을 떠올리게 했고, 수년 전의 경험이 그 순간 제 마음에 큰 불편함과 고통을 일으켰습니다. ‘그런 일이 어떻게 내게 일어날 수 있었을까.’ 어느 날, 저는 사부님께서 《미국서부법회 설법》에서 하신 말씀을 읽었습니다. “당신으로 하여금 제고하여 원만에 이르도록 하려고, 당신이 침대에 앉기만 해도 오래된 그런 괴로운 일들을 생각하게 한다. 당신으로 하여금 거기에 앉아서 화나게 하는데 이만저만이 아니다. 한나절 화가 나고서야 알게 된다. ‘아이고, 나는 수련하는 사람인데 이렇게 화를 내지 말아야 하지 않는가.’ 이 마음을 당신에게 제거해 주고 있다.” 저는 당년에 이 일이 발생했던 것이나, 수년 후 이 일을 떠올리게 된 것이나, 수련의 길에서 반드시 제가 제고해야 할 요소가 그 속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렇게 안으로 찾는 과정이 수개월 동안 지속됐고, 저는 매일 안으로 찾은 체득을 휴대폰에 기록했습니다. 그동안 저는 한때 세상 오염 속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던 자신에 대해 실망하고 마음 아파했지만, 오직 대법만이 저를 고통의 심연에서 이끌어낼 수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이렇게 날마다 법공부하고 안으로 찾는 과정에서 저는 제게 허영심이 매우 심하고 명리정(名利情-명예, 이익, 정)을 내려놓지 못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중학교 때의 저는 유행을 따르기 좋아했고, 자신을 나이보다 더 성숙해 보이게 심지어는 변이되게 꾸몄을 뿐만 아니라, 동급생들 특히 이성의 호감을 받는 것에 대해서도 늘 득의양양해했습니다. 이것을 깨달은 저는 곧바로 집에 있던 그런 변이된 옷들과 중학교 시절 간직해온 쪽지들과 편지들을 모두 버렸습니다. 오랫동안 묻어두었던 이 집착을 찾아낸 지 얼마 되지 않아, 이 기간 동안 휴대폰에 적어둔 일기들이 갑자기 생긴 고장으로 더 이상 열리지 않게 됐습니다. 저는 알았습니다. 이것은 과거의 짐을 내려놓고 계속 전진하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이렇게 안으로 찾기 시작했을 때는 무겁고 숨쉬기 힘들었지만, 사부님의 자비로운 일깨움과 격려 아래 집착이 층층이 벗겨지면서, 마침내 더욱 마음이 평온하고 가볍게 됐습니다.
3. 션윈 예술품 판매에 참여해 션윈의 아름다움을 전하다
대학 때부터 저는 몇 가지 항목에 참여했는데 그중 하나가 션윈 예술품 판매원이었습니다. 션윈 공연장에서 예술품을 판매하면서 동시에 관객들에게 예술품의 디자인 이념과 션윈의 아름다움을 소개했습니다. 처음 이 항목에 참여했을 때는 해야 할 일들이 그다지 어렵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예를 들어 예술품의 가격을 기억하고 예술품의 이념 등을 기억하는 것 말입니다.
하지만 제가 ‘쉽게 다룰 수 있다’고 생각했을 때 시험이 찾아왔습니다. 예술품 판매원은 때때로 고객의 장신구나 실크 스카프 착용을 도와야 했기에, 키가 작은 제가 고객을 원활하게 응대하려면 하이힐을 신어야만 했습니다. 처음에는 하이힐에 대한 개념이 없어서 뾰족하고 굽이 가는 하이힐을 선택했는데, 여러 날 동안 오래 서 있고 걸어 다니다 보니 발이 늘 아팠습니다. 특히 밤 공연 때가 되면 발바닥부터 종아리까지 시시때때로 쥐가 나고 아파서 때로는 걸을 수조차 없었습니다. 당시 통증을 완화하기 위해 관객들이 입장한 후에는 늘 조용히 하이힐을 벗고 쉬었습니다.
어느 해 순회공연이 끝난 후 그룹 내 수련생이 검토 교류 시간에 이번 판매 과정에서 전시대가 다소 어수선했고, 특히 어떤 수련생이 하이힐을 벗고 쉰 후 제대로 치우지 않고 통로에 두었다고 말했습니다. 비록 수련생이 언급한 당사자가 저는 아니었지만 이것은 제가 하이힐을 벗고 쉬었던 일을 다시 돌아보게 했습니다. 저는 제게 안일심이 있어서 발이 아픈 것을 소업(消業)하고 제고하는 과정으로 여기지 않았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게다가 이 대법을 실증하는 항목을 충분히 엄숙하게 대하지 않았고, 자신을 편하게 하려는 사심을 품고 있었기에 이런 행동을 했던 것입니다. 반면 션윈 배우들은 어디서든 하나하나의 동작과 말과 행동이 모두 단정하고 우아하며, 대법과 션윈의 아름다움을 체현하고 있었습니다. 이는 저에게 자신과의 격차를 보게 했고, 오직 심성을 제고해야만 션윈의 높이를 따라잡을 수 있으며, 그래야 그 하이힐을 신고 예술품을 소개하며 법을 실증할 자격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했습니다.
그 이후로 어떤 스타일의 하이힐을 신든, 비록 여전히 이를 악물어야 할 때도 있었지만, 제가 마음가짐을 바로잡고 더 이상 자신의 느낌을 출발점으로 삼지 않게 된 후에는 더 이상 공연 중간에 하이힐을 벗고 쉴 필요가 없었고, 통증 때문에 걸을 수 없는 일도 없었으며, 불편한 느낌도 항상 빨리 사라졌습니다.
4. 직장생활을 잘하여 대법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다
현재 저는 언어치료 석사과정에 재학 중이며, 동시에 실습 언어치료사로서 최근에 병원 실습을 마쳤습니다. 캠퍼스 생활과는 전혀 다르고, 실습생이라는 신분으로 인해 이 일은 더욱 힘들었습니다. 퇴근 후에도 많은 문서 자료와 보고서를 작성해야 했고, 저는 꼬박 1년 동안 거의 매일 3~4시간밖에 자지 못하는 생활을 했으며 주말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이런 생활 패턴으로 인해 법공부할 때 자주 졸았고 세 가지 일도 형식적으로 하게 됐습니다. 늘 자신이 마치 텅 빈 껍데기 같았고, 압박감이 덮쳐올 때는 더욱 무너질 것 같았으며, 자주 수련인의 태도로 직장에서의 어려움을 대하지 못했습니다. 한번은 제가 비교적 특수하고 복잡한 환자를 대했는데, 경험이 부족하여 준비가 충분하지 않았고 실제 시행할 때도 실수할까 봐 두려워 시도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그 후, 당시 저를 지도하던 분이 매우 화를 내며 저를 한바탕 꾸짖었고 제 마음은 부정적인 생각과 억울함으로 가득했습니다. 나중에 다른 동기나 후배들이 이 실습지도자의 교육 스타일을 물어볼 때마다 저는 늘 이 일을 꺼내어 이야기했습니다. 입으로는 후배들에게 “억울하게 꾸중 들을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했지만, 사실은 제 마음속에 분한 마음이 있어서 다른 사람들의 입에서 “실습지도자가 어떻게 그렇게 당신을 오해할 수 있죠?” 등의 위로하는 말을 듣고 싶어서였습니다.
한번은 어머니와 통화하는 과정에서도 저는 이 일에 대해 불평했는데, 어머니는 들으시고는 저에게 말을 가려서 해야 하며, 계속 실습지도자의 잘못을 뒤에서 말해서는 안 되고, 이 일에서 자신의 부족함을 생각해봐야 한다고 일깨워주셨습니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안으로 찾아보니 확실히 제가 치료에서 충분히 완벽하게 하지 못해서 실습지도자를 화나게 한 것이었고, 이런 실수는 사람들이 제가 치료를 대충 한다고 여기게 할 수 있었으니 다음번에 같은 실수가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경계해야 했습니다. 또한 되돌아보니 제가 ‘실수할까 두려워하고 시도조차 하지 못한 것’과 실습지도자가 자신을 ‘억울하게’ 만든 것에 대해 억울해한 표현은 실제로 제가 좋은 말만 듣고 싶어 하고 남의 말을 듣지 못하는 마음이 있었던 것이며, 수련인은 억울하게 되거나 비난받아도 마음이 움직이지 않아야 하고, 오해를 받을 때도 여전히 안으로 찾을 수 있어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직장에서는 때때로 감정이 격앙되거나 우리를 이성적으로 대하지 못하는 환자나 가족을 만나게 되는데, 이로 인해 의사와 환자 관계를 어떻게 잘 균형 잡을 것인가는 매우 중요한 과제가 됐습니다. 한번은 제 동료가 치료할 때 환자와 가족으로부터 온갖 괴롭힘을 당해 한때 다툴 뻔했습니다. 그 후, 동료는 분을 참지 못하고 저를 찾아와 한바탕 하소연을 했습니다. 그의 하소연을 다 듣고 나서, 저는 먼저 그가 환자를 돕기 위해 노력한 태도와 기울인 노력을 격려한 뒤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대하는 이런 환자들은 대부분 오랫동안 병고에 시달린 사람들이고, 이런 가족들도 오랫동안 매우 큰 간호 부담을 지고 있어서, 그들도 아마 매우 힘들어서 이렇게 됐을 거예요!” 동료는 이 말을 듣고 나서 확실히 많이 진정됐고 환자와 가족의 감정을 고려하라고 일깨워준 것에 대해 저에게 감사를 표했습니다. 또 다른 동료는 제가 늘 그들에게 눈앞의 난관을 바라보는 다른 관점을 제시해주어 갈피를 잡지 못하던 마음이 환하게 트였다고 말했습니다.
실습이 끝나고 제가 병원을 떠날 때, 실습지도자들은 제가 치료에서 이룬 진보와 환자분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한 것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해주셨습니다. 이런 긍정과 칭찬을 들으면서 제 마음은 따뜻해졌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그 속에서 대법의 아름다움과 신기함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대법은 저를 인생의 방황과 밑바닥에서 벗어나도록 인도했을 뿐만 아니라, 나아가 제 주변 사람들까지 함께 혜택을 받아 행복한 웃음이 넘치게 했습니다.
맺음말
어릴 적에 저는 한 꿈을 꾸었는데 꿈에서 사부님께서는 노란색 가사를 입으셨고, 저는 작은 선녀 복장을 입고 사부님을 따라 하늘에서 계속 날아다녔습니다. 25년간의 수련의 길에서 적지 않은 좌절과 낙오와 방황을 겪었지만, 사부님께서는 일깨움과 자비로 제자를 한 번 또 한 번 수련의 길로 이끌어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어린 시절의 꿈은 제 뇌리에 늘 선명하게 남아있는데, 저는 이것이 사부님께서 제자에게 주신 격려와 일깨움이라고 생각합니다. 전생의 약속과 대법제자가 되는 것의 엄숙함과 귀중함을 잊지 말라는 일깨움입니다.
이상은 제 심득 교류입니다. 부족한 부분이 있다면 수련생 여러분께서 자비롭게 지적해주시길 바랍니다. 자비롭고 위대하신 사부님께 감사드리며 수련생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2024년 대만 법회 원고)
원문발표: 2024년 10월 30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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