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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대법제자 “항목을 하는 과정에서 집착심을 버리다”

글/ 스위스 대법제자

[명혜망]

존경하는 사부님 안녕하십니까!
수련생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시간은 빠르게 흘러가고 사부님의 정법 노정도 빠르게 추진되고 있습니다. 특히 최근 사부님께서 연이어 발표하신 여러 편의 경문을 통해 수련의 엄숙함과 시간의 긴박함을 더욱 깊이 체득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안일한 마음 등 각종 사람마음의 방해와 법공부와 연공 시간이 부족한 탓에 수련 상태가 안정적이지 못하고, ‘용맹정진’의 상태를 늘 유지하지 못했습니다.

이번 스위스 독일어권 법회에서는 마음속으로 약간 뒷걸음치고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왜 교류문을 써야 하는지 자문하기 시작했습니다. ‘집에서 수련하는 것이 그리 못하지 않다는 것을 수련생들에게 보여주고 싶어서인가?’ ‘교류문을 쓰지 않으면 수련생들이 나에 대해 좋지 않은 생각을 할까 봐 걱정되어서인가?’ 곧 이러한 불순한 생각들을 버렸습니다. 최근의 수련 과정을 차분히 돌아보고 부족한 점은 다음에 잘하기 위해 정리하고, 고비를 넘긴 체험도 수련생들과 나눌 수 있으며, 교류문을 쓰는 과정 자체가 깊이 안으로 찾아보는 기회가 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아래에서 최근의 수련 체험을 몇 가지 방면에서 나누고자 합니다. 이를 통해 수련에서 지속적으로 더욱 정진하도록 스스로를 격려하고자 하며, 부족한 점이 있다면 수련생 여러분께서 자비롭게 지적해주시길 바랍니다.

1. 항목 진행 과정에서 집착심을 버린 경험

저는 화목하고 조화로운 가정에서 성장하며 어릴 때부터 부모님을 따라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를 수련했고, 마음속에 진선인(眞·善·忍)을 깊이 새기고 살았습니다. 주변 사람들은 저를 침착하고 이해심 많은 사람으로 보았고, 학업 성적도 우수해 칭찬을 많이 받았습니다. 이를 통해 한편으로는 파룬따파의 아름다움과 기적을 세상에 보여줄 수 있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저도 모르게 명예를 바라는 마음과 체면을 중시하는 마음이 싹트게 되었습니다. 특히 타인의 비판이나 지적을 견디기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항목에서 저는 이러한 명예를 바라는 마음과 체면을 중시하는 마음에 대한 여러 가지 시련을 겪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실수할까 두려워 매우 조심스럽게 행동했습니다. 갈등을 피하려다 보니 다른 이의 잘못을 보고도 지적하지 못했죠. 그래서 자주 협력하는 수련생의 녹음에서 오류를 발견하곤 했는데, 때로는 수정을 요청하는 게 민망해서 제가 직접 편집하거나 뚜렷하지 않은 실수는 그냥 넘어가기도 했습니다.

나중에야 깨달았습니다. 이는 강한 자기방어 심리에서 비롯된 것이지, 진정한 선(善)이 아니었던 거죠. 그래서 프로그램의 질을 책임진다는 자세로 정직하고 인내심 있게 소통하기 시작했고, 그 결과 발음하는 수련생들의 실력이 향상되어 수정할 일이 거의 없어졌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저의 또 다른 집착이 드러났습니다. 바로 ‘과시하려는 마음’이었죠. 다른 수련생들의 실수를 보면서 ‘어떻게 이렇게 기초적인 실수를 할 수 있지?’라든가 ‘이 정도의 기본상식도 없나?’라고 생각했고, 제가 편집한 영상에는 그런 실수가 없다는 것에 안도했습니다. 이는 순수하게 대법을 실증하려는 게 아니라, 자신의 지식과 꼼꼼함을 뽐내려는 질투심과 과시심이 작용한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이를 인식한 후 저는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을 살피며, 부정적인 생각이 들 때마다 즉시 정념으로 제거했습니다. 그러자 점차 타인을 업신여기는 마음이 약해졌고, 수련생들을 더 깊이 이해하게 되어 그들의 실수에 더 이상 충격받지 않게 되었습니다.

한번은 몇몇 수련생들과의 소통 문제로 작은 오해가 생겼습니다. 상황을 파악하자마자 저는 한 수련생에게 메시지를 보내 사과했고 제가 체면 때문에 타인의 요구를 거절하지 못해 그녀가 다른 수련생들에게 오해를 산 것을 설명했습니다. 예상치 못하게 그 수련생은 연달아 여러 메시지를 보내왔는데, 제 어려운 처지(낮에는 아이를 돌보고, 수련하지 않는 남편은 바쁜 직장 일로 매일 늦게 귀가해 충분한 휴식을 보장해줘야 하는 상황)를 전혀 몰랐다며 왜 미리 알려주지 않았냐고 물었습니다. 저는 여러 차례 사과하며 안으로 찾아본 집착심을 솔직히 털어놓았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제가 제대로 찾지 못했다고 하면서, 자신은 1996년부터 대법을 수련해왔기에 저보다 경험이 많다고 강조하며 제가 언제부터 수련했는지 되묻더군요. 순간 눈물이 왈칵 쏟아졌습니다. 마치 제 수련 전체가 부정당한 것 같아 머릿속이 하얘졌습니다.

저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수련생이 왜 그런 말을 했는지 깊이 성찰했습니다. 문득 깨달음이 왔습니다. 제 안에는 수련생들 사이에서 명성을 얻으려는 깊이 숨겨진 마음이 있었고, 수련에서 인정받고 싶어 했으며, 수련생들과 심성 마찰이 있을 때 표면적으로는 적극적으로 안으로 찾는 모습을 보였지만, 사실은 그렇게 하지 않으면 심성이 부족하다거나 수련이 착실하지 못하다고 여겨질까 두려워서였던 것입니다.

게다가 저도 그 수련생과 같은 문제를 갖고 있었습니다. 1999년 이전에 법을 얻은 노수련생으로서 법에 대해 이미 깊은 이해가 있다고 여겼던 것입니다. 그래서 수련생이 제가 안으로 찾은 것을 부정했을 때, 그 충격은 이전의 어떤 지적보다도 컸습니다. 사실 이는 깊이 숨겨진 명예욕이 건드려졌기 때문이었습니다. 그것은 소멸되기를 거부했지만 수련인으로서 모든 마음을 버려야 하며 어떤 형태의 명예욕도 남겨둘 수 없습니다. 오늘 이것이 발견된 것은 오히려 다행한 일이었고, 저는 법 안에서 자신을 바로잡아야 했습니다. 이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습니다. 지금 되돌아보면 당시 그토록 크게 자극받았던 제 모습이 오히려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2. 션윈 공연 기간의 수련 체험

중국에 있을 때부터 저는 션윈을 특별히 사랑했고 매년 설날이면 가장 기대되는 것이 션윈 공연이었습니다. 사부님께서 해외 수련생들이 션윈 홍보를 돕는 것의 중요성을 설법하셨을 때, 저도 언젠가 해외에 나가게 되면 션윈을 위해 힘을 보태고 싶다는 소망을 품었습니다.

스위스에 온 후, 저는 감사하게도 사부님께서 션윈 관련 프로젝트에 참여할 기회를 주셨고, 최근 2년간 사부님께서는 션윈쭤핀(神韻作品) 플랫폼을 출시하시어 일반인들이 공연 시즌이 아닐 때도 구독을 통해 션윈의 은혜를 받을 수 있게 하셨습니다. 협조인 수련생의 신뢰 덕분에 저는 극장에서 션윈쭤핀을 판매하는 일원이 될 수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매우 불안했습니다. 제 불안정한 수련 상태가 션윈쭤핀 판매에 영향을 미칠까 걱정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매일 일찍 일어나 연공하기 시작했고, 최대한 수련생들과 함께하는 단체 연공 시간에 맞추려 노력했습니다. 그때는 아이가 아직 젖을 떼지 않은 상태라 연공 중에 아이가 깨면, 남편의 휴식을 방해하지 않으려고 수유하고 아이를 재운 뒤 다시 연공을 이어갔습니다. 의지가 약할 때는 실수로 잠이 들기도 했지만, 정념을 반복해서 강화하며 끝까지 마쳤습니다.

2023년은 제가 처음으로 션윈 공연 기간에 일을 맡게 된 해였습니다. 판매 경험도 없고 언어 장벽도 있어서 제대로 해낼 수 있을지 늘 걱정이 앞섰습니다. 협조하는 수련생이 계속 격려해 주셨고, 저는 ‘무조건 수련생과 협력한다’는 일념을 갖고 전 과정에서 정념을 발했습니다. 동시에 다른 수련생들의 일하는 방식을 관찰하며 관객들에게 자연스럽게 션윈쮜핀을 소개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사부님의 가지(加持) 덕분에 둘째 날 저녁 공연 중간 휴식 시간에 한 인연 있는 관객이 제게 다가와 자연스럽게 션윈쭤핀 앱을 다운로드했고, 공연이 끝난 후에도 와서 설정을 마무리하고 연간 구독권을 구매했습니다. 아마도 제가 같은 공연을 보면서 션윈의 강대한 에너지로 가지되어 마음이 맑아졌기에 잡념이 전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저는 사부님의 격려에 깊이 감사드렸습니다. 첫날 밤 공연이 끝난 후 휴대폰을 확인해보니 남편이 여러 통의 전화를 걸었고 “샤오수(小樹)가 엄마를 찾아”라는 메시지를 남겼더군요. 순간 눈물이 멈추지 않았습니다. 겨우 10개월 된 아이가 아직 젖도 떼지 않았는데 하루 종일 수유를 하지 못해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한계에 다다른 것 같았습니다. 협조인 수련생에게 달려가 다음날은 저녁에만 올 수 있을지 물었습니다. 집안의 압박감이 너무 커서 견디기 힘들다고 했더니, 협조인 수련생은 친절하게 이해해주시며 간단한 대화 후에 제가 결정하도록 하셨습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마음이 차츰 가라앉았습니다. 수련생이 말씀하시길, 마치 등산처럼 이제 정상에 거의 다다랐듯이 가장 힘들고 어려운 고비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깊은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이 관문이 바로 제 가족에 대한 정을 겨냥한 가상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제가 아이에 대한 정을 내려놓을 수 있다면 남편에게도 고생스러운 좋은 단련의 기회가 될 것이고, 저에게는 더욱이 인간의 속박에서 벗어나 신의 경지로 향하는 중요한 한 걸음이 될 것입니다. 사부님의 보호에 감사드립니다. 남편의 전화를 받지 않게 해주셔서 아이의 울음소리를 직접 듣지 않아 심성을 지키기가 수월했습니다. 이제 제가 어떻게 해야 할지 알았습니다.

다음날도 원래 계획대로 아침 일찍 나가서 한 공연도 빠지지 않았습니다. 마음을 내려놓으니 집에 돌아와보니 아무 일도 없었고 아이와 남편 모두 잘 지내고 있었습니다.

2024년 공연 기간에는 작년처럼 가족에 대한 집착은 없었지만, 심성 시련은 계속 이어졌습니다. 몇몇 관객이 와서 대화를 나누면서 중국에서 대법이 박해받는 진상에 관심을 보였을 때, 저는 그들의 관심을 어떻게 션윈쭤핀 연간 구독권으로 돌릴 수 있을지 몰랐습니다. 왜 이런 상황이 생겼는지 안으로 찾아보니 실제로는 제 마음이 잘못된 방향으로 갔던 것입니다. 션윈쭤핀 연간 구독권 판매에 집중하지 않았던 거죠. 잠재의식 속에서 제가 소개만 하면 구매 여부는 자연스럽게 될 거라고 여겼습니다. 사실 이는 안일한 마음이었고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사람이 구독권을 구매하도록 할 수 있을지 진심으로 생각하지 않았기에, 다시 말해 정념이 부족해서 주제에서 벗어나게 된 것입니다.

한 관객이 제가 션윈 배우인지 물었을 때, 저는 웃으며 아니라고 대답하고 자연스럽게 션윈쭤핀을 소개했습니다. 하지만 제 허영심과 환희심으로 마음이 흔들려 판매 성과에도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올해 공연 기간 저는 한 장의 구독권도 판매하지 못했고, 공연이 끝난 후에는 약간의 상실감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시련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모든 사람이 배우들과 만나기 위해 무대 뒤로 갔을 때, 저는 객석에 남아 물건을 지켜야 했습니다.

부정적인 생각들을 힘껏 밀어내려 노력했지만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사흘 동안 아이를 보지 못한 것까지 겹쳐 복잡한 감정이 차올라 눈물이 멈추지 않았습니다. 저는 사부님께 가지(加持)를 청했습니다. ‘이런 부정적인 것들을 원하지 않으며 션윈이 사람을 구하는 일을 방해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순간 법 구절이 머리에 떠올랐습니다. “왜냐하면 사람을 제도함에 조건을 논하지 않고, 대가를 논하지 않으며, 보수를 바라지 않고, 명예 또한 바라지 않아 속인 중의 모범인물보다 훨씬 더 높기 때문인데, 이는 완전히 慈悲心(츠뻬이씬)에서 나온 것이다.”(전법륜)

이 법 구절을 반복해서 외우자 마음속의 원망이 순식간에 사라졌습니다. 제가 사람을 구하는 일에서조차 구하는 마음이 있었던 것입니다. 자신의 사명도 제대로 완수하지 못하면서 늘 얻으려 하고 득실을 따지고 있었으니, 정말 사부님의 세심한 안배와 자신의 신성한 서약을 저버린 것 같아 부끄러웠습니다.

3. 가정에서 집착심을 내려놓은 체험

작년에 시부모님이 중국에서 우리집에 3개월간 머무르셨는데 저에게는 큰 도전이었습니다. 처음으로 시부모님과 함께 생활하게 되어 식습관부터 생활방식까지 모든 면에서 큰 차이가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질투심이 작용했습니다. 시부모님이 아이를 돌보시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고, 1년 반 동안 제가 온갖 고생을 하며 아이를 키웠는데 시부모님이 오자마자 자연스럽게 천륜의 즐거움을 누리시는 것을 받아들이기 힘들었습니다. 그 결과 아이도 시부모님과 친해지지 못했고 제가 집에 있을 때는 저만 찾으며 할아버지, 할머니가 안아주려 해도 거부했습니다. 이후에 저는 이 더러운 질투심을 깨닫고 나쁜 생각들을 계속 제거하려 노력했더니 아이도 시부모님과 점점 가까워져서 나중에는 둘이서 외출도 하게 되었고, 저는 집에서 마음 편히 세 가지 일을 할 수 있었습니다.

어느 날 저녁, 시어머님이 갑자기 울면서 다시는 우리집에 오지 않겠다고 하셨습니다. 당시 저는 약간 짜증이 났지만 제가 대법제자이니 일반인과의 갈등은 분명 제 잘못일 것이라 생각하고 시어머님을 위로하며 혹시 제가 잘못한 게 있는지 여쭈어보았습니다. 시어머님은 시아버님이 까다로워서 이것도 안 드시고 저것도 안 드셔서, 저에게 미안한 마음에 시아버님을 원망했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다가 두 분이 서로 화가 나셔서 마음이 무척 불편하셨다고 합니다. 저는 시어머님을 안아드리며 괜찮다고, 시아버님이 드시기를 거부하신 것은 평생 빵만 드셔오셨기 때문이고, 제가 점심에 크림을 넣었을 때 이미 좋아하지 않으실 것이라고 예상했으니 전혀 섭섭하지 않다고, 절대 저 때문에 다투지 마시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시어머님은 제 말씀을 듣고 안심하시고 울음을 그치셨습니다.

저는 아직도 심성이 많이 부족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다른 수련생들과 비교하면 시부모님께 대한 제 선한 마음이 한참 부족합니다. 때로는 마음이 불편해서 아이를 낳은 후로 시부모님이 갑자기 아이에게만 관심을 보이시고 저는 안중에도 없으시다고 느꼈고, 오직 친정어머니만이 저를 걱정해주신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얼마나 우스꽝스러운지 깨달았습니다. 세속의 따뜻한 정과 관심을 구하고, 세인의 주목과 인정을 바라는 것이 바로 인간 세상의 진흙탕에서 놀고 있는 것 아닙니까? 설령 이런 것들을 얻는다 한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요? 그런 만족스러운 사람마음을 천상까지 가져갈 수 있을까요? 세속의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 신에게서 점점 더 멀어지는 것이 아닐까요? 순간 머리가 한결 가벼워졌고 더 이상 누가 저를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따지지 않게 되었습니다.

이상이 최근의 수련 체험이며 법에 부합하지 않는 부분이 있다면 수련생 여러분께서 자비롭게 지적해주시기 바랍니다.

사부님 감사합니다! 수련생 여러분 감사합니다!

허스(合十)

(2024년 스위스 독일어 법회 원고)

 

원문발표: 2024년 10월 27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4/10/27/484300.html
简体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4/10/27/48430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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