简体 | 正體 | 대법서적

자신을 잘 수련해 감옥경찰을 바로잡다

글/ 중국 대법제자

[명혜망] 저는 두통, 중이염, 위염, 장염, 치질, 류마티스 관절염, 고혈압, 당뇨병, 부인병, 손발톱 무좀, 비염 등 10여 가지가 넘는 각종 고질병을 앓았습니다. 당시 40대에 불과했지만 건강이 최악의 상태였습니다. 큰 병은 걸리지 않았지만 작은 병이 끊이지 않았고 오래 치료해도 낫지 않았습니다. 특히 명절이면 거의 아픈 몸을 이끌고 병원과 의사, 약봉지, 약병을 들고 다니느라 정말 고통스러웠습니다!

1997년 4월 26일 저녁, 광장춤을 추러 갔다가 한 춤 친구가 오지 않은 것을 발견했습니다. 알아보니 그 친구가 오랫동안 나오지 않았다고 해서 집으로 찾아가 물어보았습니다. 그녀는 기쁘게 말했습니다. “파룬궁을 연마하러 갔어요. 이 공법이 아주 좋아서 더 이상 광장춤을 추지 않아요.” 제가 물었습니다. “어디서 연마하는데요? 저도 가도 될까요?” 그녀가 대답했습니다. “당연하죠. 매일 아침 공원에서 하는데 이 공법을 연마하는 사람들이 아주 좋아요. 거기 있는 보도원이 열성적으로 무료로 가르쳐줄 거예요.” 저는 “좋아요, 내일 가보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녀는 즉시 보서(寶書) 《전법륜(轉法輪)》을 건네주었고 저는 보자마자 손에서 놓을 수 없었습니다. 그녀가 말했습니다. “이 책은 연공장에서 살 수 있어요. 다들 원가로 팔고 이윤을 남기지 않아요.” 그리고 방석을 준비해 오라고 했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매일 아침 연공장에 가서 연공했고 여가 시간에는 집안일을 잘하는 것 외에는 시간을 내어 법공부를 많이 했으며, 진선인(眞·善·忍)으로 자신의 언행을 엄격히 지도했습니다. 곧 제 건강이 신기하게 회복됐고,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 수련을 시작한 지 4일 만에 병이 없는 듯 몸이 가벼워졌으며 걸을 때 바람이 일 정도였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마침내 병원과 의사를 떠났고, 5일째 되는 날에는 약봉지와 약병, 그리고 과거에 모아둔 모든 약을 완전히 버렸습니다. 저는 파룬따파의 신기한 효과를 직접 체험했습니다.

20여 년간 수련하면서 저는 더 이상 병에 걸리지 않았고 당연히 약도 먹을 필요가 없었습니다! 저는 대법을 얻은 생명이 얼마나 행복한지 깊이 느꼈습니다!

1999년 7월 20일, 중국공산당(중공)이 중국 대법제자에 대한 광적이고 잔혹한 박해를 시작하면서 국가의 모든 선전매체를 동원해 전력을 다해 대법과 사부님을 비방하고 중상했습니다. 2000년 설날 며칠 전, 우리 작은 현급 시에서만 100여 명의 대법제자가 납치돼 구치소에 수용하지 못하자 3개의 ‘세뇌반'(당시의 ‘세뇌반’은 원래 폐기된 낡은 창고였음)에 나누어 수감했습니다. 저도 그중 한 명이었는데, 그날 깊은 밤 우리 가족과 이웃들이 모두 깊이 잠든 가운데 경찰들이 불법적으로 집에 들어와 저를 구치소로 납치했고, 수련생과 가족들이 여러 방면으로 구출해 17일간 불법 구금된 후 5,000위안의 벌금을 강탈당하고서야 자유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사람들에게 파룬궁이 박해받는 진상을 알리기 위해 저는 유리한 기회를 이용해 시간을 다그쳤습니다. 인연이 닿는 대로 대면해 이야기하는 것 외에도 진상자료를 제작하는 방법을 찾았고, 여건이 안 되면 여건을 만들었으며, 기술을 모르면 기술을 배우고 장비가 없으면 장비를 마련했습니다. 진상자료를 제작하는 수련생들은 밤낮으로 제작하고 진상자료를 배포하는 수련생들은 쉴 새 없이 배포했습니다. 한때 각종 진상지폐, 표어, 현수막, CD, 스티커, 주보, 소책자, 방화벽 우회 프로그램 등이 도처에 만발했고, 이는 민심을 진동시켰을 뿐만 아니라 현지 ‘610사무실'(장쩌민이 불법적으로 설립한 파룬궁 박해기구)과 공안, 검찰, 법원, 사법기관 등 중공의 사악한 기구들도 당황하게 만들었습니다. 저는 여러 차례 납치돼 감금되고 박해를 받았습니다.

2014년, 저는 악질 경찰에게 납치돼 감옥에 갔는데, 막 차에서 내리자 소위 ‘도우미'(실제로는 중공의 앞잡이)라는 자들이 와서 허튼소리를 했으며, 모두 대법을 비방하고 중상하는 허황된 말이었습니다. 식사시간에 매우 맑은 국물밥 반 그릇을 가져다주었고 저는 생각했습니다. ‘정신을 흐리멍덩하게 만드는 국물인가?’ 왜 먹지 않느냐고 물어서 저는 배가 고프지 않다고 했습니다. 말이 떨어지자마자 저를 발끝과 코끝을 벽에 대고 서 있게 했고 자정이 되어서야 땅바닥에 자리를 깔고 자게 했습니다. 엄동설한에도 깔개 하나에 이불 하나뿐이었고 침대가 있어도 자지 못하게 했으며 30분마다 잠을 깨웠습니다. 다음 날부터는 ‘삼서(수련 포기 각서)’를 쓰라고 강요했고, 쓰지 않으면 대법을 비방하고 중상하는 영상을 보게 했으며, 다 보고 나면 벌로 서 있게 했습니다. 오랫동안 목욕도, 머리도 감지 못하게 했고 발도 씻지 못하게 했으며, 여름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물건을 구매하지 못하게 했고, 화장지와 모든 세면도구 등 생활용품도 포함됐습니다. 매일 아침 죽과 찐빵 중 하나만 먹을 수 있었고, 찐빵을 원하면 죽을 주지 않았습니다. 점심밥은 계란만한 크기의 밥과 약간의 국물만 주었고, 저녁밥은 더 적게 주었습니다. 매일 마시고 쓸 물도 반병만 주었고, 나머지 반병은 무정하게 화장실에 버렸습니다. 목적은 저를 ‘전향(수련 포기)’시키기 위해서였습니다.

2019년 말 어느 날, 저는 감옥에서 노동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교육과의 한 과장이 작업장 밖으로 불러내 따라오라고 했습니다. 가는 길에 겉으로 보기에는 그가 상당히 온화하게 저와 가정사를 이야기했고, 잠시 후 그들이 미리 준비해둔 면회실에 도착했는데 그런 분위기를 본 적이 있어서 한 번 보고 무엇을 하려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이는 매년 한 번씩 하는 표본조사가 또 시작된 것 같았습니다. X과장은 매우 공손하게 저를 소파에 앉게 하고 이어서 국화차를 마실지 차를 마실지 물었습니다. 저는 “X과장님 그리 공손하실 필요 없습니다. 어느 것이든 편한 대로 하시죠!”라고 했습니다. 과장은 “다 편합니다”라고 했습니다. 저는 “그럼 국화차를 마시죠!”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과장은 직접 국화차를 한 잔 우려주었습니다. 그는 이미 녹음기와 녹화기 등 장비를 준비해두었던 것입니다. 이어서 X과장이 저에게 말했습니다. “오늘 당신을 찾은 주된 이유는 몇 가지 상황을 알아보고 싶어서입니다. 예를 들어 입소 이후 우리 감옥의 현행 규정과 제도, 경찰의 관리 방식 등에 대해 어떤 것이 가능하고 어떤 면이 개선이나 강화가 필요한지, 어떤 생각과 견해, 의견과 건의가 있는지, 그리고 지금 어떤 도움이 필요한지 등등을 모두 제기할 수 있습니다. 당신이 과감하고 안심하고 이야기하세요. 절대로 나중에 보복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 과장의 이런 말을 듣고 저는 확신했습니다. 이번에는 성 감옥국이 관례대로 컴퓨터로 표본을 추출해 조사하는데 제가 또 뽑힌 것입니다. 저는 생각했습니다. 이번에야말로 악을 폭로하고 대법을 실증해 진상을 알리고 사람을 구하는 좋은 기회가 왔으니 반드시 잘 이용해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즉시 “음! 제가 아는 것과 말해야 할 것은 모두 있는 그대로 말씀드리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과장은 먼저 물었습니다. “파룬궁을 연마한 지 얼마나 됐습니까? 어떤 이유로 연마하게 됐나요? 가족과 친구들이 모두 지지합니까?”

저는 그에게 말했습니다. “제가 파룬궁을 수련한 지 20여 년이 됐습니다. 처음에는 제가 허약하고 병이 많아서 여러 방면으로 치료를 받았지만 오래 치료해도 낫지 않아서 건강을 지키기 위해 파룬궁을 수련하게 됐습니다. 연마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대략 일주일도 안 되어 가족과 친구들이 제가 그렇게 많은 병이 이렇게 빨리 나았고 얼굴이 발그레해지고 정신이 번쩍 든 것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모두 ‘이 공법이 정말 좋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제 가족과 친구들이 모두 지지했습니다. 처음에는 관련 학습자료와 연공음악이 없었는데 가족과 친구들이 모두 방법을 찾아서 저를 도와주었고, 건강이 좋지 않은 사람들은 저와 함께 연마하기도 했습니다. 나중에 정부가 탄압을 시작하자 친구들은 제가 계속 파룬궁 수련을 고수하는 것에 대해 이해만 할 뿐이었고, 걱정은 했지만 더 이상 지지한다는 말은 감히 하지 못했습니다.”

과장이 또 말했습니다. “입소한 지 몇 년이 됐는데, 여기 사람들과 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특히 감옥의 현행 규정과 제도, 경찰의 관리 방식에 대해 어떤 것이 가능하고 어떤 면이 개선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시는지, 어떤 제안이 있습니까?”

저는 말했습니다. “여기 사람들, 특히 경찰관들 대부분이 선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나쁜 경찰도 있지만 소수에 불과합니다. 예를 들어 진선인 수련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파룬궁수련생을 자정이 지나서야 잠을 자게 하고, 어떤 경우에는 새벽 3시가 넘어서야 잠을 자게 하며, 눕고 나서도 30분마다 깨우고, 오랫동안 머리를 감거나 목욕하지 못하게 하고 옷을 갈아입지도 못하게 하며, 속옷도 갈아입지 못하게 하고 발도 씻지 못하게 합니다. 지금 감옥은 ‘출입 제로화’를 실시해 들어가서 전향하지 않는 사람은 어떤 물건도 살 수 없고 화장지조차 살 수 없습니다. 만약 그가 사용한 것이 발견되면 즉시 어디서 나왔는지 추적하고, 누가 주었는지 밝혀지면 두 사람 모두 처벌을 받습니다. 감옥에서는 공개적으로 땅바닥에서 자는 것을 금지하고 있지만, 일부 경찰은 전향하지 않는 파룬궁수련생을 땅바닥에서 자게 하고 아무리 추워도 깔개 하나, 덮개 하나만 쓰게 하며, 전향하거나 형기를 마칠 때까지 계속됩니다. 아침식사 때 다른 사람들은 죽과 찐빵, 채소를 먹을 수 있지만 전향하지 않는 사람들은 그중 하나만 선택할 수 있습니다. 점심에는 계란만한 밥과 아주 적은 국물만 먹을 수 있고, 그들 기분이 좋지 않거나 마음에 들지 않을 때는 살인범이나 사형 집행유예, 무기징역, 또는 10년 이상의 중형수, 변절자들을 몰래 시켜 파룬궁수련생을 욕하게 하고 심지어 구타하거나 더러운 물을 끼얹게 합니다. 저는 이런 종류의 방식이 너무 비인간적이어서 시급히 개선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과장이 또 물었습니다. “지금 어떤 도움이 필요하십니까?”

저는 말했습니다. “있습니다. 입소한 지 몇 년 동안 과장님은 처음으로 이렇게 성의를 갖고 저를 걱정해 주시는 경찰관입니다. 그러니 과장님께서 기회가 있을 때 정부에 건의해주시기 바랍니다. 하루빨리 파룬궁에 대한 탄압을 중단해 국가의 재력과 물력이 더 이상 낭비되지 않도록 하고, 또 하루빨리 우리의 누명을 벗겨 우리의 결백을 회복시켜 주시기 바랍니다.”

과장이 놀라며 말했습니다. “당신 자신을 위해서입니까, 아니면 당신들의 사부님을 위해서입니까?” 저는 “둘 다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오!”라고 했는데 이 과장은 제가 이런 상황에서도 감히 이렇게 악을 폭로하고 이런 요구를 제기할 것이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이때 경찰들의 점심시간이 지나서 과장은 “오늘은 여기까지 하죠. 제가 곧 감방으로 돌려보내드리겠습니다. 당신들도 식사할 시간이 됐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 이후로 감옥 내 경찰들의 대법제자에 대한 박해는 더 이상 과거처럼 비인간적이지 않았고, 다른 경찰들의 불량한 언행도 많이 줄어들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저는 대법제자의 정념의 위력을 다시 한번 체험했습니다.

대법 속에서 20여 년간 수련하면서 저는 하나하나의 고비를 넘었고, 그중에는 곤경도 있었고 시련도 있었으며, 수확도 있었고 기쁨도 있었습니다. 정법의 마지막 단계에서 환경이 아무리 사악하고 길이 아무리 험난하더라도 아직도 많은 속인들이 진상을 모르기 때문에 도태될 위험에 직면해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저는 반드시 수련 초심을 잃지 않고 법공부를 많이 하고 연공을 부지런히 하며 정념을 잘 발하고 더 많은 사람을 구하여 이 위대한 역사적 사명을 잘 완수하고 사부님을 따라 원만해 돌아가겠습니다! 사부님의 자비로운 고도(苦度)에 감사드립니다!

 

원문발표: 2024년 10월 26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4/10/26/483723.html
简体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4/10/26/483723.html

ⓒ 2024 명혜망.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