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베이징 대법제자
[명혜망] 남편과 저는 모두 대법제자입니다. 남편은 1996년에, 저는 1998년에 수련을 시작했습니다. 작년 8월 중순, 남편이 심각한 병업(病業) 고비를 겪었습니다. 이 시련을 겪으면서 우리는 수련인이 중요한 순간에 신사신법(信師信法)해야 한다는 것에 대해 더욱 깊이 이해하고 체득했으며, 착실한 수련의 중요성을 더욱 절실히 깨달았습니다.
남편은 파룬따파 수련을 고수했다는 이유로 중공(중국공산당)에 의해 불법적으로 노동수용소에 보내졌고 형을 선고받았으며, 직장에서도 해고되어 공직을 잃었습니다. 생계를 위해 방과후 중학교 과외교사로 일했습니다. 작년 베이징의 여름은 유난히 더웠는데, 마침 학생들의 여름방학 기간이라 과외를 하러 오는 학생들이 많았습니다. 남편은 매일 너무 바빴고 며칠 동안 땀을 많이 흘려 불편함을 느꼈지만 더운 날씨와 피로 때문이라 생각하고 크게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짧은 시간 내에 비지땀이 흐르고, 호흡이 가빠지고, 대소변을 가누지 못하고, 의식이 흐려지는 등의 증상이 나타났습니다. 가족들이 상황이 위급한 것을 보고 구급차를 불러 병원으로 급히 이송했습니다.
저는 곧바로 병원으로 달려갔습니다. 의사는 급히 위독 통지서에 서명하라고 했고 남편의 상태가 매우 위험하니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했습니다. 응급처치 중에 의사가 나와서 구조 성공률이 낮다고 무겁게 말하면서, 베이징 안전(安貞) 병원에서 이런 환자를 본 적이 있는데 70만 위안이 넘는 치료비를 썼지만 결국 환자가 사망했다고 했습니다. 그 순간 저는 머리가 하얘져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멍하니 서 있었습니다. 연로하신 어머님이 다가와 다급하게 상황을 물으셨고 저는 꿈에서 깨어난 듯 억지로 마음을 진정시키며 “괜찮아요, 걱정 마세요. 다 나을 거예요”라고 위로했습니다. 불안해하시는 어머님을 보며 저는 이 갑작스러운 변고에 굳건히 맞서야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응급실 밖 의자에 앉아 마음을 가라앉히려 노력했습니다. 의식이 점차 맑아지면서 문득 저와 남편이 모두 대법제자이고 오직 사부님과 대법만이 남편을 구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순간 마음이 밝아지며 정신이 들었고, 더 이상 불안하거나 고립감을 느끼지 않았습니다. 사부님이 계시고 법이 있으니 힘이 났습니다.
남편은 여전히 응급처치 중이었습니다. 저는 응급실 밖에서 마음속으로 사부님께 도움을 청했습니다. ‘사부님, 그는 사부님의 제자입니다. 수련을 느슨히 한 시간이 길어져서 구세력이 이렇게 큰 틈을 타 그를 해치려 합니다. 사부님, 그에게 다시 한번 기회를 주시기 바랍니다. 그의 사부님과 법을 믿는 마음은 변함이 없습니다. 그는 반드시 각성해 이번의 심각한 교훈을 받아들이고 세 가지 일을 잘할 것입니다. 우리 부부는 함께 협력하여 더 많은 중생을 구해야 합니다!’ 동시에 저는 남편의 주원신(主元神)과 소통하면서 이 모든 것이 가상이니 미혹되지 말라고 알려주었습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사부님과 대법을 굳게 믿는 마음은 흔들려서는 안 되며, 수련 중의 부족함은 오직 법에서 바로잡아야 하고, 어떤 구실로도 구세력이 남편을 교란하고 박해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사부님께서는 “누구도 관리할 자격이 없으며”(각지 설법6-아태지역 수련생회의 설법), “누가 움직인다면 곧 누구의 죄”(도항-북미대호수지구법회 설법)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날 밤, 다른 환자 가족들이 모두 떠나자 의사는 남편에게 만일의 상황이 생길까 봐 저더러 응급실 밖에서 기다리라고 했습니다. 이는 제가 바라던 바였기에 이 중요한 시간에 마음을 가라앉히고 남편을 위해 오랫동안 조용히 발정념을 했습니다. 자정이 되자 당직 의사가 나왔고, 저는 남편을 면회하고 싶다고 했지만 의사는 응급처치 중에는 면회가 안 된다며 규정이라고 거절했습니다. 저는 재차 요청했습니다. “의사선생님이 치료하지 못하는 것을 제가 도울 수 있을지 모릅니다. 좋은 효과가 있을 테니 시도해보게 해주세요.” 의사는 제 간절한 눈빛을 보고, 또 제가 병원에 도착한 이후 한 걸음도 떠나지 않은 것을 알기에 잠시 망설이다 “따라오세요. 면회는 5분만 가능합니다”라고 했습니다.
저는 감격스러운 마음으로 재빨리 남편의 병상 곁으로 갔습니다. 남편은 여러 가지 색깔의 튜브를 꽂은 채 누워있었고, 인공호흡기를 착용한 상태였으며, 얼굴은 창백했고, 눈을 감은 채 가슴이 오르내리며 빠르게 숨을 쉬고 있었습니다. 저는 놀라 잠시 멍해졌지만 곧 정신을 차리고 남편의 귀에 대고 속삭였습니다. “나예요.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를 기억하세요. 당신은 사부님의 제자예요. 당신은 사부님만 따라가야 해요.” 이 말을 몇 번 반복하려는데 의사가 면회는 이미 특별히 허락한 것이니 더 머물 수 없다며 빨리 나가라고 재촉해서 저는 어쩔 수 없이 일어나 발걸음을 돌렸습니다.
응급실 문이 닫히자 저는 더는 눈물을 참지 못하고 두 손을 합장한 채 이런 소중한 기회를 주신 사부님께 감사드렸습니다. 이 순간이 매우 중요했습니다. 비록 남편이 혼미한 상태였지만 위급한 순간에 제가 한 이 몇 마디를 반드시 들었을 것이고 사부님과 대법을 떠올렸을 것이며, 자신이 대법제자라는 것을 기억했을 것입니다.
병원 검사 결과 남편의 상태는 매우 위중했고 모든 신체 지표가 좋지 않았습니다. 의사는 CT 사진을 보여주며 양쪽 폐가 거의 하얗게 변했고 다른 내장기관도 쇠약해졌다고 했습니다. 그 말을 듣고 저는 가슴이 아프고 큰 압박감을 느꼈습니다. 그러다 문득 남편의 몸은 아직 위기 상태이지만 의식은 혼미에서 서서히 회복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비록 때로는 또렷하고 때로는 흐릿하지만, 이는 좋은 시작이 아닙니까? 사부님께서 남편에게 기회를 주시는 것이 아닙니까? 의식만 회복되면 정념도 점차 강해질 것이고 사부님께서 반드시 도와주실 것입니다. 지금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사부님과 법을 믿으면서 시간을 놓치지 않고 남편을 위해 발정념을 하는 것뿐입니다. 응급실 밖에서 저는 남편의 주원신에게 저와 함께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를 묵념하자고 했습니다.
며칠 후 병원에서 가족 면회를 허락하자 저는 다시 남편 곁으로 가서 몸을 숙여 그의 손을 잡고 귓가에 대고 첫 면회 때 했던 말을 반복했습니다. 면회 시간이 너무 짧아 많은 말을 할 순 없었지만 이 중요한 몇 마디가 그를 깨우쳐줄 것이라 믿었습니다.
우리의 만남이 잦아지고 법에 대한 교류가 깊어지면서 남편은 점차 의식을 되찾았고 정념도 점점 강해졌습니다. 남편은 자신이 병원에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고, 오랫동안 자신의 부족함을 중시하지 않고 착실하게 수련하지 않아 구세력에게 틈을 타 해치려는 빌미를 제공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 모든 것이 가상이라는 것도 알았습니다. 그는 대법제자이기에 오직 사부님만이 관할하실 수 있고 사부님이 안배하신 길만 걸을 것이며, 그 누구도 그를 건드릴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사부님께서 자신을 위해 감당하신 것을 생각하며 남편은 괴로워하며 울었습니다. 머리가 맑을 때마다 사부님의 법을 외운다고 저에게 말했습니다. 제가 시계를 가져다주자 그는 이제 시간을 보고 발정념을 할 수 있다며 기뻐했습니다. 그 순간 저는 너무 감격스러워 눈물을 흘렸습니다. 사부님의 가지(加持)가 있으니 남편은 반드시 좋아질 것이라 믿었습니다.
남편의 건강은 나날이 호전됐고 정신 상태도 점점 좋아져서 의사와 간호사들도 놀라워했습니다.
열흘여가 지난 뒤 남편이 다시 검사를 받았는데 상태가 완전히 반전됐습니다. 모든 지표가 정상이었고 특히 양쪽 폐의 상태가 너무 좋아져서 의사도 “뜻밖에도 이렇게 좋아질 줄은 몰랐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의료진 중 일부는 이런 결과를 의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다며 믿기 어려워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어떻게 이것이 사부님과 대법이 만들어낸 기적임을 알 수 있었겠습니까! (특수한 환경 때문에 그들에게 진상을 알리지는 못했습니다). 병원에서는 좀 더 관찰하자고 했지만 남편과 저는 최대한 빨리 퇴원하고 싶다는 뜻을 밝혔고 이렇게 20일간의 입원을 마치고 순조롭게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집으로 돌아온 후 남편은 시간을 다투어 법공부하고, 연공하고, 발정념하고, 안으로 찾았습니다. 우리는 오랫동안 수련을 느슨히 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특히 남편은 교육에 많은 시간과 노력을 쏟았고 돈을 벌려는 욕망이 점점 커져서 재물에 대한 집착을 줄곧 내려놓지 못했습니다. 세 가지 일도 했지만 모두 형식적으로만 했습니다. 저 역시 입으로는 돈은 아무리 벌어도 부족하니 먹고 쓸 만큼만 있으면 된다고 했지만, 남편이 돈을 많이 벌면 기뻐하고 수입이 적으면 실망했습니다. 이익에 대한 집착이 똑같이 강했고 세속에 빠져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진정으로 착실하게 수련하지 못했습니다!
이번 고통스러운 교훈을 겪고 나서 우리 부부는 모두 깨어났고 수련의 엄숙성을 더욱 깊이 깨달았습니다. 더는 깨닫지 못하고 있어서는 안 되며 이 세상에 온 목적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 가정은 이미 어느 정도의 저축이 있고 남편도 퇴직 연령에 가까워졌습니다. 사부님께서 엄청난 희생으로 제자들을 위해 마련해주신 이번 수련의 기회를 더는 저버리지 않기 위해 우리는 과외 수업을 단호히 그만두고 귀중한 시간을 수련과 사람 구하기에 바쳤습니다.
1년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우리는 수련의 길에서 끊임없이 정진했습니다. 때로는 느슨해지고 방심할 때도 있었지만, 서로 일깨워주고 격려하면서 이 천재일우의 정법 기연을 소중히 여기며 함께 정진하고 더 많은 중생을 구하여 사부님을 따라 집으로 돌아가겠습니다.
원문발표: 2024년 10월 22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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