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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해 속에서 만난 인연 있는 친구들

글/ 중국 대법제자

[명혜망] 1999년 7월 20일부터 저는 파룬궁 수련으로 인해 중국공산당(중공)과 장쩌민 깡패 집단의 잔혹한 박해를 받았습니다. 그 지역에서 박해받은 사람들 중 제가 행정 직급이 가장 높은 파룬궁수련생이었습니다. 박해와 박해에 대항하는 과정에서 저는 정의와 양심으로 저를 도와주고 격려해준 여러 친구들을 만날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들과 제 이야기 몇 가지를 들려드리면서 파룬궁의 거대한 위력과 중공의 박해가 얼마나 인심을 잃었는지 보여드리고자 합니다.

1. 경찰 “좋은 사람이 아니면 파룬궁을 수련할 수 없어!”

1999년 7월 20일 아침, 저와 수련생들은 연공장에서 경찰에 의해 해산당했습니다. 사무실에 도착하자마자 지역 공안분국 경찰과 보위처 정보과장이 저를 근처 호텔 객실로 데려갔습니다. 방에는 텔레비전을 보고 있는 경찰이 앉아 있었는데 소개를 받고 보니 그는 국내안전보위대(국보, 파룬궁 탄압 담당 공안기관)의 D 경관이었습니다. 저를 데려온 사람들은 D에게 간단히 설명하고 떠났고 방에는 우리 둘만 남았습니다.

자리에 앉자 D는 TV 볼륨을 최소로 줄이더니 저에게 말했습니다. “오늘 민정부와 공안부의 파룬궁 금지에 관한 중요 뉴스를 함께 듣고 볼 예정인데, 왜 아직 방송을 안 하는지 모르겠네요. 좀 기다려 봅시다!” 그는 제 상황에 대해 물어보더니 제가 그보다 두 살 많고 퇴직이 가까워졌다는 걸 알고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선생님은 부청급 당원 간부신데 왜 파룬궁을 수련하시나요? 자신에게 왜 이런 문제를 만드시는 거죠? 그만두세요!” 저는 말했습니다. “파룬궁은 사람들에게 진실(眞)·선량(善)·인내(忍)을 수련하라고 가르치죠. 도덕 수준을 높일 뿐 아니라 건강해지는데 얼마나 좋습니까! 왜 수련하면 안 되나요? 신앙의 자유 아닙니까!” 그는 즉시 응답했습니다. “그렇죠, 신앙의 자유는 헌법에 규정되어 있습니다.” 저는 이어 물었습니다. “그렇다면 왜 수련을 못하게 하나요?“

그는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습니다. “아시다시피 우리 당이 80년 가까이 됐는데 당원이 6천만 명밖에 안 됩니다. 공안부 통계에 따르면 여러분 파룬궁은 단 7년 만에 7천만 명으로 성장했다는데…” 그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제가 말했습니다. “하나는 정치적인 당 조직이고, 다른 하나는 심신 건강을 추구하는 신앙 단체인데 어떻게 비교할 수 있습니까?” 그가 이어 말했습니다. “그 7천만 명이 모두 농촌 노인들이 아닙니다. 지식 구조로 보면 절반 이상이 고급 지식인과 고위 당정군 간부입니다. 당파 성분으로 보면 절반 이상이 공산당원입니다. 이렇게 많은 사회 엘리트들이 ‘삼개대표'(장쩌민의 사상)를 배우지 않고 파룬궁을 배우러 가는데 두려운 일이죠?”

저는 웃으며 말했습니다. “그게 뭐가 두렵습니까?! 좋은 사람이 많아지면 사회에 더 좋은 게 아닙니까?” 잠시 멈추고 그를 바라보며 말했습니다. “당신이 말한 이 수치들은 제가 처음 듣는 겁니다. 그렇게 많은 고급 지식인과 고위 간부들이 수련한다는 것은 파룬궁이 절대 미신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또 그렇게 많은 공산당원들이 수련한다는 것은 파룬궁이 절대 반당(反黨)이 아니라는 뜻이죠. 그런데 왜 꼭 탄압해야 합니까?”

그는 약간 놀란 듯 저를 보더니 생각에 잠긴 듯 “그것도 그렇네요”라고 말했습니다. 이어서 D가 저에게 말했습니다. “여러분이 잘못한 게 하나 있어요!” 제가 물었습니다. “무엇입니까?” 그가 말했습니다. “여러분이 중난하이를 포위해서는 안 됐어요! X 총서기가 정치국에 보낸 편지에 대해 성위원회가 청국급 간부들에게 전달한 걸 들으셨죠?” 저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가 계속 말했습니다. “여러분 만여 명이 귀신도 모르게 중난하이를 포위했다니 너무 실책이었어요!” 그가 사실 진상을 전혀 모르고 있다는 걸 알고 저는 ‘4.25’ 사건의 전 과정을 설명해주었고 그는 주의 깊게 들었습니다.

저는 계속 말했습니다. “국가가 파룬궁에 대해 ‘3불 정책'(논쟁하지 않고, 선전하지 않고, 비판하지 않음)을 펼쳤는데, 허쭤슈가 ‘3불 정책’을 어기고 사단을 일으켰고, 톈진 경찰이 고의로 사람들을 납치해 사태를 확대시켰습니다. 총서기인 장쩌민은 사건 유발자들의 죄를 추궁하지 않고 오히려 평화롭게 청원한 파룬궁수련생들에게 죄를 뒤집어씌웠습니다. 그의 그 편지는 완전히 시비를 혼동시키고 옳고 그름을 뒤집은 것입니다. 정말 죄를 씌우려면 무슨 말이든 다 지어내는 군요!” 그는 뭔가 깨달은 듯 혼잣말을 했습니다. “그렇게 된 거였군요!”

7월 24일, 저는 여러 수련생과 함께 차를 타고 베이징에 청원하러 갔다가 스자좡에서 붙잡혀 돌아왔고, D는 이 ‘청원 사건’을 조사하라는 명령을 받고 학교에 왔습니다. 이후에 학교의 노력과 D의 중재로 저는 추궁을 면했습니다. 감사의 뜻으로 학교 지도부가 그를 초대해 식사를 했고 저와 사무실 주임도 참석했습니다. 학교 지도부가 건배한 후 주임이 D에게 술을 권하며 말했습니다. “우리 선생님(저를 가리키며)은 정말 대단한 좋은 사람입니다!” D는 즉각 말했습니다. “좋은 사람이 아니면 파룬궁을 수련할 수 없죠!” 모두가 함께 환호했습니다. “잘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D에게 엄지를 들어 보였습니다.

D는 술을 좋아하지만 주량이 약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얼굴이 벌겋게 됐고 그는 갑자기 큰 소리로 말했습니다. “난 정말 이해할 수 없어요. 왜 부패를 단속하지 않고, 흑악세력을 타파하지 않고 이런 수련하는 좋은 사람들을 괴롭히는 건지? 말이 안 되잖아! 장쩌민이 와도 난 그와 논쟁할 수 있어요!” 이 말에 모두가 놀랐습니다. 그가 술에 취했다는 걸 알았지만 술에 취해 진심을 토로한 것입니다! 그의 힘 있는 말은 그의 속마음을 드러냈고 또한 진상을 아는 양심 있는 경찰들의 마음을 대변한 것입니다!

D의 정직함과 선량함으로 우리는 친구가 됐고 명절 때마다 서로 안부를 전했습니다. 2018년 말, 우리는 만나기로 약속했습니다. 70대의 그가 여전히 안색이 좋고 기운차 보이자 저는 기쁘게 말했습니다. “여전히 정정하시네요!” 그가 웃으며 말했습니다. “형님, 솔직히 말씀드리면 퇴직 후 저는 매일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眞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를 외우고 있어요. 매일 ‘전법륜(轉法輪, 파룬궁 수련서)’을 읽고 있죠. 대법이 저에게 복을 주셨어요!”

저는 감격해서 엄지를 들어 보이며 말했습니다. “D 선생님, 정말 대단하세요!” 이어서 저는 그에게 ‘삼퇴(三退-중국공산당의 3가지 조직 탈퇴)’하면 평안하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제가 ‘D 모모’라는 이름으로 그를 대신해 탈당 선언을 했다고 알려주자 그는 매우 기뻐하며 일어나 저에게 두 손을 모아 감사를 표했습니다.

2. 병원 회계사 “제가 귀인을 만났어요!”

2002년 가을, 우리 지역에서 파룬궁에 대한 심각한 박해 사건이 발생했고 저와 여러 수련생들이 납치됐습니다. 구금 중 혈압 상승과 심장 박동 증가로 저는 의대 부속병원에 입원했습니다. 2003년 초, 저는 납치돼 그날 밤 시 ‘610 사무실'(불법적인 파룬궁 탄압기구)에 의해 한 감옥병원의 특정 병동 3층 작은 병실로 끌려갔습니다. ‘610’의 한 처장은 이것이 저에 대한 ‘특별 대우’라고 말했지만, 저는 이것이 독방 감금이며 강제 격리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들은 또한 L이라는 젊은 수감자를 제 ‘시중’들게 했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저를 감시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대화를 나누면서 L은 한 현(縣) 병원의 회계사로, 집단 부패 사건에 연루되어 중형을 선고받았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L은 매우 친절했고 저를 존경하는 듯했습니다. 그는 저 같은 지위가 있는 사람이 왜 여기에 들어왔는지 궁금해했습니다. 저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여기서 만난 것은 인연이니 그에게 진상을 알려줘야겠다!’ 저는 간단히 제 수련 과정과 수련을 통해 얻은 이로움에 대해 이야기했고, 파룬궁 탄압이 헌법과 법률을 위반한다는 이치를 설명했습니다. 특히 ‘4.25’ 청원과 ‘천안문 분신자살’ 날조극의 진상에 대해 중점적으로 말했습니다.

그는 매우 진지하게 들었고 계속해서 질문을 했습니다. 듣고 나서 그는 깊은 감회에 젖어 말했습니다. “그렇게 보면 TV, 라디오, 신문이 모두 거짓말을 하고 있군요! 너무 사악합니다!” 저는 그에게 말했습니다. “파룬궁은 정치를 하러 온 게 아니라 사람을 구하러 온 것입니다! 인류는 도덕의 타락으로 큰 재난에 직면해 있습니다.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를 믿기를 바랍니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습니다.

이어서 그는 자신의 억울함을 털어놓았습니다. 집단 부패 사건에서 회계사로서 그는 단지 지도부의 의도를 실행하는 평범한 직원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그는 주요 책임을 지게 되어 지도부를 대신해 중형을 선고받았습니다. 그는 눈물을 머금고 말했습니다. “이미 3년을 갇혀 있었고, 최소한 10년은 더 있어야 집에 갈 수 있어요. 아내와 아이들은 어떻게 버틸까요!” 저는 그를 위로한 후 말했습니다. “하늘의 도는 사사롭지 않고 항상 선한 사람과 함께합니다! 파룬따파를 믿기만 하면 기적이 일어날 거예요!” 그는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습니다. “기적이 일어나기를 바랄 뿐이죠!“

다음날 아침 일찍, 그는 옷을 걸치고 침대에 앉아 흥분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제가 귀인을 만났어요! 제가 귀인을 만났어요!” 제가 물었습니다. “무슨 일이에요?” 그가 말했습니다. “꿈에서 한 어르신이 저에게 말씀하셨어요. ‘귀인이 너에게 복음을 전해줄 것이다. 3년 후면 집에 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 그 귀인이 바로 선생님 아닙니까?” 저는 덧붙여 말했습니다. “그 복음이 바로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가 아닐까요?!” 그는 연달아 그렇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서둘러 옷을 입고 제 앞에 서서 기쁘게 말했습니다. “선생님, 제가 뭘 도와드릴까요?” 저는 말했습니다. “저는 연공을 하고 싶어요!” 그가 말했습니다. “좋습니다! 오늘부터 병동 주임의 회진이 끝나면 제가 문을 닫고 맞은편 큰 병실에 앉아 지켜보겠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들어오지 못하게 할 테니 선생님은 안에서 하고 싶은 걸 하세요.”

이렇게 해서 입원 둘째 날부터 저는 정상적으로 법공부와 연공을 할 수 있었습니다. L은 매일 아래층에 가서 저를 위해 끓인 물을 가져오고 밥을 가져왔으며, 물건을 사다 주었습니다. 저녁 식사 후에는 저를 아래층으로 데리고 가 산책을 했고, 매주 보일러실로 데리고 가 목욕을 할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병동에는 샤워실이 없었습니다). 저를 돌보는 데 있어 그는 정말 세심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저는 꿈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강의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계속해서 같은 장면의 꿈을 꾸면서 저는 깨달았습니다. 대법제자로서 어떤 환경에서든 중생을 구하는 역사적 사명을 수행해야 하며, 더 많은 사람들에게 진상을 알려야 한다는 것을요. 저는 제 생각을 L에게 말했고 그는 기꺼이 도와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다른 병실의 사람들을 차례로 작은 방으로 데려와 제가 진상을 이야기하게 했습니다. 아래층에서 산책할 때는 일부러 자신이 아는 다른 병동 사람들을 저에게 소개하며 그들에게도 진상을 이야기하게 했습니다.

6개월 후, L과 저는 각각 다른 큰 병실로 옮겨갔습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저를 돌보고 도와주었고 제가 감옥병원을 떠날 때까지 그랬습니다. 우리는 진정한 우정을 맺었고 그 또한 자신의 밝은 미래를 선택했습니다. 저는 그가 3년 만에 집에 돌아가고 싶어 하는 열망이 꿈처럼 이루어지기를 기원했습니다!

3. 검찰원 과장 “우리 모두 당신을 매우 존경합니다!”

감옥병원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우리를 모함한 사건이 구 검찰원으로 이송됐습니다. 저는 검사들에게 진상을 알려야 한다고 생각했기에, 꼼꼼하게 ‘XX 검찰원 전체 검사들에게’ 보내는 비교적 상세한 권선(勸善) 편지를 썼습니다. 한 달 후, 검찰원 기소과의 일행이 병동에 와서 저와 ‘사건 상황을 확인’하러 왔고 저는 그 편지를 모 과장에게 전달했습니다.

보름 후, 그들이 다시 와서 상황을 확인했습니다. 대화가 끝나고 모 과장은 다른 사람들을 먼저 보냈습니다. 그리고는 몸을 돌려 저에게 조용히 말했습니다. “선생님, 우리 모두 당신을 매우 존경합니다!”

이 갑작스러운 ‘존경’이라는 말에 저는 놀랐습니다! 저는 자세히 생각할 겨를도 없이 “감사합니다”라고 말했고 그는 급히 떠났습니다. 저는 생각했습니다. 모 과장이 제가 감옥에 갇힌 상황에서 이런 표현을 한 것은 아마도 제가 쓴 권선 편지를 본 후, 진상을 알게 됐을 뿐만 아니라 구 공안, 검찰, 법원 시스템에서 화제가 된 저에 관한 두 가지 소문을 확인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나는 제 집을 수색할 때 예상치 못한 발견에 관한 것입니다. 그것은 작년 9월 제가 처음 납치됐을 때, 구 공안분국 국보대대 경찰들이 제 집을 불법 수색하러 왔을 때의 일입니다. 그들은 우리 집이 그들이 상상했던 청급 간부의 호화로움과는 거리가 멀고 매우 소박하다는 것을 보고 크게 놀랐습니다. 또 우리집의 예금 총액이 6,800위안(약 130만 원)에 불과하다는 것을 발견했을 때 경찰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수색해보니 청렴한 간부잖아!” 가족들의 말에 따르면 경찰들은 이런 상황을 보고 원래 엉망진창으로 뒤집어 놓았던 옷가지들을 깔끔하게 개어 옷장에 다시 넣어놓았다고 합니다.

두 번째는 제가 감옥병원으로 끌려간 날 일어난 일입니다. 그것은 눈이 펑펑 내리던 어느 밤이었습니다. 시 ‘610’의 한 처장과 몇몇 공안 경찰들이 저를 속여 감옥병원으로 데려갔고, 그들은 ‘체포 영장’과 서명용 펜을 꺼내 제게 서명하라고 했습니다. 저는 서명할 때 이렇게 썼습니다. “나는 무죄다. 파룬궁을 탄압하는 사람들이야말로 진정한 범죄자들이다!” 그들은 그 자리에서 발끈했고 제게 이 두 문장을 지우라고 요구했지만 저는 단호히 거부했습니다. ‘610’에 의해 현장에 호출된 당 사무실 주임은 제가 보복당할까 봐 걱정하며 첫 번째 문장은 남기고 두 번째 문장만 지우라고 권했지만 저는 이 또한 거절했습니다. 현장은 혼란스러워졌고 10여 분간 대치 상태가 이어졌습니다. 그 처장은 화가 나서 고함쳤습니다. “됐어, 됐어. 이렇게 고집 센 사람은 처음 봤네!” 그는 어쩔 수 없이 ‘체포 영장’을 거두었고 저는 감옥병원으로 밀려 들어갔습니다. 검사들은 제가 ‘체포 영장’에 쓴 표현을 보고 틀림없이 놀랐을 것입니다.

저는 이해했습니다. 검사들이 진상을 알고 난 후 마음속에서 우러나온 ‘존경’은 사실 그들의 파룬궁에 대한 존경, 우리의 위대한 사부님에 대한 경외를 표현한 것입니다! 저는 검사들이 진상을 알게 된 것에 대해 기뻤고, 그들이 자신의 생명의 미래를 위해 올바른 선택을 할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이후에 저에 대한 비밀 재판과 불법 심리가 진행된 법정에서, 모 과장은 한편으로는 저를 기소하면서도 계속해서 저에 대해 좋은 말을 했습니다. 그의 모순되고 복잡한 태도는 진상을 아는 검사가 독재 체제 내에서 겪는 마음의 갈등과 무력감을 반영했습니다!

4. “한 마디 말을 하지 않아 형을 받다니!”

저는 불법 판결을 받은 후 큰 병실로 옮겨졌고 병동의 1호 ‘간호사’, 즉 병동의 ‘반장’ M과 같은 방에 있게 됐습니다. M 간호사는 젊고 쾌활한 편이었습니다. 그는 제 상황을 알고 싶어 했고 어느 날 점심때 저를 데리고 아래층으로 햇볕을 쬐러 갔습니다. 우리는 걸으면서 이야기를 나눴고 그가 말했습니다. “아세요? 감옥전체 사람들이 당신이 한 마디 말(파룬궁 수련을 그만두겠다는 약속)을 하지 않아서 이곳에 들어와 형을 받았다는 걸 알고 있어요. 이게 사실인가요?”

저는 대답했습니다. “사실입니다!” 그는 놀란 듯이 저를 보며 말했습니다. “우리 같으면 형을 받지만 않으면 한 마디가 아니라 열 마디, 백 마디 거짓말이라도 할 텐데, 당신은 정말 바보 같아요!” 저는 그에게 웃으며 말했습니다. “그 말은 할 수 없어요, 절대로 할 수 없죠!”

그건 제가 의대 부속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 일어난 일입니다. 어느 날, 시 ‘610’ 책임자가 두 사람을 데리고 제가 있는 병실로 왔습니다. 간단한 인사를 나눈 후 그가 저에게 말했습니다. “당신의 당과 국가에 대한 공헌을 고려해 관대하게 처리해 집으로 돌려보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인식을 해야 하고 더 이상 파룬궁을 수련하지 않겠다고 약속해야 합니다.” 저는 즉시 “불가능합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3일의 시간을 드리겠습니다. 생각해 보세요.” 저는 그들을 실망시켰고 그 후 저는 납치돼 형을 선고받았습니다. 이 일이 소문이 나서 M이 저를 바보 같다고 한 것입니다.

저는 이 기회를 빌어 M에게 파룬궁 진상을 이야기했습니다. 동시에 그가 절도죄를 범한 상황을 고려해 ‘진선인’의 원칙에 따라 사람됨의 도리를 설명하고, 그에게 잘못을 고치고 인생을 새롭게 시작하라고 격려했습니다. 다른 환자들을 잘 대하고, 권력을 남용해 사람들을 괴롭히거나 때리지 말며, 음식을 낭비하지 말고, 자신을 위해 덕을 쌓으라고 권했습니다. 그는 감사의 뜻을 표했습니다. 그 후로 그도 계속 저를 돌봐주었으며 제가 병실에서 연공할 수 있게 해주고 다른 병실을 돌아다니며 움직일 수 있게 해주어 다른 환자들과 대화를 나누고 진상을 알릴 수 있는 편의를 제공해주었습니다.

5. 기독교인 “공산당은 정말 이치에 맞지 않아!”

C 주임은 병동의 업무 주임, 즉 병동의 1호 간수였습니다. 그는 항상 차가운 표정을 지었는데 아마도 직업상 필요했을 것입니다. 그가 마주하는 사람들은 모두 ‘죄수’들이었으니까요. 그는 병실을 순시할 때 오직 병 상태만 물었고 다른 것은 일절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매우 신중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8월의 어느 날, C는 M에게 저를 사무실로 부르라고 했습니다. M을 보내고 문을 닫은 후 그는 “앉으세요!”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놀라서 그를 쳐다보았고 그는 웃으며 말했습니다. “당신은 그들과 다릅니다. 앉으세요!” 자리에 앉자 그가 말했습니다. “당신이 들어온 지 6개월이 넘었네요. 당신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습니다.” 그는 제 수련 상황과 파룬궁이 널리 전해진 상황에 대해 물었고, ‘4·25’ 청원과 ‘천안문 분신자살’ 날조극 사건의 진상에 대해 자세히 들었습니다.

그리고 C는 엄숙하게 말했습니다. “당신이 선출된 인민대표라고 들었는데요?” 저는 대답했습니다. “네, 맞습니다!” 그는 이어서 물었습니다. “당신이 파룬궁을 수련한 후 관용차를 사적으로 사용하지 않았고, 급히 필요해서 한 번 차를 사용했을 때 사무실에 100위안을 냈다고 하던데 이게 무슨 일인가요?” 저는 말했습니다. “그 일은 사실입니다!” 저는 수련 후 관용차를 사적으로 사용하지 않고 개인 용무 시 대중교통이나 택시를 이용했던 상황을 설명했고, 그 다음 사무실에 돈을 낸 일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그날 밤 고향에서 급한 일이 있다는 전화를 받고 급한 마음에 사무실에 차를 보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다음 날 사무실에 100위안을 가져갔는데 사무실 주임이 단호히 받지 않았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이 몇 대의 작은 차들은 원래 여러분 지도자들을 위해 배정된 거예요.” 제가 말했습니다. “그건 공무용이죠. 제 경우는 사적인 일입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당신 돈을 받으면 다른 지도자들은 어떻게 해요?” 제가 말했습니다. “저는 그들과 달라요. 저는 파룬궁수련생입니다!”

C는 이 말을 듣고 약간 흥분한 듯 말했습니다. “이제 제 진짜 신분을 말씀드릴 수 있겠네요!” 저는 멍해졌고 그가 말했습니다. “저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입니다. 우리 가족 모두가 기독교를 믿고 있어요!” 그는 계속해서 말했습니다. “무슨 신앙의 자유란 말입니까? 그건 다 사람 속이는 거죠! 파룬궁이 뭐가 잘못됐나요? 왜 수련을 못하게 하나요? 공산당은 정말 이치에 맞지 않아요!” 저는 그의 정의로운 기개와 한 기독교인의 가득한 분노를 보았습니다!

저는 그 흐름을 타고 물었습니다. “관용차를 사적으로 사용하고 비용을 낸 일을 누구에게 들으셨나요?” 그가 말했습니다. “시 ‘610’의 한 처장이 말해줬어요. 그 사람이 학교에서 당신을 구하려고 쓴 자료를 봤대요.” 그는 계속해서 말했습니다. “말씀드리자면 그 사람 말로는 ‘610 사무실’에서 당신의 ‘병 보석’ 문제를 고려하고 있다고 합니다. 의대 부속병원의 ‘진단서’에서 당신이 관상동맥 질환과 3급 고혈압이라고 판정했는데, ‘610’에서 당신이 여기서 사고라도 날까 봐 걱정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나서 저에게 당부했습니다. “지금부터 당신은 매일 침대에 누워서 2시간씩 산소를 흡입해야 해요. 검찰이나 법원에서 사람이 와서 ‘두통이 있나요?’라고 물으면 ‘아파요!’라고 대답하세요. ‘어지럽나요?’ ‘어지러워요!’라고요.”

20여 일 후, C가 병실로 와서 조용히 저에게 말했습니다. “‘610’ 처장과 당신 자녀가 당신을 집으로 데려가러 왔습니다. 제가 그들에게 말했습니다. 당신이 2시간 동안 산소를 흡입해야 무사히 집에 갈 수 있다고요. 그들에게 감옥밖에서 기다리라고 했어요. 빨리 누우세요.” 저는 그의 깊은 배려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2시간 후, 환우들과 작별 인사를 하고 C 주임, L 회계사, M 간호사의 부축을 받으며 감옥 문을 나섰습니다. C 주임이 저를 차에 태우고 운전기사에게 천천히 가라고 말한 뒤 손을 흔들며 저와 작별 인사를 했습니다. 저는 깊은 감정을 담아 그를 바라보며 이 기독교인에 대한 깊은 감사의 마음을 품고 조용히 그를 위해 축복했습니다!

후기

집에 돌아온 후 친지들은 제 건강을 걱정했고 ‘610’에서도 제가 이미 시한부 생활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시 ‘610’ 주임은 심지어 저를 저주하며 “죽어야 좋을 텐데!”라고 했습니다. 그들은 모두 사부님의 보호 아래 제가 법공부와 연공을 꾸준히 하여 두 달여 만에 완전히 회복될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습니다.

2003년 이후 매년 설날 전에 저는 약간의 선물을 갖고 감옥병원에 가서 L과 M을 찾았습니다. 그러나 2006년 설날 전에 찾아갔을 때 L이 이미 출소해 집에 갔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저는 충격을 받았습니다. 기적이 정말로 일어난 것입니다!

2006년 설이 지나자마자 L이 그들 지역의 특산품을 갖고 제 집을 방문했습니다. 오랜 친구를 다시 만나 저는 매우 기뻤습니다! 자리에 앉자마자 저는 그의 조기 출소 상황에 대해 급히 물었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너무 신기해요! 선생님을 만난 지 거의 3년 만에 사건 재심과 감형으로 저는 돌아왔어요.” 저는 말했습니다. “모두 대법이 당신에게 준 복입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저도 아주 잘 알고 있어요! 선생님을 만나지 않았다면, 대법의 보호가 없었다면 이런 기적은 절대 일어날 수 없었을 거예요!”

저는 그에게 ‘삼퇴’”에 대해 이야기하고 가명으로 그가 당에서 탈퇴하는 것을 도와주었습니다. 그 후 그는 진지하게 저에게 말했습니다. “오늘 제가 온 것은 선생님께 두 가지 일을 말씀드리고 싶어서예요!” 저는 진지하게 들었습니다. 그는 약간 무거운 표정으로 말했습니다. “저는 선생님께 죄송합니다. 선생님이 떠날 때까지 저는 사실을 말하지 않았어요!” 저는 놀라서 물었습니다. “무슨 일이죠?” 그가 말했습니다. “그들이 저를 보낸 것은 선생님을 돌보기 위해서가 아니라 감시하라고 한 거였어요!” 저는 웃으며 말했습니다. “그건 알고 있었습니다. 당신을 탓하지 않아요.” 그가 말했습니다. “그들은 제게 매일 선생님의 언행을 기록하고 매일 지도원에게 보고하라고 했어요. 제가 선생님이 좋은 사람이라는 걸 알고 난 후로는 선생님에 대해 나쁜 말을 한 마디도 쓰거나 말하지 않았어요.” 저는 말했습니다. “당신은 진정한 친구입니다. 영원히 감사할 겁니다!”

그리고 저는 물었습니다. “두 번째 일은 무엇인가요?” 그가 계속해서 말했습니다. “선생님이 병동을 떠난 날부터 2~3일 동안 전체 병동 사람들이 모두 침묵하고 말을 하지 않았어요.” 저는 놀라서 물었습니다. “무슨 일이 있었나요?” 그가 말했습니다. “별일 없었어요.” “그럼 왜요?” 그가 말했습니다. “선생님 때문이에요!” “저요?” 제가 말을 잇기도 전에 그가 계속 말했습니다. “선생님은 8병동에 온 첫 번째 파룬궁수련생이었고, 그렇게 높은 지위와 신분을 가지고 있었죠. 하지만 선생님의 소박함, 친절함, 소탈하고 친근한 모습이 모든 사람을 감동시켰어요. 선생님은 사람들에게 ‘진선인’이 무엇인지 알게 해주었고, 파룬따파가 좋다는 걸 보여주셨어요. 선생님이 떠나자 모든 사람들이 상실감을 느끼고 공허함을 느껴서 사람들이 말없이 침묵한 거예요.”

L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저는 이미 감동의 눈물을 흘리고 있었습니다. 당시 저는 단지 대법제자로서의 평범한 마음가짐으로 모든 사람들과 지냈을 뿐, 어떤 ‘좋은 평가’를 얻으려고 하지 않았는데 이렇게 모든 사람들의 그리움과 염려를 받았습니다! 저는 이것이 대법의 힘이며 사부님의 자비라는 것을 깊이 알고 있습니다. 대법제자로서 누구든 사부님을 믿고 법을 믿으며, 정념정행한다면 사부님을 바로 돕는 과정에서 무궁무진한 힘을 낼 수 있습니다.

이 글을 쓰면서 사부님의 보호와 제자를 위한 감당에 대해 생각할 때마다 저는 여러 번 눈물을 흘렸습니다. 위대하고 자비로우신 사부님께서 저에게 정념과 용기를 주셨고, 지혜와 힘을 주셨으며, 저를 도와주고 격려해줄 수 있는 그렇게 많은 인연 있는 사람들을 안배해주셔서 제가 난관을 뚫고 감옥에서 나와 시련을 견디고 위덕을 세울 수 있게 해주셨습니다. 이 글을 마치면서 눈물을 머금고 펜을 놓습니다. 마음 깊은 곳에는 오직 이 말만 있을 뿐입니다. ‘감사합니다!’

 

원문발표: 2024년 10월 18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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