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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 수련으로 선(善)을 닦아내다

글/ 중국 대법제자 소자(小慈)

[명혜망] 저는 거의 20년간 대법 속에서 수련해왔습니다. 대법을 접하고 수련할 수 있게 된 저는 세상에서 가장 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제 생명을 구하신 사부님

1999년 중국공산당(중공) 박해가 있기 전, 가족을 따라 대법을 배웠지만 당시 어려서 이해하지 못했고 속인 중에서 헤매며 많은 업을 지었습니다. 30대에 유산을 겪은 후 배가 계속 아프고 회복되지 않아 여러 차례 입원했지만 소용이 없었죠. 결국 의사가 매우 강한 진통제를 써서 겨우 걸을 수 있게 됐습니다. 그때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 수련을 결심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게 되어 반본귀진(返本歸眞, 진정한 자신의 본원으로 돌아감)의 길을 걷게 됐습니다.

그 후 두 번의 생사를 건 큰 고비를 더 겪었는데 모두 사부님께서 제 생명을 구해주셨습니다.

첫 번째는 자궁에서 냉이 흐르고 점점 더 많아지면서 복통을 동반했는데 수년간 매우 고통스러웠습니다. 자궁암과 비슷한 증상이라고들 했지만 저는 두렵지 않았고 신경 쓰지 않았으며 제 업력 때문이라는 걸 알았습니다. 저는 대법과 사부님을 믿었고 또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다시 살아난 수련생들의 실례를 많이 보고 들었으며, 확고한 믿음으로 정법 수련의 길을 걸었습니다. 증상이 점점 가벼워져서 마침내 완전히 회복됐습니다.

두 번째는 심한 자궁출혈이었습니다. 평소처럼 출근했지만 자주 화장실에 가야 했고, 때로는 앉은 지 몇 분 만에 다시 가야 할 때도 있었습니다. 기운도 없고 추위를 많이 탔기에 옷을 많이 입었습니다. 평소 옷차림에 신경 썼던 저에게 동료가 예전만큼 옷에 신경 쓰지 않는다고 농담을 하기도 했습니다.

저와 같은 증상을 겪은 한 친구는 결국 자궁을 적출해야 했습니다. 어느 날 그 친구가 집에 왔는데 제 안색을 보자마자 “집에 혼자 있니?”라고 물었고 그렇다고 하니 “너무 위험해. 헤모글로빈 수치가 너무 낮아서 언제 기절할지 몰라. 병원에 데려다줄 사람도 없는데 어쩌려고 그래?”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웃으며 “괜찮아, 나는 사부님이 계시니까”라고 답했습니다.

한번은 직장 상사가 몸이 불편해서 제가 전문의 진료에 동행한 적이 있습니다. 그 전문의가 상사에게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오히려 저에게 “손톱 색이 하나도 없네요. 빈혈이 너무 심각해요”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전혀 문제없다고 생각했고 곧 괜찮아질 거라 믿었습니다. 저는 혼자서나 수련생들과 함께 법공부를 많이 하고 자신을 연공인으로 여겼습니다. 모든 게 정상이었고 몇 달 후 저는 건강을 되찾았습니다. 나중에 상사가 “이번엔 못 견딜 거라 생각했는데 이렇게 좋아질 줄은 몰랐네요”라고 말했습니다.

온몸에 업력이 가득한 이 제자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거듭 구해주시고 정화해주신 자비롭고 위대하신 사부님께 감사드립니다. 지금은 건강하고 피부도 고와서 50대인 저를 30~40대로 보는 사람들이 많아 부러움을 사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게 다 대법의 큰 은혜입니다!

시어머니 “너 정말 착하구나!“

어렸을 때부터 저는 공부도 잘하고 착했기에 부모님, 선생님, 반 친구들, 상사, 동료들에게 항상 사랑받았습니다. 그래서 자존심이 강하고 남의 험담을 듣고 싶어 하지 않는 도도한 사람이 됐습니다. 그런데 저도 시어머니를 만났습니다.

시부모님은 재혼이셨습니다. 결혼 당시 시아버지는 이미 80대였고 아들 둘과 딸 하나가 있었으며, 시어머니는 70대였고 아들 둘이 있었습니다. 재혼 당시 양가 자녀들은 부모님이 연로하셔서 건강이 나빠지면 각자의 가정에서 모시기로 합의했죠.

남편은 시어머니의 막내아들이고 저희는 시댁의 모든 자녀 중 막내였습니다. 2015년부터 시부모님과 저희 세 식구가 함께 살게 됐습니다. 내키지 않았지만 저는 대법제자이기에 시부모님을 모셔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남편은 매우 바빠서 집에 자주 없었지만 제 생활은 그다지 평온하지 않았습니다. 시어머니의 잔소리를 듣는 건 일상이 됐고, 시어머니는 때론 아침부터 저녁까지 시아버지를 끊임없이 질책하고 심지어 욕설을 퍼붓기도 하셨는데 시아버지는 아무 말씀도 안 하셨습니다. 가끔 시어머니 마음에 들지 않으면 저를 가리키며 30분 넘게 꾸짖다가 제가 아무 말도 안 하는 걸 보고 그만두셨죠. 때론 손주들이 마음에 안 들면 심장마비가 올 거라며 울고불고 소리치며 손주들에게 사과를 강요하시기도 했습니다. 또 가정부가 물건을 훔쳤다고 누명 씌우고 자주 소리치기도 하셨습니다. 저는 이 시어머니가 너무 품위 없다고 생각하며 진심으로 싫어했고, 나중엔 그분의 날카로운 목소리만 들어도 미워졌습니다. 남편이 더는 참지 못하고 시어머니를 나무랄 때면 속으로 통쾌했습니다.

하지만 수련인인 저는 정말 괴로웠습니다!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좋은 사람, 더 좋은 사람이 되라고 하셨는데 저는 어른에게조차 잘하지 못했습니다. 아침에 사부님께 향을 올릴 때마다 시어머니를 잘 대하겠다고 다짐했지만 막상 마주치면 돌발 상황에 또 화를 냈고 원망이 깊이 쌓여갔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했습니다.

저는 ‘전법륜(轉法輪)’과 ‘정진요지-경지’를 외우기 시작했고, 뒤틀리고 편협했던 마음이 점차 가라앉으면서 모든 게 업력의 인연임을 깨달았습니다. 온몸이 아픈 시어머니가 가엾다는 생각도 들었죠. 자주 먹을 것과 쓸 것, 입을 것을 사 드리고 여러 가지로 도와드렸습니다. 그러다 보니 시부모님은 저희를 가장 의지하시게 됐습니다.

시어머니 80세 생신에는 많은 친척과 친구를 초대해 성대한 잔치를 열었습니다. 저는 시어머니에게 어울리는 축하 의상을 정성껏 마련해 드렸는데, 두 아들도 미처 생각 못 한 선물이었습니다. 생신날, 시어머니는 무척 기뻐하셨습니다. 제가 온 가족을 식당으로 모시고 가는 길에 시어머니가 “넌 정말 착하구나!”라고 하셨습니다. 20여 년 만에 처음으로 진심 어린 칭찬을 들었고 정말 기뻤습니다! 선량함을 가르쳐주신 사부님께 감사드렸습니다.

식사 때 남편과 함께 80대인 시어머니 동창들 테이블에 가서 축배를 들었습니다. 시어머니가 그분들에게 “이쪽이 우리 작은 며느리야”라고 소개하셨어요. 한 할머니께서 다가와 저를 꼭 안으시며 “정말 훌륭해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아직 대법의 요구에 한참 못 미치지만, 일반인들은 이미 제가 아주 좋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우주 대법으로 단련되는 생명이 되어 조금씩 변화하고 깨어나며 본래 모습으로 돌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시아버지 “다 쟤가 사 준 거야”

시아버지가 90세 되시던 어느 날, 갑자기 의식을 잃으셔서 가족들이 120에 전화해 병원으로 급히 이송했습니다. 이후 시아버지 건강 상태를 고려해 자녀분들이 모시고 가셨습니다.

떠나실 때 자녀분들이 집에 와서 물건을 정리하시다 보니 시아버지가 우리 집에 계실 때 월급 통장의 돈을 거의 쓰지 않으셨고, 매달 받는 연금을 그대로 저축하신 걸 알게 됐습니다. 시아버지는 좋은 옷이 하나둘 생길 때마다 자녀들에게 “다 쟤(저를 가리킴)가 사 준 거야”라고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수년간 시아버지의 세 형제자매분들도 자주 우리집에 오셨는데, 우리가 시아버지께 최고의 음식과 물건을 대접한다는 걸 다들 알고 마음속으로 감사해하셨습니다.

제가 받은 더 큰 선(善)의 인정은 남편과 아주버님이 가끔 가족 모임에서 갑자기 일어나 저에게만 진심으로 건배를 하며 그간의 수고에 감사를 표하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저는 대법의 진선인(眞·善·忍) 요구와는 아직 거리가 멀고 갈 길이 멀다는 걸 마음속 깊이 잘 알고 있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선량한 분들이 사부님의 가르침을 따라 미혹에서 벗어나 대법으로 돌아와 아름다운 미래를 맞이하시기를 바랍니다.

 

원문발표: 2024년 10월 13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4/10/13/48333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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