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네이멍구 대법제자 설매(雪梅)
[명혜망] 저는 31세의 젊은 대법제자로,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과 함께 법공부를 해왔습니다. 어릴 적엔 주로 어머니의 감독과 단체 법공부 환경에 의지했습니다.
대법의 인연이 이어지다
1999년, 장쩌민 정치깡패 집단이 대법을 박해하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중학교에 다닐 때 아버지가 납치돼 2년간 불법 강제노동을 당하셨습니다. 아버지는 돌아온 후 떠돌이 생활을 하셨고 집은 매우 가난했습니다. 하지만 어머니는 대법에 매우 확고했고 늘 저에게 법공부를 하라고 독려하셨습니다. 어머니는 저에게 많은 신뢰를 주셔서 저는 고통스럽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당시 대법에 대한 인식은 여전히 감성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제가 대학에 다닐 때 어머니는 진상을 알리다가 진상을 모르는 사람의 신고로 불법적인 징역 7년을 선고받으셨습니다. 처음엔 어머니의 무죄를 변호하기 위해 변호사를 선임했지만, 나중에 어머니가 불법 선고를 받게 되자 저의 법공부 길이 끊어진 것 같았고 대법 서적을 집어 드는 횟수가 점점 줄어들었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에 나가면서 저의 성실함과 열정은 사회 사람들의 복잡하고 더러운 마음에 물들어 완전히 사라져버렸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대법을 배운 기초가 있어서 감히 시대 조류에 휩쓸리지는 않았지만 심리적으로 자포자기하기 시작했습니다.
나중에 인터넷에서 한 남자를 알게 됐는데, 그 사람은 제가 법공부하는 것을 반대하지 않았고 어머니의 불법 징역 선고에 대해 아무런 편견도 없었습니다. 저는 그 사람에게 남녀 감정을 느낀 적은 없었지만 그가 저보다 6살 많다는 점을 생각하며 그를 계속 기다리게 할 수 없다고 여겼습니다. 그래서 좁은 시각으로 우리의 만남이 인연일 것이라고 고집을 부렸고, 결국 양가 부모님 사이에서 관계를 확정했습니다.
이후 저는 점점 대법 서적을 들지 못했고 더욱 무기력해졌습니다. 심지어 대법에 대한 믿음에 동요가 생겼습니다. 그러나 만약 저에게 법을 배운 적이 없는 것처럼 살라고 한다면 이젠 그렇게 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법에서 정진할 수 없었습니다. 온갖 갈등이 연달아 찾아와 무너졌습니다. 저는 다시 사부님을 생각했습니다. 사부님께서 아직도 저를 관여하시는지, 제가 도대체 수련할 수 있는지 없는지 고민했습니다. 제 마음속 고통을 해결할 곳이 없었습니다.
저는 다만 마음속으로 조용히 사부님을 부르며 조금이라도 위안을 얻으려 했습니다. 사부님은 들으시고 저의 고통을 이해하셨으며, 저에게 꿈을 꾸는 형식으로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주셨습니다. 저는 연속 3일간 세 가지 꿈을 꾸었는데 사부님께서 자비롭게 제 마음의 매듭을 풀어주셨습니다. 마지막 꿈에서 역사 선생님이 숙제를 받기 위해 연단에서 기다리고 계시는 꿈을 꾸었습니다. 선생님은 머리가 이미 희끗희끗했고 저를 보고 웃고 계셨습니다. 저는 역사 과목 대표로서 숙제를 거두지 못했습니다. 어떤 학생들은 서로 숙제를 베끼고 있었고 선생님은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선생님은 연단에서 학생들이 수업 10분 전에 숙제를 끝내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깨어난 후 저는 제가 사부님을 걱정하게 했다는 것과 제가 역사적 사명을 완수하지 못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사부님께서는 여전히 저를 기다리고 계셨고 저를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저는 그 사람과의 관계를 정리한 후 마침내 다시 수련으로 돌아왔고 마침내 감히 큰 소리로 사부님을 부를 수 있었습니다.
사부님이 계시고 대법이 있으니 정말 좋습니다! 저는 진지하게 공부하고 안으로 자신을 찾는 과정에서 매우 정진할 때가 있었고 느슨해질 때도 있었습니다. 한 가지 상기시킬 만한 일이 있습니다. 책 보기를 좋아했던 저는 대학에 다닌 기간이나 직장에서 일하는 기간에 중국 책은 공산당 문화 것이 많은 것을 알고 서양 철학자의 책을 포함한 일부 외국 책을 골라 봤습니다.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고독한 것이라느니, 무슨 자유, 비관주의 등과 유사한 그들의 생각에 동감했습니다. 이런 사상의 영향으로 대학을 졸업한 후 저는 마음에 항상 무감각함과 무관심, 냉담함이 숨겨져 있는 것을 느꼈습니다. 나중에 ‘공산주의 유령은 어떻게 우리 세계를 지배하는가?’를 읽고 나서 저는 그런 서양인들이 쓴 책들을 읽고 영향을 받은 것을 깨달았습니다. 원래 그 무감각하고 냉담한 사람은 제가 아니라 악마의 생각이 주입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이후로 저에게는 그런 소극적인 생각이 없어졌습니다.
가정을 이루다
큰이모님이 저에게 수련생의 아들을 소개해주셨는데, 처음 만났을 때 그 사람의 눈이 깨끗해서 마음이 움직였습니다. 나중에 저는 한 남자아이가 작은 ‘전법륜(轉法輪)’ 책을 들고 저를 향해 달려오는 꿈을 꾸었습니다. 저는 남자아이는 그 남자를 가리킨 것이라고 느꼈습니다. 사부님께서 이번 인연은 옳은 것이고 좋은 인연이며 확실히 저의 인연이라는 것을 알려주신 겁니다.
우리는 어머니가 7년 불법 옥살이를 마치고 돌아오신 후 결혼했습니다. 저는 임신 중에 산전검사를 한 적이 없습니다. 저는 아이는 법을 위해 온 것이고 사부님이 관여하신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임신 6개월이 됐을 때 출산 예정일을 확인하기 위해 병원에 갔을 뿐입니다. 어느 날 새벽 1시쯤, 저는 규칙적인 진통을 느끼고 남편을 집에 불러 간단히 수습한 뒤 오토바이를 타고 아래층 근처 병원으로 갔습니다. 우리 둘 다 생각이 단순해서 아기가 태어난 후 부모님을 부르자고 했습니다.
새벽 2시경 병원에 도착했습니다. 몇 가지 검사를 마치고 새벽 4시쯤 되자 복통이 더욱 심해졌습니다. 의사는 우리 부부만 있고 다른 가족이 아무도 오지 않은 것을 보고 걱정되는 기색을 보였습니다. 그제야 우리는 부모님께 연락을 드렸습니다. 배의 통증이 극심해지자 저는 ‘전법륜’에 나오는 “참기 어려운 것도 참을 수 있고, 행하기 어려운 것도 행할 수 있다(難忍能忍, 難行能行)”를 마음속으로 되뇌었습니다. 이렇게 무통 주사 없이 새벽 6시 30분 아이를 순산했습니다.
우리 아이는 이제 세 살이 되었습니다. 올해 ‘코로나 양성’ 증상이 나타났을 때도, 아이와 함께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眞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를 계속해서 염하니 증상이 호전되었습니다. 그 외에는 아이에게 별다른 건강 문제가 없었습니다.
남편은 꼬치튀김 가게를 운영하느라 매일 바빴고 저는 집에서 아이를 돌보았습니다. 아이가 한 달, 두 달 되었을 무렵, 남편의 휴대폰에서 어떤 여성이 계속해서 돈을 빌려달라고 하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저는 남편에게 이 문제를 언급했지만 남편을 신뢰했기에 그저 돈을 빨리 받아오라고만 했을 뿐 더 이상 간섭하지 않았습니다.
아이가 3개월이 되었을 때, 뭔가 이상함을 감지하고 남편에게 자세히 물어보았습니다. 그제서야 남편이 그 여성에게 전후로 20만 위안(약 4천만 원)에 가까운 돈을 빌려주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실상 사기를 당한 것이었습니다.
이런 일이 우리 가정에 일어났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습니다. 저는 늘 남편의 인품과 판단력을 신뢰했고, 가정 경제에는 별로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남편이 결혼 전에 이미 10만 위안 정도의 빚(가게 운영 손실과 주택 명의 변경, 인테리어 비용 등)이 있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습니다. 거의 30만 위안에 달하는 빚은 너무나 큰 금액이었습니다. 꼬치튀김 가게에서 번 돈을 모두 갚아도 여전히 24~25만 위안의 빚이 남아있었습니다. 남편은 밤에 일하고 낮에 집에 와서는 주로 잠을 자느라 가사에 도움을 줄 수 없었습니다. 혼자서 아이를 키우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힘든데 이렇게 큰 빚이 있다는 사실을 감당하기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법공부를 통해 저는 이 모든 일이 우연이 아님을 깨달았습니다. 아마도 우리 부부가 전생에 그 여성에게 빚을 졌거나, 또는 이것이 우리가 겪어야 할 한 고비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남편을 원망하는 마음이 자주 들었지만 그때마다 그 마음을 억누르며 제 속인의 마음을 갈고닦았습니다.
남편을 탓하기는커녕 오히려 위로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당신도 좋은 뜻으로 그랬을 거예요. 그 여자의 어머니가 아프다고 해서 돈을 빌려준 거잖아요. 당신이 사기를 당했으니 나보다 더 괴로울 거예요. 우리 둘 다 그 여자에게 빚진 게 있어서 이런 일이 생긴 걸 거예요. 천천히 갚아나가면 돼요”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법공부를 통해 이미 다른 사람을 원망해봤자 소용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원망하는 마음이 드는 것 자체가 이미 마음이 움직인 것입니다. 진정한 제고는 안으로 찾을 때만 가능합니다. 3년이라는 시간 동안 사부님께서 주신 복 덕분에 우리 부부는 생활을 검소하게 유지하며 2023년 6월에 마침내 빚을 모두 갚을 수 있었습니다.
아이가 한 살 때부터 저는 꼬치튀김 가게 일을 돕기 시작했습니다. 지난 3년 동안 점점 더 많은 꼬치튀김 가게를 열었고 게다가 올해는 전반적인 업계 불황으로 장사가 더욱 어려워졌습니다. 우리 가게는 인수한 곳인데 주변의 다른 꼬치튀김 가게들 중에서 가장 오래되고 낡은 가게라는 큰 단점이 있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저는 대법의 가르침 아래 이익에 대한 집착을 점점 내려놓고 끊임없이 속인의 이치를 돌파해 나갔습니다. 사부님의 정법이 곧 끝나는 이 시기에 이렇게 큰 업력을 갚을 수 있게 된 것에 대해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저는 부모님 외에는 누구에게도 우리 가정의 ‘빚’에 대해 말하지 않았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제 남편을 오해하고 그를 너무 어리석고 쉽게 속았다고 비난할까 봐 걱정됐기 때문입니다. 그런 일이 있으면 남편이 앞으로 다른 수련생들이나 친척, 친구들과 관계를 맺는 데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남편은 진정으로 수련에 들어서서 오히려 저에게 정진하라고 격려하고 있습니다.
법에서 정진하다
가장 말하고 싶은 것은 최근 몇 개월간의 법공부 체험입니다.
2023년 설 무렵, 우리 부부는 빚을 거의 갚을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한 친척이 우리에게 해외에 그녀의 친척이 있는데 우리가 관광 비자를 신청한 후 해외에 머물러 있다가 몇 년 후에 아이를 데려가라고 말했습니다. 그녀의 해외에 있는 친척이 우리를 도와줄 수 있다고 했습니다. 남편은 마음이 움직여 특별히 가고 싶어 했고 여권, 비자를 신청할 준비를 하느라 바빴습니다. 중국은 대법제자의 주체이고 구원받아야 할 사람이 아직 많이 있어서 저는 해외로 나가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남편은 매우 고집했습니다.
설날에 저는 사부님께 향을 올리고 새해 소원 두 가지를 말씀드렸습니다. 첫 번째는 남편이 해외로 나갈 생각을 포기하게 하는 것입니다. 해외로 나가는 방식은 우리에 대한 대법의 요구 사항에 맞지 않습니다. 두 번째는 제가 휴대폰을 보는 것을 중단하고 색욕심을 제거하는 것입니다. 남편은 여전히 외국에 갈 준비를 했지만 저는 마음을 움직이지 않으려고 노력했고 남편에게 법을 공부하고 수련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는 제 생각을 존중했고 외국에 가지 않겠다며 저와 함께 법공부를 시작했습니다. 남편은 고생을 견디는 인내심이 강했습니다. 이 점에서 저는 남편보다 못하기에 열심히 노력해야 합니다.
색욕심을 제거한 문제를 이야기하겠습니다. 한번은 남편과 대화를 나누다가 어린 시절의 일을 회상했습니다. 어머니가 불법 구금되셨을 때 저의 상태가 매우 좋지 않아 한동안 법공부를 포기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 이유는 첫째, 어머니에 대한 의존심 때문이었습니다. 항상 어머니의 독려로 수련했기에, 어머니는 저에게 지팡이와 같았습니다. 지팡이가 없으니 걸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두 번째 이유는 색욕이었는데, 이 문제는 오래전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중학교 시절, 이웃집 여학생이 로맨스 소설 한 권을 주었는데 읽고 나서 더 읽고 싶어져 그녀에게서 다른 소설들도 빌려 읽었습니다. 책 속에는 남녀 간의 애정 행위가 모두 묘사되어 있었습니다. 또한 중학생 때 집에서 우연히 CD를 발견했는데 그 내용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보았더니 음란물이었습니다. 보고 나니 구역질이 나고 토하고 싶었습니다. 인간이 그런 행위로 태어난다는 사실을 생각하니 구역질이 났고, 누구를 보아도 모두 구역질이 났습니다.
왜 이런 것들을 우연히 접하게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고등학교 때부터 저는 이미 남녀 간의 감정을 다스리는 것을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남성에 대해 조금이라도 호감이 생기면 열심히 억제하려 했고, 매우 자제력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소설을 읽었습니다. 대학 시절에는 시간이 많았는데 인터넷만 연결하면 무엇이든 접할 수 있어서 색욕적인 것들을 피하기 어려웠습니다.
직장 생활을 시작한 후에는 저에게 부적절하게 접근하는 사람들이 여러 명 있어서 두 번이나 직장을 그만두었습니다. 돌이켜 보면, 색욕의 문제가 늘 저를 따라다녔던 것 같아 정말 무서웠습니다. 소설 읽기를 너무 좋아해서 한동안 그만두곤 했지만 결국 다시 읽게 되곤 했습니다. 결심이 부족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설날에 저는 소설 읽기를 중단하고 색욕을 제거하고 싶다는 소원을 빌었습니다.
남편과 이런 이야기를 나누다 문득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이 색욕 문제의 근본적인 배치는 구세력이 제가 어렸을 때부터 정해 놓은 것이었습니다. 제가 사리를 분별하지 못할 때 사악한 사상을 주입하고, 단계적으로 제 인생의 각 단계에 배치하여 이유 없이 그것에 빠지게 만든 것입니다. 저는 마침내 구세력의 사악한 배치가 사람을 망치는 것임을 간파했습니다.
이 방면에 대해 발정념을 중시한 후, 저는 먼저 소설 읽기와 휴대폰 보기를 중단했습니다. 위챗을 삭제하고 휴대폰을 초기화하니 색욕 문제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최근 며칠 동안 제가 색욕 문제에 주의를 기울이게 된 것은 몸이 약간 불편하거나 심성에 약간의 어려움에 직면했을 때였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수련하는 것으로, 다른 형태의 추구함이며 진정한 제고가 아님을 알았습니다.
이 문제를 깨닫고 난 후, 저는 더욱 순수하고 강력한 정념을 내보내 그것을 제거하고자 했습니다. 눈에 보이는 사람, 사물, 일에 색욕의 존재가 있는지 일사일념(一思一念)에서 엄격히 주의를 기울였습니다. 사부님께 감사드립니다. 수련생들에게 다시 한 번 휴대폰을 보지 말아야 한다는 점을 상기시키고 싶습니다. 그것은 마성을 방종하게 하고 자신을 망치는 일입니다.
휴대폰 보기를 중단한 후 저는 진정으로 정진하기 시작했습니다. 지속적으로 마음을 닦으면서 명예, 이익, 정에 대해 점점 담담해졌고, 책을 읽고 법공부할 때 잡념이 사라졌으며, 연공할 때 입정(入定)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저는 사부님의 가르침을 따라 더 많은 사람을 구하고 싶어서 천천히 가게에서 진상을 알리기 시작했습니다.
어느 날 남편이 밖에서 한 할아버지와 대화를 나눴는데, 그 할아버지가 예전부터 자주 가게에 와서 식사를 했다며 제게 가서 그에게 진상을 알려보라고 했습니다. 저는 가슴이 두근거리고 긴장되어 다리가 저절로 떨렸지만 이것이 기회라고 생각하고 용기를 내 말을 걸었습니다. 할아버지와 대화를 시작했는데 할아버지는 끊임없이 말씀하셨습니다. 제가 화제를 대법으로 이끌려고 하면 할아버지는 거침없이 다른 이야기를 하셔서 제가 끼어들 틈이 없었습니다. 어렵게 대법을 언급했지만 그분은 믿지 않으셨고 다른 사람들이 이미 말해줬다며 화제를 바꾸셨습니다.
저는 너무 조급한 마음에 사부님께 간청드렸습니다. ‘사부님, 어찌된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정념도 보냈는데 할아버지는 계속 자기 얘기만 하십니다. 그분을 구하고 싶은데 어떻게 말씀드려야 할까요?’ 이렇게 생각하다 문득 깨달았습니다. 처음 할아버지에게 진상을 알리려 할 때 ‘이분부터 시작해서 진상 알리기를 연습해봐야지’라는 생각을 했던 것입니다. ‘아, 이런 생각이 불순했구나. 내가 잘못했어. 할아버지가 가장 관심 있어 하는 이야기를 해야 해. 아마도 건강 문제일 거야. 남편이 그분이 당뇨가 심하다고 했잖아.’ 그래서 저는 건강과 전염병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했고, 나중에는 할아버지께서 관심 있게 들으시며 저를 따라 9자 진언을 여러 번 읊으셨습니다. 이렇게 해서 저는 진상을 알리기 시작했습니다.
그 후로 누군가에게 진상을 알릴 때마다 온몸이 긴장되고 떨리며 마음의 압박감이 매우 컸습니다. 이런 압박감 때문에 제대로 먹지도 자지도 못했고, 법공부를 할 때도 늘 무의식적으로 진상 알리기 내용에만 집중해서 공부했습니다. 인터넷에서 다른 수련생들이 진상을 알린 경험담과 자료들을 찾아 많이 베꼈고, 진상을 알릴 때 그대로 말했지만 제가 원하는 상태가 아니어서 여전히 긴장되고 압박감을 느꼈습니다.
저는 매우 괴로웠습니다. 이전에는 수련 상태가 특히 좋아서 문제가 생기면 항상 사부님과 ‘소통’할 수 있었고 법에서 답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진상을 알리려고 하니 왜 이렇게 힘들고 무력해지는 걸까요? 이것이 제가 돌파해야 할 난관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스스로 깨닫고 대법으로 가늠해야 하며, 늘 사부님께서 밀어주시기만을 기다려서는 안 된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어느 날 밤늦게, 남편이 가게에서 한 청년에게 진상을 알리고 있었는데 저도 나중에 가서 그 청년과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저는 오랫동안 혼자 말했습니다. 그 청년이 삼퇴(중공의 당, 단, 대 조직 탈퇴)를 하고 떠난 후, 남편은 테이블과 의자를 정리하고 문을 닫을 준비를 했습니다. 제가 다가가자 남편이 말했습니다. “나 화 났어. 내가 그 청년에게 말해서 거의 삼퇴시킬 뻔했는데 당신이 와서 그렇게 오래 얘기하는 바람에 퇴근이 늦어졌단 말이야.” 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속이 뒤집혔습니다. ‘왜 이렇게 된 거지? 남편은 왜 화가 난 걸까?’
저는 화가 나서 오토바이를 타고 남편을 남겨둔 채 집으로 갔습니다. 가면서 눈물이 흘렀고 마음속으로 물었습니다. ‘사부님, 제가 뭘 잘못했나요?’ 저는 억울해하지 말아야 하고 안으로 찾아야 한다는 것을 알았지만 무엇을 잘못했는지 몰랐습니다. 그때 남편이 했던 말, “당신은 자기 말만 잔뜩 했잖아”가 떠올랐습니다. 아, 그제서야 깨달았습니다. 저는 중생의 감정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상대방이 받아들일 수 있는지 신경 쓰지 않은 채 제 말만 열심히 했던 것입니다. 이것을 깨닫고 나니 더 이상 억울하지도 않고 화가 나지도 않았습니다.
다음 날, 저는 어머니께 최근의 수련 상태와 느끼는 압박감에 대해 말씀드렸습니다. 이야기를 들으신 어머니는 제가 항상 자신만의 이론을 갖고 있으며, 법리를 말할 때면 조리 있게 구절구절 말한다고 하셨습니다. 사부님께서 어머니의 입을 통해 저를 일깨워주신 것 같았습니다. 저는 자아 감정에 너무 치중했고, 제가 깨달은 이치에 지나치게 집착했으며, 다른 사람의 감정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렇게 중요한 문제를 드러내 주신 사부님께 감사드렸습니다.
저는 더 이상 자신의 고정된 인식을 가지고 책을 읽거나 법공부를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겸손한 자세로 이전에 법에서 인식했던 것들을 내려놓고 마치 어린아이가 글자를 배우듯이 자신을 비우고 한 글자 한 마디씩 법을 읽어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그렇게 하니 사부님께서 저에게 더 심오한 법리와 전에 인식하지 못했던 것들을 보여주셨습니다.
동시에 제가 느꼈던 압박감, 저를 떨게 만들었던 그 느낌이 사실 제 본연의 모습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것은 살아있는 생명체였으며, 제가 진상을 알리고 그것을 제거할까 봐 두려워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를 인식한 후 진상을 알릴 때 떨리는 것은 내가 아니라고 생각하니 더 이상 떨리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요리하면서 게으름 때문에 아침에 연공을 하지 못한 것에 대해 너무 속상했습니다. 이 안일한 마음을 없애고 싶었고 최근에 사부님께 간청했지만 왜 ‘효과가 없는지’ 곰곰이 생각해보았습니다. 생각을 거듭하다 보니 마침내 제 근본적인 집착을 발견했습니다. 저는 사람으로 사는 것이 너무 고달프다고 느껴 정말로 속세에 있고 싶지 않았고, 빨리 수련을 마치고 떠나고 싶어 했던 것입니다.
알고 보니 저는 고생하는 것을 두려워하고 편안해지기만을 원했습니다. 문제가 생기면 사부님께 여쭤보고 법에서 답을 찾고 싶어 했지만, 정작 제 주의식(主意識)은 조금도 강화하지 않았고 의지력을 단련하지도 않았습니다. 그저 기다리고 의지하며, 법리가 펼쳐지고 사부님의 깨우침만을 기다렸을 뿐, 전혀 고생하려 하지 않았던 겁니다. 무의식중에 이런 습관이 형성되어 이것이 바로 수련이고 이렇게 하는 것이 연마라고 여겼습니다.
사부님께 감사드립니다! 저는 제 문제점을 찾았습니다. 이제부터 일사일념 속에서 고생을 두려워하고, 번거로움을 피하며, 편안함을 추구하는 마음을 찾아 제거하기 시작했습니다. 제 주의식을 강화하니 빠르게 제고되고 큰 돌파를 이루었으며, 법에서 법을 인식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진상을 알리면서 저는 제가 부자연스럽고 남에게 강요하는 듯한 태도가 문제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어떻게 개선해야 할지 몰라 명혜망의 문장 모음에서 삼퇴를 권하고 중생을 구한 경험담을 찾아보았습니다. 한 수련생이 쓴 글에 크게 감동받았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내가 나의 모든 생명을 법에 용해시키고 자아를 없애니, 무사무아(無私無我)의 경지가 얼마나 아름답고 평화로운지 체험했습니다! 저는 항상 행복한 미소를 짓게 되었고 생각이 단순해졌습니다. 동시에 사람을 구하는 일도 매우 쉬워졌습니다. 지난 몇 년간 진상을 알리고 삼퇴를 권하는 성공률이 100%였습니다…”
저는 진상을 알리는 것이 기교나 방법의 문제가 아니라 마음의 문제라고 생각했습니다. 순수하게 사람을 구하려는 마음, 사부님과 법에 대한 확고한 신념이 중요한 것입니다.
저는 선(善)을 수련하는 데 힘을 쏟았습니다. 무엇보다도 ‘자아’와 ‘사(私)’에 주목했습니다. 일언일행에서 나를 위한 것인지, 아니면 타인을 위한 것인지 주의를 기울였습니다. 정말로 노력하니 수련이 빠르게 진전되었습니다. 먼저 남을 생각하게 되었고 마음이 순수해지니 진정으로 중생들의 고통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저는 제가 진정한 대법제자가 된 것 같았고, 정말로 사부님을 도와 정법을 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제 마음이 법 안에 있고 법 속에 녹아들었습니다.
한번은 진상을 알리는 과정에서 중생의 고통을 진심으로 이해하게 되어 눈물이 글썽거렸습니다. 진상을 듣고 있던 학생은 매우 진지하게 경청하며 계속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제가 전한 대법과 사부님의 아름다움에 그는 감동받은 듯했습니다. 저 또한 선(善)의 힘을 강하게 느꼈고, 세상 사람들이 마치 길 잃은 어린 양처럼 순진한 눈으로 간곡한 가르침을 듣듯이 조용히 집중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선념이 나오자 진상 알리기가 전혀 어렵지 않았고, 몇 마디 말로도 쉽게 삼퇴를 권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진정으로 중생을 생각했고, 대법 사부님의 끝없는 자비와 은혜의 아름다움을 전하고 싶었습니다. 정정당당하게 진상을 알렸고 마음에 힘이 넘쳤습니다.
사람을 구할 때는 환희심을 경계해야 합니다. 환희심은 정(情)에서 파생된 것이고 삼계 내의 것입니다. 대법제자는 이미 삼계의 통제를 받지 않고 사부님께서 제 위치로 밀어올려 주셨는데, 그 작은 환희심이 어떻게 저를 제약할 수 있겠습니까? 이렇게 생각하니 환희심이 사라졌고 저는 단번에 그것을 뛰어넘어 마음이 평온해졌습니다. 사부님께 감사드립니다!
최근 진상을 알릴 때 조금만 말해도 중생들이 이해하고 쉽게 받아들이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또한 그들이 매우 진지하게 듣는 모습을 보니 정말로 법정인간(法正人間) 시기 전의 전환기인 것 같았습니다. 현재 저는 매일 진상을 알리고 있으며, 모든 중생이 고통 속에 있다는 것과 사부님께서 중생을 구하기 위해 모든 것을 바치셨다는 것을 생각하면 이 마지막 기회를 잡아 사람들을 구해야 한다고 느낍니다.
발정념은 제 약점입니다. 수년간 정념의 작용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했고, 때때로 제 눈앞에 펜촉만한 크기의 금색 별이 나타나는데 이는 흑수(黑手)가 저를 교란하는 것입니다. 어느 날, 명혜망에서 수련생이 사악에 박해받고 있다는 보도를 보고 마음이 괴로웠습니다. 저는 제가 책임져야 할 공간장 안의 사악이 제거되지 않아 사악이 저에게 의지해 생존하고 있으며, 또 다른 수련생에게 가서 박해한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저에게 죄책감이 들었습니다. 저는 발정념을 잘해서 대법제자의 전체에 한 몫의 힘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사부님께서는 저에게 발정념을 잘하고 주의식을 강화하라고 격려해주셨습니다. 저는 발정념 시간을 30분으로 늘렸고, 직장에서나 길을 걸을 때나 요리할 때도 조용히 발정념을 했습니다. 사상이 맑아지니 잠자는 동안에도 늘 새로운 법리와 진상 알리기에 대한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올랐습니다. 평소에 법을 생각하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질투심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그것은 매우 자연스럽게 나타납니다. 한번은 수련생이 누군가가 멀리까지 가서 자료를 배포하면서 사람을 구하느라 바쁘다고 말했습니다. 제 마음이 동요했습니다. 속으로 ‘자료 배포하는 건 누구나 할 수 있지 않나? 입으로 진상을 말해야지’라고 생각했습니다. 이어서 다른 수련생이 어떤 이가 책을 한 글자 한 글자 읽으면서 마음에 와닿지 않으면 반복해서 읽는다고 말했는데 제 마음이 또 동요했습니다. 속으로 ‘마음을 조용히 하고 법공부하는 건 당연한 거 아닌가. 그녀는 집에서 법공부만 할 줄 알지 진상을 알리고 사람을 구하는 건 거의 못 봤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 두 번의 연속적인 질투심은 제게 착실하게 수련해야 한다는 것을 일깨워주었습니다.
저는 ‘신공표가 장자아를 질투했듯이, 자꾸 다른 수련생들이 이런저런 면에서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나는 신공표와 다를 바 없구나. 이 마음을 없애야 해’라고 생각했습니다. 질투에는 뿌리가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보통 두 사람 사이에서 일어납니다. 혼자 있을 때는 이런 마음이 생기지 않습니다.
저는 생명이 많아진 후 사회관계를 갖게 되면서 이기심이 쉽게 생기고, 이로 인해 생명이 아래로 떨어지게 된 것이라고 깨달았습니다. 사(私)는 단체 사회관계에서 생성된 만큼 저는 이런 사회관계와 사람과의 관계, 수련생과의 관계를 바로 놓아야 합니다. 중생은 자신의 천체 생명을 구하려고 온 것이니 우리가 구해야 하기에 기본적으로 질투심이 생기지 말아야 하고, 수련생은 함께 사부님을 도와 정법하러 왔기에 기본적으로 질투심이 생기지 않아야 마땅합니다. 일상생활에서 주변에 다른 사람이 있으면 사심을 조심해야 합니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요? 기꺼이 손해를 보려 하면 절대 평등주의 개념에 영향을 받지 않을 것이고 무슨 불평이 없을 것이니 질투심이 적을 것입니다. 이리하여 질투심이 더는 저를 제약할 수 없게 되었고 마음은 매우 편안해졌습니다.
최근 체험입니다. 적절하지 않은 부분은 수련생 여러분께서 바로잡아주길 바랍니다.
원문발표: 2024년 10월 10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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