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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가 세상을 떠났다는 비보 속에서 수련인으로서 선택하다

글/ 중국 대법제자

[명혜망] 2023년 11월 어느 날, 저는 천 리 밖에 있는 언니가 세상을 떠났다는 비보를 들었습니다. 너무나 갑작스러운 소식에 눈물과 그리움이 뒤섞여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다행히 친척의 도움으로 비행기 표를 구해 함께 언니의 장례를 치르러 갔습니다. 그런데 과정에서 언니의 사인에 의문점이 생겼습니다…

의심이 들다

언니는 82세였지만 평소 건강이 좋아 혼자서 물통을 들고 왔다 갔다 할 수 있었습니다. 형부는 95세로 나이가 많아 소뇌가 위축되고 치매 증상이 있어 거의 앞을 보지 못하고 거동이 불편했습니다. 언니는 80대였지만 자립이 불가능한 형부를 닦아주고, 씻겨주고, 몸을 뒤집어주는 등 형부의 일상생활을 거의 도맡아 했습니다. 집안의 다른 일들은 청소, 빨래, 요리를 주로 맡은 가정부를 고용했습니다.

언니와 형부는 재혼이었고, 언니는 자녀를 두지 않았으며 형부가 데려온 딸 잉잉(가명)만 있었습니다. 잉잉은 결혼 후 언니, 형부와 함께 살지 않았습니다.

2023년 11월의 어느 날 아침, 잉잉은 가정부로부터 전화를 받아 언니가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가정부는 전화로 아침에 언니 집에 와서 문을 열었을 때 언니가 소파에 누워 있었는데 이미 숨을 쉬지 않아 당황한 나머지 잉잉에게 연락했다고 했습니다. 전화를 받은 잉잉과 남편 밍신(가명)은 서둘러 언니 집으로 갔습니다. 집에 도착하니 긴 소파에 이미 세상을 떠난 어머니, 즉 제 언니가 누워 있었고 얼굴이 푸르고 입술이 검게 변해 있었습니다.

잉잉은 가정부에게 언니가 사망한 당일의 상황을 물었습니다. 가정부는 전날 오후 4시경 퇴근했고 퇴근 전에 저녁 식사를 준비해 뒀는데, 오늘 왔을 때 전날의 식사가 이미 먹고 없었다고 했습니다. 가정부가 제공한 정황으로 볼 때, 당시 우리는 언니가 전날 저녁 식사 후에 사망했을 것으로 분석했습니다.

우리는 120 구급대원을 불렀고, 구급대원은 언니가 심근경색으로 적어도 10시간 이상 전에 사망했다고 기초적으로 확인했습니다. 구체적인 사망 시간은 가족이 제공한 정보에 근거해야 했고, 가족이 제공할 수 있는 정보는 가정부의 말뿐이었습니다. 구급대원은 가정부가 제공한 정보를 바탕으로 언니의 사망 시간을 전날 밤 10시경으로 추정했습니다.

언니가 82세였으니 이 나이에 세상을 떠나는 것이 특이한 일은 아니며 정상적인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의문스러운 점이 있었습니다. 저와 함께 언니의 장례식에 참석한 친척들은 언니가 사망한 날 급한 일이 있어서 오후 2시경부터 저녁 8시까지 언니에게 여러 번 전화를 걸고 위챗 메시지를 보냈지만, 언니는 계속 전화를 받지 않고 메시지에도 답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언니는 나이가 많았지만 청력과 시력이 좋아서 전화를 듣지 못했을 리가 없습니다! 게다가 옆에 가정부가 있었는데 왜 전화나 위챗 메시지에 응답하지 않았을까요? 이 질문을 했을 때 가정부는 계속 말을 얼버무렸습니다.

또 다른 일도 있었습니다. 언니가 세상을 떠나기 열흘 전, 언니는 저에게 가정부 집에 어려운 일이 있어 도와주고 싶은데 수중에 돈이 없다고 했습니다. 저는 80대인 언니가 수중에 돈이 없으면 매우 불편할 것 같아 3만 위안을 줬고, 언니는 그 돈을 가정부에게 빌려주고 싶다고 했습니다. 저는 가정부가 나중에 월급으로 갚을 것이라 생각해 반대하지 않았습니다.

저와 친척들이 언니의 집에 도착한 당일 밤, 제가 언니에게 3만 위안을 준 사실을 언니의 딸과 사위에게 말하자 그들은 매우 당황하며 약간 불안해하는 것 같았습니다. 우리에게는 몇 가지 의문이 있었습니다. 첫째, 왜 언니는 사망한 날 전화를 받지 않았을까? 둘째, 가정부는 언니에게 빌린 돈을 갚기로 동의했을까? 하지만 잉잉과 밍신은 가정부에게 돈을 빌려준 사실을 몰랐습니다. 저와 친척들이 상의한 끝에 잉잉과 밍신은 우선 가정부를 그대로 두고 천천히 언니의 사망 원인을 찾고 빌려간 돈을 갚는 문제를 해결하기로 했습니다.

증거가 나오다

언니의 휴대폰을 확인한 결과, 언니가 사망한 날 오후에 가정부가 오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가정부가 오후 3시경에 언니에게 못 온다는 위챗을 보냈고 언니는 답장을 보내지 않았습니다. 이는 언니가 오후 3시 이전에 건강에 문제가 있었고, 가정부가 곁에 없었으며, 가정부가 거짓말을 했다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만약 가정부가 제때 구해줬다면 언니의 생명이 위험하지 않았을 수도 있거나 사망 시간이 연장되었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잉잉은 가정부가 자주 결근하고 집안일을 하지 않는 것을 기억했습니다.

게다가 언니의 휴대폰에는 열흘 전 가정부에게 3만 위안을 송금한 기록이 남아 있었습니다. 휴대폰을 자세히 확인해 보니 언니가 가정부에게 여러 차례 큰 금액을 이체한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분석 결과 언니는 가정부에게 속고 있었던 것입니다.

일의 맥락이 분명해졌으니 남은 것은 가정부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의 문제였습니다. 언니에게 건강상 문제가 생겼고, 가정부가 곁에 없었으니 이것은 직무 소홀로 인명피해가 발생한 것입니다. 이를 은폐하기 위해 거짓말을 했고, 게다가 언니에게서 여러 차례 큰 돈을 빼앗았는데, 이는 법적인 문제입니다.

언니는 잉잉의 계모로, 잉잉은 일 그 자체보다는 가정부가 가져간 돈에 더 관심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언니의 유일한 직계가족이자 유일한 여동생으로서 언니의 사망 원인에 더욱 관심을 기울였습니다. 언니는 강인하고 유능하며 부모님께 효도하는 집안의 기둥이었고, 성(省) 정부 직속 기관의 처장급 간부로 평생 각지를 다니며 우리 가족의 자랑이었습니다. 언니가 가정부의 직무 유기로 죽다니 저는 분을 참을 수 없었습니다.

수련인의 선택

하지만 저는 파룬따파를 수련하는 사람입니다.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다른 사람에게 선하고, 일할 때 다른 사람을 먼저 고려하고, ‘진선인(眞·善·忍)’의 표준에 따라 행동하라고 가르치셨습니다. 그러나 어떻게 해야 잘할 수 있는가는 저에게 매우 어려운 선택이었습니다.

3일간의 장례식은 끝났지만 언니가 떠난 후 처리해야 할 일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우선, 치매 증상이 있고 시력이 좋지 않으며 거동이 불편한 형부는 혼자서 생활할 수 없는 상태였습니다. 형부가 딸의 집으로 가기 위해서는 잉잉이 몇 가지 필요한 준비를 해야 했고 시간이 좀 걸렸습니다. 잉잉은 이 기간 저에게 같이 지내면서 가정부와 함께 형부를 돌봐달라고 부탁했고 저는 이해하고 동의했습니다.

이 기간은 저에게 매우 고통스러웠지만 원한을 내려놓고 다른 사람을 선하게 대하는 과정이기도 했습니다. 매일 새벽녁에 일어나 잉잉과 가정부와 함께 언니가 생전에 반복했던 일, 즉 형부를 돌보며 집안일을 했습니다. 언니가 없는 방을 바라보면서 언니의 외롭고 무기력했던 비참하고 고통스러운 마지막 날을 생각했습니다. 온종일 제 앞을 다니는 거짓말쟁이 가정부를 보니 제 감정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했고, 눈에서 가슴으로 눈물이 흘렀습니다. 이미 아버지의 이사만으로도 힘든 잉잉을 더 힘들게 할 수는 없었으므로 저는 감정을 억누르고 드러내지 않으려고 애썼습니다.

하지만 가정부의 행동은 늘 제 마음을 불편하게 했습니다. 그녀는 언니의 집 어느 방에서도 혼자 일하지 못했고, 두려움과 공포에 질린 듯 저를 떠나지 못했습니다. 일할 때도 그녀는 분명히 불안정해 보였고 때로는 멍한 표정을 짓기도 했습니다. 특히 언니가 세상을 떠난 지 7일째 되는 날, 그녀는 당황한 듯 급하게 언니 집에 와서는 허둥지둥 언니의 영정 앞으로 가 작은 목소리로 무언가를 중얼거렸습니다. 그러고는 저에게 와서 언니에 대한 꿈을 꿨다고 말했습니다.

가정부의 이러한 모든 행동은 그녀가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있으며, 내심 불안해하고 있다는 것을 명백히 보여주는 증거였습니다.

가정부의 이런 모습들을 보며 저의 마음도 복잡해졌고, 때로는 초조해지기도 하고 우울해지기도 했습니다. 그녀와 함께 지내면서 저는 그녀의 가정 사정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녀에게는 두 명의 자녀가 있는데, 그 중 한 명은 장애가 있었고, 남편은 병으로 일을 할 수 없어 그녀의 월급으로 생활을 꾸려나가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밖에서 일을 해야 할 뿐만 아니라 집안일도 도맡아 해야 했기에 그녀는 가족의 기둥이나 다름없었습니다. 저는 스스로에게 물었습니다. ‘만약 그녀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장애가 있는 아이는 어떻게 될까? 아픈 남편은 어떻게 될까? 만약 그녀가 언니의 죽음과 관련이 있다면, 법의 제재를 받은 후 그녀는 어떻게 될까?’

저는 최선을 다해 감정을 억누르려 노력했고,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일을 처리하려 했으며, 진선인의 기준에 따라 행동하고 타인을 먼저 생각하는 사람이 되고자 노력했습니다. 때로는 언니의 죽음이 떠올라 가슴이 아팠고, 때로는 가정부의 어려운 가정 형편이 생각나 그녀가 불쌍하게 여겨지기도 했습니다. 저는 이러한 모순된 감정과 초조함 속에서 괴로워했습니다.

이즈음 잉잉 부부는 이미 가정부에 대한 몇 가지 대처 방안을 준비해 두었고, 마침내 가정부 문제를 해결할 때가 왔습니다. 어느 날 잉잉의 남편과 저는 의논 끝에 가정부와 대화를 통해 의문점을 제기하고 해결책을 제안하기로 했습니다. 그날 가정부가 방에 들어왔을 때 그녀는 뭔가 드러났다고 느꼈는지 긴장한 모습이었습니다. 밍신이 언니에게서 가로챈 돈과 언니가 사망했을 때 그녀가 그 자리에 없었다는 증거를 보여주자 그녀는 당황하며 불안해하는 모습으로 아무런 반박도 하지 못했고, 모든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가정부는 자신이 곧 법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언니가 사망한 이후, 저는 계속 언니의 죽음에 대한 진실을 알고 싶었고 당시의 자세한 상황을 절실하게 알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일정 기간의 관찰을 통해 그 당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점차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가정부가 그 당시의 상황을 말해주었을 때, 가정부는 오지 않았고 언니는 무기력하게 몸부림치다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에 저는 가슴이 찢어지는 듯했습니다. 가정부가 결근만 하지 않았다면 언니는 죽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게다가 잉잉에게 가정부가 이유 없이 자주 결근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생각하면 할수록 제 마음은 더욱 불편해졌고, 언니가 생전에 앉았던 의자에 앉자 오랫동안 참아왔던 눈물이 주체할 수 없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언니의 유일한 혈육인 저는 언니의 죽음에 대한 갖가지 추측으로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 눈물이 그리움인지, 후회인지, 원망인지 분간할 수 없었지만, 가정부에 대한 거부감이 제 마음을 단단히 사로잡았습니다.

가정부는 갑자기 제 앞에 무릎을 꿇고 두려움에 떨며 애원했습니다. “제발 용서해 주세요. 제가 잘못했습니다. 죄책감도 들고요, 정말 죄송합니다!” 밍신은 엄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이건 사람의 생명과 관련된 일입니다!” 가정부의 간절한 애원과 밍신의 질책하는 소리가 귓가에 맴돌았고 언니의 모습이 눈앞에 어른거렸습니다. 밍신과 가정부의 시선이 동시에 저를 향했습니다. 제가 언니의 유일한 직계가족이자 가장 연장자였기에 제 판단에 따라 가정부의 운명이 좌우될 터였습니다. 경찰에 신고하여 법의 심판을 받게 할 것인지, 아니면 용서할 것인지 말입니다. 제 마음은 분노와 원망으로 격렬하게 요동쳤고 복잡한 감정을 도저히 말로 표현할 수 없었습니다.

자신을 억누를 수 없을 때 갑자기 사부님의 법이 떠올랐습니다. “당신 개인수련 중에서 대하는 모든 사람을 용서하는 데까지 마음을 크게 먹어야 하는바 당신의 적을 용서하는 것을 포함해서다.”(오스트레일리아법회 설법)

그 순간 저는 제가 진선인(眞·善·忍)을 수련하는 대법제자라는 사실을 상기했습니다. 저는 마음을 진정시키고 원한을 털어내려 노력했습니다. 가정부의 장애를 가진 자녀와 병든 남편을 떠올리며, 떨리는 손으로 가정부를 일으켜 세우며 말했습니다. “저는 당신에게 책임을 묻지 않겠습니다. 자신을 돌보세요!” 저는 용서를 선택했습니다.

공기가 무거워졌습니다. 한참 후 갑자기 가정부가 제 손을 잡고 감격하며 말했습니다. “감사합니다! 기억하겠습니다,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 가정부의 얼굴에는 감사의 눈물이 흘러내렸고 그녀의 오랫동안 억눌려 있던 모든 압박이 풀리는 듯 했습니다. 죄책감인지, 후회인지, 감사함인지, 안도감인지 그 감정은 말로 설명할 수 없었습니다.

가정부는 마음을 열고 제게 자신의 진심을 이야기했습니다. 언니가 세상을 떠난 후 죄책감과 후회, 불안과 두려움으로 밤잠을 이루지 못했다고 합니다. 사건의 여러 결과를 생각하며 자신과 가족에게 일어날 일에 대해 걱정하고 세상을 떠난 언니에게 너무 미안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녀는 만약 자신이 정말 감옥에 가게 된다면 그녀와 그녀 가족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을 겪게 될 것이고, 또한 연로하신 형부가 혼자 어떻게 살아가실지도 걱정스러웠다고 했습니다. 그녀는 후회하면서 책임을 다하지 않은 결과와 거짓말을 한 것에 대한 교훈을 깨달았다고 말했습니다. 그녀는 제가 그토록 고통스러운 상황에서 그렇게 관대한 결정을 할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그녀는 감히 기대하지 못했던 용서와 자비로운 사랑의 힘을 저에게서 느꼈던 것입니다.

저는 그녀에게 사람의 도리를 말해주었고 지금 제 언니 집을 돌아보라고 말했습니다. 나이 많은 형부가 수년 동안 살던 집을 떠나 새로운 환경으로 이사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아내를 잃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울지 생각해 보라고 했습니다. 만약 법적 제재를 받게 된다면 본인과 가족은 어떤 어려움을 겪게 될지 다시 한번 더 생각해 보라고 했습니다. 저는 그녀에게 선에는 보답이 있고, 악에는 응보가 있다는 이치를 알려주면서 진선인의 힘을 느낄 수 있게 했습니다.

그녀는 언니를 속여 빼앗은 돈을 자발적으로 반환했으며, 형부가 잉잉의 집으로 이사할 때까지 진심으로 돌봐주었습니다. 이후에 그녀는 저를 데리고 여행을 가고 싶어 했고, 그녀 가족들은 저를 차로 집까지 바래다주려 했습니다. 제가 이를 사양하자 그녀는 정성껏 과일과 여러 음식을 사 와서 제가 먹는 모습을 지켜보았습니다. 저는 그녀를 안심시키고자 그녀가 산 과일을 그녀 앞에서 크게 한 입 베어 물며 제 관용을 보여주었습니다.

제 영향으로 잉잉과 밍신 또한 가정부에게 책임을 묻거나 보상을 요구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법적 처벌로 가정부의 가족 전체가 무너질 뻔했지만, 제 행동을 통해 진선인의 힘이 한 생명과 그 가족에게 진정한 희망을 줄 수 있고, 선량한 본성을 일깨우고 회복시킬 수 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밍신은 감격하며 말했습니다. “정말 훌륭하세요! 이모님의 너그러운 마음씨에 감동했습니다.” 그리고 그동안 제가 그들을 도와주고 이해해준 것에 대해 거듭 감사를 표했습니다. 가정부와 마찬가지로 그 역시 저를 데리고 여행을 가고 싶어 했지만 제가 거절하자 아쉬워하며 저를 집까지 바래다주었습니다.

 

원문발표: 2024년 9월 28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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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4/9/28/48120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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