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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바꾸어주신 사부님께 감사드립니다

글/ 중국 동북 대법제자

[명혜망] 저는 동북 농촌의 여성 대법제자입니다. 사부님께서 제 인생을 바꾸어주시고, 제가 수련의 길을 걷게 해 주신 것에 감사드립니다. 또한, 수련의 길에서 함께해 주고 서로 도와주신 수련생 여러분께도 감사드립니다. 덕분에 저는 수련의 길에서 외롭지 않게 전진할 수 있었습니다!

1. 법을 얻은 후 삶에 희망이 생기다

저는 두 해 동안 학교에 간간이 다닌 적 외에 학교에 다니지 않았고, 열 살 때부터 집에서 동생을 돌보고 가족의 식사를 준비하는 일을 맡았습니다. 어머니와 언니는 생산대에서 일했고 어머니는 점심시간에도 저를 데리고 나가 돼지풀을 뽑으러 가시곤 했습니다. 오후에는 집으로 돌아와 돼지 사료를 만들었습니다. 어린 나이였지만 매일 쉬지 않고 바쁘게 지냈습니다.

문화대혁명 때, 어머니가 시집올 때 가져오신 팔선과해(八仙過海, 여덟 신선이 바다를 건너다)가 그려진 육선(六扇) 거울을 봉건 미신이라는 이유로 대대에서 부숴버렸고, 집에서 키우던 양들도 사적으로 부업을 한다는 이유로 강제로 끌어갔습니다. 나중에 들으니 대대 간부들이 그 양들을 몰래 나누어가졌다고 했습니다. 이 일로 어머니는 화가 나서 정신 이상이 오고 말았습니다. 어머니는 병원에 자주 가셔야 했고 언니가 주로 어머니를 돌봐야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13살의 어린 나이에 언니 대신 성인들처럼 생산대에 나가 일을 해야 했습니다. 성장기 동안 과도한 노동을 한 탓에 제 손가락 뼈 마디는 기형적으로 자라서 지금도 펴지지 않습니다.

제가 22살 때, 친삼촌의 소개로 한 청년과 결혼하게 됐습니다. 삼촌은 그 청년이 머리가 좋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결혼하고 나서야 제가 도박꾼과 결혼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남편은 도박에는 머리가 좋았지만 도박을 시작하면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집에서 집을 짓는 동안에도 도박하느라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결국, 온돌 2개 지을 벽돌과 집 한 채 지을 처마용 타일을 혼자 자전거로 운반해야 했습니다. 두 번 왕복한 후에는 더 이상 자전거를 밀고 갈 수 없는 상태에서 마침 이웃집 차가 지나가다가 타일을 운반하는 것을 도와줬습니다.

1999년 설날, 이웃집에서 파룬따파 사부님의 설법 영상을 틀어줬는데 어린 아들이 저를 끌고 가서 보게 됐습니다. 그 영상을 보자마자 마음에 들었습니다. 저는 생각했습니다. ‘사람은 신의 관할이 있어야 한다.’ 이렇게 해서 저는 대법을 얻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학교에서 간헐적으로 배웠던 몇 글자마저도 다 잊어버렸었지만, 대법을 얻은 후 사부님께서 저에게 지혜를 열어주셨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대법책 속의 글자를 모두 알아볼 수 있게 됐습니다.

어느 날 아침, 제가 연공을 마치고 돌아오니 남편이 저에게 말했습니다. “꿈에서 펜과 공책이 집 안 문에 붙어 있는 것을 보았어요. 이것이 나도 법을 배우고 수련하라는 암시 아닐까요?” 그 후로 남편도 대법 수련에 들어왔습니다.

남편이 대법을 얻은 후 저는 2년간 좋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남편은 도박을 그만두고 생활을 돌보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함께 대법을 알리고, 함께 일하며, 삶에 희망이 생겼습니다.

법을 얻은 지 겨우 반년 정도 지났을 때인 1999년 7월 20일, 중공의 파룬궁 박해가 시작됐습니다. 지역 당국에서 대법 서적을 제출하라고 요구했지만 저는 한 권도 내주지 않았습니다. 그때 집에서 책을 읽으면서 층층의 깊은 법리를 깨달을 수 있었고, 자신의 공이 느껴졌습니다. 공이 몸 밖에서 나선형으로 쑥쑥 위로 자라나는 것이 보였습니다. 저는 마음속으로 다짐했습니다. “이 길은 내가 확실히 가겠다. 어떤 상황에서도 대법 수련을 포기하지 않겠다.”

저와 남편, 그리고 지역 수련생들은 함께 여러 방법으로 법을 실증하기 시작했습니다. 당시에는 아직 진상 자료가 없었기에 저는 수련생의 오토바이를 타고 50km 정도를 다녔습니다. 가는 길마다 전봇대에 스프레이 페인트로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라는 표어를 뿌렸고, 색종이를 사서 ‘파룬따파하오’라고 써서 직접 만든 풀로 번화가에 붙였습니다. 거리의 모든 전봇대에 그 표어를 붙였습니다. 나중에 외지에서 온 수련생들이 그 거리를 지나다가 “거리에 온통 파룬따파 음악이 울려 퍼지더라”고 말했습니다.

파출소에서는 식당 주방장에게 그 거리의 표어를 지우라고 시켰는데 남편이 우연히 그를 만나 집으로 데려왔습니다. 우리는 그에게 진상을 이야기해 주고 한 끼 식사도 대접했습니다. 그리고 대법 표어를 훼손하는 것이 자신에게 좋지 않다고 알려줬습니다. 그 말을 들은 그는 갑자기 깨달은 듯 말했습니다. “제가 장례식 밴드에서 피리를 불다가 갑자기 숨이 막히고 기절한 적이 있었는데, 그게 바로 제가 벌을 받은 거군요? 그렇다면 이제 파룬궁 표어를 지우는 일은 절대 하지 않겠습니다. 돈을 얼마를 준다고 해도 하지 않겠습니다!”

2. 감옥에서 남편 구출에 성공하다

2000년 10월, 제 남편과 다른 수련생들이 베이징에 가서 법을 실증하던 중 납치됐습니다. 이 소식을 듣자마자 저는 그들이 우리집에 와서 수색할 것이라는 것을 직감했습니다. 서둘러 집에 있던 모든 대법 서적을 안전한 곳에 숨겼습니다. 다만 한 장의 종이에 ‘真(쩐)ㆍ善(싼)ㆍ忍(런)은 좋고 나쁜 사람을 가늠하는 유일한 표준이다’(전법륜)라는 구절을 정성스럽게 적어 서랍 안에 넣어두었습니다.

예상대로 그들이 집으로 와서 수색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어떤 대법 서적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대신 그들은 제가 적어둔 그 종이를 찾아냈습니다. 그들은 그 종이를 집어 들고 큰 소리로 읽으면서 이것이 바로 진상 자료라고 주장했습니다. 저는 두려움 없이 그들과 마주했고 대법의 좋은 점들을 당당하게 설명했습니다. 제 설명을 들은 그들은 마치 제가 그들에게 수업을 해준 것 같다고 말하며 더 이상의 수색하지 않고 떠났습니다.

남편이 수감된 노동수용소에 찾아갔을 때 경찰은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당신 남편이 수련을 포기한다고 말하지 않으면 절대로 풀어줄 수 없습니다.” 그날 남편을 데려오지는 못했지만 오히려 남편이 수련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기쁨을 느꼈습니다.

농사철이 다가오자 형부와 몇몇 친척들이 저와 함께 다시 한번 남편을 찾으러 갔습니다. 노동수용소 대대장을 만나 “남편을 풀어주지 않으면 우리 집 농사는 어떻게 지으라는 말입니까?”라고 간곡히 요청했습니다. 놀랍게도 대대장은 제 친척들을 향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녀를 도와 농사를 지어주세요. 파룬궁수련자들은 모두 좋은 사람들입니다.” 사실, 일부 경찰들도 대법제자들이 좋은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들은 중공의 사악한 박해 정책을 어쩔 수 없이 따르고 있었던 것입니다.

저는 포기하지 않고 노동수용소와 고향을 오가며 끊임없이 노력했습니다. 마침내 수용소 측에서 남편의 석방에 동의했지만 지역 파출소의 서명이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저는 몇 번이나 지역 파출소를 찾아가 서명을 요청했지만 그들은 계속해서 미루기만 했습니다. 오늘은 내일로, 내일은 모레로 미루며 서명해주기를 거부했습니다.

저는 그들의 속셈을 알아챘습니다. 그들은 돈을 갈취하려는 의도였던 것입니다. 당시 제 큰언니는 저를 보고 인색하다며 불평했습니다. “요즘 같은 세상에 뇌물 없이 어떻게 일을 처리하려고 하니? 너무 고지식하게 굴지 마”라고 조언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확고했습니다. 그 뇌물은 절대로 줄 수 없다고 마음먹었습니다. 제가 뇌물을 주면 그들은 다른 대법제자들에게도 같은 방식으로 돈을 요구할 것이고, 이는 더 많은 대법제자들에게 어려움을 안겨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대신 저는 끈질기게 그들을 찾아가 진상을 이야기하며 설득했고 결국 그들로부터 서명을 받아낼 수 있었습니다.

남편을 구출하는 전 과정에서 저는 두려움이나 당혹감을 느끼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가는 곳마다 대법 진상을 알리는 기회로 삼았습니다. 놀랍게도 그 과정에서 제가 어떤 식으로 진상을 설명하든 아무도 저에게 “당신도 수련을 하고 있느냐?”라고 묻지 않았고 진상을 이야기한다고 해서 저를 문제 삼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심지어 남편이 납치될 때 압수당했던 오토바이도 무사히 돌려받을 수 있었습니다.

이 모든 과정을 겪으며 제가 깨달은 것은 이것입니다. ‘우리는 대법을 수련하는 사람들이다. 우리야말로 가장 바른 길을 걷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왜 우리가 바르지 못한 사람들을 두려워해야 하는가?’ 이러한 믿음으로 저는 언제나 평온한 마음으로 정법 수련의 길을 걸어왔습니다.

6개월이 넘는 긴 시간이 지난 후, 마침내 남편은 노동수용소에서 석방되어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남편이 돌아왔지만 우리의 시련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지역 경찰들은 계속해서 우리집을 찾아와 괴롭혔습니다. 어느 날 밤, 우리가 깊이 잠들어 있을 때 몇몇 경찰들이 담을 넘어 집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저는 놀라 깨어나 그들에게 큰 소리로 물었습니다. “무슨 일인가요? 왜 남의 집에 침입하는 건가요?” 그들의 대답은 어이없었습니다. “당신들이 베이징에 갔는지 확인하러 왔습니다.” 이것이 바로 사악한 중공 정권 아래에서 소위 ‘인민 경찰’이라는 자들의 강도 같은 행태였습니다.

이런 지속적인 괴롭힘으로 인해 남편은 극도의 공포에 시달렸습니다. 그는 수용소에서 겪은 박해의 그림자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점차 대법에서 멀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그는 다시 도박의 늪으로 빠져들고 말았습니다. 모든 재산을 도박으로 탕진한 후 그는 세상을 떠났습니다.

파룬따파는 제 남편을 좋은 사람으로 변화시켰지만 중공의 사악한 박해는 그를 다시 나쁜 길로 밀어넣었고 결국 죽음에 이르게 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중공이 얼마나 사악한지를 보여주는 증거가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하늘이 중공을 멸망시키려 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3. 장사하면서 동시에 진상을 알리고 사람을 구하다

2009년, 남편의 도박 빚을 모두 갚고 집안의 모든 것을 잃은 상황에서, 저는 홀로 농촌을 떠나 현재 살고 있는 작은 도시로 이주했습니다. 작은 방을 임대하고 작은 수레를 구입해 소규모 장사를 시작해 생계를 이어갔습니다.

당시 제 상황을 생각해보면 참으로 힘든 시기였습니다. 50세에 가까운 나이에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했고, 장사를 시작할 자금도 충분치 않았으며, 남편의 도움도 없이 혼자서 대학에 다니는 아들까지 부양해야 했습니다. 그 어려움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진정한 수련자에게는 사부님의 보살핌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놀랍게도 그 당시 제가 파는 물건은 무엇이든 잘 팔렸습니다. 고향에서 콩과 해바라기씨를 사와서 이곳에서 팔았는데, 주변의 다른 노점상들은 한가하게 있는 반면 저는 쉴 새 없이 바빴습니다. 주변 사람들은 제가 무엇을 파는지 궁금해하며 구경하러 왔습니다.

이렇게 6년이 흘렀고, 그 동안 저는 대학에 다니는 아들을 무사히 졸업시켰고, 작은 아파트도 구입할 수 있었으며, 제 건강 상태도 점점 좋아졌습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사부님의 자비로운 보살핌이 없었다면 이런 기적 같은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곳으로 이사온 후, 저는 빠르게 이 지역의 다른 수련생들과 연락을 취했고 전체 수련 환경에 융화되어 지역의 법 실증과 중생을 구하는 활동에 동참하게 되었습니다. 진상 자료를 배포할 때는 주로 고층 아파트를 선택했고, 낮은 건물은 나이 드신 수련생들을 위해 남겨두었습니다.

한번은 엘리베이터가 있는 고층 아파트에서 자료를 배포하러 갔는데 옥상까지 올라갔지만 열린 출입문이 거의 없었습니다. 저는 마음속으로 사부님께 출입문을 열어주시기를 간절히 청했습니다. 놀랍게도 옥상에서 내려오는 동안 모든 층의 계단 출입문이 정확히 열려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저는 한 집도 빠뜨리지 않고 자료를 배포할 수 있었고 눈물을 글썽이며 사부님께 감사드렸습니다.

또 다른 날 밤, 자료를 배포하고 돌아오는 길에 누군가 저를 미행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제가 살고 있는 임대 주택의 골목으로 들어설 때 저를 쫓아오던 사람이 절 따라잡지 못했습니다. 그때 갑자기 임대 주택의 문이 저절로 열렸습니다. 만약 제가 열쇠를 꺼내 문을 열고 있었다면 분명 그 미행하던 사람에게 들키고 말았을 것입니다. 이렇게 사부님께서는 또 한 번 저를 보호해주셨습니다.

장사를 하면서도 저는 적절한 기회를 놓치지 않고 사람들에게 진상을 알렸습니다. 고향에 사는 먼 친척 중 한 명이 유방암과 자궁암 등 여러 가지 암에 걸려 고통받고 있었습니다. 제가 그녀를 만났을 때 그녀는 뼈만 남은 모습이었습니다. 저는 그녀에게 진상을 설명하고 제 경험을 예로 들어 이야기했습니다. 그녀는 제 변화를 보고 진심으로 진상을 받아들였고, 매일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 쩐싼런하오(真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를 마음속으로 염했습니다. 한 달 후 그녀를 다시 만났을 때 그녀의 암이 호전되었고 체중도 늘어 건강해보였으며, 얼굴에는 건강한 혈색이 돌아왔습니다.

제가 살고 있는 아파트 단지의 60대 남성 한 분은 온몸에 병이 있었고, 거액을 치료비로 썼지만 효과가 없었다고 합니다. 저는 그에게 진상을 설명했고 그는 진상 호신부(護身符)를 받아들였습니다. 그는 진심으로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를 염했고 곧 건강 상태가 좋아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시장에서 저를 찾아와 군 복무 시절 가입했던 공산당 조직에서 탈퇴했다고 말했습니다. 이제 그는 건강을 되찾아 얼굴에 홍조가 돌고 병의 고통에서 벗어났습니다.

90세에 가까운 한 할머니는 제가 전한 진상을 듣고 난 후 약을 전혀 먹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 후 할머니는 가족들에게도 진상을 전하기 시작했고 지금도 여전히 혼자서 활기차게 시장을 다니실 정도로 건강하십니다.

70대의 은퇴한 교사 부부가 제 가게에 물건을 사러 왔을 때 저는 그들에게 진상을 설명했습니다. 남편은 “공산당이 나에게 연금을 주고 있어요”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그에게 ‘9평 공산당(공산당에 대한 9가지 평론)’과 ‘공산주의의 최종 목적’이라는 두 권의 책을 주며 집에 가서 읽어보라고 권했습니다. 그가 다시 제 가게에 왔을 때 이렇게 말했습니다. “책을 다 읽어봤어요. 공산당에 좋은 점이 하나도 없더군요.” 그는 탈당에 동의했고 그 책을 아내에게도 보여주었습니다. 아내도 책을 읽은 후 마음이 바뀌었고, 지금은 부부 모두 얼굴에 홍조가 돌며 건강이 나날이 좋아지고 있습니다.

중생들이 진상을 알게 되면 사부님께서 그들에게 이렇게 큰 복을 주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파룬따파는 진정으로 사람을 구하는 불법(佛法)입니다. 아직 진상을 모르는 분들은 빨리 진상을 알아보세요. 특히 지금과 같이 전염병이 만연한 시기에 진상을 아는 것이야말로 여러분이 구원받을 유일한 희망입니다!

 

원문발표: 2004년 9월 26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4/9/26/48262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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