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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션윈과 대법을 비방하는 보도를 보지 않는가

글/ 계정(启正, 유럽)

[명혜망] 며칠 전, 한 서양인 수련생이 내게 물었다. “파룬따파(파룬궁)와 션윈에 대한 편파적인 인터넷 보도를 보셨습니까?” 나는 보지 않았지만 수련생들과 간단히 이야기한 적은 있다고 했다. 그녀가 “왜 보지 않으셨나요?”라고 묻자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1999년 ‘7·20’ 기간에 중국공산당(중공) 매체가 파룬따파와 사부님을 비방 공격한 것을 본 적이 있어서 사악이 어떻게 거짓 선전을 하는지 그 수법을 잘 알고 있습니다. 지금 중공이 일부 사람들을 조종해 다시 한번 파룬따파를 공격하는 것은 낡은 병(공격 방식)에 새 술(새로운 공격 내용)을 담은 것과 같아서 거짓말을 아무리 많이 해도 진실이 될 수 없죠. 션윈에 대해 말하자면, 제 딸이 페이톈(飛天) 대학에 입학해 공부한 후 션윈 배우가 되기까지 10여 년의 경험이 있는데, 그녀의 성장 경험은 그 악의적이고 편파적인 보도와는 정반대입니다.”

나는 어릴 때부터 공부와 일을 하면서 줄곧 과학에 종사해 왔다. 과학적 배경은 파룬따파에 대한 나의 인정에 영향을 주지 않았고 오히려 내 신념을 더욱 굳건하게 해주었다. 파룬따파는 더 높은 과학이다.

1. 사부님의 지혜에 감탄하다

1998년, 나는 유럽에서 개최된 파룬따파 수련심득 교류회에 참가했고 사부님의 설법을 직접 들을 수 있는 행운을 얻었다. 사부님께서 “속인도 과학은 종교임을 알고 있는 사람이 있다.”(유럽법회 설법)라고 말씀하셨을 때 나는 무한한 충격을 받았다.

당시 나는 박사 학위를 공부하고 있었고 내 지도 교수는 세계 최고의 과학자였다. 나는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의 강연을 들은 적도 있고, 우주 블랙홀 연구로 유명한 호킹 교수와도 일면식이 있었다. 그들은 모두 내 마음속에서 매우 대단한 과학자들이었지만 그들도 과학과 우주에 대해 여전히 풀리지 않는 의문을 갖고 있었다. 나는 사부님처럼 과학에 대해 예상치 못한 각도에서 개괄한 사람을 들어본 적이 없었다.

나중에 이 말씀을 곰곰이 생각해보니 정말 이치에 맞았다. 과학 체계의 수립은 어떤 가설을 전제로 물질세계를 묘사하는 일련의 이론이다. 반면 종교는 정신세계를 묘사하는 또 다른 이론 체계다. 만약 이 세상이 물질과 정신 두 가지 측면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마치 사람에게 물질적인 신체와 정신적인 사상이 있는 것처럼 과학과 종교는 단지 세계를 묘사하는 두 가지 다른 측면일 뿐이다. 뉴턴과 아인슈타인 같은 과학 거장들도 결국에는 종교를 찾아 과학의 난제를 해결하려 했다.

나는 사부님께서 과학을 바라보시는 그런 시각에 감탄했다. 이는 이미 과학 밖에 서서 전체를 내려다보고 계심을 의미한다. 내 한정된 지식으로 볼 때 세상의 거의 모든 과학자들은 아무리 명성이 있어도 단지 과학의 성채 안에서 탐구할 뿐이며, 아무도 뛰어나와 성채의 전모를 볼 수 없다. 마치 고시(古詩)에서 말한 것과 같다. “여산(廬山)의 진면목을 알지 못하는 이유는, 그 산중에 있기 때문이로다.”

젊었을 때 나는 자주 ‘미스터리’, ‘UFO 탐색’ 등의 잡지를 읽었고, 세상의 설명할 수 없는 일들에 대해 호기심을 가졌다. 사부님께서 설법하실 때 피라미드, 공룡, 외계인 등에 대해 간혹 설명하시는데, 그것은 사람들에게 갑자기 깨우침을 주고 의혹을 풀어주시는 것 같았다. 나는 과학적 각도에서 볼 때 매우 이치에 맞다고 생각했다.

사부님의 지혜가 어디서 왔는지 상상하기 어려웠다. 사부님은 마치 세상 밖의 고인(高人)처럼 천지만물에 대해 모르는 것이 없고 또 통달하지 않은 것이 없으신 것 같았다.

물론 사부님께서는 각종 미시적 입자의 상태에 대해서도 말씀하셨는데, 내 과학적 배경과 상식에 근거해 볼 때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것은 바로 지금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서로 다른 차원의 일이지만, 사부님께서는 복잡하고 심오한 것을 알기 쉽게 말씀하셔서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나는 파룬따파 수련 대열에 학력이 높은 사람들이 적지 않고, 심지어 과학 분야에서 매우 큰 업적을 이룬 지식인들도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들이 파룬따파를 믿는 이유는 그들이 알고 있기 때문이다. 과학적 지식은 우리가 현상에 안주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선인(先人)들의 울타리를 돌파해 이 세계와 우주를 이해하게 하는 것이다. 마치 당시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이 뉴턴의 중력장 이론을 돌파해 인류가 물질세계에 대한 인식을 한 걸음 더 나아가게 한 것처럼 말이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과학자가 갖추어야 할 미지의 영역을 탐구하는 정신과 태도다.

그리고 현재 과학이 직면한 가장 큰 난관은 3차원의 이론으로 고차원의 일을 이해하고 해석하려 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헛된 노력일 뿐이다. 수련만이 진정으로 공간 차원을 돌파할 수 있는 생명의 실천이다.

2. 천년의 종교와 수련의 본질을 밝히다

사람은 어디서 왔는가? 어디로 돌아가는가? 수련과 종교의 본질은 무엇인가? 이는 수련계와 종교가 수천 년간 답하려고 노력해온 질문이다. 사부님께서 이 방면에 대해 하신 설법은 나를 놀라게 했다. 사부님께서는 직접적으로 수련의 본질과 종교의 의미를 지적하셨다. 이는 과거의 어떤 수련 법문에서도 절대 외부에 전하지 않았던 비밀이다.

젊었을 때 나는 여러 종교와 수련 방법에 대해 모두 약간의 이해가 있었지만, 여전히 수련의 본질에 대해 모호했고 어떻게 수련해야 하는지도 몰랐다. 그러나 사부님의 《전법륜(轉法輪)》 한 권은 수련과 과거 종교의 본질을 명확하게 설명해주셨고, 이로 인해 내가 전에 읽었던 다소 난해했던 《도덕경》, 《불경》, 《성경》 등이 갑자기 명백해졌다. 내가 이해하기로는 수련이란 바로 생명의 본원으로 돌아가는 것이며, 마음을 닦고 업력을 없애며 공덕을 쌓는 것이다. 모든 사람의 마음을 닦아 없애 수련 원만의 목적에 도달하는 것이다.

3. 증거

수련 자체는 체육 단련이 아니라 생명의 의미를 탐구하는 실천이다. 따라서 그 과정에서 반드시 초범적인 체험이 있을 것이다.

나는 가부좌 중 깊이 입정한 적이 있는데, 시간과 공간이 마치 응고된 것 같았고 사람과 자연이 하나가 됐다. 나는 원신(元神)이 육체를 떠나 별과 땅을 내려다본 적이 있는데, 알고 보니 사람의 육체는 사람의 진정한 자아가 아니었다. 나는 날개 달린 두 명의 아름다운 작은 천사가 나를 향해 기뻐하며 환호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나는 또 신선 진인(眞人)을 본 적이 있는데, 그 신선께서는 손에 든 불진(拂塵)으로 먼 곳의 별 하나를 순식간에 내 눈앞으로 옮기셨다. 나는 또 허공에서 자유롭게 날아다닌 적이 있다. 나는 알게 됐다. 알고 보니 우리의 진체(眞體)는 모두 자유롭게 날 수 있는데, 단지 정(情)의 저층 입자가 있어 우리의 신체가 더는 가볍지 않게 된 것이다. 나는 생각이 우리가 세계를 깨닫는 도구라고 여겼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생각이야말로 우리가 고층 공간에 들어가는 것을 가로막는 장애물이었다.

나는 자주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이토록 소중한 우주대법을 전해주셨는데, 여기에는 인류가 전혀 알지 못했던 얼마나 많은 천기(天機)와 오묘함이 포함되어 있는지 생각한다. 속인들이 그것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 것은 그들의 깨닫지 못함과 고집 때문이다. 법을 얻은 사람이 그것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다면, 그것은 생명의 서약을 경시하고 모독하는 것이다. 한때 수련했지만 지금 나와서 파룬따파를 비방하는 사람들은 법을 배웠지만 법을 얻지 못한 사람들이며 진수(眞修)제자가 아니다. 비방 선전에 현혹되어 의심이 생기거나 동요하는 수련생들은 마땅히 스스로에게 물어봐야 한다. 무엇이 당신을 처음 수련의 길로 걷게 했는가? 수련에 대해 이성적인 인식으로 승화했는가? 오직 이러한 문제들을 근본적으로 생각해 봐야만 현재의 복잡하고 혼란스러운 환경에 직면해 진정으로 영광과 치욕에 흔들리지 않고 금강불괴(金剛不壞)할 수 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많은 사람이 고층차로 수련하려 하는데, 이것을 당신 앞에 놓아주었건만 당신은 아마 여전히 반응하지 못할 수도 있으며, 당신이 도처에서 사부를 모시고 돈을 아무리 써도 당신은 찾지 못한다. 오늘 당신에게 문 앞까지 가져다주었지만, 당신은 아직 인식마저 하지 못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깨닫는지, 깨닫지 못하는지 하는 문제며, 또한 제도할 수 있는지, 제도할 수 없는지 하는 문제다.”(전법륜)

사부님께서는 1999년 파룬따파가 박해받은 후 첫 번째 경문에서 “생사란 큰소리쳐서 될 일이 아니니 될 수 있는지 없는지는 진상을 보아야 하리라”(정진요지2-심자명)라고 가르치셨다.

행할 수 있는가 없는가? 이는 현재 수련인이 직면해야 할 엄숙한 시험이며, 또한 모든 대법제자가 반드시 행동으로 대답해야 할 생사와 관련된 큰 문제다.

개인적인 얕은 인식이오니 부적절한 부분이 있다면 수련생 여러분께서 자비롭게 지적해주시길 바랍니다.

 

원문발표: 2024년 9월 20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4/9/20/48307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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