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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리를 바르게 깨닫고 자녀에 대한 정을 버리다

글/ 광둥성 대법제자

[명혜망] 최근 딸을 돌보면서 심성을 닦는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다가 법리를 깨달은 후에야 자녀에 대한 정을 내려놓을 수 있었습니다. 이번 경험과 얕은 체득을 사부님께 보고드리고 수련생 여러분과 교류하고자 합니다. 부적절한 점이 있다면 자비롭게 지적해주시기 바랍니다.

딸은 줄곧 제가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를 수련하는 것을 지지했고 평소에도 늘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真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를 성심껏 암송했습니다. 전에는 모녀 관계가 비교적 좋았습니다.

딸이 고령의 산모였기에 가족들은 모두 그녀의 건강을 매우 걱정했습니다. 딸이 하루빨리 몸을 회복하고 젖이 충분히 나오게 하려고 출산 전에 저는 산후조리 음식 만드는 법을 배웠고 몸보신용 고가의 식재료를 많이 샀습니다. 퇴직 수속을 마치고 나서 저는 타지에 있는 딸을 돌보러 갔습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산후조리 기간 딸은 마치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았습니다. 제가 무엇을 하든 딸의 눈에는 모두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저는 월급의 절반을 딸의 보양에 썼고 매일 세 끼 식사를 준비하며 이것저것 했지만, 저는 하는 일마다 딸의 눈치를 봐야 했고 딸은 저에게 깊은 원한이라도 있는 듯했습니다! 정성껏 영양 있는 국을 끓여주었지만 마치 독약을 먹으라는 것처럼 대부분 한 모금도 마시지 않았습니다. 제 수고를 감사하기는커녕 제가 본능적으로 “마시지 않을 거면 끓이지 말라고 하지 그랬어”라고 말하자 오히려 잔소리를 한다고 했습니다. 제가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물어볼 때면 딸은 저를 제대로 쳐다보지도 않았고, 대답할 때도 되려 저를 힐난하듯 물었습니다. 제가 잘 알아듣지 못해 다시 물으면 짜증을 내며 화를 냈습니다. 사돈과 사위가 함께 있을 때면 저는 매우 난처했습니다! 때로는 사소한 일로 마치 어린아이를 꾸짖듯 저를 심하게 나무랐습니다! 제가 조금이라도 해명하려 들면 매서운 눈빛으로 노려보았습니다. 좋은 말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고, 제가 어떻게 해도 딸의 마음에 들지 않는 것 같았습니다.

기억나는 한 번은 고기를 조금 적게 요리했는데 딸은 저에게 말하지 않고 화를 냈습니다. 제가 저녁 식사로 뭘 먹겠냐고 물었더니 딸은 화를 내며 “안 먹을 거예요, 만들지 마세요!”라고 말했습니다. 이런 일이 많았습니다. 아기가 울 때마다 안아야 할지 말아야 할지 몰라 문밖에 서서 딸의 지시를 기다려야 했습니다. 한번은 심지어 “앞으로 어머니 말 듣지 않을 거예요!”라고 분명히 말해 저는 당시 매우 마음이 아팠습니다!

처음에는 첫 출산의 어려움을 이해하고 휴식이 부족해 기분이 좋지 않은 것일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마도 다른 사람들이 말하는 산후 우울증일 수도 있다고 여겨 딸의 모든 행동을 최대한 포용하고 이해하려 했습니다. 동시에 저 자신이 수련인임을 계속 상기시키며 딸과 따지지 말고 참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어느새 제 마음이 속인 상태로 변해 원망하기 시작했습니다. 딸이 어른을 공경하지 않고 부모의 헌신적인 노력에 감사하지 않는다고 원망했습니다. 매일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바쁘게 뛰어다녔지만 좋은 말 한마디 듣지 못했습니다. 남을 배려할 줄 모르고 어른의 육아 경험을 듣지 않는다고 원망했습니다. 딸의 가족을 돌보느라 남편과 고향에 계신 노부모님의 생활을 돌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그들을 돌보느라 많은 시간을 뺏겨 세 가지 일을 정상적으로 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어쨌든 매일 매우 울적하고 불행했습니다! 몸은 물론 마음이 더 피곤했습니다! 늘 핑계를 대고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습니다.

남편과 다른 수련생들에게 하소연하며 딸의 잘못을 열거할 때마다 그들은 모두 법리로 저와 교류하며 안으로 찾아야 하고 속인의 이치로 문제를 보지 말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딸의 집으로 돌아가면 이런 부정적인 감정이 다시 저를 압박해 숨 막히는 듯한 억압감이 들었습니다! 자주 몰래 눈물을 흘렸습니다.

한번은 제가 주방에서 요리하고 있을 때 아기가 대변을 봤는데 딸이 방에서 저를 불렀지만 듣지 못했고, 제 휴대폰으로 전화했지만 충전 중이라 역시 듣지 못해 딸은 매우 화를 냈습니다. 아기를 놀라게 할까 봐 저는 낮은 목소리로 설명하고 사과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며칠 후 딸과 함께 아기를 데리고 단지에서 햇볕을 쬐다가 사소한 일로 딸이 또 큰 소리로 꾸짖으며 며칠 전의 그 일을 다시 꺼내 저를 비난했습니다. 저는 정말 참을 수 없어 심성을 지키지 못하고 딸과 맞섰습니다. “네가 부르고 전화해도 내가 듣지 못했는데 왜 일어나서 날 찾지 않았니? 너는 입만 있는 게 아니라 발도 있잖아! 나도 매일 힘들게 일하고 있어! 이렇게 계속하다가는 바보가 될 것 같아. 어쨌든 뭘 해도 네 맘에 들지 않으니 집에 돌아가는 수밖에 없겠어!” 말을 마치고 화가 나서 짐을 싸서 집으로 돌아가려고 했는데, 다행히 사돈이 말려 떠나지는 않았습니다.

그날 밤 법공부를 할 때도 집중할 수 없었고, 딸이 했던 자극적인 말들이 영화처럼 되풀이되어 눈물이 멈추지 않았습니다! 사부님께 도움을 청했습니다. 갑자기 머릿속에 “연극에 너무 빠졌다”는 글자가 떠올랐습니다.

그렇습니다! 제가 딸을 너무 딸로만 여겼던 것입니다! 매일 정신없이 바빴던 것은 그녀가 잘 먹고 잘 자고 빨리 건강을 회복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지만, 사실 모두 사사로운 집착을 갖고 그녀를 돕고 있었던 것입니다. 노력했으니 딸의 인정과 감사를 받고 싶어 했던 것입니다!

제가 왜 화를 냈을까요? 화를 내면 기(氣)의 층차에 있는 것 아닌가요? 기의 층차에 있으면 저는 속인과 다름없지 않나요? 사부님의 깨우침으로 저는 놀라 깨달았고, 안으로 찾으려 노력하며 법공부를 더 많이 하기 시작했습니다.

깊이 있는 법공부를 통해 저는 관념을 바꾸었습니다. 딸 역시 이 법을 위해 온 생명이며 제 심성을 높이도록 돕기 위해 온 것입니다. 딸의 한마디 한마디 모진 말들은 모두 제게 수련할 기회를 만들어 준 것이고, 그 속에는 제가 버려야 할 집착과 내려놓아야 할 사람의 마음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남의 말을 듣지 않으려는 마음, 이런저런 두려움, 불공평하게 생각하는 마음, 질투심, 다투려는 마음, 보답을 바라는 마음, 원망하는 마음, 고생하기 싫어하는 마음, 이익을 추구하는 마음, 명예를 구하는 마음, 체면을 차리는 마음 등등, 그리고 입을 닦지 않는 것도 있습니다. 저는 그녀에게 감사해야 합니다. 사람의 이치와 신의 이치는 반대이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저를 높이고 업력을 전환시키도록 돕고 있습니다. (그녀는 마치 거울과 같아서) 제 부족함을 찾고 경지를 높이도록 돕고 있는데, 제가 그녀에게 감사해하지 않을 이유가 있을까요? 그렇다면 원망하는 마음이 설 자리가 있을까요? 제가 뒤에서 그녀를 비난하고 입을 닦지 않은 것, 이것이 바로 제 잘못 아닌가요? 이것이 바로 제 몸에 있는 공산당 문화의 표현 아닌가요? 관념을 바꾸자 제 마음은 홀가분해졌습니다.

제 마음이 순식간에 환해졌고 그 억압되고 원망하는 감정도 따라서 사라졌습니다. 이제 저는 자신을 바로잡고 관념을 바꾸어 원망에서 감사로 전환하여, 딸이 이 역할을 맡아 제 수련 제고를 성취하게 해준 것에 감사하고자 합니다.

계속된 법공부를 통해 저는 또 깨달았습니다. 이는 제가 법리와 어긋난 것 아닌가요? 제 공간장이 이미 원망, 불만, 명예를 추구하는 마음, 자존심, 그리고 다투려는 마음, 이익을 추구하는 마음으로 가득 차 있으니 그녀에게도 반영되어 그녀도 괴로웠기에 그런 상황이 벌어진 것입니다. 저는 수련인임을 경계하며 마주치는 모든 것이 우연이 아니며, 수련 중 만나는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모두 좋은 일이고, 모두 심성을 높이고 관념을 바꾸는 과정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깨달았습니다. 인간 세상의 이치는 모두 반대의 이치입니다. 이 반대되는 이치 속에서 바르게 깨달아야만 진정한 깨달음에 이를 수 있습니다. 이는 사부님께서 제 수련을 돕기 위해 안배하신 것이며, 제 심성을 높일 수 있는 아주 좋은 기회입니다. 반드시 이러한 좋지 않은 마음들을 바로잡고, 자신은 자비롭고 평화로운 마음가짐을 유지하도록 해야 합니다. 점차 제가 딸을 자비롭고 선하게 대하자 딸도 변했습니다.

동시에 저는 명혜망에 게재된 수련생의 교류문에서 본 몇 마디 말을 떠올렸습니다. “마음의 모든 충격을 소중히 여기고, 모든 갈등의 도래를 소중히 여기세요. 그것들은 모두 자신을 순수하게 하고 제고할 수 있는 최고의 기회입니다. 모든 고통, 모든 괴로움을 소중히 여기세요. 이는 모두 값진 보물이며 최고의 영광입니다.”

대법으로 자신을 깨끗이 씻어냅니다. 자신을 돌아보고 대법으로 가늠해 보니, 제 원망의 표현이 바로 ‘악’의 표현 아닌가요? 이는 저에게 ‘악’을 수련해 없애라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한편으로는 법을 외우고 한편으로는 자신을 찾아보았습니다. 마음이 괴로울 때마다 수련생의 그 구절을 외웠고 원망과 미움이 없어지고 자비심이 생길 때까지 계속 외웠습니다. 이렇게 하니 그 고통이 점점 줄어들었고 서서히 고통에서 벗어나는 것을 느꼈습니다.

어느 날 문득 깨달았습니다. 제가 느끼는 그 괴롭고 아픈 감정이 바로 정(情)이라는 것을요. 제 고통이 얼마나 깊으면 그 정이 그만큼 무거운 것입니다. 만약 정이 없다면 어찌 그렇게 괴로울 수 있겠습니까? 다른 사람의 일을 볼 때는 왜 그렇게 괴롭지 않을까요? 이것이 바로 딸에 대한 정의 표현 아닐까요?!

저는 깨달았습니다. 인간 세상의 각종 인연은 모두 인과관계에 의해 생겨난 것이며 모두 의지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저와 어떤 관계인 사람이든, 부모, 형제, 부부, 자녀를 막론하고 저는 그들에 대한 정을 내려놓고 그들을 중생으로 여기며 자비로운 마음으로 대해야 합니다. 정은 삼계 내의 것이며, 정이 있으면 추구하는 마음이 생기고 이기심이 생깁니다. 오직 정을 내려놓아야만 자비가 생길 수 있고 진정으로 다른 사람을 위할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수련해 오면서 저는 더욱 깊이 체득했습니다. 대법제자로서 저의 모든 것은 사부님께서 안배하신 것이며, 사부님께서는 제가 자신의 집착을 보고 사람의 마음을 내려놓아 자신을 제고하도록 하셨습니다. 제가 법 속에서 승화함에 따라 딸의 태도도 변했고 제 수고를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사부님께서 저에게 이 모든 것을 주신 것에 감사드립니다!

저는 이 경험을 적어 수련생 여러분께 참고가 되기를 바랍니다. 어떻게 해야 자녀에 대한 정을 내려놓고 가정 관계를 잘 처리할 수 있을까요? 오직 법공부를 많이 하고 안으로 찾으며 일이 생기면 냉정히 대해야 합니다. 그러면 사부님께서 우리를 앞으로 밀어주시어 우리가 제고할 수 있습니다.

부적절한 점이 있다면 수련생 여러분께서 자비롭게 지적해주시기 바랍니다.

 

​원문발표: 2024년 9월 16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4/9/16/47897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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