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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금 처리 시 불법 판결문을 제출해야 하는지에 대한 교류

글/ 중국 대법제자

[명혜망] 많은 수련생이 불법 판결을 받아 출소 후 연금을 박탈당하는 문제에 직면해 있다. 개개인의 상황이 다르지만 어떤 이는 납부 연한을 인정받지 못하고, 어떤 이는 복역 기간의 연금을 박탈당하고, 어떤 이는 연금 지급이 중단되는 등 상황이다. 만약 박해를 인정한다면 불법 판결문을 제출하고 새로 신청해야 하며 일부를 공제한 후 퇴직금을 받게 된다. 물론 정념정행(正念正行)으로 진상을 알려 연금을 되찾은 수련생들도 있다.

이 글에서는 사회보장부에 불법 판결문을 제출하는 문제부터 이야기하겠다. 연금을 압류하는 것은 일종 경제적 박해로 형사 박해와 다를 바 없으며 장쩌민 악당 집단이 만들어낸 ‘명예를 훼손하고, 경제적으로 파탄시키고, 육체적으로 말살한다’는 전략의 일부다. 형사 박해에 대해서는 모두가 박해를 반대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고 구세력의 배치를 인정하지 않는다. 그런데 왜 수법을 바꿔 경제적 박해를 가하면 많은 수련생이 받아들이고, 심지어 인정하거나 어쩔 수 없다고 여기는 걸까?

형사 박해 중에 수련을 포기하겠다는 보증서에 서명하면 풀려날 수 있어도 많은 수련생이 움직이지 않는다. 그런데 판결문을 제출하면 퇴직금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심지어 일부를 공제해도 받아들일 수 있다니? 명백한 강압이지만 사람들에게 착각을 주는 이런 은밀한 박해가 얼마나 많은 수련인을 해쳤을까?

우선 판결문을 제출하면 자신이 죄인이라는 신분을 인정하는 것이다. 이는 우리를 박해하는 증거인 불법 판결문을 들고 가서 스스로 죄가 있다고 증명하는 것이고, 또 진상을 모르는 사회보장 직원들도 해치게 된다. 그들이 불법 판결문을 보고 대법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겠는가? 우리는 그들을 구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들을 밀어 떨어뜨린 것이다. 사람을 망치고 구하지 않는 것, 이것이야말로 대법제자에게는 범죄다! 모두가 불법 판결문에 얼마나 사악한 내용이 쓰여 있는지 알고 있다. 대법을 사이비교로 묘사하고 대법제자를 사이비교 분자, 범죄자라고 말한다. 우리가 어떻게 이를 인정할 수 있겠는가? 이렇게 오래 수련했는데 이 정도도 분별하지 못하는가?

핵심 문제는 이익심이다. 연금은 가장 큰 이익이며 그것도 평생 매달 수천 위안씩 받는 것이다. 이는 평범한 이익이 아니라 한 사람의 생존권을 보장하는 것으로, 연금을 포기하는 것은 생사를 내려놓는 것과 다름없다. 이것이 간단한 문제일 리가 있겠는가? 하지만 우리에게는 사부님이 계시다는 걸 잊지 말아야 한다. 불법 판결문을 제출하지 않는다고 해서 반드시 연금을 받지 못하는 것도 아니다. 이런 때야말로 우리가 사부님을 믿고 법을 믿는 정도를 시험하는 것이다. 설령 연금을 받지 못한다 해도 굶어 죽지는 않을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신다. 수련인인 이상 매번의 시험이 대법제자가 합격했는지를 검증하는 관건일 수 있다. 20여 년의 풍파를 겪어온 수련자로서 최후의 순간에 반드시 잘 걸어가고 안정적으로 걸어가야 한다. 결정적인 순간에 실패해선 안 된다!

나 역시 한때 불법 판결문을 제출하라는 요구를 받았다. 당시에는 반응을 못했지만 나중에 갑자기 깨달았다. ‘이는 절대 해서는 안 되는 일이며, 그렇게 하면 사람을 해치지 않겠는가? 나는 대법제자에 대한 이런 경제적 박해를 절대 인정하지 않는다. 본래 연금을 압류하는 것 자체가 불법인데 내가 어떻게 부추길 수 있겠는가? 그들이 내 납부 연한을 공제하고 일부를 추가 납부하면 퇴직금을 받을 수 있다고 하지만, 나는 추가 납부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박해를 인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퇴직금을 받지 못한다고 해도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개인의 득실은 이미 중요하지 않다. 나는 각종 형식으로 박해를 반대할 것이며, 그 과정이 바로 사람을 구하는 것이다. 우리가 세상에 온 유일한 목적은 사람을 구하는 것이며, 인간 세상은 단지 우리에게 수련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할 뿐이다.’

물론 생활 문제에 대해서도 사부님께서 아주 좋은 안배를 해주셨다. 넉넉하지는 않지만 의식주에는 걱정이 없어 한마음 한뜻으로 법을 실증하기에 충분하다! 본래 우리는 인간 세상에서 즐기기 위해 온 것이 아니라 수련을 보장하기 위해 생존하는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세간의 모든 것을 버림은 재가제자로 말하면 집착을 점차적으로 버리는 것”이라고 명시하셨다.(정진요지-출가제자의 원칙)

사부님을 믿고 법을 믿는 것은 정말 구호가 아니다. 장기간의 수련으로 다져진 견고한 기초이며, 관건적인 순간에 늘 대법을 첫 자리에 두고 중생을 첫 자리에 둘 수 있다. 자신의 득실이 없이 우리는 ” 무사무아(無私無我), 선타후아(先他後我)의 정각(正覺)으로 수련 성취해야 한다.”(정진요지-불성무루)

현 단계의 얕은 인식을 말씀드렸습니다. 법에 부합하지 않는 부분이 있다면 수련생 여러분의 자비로운 지적을 부탁드립니다.

허스(合十)

 

원문발표: 2024년 9월 4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4/9/4/48151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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