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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중히 여기다

글/ 일본 대법제자

[명혜망] 수련생 L이 직장 때문에 다른 도시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 짐이 많아서 나와 다른 수련생 D가 차로 그녀를 함께 데려다주기로 했다.

L과 나는 장거리 운전 경험이 없었고 D는 상대적으로 경험이 풍부했다. 여정이 길고 대부분 고속도로라 길을 잃지 않기 위해 우리는 L과 D가 앞서가고 내가 그들 뒤를 바짝 따라가기로 했다. 우리는 모두 휴대폰 내비게이션을 켜고 갔다.

고속도로에서 나는 앞차와 거리를 잘 유지하려 했다. 하지만 합류 구간에서 종종 다른 차들이 우리 사이에 ‘끼어들었다’. 처음에는 수련생의 차를 놓치거나 길을 잃을까 봐 걱정됐다. ‘이 차가 빨리 차선을 바꿔 주면 좋겠다’, ‘언제쯤 저 차가 빠져나갈까?’ 때로는 적절한 시기를 기다려 추월하거나 합류 구간에서 수련생 차에 바짝 붙어 ‘끼어들기’를 막는 등 ‘적극적인’ 조치를 취하기도 했다. 이런 행동들이 위험하긴 했지만 일시적으로나마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다음 구간에서도 여전히 ‘끼어들기’를 당하는 일이 반복되는 것을 보고, 이것이 내가 임의로 통제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님을 깨달았다. 나는 ‘끼어들기’에 지나치게 집착하고 있었던 것이다. 내 이익이 손해 볼까 봐, 내 계획이 영향받을까 봐 걱정돼 끼어드는 차들에 대해 부정적인 감정을 갖고 그들을 장애물로 여겼다. 나는 ‘선(善)’을 실천하지 못했다. 추월 등 조치를 적극적으로 취한 것은 자신의 이익을 지키기 위한 행동이었다. 이는 일시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이런 조급하고 경솔한 행동은 ‘인(忍)’에 부합하지 않는 것 같았다.

수련은 참 신기하다. 겉보기에는 일상의 아주 작은 일이지만, 내가 어떤 문제가 있음을 깨달으면 작은 것에서 큰 것을 볼 수 있고, 수련의 기회를 얻을 수 있다. 나는 내 마음가짐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끼어들기’ 때문에 생긴 모든 부정적인 생각들은 ‘사(私)’를 중심으로 생겨난 것이었다. 자신의 입장에서만 문제를 바라보고, 자신의 감정만 중요하게 여기며, 자신이 상처받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뿐이었다. 수련인으로서 나는 사심으로 인한 이런 좋지 않은 생각들을 버리고 긍정적인 마음가짐을 유지해야 한다.

다시 ‘끼어들기’를 당했을 때 여전히 약간의 불편함과 걱정이 있었지만 나는 스스로에게 ‘조급해하지 말고 그저 그 차 뒤를 천천히 따라가자’고 말했다. 동시에 자신의 사상을 돌아보며 부정적인 감정과 나쁜 생각이 생기지 않도록 통제했다. 점차 마음이 가라앉는 것을 느꼈고 앞차들도 그렇게 ‘성가시게’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 앞차들이 어느 도시에서 왔는지, 차의 외형은 어떤지 등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보니 대부분의 ‘끼어든’ 차들은 어떤 고속도로 출구에서 자연스럽게 빠져나갔다. 10분 후일 수도 있고 20분 후일 수도 있었다. 내 여정에는 아무런 영향이 없었고, 수련생의 차를 놓치거나 길을 잃지도 않았다. 내 걱정은 분명 불필요한 것이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우리는, 좋고 나쁨은 사람의 일념(一念)에서 나오며, 이 일념의 차이가 부동(不同)한 후과(後果)를 가져올 수도 있다고 한다.”(전법륜)

길고 긴 여정에서 고속도로에서 ‘우연히 만난’ 작은 동반자들과 우리는 아마도 이 짧은 10분의 인연만 함께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끼어든’ 차들은 어쩌면 장애물이 아니라 일종의 동반자일 수 있다. 이는 하나의 인연이며 내가 소중히 여겨야 할 것이지 배척하거나 불평해서는 안 된다.

내가 관념과 시각을 바꾸자 모든 것이 변한 것 같았다. 차는 여전히 그 차였지만 부정적인 생각과 감정은 모두 사라졌고, 내 마음은 감사와 평화로 가득 찼다. 나는 방금 전 내가 품었던 부정적인 감정들에 대해 미안하고 부끄러웠다. 만물은 모두 생명이 있는데 짧은 만남에서 왜 그들을 선하게 대하고 소중히 여기지 않았을까? 아마도 앞으로 다시 만날 기회가 없을지도 모른다. 나는 다음에는 잘해야겠다고 다짐했다. 만나는 모든 생명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 당시 나에게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모두 소중히 여겨야 한다. 다시 합류 구간을 만났을 때 나는 더 이상 수련생 차를 바짝 따라가려 조급해하지 않고 오히려 속도를 늦추어 합류하는 차들이 들어오게 했다. 기꺼이 그들 뒤를 따라 운전했다. 마음속으로 우연히 만난 작은 동반자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안녕! 저와 동행해줘서 고마워요! 우리 함께 가요.”

관념을 바꾸자 마음속 어떤 단단한 얼음이 녹는 것 같았다. 사실 나는 속인의 생활과 직장 환경에서도 비슷한 문제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흔히 후천적으로 형성된 관념으로 다른 사람을 판단하고 마음속으로 그들에게 ‘꼬리표’를 붙였다. 상대방이 내 어떤 기준에 맞지 않거나 나의 어떤 면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생각되면, 그 사람을 내 앞길을 가로막는 ‘끼어든 차’로 여기고 부정적인 감정을 갖거나 심지어 마음속으로 그를 배척하고 피했다. 겉으로는 평화를 유지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마음속으로는 이미 선을 그어 천 리 밖으로 밀어냈다.

수련은 자신의 마음을 수련하는 것인데 이렇게 하는 것은 내가 나 자신을 속이는 것 아닌가? 나와 만나는 모든 생명은 다 인연인데 나는 이런 인연들을 소중히 여겼는가? 수련의 길에서 만나는 사람과 일들이 우연일 수 있겠는가? 나는 바른 생각과 선한 마음을 지키고 만나는 모든 사람과 일을 긍정적으로 대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번 경험을 통해 나는 선한 마음과 인내심이 부족하고 사심이 무겁다는 것을 깨달았다. 앞으로 점점 더 잘할 수 있기를, 진정으로 타인을 존중하고 선하게 대하며, 주변의 수련 환경을 소중히 여겨 후회를 남기지 않기를 바란다.

이상은 제 현재 수련 층차에서의 작은 깨달음입니다. 부족한 점이 있다면 수련생 여러분께서 자비롭게 지적해주시길 바랍니다.

 

원문발표: 2024년 9월 1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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