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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금 추궁 과정에서 사부님의 거듭된 점화

글/ 랴오닝 대법제자

[명혜망] 인터넷에서 어떤 수련생이 부당하게 압류된 퇴직금을 추궁하다가 재차 박해당한 것을 보았습니다. 저도 퇴직금 추궁 과정에서 신체적으로 박해당한 적이 있는데, 그 과정에서 사부님께서 주신 몇 번의 점화 내용을 적어 수련생들과 공유하고자 합니다.

억울한 옥살이로 퇴직연금이 압류되었습니다. 억울한 옥고를 치르고 집에 돌아와 연금을 공제 당했고, 그 과정에서 여러 가지 일이 있었는데, 심지어 몸에 큰 시련을 겪게 되었습니다. 사부님께서 몇 번이고 저를 깨우쳐 주시고 시련을 해결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저는 진정으로 마음에서 자신을 바꾸지 않았고, 집착을 찾는 것도 표면에서 찾는 것에 그쳤습니다. 그런 까닭에 나중에 퇴직금을 찾는 과정에서 사부님은 저를 위해 조급해하셨고, 속인의 입을 빌려 여러 차례 저를 깨우쳐 주셨습니다. 사람을 살리는 데 기점을 두고, 자비를 수련해 내어 남을 위하는 생명이 되라고 점화해 주셨습니다. 그 과정에서 저 또한 “상유심생(相由心生)”(‘각지설법10-에포크타임스회의설법’)의 또 다른 함의를 깨달았습니다.

저는 이 과정을 써내어 자비롭고 위대하신 사부님께 보고드리며, 사부님의 자비로운 점화에 감사드립니다!

1. “할머니의 머리 모양이 너무 못생겼어요”

2021년 4월 어느 날 아침, 저는 현(縣) 사회 보장 지국 국장을 찾아가기로 했습니다. 이전에 몇 번 갔었지만, 국장을 만나지 못해 이번에는 그들이 출근하기 전에 가보기로 했습니다.

그들은 8시 30분에 출근하기에 저는 7시 조금 넘어서 버스 정류장으로 향습니다. 버스에 타서 보니, 안에 많은 사람이 있었습니다. 빈 좌석이 있는지 살펴보는데, 서너 살짜리 남자아이가 저를 진지하게 보더니 “할머니 머리 모양이 너무 못생겼어요!”라고 또박또박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듣고 뜨끔하여 아이를 바라보며 생각했습니다. ‘무슨 뜻일까? 사부님께서 아이의 입을 빌려 무엇을 깨우쳐 주시려는 것일까? 내가 듣기 싫은 말을 잘 안 듣는 마음이 있는 걸까? 아니면 체면치레일까?’ 모두 아닌 것 같았습니다. 매번 집착심을 잘 찾으면 제 몸에 반응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아이 자리로 가서 아이와 말하려고 했습니다. 막 아이 앞에 도착하자, 아이는 제 머리를 응시하며 다시 한번 “할머니의 머리 모양이 너무 못생겼어요!”라고 말해, 차 안의 사람들이 모두 고개를 돌려 저를 보았습니다. 그러자 아이 옆에 있던 할머니가(아마도 아이의 할머니일 것입니다) 저를 도우려 아이에게 말했습니다. “할머니 머리는 염색하지 않아서 그래. 염색하시면 괜찮아.” 저는 억울한 옥살이를 하고 집에 돌아온 이후로 흰머리를 염색하지 않았습니다. 아이와 이야기를 나누기도 전에 차가 다음 정거장에 도착했고, 두 사람이 내렸습니다.

사회 보장국에 가니 사람들은 아직 출근 전이었습니다. 잠시 후 한 지인이 출근해서 저를 보고는 여기서 뭐 하는지를 물었습니다. 저는 국장을 찾아왔다는 것과 억울한 옥살이로 퇴직금을 공제 당한 일을 말했습니다. 그는 저의 일을 들었다면서 오늘 국장이 시에 회의하러 가서 돌아올 수 없으니 부국장을 찾으라고 했습니다. 제가 류 부국장은 몇 번 만났다고 하자, 그는 주관 국장을 찾아주겠다고 했습니다. 잠시 후, 원(溫) 부국장이 출근했고, 그가 저에게 소개한 후 저는 원 국장에게 온 용건을 설명했습니다. 원 국장이 “쉬워요, 당신은 이전에 받은 월급을 반납하세요. 근속연수를 다시 계산해서 지급해 드릴게요”라고 말하자, 저는 “바로 이것 때문에 국장님을 찾아왔습니다. 왜냐하면 당신들이 제 퇴직금을 공제하는 것은 불법이기 때문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국장은 듣자마자 화를 내며 “고발하고 싶으면 하세요”라고 말했고, 저도 화가 나서 “좋습니다! 내일 현장(縣長, 현의 행정 장관)을 찾아가겠습니다”라고 말하고는 사회 보장국을 떠나 버스 정류장으로 갔습니다. 길 건너편에서 한 노부인이 큰 소리로 저를 불렀습니다. “나이가 어떻게 돼요?” 제가 “예순네 살입니다”라고 대답하자, 그녀는 “아, 내가 두 살 위네. 내가 보기에 자네의 머리는 염색을 안 하는 게 좋은 거 같아”라고 말하며 자신의 머리카락을 부여잡고 말했습니다. 그녀는 “봐봐, 염색한 지 이틀 만에 흰머리가 나왔어. 염색 안 한 자네 머리가 아주 자연스러워.”라고 말하곤 제가 뭐라 하기도 전에 가버렸습니다.

저는 남동생(수련생) 집으로 갔고, 마침 한 수련생도 와 있어서 방금 있었던 일을 그들에게 말했습니다. “오늘 두 번이나 머리카락과 관련된 일을 만났는데, 사부님께서 나에게 무엇을 점화해 주신 걸까요?” 두 사람이 웃으면서 대답하지 않는 것을 보고 속으로 ‘사부님! 제자가 너무 우둔해서 그러니 사부님께서 제자를 한 번만 더 점화해 주세요!’라고 생각을 마치자마자, 외지의 한 수련생이 전화로 뭐 하냐고 물어봤습니다. 방금 사회 보장국에 갔다가 일어난 일을 말하자, 그 수련생이 “네 머리 모양이 못생기지 않을 수 있겠니? 너는 사회 보장국에 뭐 하러 갔어? 너 자신을 위해 월급을 찾으러 간 거니, 아니면 사람을 구하러 간 거니? 너는 그들이 법을 어겼다고 하는데, 그러면 너는‘법’에 있니?”라고 말했는데, 그 말을 듣는 순간 깨달았습니다. ‘맞아, 나는 나 자신을 위해 원망을 가득 품고 사회 보장국에 간 거였어, 어쩐지 그 국장이 그렇게 화를 내더라니.’

자비를 베풀어 남을 위하는 생명으로 수련성취하라는 사부님의 가르침을 깨달았습니다. 마음속으로 사부님께 감사드렸습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뭔가가 하나 떨어져 나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동시에 수련생에게 말했습니다. “고마워, 뭐가 잘못됐는지 알았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알았어.”

2. 사부님께서 고난을 제거해 주시다

전화기를 내려놓은 후 저는 예전에 썼던 진상 편지를 모두 찾아내 편지를 보면서 자신을 되돌아봤습니다. 퇴직금 추궁으로 법원, 검찰원, 구치소, 은행, 현(縣) 정부의 관련 부서를 찾아다녔고, 어디를 가든 “파룬궁은 천고의 억울함을 당했다! 나는 박해를 당했다”고 말하여 당당해 보이면서도 말로는 퇴직금 추심을 계기로 사람을 구하기 위해서라고 했지만, 깊이 들어가 보니 목적은 완전히 자신을 증명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아주 깊이 숨겨진 과시심은 ‘내가 얼마나 능력이 있는지 봐라, 어디서든 감히 말할 수 있다’였습니다. 편지에는 사악한 당문화가 가득했는데, 투쟁심이 매우 강하고, 이치에 맞으면 양보하지 않았으며, 원망심, 질투심, 남을 얕보는 마음, 남을 헐뜯거나 비꼬는 마음까지도 있었으며, 심지어 “당신들 사회 보장국과 법원이 손을 잡은 것은 나에게 사형을 선고한 것과 같다”고 쓰기까지 하여, 사악이 틈을 파고들어 신체에 큰 시련이 닥쳤습니다. 그때는 정말 목숨을 가지러 왔는데, 마지막에 자비롭고 위대하신 사부님께서 저를 위해 시련을 감당해 주셔서야 저는 지나올 수 있었습니다.

저는 부끄러워서 몸 둘 바를 몰랐습니다. 사부님께 얼마나 큰 폐를 끼쳤는지 알 수 없습니다. 이렇게 강한 사람 마음을 가지고 퇴직금을 받으러 가니 사악이 틈을 탄 것입니다. 사연은 이러했던 것입니다.

2020년 10월, 억울한 옥고를 치르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섣달 23일, 사촌 조카가 저를 보러 왔습니다. 저와 나란히 소파에 앉은 조카가 담배를 물고 한 모금 피웠는데, 제가 기침이 나서 조카가 얼른 담배를 껐지만 기침이 멈추지 않아 저는 다른 방으로 갔습니다. 이 방에서도 연기 냄새로 가득했는데 화장터에서 나는 연기 냄새였고, 다른 사람들은 냄새를 맡지 못했습니다. 이날부터 정월 13일까지 기침이 계속됐고, 뱉어낸 하얀 가래 가운데는 검은색이었습니다. 기침하면 소변을 참을 수 없어 자리를 옮길 수 없고, 움직이면 하늘 땅이 빙글빙글 돌아 구토하고 음식을 먹을 수 없었습니다. 나중에는 감히 바닥에 발을 디딜 수 없었는데, 발이 땅에 닿으면 만 개의 칼끝을 밟는 것 같았습니다. 누워서 잠들지 못하고 앉아서 기침하다가 지쳐서 잠깐 잠이 들다가도 허리가 아파서 깨어났는데, 나중에는 허리가 아파서 곧게 펴지도 못했습니다. 전반 과정에서 남동생 수련생이 어떠한 집착으로 사악의 박해에 빌미를 주었는지 안으로 찾아보라고 일깨워 주었습니다. 집착이 어디 한 가지뿐이겠습니까.

동시에 남동생은 수련생을 불러 저를 도와 발정념을 하려고 했습니다. 저는 “모두가 사람을 구하느라 바쁘고, 마침 설 앞이라 어느 집이나 일이 많은데 누가 시간이 나겠니? 그리고 이번 고비는 어쨌든 나 혼자 넘을 수밖에 없어!”라고 말했지만, 시련은 나날이 커져만 갔습니다. 더 무서운 것은 기침으로 책을 읽을 수 없었다는 것인데, 책을 보면 침이 튀어 법을 외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나중에는 기침으로 머리가 윙윙 울려 법이 생각나지 않았고 외울 수 있었던 법조차 모두 잊어버렸습니다. 나중에는 ‘논어’도 기억나지 않고 다만 ‘나는 리훙쯔(李洪志)의 제자이다. 다른 배치는 다 필요 없고, 모두 승인하지 않겠다.’(‘2003년 정월대보름설법’)만 기억났습니다.

제 심성이 향상되지 않아 몸 상태가 나날이 안 좋아지고 있었습니다. 눈만 뜨면 하늘땅이 빙빙 도는 바람에 법을 듣는 방법밖에 없었습니다.

정월 13일 밤 10시가 넘어 기침으로 오장육부가 모두 나올 것 같았고, 더 이상 걸을 수 없을 것 같아 사부님께 말씀드렸습니다. “사부님! 앞으로 나가기 너무 힘듭니다.” 그리고 플레이어를 켜고 사부님의 설법을 계속 들었습니다. 그때 마침 제4강이었는데 듣고 나서 깜짝 놀랐습니다. ‘맞아, 사부님께서 나를 보고 계시는데 내가 무엇이 두려운가!’ 저는 다른 공간의 생명에게 말했습니다. “네가 기침하기 좋아하면 기침하고, 네가 메스꺼움을 좋아하면 메스꺼워해. 네가 흐리멍덩한 게 좋으면 흐리멍덩해 있어. 나와는 아무 상관이 없어, 나의 사부님이 나를 지켜주고 계시니까!” 말을 마치자마자 몸이 20여 일 동안 겪은 모든 고난이 한순간에 사라졌습니다. 1초 사이로 전혀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았습니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몸이 홀가분했습니다.

결국 사부님께서 이 시련을 제거해 주셨다는 것을 저는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때의 제 심정은 어떤 말로도 다 표현할 수 없습니다…… 감사의 눈물만 하염없이 흐르고 흘렀습니다…… 이 기쁜 소식을 제 가족과 수련생에게 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기까지 얼마나 긴 시간이 걸렸는지 조차 모르겠습니다.

몇 년 동안 억울한 옥살이로 가족들은 저 때문에 놀라고 두려움에 떨었습니다. 제가 출소해 돌아온 것을 보자 모두들 설날에 함께 모여서 즐기려 했지만, 제 몸 상태가 그들을 더 걱정하게 할 줄은 몰랐습니다. 설도 잘 쇠지 못했는데, 이번에 대법이 제 몸에 펼쳐진 기적을 직접 목격했습니다. 억울한 옥고를 당한 까닭에 대법에 대한 오해는 말끔히 사라졌습니다. 원래 수련을 포기했던 큰언니는 다시 수련으로 돌아왔습니다. 둘째 언니도 진심으로 대법을 믿게 되었습니다. 얼마 전에 심장에 문제가 생겼는데, 약을 먹지 않고 집 안팎에서 큰소리로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真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를 이틀 동안 외쳤더니 심장이 다 나았다고 했습니다.

둘째 형부는 원래 사악한 당의 마을 지부서기로 전형적인 무신론자였는데, 지금은 매일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를 읽습니다. 사부님의 경문 두 편도 모두 진지하게 읽었고, 가족들은 더 이상 저 때문에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3. “걸음걸이로 보아 아주머니의 건강은 좋아 보여요”

저는 현장과 관계자들에게 보낼 편지를 새로 수정하고 남동생에게 내일 혼자 민원실을 찾아가겠다고 말했습니다. 남동생이 생각을 잘했는지 물었을 때, 저는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남을 위하는 생명으로 수련성취하라고 하셨어. 내 마음은 달라졌어. 내일이 마침 수요일이라 현장에게 진상을 알리러 갈 거야”라고 대답했습니다. 바로 일주일 전에 저와 동생은 현 정부에 가서 현장을 찾은 적이 있습니다. 현정부에 막 도착했는데, 경비원 십여 명이 우리를 막아서고 들어가지 못하게 했습니다. 저는 그들에게 파룬궁 수련으로 억울한 판결을 받았고, 억울한 옥살이에서 돌아온 후 사회 보장국에서 제 퇴직금을 정지시켜서, 현장을 찾아가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들이 현장은 지금 아무도 만나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제가 현장에게 편지를 썼는데 전해 줄 수 있냐고 하자, 그들은 감히 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남동생이 그들에게 말했습니다. “내일 우리가 청원하러 갈 건데 마침 인민대회 기간이네요!” 동생이 민원을 넣겠다는 말을 듣더니 안에 있던 경비원 4~5명과 원래 경비원 14~15명과 함께 우리를 겹겹이 에워쌌습니다. 누군가 말했습니다. “당신들이 진정을 넣으러 가는 것은 절차를 무시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들에게 물었습니다. “현장을 만나지 못하게 하면서 편지도 전해주지 않으면 어떻게 합니까?” 그러자 또 다른 경비원이 나타나 말했습니다. “수요일은 현장 접대 일이고, 장소는 민원국입니다.” 내일이 마침 수요일이었습니다.

다음날 저는 민원국에 갔습니다. 그곳에 도착했을 때 이미 많은 민원인이 있었고, 접수 직원이 저에게 무슨 일로 왔는지 물어, 현장을 찾아 퇴직금 문제를 해결하러 왔다고 했습니다. 그는 월급 찾으러 온 사람이 많은데 현장이 만나주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저는 제 상황이 특수하다고 말하며, 파룬궁 수련으로 억울하게 감옥에 갔고, 사회 보장국은 퇴직금을 정지시켰다고 했더니, 그는 당신이 억울한지 아닌지는 우리 현의 일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저는 목소리를 높여 말했습니다. “그래요, 1999년 장쩌민 집단이 일으킨 파룬궁에 대한 박해는 전 국민을 대법과 대립 면으로 이끌었고, 정법위의 운영하에, 공검법(공안‧검찰‧법원) 관계자들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법을 어기고 파룬궁 수련생을 억울하게 판결했는데, 그들 자신도 죄악에 빠뜨린 것입니다. 파룬궁은 천고의 억울한 누명을 썼습니다!”

이어서 저는 또 파룬궁은 불가(佛家)의 상승(上乘) 수련대법으로, 이미 세계 100여 개 국가와 지역에 널리 전해졌다고 말했습니다. 이때 또 다른 접수 직원으로 바뀌어 저는 톈안먼(天安門) 분신은 거짓이라고 계속 이야기했습니다. 나중에 또 한 사람이 와서 저에게 말했습니다. “아주머니, 보세요. 10시가 넘었는데도 현장이 아직 안 왔어요. 온다고 해도 아주머니 차례가 안 와요. 이 사람들 모두 현장을 만나길 기다리고 있는데, 어떤 사람은 두 달이나 줄을 섰어요. 우선 돌아가세요.” 저는 진상을 거의 다 알렸고, 민원인과 직원 일부가 진상을 들었기에 “만나지 못하면 제가 현장에게 편지를 썼는데, 현장에게 주시겠습니까?”라고 했더니, 그는 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제가 정말 현장에게 건네주어야 한다고 하자, 그는 틀림없이 건넨다고 했습니다. 그런 후에 그는 등록시킨다고 했고, 저는 편지를 건네주고 민원국을 나왔다.

버스 정류장에 가니 두 여성이 차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중 한 사람이 “아주머니의 걷는 자세에서 건강이 좋다는 것을 알 수 있어요”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사부님께서 그녀의 입을 빌려 격려해 주신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4. “아주머니는 선생님이세요? 문필이 좋으시네요”

나중에 사회 보장국에 가서 그 원 국장을 만나 다시 진상을 알렸고, 그는 인사국에 가서 어(鄂)씨 성을 가진 계장을 찾으라고 했습니다.

인사국에 가서 경비원에게 어 계장을 만나러 왔다고 하자, 경비원은 계장에게 전화했습니다. 계장은 제가 왔다는 얘기를 듣자마자 경비원에게 백신을 맞고 있으니 잠시만 기다리면 간다고 전해달라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녀는 저를 찾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녀가 와서 저를 사무실로 안내했고, 사무실에는 한 남자가 있었습니다. 그녀는 저를 소개했고, 그 남자는 제 이름을 듣자마자 태도가 매우 불친절하게 변했습니다. 그녀가 전화해서 감사팀 두 사람을 불렀는데, 한 명은 계장이고 한 명은 그의 직원인데 그의 태도도 매우 사악했습니다. 또 한 사람이 와서 저의 동영상을 찍으려 해서, 제가 그들에게 이렇게 하면 당신들에게 좋지 않다고 하자, 동영상을 찍으러 온 사람은 바로 떠났습니다. 인사국에서는 저에게 예전에 수령한 15만 9천 위안(약 3천2백만 원)을 반환하고 서명하라고 했습니다. 감사팀의 그 사람은 돈을 내지 않으면 법원에 고소할 거라고 했습니다. 저는 침착하게 말했습니다. “나를 고소한다니 잘됐네요. 내가 당신들을 고소하지 않아도 되니까요. 파룬궁은 천고의 억울한 누명을 썼고, 저는 억울한 판결을 받았어요. 2010년 12월 29일 국무원 신문출판국 제2차 서무회의에서 채택된 50호 문서는 2011년 3월 1일에 발행되었으며, 발행일부터 발효됩니다. 이 문서는 161개의 규범 문서를 폐지했으며, 그중 99번째로 폐지된 문서는 1999년 7월 22일에 하달된 ‘파룬궁 출판물 처리에 관한 의견 재심의에 관한 통지’이고, 100번째로 폐지된 것은 1999년 8월 5일 ‘파룬궁 불법 출판물 인쇄 금지 및 출판물 인쇄 관리 강화에 관한 고시’입니다. 이 50호 문서는 현행 관련 규정에 따라 파룬궁 서적 및 자료를 보유하는 것이 완전히 합법적임을 보여줍니다. 파룬궁 서적 및 자료의 보유, 복사 및 보급은 파룬궁 유죄 판결의 근거로 사용할 수 없습니다. 이 50호 문서는 바이두에서 신문출판서 ‘명령 50호’를 찾으면 바로 열람할 수 있어요. 인터넷에 검색해 보세요.” 그 사람은 휴대전화로 검색하기 시작했습니다.

그제야 저는 그날의 저의 불친절함으로 인해 사회 보장국에서 저를 인사국에 고발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웃으면서 직원들에게 말했습니다. “저는 원래 당신들에게 상황을 반영하고, 저를 도와서 정의를 찾으려고 했는데 이제야 알아들었어요. 알고 보니 당신들은 사회 보장국을 도와 저에게 돈을 요구했군요. 여기 편지가 있는데 한번 보세요.” 저는 진상 편지와 수련생이 준 법률로 박해를 반대하는 법률 조문을 그들에게 줬습니다. 그리고 저에게 서명하라고 한 것을 가리키며 이것은 노동법에 위반된다고 말했습니다. 그들이 이것을 복사기로 지워버려서, 다시 이것은 중국 헌법을 위반했고, 저것은 노인권익보장법, 사회보험법 등을 위반했다고 그들에게 알려주자 그들은 조목조목 지워버렸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죄송하지만 이 서명은 할 수 없어요. 제가 서명을 하면 당신들도 파룬궁 박해에 가담했다는 것을 증명하게 되는데, 그건 당신들을 해치는 겁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감사팀 사람은 제가 인사국을 나올 때까지 한마디도 하지 않았습니다. 처음에 저에게 뻣뻣하게 저촉된 직원이 편지를 보고 나서 말했습니다. “아주머니는 선생님이십니까? 문필이 좋으시네요.” 저는 그들에게 말했습니다. “저는 선생님이 아니에요. 오직 제가 진실을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퇴직금은 아직 결말이 나지 않았지만, 당초 퇴직금을 달라고 할 때 어찌할 방법이 없던 심정은 사라지고, 저는 이것을 사람 구하는 좋은 기회로 삼았습니다. 사부님께서 또 한 번 저의 마음을 정화시켜 주셨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인사국에서 나오니 몸이 가벼워서 3, 4리는 금방 걸어 집에 도착했습니다.

사부님! 제자는 세상의 언어를 모두 써도 사부님에 대한 감사함을 다 표현하지 못합니다. 제자는 오직 사부님께 약속드립니다. 저는 반드시 자비를 수련해 내고 남을 위하는 생명으로 수련성취하여 사부님의 은혜를 저버리지 않을 것입니다.

법에 있지 않은 부분은 수련생들께서 시정해 주시길 바랍니다!

 

​원문발표: 2024년 8월 17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4/8/17/48029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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