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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대(自大)’에 점 하나를 더하면 ‘취(臭)’가 된다

글/ 중국 대법제자

[명혜망] 몇 년 전의 일이다. 진상을 알리다 진상을 모르는 사람의 신고로 구치소에 갇혔을 때 나는 마음속으로 극도로 후회하고 무너져 내렸다. 계속해서 안으로 찾으며 자신의 문제를 들여다보았다. 진상을 알리고 사람을 구하는 일과 협조하는 일로 매일 분주해서 마음을 조용히 하고 자신을 반성할 시간이 없었으며, 착실한 수련에 공을 들이지 못한 것 같았다.

구치소에서 눈앞에 가로막힌 큰 벽을 마주하고 만감의 고통과 후회 속에서, 나는 어쩔 수 없이 강제로 마음을 도려내듯 문제가 도대체 어디에 있는지 반성하게 되었다. 그때를 돌이켜보면 매일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았다. 대면해 진상을 알리는 것 외에도 다른 진상 알리기 항목도 있었고, 자료도 만들어야 했으며, 수련생들 간의 협조 일도 해야 했다. 어르신과 아이들을 돌보는 일도 잘해내야 했다. 집에서 일할 때는 시간을 조금이라도 낭비하지 않으려고 세 가지 일을 동시에 교차로 했다. 매일 팽이처럼 쉬지 않고 돌아가며 일에 빠져 심성을 제고하는 개인 수련을 소홀히 했다.

구치소에서는 하루가 일 년과 같았다. 고통 속에서 나는 많은 속인 마음을 찾아냈다. 일하는 마음, 쟁투심, 환희심, 과시심, 원망심, 남의 말을 듣지 않으려는 마음, 마성이 올라 큰 화를 내는 등등. 실제로 착실히 수련하는 과정이 없었기에 결정적인 순간에 정념도 나오지 않았고, 주변의 열악한 환경에 더해 가정의 붕괴와 압박까지 겪으면서, 깊은 후회와 무력감에 빠져 육체적, 정신적으로 완전히 지쳐버렸다.

3년간의 억울한 옥살이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후, 다시 자신을 조정하며 가정을 잘 돌보고 대량으로 법공부를 하는 동시에 교훈을 받아들여 심성 수련에 더욱 노력했다.

어느 날, 억울한 옥살이에서 돌아온 한 수련생과 교류할 때 그녀가 말했다. 구치소에서 어느 날 가부좌를 하고 있을 때 사부님께서 그녀에게 글자를 보여주며 일깨워주셨다고 한다. “‘자대(自大)’에 점 하나를 더하면 ‘취(臭)’가 된다.”[역주: 자만심(自大)이 조금만 심해지면(점 하나만 더해지면) 악취(臭)가 나게 된다는 뜻] 그 수련생도 비교적 능력이 있고 유능한 사람이라고 들었다. 작은 사업도 그녀 손에서는 순조롭게 진행되고, 법을 실증하는 항목에서도 사람들을 설득하고 이끌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저 이야기를 듣듯이 그녀가 구치소에서 겪은 일들을 들었을 뿐, 나 자신과 연관 짓지 않았다.

나중에 어느 날, 조카가 내 방에서 숙제하다가 갑자기 신기한 것을 발견한 것처럼 말했다. “이모, ‘자대’에 점 하나를 더하면 ‘취’라는 걸 알았어요.”

두 사람이 모두 약속이나 한 듯 내 앞에서 같은 말을 하고 있었다. 나는 갑자기 깨달았다. 이것이 사부님께서 날 일깨우시는 것이 아닌가? 내가 자만심을 갖고 있는 건 아닐까? 그래서 나는 비로소 진정으로 마음을 가라앉히고 납치되기 전을 되돌아보았다.

납치되기 전에 왜 그렇게 바빴을까? 태엽 감긴 것처럼 멈출 수가 없었는데, 단순히 일하는 마음 때문이었을까? 왜 때로는 환희심, 과시심이 들었을까? 무엇을 과시한 걸까? 자신이 유능하다는 것, 많이 하고 빨리 한다는 것을 과시했다. 기계를 수리하고 컴퓨터를 설치하는 기술적인 일만 빼고 법을 실증하고 사람을 구하는 다른 일들은 모두 할 수 있는 것 같았다. 수련생들 간의 협조, 심지어 수련생들의 속인 일까지도 열심히 도왔다. 바쁘게 일하는 것이 즐거웠고 수련생들이 가끔 칭찬 한마디를 하면 마음속으로 은근히 우쭐해졌다. 그래서 더욱 기꺼이 수련생들을 도와 이런저런 일을 했고 할수록 더 하고 싶어 했다. 일하는 과정에서 일하려는 마음, 허영심도 만족을 얻었고, 환희심과 과시심과 엉켜 서로 파생되어 결국 그 자만심과 이기심을 낳게 되었다.

자만심과 이기심에 이끌려 점점 더 바쁜 일상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법공부 시간도 줄어들었으며, 발정념을 할 때도 머릿속에는 온통 일 생각뿐이어서 전혀 마음을 가라앉힐 수 없었다. 때문에 수시로 안으로 찾아 자신을 바로잡을 생각을 하지 못했다. 수련인으로서 해야 할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것들이 모두 밀려났고, 게다가 이 자만심과 이기심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어서 자만심이 있으면 필연적으로 모든 일에서 자신이 옳다고 여기고, 자신의 견해와 결정이 반드시 옳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다른 사람의 의견을 듣지 않고 모든 일에서 자기 고집대로만 했다. 무슨 일을 하든 법의 지도하에 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 사람의 생각으로 행동하면서도 스스로 옳다고 여겼으니 이 얼마나 무서운 마음인가!

또한 자신이 유능하고 옳다고 여겼기에 타인의 단점과 결점을 보고 즉시 자신을 되돌아보지 못했다. 수련생의 법에 맞지 않는 표현을 보고도 먼저 자신에게 문제가 있는지 찾아보지 않고 법으로 상대방을 가늠한 뒤 상대방을 지적했다. 다른 사람의 쓰레기만 치우고 자신 주변의 쓰레기는 볼 수 있어도 정성껏 치우지 않았다. 오래되자 다른 사람은 잘 수련했지만 나는 자신 공간장의 쓰레기를 치우지 않아 구세력에게 허점을 보여 박해당하게 된 것이다.

그날 진정으로 근본적인 집착을 찾았을 때, 이전에 찾았던 그 좋지 않은 마음과 행동들은 단지 표면적인 것일 뿐이며, 이 자만심과 이기심이야말로 문제를 일으키게 한 근원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근본적인 문제가 분명해지자 마치 오랫동안 깊이 묻혀 있던 종양을 파낸 것 같이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듯 온몸이 가벼워졌다.

다음으로 할 일은 그것을 없애겠다고 결심하고 절대로 그것이 계속 살아남지 못하게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한 가지 생각을 했다. ‘사부님께서 안배하신 일이라면 하고, 사부님께서 안배하지 않으신 일이라면 절대 자발적으로 도와주지 않고, 주동적으로 수련생과 연락하지도 않겠다.’ 집에서 조용히 법공부를 하며 자신의 공간장을 깨끗이 청리(淸理)했다. 이로써 그 ‘자만’이란 집착은 이렇게 해체됐다. 그 깊이 묻혀 있던 종양이 3년간의 억울한 옥살이라는 난을 겪고 나서야 마침내 파낼 수 있었다. 긴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불필요한 고통을 겪고 얼마나 큰 대가를 치렀는지, 중요한 것은 박해 속에서 얼마나 많은 오점을 남겼는지, 아프게 후회했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이렇게 오랫동안 수련하면서 수련할 줄 모르다가 자신을 찾는 법을 배우기까지, 걸음마다 비틀거리며 걸어왔다. 닦아내지 못한 집착심은 하나하나가 모두 수련의 길 위에 놓인 벽이었다. 수련이란 인간 세상의 집착심을 끊임없이 제거하고 자신을 깨끗이 씻어내야 하는 것으로, 그래야 경지가 승화될 수 있다! 수련은 한순간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많은 고비와 난관을 겪으며 마음을 버리고 바른길로 돌아서며 법으로 자신을 깨끗이 씻어내야 한다. 업력의 교란과 인간 세상의 미혹 때문에 때로는 어떤 마음을 의식하지 못하고, 때로는 의식했어도 행하지 못한다. 하지만 우리는 먼저 안으로 찾는 법을 알아야 한다. 밖으로 보는 것은 속인의 길이며 마도(魔道)를 걷는 것이다.

나는 착실한 수련을 할 줄 몰라 넘어졌고, 착실히 수련해야 함을 알면서도 잘하지 못해 넘어졌다. 진정으로 고통을 참고 착실히 수련해 새로운 경지가 열리는 기쁨도 느꼈다. 이 험난한 길을 걸어오면서 사부님의 크나큰 자비와 법의 위대함, 그리고 자신의 먼지와 같은 작음을 점점 더 느끼게 됐다.

​우리의 생명은 사부님께서 주신 것이고, 능력도 사부님께서 하사하신 것이며, 지혜 또한 법이 부여한 것이다. 사부님의 자비로운 제도가 없다면 우리는 아무것도 아니다. 이 더럽기 그지없는 우주 최하층의 인간 세상에서 우리는 생생세세 얼마나 많은 업을 짊어지고 왔던가. 사부님의 끊임없는 보살핌과 감당이 없었다면 오늘에 이르지 못했을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이 천법(天法)을 주셨고, 우리를 위해 끝없는 업력을 감당해주셨으며, 심성 면에서 우리를 인도하시고 각종 방식으로 우리를 깨우치시고 격려하시며 성취하게 하셨다. 이 십악독세(十惡毒世)에서 사부님의 가지(加持) 없이는 우리는 한 걸음도 나아갈 수 없다. 우리가 조금이라도 착실히 수련하고 대가를 치르면 사부님은 우리에게 훨씬 더 많은 것을 주신다. 사부님의 크나큰 자비를 생각하면 내 자만과 자부심이 부끄러워지고, 동시에 자신의 위치를 바르게 두지 않는 것이 얼마나 큰 죄인지 절실히 깨닫게 된다!

예전에 한 교류문을 읽은 기억이 난다. 우리의 그런 좋지 않은 마음들이 어떤 층차에서는 각종 생명 물질 상태로 나타나고, 더 높은 층차에서는 우리와 똑같은 생명체로, 우리와 똑같이 생긴 모습으로 나타난다고 한다. 우리가 그것이 더러운 집착심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정념으로 배척하고 해체하면, 그것은 우리의 공간장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 이번에 안으로 찾으면서 나는 또 깨달았다. 이 ‘자만심’은 매우 위험한 것이다. 그것에 조금이라도 틈을 주면 마치 마의 장벽처럼 수련인의 시야를 가로막아, 수련인을 완전히 밖을 보고 밖에서 찾는 위험한 지경에 빠뜨린다. 이렇게 자신에게 ‘방화벽’이 없어지면 각종 좋지 않은 사람마음들이 복잡한 환경 속에서 자라나게 된다. 이때 ‘자만심’은 또 ‘보호막’ 같은 역할을 해서, 내면세계에 잡초가 무성히 자라도 알아차리지 못하게 만들어 결국 자신의 수련이 마도로 빠져 하루아침에 망치게 된다.

주변에서 ‘자만심’이 부풀어 올라 처참한 교훈을 얻은 수련생들을 본 적이 있다. 다행히 나는 크게 넘어진 후 사부님의 일깨움 아래 제때에 깨닫고 벼랑 끝에서 말을 멈추듯 올바른 길로 돌아왔다. 사부님의 자비로운 제도에 감사드립니다!

개인적인 층차에서의 깨달음이니 부적절한 부분이 있다면 수련생 여러분께서 자비롭게 지적해주시기 바란다.

 

원문발표: 2024년 8월 24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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