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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제자를 이끄는 과정에서 느낀 점

글/ 캐나다 대법제자

[명혜망]

존경하는 사부님 안녕하십니까!
수련생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오늘 어린 대법제자를 이끌고 법공부하는 과정에서 느낀 점을 교류하려 합니다.

어린 수련생을 잘 이끌려면 단체 환경이 중요하다고 깨달았습니다. 하지만 본 지역에는 또래 아이들이 많지 않고 아이들의 중국어 읽기 수준과 법공부 시간도 차이가 큽니다. 이런 어려움을 극복하고 장기간 견지하는 과정에서, 어린 대법제자의 법공부를 돕는 것이 아이들에게 매우 중요하고, 이런 경험이 자신에게도 매우 소중하며, 일사일념(一思一念) 모두 수련에서 승화할 수 있는 넓은 공간이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1. 단체 법공부는 어린 제자의 수련에 큰 도움이 된다

딸이 어릴 때는 주로 제가 혼자 데리고 법공부를 했습니다. 몇 년 전, 본 지역의 한 여자아이가 RTC 어린 대법제자 플랫폼에서 법공부하고 진상 전화도 한다는 얘기를 듣고 매우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딸을 데리고 플랫폼에서 다른 도시 어린 제자들과 함께 법공부를 시작했습니다.

플랫폼에 아이들이 많아서 참여하니 우리 딸의 수련에 정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다른 아이들의 천진난만한 읽기 소리를 들으며 우리 딸도 그들을 매우 친근하게 느꼈고, 매일 저녁 법공부 시간을 몹시 기다렸습니다. 또 매번 법공부 후 플랫폼 아주머니 수련생이 어린 제자들과 나누는 짧은 수련 교류도 매우 좋아했습니다.

처음에 딸은 아는 한자가 많지 않아 ‘전법륜’을 유창하게 읽지 못했습니다. 잘 읽지 못할까 봐 두려워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딸 귀에 바짝 붙어 딸 차례가 되면 작은 소리로 함께 읽어주었습니다. 이 방법이 매우 효과적이어서 딸의 심리적 부담을 크게 덜어주었습니다. 한동안 견지하니 딸이 아는 한자가 비약적으로 늘어 몇 개월 만에 ‘전법륜’의 90% 글자를 읽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를 통해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단체 법공부’가 수련생에게 얼마나 중요한지, 어린 수련생들의 정진에 얼마나 큰 도움이 되는지 더욱 분명히 알게 되었습니다.

2. 어린 대법제자와 법공부하며 남을 위해 생각하는 것을 배우다

딸은 아는 글자가 계속 늘어나면서 혼자 읽겠다고 했고 제가 따라 읽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딸의 발전을 보며 당연히 기뻤습니다. 비록 함께 읽지는 않았지만 옆에서 지켜봤고, 딸이 틀리게 읽을 때마다 당연히 바로 알려주고 정확한 발음을 가르쳐줬습니다. 이렇게 하면 다른 아이들의 시간을 뺏지 않고 법을 읽는 효율도 높일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럴 때마다 딸은 매우 화를 내며 상처받은 듯 불쾌해했습니다.

저는 이렇게 작은 일을 가지고 소동을 벌이는 게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그저 한 번 바로잡아준 것뿐인데 뭐가 그리 대수냐고 생각했습니다. 엄마로서 딸의 실수와 부족한 점을 고쳐주는 게 딸을 위한 것이라고 여겼습니다.

하지만 여러 번 반복되자 딸은 감정이 너무 격해져 법공부를 계속하는 데 영향을 미쳤습니다. 저는 안으로 찾기 시작했습니다. 제 처리 방식이 적절하지 않았고, 딸을 위해 생각하지 않았으며, 다른 아이들 앞에서 딸의 체면을 고려하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딸을 위한 것이라 해도 방식과 방법에 주의를 기울여야 하고, 딸을 독립적이고 존엄한 개체 생명으로 대해야 한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비록 제가 낳은 아이지만 딸 역시 평등한 생명이며, 딸의 감정을 보호하고 존엄을 지켜줄 필요가 있었습니다.

저는 몇 가지 방법을 조정했습니다. 예를 들어 딸이 읽지 못할 때 조금 기다려주며 병음으로 스스로 읽어볼 시간을 주었습니다. 딸이 도움을 요청하는 표정을 지을 때만 알려주었습니다. 또 딸과 약속해 틀리게 읽으면 제가 딸의 손을 살짝 건드려 딸이 스스로 확인하고 오류를 발견해 고칠 기회를 주기로 했습니다. 그래도 틀리게 읽으면 딸의 동의를 구한 후에 정확한 읽기 방법을 알려주었습니다.

이렇게 개선한 후에는 딸에게 생각할 시간을 몇 초 더 주긴 했지만, 더 이상 화를 내며 멈추고 저와 논쟁하지 않게 되었고 저도 딸에게 이치를 설명할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실제로 법공부 효율이 높아지고 시간도 절약되어 매우 유쾌하게 공부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아이와 소통할 때는 모든 사람과 마찬가지로 세세한 부분에서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해야 한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다른 사람의 잘못과 부족한 점을 지적할 때도 상대방의 수용 능력을 고려해야 하며, 예의 바르고 완곡하게, 진심과 선의를 담아 처리해야 합니다.

3. 자신의 부족함을 태연히 마주하는 법을 배우다

수련 중에 자신의 부족함을 마주하는 일은 자주 있습니다. 아이와 함께 법공부를 하며 우리는 함께 이를 마주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딸이 때로 다른 아이들이나 부모님들과 함께 공부할 때 제가 그 자리에 없을 때가 있습니다. 다른 어린 수련생이나 그들의 부모님이 직접 딸의 실수를 고쳐주는데, 제 방식과는 다릅니다. 바르게 고쳐주면 괜찮지만 때로는 인터넷 신호가 좋지 않아 딸이 제대로 읽었는데도 고치는 사람이 잘못 들은 경우도 있었습니다.

틀리게 읽었다고 지적받을 때 딸은 불편해하고 억울해했습니다. 처음에는 참았지만 참지 못하고 설명하거나 심지어 논쟁하기도 했습니다. 심할 때는 화를 내며 그 친구와 더 이상 공부하고 싶지 않다고 하거나 저에게 억울함을 토로하기도 했습니다. 제가 타이르고 딸도 이치상으로는 이해했지만, 진정한 변화는 비슷한 경험을 한 다른 친구를 통해 일어났습니다.

어느 날 여러 어린 수련생이 함께 법공부를 하다가 한 여자아이가 틀리게 읽었습니다. 당번 부모님이 지적하자 그 아이가 화를 내며 큰 소리로 “저는 틀리지 않았어요!”라고 말했습니다.

저와 딸은 서로 쳐다보았고 제가 물었습니다. “그 아이가 틀렸다고 생각하니?” 딸이 대답했습니다. “모두가 들었잖아요.” 제가 다시 물었습니다. “어떤 느낌이 들어?” 딸이 말했습니다. “틀렸으면 고치면 되는 거예요.” 저는 말했습니다. “맞아, 다른 사람이 네 실수를 지적하면 그 사람이 맞든 틀리든 수련인으로서 첫 번째 생각은 그 사람에게 감사하는 거야. 그리고 가장 간단한 방법은 다시 한번 읽는 거지. 아무것도 잃을 게 없고 계속 읽어나가면 돼. 그럼 법공부도 방해받지 않고. 만약 네가 ‘저는 틀리지 않았어요’라고 고집하면 체면을 지키려다 오히려 더 안 좋은 결과를 낳게 돼. 만약 태연하게 대처하고 틀렸으면 고치면 이 고비는 그렇게 넘어가는 거야. 누구도 네가 바보라고 하지 않을 거야. 누가 맞고 누가 틀렸는지 따지는 건 사실 전혀 중요하지 않아.”

딸은 이치에 맞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후로 다른 사람이 딸을 고쳐줄 때 딸은 태연하게 먼저 “감사합니다”라고 말한 뒤 진지하게 다시 읽었습니다. 더구나 딸과 함께 법공부를 하는 어린 수련생들도 이후에는 모두 이렇게 대처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저는 자주 사부님의 설법을 인용하여 딸에게 일깨워줍니다. “옳은 것은 그이고 잘못된 건 나이니 다툴 게 뭐 있느냐”(홍음3-누가 옳고 누가 그른가) 많은 경우, 제가 딸에게 이치를 설명할 때 사실 사부님께서 이 일을 안배하셔서 저에게 보여주시는 것이며, 제가 다른 사람의 비판과 지적을 받을 때도 먼저 감사하고 선의로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을 일깨워주신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급히 자신을 변명하려 들지 말고 스스로 바꾸면 됩니다. 설령 내가 잘못한 게 없더라도 다시 한번 자신을 되돌아보고 수련의 관점에서 보면 전혀 나쁠 게 없습니다.

4. 자신의 사상을 순정하게 하고 타인을 성취하게 하다

때로 협조인이 저에게 다른 아이들과 함께 법공부를 하도록 배정할 때가 있었습니다. 저는 매우 성실하게 임했다고 생각했습니다. 아이들이 법을 읽을 때마다 꼼꼼히 대조해보고 틀리게 읽은 부분은 하나하나 고쳐주었습니다. 그러나 같은 어려움에 부딪혔습니다. 새로 온 아이들 중 일부는 고쳐주고 나면 좌절감을 느꼈습니다. 좋은 말로 위로해도 그들이 느끼는 압박감을 없앨 수는 없었습니다. 한 아이는 제가 고쳐줄 때마다 못 들은 척하고 계속 자기 방식대로 읽으며 절대 고치려 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매우 고민되었습니다. 아이들의 감정을 배려해 고쳐주지 않으면 노수련생으로서 역할을 못 하는 것 같고, 사부님의 법도 이렇게 바뀌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이 어리다 보니 좌절감으로 의욕을 잃을까 봐 걱정되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 되었습니다.

나중에 한 가지 경험을 통해 이치를 깨닫게 됐고, 정념으로 서로 돕는 것의 또 다른 의미를 이해하게 됐습니다.

중국어를 잘하는 한 아이가 있었는데, 법을 읽을 때 항상 글자를 더하거나 빼거나 줄을 건너뛰곤 했습니다. 그 아이는 충분히 실수 없이 읽을 수 있는 능력이 있었습니다. 한번은 제가 마음속으로 ‘내가 너와 함께 읽을 테니 나처럼 정확하게 읽어보렴’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제 마이크는 꺼져 있었지만 머릿속으로 ‘난 내가 읽는 소리를 들을 수 있어. 내가 정확하게 읽을 테니 너도 나처럼 실수하지 않고 읽을 수 있을 거야’라고 생각했습니다.

놀랍게도 컴퓨터 너머의 어린 수련생이 법을 읽기 시작했는데 정말로 거의 실수를 하지 않았고 읽는 속도와 리듬도 저와 같아졌습니다. 제가 고쳐줄 필요가 없어서 그날 어린 수련생은 법을 읽으며 스스로도 성취감을 느꼈습니다.

이 경험에 놀랐습니다. 멀리 떨어진 어린 수련생이 마치 바로 옆에 있는 것 같았습니다. 저는 깨달았습니다. 원래는 아이의 실수를 찾아내는 데 집중하고 어떻게 부족한 점을 고쳐줄지에 관심을 뒀습니다. 물론 이것도 아이를 위한 것이었지만, 새로운 생각은 아이를 돕고 지지하며 반드시 잘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이었습니다. 제 정념으로 아이를 지지했더니 정말로 제 바람대로 되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진정으로 아이를 도운 것이라고 느꼈습니다. 아이는 제가 마음속으로 무엇을 생각했는지 영원히 모를 것이고 저도 말로 표현하지 않았지만, 아이는 최상의 상태를 보여주었습니다. 그 후로 저는 계속 이런 방식으로 다른 아이들과 법공부를 했고 그들도 모두 진보를 보였습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사람의 사상이 모두 물질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당신이 생각한 것이 모두 생각해서 이루어질 수 있고 당신이 해낸 말, 말한 것은 모두 형태가 있는 것으로 단지 당신이 보지 못할 뿐이지 일체는 모두 물질이다.”(미국동부법회 설법)

제가 깨달은 바로는, 아이들이 법을 읽도록 도울 때 그들을 성취시키고자 하는 마음과 진심으로 그들을 위해 생각하며 의념으로 그들을 지지하는 이런 순수한 생각은 바른 상태에 부합하며 출발점이 옳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아이들도 바르고 우수한 면을 보여줄 수 있습니다. 제가 이렇게 아이들의 법 읽기를 도울 때, 상대방은 제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를 수도 있고 알 필요도 없지만 효과는 좋았습니다.

이를 통해 많은 수련생이 교류에서 언급한 것처럼, 주변 환경이 자신의 거울이며 다른 수련생의 부족함을 보면 안으로 자신의 부족함을 찾아야 한다는 것을 떠올렸습니다. 다른 관점에서 보면, 다른 사람의 부족함을 보고 그들이 잘하지 못한다고 느낄 때면, 많은 경우 자신의 사상 속에서 보고 싶어 하는 것일 수 있고, 다른 사람에 대한 자신의 관념으로 인한 것일 수 있습니다. 자신의 사상을 순정하게 하고 진심으로 다른 사람을 위해 생각하며 다른 사람의 성취를 진심으로 기뻐한다면, 이는 선(善)의 상태에 부합하는 것입니다.

5. 서로 구조하다

플랫폼에서 함께 법공부를 하는 어린 수련생들은 전 세계 각지에서 옵니다. 뉴욕, 뉴저지, 샌프란시스코, 시드니, 토론토, 심지어 핀란드와 베트남에서도 옵니다.

중국어 ‘전법륜’ 외에도 아이들은 신경문도 배웁니다. 중공 바이러스로 인한 봉쇄 기간, 아이들의 매일 중국어와 영어 법공부 시간은 한때 3시간까지 늘어났습니다. 우리 그룹의 두 법공부 팀은 매주 수요일 저녁과 토요일 오전에 모이며, 이미 5년 가까이 지속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함께 법공부를 하던 어린 수련생들이 여러 가지 이유로 점차 떠나갔습니다. 학교 공부가 바빠서, 페이톈(飛天) 학교에 입학해서, 다른 법공부 팀에 참여하게 되어서, 또는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에 다니게 되어서였습니다. 다른 아이들이 계속 떠나도 저와 제 딸은 시간이 되면 온라인에 접속해 법공부를 했고 한 번도 중단하지 않았습니다.

우리 둘은 서로 격려하며 참여하는 사람 수에 상관없이 마음을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많은 경우 다른 수련생들이 참여하지 않을 때도 저는 딸에게 “다른 사람이 없어도 우리 둘이 공부하자”라고 말했고, 딸은 항상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다른 수련생들이 없을 때는 장점도 있었습니다. 딸이 종종 법공부 내용과 관련된 질문을 했고 우리는 함께 토론한 후 계속 공부했습니다.

계속 견지하다 보니 처음엔 제가 딸을 돕는다고 생각했는데 사실 저 자신이 많은 혜택을 받았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법을 읽는 과정에서, 특히 영어로 법공부를 할 때 저는 어휘력이 늘어났을 뿐만 아니라 영어 듣기와 표현 능력도 전보다 향상되었습니다. 또한 딸도 저에게 많은 도움을 주었습니다. 많은 경우 딸의 법공부 관련 의문에 답하면서 제 자신의 법에 대한 이해도를 점검하게 되었습니다. 딸은 때때로 제가 잘못 읽은 영어 발음을 반복해서 고쳐주었고, 제가 딸에게 보여준 인내심은 딸이 저를 고쳐줄 때도 그대로 나타났습니다. 제가 심성을 지키지 못할 때 딸도 법리로 저에게 안으로 찾으라고, 선해야 한다고 일깨워주었습니다. 이로 인해 저는 뿌듯함을 느꼈습니다.

사부님께서 “서로 구조(救助)”에 대해 말씀하실 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은 사부가 당신들에게 서로 구조(救助)하게 하고, 서로 사람을 구하는 동시에 자신을 구도하게 한 것인데, 이것은 말후에 중생들이 서로 구하는 것이다.”[험악(險惡)을 멀리하라]

어머니로서 사부님의 대법을 아이에게 알려주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책임입니다. 아이를 수련의 길로 인도하고, 한 생명이 대법의 지혜와 아름다움을 깨닫도록 일깨우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부모는 이 과정에서 단지 베푸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은 것을 얻습니다. 아이와 함께 법공부를 하는 것은 부모와 아이가 서로를 구조하는 과정입니다.

몇 년 전, 한 수련생이 저에게 일깨워주었습니다. 어린 수련생을 잘 이끄는 것은 장기적인 프로젝트이며, 부모로서 이 프로젝트에서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고 그 누구도 대신할 수 없다고 말입니다. 한 번 놓치면 보충하기 어려우니 정성을 다해 대법 어린제자를 이끌어야 하며, 유감을 남기지 말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맺음말

대법 어린제자를 이끌어 법공부하고 수련하게 하는 것은 장기적이고 끊임없이 실천하며 자신을 바로잡는 과정입니다. 이 말법 시기, 만마(萬魔)가 출현하는 극도로 악독한 세상에서 부모인 수련인으로서 아이들이 대법을 올바르게 인식하도록 이끌고, 사부님의 자비로운 보호를 느끼게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고 큰 책임입니다.

이상으로 대법 어린제자를 이끌며 법공부를 하는 과정에서 얻은 얕은 인식을 나누었습니다. 부족한 점이 있다면 자비롭게 지적해주시기 바랍니다.

(2024년 캐나다 법회 원고)

 

원문발표: 2024년 8월 10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4/8/10/48065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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