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 대법제자 양진(楊眞)
[명혜망] 저는 1997년에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 수련을 시작했습니다. 20여 년의 정법 수련 과정을 돌이켜보면, 업력으로 가득 찬 평범한 사람이 새 우주의 주(主)와 왕이 되어 우주 역사 속에서 영원히 존재하게 되기까지, 사부님께서 얼마나 많은 심혈을 기울이셨는지 모릅니다.
아래에 20여 년 수련 중 생사를 내려놓고 법을 실증한 세 가지 일화를 적어 사부님께 보고드리고 수련생들과 교류하고자 합니다.
1. 생사를 내려놓고 검은 소굴에서 탈출하다
2002년, 사부님의 ‘북미순회 설법’이 발표됐을 때 저는 유랑 중이었는데, 마침 현지 수련생들과 함께 단체로 법공부를 하고 교류할 기회가 많았습니다.
우리가 ‘북미순회 설법’을 얼마나 반복해서 공부했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많은 내용을 한 페이지 한 페이지 외울 수 있을 정도였습니다. 너무나 충격적이었습니다. 제 생명의 깊은 곳에서 저는 매우 분명하게 깨달았습니다. 저는 중생을 위해 온 생명이며, 중생을 구하기 위해 온 것이라고 말입니다. 생명이 존재하는 의미를 명확히 알게 됐습니다.
2002년 9월, 중공 ’16대’ 직전에 우리 지역 전체가 사악의 무차별적인 대대적 납치를 당해 20~30명의 수련생이 납치됐고, 대형 자료점의 수련생들과 협조인이 모두 납치됐으며, 저도 구치소로 납치됐습니다.
악질 경찰들은 ‘오리 떠다니기’ 고문(주: 피해자를 배를 바닥에 대고 사지를 들어 올리게 강요하는 고문)으로 저를 10여 일간 괴롭혔습니다. 그들이 하루만 더 견디면 저에 대한 박해를 포기하겠다고 마음먹었을 때, 저는 한계에 도달해 타협했고 그들이 파악한 상황을 인정했습니다.
그 후 며칠간 저는 극도로 후회했습니다. 이전에 명혜망 교류문에서 난관을 넘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 언급한 것을 보았는데, 하나는 사부님을 확고히 믿지 않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고통을 두려워하고 생사를 내려놓지 못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이 두 가지 면에서 수련하며 자신의 주의식(主意識)을 강화하고 반드시 사부님을 확고히 믿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안일을 추구하고 고통을 두려워하는 마음을 수련해 없애려고 주의했습니다. 저는 감히 느슨해지지 않고 매일 정성껏 법을 외우고 정념을 발하며 연공을 했습니다. 한번은 법을 암기하는 중에, 저는 우리가 이 세상에 와서 대법을 실증해야 한다는 것이 흔들림 없고 무너뜨릴 수 없다는 것을 단번에 깨달았습니다.
저는 2년 6개월의 강제노동 처분을 받았습니다. 어머니가 먼 곳에서 오셨고 현지 정법위 부서기도 왔는데, 제가 태도만 좋고 ‘전향(수련 포기)’하기만 하면 즉시 집에 갈 수 있다고 했습니다. 저는 거의 고민도 하지 않고 즉시 거절했습니다.
악명 높은 성(省) 여자 노동수용소에 도착했을 때 저는 이 검은 소굴을 해체하고 대법이 흔들리지 않음을 실증하겠다는 일념을 품고 있었습니다. 중대장이 저에게 말했습니다. “살려주되 살기 힘들게 하고, 죽이되 죽지 못하게 해서 살아도 죽은 것만 못하게 만들 거야. ‘전향’하지 않는 한 말이지.” 그들은 12명의 범죄자를 동원해 24시간 교대로 저를 감시했고, 수백 명을 인해전술로 동원해 강제로 사악한 말을 주입시켰으며, 저를 계단 사이의 작은 암실에 한 달 넘게 가두었습니다. 하지만 모든 수단이 저에게는 통하지 않았습니다.
수용소 중대장이 범죄자들을 시켜 노인 수련생을 구타하고 모욕하는 것을 막으려다 저는 보복을 당했습니다. 처음에는 발끝으로 바닥을 딛고 하루 밤낮을 수갑에 매달려 있었습니다. 이어서 4일 밤 동안 잠을 자지 못하게 했습니다. 저는 계속 법을 외웠습니다. 5일째 되는 밤, 중대장이 와서 제 ‘처참한 모습’을 보았는데, 저는 그녀에 대해 조금의 원망도 없었습니다. 그녀는 자기 아이 앞에서는 자애로운 어머니였고, 결코 무정하거나 의미 없이 사는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수용소에 와서 제복만 입으면 중공 악령이 그녀를 조종해 비인간적인 나쁜 짓을 하게 만들었는데 모든 것이 이익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녀가 매우 불쌍하다고 느꼈습니다. 저는 한편으로는 정념을 발하여 그녀를 조종하는 사악을 제거하고, 한편으로는 그녀가 선한 생각을 하도록 가지(加持)했습니다. 정념을 발하면서 그녀가 대법제자를 박해한 결과에 직면하게 될 것을 생각하니 눈물이 났습니다. 다음 날 아침 일찍, 그녀가 갑자기 와서 저에 대한 ‘전향’을 포기하기로 결정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이후 저는 비교적 한가롭고 조용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어느 날 낯익은 수련생을 만났는데 그녀가 조용히 제게 말했습니다. “옆 중대의 한 수련생이 단식하고 나갔어요. 만약 당신이 이 고통을 견딜 수 있다면 이 길을 시도해 볼 수 있어요.” 동시에 그녀는 사부님의 새로운 경문 ‘새해 문안’을 종이에 적어 저에게 주었고 저는 보물을 얻은 것처럼 기뻤습니다. 수련생의 말은 저에게 하나의 깨우침을 주었는데, 저는 마침 다음 단계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고 있었습니다. 저는 나가고 싶었고 나가는 것만이 근본적으로 사악의 배치를 부정할 수 있었습니다. 제가 여기서 하루 있으면 간수들이 하루 더 업을 짓게 됩니다. 그들이 대법제자 한 명을 적게 박해하면 그만큼 죄를 적게 짓게 됩니다.
저는 정법이 언제 끝나든 상관없이, 설령 내일 끝난다 해도 오늘 표준에 도달해야 한다는 것을 분명히 알았습니다. 제 머릿속에 매우 분명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당신은 서약을 했고 관건적인 시기에는 생명으로 법을 수호해야 한다.’ 맞습니다. 저는 서약을 했고 생명으로 서약을 이행해야 합니다. 저는 생사를 내려놓고 단식으로 나가기로 결심했습니다.
이 점을 깨달았지만 실천하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처음 직면한 것은 한때 타협했던 옛 수련생들의 각종 ‘동요’였습니다. 저를 찾아온 사람들 중 몇몇은 전에 단식을 해본 사람들이었는데, 그들은 이 길이 통하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어떤 이는 심지어 자신의 빠진 이를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그들의 여러 가지 말이 나오자마자 저는 그들이 실패한 이유를 보았습니다. 하나는 단식이 법을 실증하기 위한 것임을 이해하지 못하고, 이런 방식으로 간수들을 놀라게 해서 이런 방식으로 나가려고 생각한 것입니다. 둘째는 생사를 내려놓지 못하고 고통을 두려워하고, 죽음을 두려워하고, 이가 빠지는 것을 두려워한 것 등입니다. 그들의 설득은 오히려 저를 더 분명하게 만들었습니다. 단식은 바로 생사의 마음을 내려놓고 법을 실증하고 박해를 저지하는 것입니다.
제가 단식을 시작한 첫 7일간 간수들은 저에게 강제 음식물 주입을 하지 않았는데, 아마도 제가 스스로 고통을 겪고 끝내기를 바랐던 것 같습니다. 갈증을 참기 힘들 때는 세수할 때 몰래 물 한 모금을 마시고 싶었습니다. 그러면 아무도 모를 테니까요. 하지만 하늘의 신불(神佛)께서 모두 알고 계신다는 생각이 들자 편법을 쓰려는 마음을 가질 수 없었습니다. 곧이어 입 안에 달콤한 기운이 느껴졌고 갈증이 사라졌습니다. 저는 사부님께서 저를 도와주셨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배고플 때는 제가 먹는 것이 고에너지 물질이라고 생각하면 배고프지 않았습니다.
7일 후, 간수들은 저를 고통스럽게 하려고 범죄자들에게 매일 자궁확장기로 제 이빨을 벌리고 코를 잡고 강제로 음식물을 주입하라고 지시했습니다. 자궁확장기가 치아 틈새에 닿자마자 저는 무의식적으로 입을 벌렸고, 그러자 이가 자궁확장기에 의해 부러질 것 같은 느낌이 들었고 매우 고통스러웠습니다. 안으로 찾아보니 여전히 이가 빠지는 것을 두려워하고, 기구가 잇몸을 찌를 때 아픈 것을 두려워하고 있었습니다. 일단 이를 벌리면 그들은 주입할 수 있고 다음 단계를 통제할 수 없게 됩니다. 저는 스스로에게 물었습니다. ‘죽음도 두렵지 않은데 이가 빠지는 것을 두려워하는가? 아직도 고통을 두려워하는가? 아직도 외모에 영향을 미칠까 봐 두려워하는가? 두렵지 않다. 신은 금강불괴(金剛不壞)해야 하고, 내 치아도 금강불괴해야 한다.’ 저는 강제 음식물 주입이라는 이 고비를 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날 저는 미리 오랫동안 정념을 발해 저를 박해하는 요소들을 제거했습니다. 정오에 4명의 범죄자가 왔는데, 그중에 제가 아는 한 동향 사람이 있었고 평소에 저에게 호감이 있었습니다. 그녀가 자궁확장기로 제 치아 틈새를 벌리려 할 때 저는 제 치아가 금강불파라 벌릴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녀가 몇 번 시도해도 안 되자 간수가 잇몸을 찌르라고 신호를 보냈습니다. 그녀는 조금 마음이 약해져 힘을 주지 않았고 간수가 힘을 쓰라고 신호를 보냈습니다. 저는 마음속으로 ‘지켜내자, 지켜내자, 사부님께 도와달라고 청하자’라고 말했습니다.
일촉즉발의 순간, 갑자기 창밖에서 옆방의 한 수련생이 크게 외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대법제자를 박해하지 마라!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그 수련생은 연달아 세 번 외쳤습니다. 방 안의 사람들은 모두 이 외침에 놀랐고 저는 순간 정념이 충만해졌습니다. 그 범죄자는 자궁확장기를 든 손으로 대충 몇 번 그었고, 간수는 그녀에게 그만두고 다른 방법을 써보라고 했습니다.
그 이후로 그들은 강제 음식물 주입을 하지 않고 비위관 급식으로 바꿨습니다. 비위관 급식은 병원에서 혼수상태의 환자를 구하는 방식인데, 여기서는 대법제자를 고문하는 데 사용되었습니다. 저를 고통스럽게 하기 위해 간수는 특별히 손가락 굵기의 고무관을 코에서 위까지 삽입한 다음 주사기로 관에 물질을 주입하라고 지시했습니다. 제가 저항하지 못하도록 그들은 먼저 저를 병상에 수갑으로 묶었습니다. 매번 비위관 급식 후 관을 빼면 피가 묻어 나왔고, 범죄자들은 이를 보고 구역질을 하며 밥을 먹지 못했습니다. 하루에 두 번 비위관 급식을 했습니다.
그 후 간수는 사람을 보내 저에게 말했습니다. “보세요, 당신이 단식해서 무슨 소용이 있나요? 결국 먹을 수밖에 없잖아요. 이렇게 고통스럽게 먹느니 차라리 스스로 먹는 게 낫지 않나요?” 저는 이것이 심리적으로 저를 동요시키려는 것임을 알았습니다. 저는 생각했습니다. ‘표면적인 효과를 보는 게 아니라, 사악이 강제로 주입하는 것과 내가 스스로 먹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다. 사부님께서는 내가 일을 하시는 기점을 보신다.’
어느 날 간수가 저에게 물었습니다. “파룬궁은 자살하지 않는다면서 왜 당신은 밥을 먹지 않고 자살하려고 하나요?” 저는 말했습니다. “그것은 제가 이 극단적인 강제 환경 아래서, 어떤 행동의 자유도 없는 상황에서 취한 평화로운 표현 방식입니다. 제 고통으로 여러분의 양심을 일깨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간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저는 낮에도 서 있었지만 불편한 느낌이 없었고 몸이 가벼웠습니다. 저는 제가 대법의 한 입자로서 중생을 위해 고통을 감내하고 있다고 느꼈고, 간수들과 우리를 박해하는 모든 사람들이 매우 불쌍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며칠이 더 지나고 저는 생사를 내려놓고 비위관 급식도 저지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소극적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됩니다. 어느 날 정오에 그들이 저를 끌고 갈 때, 제가 전력으로 저항하는 과정에서 머리가 세면대에 부딪혀 큰 상처가 났습니다. 저는 머리가 어지럽고 몸이 가벼워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저는 오직 한 가지 생각뿐이었습니다. ‘사부님, 저는 정말로 생사를 내려놓았습니다. 죽어도 상관없습니다. 하지만 중생을 구하려면 인체가 필요합니다. 저는 인체를 잃어서는 안 됩니다.’
주위가 매우 시끄러운 것을 들었고 저는 수레에 실려 병원으로 들어갔습니다. 의사는 마취도 하지 않고 바로 제 머리를 두 바늘 꿰매고 거즈로 감쌌습니다. 제 머리에서 아직 피가 떨어지고 있었는데 그들은 저를 옆방으로 끌고 가 계속 비위관 급식을 했습니다.
저는 중대장이 소장에게 전화하고 다른 중대에 전화하는 것을 들었는데 그들은 저를 받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제가 다른 사람들의 ‘전향’에 영향을 미칠까 봐 두려워했던 것입니다. 중대장은 마지막에 화를 내며 제게 말했습니다. “당신 엄마를 불러 데려가게 해! 당신 엄마가 당신을 관리하게 하라고!” 다음 날 오후, 제 부모님이 천 리 밖에서 밤새 달려와 신속히 수속을 마쳤고 저는 ‘병보석’으로 수용소를 떠났습니다.
2. 생사를 내려놓고 중생을 구하다
정념으로 수용소를 나온 후 저는 체계적인 법공부를 통해 생사를 내려놓는 것에 대해 한 걸음 더 나아간 인식을 하게 됐습니다. 그것은 바로 사부님을 굳게 믿고 자신의 사심을 완전히 버리는 것이며, 저는 오직 사악을 폭로하고 진상을 알려 사람을 구하기 위해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2005년, 우리 지역의 8명의 수련생이 현 소재지에서 ‘9평(九評共産黨)’을 배포하다 경찰에 납치돼 불법 판결을 받을 위기에 처했습니다. 수련생 구출을 위해 교류하는 과정에서 수련생들은 우리 지역이 최근 2년간 현지 주민들에게 현지의 사악한 박해를 체계적으로 폭로하는 일을 비교적 전면적이고 상세하게 했지만, 공검법(공안, 검찰, 법원) 관계자들에게 진상을 알리는 일은 잘하지 못했고 돌파가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어떤 수련생은 우리가 직접 대도시 ‘610’, 정부 부서, 인민대표대회에 가서 수련생의 무죄 석방을 호소하고 진상을 알리자고 제안했습니다. 이 제안은 좋았지만 실행하기는 어려웠습니다.
저는 제가 나서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수련생의 일이 곧 제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오랫동안 이 한 걸음을 내딛지 못했습니다. 수용소를 떠나 밖에서 상대적으로 느슨한 환경에 있다 보니 이 ‘생사를 내려놓는’ 문제를 건드리고 싶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저는 오늘 직면한 정부 부서, 공검법 관계자들을 만나 진상을 알리러 나갈 수 있느냐 하는 것도 생사를 내려놓는 기준으로 자신에게 요구해야 한다는 것을 생각지 못했습니다. 제 가장 큰 우려는 사실 제가 박해받을까 봐 두려워하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사부님을 굳게 믿었을까요? 믿지 않았습니다. 정말로 생사를 내려놓았다면 아직도 박해를 두려워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저는 바로 생사를 내려놓는 마음으로 진상을 알리고 사람을 구해야 합니다.
며칠간의 단체 법공부와 교류, 소통을 거쳐 우리 몇몇 수련생은 하루 오전에 함께 나가 관련 부서를 찾아가 진상을 알리고 8명의 수련생을 구출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저와 협조인 A 수련생은 대도시 ‘610사무실'(장쩌민이 불법적으로 설립한 파룬궁 박해기구)에 가기로 배정됐습니다.
그날 오전, 현지의 많은 수련생이 앞다투어 나왔고 정부 기관이 있는 그 거리로 걸어갔습니다. 약 수십 명이 되었을 것 같습니다. 수련생들은 조용히 발정념을 했습니다. 저와 A는 직접 대도시 ‘610’으로 갔고 그 과장은 우리를 보고 매우 놀랐습니다. 우리가 온 의도를 설명하자 그는 곧바로 경찰을 부르겠다고 했습니다.
A는 그렇게 하지 말라고 설득하며 우리에게 악의가 없고 단지 상황을 반영하러 왔을 뿐이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좋은 사람들로 이뤄진 단체이며 선전하는 것과는 다르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조용히 과장을 향해 정념을 발했고 그가 전화를 걸지 못하게 했습니다. 그 과장은 계속해서 몇 번을 시도했지만 공안국의 전화를 연결하지 못하고 욕설을 하며 걸어갔습니다. 우리는 610을 떠나 밖을 보니 여전히 많은 수련생이 거리에서 발정념을 하고 있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날 몇 개 팀의 수련생들이 동시에 인민대표대회, 기율검사위원회, 신방(信訪, 청원) 부서 등을 찾아갔다고 합니다. 이번 집단 진정은 대도시 관련 부서에 큰 충격을 주었고 그들은 내부적으로 이를 하나의 사건으로 규정했습니다.
이후에 우리는 교류를 통해 그날의 진정 과정을 되돌아보며 그렇게 많은 수련생이 나와 협력한 것이 기뻤고, 게다가 우리가 사전에 그렇게 구체적으로 분업하지 않았다는 것에 감사했습니다. 그중 한 협조인 수련생은 이렇게 많은 수련생이 참여한 것을 보고 자발적으로 밖에서 연락을 담당했고, 다른 한 수련생은 다른 수련생들과 함께 인민대표대회, 기율검사위원회 등을 찾아갔습니다. 우리는 고밀도로 정념을 발하여 그들을 조종하는 사악한 요소를 해체하고 관련자들이 선한 생각을 하도록 했습니다.
이번 집단 진정으로 우리 시의 모든 정부 부서가 놀라 파룬궁 사건에 관심을 갖게 됐고 그들에게 진상을 알릴 기회를 주었습니다. 그 후 진정에 참여한 우리 모든 수련생 중 한 명도 박해받지 않았습니다.
3. 결과에 연연하지 않고 서약을 이행하다
정법 노정이 진전됨에 따라 저는 대법에 대한 인식도 점점 더 깊어졌습니다. 지금 저는 생사를 내려놓는 것이 더 많이 ‘삶’을 내려놓는 것이라고 인식합니다. 속인 사회에서 형성된 자신을 해치지 않으려는 완고한 관념을 내려놓고, 자아를 내려놓고, 인간 세상의 소위 안락한 생활을 내려놓아야 하는데, 오직 사람을 구하기 위해서입니다.
제가 퇴직 수속을 밟을 때 사회보장국 직원은 저에게 퇴직 수속을 밟을 수 없고 연금을 받을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제가 불법적으로 판결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성(省) 문건에 따르면 형을 살기 전의 20여 년의 근무 경력이 모두 무효가 된다고 했습니다. 이에 대해 저는 5년에 걸친 권리 수호 활동을 벌여 근무 경력을 인정받고 정상적으로 퇴직하려고 했습니다. 저는 인력자원사회보장부에 정보 공개를 신청해 근무 경력 인정에 유리한 내용이 있는 옛 서류 하나를 요청했습니다. 인력자원사회보장부가 저에게 서류를 주지 않아서 저는 법에 따라 인력자원사회보장부를 고소했습니다. 입안은 매우 순조로웠고 중급법원 행정재판부가 제 사건을 수리했습니다.
인력자원사회보장부가 관건이었고 사실 판사의 압력도 그곳에서 온 것입니다. 저는 인력자원사회보장부 관계자들의 정보를 찾지 못해 고민하고 있었는데, 우연히 최근에 온라인에 올라온 인력자원사회보장부 정보공개 지도자 팀 명단을 얻게 됐습니다. 이것이 바로 제가 필요로 하던 것이었고, 그 안에는 각 사(司)의 사장, 각 부서의 제1책임자들의 이름이 모두 있었습니다.
저는 이틀 밤에 걸쳐 제 상황을 반영하는 편지를 수정하고 진상을 알렸습니다. 그 안에는 제가 대법 수련 후 직장에서의 좋은 표현, 직장의 저에 대한 긍정적 평가, 파룬궁수련생에 대한 잔혹한 박해와 인과응보, 중공 바이러스(우한 폐렴) 유행 중 9자 진언이 생명을 구한 이야기 등을 언급했습니다. 저는 어조와 내용을 반복해서 숙고하여 평화롭고 선의적이며 간결하게 만들었습니다. 글쓰기에 능한 한 수련생에게 수정과 보완을 부탁한 후 이 20여 개의 사(司)와 부서 제1책임자들에게 편지를 보냈습니다.
편지를 보낸 후, 저는 일부 사람마음이 드러났습니다. 이 베이징 관리들에 대해 확신이 없었고, 그들이 파룬따파에 대해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지 몰랐습니다. 또한 명혜망에서 어떤 지역의 수련생이 선을 권하는 편지 하나 때문에 불법 판결을 받고 박해당한 일을 보았습니다. 저는 긴장하기 시작했고 이것이 두려운 마음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저는 제가 일을 하는 초심을 자세히 살펴보았습니다. 그들을 구하기 위한 것이었지만 동시에 그들이 저를 도와 좋은 결과를 얻기를 바라는 마음이 섞여 있었습니다. 저는 사적인 추구하는 마음을 가져서는 안 되며, 그저 그들의 좋은 점을 위해서여야 합니다. 동시에 저는 이렇게 우연히 이 명단을 발견한 것이 결코 우연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이것이 사부님께서 제가 그들을 구하도록 안배하신 것이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더 이상 두렵지 않았습니다.
사람이 악행을 저지르는 것은 배후의 요소가 조종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현지의 공용 우편함에 제가 재판하는 상황을 알렸습니다. 수련생들은 앞다투어 정념으로 가지하며 인력자원사회보장부 관련자들 배후의 사악한 요소들을 제거했습니다. 얼마 후 제 압박감은 많이 줄어들었습니다.
법원은 제 ‘정보공개 사건’에 대한 개정 시간을 계속 미루다가 결국 소송이 행정소송 수리 범위에 속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기각했습니다. 저는 계속해서 고급법원에 상소했고, 고급법원도 여전히 1심 기각을 유지했습니다. 저는 계속해서 최고법원에 재심을 청구했고 재심도 입안되었습니다.
상소와 재심 자료를 제출할 때 저는 이전에 1심 판사에게 썼던 선을 권하는 편지를 약간 수정해 이전 판사들의 행정 판결 오류가 제 합법적 권익에 심각한 영향을 미쳤고, 행정기관의 부작위를 조장했으며, 법에 따라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알렸습니다. 이를 위해 저는 이미 관련 부서에 관련 판사들을 고발했다고 말했습니다.
비록 최종 결과는 여전히 1심 판결을 유지하는 것이었고 이 결과는 제가 예상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 사건을 이용해 관련자들에게 진상을 알리고 그들에게 진상을 이해할 기회를 줄 수 있었습니다. 아마도 저는 아득히 먼 옛날에 이런 서약을 했을 것입니다.
사부님의 자비로운 보호와 안배에 감사드립니다. 제자는 때때로 처음에 생명으로 서명한 서약을 생각해야 합니다. 그래야 무감각해지거나 태만해지지 않고 더욱 정진하며 더 많은 사람을 구할 수 있습니다.
원문발표: 2024년 7월 25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4/7/25/475326.html
简体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4/7/25/475326.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