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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의 옥살이 재난을 피하다

글/ 중국 동북 대법제자 남천(藍天)

[명혜망] 1999년 ‘7·20’ 이후 사악한 당이 미친 듯이 파룬궁을 박해하던 시절, 우리 지역에서는 거의 매일 대법제자들이 박해를 당했습니다. 정말 먹구름이 도시를 뒤덮어 무너뜨리려는 듯했습니다.

(1)

2004년 4월, 지역 협조인들이 하나둘씩 납치됐습니다. 당시 저는 이 지역의 진상자료와 ‘명혜주간’ 전달 업무를 맡고 있었는데, 수련생들이 저더러 잠시 피하라고 권했습니다. 저는 생각했습니다. ‘내가 가면 누가 자료와 주간지를 전달하지? 그럼 수련생들이 어떻게 자료를 배포하고 교류문을 볼 수 있지?’ 저는 마음이 흔들리지 않고 제가 해야 할 일을 계속했습니다. 하지만 당시 저는 이미 특무(스파이)에게 미행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습니다. 이전에 전화가 도청당한 수련생과 연락했기 때문에 제 전화도 도청당했던 것입니다. 한 수련생 집에서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아 경찰에게 납치돼 구치소로 끌려갔고, 불법적으로 7년 형을 선고받았습니다.

구치소에 있는 동안 저는 매일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구치소는 내가 있을 곳이 아니야. 더욱이 감옥에 갈 수는 없어.’ 10월, 경찰이 저를 다베이 감옥으로 보내려 했습니다. 차에 앉아 저는 쉬지 않고 정념을 보냈습니다. ‘나는 다베이 감옥에 가지 않아. 나에겐 해야 할 일이 있어.’ 감옥에서 신체검사를 할 때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혈압이 170까지 치솟았고 심근에 심각한 허혈 증상이 나타났습니다. 의사가 갑자기 물었습니다. “가족 중에 전염병 환자가 있나요?” 저는 대답했습니다. “어머니가 간 복수로 돌아가셨어요. 오빠는 지금 간경화예요.” 의사는 이 말을 듣자마자 펜을 휘둘러 ‘수감 거부’라고 적었습니다. 구치소 경찰은 즉시 상관에게 전화를 걸어 감옥에서 수감을 거부했다고 말했습니다. 상관은 다른 병원에 가서 다시 검사해보라고 했는데, 목적은 저를 다베이 감옥에 보내려는 것이었습니다. 이때 구치소의 다른 책임자가 말했습니다. “감옥에서 이미 수감을 거부했는데 어디 가서 검사해도 받아줄 리가 있겠습니까?” 할 수 없이 저를 다시 구치소로 데려갔습니다.

한 달 후, 저는 ‘감옥 외 집행’으로 변경되어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2)

2014년 4월 15일, 지역 법원 등 4명이 아무런 이유 없이 우리집에 와서 저에게 3년 형을 선고했습니다. 당시 저는 몸이 좋지 않아 마침 침대에 누워 쉬고 있었고, 남편(수련생)도 몸이 좋지 않아 소파에 앉아 있었습니다. 4명이 집에 들어와서는 아무 말도 없이 종이 한 장을 던져놓고 갔습니다. 보니 판결문이었는데, 저와 남편에게 동시에 3년 형을 불법적으로 선고한 것이었습니다. 얼마나 우스꽝스럽고 황당한 일인지요. 아무런 설명도 없이 저와 남편이 파룬따파를 수련하고 좋은 사람이 되기로 했다는 이유만으로 집에 들어와 3년 형을 선고한 것입니다. 하지만 사부님의 보호 아래 우리는 감옥에 가지도 않았고 우리를 관리하러 온 사람도 없었습니다. 이렇게 아무 일도 없이 3년이 지나갔습니다.

(3)

2021년 5월 어느 날, 저는 코로나 검사소에 핵산 검사를 받으러 갔습니다. 당시 중공 악당은 모든 사람이 검사를 받아야 한다고 요구했고 그렇지 않으면 어떻게 하겠다고 했습니다. 핵산 검사를 마치자마자 사복 경찰 한 명이 저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이 아무개입니까?” 저는 대답했습니다. “네, 맞아요.” 사복 경찰이 말했습니다. “저와 함께 파출소에 가주시겠어요?” 당시 저는 매우 의아해서 물었습니다. “파출소에 가서 뭘 하나요?” 사복 경찰이 말했습니다. “좀 볼 일이 있어서요.” 파출소에 도착하자 소장이 말했습니다. “B구 공안국에서 당신을 찾고 있어요.” 이 말을 듣고 저는 마음이 좀 흔들렸습니다. B구 공안국은 줄곧 대법제자들을 매우 사악하게 박해해왔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곧바로 이 두려운 마음을 부정했습니다. ‘이건 좋은 일이야. 시련이 왔어.’ 이 시간 동안 저는 네 명을 탈당시키기도 했습니다. 8시가 지나 B구의 국보 대대장이 파출소에 와서 저를 이웃 도시의 구치소로 보내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전염병 기간이라 체온 검사가 가장 중요했습니다. 국보 대대장은 어쩔 수 없이 저를 먼저 큰 병원으로 데려가 전신 검사를 했습니다. 결과는 혈압이 약간 높은 것 외에는 모두 정상이었습니다. 그 후 저를 이웃 도시의 구치소로 데려갔습니다. 구치소에 들어가기 전에 다시 체온을 쟀는데, 결과가 37.4도였습니다. 연속 세 번 쟀는데 모두 37.4도였습니다. 구치소에서 신체검사를 하는 사람이 말했습니다. “어쩔 수 없네요. 우리는 받을 수 없어요.” 이때 국보 대대장이 말했습니다. “방금 할머니가 차 안에 앉아 있어서 더웠을 거예요. 잠시 밖에서 시원하게 있으면 괜찮아질 거예요.” 저는 그에게 협조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여기 앉아 있지 않겠어요”하고 말하며 일어나 걸어가려고 했습니다. 국보 대대장은 다시 차를 몰고 저를 다른 파출소로 데려가 철창에 가뒀습니다. 문 앞에는 두 사람이 지키고 있었습니다. 이때가 이미 자정 12시 30분쯤이었습니다. 저는 어렴풋이 잠깐 눈을 붙였는데 날이 밝았습니다.

어제의 음모가 실패로 돌아갔지만 사악한 자들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여전히 저를 구치소에 보내려고 했고 저를 큰 병원으로 끌고 가 다시 한번 전신 검사를 했습니다. 결과는 모두 정상이었습니다. 이때 여경 한 명이 말했습니다. “구치소의 온도계가 고장 났나 봐요. 여기서 검사하니까 정상이네요.” 구치소로 가는 길에 하늘도 분노한 듯 폭우가 쏟아져 차 지붕을 ‘팍팍’ 때렸습니다. 앞 유리의 와이퍼가 최대 속도로 움직이고 있었지만 여전히 도로가 잘 보이지 않았습니다. 구치소 문루 앞에 도착하자 안에 있던 사람이 말했습니다. “우리는 이제 받지 않습니다.” 정말 어쩔 수 없게 되자 국보 대대장은 저를 다시 국보 대대로 데려가 다른 부서들과 연합해 ‘6개월 거주지 감시’ 문서를 작성해 저에게 주고 집으로 돌려보냈습니다.

‘6개월 거주지 감시’에 대해 저는 아무런 개념도 없었고, 줄곧 제가 해야 할 일을 했으며 이 일을 까맣게 잊고 있었습니다. 2년이 지났고, 사부님의 세심한 보살핌 아래 저는 사부님께서 안배해주신 수련의 길을 평온히 걸어왔습니다.

 

원문발표: 2024년 8월 21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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