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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사신법으로 구세력의 강요된 고난을 돌파하다

글/ 중국 대법제자 금휘(金輝)

[명혜망] 저는 올해 46세이며 1998년에 법을 얻어 수련하게 되었습니다. 사부님의 자비로운 보호 아래 오늘까지 걸어왔으며 사부님께 감사드리는 마음을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습니다. 제가 박해에 반대하며 진상을 알리고 사람을 구하면서 구세력이 강요한 시련을 돌파한 경험을 적어 사부님께 보고드리고 수련생 여러분과 교류하고자 합니다.

1년 넘게 유랑 생활을 하다가 2020년 말에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섣달 스무여드렛날 저녁 8시가 조금 넘어 제가 침실에서 법공부를 하고 있을 때, 공안 대대 부대장이 10여 명을 이끌고 제 집에 들이닥쳤습니다. 사진도 찍고 동영상도 찍었습니다. 그들은 제 양손을 뒤로 수갑을 채우고, 시어머니를 거실 소파로 끌고 가서 모든 방을 샅샅이 뒤지더니 대법 서적 두 권을 빼앗은 후 저를 문밖으로 끌고 나갔습니다.

저는 ‘XX 파출소’로 끌려갔는데, 실제로는 여러 공안 기관의 사무실이었습니다.

어디를 가든 진상을 알리다

다음 날 오전 10시쯤 그들은 저를 끌고 가서 코로나 검사를 한 후 시내의 한 병원으로 데려가 신체검사를 했습니다. 저는 모든 기회를 이용해 사람들을 구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병원에서 만나는 사람마다 진상을 알렸습니다. 가장 안쪽 과에서부터 시작해 채혈, 소변검사, 혈압 측정, X-레이 촬영, CT 검사 등을 하면서 복도에서 진료받으러 온 사람들과 의료진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러분은 최전선에 있어 전염병이 오면 가장 위험합니다.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真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를 기억하세요. 이렇게 하면 전염병과 같은 재난을 피할 수 있습니다. TV에서 방영한 이른바 ‘천안문 분신 사건’은 장쩌민이 파룬궁을 탄압하기 위해 만든 거짓말입니다. 절대 믿지 마세요!” 어떤 사람들은 “감사합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검사를 받으면서 저는 사부님께서 대법제자는 모두 공능(功能)이 있다고 하신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저도 공능을 사용해 검사 결과를 엉망으로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다섯 명의 경찰이 멍하니 저를 따라다녔는데, 마치 제 수행원처럼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제가 진상을 알리는 것을 방해하지도 않았습니다.

복도 끝에 있는 사무실에 의사 두 명이 있었는데, 한 명은 원장처럼 보였습니다. 저는 들어가서 말했습니다. “의사 선생님 안녕하세요. 저는 범죄자가 아닙니다(당시 제가 수갑을 차고 있었습니다). 저도 전에는 사장이었는데 가게에 파룬궁 진상 달력 하나를 놓았다는 이유로 여기까지 끌려왔습니다. 파룬궁은 불법(佛法)이며, 이미 100여 개국에 널리 전해졌고 《전법륜》은 40개 언어로 번역되었습니다. TV에서 방영한 ‘천안문 분신 사건’은 거짓 선전이며 파룬궁을 탄압하기 위한 구실을 만들어낸 것입니다. 여러분 절대 믿지 마세요! 지금 각종 재난이 일어나고 있고 전염병이 만연하고 있는데, 여러분은 가장 위험한 곳에 있습니다.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 구절을 외우면 전염병과 재난을 피할 수 있습니다!” 당시 그 의사는 마스크를 쓰고 있었는데 제 말을 듣고 눈이 휘둥그레졌습니다. 그는 아마도 ‘이런 상황에서도 어떻게 이렇게 말할 수 있지?’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는 우리에게 옆방에서 결과를 기다리라고 했습니다.

나이 든 경찰이 저를 원장실로 불러 의사에게 말했습니다. “이 사람이 중병에 걸린 것 같아 보이나요?” 그 의사는 저를 가까이 부르더니 저를 앉히고 동정 어린 목소리로 물었습니다. “평소에 건강이 안 좋으셨나요?” 당시 저는 속으로 무슨 일인지 알았지만 그들이 거짓말을 할까 봐 의사에게 말했습니다. “여러분은 과학을 믿지 않나요? 검사 결과가 어떠하면 그대로 하세요. 선행을 베풀고 좋은 일을 하세요!” 사실 의사들은 이 검사 결과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다 알고 있었습니다.

이 경찰들은 서리 맞은 가지처럼 축 처져서 한 명 한 명 기운이 빠져 보였습니다. 나이 든 경찰은 계속 상관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그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저는 계속 마음속으로 정념을 발하며 한시도 방심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저를 어떤 파출소로 데려가 제 신체검사 보고서를 감정하러 보냈는데, 이때가 이미 오후 2시가 넘었습니다. 설이 다가오고 있어서 그들은 차에 해바라기씨, 땅콩, 과일, 우유 등 간식을 가져왔습니다. 몇몇 경찰이 저에게 먹으라고 하며 목마르거나 배고프지 않냐고 물었습니다. 저는 “목마르지도 배고프지도 않아요. 감사합니다. 집에 가서 먹을래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들은 더 이상 처음처럼 오만하지 않았습니다.

저녁 7시가 넘어 그들이 신체검사 보고서를 갖고 와서 저를 구치소로 데려갔습니다. 경찰이 신체검사 보고서를 건네주고 차 안에서 결과를 기다렸습니다. 제 손은 계속 수갑이 채워져 있었는데, 이때 오른손을 빼니 또 빠져나왔습니다. 이것이 벌써 세 번째였습니다. 갑자기 깨달았습니다. 이는 사부님께서 저에게 암시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어느 곳도 저를 잡아둘 수 없고 가둘 수도 없다는 것을요. 사부님께서는 제가 이 고비를 넘을 수 있다는 것을 아셨습니다. 저는 계속 정념을 발했습니다.

한 시간이 지나고 안으로 사람들이 모두 들어갔습니다. 한 간수가 신체검사 보고서를 나이 든 경찰에게 돌려주었고, 그들은 모두 바람 빠진 풍선처럼 고개를 떨구고 차로 돌아왔습니다. 한 경찰이 동정 어린 슬픈 눈빛으로 저를 바라보았는데 저는 그의 선한 마음이 나온 것을 알았습니다. 그는 제 건강을 걱정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방심하지 않고 계속 정념을 발하며 악을 제거하고 사부님께 가지(加持)를 청했습니다.

그들은 저를 파출소로 데려가 왼손 수갑을 풀었고 나이 든 경찰이 저더러 1층에 잠깐 앉아 있으라고 했습니다. 저와 함께 앉아 있던 한 경찰이 동정 어린 말투로 말했습니다. “당신 병이 매우 심한데 어떡하죠?” 저는 말했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저는 신앙이 있으니 아무 일도 없을 거예요.” 저는 그에게 많은 진상을 알렸습니다. 이야기하던 중 나이 든 경찰이 내려와 저에게 말했습니다. “가족들이 당신을 데리러 왔어요. 이 표에 서명하면 갈 수 있어요.” 보니 ‘건강상의 이유로 자택 감시’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제가 서명하지 않는 게 좋겠어요. 서명하면 당신에게 좋지 않아요.” 그도 저에게 서명을 강요하지 않았고 저는 그렇게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이미 섣달 스무아흐레 밤 10시 30분이었고 제가 강제로 납치되어 집을 떠난 지 꼬박 26시간이 지난 후였습니다. 시어머니는 제가 집에 돌아와 설을 보낼 수 있다고는 전혀 생각지 못하셨고 저를 보고 기쁨의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2021년 6월 어느 날 오전, 치안 대대의 사복 경찰 몇 명이 또 왔습니다. 대문이 잠기지 않아 그들이 곧바로 집 안으로 들어와 저더러 그들과 함께 가자고 했습니다. 한 사복 경찰이 신분증을 꺼내 흔들어 보이기도 했습니다. 당시 딸이 마침 집에서 쉬고 있었는데, 그들이 아이에게 말하기를 저를 데리고 가서 질문하고 다시 데려다준다고 했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당신들은 모두 사복 차림인데 당신들이 누군지 알겠어요? 누가 당신들에게 사복 차림으로 법을 집행하라고 허락했나요? 소환장 있어요? 있다면 제게 보여주세요!” 그들은 제가 거기 앉아서 움직이지 않는 것을 보고 두 사람이 저를 강제로 끌고 나갔습니다. 저는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 경찰이 좋은 사람을 박해하고 있어요!” 제가 협조하지 않자 한 사복 경찰이 다시 수갑을 꺼내 제 양손을 뒤로 수갑을 채웠습니다.

그들은 저를 강제로 데리고 가서 핵산 검사를 했습니다. 병원에 들어서자마자 저는 계속해서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 경찰이 좋은 사람을 박해하고 있어요!” 대기실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놀라서 저를 쳐다보았습니다. 그들은 저를 작은 사무실에 가두고 강제로 채혈했으며, 코 검사와 다른 검사들을 했습니다. 의사를 만날 때마다 저는 제가 박해받고 있다고 말하고 ‘천안문 분신 사건’이 거짓 선전이라고 알렸습니다.

두 명의 경찰이 저를 끌고 나갔습니다. 그들은 저를 수갑 채운 채로 파출소로 데려갔습니다. 가는 길에 저는 그들에게 진상을 알렸고, 국가신문출판총서의 ‘제50호령’으로 파룬궁 서적과 음향 제품에 대한 출판 금지령이 철회되었다는 것과 ‘공통자[2000]39호’ 문건에서 인정한 14개 사이비교에 파룬궁이 포함되지 않았다는 것, 그리고 현재 정법(政法) 계통 내부에서 정돈이 있어 공안, 검찰, 법원, 사법 인원의 위기 위법 행위에 대해 20년 전으로 거슬러 조사한다는 것을 알려주었습니다. 그리고 더 이상 나쁜 짓을 하지 말라고 경고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 결과는 자신이 책임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파출소에서 그들은 저를 유치장에 가뒀습니다. 점심시간이 되어 그들은 모두 식사하러 갔고 한 여자 보조경찰만 남아 저를 지켰습니다. 화장실에 가고 싶다고 하자 그녀가 제 수갑을 풀고 데리고 갔습니다. 한번은 그들에게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 구절을 기억하고 그러면 전염병과 재난을 피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또 ‘천안문 분신 사건’은 장쩌민이 파룬궁을 탄압하기 위해 만든 거짓 사건이니 절대 믿지 말라고 했습니다.

오후 1시가 조금 지나 두 명의 경찰이 저를 방으로 불러 해당 기간 어디에 있었는지 물었고 자료를 꺼내 서명하라고 했습니다. 저는 그들에게 말했습니다. “저는 서명하지 않을 겁니다. 서명하면 여러분에게 좋지 않아요. 할 말은 다 했으니 더 이상 나쁜 짓 하지 마세요. 업보가 오면 늦습니다.” 그 둘은 저를 강요하지 않고 자료를 치웠습니다.

오후 2시 30분, 그들은 저를 집으로 돌려보냈습니다. 시어머니의 눈물로 붉어진 눈을 보고 한참 동안 위로했습니다. “보세요, 제가 이렇게 무사히 돌아왔잖아요.” 시어머니는 제가 이번에는 돌아오지 못할 줄 알았다고 합니다. 잠시 후 시동생도 급하게 돌아왔는데, 제가 집에 있는 것을 보고 매우 놀랐지만 저와 말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대법 수련을 고수한다고 그가 이해하지 못해 시어머니에게 저와 말하지 말라고 했고 시누이에게도 저를 상대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중국공산당이 사람을 해치니 연루되어 박해받을까 봐 그는 그렇게 한 것입니다.

열흘 후 어느 날 오후 1시, 치안 대대 사람 넷이 또 우리집에 들이닥쳤는데 18살 된 딸이 집에서 쉬고 있었습니다. 지난번에 딸 앞에서 저를 끌고 간 탓에 딸이 울음을 그치지 못했습니다. 저는 이번에는 딸이 또 놀라지 않게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아이에게 말했습니다. “엄마 금방 다녀올게. 걱정하지 마.” 사실 이번에도 소환장이 없었습니다. 저는 옷을 갈아입고 그들과 함께 차에 탔고 가는 내내 정념을 보냈습니다.

그들은 저를 모 현 검찰원으로 데려갔습니다. 차에서 내린 후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진상을 알리고 생명을 구하는 9자 진언(眞言)을 알려주었습니다. 경찰이 아무리 저를 끌고 가려 해도 저는 기본 진상을 다 알려주었습니다. 한 사무실에 들어가 보니 여검사 두 명이 있었는데 매우 익숙해 보였습니다. 저는 그들에게 제 귀가 잘 안 들려서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하니 너무 서두르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들은 무언가를 출력해 제게 서명하라고 했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서명하면 여러분에게 좋지 않아요. 나중에 파룬궁이 명예회복될 때 이것이 여러분이 박해에 가담한 증거가 될 겁니다. 그때 여러분에게 책임을 물을 거예요.” 그들은 말했습니다. “우리는 두렵지 않아요. 서명하세요.” 저는 관련 법률 문건을 들어 파룬궁은 사이비교가 아니며 중국에서 합법적이고, 박해가 불법이라고 말하며 서명을 거부했습니다.

마지막으로 그들이 또 종이 한 장을 건넸는데 보니 불법 소환장이었습니다. 저는 침착하게 말했습니다. “저는 이것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저에 대한 박해는 불법입니다.” 그리고 즉시 그것을 찢어버렸습니다.

11일 후 오후 1시가 조금 지나 치안 대대 부대장이 사복 경찰 한 명과 여자 보조경찰 두 명을 데리고 또 집에 왔습니다. 저는 문을 열어주지 않고 철문 작은 창을 통해 무슨 일로 왔냐고 물었습니다. 그 사복 경찰이 모 현 소재지에 가서 기소장을 가져와 서명을 받으러 왔다고 했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당신이 모 현 소재지에 가든 어디를 가든 왜 미리 알려주지 않았나요? 정식 절차를 밟아오세요!”

부대장이 시동생에게 전화를 걸어 시어머니에게 문을 열라고 하더군요. 시어머니는 그들의 꼬임에 넘어가 열쇠를 주셨습니다. 하지만 제가 문 앞을 지키고 있어서 그들이 열쇠를 가져와도 문을 열 수 없었습니다. 그 부대장이 저를 속이려고 떠나는 척했습니다. 저는 집 안으로 들어갔고 시어머니가 내려와 그들이 열쇠를 속여 가져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듣자마자 돌아가 문을 열고 자물쇠를 바꾼 뒤 방으로 돌아왔습니다. 막 옷을 갈아입으려는데 누군가 방문을 두드리더군요. 옷을 다 입고 나가보니 그들이었습니다. 저는 따졌습니다. “당신들은 어떻게 들어온 거죠? 당신들 강도 아닙니까?”

저는 또다시 모 현 법원으로 끌려가 소위 법적 절차를 밟게 되었습니다. 법정의 한 법정에서 남녀 법경 두 명이 기소장을 내밀며 보라고 했는데 전부 날조된 말뿐이었습니다. 서명하라고 하길래 저는 거부하며 박해는 불법이고 죄가 있는 것이며 앞으로 법적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제 목소리가 커서 여러 법경이 문 앞에서 안을 들여다보았습니다. 오후 4시 30분에야 이 무리가 저를 집으로 데려다주었습니다. 차에서 내릴 때 저는 그 부대장에게 경고했습니다. “당신의 법 집행 위반과 불법 범죄 행위를 고소하겠습니다.” 집에 돌아와서야 알았는데 그들이 우리집 문 잠금장치를 강제로 부수고 들어왔더군요. 정말 강도와 다름없었습니다.

시어머니가 말씀하셨습니다. “봐, 그들은 열쇠가 없어도 들어왔잖아.” 저는 참을성 있게 그러나 엄중하게 말씀드렸습니다. “그들이 강제로 자물쇠를 부수고 들어온 것은 강도 행위예요. 죄는 그들에게 있어요. 만약 어머님이 그들을 도와 들어오게 했다면 어머님도 공범이 되는 거예요. 문제가 생기면 어머님에게도 책임이 있게 돼요. 제가 그들에 협조하지 않은 것은 사부님 말씀을 따르는 거예요. 그들이 저를 강제로 끌고 가는 건 그들이 범죄를 저지르는 거예요.” 이 말을 듣고 시어머니는 이해하신 것 같았습니다.

이번에 법원으로 끌려갔을 때 마음이 좀 흔들렸습니다. ‘또다시 유랑 생활을 해야 하나?’라고 말이죠. 하지만 저는 곧바로 그 생각을 부정했습니다.

자신을 위한 무죄 변호

저는 다음 단계로 불법 개정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알고 변호사 의견서를 직접 쓰기로 했습니다. 수련생의 교류문을 보니 개정 전에 변호사 의견서를 박해에 가담한 관련 기관과 부서에 보내야 한다고 했습니다. 저는 친척들에게도 한 부씩 보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는 사람을 구하는 좋은 기회였습니다. 악한 세력의 박해로 인해 2년간 저는 유랑 생활을 해야 했고, 원래 제 수련을 반대하지 않던 친정 식구들과 시댁 식구들도 저를 멀리하고 왕래하지 않으며 파룬궁 이야기를 꺼내지 못하게 했습니다. 이제 좋은 기회가 왔습니다. 당당하게 그들에게 전달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제가 변호사 의견서를 쓰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해 수련생이 관련 자료를 찾아주었는데, 매우 포괄적이고 이미 만들어진 견본도 있어서 정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저는 빨리 변호사 의견서를 썼고, 수련생이 수정을 도와준 후 수십 부를 인쇄했습니다. 수련생은 등기우편으로 보내라고 제안했습니다.

그날 오후 저는 전동 스쿠터를 타고 우체국에 갔습니다. 속달 우편을 보내고 싶다고 하자 직원이 양식을 주며 작성하라고 했습니다. 변호사 의견서는 책상 위에 놓여 있었습니다. 그 사람이 집어 들고 보더니 안에 파룬궁이라는 글자가 있다며 보낼 수 없다고 했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이것은 제가 법정에서 공개 낭독할 글인데 어떻게 보낼 수 없나요?” 그가 말했습니다. “우리는 규정이 있어서 보낼 수 없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당신이 보내주지 않으면 제가 직접 전달하러 가겠습니다. 하지만 당신이 이해하길 바랍니다.” 그래서 저는 우체국 직원에게 진상을 알리고 건강과 평안을 빌어주었습니다.

나중에 저는 직접 관련 인사들과 친척들에게 전달했습니다. 먼저 치안 대대에 갔는데 안에 사람이 많았습니다. 들어가서 물었습니다. “모 부대장 계신가요?” 그들은 없다고 했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제가 그에게 변호사 의견서를 전하러 왔어요. 여러분도 한번 보세요.” 그리고 몇 마디 진상을 알렸더니 그때 바로 누군가 변호사 의견서를 보기 시작했습니다. 옆방에 갔더니 마침 저를 동정했던 젊은이가 거기 있었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대장님께 변호사 의견서를 전하러 왔어요.” 그가 받아서 바로 읽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또 말했습니다. “당신에게 이렇게 많이 이야기했으니 빨리 당, 단, 대를 탈퇴하세요. 삼퇴(三退)하면 평안합니다.” 그 젊은이가 저를 보고 웃었습니다.

동쪽은 형사대 사무실이었습니다. 들어가서 일부러 물었습니다. “모 부대장님 여기 계신가요?” 그들이 서쪽 사무실에 있다고 했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제가 그분께 제 변호사 의견서를 전하러 왔어요. 파룬궁을 박해하지 말라고 여러분께도 알려드리고 싶어요. 파룬궁은 불법(佛法)이고 ‘천안문 분신 사건’은 거짓 선전이니 속지 마세요. 제가 여러분께 변호사 의견서를 한 부 남겨드릴 테니 한번 보세요.” 이때 누군가 말했습니다. “우리는 그 일을 관여하지 않아요. 그분을 찾아가세요.” 그러면서 저를 쫓아냈습니다.

저는 또 국장과 소장에게 전달했습니다. 3층에서 내려와 어떤 사무실에 들어가 물었습니다. “소장님 어디 계세요?” 그들이 제게 무슨 일로 왔냐고 물었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제가 원래 이 거리에서 장사했는데 지금은 저를 법원으로 끌고 갔어요. 곧 개정인데 소장님께 책임이 있으니 진상을 알려드려야 해요. 제가 그분께 변호사 의견서를 전하러 왔어요. 여러분께도 한 부 남겨드릴게요.” 그러면서 그들에게 한 부를 놓고 기본적인 진상을 알렸습니다. 한 사람이 저에게 말했습니다. “소장님이 매우 바쁘셔서 지금은 만날 수 없어요. 1층 대기실에 두고 가세요. 그들이 전달해드릴 거예요.” 저는 “감사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대기실에 들어가서 소장님께 전할 편지가 있다고 했더니 당직자가 말했습니다. “우리는 받지 않아요. 직접 3층으로 가서 전해주세요.”

이때 밖에서 보조경찰 한 명이 들어왔는데 매우 험악한 표정이었습니다. 그는 대법제자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당신 주머니에 뭐 들었죠?” 저는 말했습니다. “다 제 변호사 의견서예요. 보고 싶으세요? 한 부 드릴게요.” 그가 말했습니다. “안 봐, 당신은 못 가!” 그러면서 문을 닫았는데 저를 붙잡으려는 태세였습니다. 저는 당직 의자에 앉아 생각했습니다. ‘아직 임무를 완수하지 못했어. 국장님과 소장님께 드릴 것을 아직 전하지 못했잖아.’ 이때 3층에서 그 경찰이 내려왔습니다. 저는 서둘러 그에게 말했습니다. “여러분이 저를 공처럼 이리저리 차는군요. 여러분이 전달해주지 않으시면 국장님과 소장님이 어디 계신지 알려주세요. 제가 직접 전하러 가겠습니다. 시민이 일을 처리하는 게 이렇게 어려운가요?” 그 경찰이 받아 들고 보더니 봉투에 국장과 소장 이름이 적혀 있는 것을 보고 말했습니다. “제가 전해드리죠.” 그리고 그 보조경찰에게 지시했습니다. 그의 전화를 받고 나서 저를 보내라 했습니다. 저는 앉아서 기다렸고 그 보조경찰은 여전히 화가 난 듯했습니다. 제가 뭐라고 해도 듣지 않았습니다. 약 10분이 지나고 위층에서 전화가 와서 저를 보내라고 했습니다. 저는 아마도 편지가 모두 전달되었구나 생각하며 마음속으로 합장했습니다. ‘사부님 감사합니다!’

제가 막 나가려는데 바깥쪽 문 경비가 저를 막으며 모 부대장이 곧 도착할 테니 몇 분만 기다리라고 했습니다. 한 사복 경찰이 저를 입구 당직실로 데려갔고 저는 그 부대장에게 물었습니다. “언제 불법 개정하나요? 저는 이미 변호사 의견서를 준비했어요. 가져왔으니 한번 보세요.” 그리고 그 사복 경찰에게 말했습니다. “당신도 보세요. 아까 제가 4층에 가서 당신을 찾았더니 그만뒀다고 하더라고요. 당신이 빨리 조사를 받은 줄 알았어요!”

저는 길에서 과일 선물을 사서 과일 파는 부부에게 진상을 알리고 호신부(護身符)를 주고 바로 삼촌 댁으로 갔습니다. 삼촌이 마침 혼자 계셨는데 저를 보고 좀 놀라셨습니다. 저는 삼촌께 현재 제가 불법 개정에 직면해 있다고 말씀드리고 많은 진상을 알려드렸습니다. 제가 왜 파룬궁 수련을 고수하는지 말씀드리고, 마지막으로 제가 아버지와 동생에게 쓴 편지를 전해달라고 부탁드렸습니다.

다음날 저는 모 현 검찰원에 변호사 의견서를 전하러 갔습니다. 버스에 탄 후 갑자기 생각났는데, 정류장 근처에 세워둔 전동 스쿠터 열쇠를 빼지 않았더군요. 마음이 급해졌지만 곧 안정을 찾았습니다. ‘내 것이라면 잃어버리지 않을 거야. 전동 스쿠터는 내 법기(法器)이고 영성이 있어 잃어버리지 않을 거야.’ 저는 서둘러 정념을 보내 사람 구하는 데 영향을 미치는 사악을 제거했습니다.

검찰원에 도착하자 수위가 백신을 맞지 않은 이유를 적으라고 하면서 고혈압이라고 적으라고 했습니다. 저는 대법제자는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서 시간이 없었다고 적었습니다. 그가 들어가지 못하게 하면서 누구를 찾느냐고 물었습니다. 저는 2층의 모모 씨를 찾는다고 했습니다. 그가 그 사람에게 전화를 걸었는데 상대방이 말했습니다. “그녀를 오라고 하지 않았는데요.” 저는 말했습니다. “맞아요, 저를 오라고 하지 않았지만 그분이 제 사건을 담당하고 있어요. 저는 곧 불법 개정을 당할 텐데 그분에게 책임이 있어서 제가 변호사 의견서를 전하러 왔어요.” 저는 수위에게 말했습니다. “그럼 제가 들어가지 않을게요. 여기에 편지를 두고 갈 테니 그분이 직접 가져가게 해주세요. 이건 매우 중요해서 꼭 그분께 전달되어야 해요.”

전에 수련생들은 모두들 제가 피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저는 피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저는 이 박해를 중요하게 여겨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것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대법제자는 사람의 관념에 좌우되어서는 안 되며, 불법 개정을 당하면 어떻게 될 거라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정법은 마지막 단계에 왔고 우리는 성숙해져야 합니다. 게다가 이것이 처음 있는 일도 아닙니다. 많은 수련생이 무조건 석방되지 않았나요? 설령 선례가 없다 하더라도 우리가 이 선례를 만들어야 합니다. 이것이 대법제자가 해내야 할 일입니다.

수련생은 제가 너무 단순하게 생각한다고 했습니다. 여동생 수련생은 제 안색이 누렇고 좋지 않다고 했습니다. 저는 마음을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모두 저를 위해 좋게 생각해준 것이고 제가 박해받을까 봐 걱정하는 것임을 알았습니다. 나중에 저 자신을 돌아보니 여전히 성격이 급하고 마음가짐이 충분히 순수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수련생에게 말했습니다. “저는 더 이상 숨어 있을 수 없어요. 어제 집에 도착하자마자 시어머니가 슬퍼하며 제가 또 집을 나간 줄 알았다고 하셨어요. 제가 정말 떠났다면 시어머니는 고생하실 거예요. 매일 아이가 퇴근했는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걱정하실 테니까요. 끝없는 걱정거리죠. 저는 시어머니께 안심하시라고 말씀드렸어요. 제가 어디에도 가지 않을 거라고요. 게다가 아이도 이제 컸잖아요. 18살이 됐으니 매일 그 애를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대법 사부님께서 아이를 돌보실 거예요.”

저는 수련생에게 말했습니다. “저도 가족을 위해 생각해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세인들이 대법을 어떻게 보겠어요? 제가 떠난다면 사악이 다시 와서 가족들을 괴롭힐 텐데, 그러면 가족들을 구하는 데 어려움이 더 커질 거예요. 저는 한 번 집을 떠났었는데 계속 그럴 순 없잖아요. 우리도 제고해야 하지 않겠어요? 우리의 의견이 일치하지 않더라도 모두 박해를 피하기 위한 것이에요. 제가 직면하기로 선택한 것도 한 가지 방식이에요. 사부님 말씀대로 하는 것 아닌가요? 일을 할 때 다른 사람을 위해 생각하는 것, 최소한 이 점은 법에 부합하잖아요.” 공동 정진을 위해 저는 선의로 수련생의 부족한 점도 지적했고 수련생은 제 말을 받아들였습니다.

금요일 아침 7시, 그 부대장이 사복 경찰 한 명과 여자 보조경찰 두 명을 데리고 아무런 통보 없이 집에 들이닥쳤습니다. 당시 저는 그들에게 이렇게 이른 시간에 왜 왔냐고 물었습니다. 여자 보조경찰이 말했습니다. “재판 가는 거 아니에요?” 저는 말했습니다. “여러분은 왜 법적 절차를 따르지 않나요? 법원 소환장은 어디 있나요?” 여자 보조경찰이 변명했습니다. “지난번에 드리지 않았나요?” 저는 말했습니다. “저를 속이지 마세요. 그건 기소장이었어요. 모 부대장님, 당신은 불법을 저지르고 있어요! 사전 통보도 없이 갑자기 들어와서 노인과 아이를 놀라게 하면 어쩌려고요? 노인은 고혈압이 있는데 놀라서 병이 나면 당신이 책임질 건가요?” 부대장이 변명했습니다. “방금 당신 남편에게 전화했어요.” 그 모습을 보니 오늘은 가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습니다.

저는 강제로 경찰차에 태워졌습니다. 아침을 먹지 않아 차멀미가 나서 두 차례 심하게 구역질을 했습니다. 그들은 제가 차 안에 토할까 봐 비닐봉지를 주며 빵을 먹으라고 했지만 저는 먹지 않았습니다. 상황이 갑자기 벌어져서 수련생에게 발정념을 부탁할 수 없었습니다. 저는 생각했습니다. ‘지금 나는 하늘을 떠받치고 땅을 지탱하는 대법이 만들어낸 신이야. 나에게는 전지전능한 사부님이 계시고, 무수한 천병천장(天兵天將)과 천룡팔부(天龍八部) 호법신이 따르고 있어. 아무도 나를 건드릴 수 없어. 모든 것은 대법 사부님께서 주관하실 거야!’ 저는 차 안에서 입장해 정념을 발했습니다.

법원에 도착해서 저는 당당하게 들어갔습니다. 변호사 의견서를 그들에게 전하며 이것이 제 무죄 변호 의견서라고 말하고 한번 보라고 했습니다. 일찍 도착해서 먼저 대기실에서 기다렸습니다. 저는 의자에 앉아 다리를 가부좌한 채 입장해 정념을 발했고 사람들이 오는 것을 보면 진상을 알리기 시작했습니다. 잠시 후 당직 경찰들이 들어왔는데 20여 명이나 되었습니다. 저는 보고 기뻐서 제가 불법 재판을 받으러 온 것도 잊고 서둘러 그들에게 기본적인 진상을 알렸습니다. 파룬궁 수련은 합법적이고 파룬궁을 박해하는 것은 죄가 있으며 진심으로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 구절을 외우면 전염병과 재난을 피할 수 있다고 알려주었습니다!

9시에 재판이 시작되었습니다. 저는 재판장에게 말했습니다. “제 청력이 좋지 않아서 여러분이 마스크를 쓰고 있으면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전혀 알아들을 수 없어요. 그리고 제 가족 중 아무도 법정에 오지 않았는데, 이것 자체가 불법이에요. 게다가 저는 소환장도 받지 못했고 그들에 의해 강제로 끌려왔어요.” 재판장이 물었습니다. “증거가 있나요?” 저는 말했습니다. “제가 여기 서 있는 것이 증거고, 이 빈자리들이 제 가족이 있어야 할 자리예요. 하지만 그들 중 아무도 오지 않았어요.” 저는 주위를 둘러보며 자비롭고도 위엄 있는 눈빛을 보냈습니다.

제가 변호할 차례가 되자 저는 그들에게 물 한 잔을 요청했습니다. 물을 다 마시고 물을 가져다준 경찰에게 감사의 인사를 한 후 제 무죄 변호 의견서를 읽기 시작했습니다. 제 목소리가 우렁차다고 느꼈는데 얼마 읽지 않아 재판장이 견디지 못하고 말했습니다. “그만 읽으세요. 이리 주세요.” 저는 거부했습니다. “안 돼요! 이건 제 권리예요!” 그녀에 의해 중단되어서 저는 다시 처음부터 제 변호 의견서를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 순간 정말 마음속에서 슬픔이 솟구쳤습니다. 박해에 가담한 이 사람들이 정말 가엾다고 진심으로 느꼈고 그들의 미래를 진심으로 걱정했습니다.

6천여 자의 변호 의견서는 충분히 밝혔습니다. 파룬따파는 ‘진선인(真善忍)’ 원칙에 따라 마음을 수련하고 선(善)을 향하게 하는 고덕대법(高德大法)이며, 파룬궁은 중국에서 합법적이고 수련자는 무죄하다는 것을… 파룬궁을 박해하는 것은 죄가 있으며 반드시 법의 추궁과 정의로운 심판을 받을 것이라는 것을… 저는 변호 의견서를 다 낭독했고, 현장의 검찰과 법원 관계자들은 모두 반박할 말이 없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재판장이 저에게 물었습니다. “할 말이 더 있나요?” 저는 말했습니다. “파룬궁 제자로서, 불도(佛道)를 수련하는 사람으로서 사람은 한 생만 사는 게 아님을 알고 있고, 인간 세상의 득실에 집착하지 않습니다. 저는 여러분이 저에 대해 어떤 판결을 내리든 상관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여러분에게 있어 이번 생은 매우 중요합니다. 여러분이 지금 하는 모든 행동이 바로 여러분 자신의 미래를 선택하는 것입니다. 선에는 선한 보답이 있고 악에는 악한 보응이 있는 것이 천리입니다. 저는 여러분이 미래를 잃는 것을 보고 싶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행복하고 평안하기를 바랍니다. 파룬궁 문제에 대해 올바른 선택을 해야만 이를 실현할 수 있습니다.” 그 순간 정말 자비심이 나왔고 사부님께서 저에게 지혜를 주신 것을 분명히 느꼈습니다.

제가 진술을 마치자 재판장이 휴정을 선포했습니다. 서기가 저에게 서명하라고 했습니다. 저는 내용을 보고 서명을 거부하며 그녀에게 말했습니다. “이것은 여러분이 파룬궁 박해에 가담한 증거입니다. 나중에 파룬궁이 명예회복될 때 이것으로 여러분에게 책임을 물을 것입니다.” 동시에 저는 두 명의 공소인과 그 밖의 참석자들에게 오직 진심으로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를 외워야만 재난을 피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 순간 제 마음속에는 적이 없었고 오직 중생만 있었습니다.

법정을 나와 돌아가는 길에 저는 그 부대장에게 선(善)을 권했습니다. 그에게 허난성 덩펑시 공안국장 런창샤의 예를 들어주었습니다. “런창샤는 이른바 공산당의 모범 인물이었지만 파룬궁을 박해하다 보응을 받아 교통사고를 당했습니다. 그녀는 가장 안전한 자리에 앉아 있었는데 차 안의 4, 5명 중 그녀만 죽었습니다. 그녀의 여동생조차 그녀가 보응을 받은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2, 3년 후 그녀의 남편도 암에 걸려 죽었고, 10대 자녀 하나만 남았습니다. 얼마나 가엾습니까. 당신도 빨리 그만두세요! 여러분은 ‘610’ 이 직위를 아세요? 이것은 가장 위험한 직위로, 사망률이 가장 높습니다.” 차에서 내릴 때 저는 거듭 그들에게 나쁜 일을 계속하지 말라고 말했습니다. “보응이 오면 늦습니다.”

돌아와서 수련생에게 이상의 상황을 이야기하는 순간 저는 갑자기 수련생 앞에서 서러워서 울었습니다. 현재 딸이 아직 저를 의지하고 시어머니가 저를 걱정하지 않았다면 저는 정말 외톨이가 되었을 것입니다. 아버지는 문화대혁명을 겪으시고 중국공산당의 운동에 겁을 먹어 연루될까 봐 두려워하십니다. 형제자매들도 그 영향을 받아 저를 멀리했습니다. 시동생은 저와 대화하지 않고 시누이에게도 저를 상대하지 말라고 합니다. 남편은 원래 대법을 매우 인정했는데 어찌 된 일인지 집에 돌아오지 않고 있습니다. 반년 동안 제 전화도 받지 않았고 제가 불법 재판을 받을 때도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저는 이 모든 것이 구세력의 박해로 인한 것임을 알고 있습니다. 때로는 마음이 매우 괴롭습니다. 저는 마음속으로 사부님께 말씀드립니다. “제자는 아무리 힘들고 아무리 큰 억울함을 당해도 저는 모두 사부님 말씀대로 하겠습니다. 자비로운 마음을 품고 선한 마음으로 사람들을 대하며, 그들과 계산하지 않고 그들에게 끌려가지 않으며 속인에게 기대하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그들을 구해야 합니다. 정법시기 대법제자의 책임은 크고 요구도 높으며 압력도 큽니다. 일이 생기면 무조건 자신을 돌아봐야 합니다. 저는 인간 세상의 정, 의존심, 사사로움을 빨리 내려놓아야 합니다.”

박해자를 실명으로 고발하다

저는 더 이상 이렇게 수동적으로 있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법을 지키지 않고 세 번이나 저를 강제로 데려갔으며, 심지어 소환장도 없이 저를 납치해 불법 재판을 받게 했습니다. 이렇게 무법천지로 대법제자를 마음대로 박해하는 행태는 반드시 중단되어야 하고 폭로되어야 합니다. 저는 그들을 고발해야 합니다. 가족들과 이웃들이 대법제자가 사악한 세력에 의해 부당하게 괴롭힘을 당하는 모습을 계속 보게 해서는 안 됩니다. 저는 마음속으로 사부님께 말씀드렸습니다. “제자가 이런 일을 하는 것은 법을 실증하고 중생을 구하기 위함입니다. 제자에게 가지(加持)를 내려주시기 바랍니다.”

저는 법공부 모임에 갔는데 마침 제가 찾던 수련생을 만났습니다. 저는 제 생각을 말했고 그들은 모두 좋다며 지지했습니다. 저는 수련생에게 고소장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 어떤 부서에 보내야 하는지, 누가 받는지 물었습니다. 수련생들이 모두 자세히 설명해주고 관련 자료도 찾아주었습니다. 단체 환경이 정말 좋았고 저는 분명히 사부님의 가지를 느꼈습니다. 저는 악질 경찰을 이끌고 저를 박해한 모 부대장과 모 형사대장을 실명으로 고소했습니다. 고소장을 쓴 후 수련생이 수정해주어 더 정식적으로 보이게 되었습니다.

이때 마침 태풍 ‘인파(In-fa, 烟花)’가 북상해 우리 지역에 영향을 미치고 있었습니다. 저는 비를 무릅쓰고 우체국에 갔습니다. 시 인민대표대회, 기율위원회, 공안·검찰·법원 관련 부서에 고발장을 보내고 직원들에게 진상을 알린 후 밖으로 나오니 비가 그쳤고, 사부님께서 저에게 한 조각의 푸른 하늘을 보여주셨습니다.

집에 돌아와 보니 마침 휴대폰에 일기 예보가 떴는데, 본 지역의 특대 폭우 적색경보가 해제되었고 기세등등하게 오던 ‘인파’가 극적으로 끝났다고 했습니다. 저는 마음속으로 이 일을 제가 옳게 깨닫고 옳게 했으며, 사부님께서 저를 격려하고 계신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저는 사부님께서 보여주신 그 한 조각 푸른 하늘을 영원히 잊지 못할 것입니다. 합장하며 “사부님 감사합니다!”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사부님께서는 늘 제자를 보살피시고 깨우쳐주고 계십니다. 2021년 2, 3월경 제가 사진관을 다시 경영하려고 했던 것이 기억납니다. 이렇게 하면 생활 문제도 해결하고 자료도 만들 수 있으며 작은 가게를 이용해 사람들을 구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사부님께서는 꿈에서 저를 깨우치시며 가게를 열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당시에는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왜일까?’ 하지만 저는 여전히 사부님 말씀을 따랐습니다. 저는 사부님께 말씀드렸습니다. “제자가 아무리 이해하지 못해도 저는 사부님 말씀을 따르겠습니다. 제자는 본질을 볼 수 없다는 것을 압니다.” 나중에 일어난 일들을 통해 저는 사부님의 고심을 완전히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사부님께서는 제자가 직면하게 될 일들을 아시고 제자가 마음을 쓰느라 고비를 넘지 못해 불필요한 손실을 입을까 봐 걱정하신 것입니다. 여기까지 쓰니 저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습니다. 어떤 언어로도 사부님께 감사드리는 마음을 표현할 수 없습니다!

저는 저 자신에게 이익심, 억울함, 쟁투심, 조급함, 굴욕을 참지 못하는 마음, 게으름, 안일함 등 많은 사람 마음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사람을 구하는 데 장애가 됩니다. 저는 이런 마음들을 빨리 수련해 없애고 사부님을 도와 정법하고 중생을 구하는 역사적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제자는 사부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원문발표: 2024년 8월 21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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