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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사장으로 여기는’ 직원

글/ 정흔(鄭欣)

[명혜망] 많은 해 전, 저는 한 대기업에 다녔습니다. 이 회사는 기업문화 육성에 매우 신경을 썼고, 정기적으로 발행하는 사내 잡지가 직원들 간 소통의 장 역할을 했습니다. 저는 자주 기고했는데 그중 하나가 ‘자신을 사장으로 여기기 – 직장 내 마음가짐과 기본자세에 대하여’라는 글이었습니다.

당시 저는 한 지역의 업무 주임이었는데 이 글은 새해에 고향에 갔다가 친지들과 식당에 갔을 때 본 광경과 그에 따른 인생과 직장생활에 대한 깨달음을 담은 것이었습니다.

글에서 이렇게 썼습니다. “당시 영업 중인 식당이 적어 어느 식당이나 손님이 가득했고 이곳도 만원이었습니다. 홀에서 일하는 두 여성은 바쁘게 움직이며 쉴 새 없이 정리하고, 주문받고, 음식을 나르느라 계속 뛰어다녔습니다. 나이가 좀 더 든 여성은 옷차림과 분위기로 봤을 때 확실히 사장 같았고, 허리에 가방을 차고 수시로 계산을 받았습니다. 다른 한 명은 젊어 보이는 직원 같았는데, 둘 다 똑같이 바쁘게 일했지만 표정과 태도가 완전히 달랐습니다. 직원은 불평하는 듯한 표정으로 일하다 손님이 뭐라고 하면 투덜거리며 말대꾸했지만, 사장은 발 디딜 틈 없이 바빠도 웃음을 잃지 않았고 손님이 화를 내도 미소 지으며 달래곤 했습니다.”

“저는 같이 간 사람들에게 ‘보세요, 똑같이 바쁜데 두 사람의 상태가 완전히 다르죠. 사장은 바쁠수록 기분 좋아하는데 직원은 바쁠수록 화를 내요. 왜 이런 차이가 날까요? 아마도 마음가짐의 문제일 겁니다. 여자 사장은 자기 일을 하니까 바빠도 괜찮고, 장사가 잘되면 수입도 늘어나니 기꺼이 하는 거죠. 반면 직원은 사장을 위해 일하는 것이고 아마 고정급이라 장사가 잘되든 말든 똑같을 테니까요’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돌이켜 보니 이런 모습은 꽤 보편적인 현상이었습니다.”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건 우리도 그 식당 여사장처럼 자기 일과 직장에서 마주치는 모든 일을 대했으면 좋겠다는 겁니다. ‘자신을 사장으로 여기면’ 어려움과 압박에 직면했을 때 좀 더 편안해지고, 일과 삶에서 더 행복해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글이 사내 잡지에 실렸고 나중에 보니 다른 지역 동료들도 제 글을 인용하며 일할 때 자신을 사장으로 여기겠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모두가 동의한 건 아니었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 마케팅부 다른 지역 업무 주임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난 월급이랑 보너스 때문에 이 회사에 온 거야. 마음에 안 들면 누가 일하겠어? 우리랑 회사는 서로 이용하는 관계지. 무슨 양심이 어쩌고저쩌고 할 필요 있나? 그게 현실적이야?”

저는 이 동료의 말에 반박할 수 없었습니다. 각자 생각이 다를 수 있고 사람들은 ‘현실’ 속에 살고 있으니까요. 저도 예전엔 그런 ‘현실적인’ 사람이었습니다. 처음 국영기업에서 일할 때는 어떻게 일을 잘할지 생각하기보다는 어떻게 편하게 지낼지만 고민했죠. 일은 대충대충 하고 미루고 어물쩍 넘기곤 했습니다. 하루아침에 부자가 되는 상상만 했고 일이 조금만 바빠지거나 야근하라고 하면 정말 깊이 원망했습니다. 그때 저는 ‘돈이 전부는 아니지만 돈이 없으면 아무것도 안 된다’는 말에 깊이 공감했습니다. 당시 제 생각은 이랬습니다. ‘뭐가 행복이지? 날 높은 자리에 앉히는 거? 돈을 많이 버는 게 내겐 최고의 행복이지.’ 하지만 늘 뜻대로 되지 않아 행복한 적이 별로 없었습니다.

그러다 운 좋게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를 수련하게 됐고, 모든 게 바뀌었습니다. 자신이 맡은 모든 일을 성실하고 책임감 있게 해야 한다는 걸 알게 됐고, 마음을 가라앉히고 기술을 연구해야 한다는 것도, 회사의 근심을 덜어줘야 한다는 것도, 상사와 동료를 이해하고 존중해야 한다는 것도 깨달았습니다. 제 전체 사람이 안에서 밖으로 다 변했습니다. 원래 뼈만 앙상했던 제가 파룬궁 수련 한 달 만에 체중이 10kg 이상 늘고 살이 통통하게 오르고 피부도 좋아졌습니다. 저를 아는 모든 사람이 제 변화에 놀랐고, 제 엄청난 변화를 보고 회사 동료 몇 명도 “괜찮으면 나도 정 씨랑 같이 수련해야겠다”고 했습니다.

예전에 저 때문에 골치 아파하던 공장장님은 제가 파룬궁을 수련한 후 얼마 안 돼 제 업무 태도를 보시고는 저를 관리직으로 승진시켰습니다. 나중에 회사 사정으로 제가 여러 부서를 옮겨 다녔는데, 공장장님은 다른 사람에게 “정 씨는 어디에 보내도 마음이 놓입니다!”고 하셨다고 합니다.

나중에 중국공산당(중공)이 파룬궁 박해를 시작했을 때 저는 수많은 대법제자들처럼 납치되고 불법 감금됐습니다. 한번은 집에서 수련생들과 법공부를 하다 국보(국내안전보위대: 파룬궁 탄압 담당 공안기구)에 납치돼 구치소에 갇힌 적이 있습니다. 우리 회사 간부들이 번갈아 구치소에 와서 저를 면회했고, 많은 동료들이 경찰에게 저를 좋게 말해줬습니다. 한 선배는 고위직 축산 수의사였는데 경찰에게 가서 이렇게 말했죠. “요즘 이렇게 좋은 젊은이가 너무 드물어요. 그를 풀어주세요.” 제가 풀려난 후 그분이 기뻐하며 찾아와 말씀하셨습니다. “자네는 앞날이 창창하네.” 그때 상급 기관에서 회사에 제 몇 달 치 월급을 삭감하라고 했는데, 공장장님은 겉으로는 그들의 요구를 들어주는 척하다가 제가 나오고 나서는 조용히 재무과에 지시해 전액을 보전해주셨습니다.

우리 다른 공장장님은 어느 날 무거운 마음으로 제 집에 찾아오셔서 의아해하며 이 모든 일(중공의 파룬따파에 대한 비방과 박해)이 도대체 어떻게 된 건지 물으셨습니다. 제가 아는 진상을 모두 말씀드렸고 수련 전후의 엄청난 변화도 얘기해드렸습니다. 그리고 진심으로 수련하기 전에 회사 관리에 불복종하고 여러 번 그를 괴롭혔던 것에 대해 사과드렸습니다. 공장장님은 매우 감동하셨고 한순간에 모든 걸 깨닫는 것 같았습니다. 그는 저에게 “아, 이제 알겠네. 어떻게 해야 할지 알겠네”라고 하시더니 일어나 가셨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중공 상급 기관에서 우리가 합법적으로 베이징에 가서 파룬따파를 위해 청원한 것 때문에 회사에 저희를 해고하라고 했고, 회사에서 새로 지은 집에 살 자격도 박탈하라고 했답니다. 이 공장장님은 상급 기관의 압력을 견디며 우리를 해고하지 않았고 집도 그대로 보전해주셨습니다. 나중에 다른 사람에게 들어보니 국에서 이 공장장님은 우리를 불법 해고하는 문서에 서명하기는커녕 오히려 상급에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우리 공장에 이 둘(저와 다른 대법제자 한 분)만이 조건을 따지지 않고 일합니다. 이렇게 좋은 사람을 어디 가서 구하겠습니까?!”

우리는 공장장님이 당시 중공이 파룬따파에 대해 온 나라에 퍼뜨린 비방과 모함 속에서, 상급의 엄중한 강요 속에서 어떤 큰 압력을 견디셨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는 압력을 이겨내고 양심과 큰 용기로 위기에 처한 파룬궁수련자들을 도와주고 보호해주셨습니다. 저는 그가 이로 인해 무량한 복덕을 쌓으셨고, 그와 다른 공장장님, 그리고 양심에 따라 대법제자들을 도와주신 동료분들 모두 무한히 아름다운 미래를 갖게 되실 거라고 굳게 믿습니다.

제 생각에, 우리 공장장님들과 동료들은 어떻게 가혹한 박해 속에서도 대법제자들을 위해 그 모든 걸 하실 수 있었을까요? 그건 대법제자들이 대법의 진선인(真·善·忍) 표준으로 자신을 요구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그렇게 하면 사람들은 진선인을 인정하면서 대법의 바른 에너지로 가지(加持)받을 수 있고, 양심을 지킬 수 있으며, 용기를 얻을 수 있습니다.

아, 그리고 말씀드리자면 당시 우리 공장을 압박해 우리를 해고하고 새집 자격을 박탈하려 했던 그 국장은 나중에 다른 부서로 옮겼다가 얼마 안 돼 부패 혐의로 감옥에 갔습니다. 6년 형을 선고받고 공직에서 파면됐다고 합니다. 나중에 들으니 그가 출소 후 거리에서 택시를 몰았다가 그 뒤론 소식이 끊겼다고 합니다. 그에 관한 얘기를 하자면, 중공이 파룬따파를 박해하기 전에 제가 일을 잘해서 그는 저를 좋게 봤고, 저를 국으로 불러 비서로 삼으려고 했지만 박해가 시작됐습니다. 그는 대법제자들의 상황을 모르지 않았지만 시비와 선악을 분별하지 않고 꼭 중공 장쩌민 집단의 박해 정책을 집행하려다 결국 자신을 해치고 말았습니다. 이는 모든 사람이 경계해야 할 일입니다.

그 후 국영기업이 개혁되어 문을 닫자 우리는 나와서 일을 찾았고, 그렇게 20여 년이 흘렀습니다. 우리를 도와주셨던 그 공장장님은 못 뵈었는데 그를 본 사람 말로는 “70세가 다 된 분인데도 아직도 그렇게 젊어 보이고 정정하시대요”라고 합니다. 제게 월급을 다 채워주라고 하신 그 공장장님은 나중에 사업을 크게 하셔서 큰돈을 버셨다고 합니다. 아마도 그분들이 받으신 복의 일부겠죠.

국영기업을 나온 뒤 저는 주로 영업 일을 했고, 지금 영업 일을 한 지 20여 년이 됐습니다. 이 20여 년간 몇 군데 회사를 옮겼지만 모든 회사와 고객이 저를 평가할 때 한결같이 “성실하고 책임감 있으며, 회사 일을 자기 일처럼 한다” 등으로 평가해주셨습니다. 오랫동안 각 회사에서 우수사원, 전국 10대 사원 등의 영예를 받았습니다.

많은 경우에 저는 일할 때 정말로 ‘자신을 사장으로 여기는’ 마음가짐으로 임했고, 어디서나 ‘자신을 사장으로 여길 수 있는’ 직원이 됐습니다. 사실 제가 이렇게 할 수 있었던 건 그 회사에서 쓴 글 때문이 아니라, 그 국영기업에서 파룬궁을 수련하면서 점차 그렇게 되었던 겁니다. 그 글은 단지 생생한 사례를 빌려 이에 대한 진실한 깨달음과 총결을 한 것뿐이었죠. 오랜 세월 동안 저는 이익 앞에서 사람이 얼마나 나약한지, 이익을 충족시키지 못할 때 얼마나 쉽게 심리적 균형을 잃는지 알고 보아왔습니다. 직장인이 일시적으로 ‘자신을 사장으로 여기는’ 마음가짐을 갖기는 쉽지만, 20여 년간 그런 마음가짐을 유지하는 건 쉽지 않습니다. 오랜 수련 중에 저도 때로는 제가 진선인으로 자신을 요구해야 하는 수련인이라는 걸 잊곤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제가 예전과는 근본적으로 달라졌음을 발견했습니다. 잘하지 못했을 때 진선인에 비추어보면 후회하게 되고, 자신의 잘못을 인정할 용기가 생기며, 다시 고치려 노력하게 됩니다. 예전엔 제가 나쁜 일을 하고 있다는 걸 전혀 몰랐고, 모르니 인정할 리 없었으며, 무엇을 기준으로 삼아야 할지도 몰랐습니다.

많은 사람이 대법제자들이 왜 그렇게 마음속 깊이 우리 사부님께 감사드리는지 이해하지 못합니다.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생명의 승화를 가져다주는 파룬따파를 주셨고, 어떻게 수련해야 하는지 지도해주시며, 인연 있는 모든 생명에게 하늘로 돌아가는 사다리를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생명이 어둠과 절망, 멸망에서 벗어나 영원한 광명과 희망, 아름다움으로 나아갈 수 있게 해주십니다.

‘뮤직비디오: 사부님, 감사합니다!’의 한 구절로 이 글을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파룬따파가 내 마음을 비추니 상서롭고도 밝네. 진선인을 배워 좋은 사람이 되라 가르치시네.“

 

원문발표: 2024년 8월 20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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