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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부님 감사합니다

글/ 중국 대법제자 효법립(曉法粒)

[명혜망] 저는 수련한 지 17년 된 젊은 대법제자입니다. 매번 수련생들의 감동적인 이야기를 읽을 때마다 큰 격려가 됐지만, 투고에 대해 말하면 제 글이 부족하고 수련 경험이 평범해서 쓸 만한 것이 없다고 느꼈습니다. 이틀 동안 수련생들의 원고를 수정하고 투고하면서 저도 더 이상 시험을 빠뜨려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저도 답안지를 제출해야 합니다. 단 몇 마디일지라도, 평범한 이야기일지라도, 이는 제가 사부님의 제자로서, 정법시기 대법제자로서의 증거입니다.

1. 만고의 법연(法緣)이 한 줄기 실로 이어지다

어릴 때부터 저는 하늘에 신선이 산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밤하늘의 별을 볼 때마다 제가 하늘에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습니다. 인간 세상은 제가 머물고 싶은 곳이 아니었습니다. ‘사람은 결국 떠나게 되는데 죽은 사람은 어디로 가는 걸까?’ 이런 느낌과 의문 때문에 어릴 때부터 신화 이야기를 좋아했고 언젠가 저도 신선처럼 신의 세계로 돌아갈 수 있기를 상상했습니다.

저는 수련생의 진상 설명을 통해 대법 수련에 들어섰습니다. 우연한 기회에 수련생이 저에게 대법 진상을 알려주고 ‘삼퇴(중국공산당의 3가지 조직 탈퇴)’를 하라고 했지만, 당시 저는 약간 당황스러워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그날 밤 꿈을 꿨는데 꿈속에서 주변이 온통 깜깜했고 이리저리 걸어 다녀도 방향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피곤하고 두려웠고 안개가 주변을 감쌌습니다. 저는 힘들게 앞으로 나아갔는데 얼마나 지났을까, 앞에 불이 켜진 집이 보였습니다. 서둘러 가서 보니 문을 연 사람이 바로 저에게 진상을 알려준 수련생이었습니다. 꿈속에서 저는 놀랍고 기뻤으며 진정한 집을 찾은 것 같았습니다. 깨어나서 저는 대법을 수련하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그래서 수련생이 저를 데리고 함께 수련을 시작했습니다. 그때 막 5가지 공법을 연습하기 시작했는데, 가부좌를 제외하고는 한 번에 다 할 수 있었고 상쾌했습니다. 수년 만에 처음으로 뇌가 스위치를 켠 것처럼 느껴졌고, 지식이 그렇게 이해하기 어렵지 않다고 느꼈으며 기억력도 좋아졌습니다. 그래서 대학 입시 그해에 저는 대학 입학 통지서를 받았습니다.

1999년 이전 대법이 널리 전해지던 신성한 장면을 보지 못했고, 1999년의 사악한 박해를 겪지 않았지만, 저는 대법 사부님께서 가장 정직하시고 대법이 우주 대법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제가 사부님의 제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은 제 인생에서 가장 올바른 선택이었습니다! 사부님을 기억하는 글을 읽을 때마다 마치 그 자리에 있는 것처럼 수련생들과 함께 감사하고, 함께 기뻐 울고, 함께 격려하고, 함께 독려합니다. 정법은 만나기 어려운데 제가 대법제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큰 영광입니까!

2. 저에게는 사부님의 자비로운 보살핌이 있습니다

대학 방학 때 집에 있었는데, 동생이 야생 토마토를 따러 가자고 했습니다. 그때 아파트 단지에서 도로 공사를 하고 있었고 저는 자전거를 타고 동생을 태워 비탈길을 내려왔습니다. 길에는 자갈과 모래가 깔려 있었는데 갑자기 자전거가 미끄러졌습니다. 앞에 큰 구덩이가 보였고 그 안에는 돌멩이들이 어지럽게 놓여있어서 그곳으로 돌진하면 끔찍할 것 같았습니다. 급한 마음에 힘껏 브레이크를 잡았고, 갑자기 관성으로 인해 제가 땅에 세게 넘어졌습니다. 얼굴이 모래와 돌에 긁혔고 가슴은 자전거 핸들에 세게 부딪쳤습니다. 뒤에 있던 동생이 자전거가 멈추자마자 저를 일으켰는데, 제 얼굴에는 피가 가득했고 동생은 놀라서 서둘러 부모님께 전화를 걸었습니다. 저는 동생을 안심시키며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真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를 외웠고 동생에게 “겁내지 마, 나와 함께 외우자, 난 괜찮아”라고 말했습니다.

당시 저는 정말 아픔을 느끼지 못했고 두렵지도 않았습니다. 저는 침착하게 물탱크로 가서 얼굴의 피를 씻어냈습니다. 부모님도 달려오셨는데 어머니는 제 상처가 심각한 것을 보고 병원에 가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병원에 도착하자 의사는 이마 상처를 꿰매야 하는데 마취제가 없다고 했습니다. 저는 의사에게 “괜찮아요, 견딜 수 있어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의사가 꿰매기 시작했고 저는 바늘이 살을 뚫고 지나가는 느낌을 아주 선명하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전혀 아프지 않았습니다. 의사도 놀라워하며 제가 매우 잘 참는다고 했고 운이 좋다고도 했습니다. 눈이 거의 다칠 뻔했다고 하면서 집에 가서 얼굴 상처는 소독과 청소만 하고 천천히 회복되기를 기다리라고 당부했습니다. 또한 금기해야 할 음식도 알려주었습니다. 사실 저는 다치고 회복되는 동안 제가 어떻게 다쳤는지 보지 않았고 지나가는 사람들과 의사가 하는 말만 들었습니다. 그들은 제 얼굴이 상처투성이가 되었고 흉터가 남으면 보기 좋지 않을 거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누가 일주일 후에 제 얼굴이 원래대로 돌아올 거라고 상상했겠습니까? 단지 꿰맨 자리에 작은 흔적만 남았고 가슴의 통증도 사라졌습니다.

코로나가 확산되면서 각지에서 봉쇄가 해제되었고 우리 사무실 세 명 중 두 동료가 모두 양성(확진) 판정을 받았습니다. 이어서 독감에 걸리고 두 번째로 양성 판정을 받았습니다. 저는 그들과 한 지붕 아래에서 매일 함께 일했지만 어떤 불편함도 없었고 정신도 좋았습니다. 회사의 다른 동료들과 주변 사람들이 차례로 감염되었지만 결국 회사에서 저만 감염되지 않았습니다. 저는 이것이 대법 수련과 사부님의 자비로운 보살핌 덕분에 제자가 난관을 넘길 수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3. 진선인의 기준이 마음에 새겨지다

저는 80년대생 미혼 여성 대법제자입니다. 어릴 때부터 독서를 좋아했고 고등학교 때는 연애 소설을 읽는 것이 유행이었으며, 대학 때는 한국 드라마와 미국 드라마를 즐겨 봤습니다. 영화와 TV에서 연출되는 사랑 이야기에 대해 동경과 환상을 가졌기에 매번 색욕의 시험을 순조롭게 통과하지 못했고 나중에 후회했습니다. 왜 중요한 순간에 사부님의 가르침을 생각하지 못하고 흐리멍덩하게 살았을까요? 자비로운 사부님께서는 이 불성실한 제자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수련생의 깨우침을 통해 저를 일깨워주셨습니다. 저는 마음을 가다듬고 법을 외웠고 명혜 라디오의 수심단욕(修心斷欲) 특집을 더 많이 들었습니다. 수련생들의 교류는 저에게 큰 격려가 되었고 저는 스스로에게 휴대폰을 덜 사용하고 동영상을 덜 보도록 강제했으며, 여가 시간에는 법공부를 하고 정념을 발했습니다. 점차 머리가 맑아지는 것을 느꼈고 이전에 주변 사람들이 소개팅을 자주 권하던 일도 줄어들었습니다. 그들은 처음에는 이해하지 못했지만 나중에는 제 선택을 존중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오늘날 물욕이 넘치는 사회에서 사람들은 주입된 관념, 접하는 환경, 받는 영향으로 인해 사람과 사람 사이에 순수한 우정이 얼마나 될까요? 자신을 깨끗이 지키는 사람은 매우 드뭅니다. 한번은 동료가 저와 대화 중에 물었습니다. “남녀 사이에 순수한 우정이 있을까요?” 저는 확신에 차서 대답했습니다. “있어요. 대법제자는 세상에서 가장 순수한 수련인이고, 대법 수련장은 세상에서 가장 순수한 정토예요.” 저는 종종 생각합니다. 만약 사부님께서 제자를 더러운 지옥에서 건져 올리지 않으시고, 하늘의 천서(天書)를 제자 앞에 가져다주지 않으셨다면, 저는 인간 세상의 혼탁한 진흙 속에서 한평생 뒹굴었을 것입니다. 그것은 얼마나 무서운 일일까요!

금전적 유혹 앞에서도 마음이 동요하지 않습니다. 저는 교육기관에서 일하는데 종종 학부모들이 자녀의 학업 문제로 저에게 돈 봉투를 주거나 선물을 사주려고 합니다. 저는 한 번도 받은 적이 없고 학부모들에게 원칙에 어긋나지 않는 한 항상 학부모의 입장에서 생각하겠다고 말합니다. 극히 드물게 정중히 거절할 수 없는 물건을 받게 되면, 아이의 생일이나 명절에 동일한 가치의 선물을 사서 아이에게 줍니다. 한번은 상사 집 어르신이 돌아가셔서 장례를 치를 때, 상사가 저에게 그녀와 그녀의 동생을 위해 부의금을 받아달라고 했습니다. 친척과 친구들이 선물을 주면 그녀는 무심코 저에게 넘겨 가방에 넣게 했고, 며칠 동안 바빴지만 그녀와 그녀의 동생은 처음부터 끝까지 부의금에 대해 물어보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일이 끝나고 제가 부의금을 그대로 그녀에게 전달했을 때, 그녀의 가족들은 모두 상사가 제 인품을 신뢰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녀의 딸에게도 이 일을 맡기지 않았는데 저 같은 외부인에게 맡겼다고 했습니다.

진선인의 기준이 제 마음에 새겨졌습니다. 저는 동료들 눈에 낙천적이고 긍정적인 사람으로 보입니다. 그들이 말하길 걱정거리가 없어 보인다고 합니다. 그들의 말로는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이 있으면 저와 이야기를 나누면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하늘처럼 느껴진다고 합니다. 제가 회사의 중간 관리자이기 때문에 여러 직원과 협력하는 상황이 있습니다. 예전의 저는 사사로운 이익만을 추구하고 높은 자세를 취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일이 많으면 적은 것만 못하고, 적으면 없는 게 더 낫다는 태도로 일했고, 상사가 지시한 일만 완수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나중에는 모든 일을 직접 처리하고, 강압적이며, 모든 일을 스스로 감시해야 한다고 느꼈고, 회사가 저 없이는 돌아가지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 상사와 동료들과의 관계도 매우 경직되었습니다. 법공부가 깊어지면서 저는 점차 변화했습니다. 일을 피하지 않고 상대방 입장에서 생각하며, 합리적으로 업무를 배분하고, 발생한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하며, 일을 할 때 적절한 균형을 유지합니다. 진심으로 상사의 근심을 덜어주고 동료들의 의문을 해소하며, 합리적인 제안을 하면서도 말을 조심합니다. 모두가 저와 함께 일하는 것이 순조롭다고 느끼고, 제 업무도 순탄합니다. 중간 관리자인 저는 더 이상 샌드위치 신세가 아니며, 저에 대한 모든 사람의 인상이 바뀌었고 그들은 무엇이든 저와 나누고 싶어 합니다.

저는 사부님께서 항상 제자 곁에 계신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평소에 제가 조금이라도 진보하면 사부님께서는 저를 격려해주십니다! 한번은 버스를 타고 볼일을 보러 가려고 했는데 버스가 곧 정류장에 도착할 것 같아서 분명 못 탈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늦으면 늦는 거지 뭐가 대수냐고 생각했습니다! 곧바로 제가 잘못 생각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약속한 일은 지켜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진실하지 않은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빠르게 달려갔는데 이상하게도 버스가 계속 그 자리에 서 있었습니다. 마치 저를 기다리는 것 같았습니다. 제가 숨을 헐떡이며 탑승한 후에야 운전기사가 느릿느릿 문을 닫았습니다. 평소 이 노선은 출근 시간대에 매우 바쁘고 사람도 많아서 운전기사들이 시간을 맞추기 위해 보통 서둘러 운행합니다.

최근에는 명혜망에 계속 접속할 수 없었습니다. 처음에는 인터넷 문제라고 생각했고 매년 봐야 할 션윈도 올해 설날에는 보지 못해서 마음이 아팠습니다. 나중에 사부님께서 제자가 션윈을 보고 싶어 하는 마음을 보시고 다른 방법으로 볼 수 있도록 깨우쳐 주셨습니다. 그때 저는 정말 감격스러웠습니다! 제자가 원하는 것을 사부님께서는 항상 조건 없이 주십니다! 그 후에도 명혜망에 여전히 접속할 수 없었는데, 수련생들의 인터넷 접속에 관한 교류문을 보고 조용히 안으로 찾아보았습니다. 제가 문제의 원인을 찾았을 때 사부님께서는 다시 저를 격려해주시며 명혜망에 연결할 수 있게 해주셨습니다. 다시 주간과 명혜 라디오 등을 다운로드할 수 있게 됐습니다. 저는 정말 행복합니다!

여기까지 쓰고 보니 감개무량합니다. 제 글 속에는 극적인 경험도, 눈물겹고 감동적인 위업도 없습니다. 저는 사회에서 평범한 역할을 하고 있지만 대법을 만난 후 제 인생의 길은 더 이상 평범하지 않습니다.

사부님 감사합니다!

 

원문발표: 2024년 8월 19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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