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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부님께서는 모든 제자를 성취시키신다

글/ 중국 대법제자

[명혜망] 이것은 제가 20여 년간 대법 수련을 하면서 얻은 심득입니다. 저는 수련을 잘하지 못해 많은 속인의 집착심과 후천적으로 형성된 관념을 아직 제거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굽은 길을 걸어왔고 우여곡절 끝에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하지만 자비로우신 위대한 사부님께서는 보잘것없고 업력이 크며 깨달음이 부족한 저를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다른 이들은 짧은 시간에 넘는 고비를 저는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어쨌든 저는 반드시 사부님을 따라 집으로 돌아가겠다고 다짐했습니다.

1. 운 좋게 대법을 얻다

1998년 9월, 건강이 좋지 않아 여러 질병에 시달리던 저는 어머니의 인도로 운 좋게 대법을 얻게 되었습니다.

저는 각종 질병으로 고통받아 살아있는 것이 죽는 것만 못했습니다. 특히 비염 때문에 항상 입을 벌리고 숨을 쉬어야 했고, 밤에는 숨이 막힐 정도로 답답해 반듯이 누워 잘 수가 없었습니다. 신경쇠약으로 밤새 잠들지 못했고, 편두통과 안구통, 복통, 요통으로 앉았다 일어서기도 힘들었으며, 자궁근종 등 병도 있었습니다. 가끔은 정신은 또렷한데 몸을 전혀 움직일 수 없어 가족들이 오랫동안 도와줘야만 겨우 움직일 수 있어 매우 괴로웠습니다. 30대였지만 매일 기운 없이 지냈습니다.

또 병원에 가려던 어느 날, 어머니께서 “네가 계속 병원에 가도 나아지지 않으니 날 따라 대법을 배워보는 게 어떻겠니?”라고 말씀하셔서 저는 망설임 없이 동의했습니다. 대법을 배우며 책을 읽기 시작하자 얼마 지나지 않아 모든 병이 사라졌습니다. 가족들은 제가 건강해진 것을 기뻐했고, 아이도 더는 매를 맞지 않게 되었으며, 대법의 신기함과 탁월함을 목격했습니다. 얼마 후 남편과 딸도 대법 수련을 시작했습니다. 남편은 담배도 끊었고, 오랫동안 앓던 장염으로 날음식과 찬 음식을 먹지 못했던 것도 나았습니다. 딸은 자주 앓던 고열과 편도선염도 좋아졌습니다. 사부님께서 우리 가족의 인생관을 완전히 바꾸어 주셨습니다.

수련 전, 저는 시댁 식구들과 크게 다툰 적이 있습니다. 딸이 큰아주버니 자녀에게 맞아 학교에 가기 두려워했습니다. 딸이 학교에서 매일 맞고 돌아오자 저는 따지러 시댁에 갔다가 시아버지, 큰아주버니, 큰시누이 일가에게 매를 맞았습니다. 시아버지는 남존여비 사상이 강하셨는데, 남편의 3형제 중 큰올케가 아들을 낳아 그 아이는 온 집안의 사랑을 독차지했습니다. 그래서 조카는 어린 나이에도 제멋대로였습니다. 부모를 때리고 욕하며 마을에서도 늘 남의 아이를 때려 울리곤 했습니다. 한번은 조카가 탕후루를 다 먹은 대나무 꼬치로 제 딸의 볼과 입을 찔러 딸이 피를 많이 흘렸는데도 시아버지는 아프지 않을 거라며 울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당시 시아버지가 제 뺨을 때려 한쪽 귀의 청력을 잃었고, 시누이와 큰아주버니가 제 머리채를 잡고 바닥에 끌면서 발로 차고 주먹으로 때렸습니다. 그때부터 우리는 원한이 생겨 5년간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억울함을 내려놓지 못해 늘 복수하고 분풀이하고 싶어 했기에 몸도 쇠약해졌습니다.

대법을 얻은 후 법리를 통해 업력의 윤보(輪報)와 전생에 진 빚은 갚아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 후로 저의 복수심과 모든 나쁜 생각을 버리게 되어 마치 영혼이 구원받은 듯이 저는 점차 나쁜 생각들을 제거했습니다. 저는 먼저 그들과 화해했고 대법을 수련했기에 이렇게 할 수 있었다고 알려주었습니다. 나중에 그들은 대법의 아름다움과 훌륭함을 이해하고 삼퇴(중공의 3대 조직인 공산당, 공청단, 소선대 탈퇴)를 했습니다.

2. 대법을 실증하다

그러나 중공 장쩌민 깡패집단이 전례 없는 광적인 박해를 시작했고, 장기간 진행된 사악한 박해는 극악무도해 무고한 사람들과 중생들을 해쳤습니다. 여러 차례 박해와 가택수색을 당하면서 남편은 가정과 딸의 학업에 영향을 끼칠까 봐 두려워 수련을 그만두었고, 저에게도 연마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저는 남편에게 말했습니다. “제 온몸의 병을 사부님께서 돈 한 푼 받지 않고 고쳐주셨어요. 우리는 양심이 있어야 해요. 이 법은 반드시 수련해야 해요.” 남편도 어떻게 된 일인지 알고 있어 더는 말하지 않았습니다.

대법이 모욕당하고 사부님께서 모함당하시며, 중공의 거짓말에 속은 사람들이 수군거리며 의견이 분분한 것을 보니 가슴이 미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제가 만날 수 있는 사람들에게 진상을 알리기 시작했습니다. 텔레비전에서 방영한 것은 모두 거짓말이고, 제가 대법을 수련하면서 가정에서 생겼던 갈등이 해소되고 온몸의 병이 나아 건강해진 변화를 알려주자 주변 사람들은 점차 깨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붉은 종이를 사서 유성펜으로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真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를 적었고, 풀을 준비해서 어머니와 함께 붙이러 다녔습니다. 한번은 제가 호신부에 적힌 ‘파룬따파하오, 진선인(真·善·忍)은 우주의 특성이다’라는 내용을 글로 적어 어머니가 언니가 사는 마을 학교 정문 앞에 밤에 붙이셨는데, 붙일 때 금빛이 빛났다고 하셔서 저는 듣자마자 크게 고무되었습니다.

어머니는 두려움이 없으시고 70대 나이에도 바람이 일듯 걸으셔서 젊은이들도 따라잡을 수 없었습니다. 어느 날 밤, 어머니는 큰 장터 주변의 여러 마을에 가셔서 ‘파룬따파하오’ 스티커 70~80장을 붙이셨는데도 사부님의 가지(加持) 덕분에 전혀 힘들지 않으셨다고 했습니다. 때로는 큰 장터에 가셔서 진상을 알리면 몇 명을 삼퇴시킬 수 있었고, 글을 모르셔서 종이와 펜을 갖고 다니시며 삼퇴하려는 사람에게 직접 이름을 적게 하셨는데 대부분 실명으로 적었습니다. 그리고 큰 소업을 3번 하셨는데, 고통을 전혀 병으로 여기지 않으시고 사부님께서 소업하라고 주신 것임을 아셨습니다. 처음 두 번의 소업은 3~5일 걸렸지만, 심장 소업 때는 7일이나 걸렸습니다. 당시 어머니는 땀에 흠뻑 젖어 온돌을 뒹구르시며 심장이 타는 듯이 아프다고 하셨지만 꾹 참으셨습니다. 거의 탈진 상태가 되어 온몸에 힘이 빠지자 언니가 너무 놀라 병원에 가자고 했습니다. 하지만 어머니는 고개를 저으시며 “괜찮아, 겁내지 마라. 사부님께서 소업해주시는 거야”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어머니를 도와 발정념을 하고 법을 읽었고, 어머니는 마침내 7일째 되는 날부터 아프지 않으셨습니다. 그 후 어머니는 정말 환골탈태하신 듯 얼굴에 났던 검버섯이 점차 사라지고 흰 머리가 검은색으로 변했으며, 생리도 다시 시작되어 몸이 젊어지셨습니다. 어머니는 기쁜 마음을 말로 표현할 수 없어 하셨고, 매일 사부님께 향을 올리고 과일과 다과를 준비해 경건한 마음으로 사부님을 공경했습니다. 사람들은 어머니 몸에서 일어난 변화를 통해 대법의 신기함과 탁월함을 목격했습니다.

당시 사악은 마을마다 벽에 대법을 모욕하는 표어를 써놓았고, 저와 마을에 사는 수련생이 그것을 발견하고 밤에 가서 제거했습니다. 한번은 언니 집에 가다가 마을 어귀의 한 집 벽에 대법을 모욕하는 표어가 크게 적혀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밤에 그 사악한 표어를 제거하려다가 하마터면 그곳을 지키고 있던 악인에게 납치될 뻔했는데, 다행히 사부님의 자비로운 가지 덕분에 악인의 추적을 피할 수 있었습니다. 그 후 저는 법공부와 발정념을 강화하면서 자신의 상태를 바로잡았고, 나중에 어머니와 함께 가서 그 사악한 표어를 제거했습니다.

이후에 현수막, 소책자, 전단지, CD, 호신부 등이 생기게 됐고, 저는 큰 장터에 가서 진상을 알리면서 매번 10여 명을 삼퇴시킬 수 있었습니다.

3. 자료점을 운영하다

당시 우리가 마을에 가서 진상을 알릴 때는 진상자료 공급이 따라가지 못했습니다. 수련생이 저보고 자료를 만들어보라고 권했지만 저는 초등학교 4학년밖에 다니지 못했고 영어 알파벳 하나도 모르는 무식한 사람이라고 생각해 바로 거절했습니다. 하지만 수련생이 “사람을 구하려는 마음만 있으면 사부님께서 도와주십니다”라고 격려했습니다. 저는 사람의 관념에 얽매여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닫고, 남편과도 상의하지 않은 채 프린터를 가져왔습니다. 이 일로 남편이 화가 나서 무슨 말을 해도 들어주지 않았습니다. 저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참을성 있게 남편에게 사람을 구원하는 일의 시급함을 설명했습니다. 결국 남편은 더는 반대하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사부님의 가지와 딸의 도움으로 자료를 인쇄하고, CD를 굽고, 스티커를 인쇄하며, ‘공산당에 대한 9가지 평론(九評共産黨, 9평)’, 명혜 정기간행물, ‘명혜주간’ 등을 인쇄할 수 있게 되어 주변 수련생들이 필요로 하는 모든 자료를 제공하면서 자료 부족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서도 아무리 힘들어도 자료를 만들어 전달했습니다.

딸은 학교 성적이 항상 상위권이어서 공부에 대해 저를 걱정시킨 적이 없었고, 철이 들어서는 제가 자료를 만드는 데 많은 도움을 주었습니다. 잘 모르거나 생소한 부분이 있으면 딸에게 물었습니다. 가끔 기계가 고장 나도 딸이 해결해주었는데, 안 되는 부분은 기술 담당 수련생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나중에는 저도 경험이 쌓여 일부 고장은 직접 수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딸은 늘 저에게 기계를 수리할 때 자신의 부족함을 찾으며 마음도 닦아야 한다고 일깨워주었습니다. 가끔 제가 안으로 찾게 되면 기계 고장도 해결되어 정말 신기했습니다. 어떤 때는 제가 너무 바쁜 것을 딸이 보고 학교 공부 시간을 내어 저를 도와 자료를 만들어주거나 집안일을 해주었습니다.

남편은 부지런하고 솜씨 좋은 미장공입니다. 가끔 업체의 인테리어 자재를 살 때 판매자가 수수료를 줘도 모두 받지 않았는데, 정말 거절할 수 없을 때는 제가 자료를 제작하는 데 보태게 했습니다.

4. 박해를 당하다

자료 제작량이 늘어나면서 법공부를 차분히 못할 때도 있었습니다. 일하려는 마음이 강해서 사악이 틈을 타 한번은 진상을 알리다가 납치당했습니다. 사부님께서 가지해주셔서 남편과 수련생의 남편이 미리 기계를 다른 곳으로 옮겼고, 소모품도 챙겨줘서 피해를 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남편은 그때부터 제가 밖에 나가 진상을 알리고 자료를 배포하는 것과 자료를 만드는 것을 못 하게 했습니다. 제가 외출했다가 집에 늦게 돌아오면 남편은 매번 화를 냈고 심지어 때리기까지 했습니다. 저는 남편이 제가 사악한 공산당에 박해당할까 봐 걱정돼 밖에 나가지 못하게 하는 것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연거푸 제가 납치되자 남편 마음에 두려움이 생겨 마음이 편하지 않았습니다. 남편은 제가 또 자료를 만들면 이혼하겠다고 협박했습니다. 남편은 제 언니에게도 전화를 걸었고, 언니는 저와 남편 사이가 나빠질까 봐 걱정되어 프린터를 자기 집에 가져다 놓고 자료를 만들라고 했습니다. 저는 어쩔 수 없이 몇 km를 걸어 언니 집에 가서 자료를 만들었습니다.

2016년 7월 어느 날, 제가 큰 장터에서 소책자를 배포하다가 우연히 파출소장에게 주게 되어 또 납치를 당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많은 사람이 연루되었는데, 수련생들과 언니, 제 딸이 저를 구출하는 과정에서 경찰과 실랑이를 벌였고, 모두 모함당해 저와 함께 15일간 불법 구금됐습니다.

이 비극적인 교훈으로 저는 어떤 마음이 이 시련을 초래했는지 깊이 성찰해보았습니다. 일하려는 마음이 너무 강해서 매일 마음을 차분히 하고 법공부를 할 수 없었고, 착실하게 자신의 심성을 닦지 않았으며, 매일 연공을 견지하지 않고 일을 많이 하는 것을 수련으로 여겼습니다. 딸과 어머니에 대한 정을 내려놓지 못했고, 남편이 저를 통제하려는 것에 대해 원망하는 마음, 쟁투심, 분노에 치밀어 남편을 업신여기는 마음, 의심, 두려움, 질투심, 명예를 추구하는 마음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쉽게 발견할 수 없는 이기심이 있었는데, 일할 때 상대방 입장에서 생각하지 않고 모두 다른 사람이 나에게 상처를 줬다고만 생각했습니다. 이미 대법에서 너무 멀어져 제가 잘못해서 대법에 손실을 끼쳤고 수련생과 가족에게 재난과 고통을 안겨주어 뼈저리게 후회했습니다. 저로 인해 남편이 그런 행동을 한 것인데, 남편이 제가 사람을 구하는 길을 가로막는다고 생각하여 진심으로 남편을 떠나려는 생각도 했습니다. 법 속에서 자신을 수련하지 않아 사부님과 대법에 정말 죄송했습니다. 수련은 대단히 엄숙한 일이어서 자신을 잘 닦아야 진정으로 사람을 구할 수 있습니다.

5. 사부님께서는 모든 제자를 성취시키신다

경찰이 저를 납치했던 시기에 한 노수련생을 사악(중공을 지칭함)이 오래전부터 주시하고 있었습니다. 사악은 그 노수련생을 우리 지역의 책임자로 여기고 집중적으로 박해하려 했습니다. 노수련생의 아들과 며느리가 말하기를, 친분이 있는 경찰이 “어머님을 주시하고 있으니 조심하라고 전해달라”고 했다고 합니다. 수련생들이 저를 구출하려는 기회를 틈타 경찰은 이 노수련생을 납치했고, 또 제 딸에게 노수련생이 저를 구출하려고 조직했다고 말하라고 강요했지만 딸은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그들은 사악하고 강압적인 수단으로 한밤중에 딸을 밀치고 당기며 심문하면서 서명하라고 협박했고, 서명하지 않으면 구치소에 보내 몇 년 형을 선고받게 하겠다고 하자 딸은 너무 놀라 어쩔 수 없이 서명했습니다. 집에 돌아가면서 딸은 사악의 협박에 서명한 일을 다른 수련생들에게 말하며 죽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때부터 딸은 말수가 줄고 죄책감에 시달리며 괴로워했습니다. 이는 바로 사악의 음모로, 이런 방식을 이용해 수련생 간의 갈등을 조장하고 관계에 간격을 만들어 수련생을 박해하려는 목적을 달성하려는 것이었습니다. 정말 극악무도한 짓이었습니다.

경찰은 노수련생을 가중 처벌하려고 밤에 시 구치소로 이송하면서 형을 선고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소식을 들은 시에 사는 수련생들이 바로 진상을 알리는 편지를 썼고, 현지 수련생들이 함께 어떻게 노수련생을 구출할지 논의했습니다. 수련생들은 저와 노수련생 가족이 함께 가서 석방을 요구할 것을 제안했습니다. 당시 저는 학식이 없고 법률도 모르기에 가지 않겠다고 거절했습니다. 수련생이 “이 일은 직접 관련이 있으니 가는 것이 좋겠어요”라고 말하면서 다른 수련생들도 발정념으로 도와줄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동시에 다른 시에서 수련생이 납치됐는데, 수련하지 않는 그의 아내도 구출하러 가고 싶다고 한다며 저를 격려했습니다. 이렇게 자신감이 생긴 저도 ‘그래, 내가 속인보다 못한단 말인가?’라고 생각하며 노수련생 가족과 함께 가기로 했습니다.

노수련생의 여동생도 대법을 수련해서 저는 그녀와 노수련생의 남편, 아들과 함께 검찰에 가서 자료를 제출하며 진상을 알렸습니다. 사건 담당자인 여성은 우리를 만나려 하지 않았는데 우리는 만날 때까지 찾아갔습니다. 우리는 노수련생에 관한 자료를 그녀에게 건네며 대법과 대법제자를 박해하지 말라고 말하고, 대법제자가 모함을 당한 것이니 자신의 앞날을 위해 공정을 기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계속 우리 말을 막으며 사악이 퍼뜨린 거짓말을 반복하고 무례하게 대했습니다. 우리는 정말 그녀로 인해 괴로웠습니다. 우리는 만나는 사람마다 현 구치소에서 저지른 불법 행위를 말했습니다. 법원에 갈 때마다 우리는 말할 수 있는 모든 사람에게 진상을 알렸습니다. 하지만 파룬궁 사건에 대해 누구도 감히 들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한번은 많은 사람이 법원에서 회의를 마치고 나올 때, 저는 예의 바르게 관리자로 보이는 사람에게 “안녕하세요, 저희가 일이 있어 보고드리려고 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가 “무슨 일인가요?”라고 물어 제가 “언니가 모함당해 억울하게 형을 선고받을 처지에 놓였는데, 공정하게 처리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가 부하 직원에게 우리를 응대하도록 허락해서 우리는 사실을 자세히 설명하며 진상을 알렸고 그들은 기록하면서 몰래 녹음도 했습니다.

여러 차례 구출하기 위해 다니면서 저의 정념도 점차 강해졌고 많은 두려움, 근심, 자신을 보호하려는 마음 등을 제거해 정정당당하고 떳떳하게 그들을 상대했습니다. 사부님의 가지와 수련생들의 협조에 감사드립니다. 노수련생 가족과 상의해 우리는 변호사를 선임하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노수련생의 아들은 일반 변호사를 찾아 유죄 변호를 하자는 데만 동의하며, 인권변호사가 아무리 변호를 잘해도 형을 선고받아야 하고 비용도 더 비싸다고 했습니다. 제가 노수련생의 남편에게 말했습니다. “일반 변호사를 선임하면 이치가 있어도 설명하기 어렵고 법을 어긴 사람이 처벌받지 않을 수 있어요. 우리는 정법을 수련하고 있으니 바르지 못한 것을 바로잡아야 합니다. 사악이 마음대로 수련생을 박해하는 것과 구세력의 모든 사악한 안배를 부정해야 해요.” 집에 돌아와 딸과 상의하자, 딸이 인권변호사 선임 비용을 부담하고 법정에서 증인으로 나서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노수련생의 남편과 아들을 만나 의견을 교환했고, 결국 인권변호사를 선임하기로 했습니다. 노수련생 가족과 변호사의 소통을 통해 일이 순조롭게 진행되었습니다. 변호사가 박해받고 있는 노수련생도 만나 외부 수련생들과 가족의 상황을 전달해 자신감을 북돋워 줬습니다. 노수련생의 남편은 모든 것을 변호사가 해주길 바라며 불만을 토로했습니다. 저는 그에게 “이 일은 변호사만의 일이 아니라 우리 대법제자가 마땅히 주도적 역할을 해야 하는 수련이기도 합니다. 변호사는 속인이니, 관련 법률을 통해 파룬따파와 대법제자를 박해하는 것이 헌법과 법률을 위반하는 것이라고만 말하면 됩니다. 모든 것은 사부님께서 결정하시는 것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야기를 나누며 노수련생 남편의 오해를 풀었습니다.

제 남편에게 “내일 노수련생의 재판이 열려 가봐야 해요”라고 말하자 남편은 동의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재판하는 매우 중요한 날이니 제가 꼭 가야 해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날은 날씨가 맑고 무더웠습니다. 저는 노수련생 가족과 함께 다른 수련생의 차를 타고 법원으로 갔습니다. 변호사는 전날에 도착해 현지 호텔에 묵었습니다. 저는 변호사를 만나러 가자고 제안했고, 우리는 호텔에 가서 변호사를 만났습니다. 먼저 변호사에게 사악의 압력에도 불구하고 대법제자를 위해 무죄 변호를 하려는 용기에 대해 감사를 표하고 몇 가지 사항을 논의했습니다. 동시에 우리가 내일 달성하고자 하는 목표를 분명히 말하며, 꼭 무죄 변호를 해달라고 강조하자 변호사는 수락했습니다.

수련생들이 여러 곳에서 찾아와 인원이 점점 늘어났습니다. 국보대대(파룬궁 탄압 담당 공안부서)도 일찍 와서 그렇게 많은 수련생이 온 것을 보고 부하들을 시켜 해산시키게 했습니다. 수련생들은 잠시 떠났다가 다시 찾아왔습니다. 법정에서 우리들과 노수련생 가족 모두 방청을 하지 못하게 했습니다. 저와 다른 수련생은 밖에 있는 차와 주변이 아무리 시끄러워도 마음을 흔들리지 않고 발정념을 했습니다.

점심시간이 되어 식사할 때 우리는 변호사와 노수련생 가족이 만면에 웃음을 띠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변호사가 이치와 근거가 있는 변호를 해서 기세로 사악을 압도했습니다. 변호사가 “여러분들이 하는 발정념의 효과가 뚜렷하게 느껴졌어요. 더 많은 분들이 발정념을 하면 좋겠네요”라고 말해 우리는 크게 고무되어 밖에 있는 수련생들에게도 전달했습니다. 이것은 정말 정(正)과 사(邪)의 대결이고 감동적인 일이어서 수련생마다 가장 강한 정념을 유지했습니다.

오후에 발정념을 하다 문득 법원에 오면서 노수련생의 남편이 집에서 대법서적과 CD를 얼마간 찾아내 법원이 CD 수량에 따라 몇 년 형을 선고할 예정이라고 한 말이 떠올랐습니다. 사부님께서 일깨워주신 것 같아 저는 변호사를 바로 만나 상황을 설명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사부님께 요청드렸는데, 뜻밖에도 잠시 후 변호사가 물건을 찾으러 왔다며 우리 앞에 나타났습니다. 저는 즉시 변호사에게 말했습니다.

“2011년 3월 1일 중국 신문출판총서장 류빈제(柳斌傑)가 신문출판총서령 ‘제50호’에서 파룬궁 서적 출판 금지령을 폐지한다고 발표했어요. 서적과 CD를 얼마나 많이 소지해도 불법이 아니기에 절대 수련생을 박해하는 증거로 삼을 수 없고, 우리는 전적으로 무죄 변호를 해서 무조건 대법제자 석방을 요구해야 해요.”

변호사는 설명을 이해하고 몸을 돌려 들어갔습니다. 사부님의 세심한 보살핌과 보호에 감사드립니다. 법정은 오후 6시가 넘어서야 끝났습니다. 이번 변호는 매우 성공적이었습니다. 변호사는 법정에 있는 사람들에게 법률과 도덕 측면에서 파룬궁은 법을 어기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사회와 인류에게 유익하고 해롭지 않다는 것을 분명히 설명했습니다. 또한 사실을 조작하고 대법제자를 박해하는 것은 위법이며 죄를 범하는 것이라고 천명했습니다. 변호사는 무죄를 주장하며 대법 수련자의 무조건적인 석방을 요구하여, 사악에 대응해 최대한의 압박을 가했습니다. 그들도 분명히 진상을 이해해서 법정에서 당일 판결을 내리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상급 ‘610’(장쩌민이 파룬궁 탄압을 위해 특별히 설립한 불법 조직)의 압력으로 법정에서는 노수련생에게 부당하게 1년 4개월 형을 선고했습니다. 하지만 이것도 당시 부당한 판결 기간 중 가장 짧은 것이었습니다.

그날 제가 밤늦게 귀가해서 남편이 화를 낼까 봐 걱정했는데, 뜻밖에도 남편의 첫마디는 “법정은 어땠어? 오늘 나도 일하면서 당신들을 위해 발정념을 했어”라고 말했습니다. 이 행동은 제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것이었습니다. 자비롭고 위대하신 사부님께 감사드리며 모든 것은 사부님과 대법이 이끌어주신 것입니다. 이번 소송을 통해 얻은 교훈은 많은 집착과 사람의 마음을 제거했다는 것입니다. 사부님께서는 모든 제자가 성취하도록 도와주고 계십니다. 사부님의 은혜에 감사드리는 마음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습니다.

저는 아직 많이 부족합니다. 앞으로 반드시 올바르게 자신을 수련하며 사심 없는 생명으로 성취할 것이며, 모든 이를 선하게 대하고 진상을 알려 더 많은 인연 있는 중생을 구하겠습니다. 저는 꼭 남은 수련의 길을 바르게 잘 걸으면서 사부님을 따라 진정한 집으로 돌아가겠습니다.

가족과 친척, 친구들을 대표해서 자비로우신 사부님께 큰절을 올립니다.

허스(合十)

 

원문발표: 2024년 7월 28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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