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세심(洗心)
[명혜망] 줄곧 정법 제자의 사상 의식에 대한 구세력의 박해를 어떻게 식별하고 제거할 것인가에 대한 글을 쓰고 싶었습니다. 게으름 때문에 계속 쓰지 않다가 오늘 위팅(宇庭)의 글 ‘수련인을 괴롭히는 정(情)을 돌파하다‘를 보고, 이 문제에 대해 위팅 및 수련생들과 교류하고 싶습니다.
위팅 글의 서두: “줄곧 자신이 정관(情關)을 아주 잘 넘었다고 생각했는데, 어떤 사람을 다시 좋아하게 된 후에야 아직 수련을 잘하지 못했음을 발견했다.” 사부님께서 ‘2003년 정월대보름 설법’에서 한 제자가 사부님께 여쭈었던 것이 기억납니다. “제자는 어떤 때 정말로 아주 곤혹스럽습니다. 수련 중에서 정말로 정(情)을 놓기가 아주 어렵습니다. 게다가 마치 수련의 첫 시작부터 고비마다 모두 정의 관(情關)을 넘는 것 같으며 마치 생명 중의 가장 큰 고비가 정의 관인 것 같습니다.” 사부님께서 답하셨습니다. “당신은 이 정(情)을 고비로 간주하고 있다. 당신이 내려놓지 못했기에 당신은 늘 지나치기만 했다.”
글에서 최소 일곱 번 ‘정관(情關)’을 언급했는데, 정말로 그것을 관문으로 여긴 것 같습니다. 위팅은 정관의 괴롭힘을 받은 후 안으로 찾아 명예욕, 과시욕, 상상 및 사람의 관념을 찾은 것 같고, 이것이 “이것이 바로 이전에 내가 정관 문제에서 계속 돌파하지 못했던 원인이다”라고 생각했습니다. 사실, 정의 문제에서 저는 위팅이 여전히 문제의 근본과 본질을 찾지 못했다고 생각합니다. 진정한 근본 원인은 개인 수련과 정법 수련의 관계를 바로잡지 못하고, 이것이 구세력이 우리의 집착을 이용해 정법을 파괴하는 것임을 인식하지 못한 것입니다.
사부님께서 ‘도항’의 첫 편에서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대법제자가 감당한 고통, 감당한 마난(魔難)은, 내가 여러분에게 알려주는데, 단지 개인수련을 겨냥한 것이 아니다. 이는 고층생명이, 수련생에게 업력이 있음과 제고해야 한다는 이유로, 저층(低層)의 부패된 생명을 이용하여 박해를 진행한 것으로서, 대법을 검증하는 요소가 있는데 실은 정법을 놓고 말한다면 모두 파괴이다.” 구세력은 바로 여러분의 이런 허점을 잡아 거듭 ‘정관’과 시련을 만들어 여러분이 정의 문제에 얽매이게 하여 법 실증과 중생 제도를 방해합니다.
오늘날 사부님께서 제자들에게 이 정도의 사람 것을 남겨두신 것은 우리가 인간 세상에서 생존할 수 있게 하고 동시에 법을 실증하고 중생을 구할 수 있게 하기 위함입니다. 게다가 “신 수련생을 제외하고 사부는 99년 7·20 이후에 당신들에게 개인 수련을 위한 어떠한 관(關)도 만들어 주지 않았다. 왜냐하면 당신들의 개인수련은 전면적으로 중생을 구도하고 대법을 실증하는 것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2003년 정월대보름 설법)라고 하셨습니다. 구세력이 배치한 모든 것은 개인의 제고와 자아 수련을 목적으로 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수련생의 법에 부합하지 않는 일사일념(一思一念)을 잡아 이를 격리시키고, 확대하고, 강화하여 우리의 사상과 언행을 조종합니다. 정법시기에 다른 공간의 사악이 우리의 육신을 박해할 때 우리는 즉시 그것을 제거하지만, 정신과 사상 의식에 대한 박해는 식별하기 어렵고 때로는 무의식적으로 받아들이고 인정하기도 합니다. 대법제자가 겪는 정의 괴롭힘은 정신적 박해의 한 형태입니다.
속인 중에서 우리는 아름다운 것과 이상적인 삶을 동경하고, 꽃과 달빛 아래에서 시와 그림 같은 정취에 빠집니다. 연상, 상상, 추억에 빠져 어떤 감정의 상황에서 헤어나오지 못합니다. 하지만 지금 수련하는 사람으로서 법으로 가늠해보면, 이런 것들은 사실 모두 수련을 통해 버려야 할 관념과 사상 업력입니다. “사람은 主元神(주왠선)에 의해 주재(主宰)되어야 하는데, 主元神(주왠선)이 마비되어 관념으로 대체된다면, 그럼 당신은 무조건적으로 투항한 것이 되어, 생명은 이러한 것들에 의해 좌우지된다.”(전법륜2-불성) “바로 당신의 사상이 일종의 외래 영체(靈體)에게 통제당한 것이다. 당신은 그래도 아주 좋다고 느껴, 당신은 가지기를 좋아하고 당신은 기뻐하는데, 당신이 기뻐할수록 그것이 당신을 더욱 단단히 통제한다. 진정하게 수련하는 사람으로서, 당신이 그것에게 통제당해서야 되겠는가? 또한 그것이 온 층차는 아주 낮다. 그러므로 우리는 진정하게 수련하는 사람으로서, 이런 번거로움을 불러일으키지 말아야 한다.”(전법륜)
이 정은 다른 공간에서 더럽고 추하며 쇠락한 물건입니다. 더 새롭고 성스러우며 아름다운 신우주가 어찌 이런 부패한 물건들의 존재를 용납할 수 있겠습니까? 정법 제자로서 우리가 항상 정법의 기점에 서서 구세력의 정신적 박해를 인식하고 제거할 수 있다면, 정 등의 일련의 문제에서 정체되지 않을 것입니다. 오히려 정법시기 대법제자의 위대한 사명을 더 잘 짊어질 수 있을 것입니다!
이상은 단지 제 한정된 층차에서의 얕은 인식일 뿐입니다. 그리고 저는 수련은 이론 논쟁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정의 문제에서 이를 통해 승화할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근본적인 것입니다. 글에 미흡하거나 부적절한 부분이 있다면 위팅과 수련생들의 자비로운 지적을 부탁드립니다.
원문발표: 2003년 8월 12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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