简体 | 正體 | 대법서적

계산하지 말자

글/ 중국 대법제자

[명혜망] 방금 명혜망에서 한 수련생이 해외에서 벌어진 일을 언급한 것을 보고 큰 시험을 겪게 됐다. 나는 어떤 요소가 나에게 그 일의 진위를 알아보고 싶게 만들고 있음을 느꼈다. 나는 계속 이런 것을 배척하려고 했지만 그것은 힘이 너무 커서 정념으로 막으려 해도 완전히 배척할 수 없었다. 나는 머릿속으로 끊임없이 사부님의 설법을 외웠지만 설법은 임시방편이었을 뿐 그 요소를 제거할 수는 없었다.

나는 마음을 가라앉힌 후 법에서 이 문제와 내가 걸어왔던 수련 과정에 대해 자세히 생각해보았다. 나는 이것이 나를 신사신법(信師信法)하지 못하게 하려는 구세력의 악독한 시도라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내 생명 미시하에 여전히 내가 인식하지 못한 법에 맞지 않는 요소가 있다는 것을 알았고, 그 요소가 바로 이런 사악한 요소를 불러왔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자신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그러자 사부님의 설법 한 구절이 떠올랐다. “물론 이번 일을 통해 우리는 매 수련생의 心性(씬씽)이 처한 위치를 똑똑히 보았다. 그러나 어떠하든지를 막론하고 여러분은 이 일의 시작에서부터 엄숙한 사고(思考) 과정을 거쳤는데 이는 모두 잘못된 것이 아니다. 당신에게 이런 기회를 주어 당신으로 하여금 사고하게끔 한 것이다. 도대체 리훙쯔(李洪志)는 어떤 사람인가? 도대체 이 법이 바른가 바르지 않은가? 사람에서 벗어나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걸어 나올 수 있는 사람들은, 내가 당신들에게 알려주는바, 당신들은 고험을 이겨낸 것이다! (긴 박수)”(도항-미국서부법회 설법)

나는 당초 내가 어떻게 7.20을 지나왔는지 되돌아봤다. 박해 전 나는 사부님의 ‘전법륜(轉法輪)’을 읽고 깨달았다. 수련에는 반드시 시험이 있을 텐데, 중공은 언젠가 반드시 파룬궁 탄압으로 대법제자를 시험할 것이며, 대법제자는 반드시 그에 맞서 천안문광장에 갈 것이다. 그래서 공산당이 탄압하기 시작할 때 나는 별로 놀라지 않았다. 하지만 매체가 끊임없이 거짓말과 유언비어를 퍼뜨리자 저도 모르게 의문이 생겼다. 그래서 나는 자신이 걸어온 길을 다시 되돌아보았는데, 내가 확실히 파룬궁에 속은 것이 아니고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모든 것도 가짜가 아니라는 결론을 내게 됐다.

이런 과정을 거쳐 나는 곧 그 관을 넘겼다. 그때 내가 그 시련을 이겨낸 것은 ‘난 속지 않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지나온 것이다. 대법은 진짜이고, 사부님의 모든 말씀도 진짜이기 때문에 굳게 믿었던 것이다. 그러니 사부님 말씀에 따라 하기만 하면 나에게 ‘좋은 점’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여기까지 생각하자 ‘우리는 원래 신이었다’라는 영화 마지막에 여주인공 봉이가 인생에 대해 곤혹스러워하는 동창생 해봉에게 말했던 대사가 떠올랐다. “네가 항상 계산하고 얻으려고만 하기 때문이야.” 그래서 나는 깨달았다. 당초 내가 7.20을 지나올 수 있었던 것도 무엇을 얻을 수 있는지 계산해 대법을 수련하면 최종적으로 원만할 수 있을 것이고, 속인이 얻지 못하는 좋은 것을 얻을 수 있으며, 내가 들인 모든 노력은 가치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다시 말해 나는 대법과 거래를 한 것이었다. 내 노력과 수련에 보상이 있다고 생각해서 수련을 했고, 아무 보상이 없고 밑지는 장사라고 생각하면 수련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는 내 생명에 존재하는 ‘사(私)’라는 요소의 표현이다. 법에 부합하지 않는 이런 요소가 그동안 내가 대법에 동화하고 정진하며 착실히 수련하는 것을 막은 것이었다.

수련 초기에 이런 생각을 가졌다면 그래도 이해할 만하다. 수련은 인식의 과정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법을 수련한지 이렇게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 여전히 이런 인식과 생각을 품고, 아직도 수련에서 계산하고 득실을 따지고 있다면 대법 수련을 진정하게 이해하지 못하고 대법이 무엇인지 인식하지 못한 것이다. 다시 말해서, 수련을 하고 있기는 하지만 법에 동화되지는 못한 것이다.

죄가 있고 멸망을 직면한 생명이 사부님께서 구원해주러 오셨는데도 계속 계산하며 득실을 따져서야 되겠는가? 이때는 오직 은혜에 감사하며 최대한 빨리 위험에서 벗어나야 할 뿐이다.

다른 각도에서 보면 진정하게 대법에서 착실히 수련하는 제자라면 끊임없이 대법의 높고 깊은 내포와 아름다움을 깨달아, 수련의 기회를 소중히 여기고 감사하는 마음이 계속 솟아 나올 것이다. 나는 박해가 시작된 후 법을 외우면서 사부님과 점점 가까워지는 느낌을 받아 사부님을 언급하기만 해도 눈물이 고이곤 했다. 나의 모든 것을 이뤄주신 사부님을 마주하는 느낌은 정말 말로 표현할 수 없다! 그러한 느낌은 신사신법과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나는 법을 얻은 날 밤 꾸었던 꿈이 생생하게 생각난다. 하늘 북서쪽에 문이 열리더니 몸이 거대하신 사부님께서 두 손을 뻗으셨다. 나는 7, 8살 어린아이의 모습이었고 사부님을 뵈자마자 마치 오랫동안 보지 못한 가족을 만난 것처럼 있는 힘을 다해 사부님을 향해 달려갔다. 사부님과의 거리는 가까워 보였지만 아무리 달려도 사부님이 계신 곳까지 달려갈 수 없었다. 그때 나는 반드시 사부님 곁에 달려갈 거라는 일념만 있었을 뿐 다른 생각은 전혀 없었다. 하지만 그때부터 지금까지 이미 20여 년을 달렸다.

진정하게 수련하는 데는 아무런 조건이 없다. 비유하자면 부모님께서 집에 돌아오라고 하실 때도 조건을 따지겠는가? 우리의 수련은 집에 돌아가는 것이나 다름없지 않은가? 사부님께서 우리를 찾으시며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알려주시고 보호해주시며 집으로 무사히 돌아갈 수 있도록 길을 닦아주시는데 또 무엇을 바라는가? 더 무엇을 얻으려고 하는가?

개인의 약간의 인식이니 법에 맞지 않은 부분이 있으면 수련생 여러분께서 바로잡아주시길 바란다.

허스(合十)

 

원문발표: 2024년 8월 7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4/8/7/480557.html
简体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4/8/7/480557.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