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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을 찾아 방황한 여정

글/ 플로리다 대법제자

[명혜망]

법을 찾아 방황한 여정

나는 태어난 지 3일 만에 교회에서 세례를 받아 천주교 신자가 됐다. 그래서 어린 시절은 교회에서 미사를 드리고 주일학교를 다니며 보냈다. 물질적으로 궁핍했던 그 시절에 교회에 가는 것은 생활 속 중요한 일이었지만, 왜인지 아무도 나에게 성경을 제대로 읽어보라고 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천주교 교리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14~15세가 되어 삶의 의미를 고민하고 열심히 교회에 다니는 의미에 의문을 품기 시작하면서 더 이상 교회에 가지 않게 됐다.

대학 시절 학교 옆에 어떤 교회가 있어서 자전거를 타고 캠퍼스 주변을 돌아다니는 선교사들의 언행을 가까이서 관찰할 수 있었다. 나는 스스로 그들의 교회에 들어가 신에게 길을 구하는 소수의 사람 중 하나였다. 나는 매우 경건했고 각종 교리를 엄격히 따랐으며, 그때 마음속으로 무한한 평온과 충만함, 행복을 느꼈다. 평소에도 열심히 성경을 공부했고 자주 단상에 올라 내 체험을 이야기했다. 그러다 어느 날, 오른손을 들고 “이 교회가 이 세상에서 유일하고 진실한 교회”라고 선서할 수 없게 됐다. 내가 의문을 품고 떠나자 내가 이끌던 청년회 친구들은 실망하고 이해하지 못했다. 사실 나 자신도 더 실망하고 고통스러웠다.

얼마 후인 1986년, 나는 미국으로 유학을 왔다. 바쁘지만 마음이 공허해 동료와 룸메이트를 따라 그들의 교회에 1년간 다녔지만 결국 실망했다. 학위를 받은 후 약학과에서 5년을 더 공부하면서 중동, 파키스탄, 인도 등에서 온 많은 무슬림들과 깊이 교류하게 됐다. 그들이 알라를 경배하는 경건함에 감명받아 진지하게 코란을 읽고 아랍어를 배우며 히잡을 쓰기 시작했고, 한때 독실한 무슬림의 삶을 살았다. 하지만 몇 년 후 많은 의문과 이해할 수 없는 점들이 생겨 역시 서서히 떠나게 됐다. 나는 어떤 형식이나 위선적인 언행을 좋아하지 않았기에 다시 한번 정신적 방랑자가 됐다.

직장 생활은 매우 바빴지만 바쁜 생활이 끝나면 삶이 더욱 공허하고 무력하게 느껴졌다. 그러다 어느 날 전환점이 찾아왔다. 언니가 뇌암에 걸린 내 남편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라며 많은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 서적을 보내왔다. 당시 나는 미국인임을 자랑스럽게 여기며 생화학 연구에 종사하는 남편이 중국인의 사상이나 정신적 논의를 받아들이지 않을 거라고 편견을 가졌기에, 이미 병세가 위중한 남편에게 책을 보여주지 않았다. 남편이 병으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그랬다.

남편이 세상을 떠난 후 더 이상 환자를 돌볼 시간이 없어져 비로소 파룬궁 수련서인 《전법륜(轉法輪)》을 읽을 시간을 낼 수 있었다. 그때가 2001년 11월이었다. 그때부터 내 인생에 큰 전환점이 찾아왔고 더 이상 방황하거나 공허하지 않게 됐다. 《전법륜》에서 사부님이 말씀하신 법리에 완전히 감복하고 감사하게 됐다.

중공의 파룬궁 탄압을 알게 된 후

군인 가족 마을에서 태어나 반공 분위기 속에서 자랐기에 중공(중국공산당)의 사악함을 잘 알고 있었다. 중공이 파룬궁을 잔혹하게 탄압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나는 집 전화로 명혜망에 있는 박해 사례를 찾아 중국의 공안 경찰에게 전화를 걸어 이 사악한 박해를 중단하라고 했다. 그때 남편 크리스는 밤중에 자주 전화 소리에 깨어났지만 중국어를 하지 못해서 세인들에게 계속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真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라고 말했다. 그것이 그가 중국인들에게 중국어로 말할 수 있는 유일한 진상이었다. 나는 눈물을 흘리며 마음속 깊이 감동했다.

그때는 진상을 알리는 플랫폼도 없었고 교육도 없었다. 오직 정념으로 열심히 진상을 알렸다. 하지만 나중에 직장의 엄청난 압박과 높은 전화 요금으로 인해 잠시 진상 전화를 중단했다. 그런데 이 중단이 2022년까지 이어졌다. 그것이 내 마음속 가장 큰 유감이자 아쉬움이었기에 결국 2022년 말, 언니 수련생의 소개로 다시 전화를 걸 용기를 내어 진상 플랫폼에서 진상을 알리는 숙원을 이어갔다.

내 직장은 바쁘고 실수도 할 수 없어서 마음의 부담이 컸다. 하지만 전화로 진상을 알리고 중생을 구할 수 있다는 생각에 매일 잠을 조금 줄여도 괜찮다고 여겼다. 시간을 잘 활용해 사부님을 도와 중생을 구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대법제자의 지체할 수 없는 책임이기 때문이다.

정념으로 어려움을 돌파하다

작년에 동생이 갑작스러운 뇌 질환으로 세상을 떠나 내 마음에 끝없는 후회와 슬픔을 안겼다. 나는 일에 너무 바빠 동생에게 법공부와 연공을 가르치는 것을 소홀히 했고, 결국 선량하고 성실한 영혼이 법을 얻지 못해 구원받지 못하게 했기 때문이다. 결국 법공부를 강화하며 가족 정에 대한 난관을 넘었다.

그때 나는 매일 오후 1시부터 자정까지 일했고 전염병이 절정일 때는 일주일에 7일을 일했다. 작년 7월 어느 날 밤, 퇴근해서 집에 도착했을 때 갑자기 차에서 일어설 수 없어 남편이 조심스럽게 천천히 안아서 내려야 했다. 다음 날 아침에도 전혀 일어나 침대에서 내려올 수 없었다. 정말 두려웠다. 다행히 나는 즉시 마음가짐을 바로잡고 사부님께서 하신 말씀을 떠올렸다. “당신이 대법을 배웠으니, 당신이 부딪힌 좋은 정황이든 나쁜 정황이든 모두 좋은 일이다.”(2005년 샌프란시스코법회 설법) 척추의 극심한 통증 속에서 몸을 일으켜 똑바로 설 수 없었고, 겨우 90도로 허리를 구부린 채 손으로 작은 물건 하나 들 힘도 없었다. 그때 나는 너무나 부끄러웠다. 20여 년을 수련했는데 어떻게 발전은커녕 퇴보할 수 있단 말인가?

나는 마음속으로 매우 분명히 알고 있었다. 이런 상황이 생긴 것은 일에 대한 집착과 적지 않은 급여에 대한 미련 때문에 많은 시간과 정력을 일반인 일에 쏟으며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세 가지 일을 잘하는 것을 소홀히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신의 과오를 깨달은 후 3년 동안 사직하기 어려웠던 사직서를 단호히 제출했다. 나는 대법제자로서 사명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비록 정진하지 못했지만 말이다.

나는 이것이 절대 병이 아니라고 굳게 믿었고 결국 침대나 바닥에서 천천히 힘들게 일어섰다. 그리고 휴가를 냈고 종일 쉬지 않고 법공부와 연공, 발정념을 했다. 다른 생각은 하지 말고 오직 사부님과 법을 믿자고 생각했다. 이렇게 일주일이 지나자 드디어 의자나 침대에서 비교적 수월하게 일어날 수 있게 됐다. 그 후 10여 일이 지나자 온몸의 신경통이 사라졌다. 의사의 진찰도 받지 않고 어떤 약물도 복용하지 않은 상태에서 완치된 것은 신기한 일이었다. 이번 경험을 통해 수련 중 발생하는 여러 상황에서 안으로 찾아야 할 뿐만 아니라, 더 중요한 것은 어떤 문제를 만나든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백 퍼센트 사부님과 법을 믿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사부님께서 우리 곁에 계시기에 제자는 어떤 관문도 넘을 수 있다.

가슴 아픈 가족 정의 고비와 거의 죽을 것 같은 병업 고비를 겪은 후, 나는 다시 직접 전화로 진상을 알리는 대열로 돌아왔다.

진상 전화로 소중한 중국인들을 구하다

모든 대법 항목과 마찬가지로 중국의 소중한 중국인들에게 전화를 거는 것도 진상을 알리고 중생을 구하는 가장 직접적인 방법 중 하나다. 비록 오래된 항목이어서 많은 수련생에게 점차 잊혀졌지만 여전히 매우 중요하고 시급하다.

직접 구두로 진상을 알리는 것은 사실 자신의 심성을 한 걸음 한 걸음 높이고 속인의 집착심을 버리는 과정을 시험하는 것이다. 구조상 우리는 전화를 받는 중생의 배경을 미리 알 수 없다. 까다로운 중고등학생일 수도 있고, 순박한 농민공이나 당 고위 간부, 혹은 다른 사람일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모두 가장 큰 자비심과 인내심으로 진상을 이야기한다. 물론 아예 듣지 않고 바로 전화를 끊는 사람들도 많다.

나는 나이가 좀 든 수련생 몇 분이 전화하는 것을 들어봤다. 그분들은 사투리 억양이 강하고 진상 내용도 단순하고 소박했으며, 다양한 배경의 중생들에게 거의 똑같은 내용을 이야기했다. 하지만 중생들은 대부분 진지하게 귀 기울여 들었고 탈당 권유도 잘 받아들였다. 내가 보기엔 그분들은 법공부를 잘해서 심성이 높아 상대방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었다. 그래서 법공부를 잘하고 발정념을 잘하며 심성을 높여야 진상을 잘 알리고 사람을 구할 수 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그것들이 보건대, 당신이 나를 구할 수 있으려면, 당신은 나의 층차에 도달해야 하고, 이 위덕이 있어야만, 당신은 나를 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당신이 그 위덕이 없고 당신이 나만큼 높게 도달하지 못한다면, 어떻게 나를 구할 것인가? 그래서 그것은 당신에게 곤두박질치게 하고 고생을 겪게 하여, 당신의 집착을 제거하게 한다. 그런 다음 당신의 위덕이 세워지고, 당신이 어느 층차로 수련되면, 당신이 비로소 그것을 구할 수 있으므로 모두 이렇게 한다.”(각지 설법11-대법제자는 반드시 법 공부를 해야 한다)

그래서 나는 매일 5시 30분(겨울에는 4시 30분)에 일어나 진상 플랫폼에 와서 정념을 발하고 법공부를 잘한 뒤 진상 전화를 걸도록 스스로에게 엄격히 요구한다. 하지만 내가 전화하는 상황은 좋을 때도 있고 나쁠 때도 있으며 힘이 부족하다. 나는 아직 버려야 할 집착심이 많이 있지만 버리지 못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전화할 때도 그때의 내 수련 상태가 반영된다. 나는 매우 부끄럽고 정진하며 착실히 수련해 사부님께서 대법제자에게 요구하신 세 가지 일을 잘하기를 희망한다. 그래야만 사부님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을 수 있다.

이상은 내가 수련 과정에서 느낀 점들이다. 법에 맞지 않는 부분이 있다면 수련생 여러분께서 자비롭게 지적해주시길 바랍니다.

허스(合十)

 

원문발표: 2024년 8월 6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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