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미국 파룬궁수련생
[명혜망] 사부님께서는 ‘전법륜’에서 “참기 어려운 것도 참을 수 있다(難忍能忍)”고 하셨습니다. 수년간의 수련을 통해 저는 ‘진(眞)’의 기본 원칙은 간단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좋은 사람에게는 진실을 말하고, 나쁜 사람에게는 하고 싶은 말을 하되 그가 자신을 괴롭힐까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선(善)’의 기본 원칙은 더 열린 마음과 많은 배려가 필요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할 수 있지만 상당수는 매우 선택적입니다. 하지만 제가 보기에 ‘인(忍)’은 일반인과 수련자 모두에게 어렵습니다. 저는 파룬따파 수련에서 ‘인’이 특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제 삶의 대부분은 인내의 연속이었습니다. 놀랍게도 많은 이들이 제 처신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직관을 따랐을 때 결과는 좋았고 남의 조언을 들었을 땐 그렇지 않았습니다.
주변에선 제가 남다르다고 합니다. 어쩌면 제 인내를 이해하지 못하고 제가 이용당한다고 여겼을 겁니다. 그럴 때마다 저는 사부님 말씀을 떠올립니다.
“어떤 사람이 당신을 좋다고 해서 당신이 꼭 좋은 것이 아니며, 어떤 사람이 당신을 나쁘다고 해서 당신이 꼭 나쁜 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좋고 나쁨을 가늠하는 표준마저 모두 비뚤어짐이 발생했기 때문이다.”(전법륜)
첫 번째 이야기
여러 해 전, 한 남자가 어떤 자리에서 제가 있는 것을 몹시 질투한 적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밤, 그는 제가 사람들로 가득 찬 집에 있다는 걸 알고 화가 났습니다. 그는 들어오더니 아무 말도 없이 저에게 달려들었습니다. 그는 매우 큰 체구의 사내였습니다.
이상하게도 그때 제 정신은 매우 또렷했습니다. 그가 오는 걸 보고 그가 하려는 일을 하도록 내버려 두어야 한다는 걸 알았습니다. 그는 한 손으로 저를 들어 올려 계속해서 때리더니 밖으로 끌고 나가 목을 조여 숨을 쉴 수 없게 했습니다. 그래도 저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집 안의 모든 사람들이, 아니 온 동네 사람들이 저를 돕기 위해 왔습니다. 그들은 그를 저에게서 떼어내는 데 성공했고, 결국 그는 감옥에 갇혔습니다. 그 후로 그들은 저를 존경했고 지금까지도 저는 그 일로 그들에게 큰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저는 심지어 그 남자를 보석금을 내고 풀어주어 아들의 생일 파티에 참석할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지금 우리는 좋은 친구 사이이며 그는 저를 매우 존중합니다.
두 번째 이야기
다른 이야기는 조금 극단적입니다. 일부 분들께 충격을 줄 수 있어 조심스럽게 부드러운 표현을 사용하겠습니다. 이 이야기를 나누는 이유는 최종 결과 때문입니다.
2017년, 저와 전처는 입양을 선택했습니다. 그녀에게는 이미 전남편과 낳은 네 명의 자녀가 있었지만 여러 이유로 우리는 이 길을 택했습니다. 남미 콜롬비아의 한 보육원에서 한 큰 아이를 입양하기로 했는데, 저는 곧 어려움을 겪게 될 것임을 알았습니다.
놀랍게도 가장 어려운 부분은 제 아내였습니다. 그녀는 즉시 돌변했습니다. 그 아이에게 집착하게 됐는데, 심지어 그녀의 자녀들도 알아차렸습니다. 그녀는 입양한 아이와 그가 겪은 모든 일에 대해 매우 동정적이었지만 그 정도가 지나쳤습니다. 모든 것이 그를 중심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녀의 아이들은 매우 질투하게 됐고 저는 매우 걱정됐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 아이는 밤을 무서워하며 누군가가 함께 자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당연히 그녀는 그와 함께 자겠다고 고집했습니다. 저는 그녀를 말리려 했지만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이것이 그녀가 처음으로 저에게 진정으로 반대한 것이었고 저는 갈등에 빠졌습니다.
그녀는 그 아이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내기 시작했고, 심지어 자신의 아이들을 저에게 맡긴 채 그와 함께 휴가를 가기 시작했습니다. 아이들은 그녀에게 이 모든 이상한 행동을 멈추라고 애원했습니다. 제가 그녀와 논쟁할 때마다, 그녀는 제가 그 아이의 고통스러운 배경과 상황에 대해 동정심이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저는 미칠 것 같았고 매일 밤 심장병으로 죽을 것 같은 이상한 건강 문제가 생겼습니다. 이 증상은 4년 이상 지속됐는데 아마도 제 우울함, 혼란, 깊은 분노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1년 반 동안 이런 상태가 지속되면서 저와 그 아이와의 관계는 매우 긴장됐고 의견 차이도 많았습니다. 어느 날 제가 그에게 거짓말을 했다고 비난하자 그는 저에게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습니다. 당연히 아내는 저를 탓했고 아이들을 데리고 며칠 동안 떠났습니다. 저는 그녀에게 돌아오라고 했고 제가 떠나겠다고 했습니다. 결국 우리는 공식적으로 별거하게 됐습니다.
1년간의 별거 후 관계를 회복하려 노력했고 결국 저는 다시 그들에게 돌아갔지만 상황은 이전보다 더 악화됐습니다. 저는 거의 미칠 지경이었고 집안 상황은 모두에게 좋지 않았습니다. 상황이 너무 나빠져서 제일 어린 의붓딸은 결국 성인이 된 언니와 함께 산다며 집을 나갔습니다. 2020년 4월 30일, 제가 다시 이사를 나갔고 이는 팬데믹 봉쇄 직전이었습니다. 며칠 후 저는 직장을 잃었고 가족과 멀리 떨어진 지저분한 아파트에서 홀로 지냈습니다. 봉쇄로 집 밖을 나갈 수조차 없었습니다.
이렇게 고립된 상태로 1년을 보낸 후, 어머니께서 말기 폐암 진단을 받으셨습니다. 저는 플로리다로 이사해 어머니와 함께 살며 돌봐드리기로 결심했습니다. 그 전에 아내와 아이들도 우연히도 플로리다의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했습니다. 고통과 내적 혼란으로 인해 제 마음은 그녀와 아이들로부터 멀어져 있었습니다. 그녀는 제가 떠난 것에 대해 매우 화가 났지만, 그때 우리는 이미 공식적으로 이혼한 상태였고 이는 그녀의 선택이었습니다.
7개월 후, 어머니의 건강이 악화되기 시작했고 저는 매우 슬펐습니다. 이 시점에서 그 아이와의 다툼과 아내와의 첫 별거로부터 4년이 지났습니다. 저는 오랫동안 그 아이와 대화를 나누지 않았는데 그가 저를 그리워한다며 연락을 해왔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할 유일한 방법은 직접 마주하고 마음속으로 진정으로 그를 용서하는 것이라고 결심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올랜도에서 만나기로 했습니다. 이 만남은 매우 즐겁고 감동적이었으며 우리는 다시 관계를 시작했습니다. 몇 주 후 어머니께서 돌아가셨습니다.
어머니의 장례식 2~3주 후, 전처가 저에게 전화를 해서 꼭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녀는 매우 슬퍼 보였습니다. 우리는 잠시 대화를 나눴고 그 통화에서 그녀는 마침내 그 아이와의 부적절한 관계를 고백했습니다. 그녀가 이전에 저에게 보였던 모든 분노는 이 비밀을 감추기 위한 가면이었던 것입니다. 그녀는 감정적으로 무너져 내렸고 저에게 진실을 고백했습니다.
이 소식을 듣는 것은 고통스러웠지만 이는 제가 들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이는 제가 미치지 않았으며 그녀의 그 아이에 대한 행동에 대해 제가 계속 반대해 왔다는 것을 의미했기 때문입니다. 그녀의 솔직함은 마침내 저를 해방시켰고 저는 모든 것을 내려놓을 수 있었습니다. 그녀는 저를 미치게 만들었고 수년간 저를 그런 상태로 만들었지만, 저는 결코 미치지 않았고 무언가가 잘못되었다는 걸 알고 있었습니다. 이후 저는 다시 가족을 마주할 수 있게 됐습니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용서할 수 있었습니다. 전처를 용서할 수 있었고, 저를 항상 마음에 품고 있었던 아이들과 어울릴 수 있었으며, 심지어 그 아이와도 이전보다 더 잘 지내게 됐습니다.
지난 2년 동안 저는 그 아이, 의붓자녀들, 손주들과의 관계를 완전히 재건했습니다. 가능한 한 자주 그들을 방문합니다. 전처를 완전히 용서했고 필요할 때마다 대화를 나눌 수 있습니다. 지금은 우정까지 생겼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제가 필요로 한 것은 단지 진실이었고, 제 약점은 혼란과 자기 의심에서 비롯됐기 때문에 일어난 모든 일을 견딜 수 있었습니다. 그 아이가 자동차 공동명의 서명을 부탁했을 때도 동의했습니다. 그가 재정적 어려움을 겪었을 때 저는 쉽게 도울 방법을 찾았습니다. 지금 그는 경제적 문제를 해결했기 때문에 저에게 돈을 갚고 있으며 우리는 자주 대화를 나눕니다.
저는 이 사람들에 대해 어떤 악의도 없으며 제 마음은 매우 가볍습니다. 제가 내린 몇 가지 올바른 선택 덕분에 전처, 의붓자녀들, 손주들, 그 아이 모두가 저를 매우 사랑하고 존중합니다. 그들은 항상 제가 괜찮은지 확인하고 저를 돕기 위해 무엇이든 기꺼이 하려고 합니다.
맺음말
제 삶에는 이런 상황이 많았고, 어떤 것들은 제가 공유한 것보다 더 극단적이었습니다. 아마도 제거해야 할 업력이 많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많은 경우, 문제로 인해 곤란해질 때마다 저는 ‘파룬궁’ 이 책으로 돌아가 다른 관점을 찾았습니다. 제가 이렇게 말하면 어떤 사람들은 놀라워합니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특히 ‘인(忍)’할 수 있음을 강조하는데, 오직 ‘인(忍)’해야만 비로소 대덕지사(大德之士)로 수련할 수 있다. ‘인(忍)’, 그것은 아주 강한 것으로서 ‘진(真)’과 ‘선(善)’을 넘어선 것이다.”(파룬궁)
사부님께서는 ‘전법륜’ 마지막 부분에서 알려주셨습니다. “참기 어려운 것도 참을 수 있고, 행하기 어려운 것도 행할 수 있다(難忍能忍, 難行能行).”
우리가 인간의 사심을 내려놓을 때 우리는 정말로 불가능한 일을 해낼 수 있고 견딜 수 없는 일을 견뎌낼 수 있게 됩니다.
이것들은 단지 제 이해일 뿐입니다. 물론 잘못된 부분이 있다면 여러분의 지적을 부탁드립니다. 제 이야기를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2024년 미국 플로리다 법회 원고)
원문발표: 2024년 7월 31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4/7/31/480313.html
简体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4/7/31/480313.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