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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이 내 과격한 성격을 바꾸다

글/ 랴오닝성 대법제자

[명혜망] 저는 올해 82세입니다. 어릴 때부터 시골에서 자랐고 어려운 환경 때문에 고생을 잘 견디는 성격이 되었지만 동시에 성미도 급해졌습니다. 나중에 도시로 시집을 갔습니다. 시골 호적에다 직업도 없어서 처음에는 시누이와 시어머니가 저를 자주 깔보았지만 저는 못 본 척했습니다. 그러다 그들은 저를 욕하기 시작했고 이것저것 트집 잡으며 뭔가 없어지면 제가 훔쳤다고 비난했습니다. 욕설은 구타로 이어졌고 저는 그들에 대한 원망으로 가득 찼습니다.

마침내 어느 날, 가슴 속의 증오가 화산처럼 폭발했습니다. 그날 시어머니가 또 저를 욕하자 저는 달려들어 그녀를 밀쳐 넘어뜨리고 부엌으로 가 칼을 들고 그녀에게 달려들었습니다. 시어머니는 평소처럼 저를 욕하다가 제가 이렇게 난폭해질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해 겁에 질려 어쩔 줄 몰라 했고 피하지도 못했습니다. 다행히 옆에 있던 사람이 칼을 빼앗아 인명 사고는 면했습니다.

한번은 시누이가 친정에 갔다가 돌아왔을 때 마침 남편이 외출하려다 저에게 바지를 찾아달라고 했습니다. 저는 “바지 하나 찾는데 날 부르나요”라고 했습니다. 이는 단순히 부부간의 대화였고 우리는 화를 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시누이가 이 말을 듣고 제가 오빠를 괴롭힌다고 생각해 테이블 위의 찻잔을 집어 던졌고 저는 맞아서 이가 하나 빠졌습니다. 저는 화가 나서 그녀의 집에 가서 닥치는 대로 물건을 부쉈습니다. 그 후로 우리는 수년간 말을 하지 않고 만나면 원수처럼 대했습니다.

이런 과격한 성격은 억누르려 해도 억누를 수 없었습니다. 집에서도 남편, 아들과 다투었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싸우고 때렸습니다. 화가 나면 칼이든 총이든 무엇이든 들었고, 총이 있었다면 아마 쏘기까지 했을 것입니다.

저는 길가에서 작은 이발소를 운영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옆 건물에 사는 언니와 알게 됐습니다. 그 언니는 파룬궁수련생이었고 자주 대법의 아름다움을 이야기해주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법을 얻게 되었고 마침내 사람이 살아가는 진정한 의미를 찾았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매일 갈증 난 사람이 물을 마시듯 법공부를 했습니다. 밤에 잘 때도 옷을 벗지 않고 잤는데 이는 안일한 마음을 갖지 않기 위해서였습니다. 잠에서 깨면 바로 일어나 법공부를 시작했고 다시 자지 않았습니다. 때로는 한밤중에 법공부를 시작했고 시간만 나면 바로 법공부를 했습니다. 식사도 간단히 해결하고 시간을 아껴 더 많이 법공부를 했습니다.

법공부를 많이 하니 심성 제고에도 큰 진전이 있었습니다. 지난 몇 년간의 가정 내 사건을 돌아보니 이러한 갈등들이 모두 인연이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틀림없이 제가 전생에 그들에게 빚진 게 있어서 그들이 저를 못살게 굴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그들을 원망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았고 법리를 이해하고 나서 시댁 식구들과 화해하려고 적극적으로 나섰습니다. 저는 시누이에게 말했습니다. “예전에는 모두 제 잘못이었어요. 이렇게 오랜 시간이 지났으니 서로 미워하지 말고 모든 걸 털어버려요. 앞으로 우리 잘 지내요. 저는 수련을 하고 있어요. 우리 사부님께서 좋은 사람이 되라고 가르치셨어요. 앞으로 저는 여러분에게 잘할게요.” 시누이도 이 말을 듣고 웃었습니다. 그 후로 저는 남편의 가족 모두를 따뜻하게 대했고 지금은 우리 관계가 매우 화목합니다. 저는 그들 모두에게 ‘삼퇴'(중국공산당 당·단·대 조직 탈퇴)를 하도록 도와주었습니다.

예전에 저는 며느리와도 갈등이 있었습니다. 아들이 결혼할 때 제가 아파트를 하나 사줬고, 저에게는 단층집이 두 채 더 있었습니다. 나중에 단층집들이 모두 재개발되어 아파트 두 채로 바뀌었습니다. 며느리는 그 아파트를 모두 자기들 명의로 바꾸고 싶어 했습니다. 저는 화가 나서 식탁을 뒤집고 그들과 크게 다퉜습니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이는 제가 이익에 대한 집착을 놓지 못한 것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이 집들을 영원히 가질 수 있나요? 조만간 그들에게 줘야 하지 않나요? 이해가 되자 저는 말했습니다. “집은 너희가 명의를 바꾸고 싶으면 바꿔. 다 너희 거야. 너희 마음대로 해.” 제가 마음을 내려놓자 그들도 더 이상 명의 변경을 추진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또한 자신을 돌아보며 화를 내는 것이 모두 마성이라는 것을 깨달았고 더 이상 화내지 않기로 굳게 결심했습니다. 제가 제고하려 하니 사부님께서 아들과 며느리를 통해 저에게 관문을 안배해주셨습니다.

한번은 제가 아들 집에 갔는데 들어가자마자 아들과 며느리가 돈을 찾느라 이것저것 뒤지고 있는 걸 봤습니다. 한참을 찾아도 찾지 못하자 며느리가 짜증을 내며 물었습니다. “어머님이 가져가셨죠?” 저는 “난 안 가져갔다”라고 했습니다. 그녀가 말했습니다. “어머님이 안 가져갔으면 어떻게 없어졌겠어요? 어머님이 가져간 거예요. 제가 돈을 어디에 뒀는지 모를 리가 없잖아요.” 저는 “난 안 가져갔어”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그녀가 갑자기 폭발하듯 소리쳤습니다. “가세요! 집에 가세요! 빨리 가요!” 그래서 저는 가기로 했고 그녀를 자극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문 앞에 도착했을 때 아들이 문을 열어주었고 저는 말했습니다. “아들아, 네 와이프를 잘 달래. 화내지 말고 조급해하지 말라고 해. 찾을 수 있을 거야.” 제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아들도 날카롭게 소리쳤습니다. “말 그만하고 빨리 가세요, 빨리요.” 그래서 저는 갔습니다. 집에 돌아와서도 화가 나지 않았습니다. 저는 생각했습니다. ‘평소에도 내가 너희들에게 돈을 주는데 어떻게 너희 돈을 가져가겠어. 너희는 나에게 덕을 주고 있는 거야. 난 너희에게 화내지 않을 거야.’ 이렇게 이 관문을 순조롭게 넘었습니다. 나중에 그들은 돈을 찾았습니다.

길가에서 이발을 해주면 매일 오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법을 얻은 후 저는 매일 손님들에게 진상을 알리기 시작했습니다. 손님들은 다양했고 이는 저에게 많은 연마의 기회를 주었습니다. 어느 날, 정신 상태가 좋지 않은 이웃이 와서 이발을 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는 “여기서 이발한 적이 없으니 오늘은 잘 해주세요”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빠르게 일했고 머리를 자르고 면도하는 데 몇 분밖에 걸리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는 제가 대충 했다고 생각하고 갑자기 화를 냈습니다. 주먹으로 저를 때리고 한참 동안 욕을 퍼부었습니다. 돈도 내지 않고 그냥 갔습니다. 저는 당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가 때리고 욕하는 대로 뒀습니다. 그가 저의 심성을 높이는 데 도움을 주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항상 제가 수련인이라는 것을 생각하며 속인들과 따지지 않으려 했습니다. 오가는 사람들 중에 장애인, 정신 지체인, 정상이 아닌 사람들이 있으면 무료로 이발을 해주었습니다. 중생들이 모두 고통받고 있다고 생각해서 그들을 더 많이 도와주고 싶었습니다.

지금은 더 이상 이발을 하지 않습니다. 매일 나가서 직접 만나 진상을 알리고 사람들을 구합니다. 저는 두려움이 없고 사람을 만나면 바로 이야기합니다. 진상을 알리는 것은 행각하는 것과 같아서 매일 다른 사람들을 만납니다. 저를 욕하는 사람, 감사해하는 사람, 칭찬하는 사람, 소리 지르는 사람, 심지어 신고하겠다는 사람도 있지만 저는 마음을 흔들리지 않도록 합니다. 항상 자비롭게 중생을 대하며 그들이 모두 구원받을 수 있도록 합니다.

 

원문발표: 2024년 8월 4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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