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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부님께서 나에게 잘못을 바로잡을 기회를 주시다

글/ 산둥성 대법제자

[명혜망] 수련생들이 일상에서 심성을 높이고, 사악한 박해 속에서도 정념정행(正念正行)하며, 세상 사람들에게 진상을 알리며 겪는 어려움들을 읽을 때마다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제 수련 경험을 돌이켜보면 저지른 잘못들이 아직도 부끄럽습니다. 심성을 잘 파악하지 못해 색욕관에서 실수했고 그 후 자료점을 떠났습니다. 그날 밤 교외 다리에 앉아 별을 보며 제자의 실수로 사부님께서 얼마나 마음 아파하실지 생각했습니다. 사부님의 보호 아래 걸어온 길을 생각하니 ‘한 번 발을 잘못 내디뎌 천추의 한이 됐구나[一失足成千古恨]’라는 생각에 가슴이 찢어지는 듯했습니다.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나중에 자료점에 인력이 부족해 수련생이 찾아와 자료점을 세우자고 했습니다. 기꺼이 동의했고 3년 넘게 머물렀습니다. 이 기간 두 번이나 납치돼 세뇌반에 갔지만 사부님의 가지(加持)와 보호로 탈출할 수 있었습니다.

첫 번째는 집에 돌아왔을 때 누군가의 신고로 경찰이 집에 들이닥쳐 저를 세뇌반으로 끌고 갔습니다. 이번에는 여름부터 겨울까지 오랫동안 불법 구금당했습니다. 저는 절대 ‘전향(수련 포기)’하지 않겠다고 마음먹었고, 이것이 바로 제가 오점을 씻을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습니다.

‘610’의 악인들이 저를 더 심하게 박해하려 했을 때, 사부님께서 저에게 이성적으로 대처하라고 암시하셨습니다. 한번은 ‘610’ 주임이 저에게 “○○는 진상자료를 배포한 적이 있나요?”라고 물었습니다. 그때 제 머릿속에 ‘악인들에게 틈탈 기회를 주지 말라’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습니다. 저는 이것이 사부님께서 저에게 일깨워주신 것이라 여기고 “없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는 잠시 생각하더니 “진상자료를 배포하는 게 좋은 일인가요, 나쁜 일인가요?”라고 물었습니다. 저는 “좋은 일입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그가 “좋은 일인데 당신은 안 했다고요?”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그가 순수한 의도가 아니라는 걸 눈치채고 (이미 많은 수련생이 이곳에서 불법적으로 노동수용소로 보내졌기에) “좋은 일은 많고도 많지요”라고 대꾸했습니다. 이때 전향한 자가 말을 보탰습니다. “다른 사람이 다 전향해도 당신은 전향하지 않겠다는 거죠?” 저는 대답했습니다. “저보다 수련을 잘한 수련생이 부지기수입니다.” 그들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이 세뇌반은 폐교에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3개의 방이 있었는데, 양쪽에 남성과 여성 파룬궁수련생을 불법적으로 가두고, 중앙에 당직실을 두었습니다. 날씨가 점점 추워지자 양쪽 방에 석탄 난로를 설치했습니다. 당시 남자 쪽에는 저와 감시자 2명뿐이어서, 석탄을 아끼려고 우리 셋을 당직실로 옮기라고 했습니다. 그들은 저에게 중간 벽에 구멍을 뚫고 당직실을 통해 연통을 여성 수련생들 방으로 빼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저쪽 방이 너무 넓어 연통만으로는 방 전체를 덥힐 수 없다고 생각해 구멍을 뚫기를 거부했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저를 저녁까지 마당에 세워두었고 밤에는 수갑으로 저를 뒤쪽 창문에 매달아 놓고 잠을 자지 못하게 했습니다. 그때 저는 뒤쪽 창문이 열릴 수 있다는 걸 발견했습니다. ‘이제 때가 왔구나. 사부님께서 나에게 탈출구를 마련해 주셨어’라고 생각했습니다. ‘610’ 책임자가 순찰을 돌며 제게 채워진 수갑을 살펴보고 창문 가장자리도 당겨보았습니다. 창문이 흔들리는 걸 보고는 단단히 못을 박으려고 젊은 경찰에게 망치를 가져오라고 시켰습니다. 하지만 젊은 경찰이 망치를 찾지 못하자 ‘610’ 책임자는 내일 다시 보자며 돌아갔습니다.

저는 생각했습니다. ‘모든 게 사부님의 배치 속에 있구나! 나는 반드시 나갈 수 있을 거야. 사부님 감사합니다!’ 아침이 되자 그들은 세면을 하라며 저를 풀어줬습니다. 감시자들이 잡담하는 틈을 타 저는 세면대야를 들고 방으로 돌아와 창문을 잡아당겼더니 활짝 열렸습니다. 창문을 통해 밖으로 뛰어내려 마당 담을 넘어 그 소굴을 벗어났습니다.

두 번째로 납치됐을 때도 여름이었습니다. 경찰이 저를 강제로 끌고 가 세뇌반에 넣었습니다. 주임이 저를 보더니 “○○, 또 왔네요?”라고 말했지만, 저는 무시하고 마음속으로 제자의 정념을 강화시켜 이 시련을 다시 뚫고 나가게 해주실 것을 사부님께 간청드렸습니다.

이번에는 창문조차 없는 겨우 4제곱미터밖에 안 되는 좁은 방에 저를 가뒀습니다. 시멘트 바닥 중앙에는 쇠고리가 박혀 있었고, 대나무 깔개만 덩그러니 놓여 있었습니다. 그들은 저를 수갑으로 쇠고리에 채워 일어서지도 못하게 했습니다. 그 기간 저는 불법 구금에 항의하며 누운 채로 단식을 했습니다.

4일째 되던 날, 그들은 저를 정신병원으로 끌고 갔습니다. 거기서 체격이 건장한 정신병 환자 5~6명이 달려들어 저를 침대에 넘어뜨리고 붕대로 몸과 팔다리를 묶은 뒤 강제로 음식을 주입했습니다.

그 후로 저는 이틀에 한 번씩 정신병원에 끌려가 강제로 음식물을 주입당했습니다. 제가 필사적으로 저항했기에 한번은 여러 차례 시도해도 주입관을 넣지 못하자 화가 난 의사가 주입관을 힘껏 밀어 넣었습니다. 순간 제 입과 코에서 피가 쏟아졌습니다. 그들은 화장지로 피를 닦아내면서도 계속해서 음식을 주입했습니다.

열흘이 넘어가자 몸은 많이 쇠약해졌지만 목소리가 쉰 것 외에는 별다른 불편함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저는 이 모든 것이 사부님께서 제자를 가지해주시고, 대신 감당해주신 덕분이란 걸 알았습니다. 매번 제가 저지른 실수를 떠올릴 때마다 저 때문에 사부님께서 얼마나 더 많은 것을 감당하셔야 했을까 하는 생각에 자책감이 밀려왔습니다.

열흘이 훌쩍 지난 어느 날 밤, 해가 질 무렵 갑자기 수갑이 풀렸습니다. 저는 철문을 떼어내 모퉁이에 기대어 세우고 3미터가 넘는 담장을 넘어 탈출했습니다. 또다시 사부님의 가지와 보호 아래 그 소굴을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나중에 다른 수련생에게 들으니, 다음 날 아침 ‘610’ 주임이 제가 또 사라진 걸 발견하고는 너무 놀라 “정말 신기하군, 또 도망갔어!”라고 혼잣말을 했다고 합니다.

그 후 저는 다시 색욕의 시험에 직면했을 때, 이는 구세력이 한없이 자비로우신 사부님께서 저를 포기하지 않으시는 걸 보고 저를 다시 끌어내리려는 술책이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동시에 사부님께서도 이 기회를 통해 저의 잘못을 씻어내고 계신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이전의 뼈아픈 교훈이 있었기에 이번엔 더 이상 실수를 저지르지 않았습니다.

처음 자료점에 돌아왔을 때 수련생들 사이에 많은 논란이 일었습니다. 3년이 넘도록 이 갈등으로 인해 우리 지역 수련생들이 전반적으로 협력을 잘 이루지 못했습니다. 2007년 사부님께서 ‘호주 수련생에 대한 설법’을 발표하셨습니다. 저는 우리 지역 수련생들이 하나의 정체(整體)를 이루고 더 잘 협력할 수 있도록 제가 이 자료점을 떠나야 한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떠나기가 아쉬웠지만 결국 그만두기로 결심했습니다. 당시 명혜망에서는 이미 자료점의 확산을 권장하고 있었습니다. 집에 돌아온 후 수련생의 도움을 받아 제 집에 작은 자료점을 꾸렸습니다.

이는 10여 년 전의 일입니다. 며칠 전, 저는 여러 수련생과 함께 감옥에서 막 풀려난 수련생을 만나러 갔습니다. 이 수련생은 소굴에서 박해받으면서 자신의 뜻과 달리 행동한 일 때문에 매우 낙담해 있었습니다. 어느 날 이 수련생이 병상에 누워 계신 90여 세의 노모에게 “사부님께서 아직도 저를 받아주실까요?”라고 물었습니다. 노모는 힘없는 목소리로 천천히 대답하셨습니다. “받아주실 거야.” 그 수련생이 또 “어머니의 딸이 잘못을 저질렀어요”라고 말하자 노모는 다시 낮은 목소리로 말씀하셨습니다. “우린 모두 사부님의 자녀란다.“

오늘 이 일을 글로 남기며, 자비롭게 제자를 다시 구해주신 사부님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또한 수련생들의 아낌없는 도움에도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원문발표: 2024년 7월 29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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