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 대법제자
[명혜망] 우리는 모두 질투심을 없애는 것의 심각성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질투심은 때로 교활해서 다른 집착심 뒤에 숨어 있으면서 근원이 되기도 합니다. 만약 어떤 일이 당신 눈에 띄거나 마음을 움직이게 했다면, 우리가 안을 찾다보면 곧 발견하게 됩니다. ‘아, 이것이 내 어떤 마음을 없애려는 거구나!’ 그래서 그것을 제거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그 명백히 보이는 집착이 오히려 질투심의 방패막이가 될 수 있으며, 자세히 파헤쳐보면 뒤에 질투심이 숨어 있을 수 있습니다.
최근 수련생들의 교류문을 보면서 원망심과 질투심을 어떻게 없앨 수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저는 이전에 저 자신에게 이 두 가지 집착이 뚜렷하다고 느끼지 않았습니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예전에 일어난 일들을 대하는 데 있어 아직 어떤 집착심이 있는지 찾아보았습니다. 찾아보지 않으면 모르지만 한번 찾아보니 깜짝 놀랐습니다. 있을 뿐만 아니라 적지 않았고 어떤 마음은 20여 년이나 숨어 있었습니다!
오늘은 주로 수련생들과 다른 마음 뒤에 숨겨진 질투심을 찾아내는 과정을 교류하고자 합니다. 또한 수련생들에게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1. 가족애 뒤에 숨겨진 질투심
부모님과 남동생은 따로 살고 있습니다. 분가할 때 부모님은 농업용 사륜차, 농지, 젖소 등 많은 재산을 동생과 동생 며느리에게 주고 자신들은 생활용 농지 일부만 남겼습니다. 지역 농촌에는 “아들은 강산이요, 딸은 식당이다”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재산을 아들에게 주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그들은 이미 여러 해 전에 분가했고 동생 집은 꽤 부유하게 살고 있는데도 어머니는 여전히 1만 위안씩 그들에게 돈을 주면서 자신은 아껴 쓰고 계셨습니다. 이에 대해 저와 여동생은 모두 어머니께 불만이 있었습니다. 저는 아버지께 뒤에서 이렇게 말씀드렸습니다. “동생에게 돈을 주시면 나중에 두 분이 연로하셔서 병이 나면 무슨 돈으로 치료하시려고요? 주신 돈은 이제 그들의 돈이 된 거예요. 며느리의 그 좁은 마음으로 그때 가서 한 푼이라도 내줄 것 같아요? 아버지도 좀 꾀를 부리셔야죠!”
여동생과 남동생 두 집은 계속 사이가 좋지 않았습니다. 제가 보기에 부모님은 명백히 남동생 편만 들고 계셨습니다. 저는 아버지께 말씀드렸습니다. “돈을 모두 아들에게만 주지 마시고 동생도 좀 도와주세요. 동생집이 지금 어려운 시기예요. 며느리가 그렇게 인색한데, 저는 멀리 타지에 있고…두 분이 나이 드시면 누구를 의지할지 모르잖아요!”
겉으로 보기에는 제가 가족애가 있어 보입니다. 부모님이 연로하셔서 병 치료할 돈이 없어 고생하고 구박당할까 봐, 여동생 가족이 생활이 어려운 것을 안타깝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 뒤에는 남동생과 올케에 대한 질투심이 숨어 있었습니다.
남동생 부부는 이익을 중시하고 은혜를 모르는데도 부모님은 기꺼이 계속해서 그들에게 돈과 도움을 주십니다. 저와 여동생은 부모님을 배려하고 효도하는데도 부모님은 우리 둘에게 한 번도 돈을 주신 적이 없습니다. 저는 돈이 부족하지 않고 부모님의 돈을 원하지도 않으며, 오히려 명절이나 생신 때 부모님께 적지 않은 돈을 드려 맛있는 것을 사드시라고 합니다. 부모님은 돈 쓰기를 아까워하시며 대부분 저축하십니다. 반면에 남동생은 부모님께 효도하는 데 거의 돈을 쓰지 않아서 저는 꽤 불만이었지만 간섭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부모님이 남동생 집에 돈을 주실 때면 제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이것은 결국 내 돈을 남동생 집에 주는 건데!’ 여동생 집은 지금 어려운 시기에 있어서 아들을 결혼시키고 집을 사느라 많은 빚을 졌습니다. 여동생 부부는 능력 있고 자존심이 강해서 장사를 하고 싶어 하지만 자본금이 없어 어쩔 수 없이 대출을 받았습니다. 부모님은 여동생에게 돈을 빌려주지 않으면서도 남동생 집에는 틈만 나면 돈을 주십니다. 저는 부모님의 행동이 너무 편파적이고 불합리하다고 느꼈습니다. 겉으로는 여동생을 위해 불공평하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제 마음이 불평등했던 것이고 그것이 질투심이었습니다.
2. 원망 뒤에 숨겨진 질투심
저와 여동생은 어릴 때 모두 심장병이 있었습니다. 우리 둘이 결혼하기 전에 아버지는 여동생을 데리고 큰 병원에 가서 심장병을 치료해주셨지만 저는 신경 써주지 않으셨습니다. 그때 저는 아버지를 매우 무서워해서 감히 말씀드리지 못했습니다. 나중에 이 일을 떠올릴 때마다 속으로 아버지를 원망했습니다. 저는 심장병을 치료하기 위해 파룬궁을 수련하게 됐는데, 나중에 생각해보니 이 모든 것이 어쩌면 미리 안배된 것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수련 후에 이것이 원망심이며 제거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됐고 그래서 마음을 풀었습니다.
이번에 안으로 찾아보며 비로소 이 일에서 여동생에 대한 질투심도 숨어 있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여동생의 심장병이 나아서 저는 물론 매우 기뻤지만, 아버지가 저에게 공평하지 않다고 느꼈습니다. 수련생은 제게 전제 조건을 바꿔 생각해보라고 했습니다.
1. 만약 여동생에게 심장병이 없고 저만 병이 있었는데, 그때 가정 형편이 어려워서 아버지가 저를 데리고 치료하러 가지 않으셨다면, 저는 아버지를 원망하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2. 만약 여동생과 제가 모두 심장병이 있었는데 아버지가 우리 둘 다 치료해주지 않으셨다면 저는 아버지를 원망하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보시다시피 제 원망심은 동시에 일어난 두 가지 행위를 겨냥한 것입니다. 아버지가 여동생을 데리고 치료하러 간 것과, 저를 데리고 가지 않은 것입니다. 이를 분석해서 보면 제가 ‘아버지가 날 데리고 치료하러 가지 않은 것’을 원망한 것은 순수한 원망하는 마음이고, ‘아버지가 여동생을 데리고 치료하러 간 것’을 원망한 것은 사실 여동생에 대한 질투심이었습니다.
3. 이익심 뒤에 숨겨진 질투심
제가 결혼할 때, 시아버지는 혼수로 10무(畝, 1무는 약 200평)의 땅을 주셨고 우리는 분가해서 따로 살았습니다. 우리집에는 3무의 식량 경작지가 있어서 총 13무의 땅이 있었습니다. 남편이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후 시아버지는 우리 모녀가 어떻게 살아갈지 고려하지 않고 강제로 10무의 땅을 도로 가져갔습니다. 남편의 병 치료에 시아버지의 돈 몇천 위안을 썼기 때문에, 저는 우리 농가를 시아버지에게 드려 빚을 갚았고, 그런 다음 어린 아이를 데리고 친정에 가서 살았습니다. 두 마을이 멀리 떨어져 있어서 남은 3무의 땅을 경작하기가 불편해서 계속 시아버지가 경작하셨고, 매년 설에 우리가 물건을 사서 시아버지를 방문할 때만 시아버지는 우리에게 100~200위안을 주셨는데, 이것이 땅 임대료라고 하셨습니다. 나중에 땅값이 올랐는데도 시아버지는 여전히 200위안만 주셨고, 가서 달라고 하기에도 창피하고 화가 나서 더 이상 받으러 가지 않았습니다. 그때 저는 생활이 매우 어려웠고 마음속으로 시아버지를 매우 원망했으며, 그들이 세상을 떠나면 땅을 돌려받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나중에 노부부가 잇따라 세상을 떠나셨는데 시아버지는 돌아가시기 전에 모든 땅을 둘째 딸에게 주셨고, 그 속에 제 3무의 땅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둘째 시누이 집은 꽤 부유한데도 제 땅을 가져가고는 모르는 척하며 한마디 말도 없었습니다. 저는 화가 나서 아들에게 말했습니다. “전화해서 그 3무 땅을 달라고 해!” 아들은 생각해보더니 말했습니다. “그만두세요, 달라고 하면 싸움이 날 텐데, 우리가 예전에 그렇게 가난했을 때도 그 3무 땅 없이 버텼잖아요. 이제 제가 일해서 돈을 벌 수 있으니 상관없어요. 잃지 않으면 얻지 못하는 법이니 담담하게 보세요.” 아이가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듣고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법리를 생각해보며 저도 더는 말하지 않았습니다. 사실 당시에는 이익심을 완전히 내려놓지 못했습니다. 일부 이유는 걱정과 체면이 있었고, 다른 사람들과 충돌하고 싶지 않았으며, 불필요한 문제를 일으키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나중에 땅값이 계속 오르면서 제 마음이 또 동요했습니다. 이전에는 3무의 땅이 몇백 위안에 팔렸는데 나중에는 점차 3천 위안 이상으로 올랐습니다. ‘그 땅은 원래 내 것인데 왜 그녀가 가진 거지?! 이 몇 년간 총 2만 위안 정도에 팔 수 있었을 텐데, 만약 앞으로 땅을 갖고 있으면 매년 돈을 벌 수 있잖아!’ 저는 다시 아들에게 땅을 달라고 하는 일에 대해 말했습니다. 아들은 말했습니다. “순리대로 하세요. 어머니의 재산은 없어지지 않을 거예요. 설령 어머니의 것을 고모가 차지했다 해도 그건 고모가 덕(德)으로 바꾼 거예요. 시시각각 모두 등가 교환이며 매우 공평해요.” 법공부를 통해 저도 이해했습니다. 이는 제 이익심과 원한의 마음을 없애려는 것이니 자신을 수련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2년간 계속된 법공부와 실제 수련을 통해 20여 년간 저를 방해했던 이익심과 원망심을 진정으로 내려놓았습니다. 저는 인간 세상의 물질적 이익이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가는 구름일 뿐이며, 모든 사람이 다 과객일 뿐임을 이해했습니다. 저는 중생을 구하기 위해 온 것이며 제 진정한 소원은 사부님을 도와 정법하고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모든 시비는 저를 성취시키기 위한 것이며 제게 천국으로 가는 길을 닦아주는 것입니다.
이 며칠 동안 아들이 저에게 말했습니다. “사실 그 3무의 땅이 고모에게 갔다는 것에 대해 어머니가 마음속으로 불편해하신 것은, 표면적으로는 이익심이지만 그 뒤에는 질투심이 있어요. 한번 찾아보세요.” 저는 이런 방면으로는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는데 깊이 분석해보니 정말 질투심이었습니다. 만약 그녀 집이 매우 가난한데 땅이 이렇게 불분명하게 그녀에게 갔다면 저는 마음이 불편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만약 모르는 가난한 사람이 돈이 필요하다면 저는 무상으로 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시누이가 원래 매우 부유한데 추가로 제 재산까지 얻게 되자 저는 마음이 동요됐고, 심지어 그 땅이 차라리 공용으로 회수되는 것이 낫지 그녀가 얻는 것은 싫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되면 제가 ‘악자(惡者)’가 된 것 아닌가요!
사부님의 법에 대조해보고 수련생들과 교류를 통해 우리는 깨달았습니다. 가난한 사람에 대해서는 제게 질투심이 없고 오히려 자비롭게 동정하게 되는데, 이는 ‘선자(善者)’의 경지에 있는 것입니다. 부유한 그녀에 대해서는 제게 질투심이 있어 여전히 ‘악자’의 경지에 있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선자’가 지닌 자비심이 생길 수 없는 것입니다. 진정한 자비는 상대방이 누구인지에 따라 달라지지 않습니다.
우리는 모든 사람에 대한 질투심을 없애야 합니다. 질투심이 있을 때는 자비심이 생길 수 없습니다. 한편으로는 남을 질투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남에게 잘해주는 것은 위선입니다. 질투심이 없을 때 내면은 가벼운데, 다시 생각해보면 세인들도 사실 매우 불쌍합니다. 무지 속에서 업을 짓고 덕을 돈으로 바꾸지만 백 년 후에는 또 가져갈 수 없어 다음 생에 덕이 부족하면 어떤 상황에 직면할지 모릅니다.
질투심은 우리가 경지를 높이고 원만에 이르는 것을 방해합니다. 안으로 찾고, 문제를 만나면 진지하게 분석해, 다른 집착심 뒤에 숨어 있는 질투심을 파헤쳐 그것이 수면 위로 떠오르게 하고 숨을 곳이 없게 하여 그것을 철저히 제거합시다.
사부님의 자비로운 깨우침에 감사드리며 수련생 여러분의 사심 없는 헌신에 감사드립니다.
개인적인 깨달음이니 부적절한 부분이 있다면 수련생 여러분의 지적을 부탁드립니다.
원문발표: 2024년 7월 30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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