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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련인을 괴롭히는 정(情)을 돌파하다

글/ 위팅(宇庭)

[명혜망] 줄곧 자신이 정관(情關)을 아주 잘 넘었다고 생각했는데, 어떤 사람을 다시 좋아하게 된 후에야 아직 수련을 잘하지 못했음을 발견했다. 얼마 전 나는 또 한 번 정관을 넘었는데, 예전에는 늘 자신이 이 부분을 잘 수련했다고 생각했고 비슷한 문제를 다시 만나면 마음이 흔들리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지만, 나중에 그렇지 않다는 것을 발견했다. (물론, 대법은 대법제자가 연애를 하거나 결혼을 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우리에게 최대한 속인사회의 상태에 부합해 수련하라고 한다. 그러나 수련인으로서 우리는 마음 깊은 곳에서 자신이 집착하고 있는지 아닌지 사실 알고 있다.)

나는 매번 정관을 넘을 때마다 안으로 찾은 후에는 문제의 근원을 찾았다고 생각했지만, 그것은 단지 일부분만 찾은 것이었고 가장 근본적인 근본은 찾지 못했다. 정관이 또 나타날 때마다 나는 다시 같은 문제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왜 문제가 또 나타났을까? 단지 매번 대상만 다를 뿐이었다. 나는 분명 자신이 또 수련을 잘하지 못했고, 또다시 자신의 상상 속에서 살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맞다! 나는 자신이 상상 속에서 살고 있다는 것을 찾아냈지만,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여전히 찾지 못했다. 어느 날 친구가 그들 지역의 한 수련생도 정관을 넘고 있는데, 그 수련생이 자신의 정관이 ‘명(名, 명예)’과 관련이 있다는 것을 찾아냈다고 말해주었다. 나는 이 말을 듣고 의아해졌고 마음속으로 정과 명이 무슨 관련이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 친구에게 물었다. “왜 그 수련생이 명과 관련이 있다고 말했을까?” 우리는 교류를 시작했다…

명과 정은 어떤 관련이 있을까? 내가 대략적인 상황을 설명하겠다. 그 수련생은 자신이 상대방과 감정이 생긴 이유가 자신이 표현한 몇 가지 생각을 상대방이 매우 인정해줬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자신이 인정받은 후에 명을 추구하는 마음이 일어났고, 이런 마음이 일어나자 자신이 중요하게 여겨진다고 느꼈으며, 이렇게 해서 상대방에 대해 감정이 생겼다고 한다. 나는 여기까지 듣고 나서 생각하기 시작했다. 나 자신에게도 이런 부분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또한 말하자면, 나는 사실 명을 추구하는 마음이 작지 않다. 단지 자신이 말을 잘한다고 생각했고, 내 어떤 생각들이 사람들에게 주는 느낌이 모두 좋았으며, 많은 사람들이 날 칭찬했기 때문이다. 이런 칭찬은 사실 수련인의 시험 중 하나다. 그러나 나는 이렇게 무의식적이었고 나아가 자신의 과시하려는 마음도 드러냈다.

친구의 전달을 다 들은 후, 나는 자연스럽게 조용히 앉아서 안으로 찾아보았다. 그 명을 추구하는 마음을 찾아보았다. 계속 찾다 보니 갑자기 발견했다. 원래 내가 이전에 소위 아주 좋고 훌륭하다고 생각했던 생각들은 모두 사람의 관념일 뿐이었다! 뭐가 그렇게 기뻐할 만한 게 있었을까? 친구들이나 다른 사람들이 날 칭찬할 때, 그것은 내 명을 추구하는 마음이 작용했기 때문이고, 일단 내가 마음에 드는 사람이 날 칭찬하면 마음속으로 더욱 기뻐서 어쩔 줄 몰랐다. 그래서 나중에 자신의 상상 속에서 살게 된 것이다. 이런 것들을 꿰뚫어 보니 모두 사람의 관념 아닌가? 아무리 좋은 생각이라도, 아무리 말을 조리 있게 해도, 그것은 모두 사람 이 층의 이치일 뿐이다. 이 층의 이치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자신의 문제가 도대체 어디에 있는지 볼 수 없다. 이것이 바로 이전에 내가 정관 문제에서 계속 돌파하지 못했던 원인이다.

이렇게 생각이 바뀐 후, 나는 그것이 또 다른 세상이라는 것을 발견했다. 지금의 나는 정에 대해 또 다른 견해를 갖게 됐다. 나는 또한 수련하는 사람이 사람의 관념을 제거하는 것이 정말 쉽지 않다는 것을 발견했다. 어려운 점은 우리가 어떤 생각들이 일종의 관념이라는 것을 발견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 수련인은 끊임없이 관념을 돌파해야 한다. 각종 다른 관념들도 말이다. 정, 이것도 관념의 일종이다. 우리는 모두 아직 수련 중에 있어서 문제를 의식하지 못할 때는 아주 쉽게 관념에 이끌린다. 관념은 한 사람의 사상을 이끌 수 있고, 사상은 한 사람의 행위와 거동을 이끈다. 우리가 제거해야 할 것은 바로 층층의 각종 관념들, 집착의 근본이다.

사부님께서는 우리를 미래의 각자(覺者)라고 부르셨다. 그렇다면 행위상이나 사상상에서 반드시 끊임없이 자신에 대한 요구 수준을 높여야 한다. 만약 사람의 가장 높은 도덕 기준으로 한다고 해도 그것은 단지 사람의 이치에 부합할 뿐이다. 틀리지는 않지만 그것은 사람이 마땅히 있어야 할 상태일 뿐이다. 그렇다면 각자는 어떨까? 한 각자의 행위와 사상은 분명 사람과는 다르며, 그 기준은 더욱 높다. 그래서 나는 깨달았다. 정관 앞에서도 이성적으로 생각해봐야 한다. ‘나는 왜 대법에 들어왔는가?’ ‘시시각각 자신을 수련인으로 여기고 엄격히 요구하며 집착을 내려놓고 있는가?’ ‘자신의 마음이 모두 수련과 중생 제도에 투입되어 있는가?’

 

원문발표: 2003년 7월 27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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