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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남을 생각하며 오로지 사람만 구하다

글/ 랴오닝성 대법제자

[명혜망] 저는 시골 대법제자입니다.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 수련 전에는 심한 두통과 기억력 감퇴로 고통 속에서 살았습니다. 결혼 후에도 삶이 뜻대로 되지 않아 늘 이혼을 생각하며 괴로워했습니다. 게다가 우리집은 늘 무슨 소리가 나서 “소리가 나는 집에서 살면 좋지 않다”고들 했지만, 그때는 새집을 짓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저는 매일 병고와 무기력함 속에서 살았습니다.

1998년 어느 날, 대법제자들이 시장에서 법을 전하며 연공을 하는 모습을 아이와 함께 구경하러 갔습니다. 그때 어릴 적 친구가 파룬따파의 아름다움을 소개해줬고 저는 그렇게 대법 수련의 길로 들어서게 됐습니다. 사실 부모님은 이미 일찍부터 대법을 수련하고 계셨지만 제 인연이 그때까지 닿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수련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두통이 사라지고 기억력도 좋아졌으며 집에서 나던 소리도 그쳤습니다.

그때부터 법공부와 연공은 제 일상이 됐습니다. 학교를 다녔지만 글자를 많이 모르던 저는 처음엔 법공부가 어려웠습니다. 남편이 한 글자, 한 줄씩 가르쳐주고는 혼자 배우라고 했습니다. 모르는 글자는 사전을 찾아가며 공부했습니다. 그렇게 간신히 ‘전법륜(轉法輪)’을 읽게 되자 너무 기쁘고 행복했습니다. 시간 날 때마다 책을 읽었습니다. 밤에 달빛 아래서 읽다 잠들기도 하고 잠에서 깨면 또 이어서 읽곤 했습니다.

법공부를 통해 삶의 의미와 반본귀진(返本歸眞, 진정한 자신의 본원으로 돌아감)의 뜻을 알게 됐고, 만사에는 인과가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이때부터 진선인(真·善·忍)의 법리로 자신을 수련하기 시작했고, 더는 이혼 생각을 하지 않게 됐으며 시부모님과 주변 사람들을 잘 대했습니다.

남편은 삼형제 중 둘째입니다. 형제들이 부모님 봉양을 위한 집을 누가 지을지 의논하면서, 집 짓는 사람에게 그 집의 소유권을 주기로 했습니다. 시아주버니와 시동생은 돈 문제로 다 못 짓겠다며 우리에게 맡겼습니다. 저는 손해를 따지지 않고 맡겠다고 했습니다. 당시 형편은 넉넉하지 않았지만 수련인으로서 피하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응했습니다.

건축 자재를 준비하자 시아버지는 제가 혼자 감당하긴 버거울 거라 생각하셨는지 질책하셨고, 남편도 제가 무모하다며 “감당 못 하겠으면 짓지 마”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괜찮아요. 저는 진선인에 따라 좋은 사람이 되려는 대법제자예요. 이 정도는 해낼 수 있어요. 시부모님만 만족하시면 돼요”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렇게 저 혼자 그 집을 지었습니다. 이후 시아버지는 앞에서나 뒤에서나 늘 저를 칭찬하셨습니다.

이후 우리집도 새로 짓고 두 딸은 좋은 대학에 들어갔으며, 남편 수입도 월 7~8천 위안에서 10만 위안 이상으로 늘었습니다. 이 모든 것은 사부님께서 주신 겁니다. 저는 날마다 사부님의 큰 은혜 속에 살고 있습니다.

1999년 7월 20일, 장쩌민 사악한 무리가 파룬따파에 대한 박해를 시작했습니다. 숨 막힐 듯한 박해 속에서 저는 수많은 대법제자들과 함께 고난을 겪으며 베이징에 가서 대법을 실증하고 대법의 억울함을 호소했습니다.

중공 경찰에게 끌려가 펑타이 체육관에 감금됐을 때 대법을 비방하는 방송 속에서도 사부님의 법이 들려왔습니다. “대법을 굳게 수련하여 마음이 움직이지 않나니 층차를 제고함이 근본이로다. 고험 앞에서 진성을 보나니 공성원만 하여 불도신(佛道神)이 되도다”(정진요지2-진성을 보다). 그 찰나 온몸에 전율이 느껴졌고 사부님의 금빛 몸이 하늘로 날아오르시는 장면이 보였습니다. 많은 대법제자들이 “사부님! 사부님!”하고 부르짖었고 경찰들마저 하늘을 쳐다보았습니다. 약 1분쯤 지나 사부님의 금빛 몸은 하늘 높이 사라지셨습니다. 그건 사부님의 격려이자 제자를 보호하시는 자비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저는 구치소로 옮겨졌다가 다시 파출소로, 그리고 풀려나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남편에게 “내 책은 어디 있어요?”라고 물었습니다. 남편이 모두 잘 숨겨두었다고 하자 안심이 됐습니다.

하지만 평온할 날이 없었습니다. 경찰의 감시와 수색, 괴롭힘, 금전 갈취가 계속됐고 불법적인 감금도 여러 번 당했습니다. 그 끔찍한 나날 속에서도 늘 법을 외웠습니다. “경(經)은 마음을 닦고 공(功)은 몸을 연마하네. 훗날 원만 이루어 真善忍(쩐싼런)이 함께하리라”(홍음-동화). 남편은 제가 대법을 수련할 수 있도록 지지해주고 법공부와 연공 환경을 마련해주었습니다.

저는 파룬따파의 아름다움을 행동으로 증명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가정과 이웃, 나아가 모든 사람을 위해 배려하는 마음을 갖고, 남의 것을 탐내거나 이용하지 않았습니다. 일할 때도 손해를 보는 것에 연연하지 않고 남들이 하기 싫어하는 일을 도맡아 했습니다. 한번은 도로 보수 작업에서 다들 작은 모래더미를 골랐는데, 아무도 원하지 않는 큰 모래더미를 맡아 꼼꼼히 길을 고르게 만들었습니다. 간부들이 “파룬궁 수련하는 사람은 달라”라며 칭찬했고 마을 사람들 사이에서도 입소문이 돌았습니다. 이런 제 행동 자체가 바로 진상을 알리는 것이었습니다.

진상 소책자가 나오자 마을에 여러 번 배포했고 나중엔 전동 스쿠터로 반경 15km 안팎을 다니며 배포했습니다. 수련생이 함께하면 같이 다녔고, 혼자일 때는 홀로 다녔습니다. 사부님의 가지(加持) 속에 순조롭게 할 수 있었습니다.

또 삼퇴(三退, 중국공산당의 당·단·대 탈퇴) 권유를 시작하며 집집마다 찾아다녔습니다. 탈퇴하는 사람, 거부하는 사람, 비꼬는 사람, 환대하는 사람 등 다양했지만 개의치 않고 오직 사부님 말씀대로 사람을 구하는 일만 했습니다. 어려움이 있을 땐 법을 외우고 수련생들과 교류하며 극복했습니다.

저는 사부님의 자비 속에서 정법의 길을 용맹정진하게 걸어가 맹세를 이행하고 사부님을 따라 천국으로 돌아가고자 합니다.

 

원문발표: 2024년 7월 18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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