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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류문답 (사실혼)

[명혜망]

수련생 A: 동수(同修)님, 안녕하세요!

제가 한 가지 일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싶습니다. 우리 지역에 두 명의 유랑 중인 수련생이 있는데, 남녀 한 명씩이고 둘 다 미혼입니다. 그들은 2년 넘게 함께 일해왔습니다. 한 달여 전, 그들이 갑자기 한 달 된 아기를 안고 왔는데 알고 보니 그들은 이미 사실혼(사실상 부부의 관계에 있으나 혼인 신고를 안 한 상태) 관계를 형성했더군요.

그들 일에 대해 우리는 전체적으로 견해가 다릅니다. 우리는 대법제자의 길은 절대적으로 바르게 가야 하고,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현재의 세 가지 일을 잘하라고 요구하셨으니 우리는 개인의 모든 것을 버리고 전심전력으로 정법 사업에 투입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모든 것이 속인의 형식에 부합해야 합니다. 첫째, 그들은 결혼 증명서가 없고, 둘째, 하늘과 땅, 그리고 부모님께 절을 올리지 않았으며(가족들이 모르고 있음), 셋째, 우리는 유랑 중인 수련생이라 집에 있는 수련생과는 다릅니다. 그들이 우리 단체에 오게 된 것은 우리가 전체적으로 향상되라는 뜻이며, 대법에 부합하지 않는 모든 행위는 제거해야 하고, 이 과정에서 우리는 서로 의견을 나누고, 교류하며, 전체적으로 향상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들의 변명을 들어보니 그들이 법을 인식하는 기점이 바르지 않아 법에서 공통된 인식에 도달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이 일에 대해 동수님의 견해를 듣고 싶습니다.

수련생 B: 우선 이렇게 의견을 나눌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는 제 수련 상태를 명확히 볼 수 있게 도와줍니다, 이러한 문제에 직면했을 때 제가 어떻게 법에서 인식하는지, 충분히 선한지, 깨어있는지 말입니다. 아래에 오늘까지 이 문제에 대한 제 생각을 간단히 말씀드리겠습니다.

1) 사실혼은 확실히 사람의 것이 있어야 형성될 수 있습니다. 단지 사람의 정, 욕망, 색욕일 뿐이죠. 물론 일상생활에서 서로 도와야 할 필요성도 포함될 수 있겠습니다. 성에 대한 태도에 관해서 사부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성의 개방은 인종을 혼란시켰으며 인륜(人倫)을 혼란케 했는바, 신은 절대 허용하지 않는다. 때문에 한 수련인으로서 당신들은 절대 이러한 일을 해서는 안 된다. 당신은 당신의 아내가 있고 당신의 남편이 있는데, 이것이 정상적인 사람의 생활이다. 만약 그가 당신의 남편이 아니고 당신의 아내가 아닌데, 당신이 그(그녀)와 성적 행위를 하였다면 곧 범죄이다. 동서양의 어떠한 바른 종교든, 이 방면을 신은 모두 대단히 중하게 말했다. 사람에 대한 규범에서 이것을 대단히 중하게 강조했다.”(유럽법회 설법) 그래서 저는 대법제자들이 법공부와 수련을 더욱 정진하고, 항상 자신이 정법시기 제자로서 중대한 역사적 책임을 지고 있음을 기억한다면 더 잘 더 바르게 할 수 있을 것이며, 사람의 저급한 욕망 때문에 사실혼의 길을 택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2) 그렇다면 다른 수련생들은 어떻게 이 인식의 모순을 더 잘 해결할 수 있을까요? 제가 이해하기로는 수련인들은 본래 서로 다른 층차에서 수련하고 있으며, 모두 법 안에 있더라도 모두가 이해하고 행동하는 것이 같을 수는 없습니다(대법 수련 원칙에 위배되는 것은 제외). 동수님이 말씀하신 상황에 대해 차분히 생각해보면, 매우 순수한 사람의 기준으로 판단해도 그들이 한 일은 충분히 좋지 않습니다. 하물며 대법제자로서 이 중대한 역사적 시기에 어떻게 정과 욕망, 색욕에 대한 추구를 통제하지 못하거나 심지어 수련을 통해 제거하지 못할 수 있겠습니까? 사부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어떻든 대법제자로서 당신은 마음에 정념을 품고 되도록 당신이 해야 할 것을 잘해야 한다. 당신들 역시 최대한도로 속인에 부합되게 수련하면 되고, 화상(和尙)이 될 필요가 없으며, 출가한 사람처럼 그럴 필요도 없다. 실제로 형식상에서 이미 가장 편리하다. 그러나 心性(씬씽)제고에서는 절대로 모호하게 해서는 안 된다.”(2003년 캐나다밴쿠버법회 설법) 그래서 저는 정법시기 대법제자로서 자신에게 매우 엄격하게 요구한다면 더욱 떳떳하고 정정당당하게, 후세 사람들이 존경할 만한 길을 걸어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속인 기준에 가깝게 보면 이 두 수련생의 상황은 결국 미혼 남녀(혼외정사나 다른 부적절한 남녀 관계가 아님)의 결합이며, 현재 사악한 박해 상황에서 결혼 증명서를 받을 수 없고 사전에 부모님의 동의를 얻지 못했지만, 이미 사실혼이 됐고 사생활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간섭하기도 어렵습니다.

수련인의 전체적인 제고와 모든 수련인이 반드시 끊임없이 심성을 제고해야 한다는 관점에서 볼 때, 그들 양측이 모두 이 결혼을 진지하게 대하고, 가정생활의 형식 속에서 서로 정법시기 대법제자로서의 책임을 상기시키며 함께 정진한다면, 우리는 여전히 이해와 포용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최소한 그들이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조언하고(가능하다면 조건을 만들어) 도와줘야 합니다.

이런 일들을 통해, 저는 사부님께서 우리를 제도하시는 것이 정말 어렵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끼게 됩니다. 수련은 각자의 일이며, 어떤 기준에 도달하기를 원하고 할 수 있는지는 정말로 많은 내외적 조건의 제약이 있어 강요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더 큰 사실은, 사부님께서 우리를 위해 헤아릴 수 없는 고난을 겪으셨지만 많은 일들이 우리의 깨달음이 부족하고, 법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집착을 보고도 놓지 않으려고 해서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는 가장 좋은 결과에 도달하지 못하고, 사부님의 정법에 추가적인 어려움을 초래하며, 또한 자신의 미래에 손실을 가져왔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여전히 이렇게 저렇게 자신의 관념을 기준으로 삼아 자신을 지키고, 구(舊)우주의 것들을 수호하며, 사부님의 제도에 잘 협력하지 않고 있습니다…

3) 다른 대법제자 개개인으로서, 이 일은 또한 심성을 제고할 기회입니다. 절대로 다른 사람의 집착에 집착하거나 주의력을 모두 다른 사람을 바꾸는 데 (밖으로 구하는 것) 두지 마세요. 우리는 사부님께서 요구하신 대로, 모순과 문제를 볼 때 모두 먼저 자신을 돌아봐야 합니다. 왜 자신이 보게 됐는지, 자신의 어떤 마음을 건드렸는지 생각해서 빨리 제고해야 합니다.

우연히 얼마 전에 다른 메일을 받았는데 한 수련생이 온라인에 게시한 정, 색욕, 욕망 문제에 관한 모든 토론 글을 정리해서 보내달라고 제게 요청했습니다. 저는 명혜망 2003년 2월 19일 자 ‘대법제자들이 혼인 도덕을 어떻게 바라보는지에 대한 논의(보충판)’라는 글과 사부님의 2003년 뉴욕법회 설법의 해법을 추천했습니다. 왜 그 수련생의 요청대로 모든 수련생의 글을 수집하지 않았을까요? 저는 그 수련생에게 간단히 설명했는데 주로 각자 자신의 이치를 말하는 상황을 피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논쟁할 때 사람들은 흔히 경문을 인용하는데 결국 자신이 옳다는 것을 증명하려 할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이 틀렸다는 것도 증명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이는 사람의 사상 상태이며 수련인이 가져야 할 사고방식과는 정반대입니다. 대법제자들 간의 토론과 의견 교환은 말을 잘하든 못하든 주로 서로 상기시키는 역할을 하지만, 진정으로 사람의 마음을 바꿀 수 있는 것은 법입니다. 모두가 마음을 가라앉히고 법공부를 할 수 있고, 법공부를 통해 기꺼이 자신의 부족함을 찾을 수 있을 때만 모순이 근본적으로 진정으로 해결될 수 있습니다. 만약 양측 모두 상대방을 바꾸는 데 기점을 두면 오히려 속인들의 다툼이나 소송이 될 수 있습니다.

사실 지금 이 일도 이 문제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법을 배우고 법을 이해한 것은 결국 자신에게 요구하기 위한 것이지, 다른 사람에게 요구하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자신의 이해를 강요하여 다른 사람에게 요구하면 다른 사람도 쉽게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특히 상대방이 집착 중에 있고 아직 그 집착을 수련을 통해 제거해야 할 긴급성을 인식하지 못했을 때 더욱 그렇습니다. 또한, 단순히 상기시키는 것이 아니라 강요하지 않더라도 자신의 생각과 행동이 충분히 사심이 없고, 원융하며, 자비롭고 관대한지도 교류의 효과에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4) 이 두 수련생에 대해서는 완전히 그들을 위하는 관점에서, 선의로 그들이 더 많이 법공부를 하고 일을 할 때 항상 수련하고 자신의 심성을 제고하도록 격려해야 하며, 이미 발생한 일부 상황을 근거로 그들을 규정하거나 그들이 틀렸다고, 좋지 않다고 증명해선 안 됩니다. 우리는 한 사람을 전면적으로 평가하고 문제를 전면적으로 봐야 하며, 한 사람이 좋은 일을 한 번 했다고 해서 이 사람이 어떻다고 말할 수 없으며, 이 사람이 좋지 않은 일을 한 번 했다고 해서 이 사람이 안 된다고 말할 수도 없습니다. 진정한 대법제자는 매일 대법에 동화되면서 자신을 변화시키고 제고해야 하므로 매일 더욱 순수해질 수 있습니다. 오히려 고정된 시각으로 보면 자신을 제한시켜 사실을 보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수련인으로서 말하면, 당신의 心性(씬씽)에 대한 요구를 높이고 자신의 집착심을 내려놓는 이 점은 모호하게 할 수 없고 절대 표준을 낮춰서는 안 되는바, 그것은 미래에 대해, 장래의 우주에 대해, 장래의 중생에 대해 책임져야 하기 때문이다. 많은 대법제자들이 장래에 매우 큰 생명으로 성취되어야 하고, 매우 많은 중생, 나아가 무량한 중생을 포용해야 하므로, 당신이 표준을 낮춘다면 그 한 층의 우주는 오래가지 못할 것이고, 그 한 층의 궁체(穹體)는 오래가지 못할 것이므로 반드시 표준에 도달해야 한다.”(2003년 캐나다밴쿠버법회 설법)

이 일에 있어서 만약 직접적인 당사자들이 정말로 우리 모두의 선의의 조언과 도움을 통해 법공부에 더욱 정진한다면, 그들 스스로가 더 높은 기점에서 법으로 문제를 인식하게 되어, 정법시기 대법제자의 기준에 더욱 부합하게 행동할 것입니다.

5) 사부님께서는 정법 중에 모든 생명을 구원하시고자 하시니 우리는 최대한 사부님께서 하시고자 하는 이 일을 원융해야 하며, 이미 법을 얻은 어떤 수련생을 쉽게 부정해선 안 됩니다. 이것이야말로 우리의 가장 큰 선념입니다. 일부 유랑 중인 수련생들에게서 발생한 문제로부터 우리는 더욱 광범위하게 교훈을 얻어 남은 길을 모두 더욱 바르게 걸어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조건이 어려운 상황에서도 최대한 속인사회의 상태에 부합하도록 하여, 미혼 남녀를 장기간 폐쇄적이고 공간이 좁은 작업 환경에 배치하지 않도록 합니다. 가정이 있는 수련생들은 되도록 가정을 단위로 생활하고 대법 일을 하도록 합니다. 여건이 되는 상황에서는 생활면에서도 적절히 관심을 기울이고, 특히 서로 다른 수련 상태에 있는 수련생들의 법공부와 교류에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단순히 모두가 대법 일을 하러 왔으니 심성을 스스로 잘 파악하고 자연스럽게 전체적인 제고를 이룰 수 있다고 당연하게 여기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 모두가 서로 격려하고 상기시키면서, 함께 정법이 인간세상에 올 그날을 향해 나아가도록 노력합시다.

 

원문발표: 2003년 10월 9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03/10/9/5852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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