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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고달플 때도 사부님의 큰 손은 늘 날 받쳐주셨다

글/ 중국 대법제자 연성(蓮成)

[명혜망] 1996년 여름, 나는 한 친구와 함께 배를 타고 있었는데 그 친구에게서 파룬궁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집으로 돌아온 후 나는 파룬궁수련생을 찾아가 수련서 ‘전법륜(轉法輪)’을 빌려와 집에서 읽기 시작했다. 하지만 교란이 매우 심해서 오랜 시간이 걸려서야 겨우 한 번 다 읽을 수 있었고, 공원에 가서 다른 수련생들과 함께 연공하는 일도 드물었다.

그런데 한번은 내가 몇몇 아주머니들이 가부좌하고 앉아있는 모습을 보게 되었는데, 그중 한 분은 마치 보살이나 부처님 같았다. 그분에게서 느껴지는 자비로움과 장엄함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었고 나는 깊은 감동을 받았다. 또 어느 날은 3000여 명이 함께 하는 단체 연공에 참가했는데, 제2장 포륜공법을 할 때 문득 눈을 떠보니 연공장 전체가 붉은 기운으로 조화롭게 감싸여 있었다. 이후로도 나는 많은 일들을 겪었지만 대법 수련을 포기할 수 없었고, 천천히 마음이 더욱 확고해져갔다.

“나는 두렵지 않아”라는 생각의 위력

2001년 설날, TV에서 갑자기 ‘천안문 분신자살’ 조작 사건을 방송했다. 나는 막 돌이 된 아들을 안고 아내와 함께 TV를 보고 있었는데, 첫 느낌은 ‘말도 안 돼,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였다. 아내는 TV를 보면서 점점 화가 치밀어 오르더니 갑자기 일어나 사납게 날 쏘아보며 주먹으로 내 가슴을 내리쳤다. 나는 오른팔로 아들을 안고 있었고 속으로는 당황스러웠지만, 아내가 계속해서 나를 주먹으로 때릴 때 문득 머릿속에 ‘난 두렵지 않아!’라는 생각이 떠올랐다.

그 순간 무엇이 무서운지는 몰랐지만, 그 생각이 지나가자마자 아내의 주먹이 허공에 멈췄고 그녀는 날 몇 초간 응시하더니 돌아섰다. 이 일이 있고 난 후 아내는 더 이상 날 괴롭히지 않았다.

경찰 앞에서 심경의 변화를 묻다

내가 반년 정도 구치소에 갇혀있을 때, 어느 날 경찰 세 명이 찾아왔는데 한 명은 내가 아는 사람이었고 다른 두 명은 처음 보는 다른 파출소 경찰들이었다. 그들은 한 수련생의 프린터와 ‘명혜주간’ 책자에 대해 나에게 물었고, 나는 그들에게 우호적이고 친절한 태도로 대했다.

하지만 그들이 천안문 분신자살 조작 사건에 대해 물어봤을 때, 나는 아무렇지 않게 그저 소문으로 들었을 뿐이라고 말했고, 그러자 한 경찰이 불만스러운 듯 화를 내며 날 나무라기 시작했다. 그가 계속 나쁜 말로 욕하며 내가 정직하지 못하다는 등의 말을 늘어놓자 나도 화가 치밀어 올랐다. 웃음기를 거두고 엄숙한 표정으로 크게 말했다. “우리는 진실한 이름과 주소, 전화번호로 장쩌민을 고소했습니다!”

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그 경찰은 바로 기가 죽은 듯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왜 날 고소하지 않죠?” 순식간에 그의 사악한 기세가 사그라들었고 이 일은 그렇게 지나갔다. 나중에 깨달았는데 이는 사부님 말씀 “생각이 바르면 사악은 무너지리라”(홍음2-두려울 것 뭐냐)”와 같았다.

새로운 ‘논어’를 외운 후

구치소에서는 낮에 세 명씩 한 줄로 나란히 앉는데, 18평방미터 크기의 방바닥에는 대략 17~18명이 앉을 수 있었다. 저녁 5시 30분쯤 점호를 마치면 자유시간이 되는데, 침대 구석에는 깨끗이 개어놓은 이불 더미가 있었다. 나는 늘 이불 옆에 앉아 가부좌하고 앉은 뒤 작은 소리로 새롭게 발표된 ‘논어’를 암송했다.

휴지로 몇십 개의 작은 공을 만들어 왼손에 쥐고, 한 번 암송할 때마다 오른손으로 하나씩 옮겨갔다. 대략 5분에 한 번씩 암송할 수 있었고, 하루에 50번 정도 반복했다.

그날은 법을 배우면서 계속 배우고 싶었고 아무도 방해하지 않았다. 배울수록 마음속으로 더욱 깊이 받아들여졌고 점점 고요해졌다. 시간 가는 줄도 모르게 깊이 빠져들었고, 주변의 소리도 들리지 않았으며 오로지 법만이 존재했다.

구치소에서는 보통 밤 9시 30분쯤 잠자리에 든다. 그때 카드놀이를 하던 방장이 일어나 날 보더니 갑자기 큰 소리로 “파룬따파는 좋습니다!(法輪大法好)”라고 외쳤다. 옆에서 같이 카드놀이를 하던 사람도 진심으로 “파룬따파는 좋습니다!”라고 소리쳤다. 나는 대법의 위력이 내 몸에서 나타나고 있음을 깨달았다. 나 스스로는 느끼지 못했지만 다른 사람들은 보았고 그것은 실제로 일어난 일이었다.

턱이 우물 뚜껑에 부딪히다

어느 저녁 7시가 넘은 시각, 북방의 3월은 벌써 날이 어두워진다. 나는 밖에서 걷다가 발에 걸려 넘어졌는데, 턱이 마침 우물 뚜껑의 돌출된 부분에 부딪혀 피가 났다. 나는 즉시 ‘파룬따파는 좋습니다, 괜찮아!’라고 생각했다. 옆에 있던 사람들이 이 광경을 목격했고, 한 노인이 나에게 휴지를 건네주셨다.

나는 휴지를 접어 상처 부위를 눌렀는데, 피가 순식간에 휴지에 배어들었다. 노인께 감사드리고 상처를 손으로 누른 채 급히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와서 휴지를 갈았는데 부모님도 눈치채지 못하셨고 나 역시 통증을 느끼지 못했다.

다음 날 자전거를 타고 출근했는데, 아무도 내 상처를 알아보지 못했고 상처는 매우 빠르게 아물었다. 만약 내가 수련인이 아니었고 사부님께서 보살펴주시지 않으셨다면, 병원에 가서 상처를 꿰매고 파상풍 주사를 맞고 약을 먹고 바르는 등 치료를 해야 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단지 휴지 몇 장만 사용했을 뿐인데도 이틀 만에 회복됐다.

옛 보도원을 우연히 만나다

나는 다른 지역에서 집으로 돌아온 후 시장에서 물건을 팔았다. 그러던 어느 날 이전에 큰 연공장의 보도원으로 활동하셨던 부부를 만나게 되었는데, 두 분 모두 70세가 넘으신 것 같았다. 남편은 이미 불교의 이른바 귀의증을 만드셨고 인터넷도 사용하지 못하셨다.

나는 집에 돌아가 최근에 구한 ‘우리는 미래에 알린다’는 동영상 자료를 가져다가 그분들과 시간을 약속한 뒤 전해드렸다. 노부부는 그 영상을 한 번에 다 보시고 크게 감동받으셨다. 노인은 귀의증을 찢어버리고 엄정성명도 쓰셔서 내게 명혜망에 올려달라고 부탁하셨다.

사실 몇 년 동안 만나지 못했는데도 서로 기억해낼 수 있었던 것 자체가 이미 놀라운 일이었다. 이는 모두 사부님의 배치였다!

가장 고달플 때도 사부님의 큰 손은 늘 나를 받쳐주셨다

우리 단지 주민은 비교적 많은 편이라 신문함 이용률이 높았다. 그 시기에 나는 주로 ‘인연 있는 이에게 보내는 편지’를 배포했는데, 밖에 나갈 때는 주머니에 넣고 다녀서 꺼내기 편했다. 상품 전단지도 몇 장 들고 다녔는데, 전단지는 위에 놓고 진상 자료는 아래에 놓은 채 나눠주곤 했다.

어떤 사람들이 보더라도 나는 당당하게 배포했고 그들도 별다른 의심을 품지 않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배포는 더 잘 됐고 션윈 공연과 인터넷 봉쇄를 뚫는 자료도 많이 배포했다. 대부분은 얼굴을 마주하고 건넸는데, 사실 이 모든 것은 사부님과 대법에서 주신 지혜와 능력이었다.

전염병이 발생한 후 우리는 ‘희망’, ‘명백’, ‘하늘이 내린 큰 복[天賜洪福]’ 등 많은 책자를 인쇄했다. 나는 한 연로한 수련생과 함께 나누어 배포했는데, 깨끗한 우편함에 넣거나 대면으로 건네주었고 반응이 매우 좋았다.

2020년 말, 중공은 코로나 제로화 정책을 실시했고 중공 당원들이 우리 집에 와서 수색하고 날 납치해갔다. 게다가 집에 계신 노친이 병세가 악화돼 입원하셨다. 나는 그들과 타협했는데 너무나 후회스러웠다. 2년간 감옥에 있으면서도 타협하지 않았었는데, 어째서 가족이 입원했다는 이유로 그렇게 행동했던 것일까? 그때 나는 고통에 시달렸고 시커먼 똥통에 빠진 것 같았으며 상태가 매우 좋지 않았다.

다행히 사부님께서는 내가 계속 수련하도록 이끌어주셨다. 나는 여전히 가부좌할 수 있었고 연공과 법공부를 이어갈 수 있었으며, 가족들도 반대하지 않았다. 그러나 더 많은 제고와 승화를 느끼지는 못했고, 늘 사상업력(思想業力)의 교란이 있었다. 잘하지 못할 때면 매우 의기소침해졌고, 내가 수련할 자격이 있는지조차 의심했다. 속인의 마음이 여전히 그렇게 무거우니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곤 했다.

하지만 아무리 괴로운 순간에도 사부님의 크나큰 손길이 날 받쳐주고 보호해주고 계심을 느낄 수 있었다. 그 어떤 나쁜 것들도 날 해치지 못하게 막아주셨는데, 이는 사부님께서 대신 감당하신 것이었다! 그런데도 나는 또 백 퍼센트 잘하지 못했는데 사부님께 너무나 죄송스러웠다.

가끔 상태가 좋지 않을 때면 법을 배웠는데 그럴 때마다 많이 좋아지곤 했다. 그러나 줄곧 법 안에 있는 경지에는 도달하지 못했고, 스마트폰을 보기와 동영상 시청, 잠자기를 좋아했다. 옳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스스로를 합리화했고 시간만 허비하면서 앞으로 나아가기가 매우 힘들었다.

사부님의 신경문 ‘왜 인류가 존재하게 되었는가’, ‘왜 중생을 구도하려 하는가’, ‘험악(險惡)을 멀리하라’, ‘대법수련은 엄숙한 것이다’를 보면서도 여전히 긴박감이 들지 않았다. 비록 연공은 꾸준히 하고 법도 배웠지만 마음속 깊이 받아들여지지는 않았고, 정념 상태도 좋았다 나빴다 했다.

자신의 근본 집착을 찾아보니 시험에 부딪혔을 때 인간 세상의 아름다운 삶에 대한 미련과 그리움, 안일함과 색욕, 고생을 피하려는 마음 등이 비교적 많았다. 하지만 상태가 좋을 때는 가부좌하며 고요함을 느낄 수 있었고, 대법의 에너지에 감싸여 정화되는 감각을 체험할 수 있었다. 수련이야말로 가장 진실한 것이고 생명의 영원함임을 알고 있었다. 비록 육안으로는 보이지 않더라도 사부님 말씀처럼 확실히 그러했다. “그러나 진정한 제고는 버리는 것이지 얻는 것이 아니다.”(각지 설법2-2002년 미국필라델피아법회 설법)

스스로의 부족함을 찾고 수련생들과 함께 정진하기를 희망한다. 정진하는 상태를 유지하고, 일이나 갈등에 부딪히면 안으로 찾으며, 사부님과 대법을 굳게 믿어야 한다. 속인의 마음과 정으로 사고하고 가늠하지 말고, 많이 법공부하며 혼신의 힘을 다해 법에서 제고해 나가고 자신의 결점을 씻어내야 한다. 그래야만 사부님의 헤아릴 수 없는 은혜에 부끄럽지 않을 수 있고, 더는 사부님께서 날 위해 걱정하시지 않도록 할 수 있을 것이다.

제 현재의 수련 상태를 사부님께 보고드리고 다른 수련생들과도 교류하고자 이렇게 적어봅니다. 잘못 깨달은 부분이 있다면 수련생 여러분의 지적을 바랍니다.

허스(合十)

 

원문발표: 2024년 6월 28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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