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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에서 벗어나 성숙을 향해 나아가다

글/ 중국 대법제자

[명혜망] 수년간의 수련 과정에서 나는 크고 작은 시련을 겪었다. 2020년 초, 진상을 알리다가 악의적인 신고를 당했고, 이후 3년 동안 고난이 잇달아 왔다. 불법적인 집행유예 선고에서 해제되었다가, 2년 6개월의 형을 무고하게 선고받았지만 나중에는 정정당당하게 집으로 돌아왔다. 다음은 내가 고난 속에서 난관을 돌파한 과정이다.

1. 부당한 집행유예 선고를 받았지만 진상을 알리고 사람을 구하다

법공부를 적게 하고, 마음에 와닿게 공부하지 않아 악당 문화의 독소에 너무 깊이 물든 탓에 일을 할 때 극단적이었다. 일 년 내내 진상을 알리고 대법 일을 많이 했지만 결국 구세력에 빈틈을 보였다.

2020년 초, 나는 진상을 알리다 신고당해 부당하게 3년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법원은 ‘법 집행 방해죄’라는 명목으로 나를 현지 사법소(司法所)에 넘겨 ‘엄격 관리’하게 했고, 매달 ‘사상 보고서’ 두 부를 제출하라고 강요했다. 사법소 ‘엄격 관리’ 담당자 2~3명이 한 달에 두 번씩 집으로 ‘방문’하고, 스마트폰으로 내 위치를 감시하며 영상통화로 내가 집에 있는지 확인했다.

나는 대법제자로서 사람을 구하는 것이 사명이지만 사법소의 끊임없는 방해에 대처하면서 한편으로는 사람을 구할 기회를 모색해야 했다. 빡빡한 일정과 정신적 스트레스로 지쳐갔다. 그때 사부님께서 “진상을 말하는 것이 만능열쇠이다”(2003년 애틀랜타법회 설법)라고 일깨워주셨다. 나는 이 억압적인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엄격 관리’ 담당자와 소장에게 진상 편지를 쓰기로 마음먹었다.

대법이 널리 전해져 내가 심신의 이로움을 얻은 사실, 사부님의 무한한 자비, 장쩌민의 치졸한 질투, 진선인(真·善·忍)이란 보편적 가치, 천 년에 한 번 만날까 말까 한 대법이 세상에 펼쳐져 누구든 배우기만 하면 복을 받는다는 내용 등을 진솔하게 적었다. 긴 편지를 다 썼는데도 할 말이 많아 마지막에 ‘다음에 계속’이라고 덧붙였다. 마음속으로 ‘엄격 관리’ 담당자에게 먼저 보여주고 반응을 본 뒤 소장에게 주어도 늦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엄격 관리’ 담당자가 집에 왔을 때 편지를 건네주자 그는 받았다.

저녁에 소장에게서 가족 중 한 명이 사법소로 오라는 전화를 받았다. 다음 날 딸이 제때 사법소에 갔더니 소장은 노발대발하며 딸을 한바탕 꾸짖고는 나를 상급 기관에 넘겨 처리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발정념을 하고 안으로 찾아보니 ‘엄격 관리 담당자에게 먼저 보여주고 반응을 살펴보자’는 생각이 법에 부합하지 않아 구세력에 빌미를 준 것이었다. 그날 저녁부터 다음 날 정오까지 발정념을 해서 사법소 검은 소굴의 사악한 요소들을 제거하자, 흑수(黑手)와 난귀(爛鬼)들이 하나둘씩 쓰러지는 것이 보였다.

점심을 먹은 뒤 딸과 함께 사법소로 갔다. 소장과 ‘엄격 관리’ 담당자는 평소와 달리 그렇게 사나워 보이지 않았다. 사부님의 보호 덕분에 큰일은 작아지고 작은 일은 사라졌다. 그들은 내게 “이 공법이 좋다고 생각하면 집에서 연마하시고, 밖에 나가 일을 저지르지 마세요.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언제든 감옥에 가실 수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엄격 관리’ 담당자는 해서는 안 될 짓을 했지만 어쨌든 진상 편지를 읽었다. 그 뒤로 한동안 그는 나에게 관심을 보였고 태도도 눈에 띄게 부드러워졌다. 소장 역시 내게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사법소에서 배정한 노동까지 면제해주었다. 그때부터 나는 사법소의 방해에 대처하는 한편 꾸준히 사람을 구하는 길을 걸었다.

2. 다시 가택수색과 납치를 당하고 사법부의 모함을 받으면서도 진상을 알리다

2021년 초, 예전에 우리집을 불법 수색했던 국보(국내안전보위대: 파룬궁 탄압 담당 공안부서) 대장과 몇 명의 경찰이 또다시 들이닥쳐 아무 말 없이 구석구석을 뒤져 파룬궁 서적 몇 권과 갓 인쇄한 진상 자료 수십 부를 가져갔다. 나는 파출소로 끌려가 하루 밤낮을 감금당했다.

처음에는 어리둥절했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6개월 전 슈퍼마켓에서 한 어린 소녀에게 호신부(護身符)를 건넸는데, 그 아이의 아버지가 악의적으로 신고한 것이었다. 경찰은 감시카메라를 확인하고 내가 그때 슈퍼마켓에 있었다는 것을 보고 날 의심하더니 5천 위안(약 95만 원)의 벌금을 물리고 ‘처분보류(取保候審, 1년간 보석으로 풀어주되 보증금·보증인을 세워 수사와 재판을 회피하지 못하게 하는 제도)’를 명령한 뒤에야 집으로 돌려보냈다.

그때부터 집 안팎이 발칵 뒤집혔다. 먼저 사법국에서 법원에 3년 집행유예 취소를 청구했다. 610(파룬궁 전담 탄압 기구)의 위세에 눌려 공안, 파출소, 검찰, 법원, 고등법원까지 나서자 가족들은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느낌이었다. 가족들은 나날이 공포에 떨었고 공안과 검찰, 법원, 사법부서를 쫓아다니며 애원했다. 딸은 울면서 “이번에는 어머니를 구해낼 사람이 아무도 없어요. 감옥에 가실 게 뻔해요”라고 했고, 아버지에게 화를 내며 “감옥에 가셔도 저는 면회 가지 않을 거예요”라고 말했다. 아들은 “어머니는 그 몸으로 들어가시면 나오시지도 못할 거예요”라고 했고, 남편은 너무 무서워 엉엉 울었다. 그런 상황에서 나는 가족들이 악당의 거짓말에 속아 너무나 불쌍해 보였다. 나는 큰 소리로 말했다. “내 목숨은 사부님께 맡기겠다. 생사는 사부님께서 결정하실 거야!”

딸은 여러 변호사를 찾아다녔지만 그들은 모두 너무 겁이 나서 파룬궁 사건을 감히 맡지 못했다. 나는 속으로 ‘들어가 봐야 기껏해야 죽는 것 아닌가?’라고 생각하고 짐을 한 보따리 쌌다. 그러다 문득 깨달았다. ‘나는 갈 수 없어. 내 세계 중생들이 아직 날 기다리고 있는데!’ 나는 구세력과 사악에 말했다. “너희들의 음모가 이루어지게 두지 않겠다. 나는 사부님께서 배치해 주신 길을 가는 대법제자다. 나는 오직 대법과 사부님만이 관할하실 수 있고, 그 누구도 자격이 없다. 누가 간섭하든 그가 죄를 짓는 것이다. 내 모든 것은 사부님께서 주신 것이니 사부님께서 결정하신다.” 이렇게 생각하며 나는 사부님께 향을 사르고 머리 숙여 절하며 구해달라고 간청했다. “감옥은 제가 갈 곳이 아닙니다. 법공부도 연공도 할 수 없는 데다 구세력이 저를 죽이려 하고 있습니다.” 나는 사부님께 검은 소굴 명단에서 제 이름을 제외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때부터 나는 밤 12시에 발정념을 마친 후 잠을 자지 않고 법공부와 연공, 발정념을 하면서 시간이 늘 모자란다고 느꼈다.

이후 검찰에서 ‘처분보류’를 통지했다. 나는 직접 검사에게 진상을 알리는 탄원서를 써서 전달했다. 그는 내 앞에서 두 번이나 꼼꼼히 읽어보더니 “아주머니가 직접 쓰신 거예요?”라고 물었다. “제가 썼습니다.” 그러자 그는 정중히 “검찰은 선량한 사람을 모함하지 않습니다. 제가 좀 더 자세히 알아보고 오겠습니다”라고 말했다.

몇 달 뒤, 법원에서 재판 출석 통지서를 받아 가라고 연락했다. 나는 판사에게 파출소에서 ‘헌법’과 ‘형법’, ‘법률’을 무시하고 불법을 저지른 사악한 행위를 조목조목 폭로하고 고발하는 내용의 탄원서를 또 썼다. 판사는 직접 읽어본 뒤 사건의 일부 정황을 내 입장에서 파악하게 됐다.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이번 재판에는 변호사가 필요 없어. 나는 법을 어기지도, 죄를 짓지도 않았으니까. 나에 대한 박해는 구세력이 강요한 것인데 사부님도 인정하지 않으시는데 나는 더더욱 인정할 수 없지.’ 그래서 인터넷에서 수련생들이 올린 비슷한 상황의 법정 의견서와 변론문, 법정 방청 후기 등을 참고해서 내 실제 상황과 접목시켜 법정 의견서를 무사히 작성했다. 재판에 참석하는 사람 수대로 인쇄해 한 부씩 나눠주려고 했다.

그 무렵 검찰에서 국선변호사를 통해 내게 전화를 걸어 변호를 맡겠다고 제안했지만 나는 공손히 거절했다. 사부님께서 꿈에 나타나 격려해주셨다. 아주 높은 산을 가리키시며 이 산만 넘으면 곧 집에 도착한다고 하시면서, 내가 넘을 수 있겠냐고 물으셨다. 나는 주저 없이 “넘을 수 있습니다. 저는 산골에서 자랐기에 높고 험한 길이 두렵지 않습니다”라고 대답했다. 그 꿈은 아직도 생생히 기억난다.

재판 당일 오후, 사부님의 자비로운 보호와 수련생들의 격려와 발정념 속에서 나는 정정당당히 선념을 품고 침착하게 법정에 들어섰다. 미리 준비한 법정 의견서를 판사에게 건넸더니 판사는 받아 읽고는 검사에게 전달했다.

자리에 앉자마자 국선변호사가 다가와 “제가 변호를 맡아도 될까요?”라고 물었다. 나는 “괜찮습니다!”라고 답했다. 이어 서기와 판사도 “변호사가 필요하십니까?”라고 묻자 “괜찮습니다!”라고 했다. 할 수 없이 판사는 변호사를 법정 밖으로 내보냈다.

검사가 날조한 공소장을 다 읽자 판사가 내게 발언권을 주었다. 나는 거만하지도 비굴하지도 않게, 학생들에게 강의하듯 태연하고 당당하게 이치에 맞고 논거 있는 법정 의견서를 낭독했다. 참석자 모두가 조용히 경청하는 가운데 법정에는 조화로운 분위기가 감돌았다. 나는 ‘헌법’과 ‘형법’, ‘법률’에 근거해 공소장에 나온 모든 모함을 전면적으로 부정했고, 진선인이야말로 우주의 특성이자 선과 악을 가늠하는 유일한 표준임을 역설했다. 구체적인 사례를 몇 가지 들었다. “첫째, 저는 건강해서 20년 넘게 약 한 알 먹지 않고 국가 의료비를 많이 절약했습니다. 둘째, 저는 심성이 높아져 고집불통에 잘난 체하던 예전의 모습에서 온화하고 겸손한 사람으로 변했고, 이제 친지와 이웃들이 저와 어울리길 좋아합니다. 셋째, 저는 좋은 사람 중에서도 더 좋은 사람이 되어, 강물에 빠져 자살하려던 아주머니를 구했고 도박으로 파산한 사장님도 구했으며, 취직하지 못한 청년을 경제적으로 지원했고, 동네 사람들의 걱정거리를 함께 고민하고 해결했으며, 제 돈을 들여 아파트 위아래층 배수관을 교체해주기도 했습니다.”

발언을 마치자 판사가 “무죄 석방!”이라고 선고했다. 그 순간 검사는 고개를 숙인 채 재빨리 법정을 빠져나갔다. 판사는 날 배웅하면서 내 말에 일리가 있다고 했다. 나는 마음속으로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좋은 사람 중에서도 더 좋은 사람이 되라 하셨지’라고 되뇌었다.

나는 한없이 사부님께 감사드렸고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듯 홀가분하고 기뻤다.

3. 2년 6개월 부당한 판결을 받았으나 떳떳이 집으로 돌아가다

그로부터 반년 뒤인 2023년 초, 고향에 있는 다른 성(省)의 교육청 기율검사과에서 갑자기 전화를 걸어 귀향해서 서명하라고 통보했다. 법원에서 내 고향 각 기관에 집행유예 취소 및 징역 2년 6개월에 즉시 복역하라는 공문을 보냈다는 것이다.

2023년 4월, 사회보장국은 불법적으로 내 연금 지급을 중단했다. 나는 검찰원에 가서 사건 담당 검사에게 진상을 알리려 했으나 뜻밖에 의견 충돌이 일어났다. 그는 재판에서 패소한 것이 못내 억울한 듯 거만하고 무례하게 굴며 “법원에 가보시오! 공소장은 내가 썼고 법원에서 발송한 겁니다”라고 했다. 나는 정치법률위원회와 ‘610’이 경찰, 검찰, 법원, 사법 당국에 압력을 가해 법 집행 명목으로 불법을 자행하고, 서로 결탁해 은밀히 나를 보복하려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2023년 7월 초, 법원에서 재판 날짜를 통보했다. 판사 한 명과 서기 한 명이 판결문을 읽어주고는 내게 건네며 “서명하세요!”라고 했다. 판사는 난처한 기색으로 “그렇지 않으면 변호사를 선임해보시는 게 어떻습니까?”라고 권했다.

금요일 오후 불법 판결문이 나왔고, 월요일 아침 파출소에서 연이어 전화를 걸어 가족에게 날 데려다 달라고 독촉했다. 딸이 “어머니 몸이 편찮으셔서 못 가세요”라고 하자 경찰은 “그럼 우리가 차로 모시러 갈 테니 어디서 기다리라고 하세요”라고 했다. 경찰이 오자 남편이 같이 가겠다며 나더러 차에 타라고 했지만 나는 딱 잘라 거절하고 그에게 집으로 돌아가라고 했다.

파출소 사람들은 나를 가운데 끼워 앉혔다. 차가 한참을 달려도 파출소로 가는 길이 아닌 것 같아서 그들에게 어디로 데려가는 거냐고 물었다. 사건 담당 경찰관이 “공안국에서 신체검사를 한 뒤 구치소로 보냅니다”라고 답했다. 그는 재빨리 ‘체포영장’을 꺼내 들며 내가 체포됐다고 했다. 나는 이유를 물었다. “아주머니가 어린 소녀에게 카드를 줬잖아요.” 나는 침착하게 그에게 말했다. “경찰관으로서 법을 집행하는 분이 오히려 법을 어기고 있군요. 저는 그 아이가 평안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카드를 건넸을 뿐인데, 제가 누구를 다치게 했나요? 누구를 건드렸다는 거죠? 무슨 잘못을 저질렀다고 이 늙은이를 구치소에 가둡니까? 부모님이 안 계신가요? 할머니, 할아버지는요? 양심이 없어요? 인민경찰은 지역 주민을 보호하는 게 임무인데, 한번 하늘에 맹세코 양심에 떳떳한지 스스로에게 물어보세요.” 차 안 사람들은 조용히 귀를 기울였다.

공안국 마당에 도착했을 때 나는 걷기 힘들다고 했다. 그들은 날 실버카에 태워 로비로 들어갔다. 그곳에는 많은 사람이 서 있었다. 접수처 직원이 경찰에게 무슨 일이냐고 묻자 “파룬궁!”이라고 대답했다. 나는 큰소리로 반박했다. “파룬궁이 뭐가 어때서요? 진선인에 따라 좋은 사람 되는 게 무슨 잘못입니까?” 그는 머뭇거리며 “진, 선, 인…”이라고 중얼거렸다.

직원이 나에게 물어도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내가 휠체어에 앉아 괴로워하는 모습에 그는 더는 묻지 않았다. 경찰이 “왜 그러세요?”라고 묻자 나는 “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진선인은 좋습니다! 톈안먼 자살 소동은 가짜입니다!”라고 소리쳤다. 나는 ‘평소 같으면 감히 외치지도 못했을 건데, 이번만큼은 목숨을 걸고라도, 그것도 공안국 한가운데서 외쳐 보리라’라고 마음먹었다.

로비는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모두가 날 응시했다. 나는 눈을 감고 고개를 기울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들이 불러도 대꾸하지 않고 마음속으로 강대한 정념을 발했다. ‘공안국 안팎의 흑수, 난귀, 공산악령과 구세력이 배후에서 법 집행자들을 조종하는 사악한 요소를 모조리 제거하라. 현세에서 즉각 응보를 받으라(現世現報).’

경찰들은 나를 이리저리 떠넘기며 어쩔 줄 몰라 하더니 이내 의무실로 데려갔다. 한 경찰관은 기진맥진한 얼굴로 땀을 뻘뻘 흘리며 허리를 굽히고 고개를 떨구더니 “왜 그러세요? 아주머니, 남편에게 전화할까요?”라고 물었다. 그는 계속 말을 걸었지만 나는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다. “어디가 불편하세요? 병원에 가실래요?” 나는 여전히 입을 다물었다. 얼마 뒤 여의사 두 명이 다가와 “저희는 그들과 직업이 달라요. 뭔가 말씀하실 게 있으시면 저희한테 하세요”라고 했다. 나는 큰 소리로 “억울합니다!”라고 외쳤다. 그들은 동정 어린 눈빛으로 물을 건네고 살폈다. 나는 줄곧 발정념을 하고 있었다. 이윽고 한 경찰관이 내 앞에 쪼그려 앉아 “집에 갈 건지, 병원에 갈 건지 고개로 가리켜 주세요”라고 간청할 때까지 난 정념을 발했다.

어느덧 오후 5시가 다 되었다. 집에 돌아가야 할 시간이었다. 그들이 “집으로 가시겠습니까?”라고 물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경찰은 재빨리 날 차에 부축해 태웠고, 가는 길에 걱정스레 물었다. “불편하시면 저희에게 말씀해 주세요. 바로 아주머니 남편에게 마중 나오라고 하겠습니다.”

집으로 가는 내내 나는 입을 열지 않았다. 내릴 곳에 도착하자 경찰이 “도착했습니다”라고 말했다. 내가 “아니에요! 여기가 아닙니다”라고 하자 그들은 “여깁니다”라고 우겼다. 나는 다시 “아니라니까요”라고 했다. 경찰이 “아주머니 남편 오셨어요”라고 하는 순간, 남편이 차 옆에 와서 날 부축해 내렸다. 나는 길가에 주저앉았고 경찰차는 곧바로 떠났다. 사부님의 보호 속에 나는 무사히 집에 돌아왔다.

정법이 막바지에 이르렀고, 사악이 최후에 발악하는 건 단지 몰락을 앞둔 최후의 발버둥에 불과하다. 오직 사부님 말씀에 따라 법공부를 많이 하고 바르게 해야만 우리는 조사정법(助師正法)의 길을 평온하게 걸어갈 수 있다.

 

원문발표: 2024년 7월 7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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