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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춘 대법제자가 사부님의 은혜를 회상하며

글/ 캐나다 대법제자

[명혜망] 저는 1993년 창춘에서 대법을 얻은 대법제자로, 현재 해외에서 수련생들과 함께 매일 세 가지 일을 하고 있습니다. 사부님께 무한한 감사를 표하고자 처음 대법을 얻었을 때의 경험을 글로 적어봅니다.

1992년 10월, 건강이 좋지 않던 셋째 언니가 활력이 넘치고 한층 더 젊어 보이는 모습으로 변했는데 파룬궁 수련 덕분이라고 했습니다. 저는 32살 때부터 류머티즘성 심장병, 류머티즘성 관절염, 고지혈증, 동맥경화증 등 질병으로 일을 못 하고 집에서 요양하면서 지린성의 거의 모든 대형 병원을 다녀봤지만 별다른 효과를 보지 못했습니다. 셋째 언니의 말을 듣고 저도 파룬궁 수련을 해보고 싶어졌습니다.

1993년 봄, 집 근처 승리공원에 가서 파룬궁을 배웠습니다. 사부님께서 제 동작을 교정해주셨고, 연공을 마친 후 제 상황을 말씀드리자 사부님께서는 제 몸을 조정해주시며 “좋아졌습니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때 저는 아무것도 몰랐습니다. 주위에 모인 수련생들은 모두 “사부님이 좋아졌다고 하셨으니 어서 나았다고 말씀드리세요”라며 다급하게 말했습니다. 연공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어떤 분은 저에게 먼저 믿어야 한다고 했고, 어떤 분은 깨달음이 있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연공에 믿음과 깨달음이 필요한 줄 몰랐지만 모두가 그렇게 말한다면 이유가 있겠구나 싶었습니다. 다음날 다시 가서 연공을 마치자 사부님께서는 또 제 몸을 조정해주셨고 저는 “좋아졌습니다”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날 밤 집에서 연공할 때 온몸에서 땀이 비 오듯 쏟아져 콘크리트 바닥을 다 적셨고, 잠잘 때도 땀이 나서 침구가 다 젖었습니다. 어찌 된 일인지 알 수 없었습니다. 남편은 사부님께 가서 어찌 된 영문인지 여쭤보라고 했습니다.

셋째 날, 공원으로 걸어가는데 몸이 매우 가벼워지면서 붕 떠오르는 느낌이 들더니 평소 절 괴롭히던 증상들이 모두 사라졌습니다. 상황을 사부님께 말씀드리니 “좋아졌네요”라고 하셨습니다.

수년간 고생했던 병이 크고 작은 병원을 다녀도 낫지 않다가 연공한 지 3일 만에 완쾌됐습니다. 너무 감격스러워 제가 아는 모든 분께 이 공법을 알려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그 이후로 30년 넘게 건강하게 지내며 약 한 알 먹지 않고 주사 한 대 맞지 않았습니다. 이제는 그런 것들이 전혀 필요치 않게 됐습니다.

사부님께서는 처음 법을 전하실 때 매일 아침 공원에 나가 수련생들의 동작을 일일이 교정해주시느라 무척 고생하셨습니다. 제가 처음 갔을 때도 사부님께서는 제가 새로 온 사람인 걸 단번에 알아보셨습니다.

1993년에 지린대학교에서 사부님 수업이 열렸는데, 당시 연속 3개 반이 개설되어 가족들과 저는 서로 다른 반에서 수업을 들었습니다. 그날 한낮에 날씨가 무척 더웠는데 표를 사러 갔더니 사부님께서 혼자 밖에 서 계시며 매표 창구가 어디인지 알려주셨고, 안에는 수련생 두 분이 표를 팔고 있었습니다.

수업 시작할 때 사부님께서는 문 앞에 서서 한 사람 한 사람 맞이해주셨습니다. 그때는 아무도 잘 알지 못했고 그저 사부님이 매우 자상하시고 항상 웃고 계신다고만 말했습니다. 강당에는 말하는 사람,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아이들, 부채질하는 사람들로 시끄러웠는데 사부님께서 설법을 시작하셨어도 다들 조용히 하려 들지 않았습니다. 사부님께서는 웃으시며 “오늘 참 덥네요. 부채질은 그만두고 조용히 하면 시원한 바람이 느껴질 겁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분은 믿고 실제로 선선한 바람을 느꼈지만, 믿지 않고 계속 부채질하는 분은 더 더워졌다고 하더군요. 나중에는 모두 깨달아서 그런 현상들이 없어졌습니다.

1994년에 저희는 승리공원과 멀리 떨어진 새 동네로 이사 가게 되어, 집 근처 작은 공원에 연공장을 만들고 싶었는데 마침 같은 뜻을 가진 수련생 A네 가족을 만나 함께 연공장을 차리게 됐습니다. 매일 새벽 5시부터 6시, 오후 4시부터 5시까지 정해진 시간에 연공을 했는데 처음엔 4명으로 시작했다가 점차 사람이 많아져 우리는 연공을 가르쳤습니다. 그때 가부좌를 못 하는 분들이 많았는데, 모두들 자발적으로 새벽 2시나 그보다 더 일찍 연공장에 와서 연습했습니다. 누구도 뒤처지길 원치 않아 금세 가부좌를 할 수 있게 됐습니다. 그 뒤 저녁 7시 30분부터 법공부 팀도 꾸려졌습니다.

우리 연공장에서 교류 모임을 열었는데 A가 제게 사회를 보라고 부탁했습니다. 수련 전에는 회의 때 말하거나 써야 할 게 있으면 저는 뒤로 빠지곤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 연공장 첫 교류 모임이라 저도 물러설 수 없었습니다. 사람들로 꽉 찬 강당을 보며 두려워 말라고 스스로를 다독였습니다. 교류회는 매우 성공적이었고 A의 아들이 전 과정을 녹화했는데 영상을 보니 벽에 걸린 사부님 법상에서 수인(手印)을 하시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다들 크게 감동해 잘해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이후 우리 연공장에서 더 많은 연공장들이 갈라져 나왔습니다.

사부님께서는 우리 연공장에 두 차례 다녀가셨는데, 여러 사람의 연공에 방해될까 봐 보도원 한 분에게만 알려주셨습니다. 연공이 끝나고 보도원이 사부님 오셨다고 하니 모두 큰 격려를 받았습니다. 그 뒤로 우리는 남의 연공을 방해하지 않고 끝난 뒤에 말하는 걸 배웠습니다.

사부님은 공법을 전수하실 때 매우 검소하셨고 사무실도 없었습니다. 보도원을 만나실 일이 있으면 한 수련생 집에서 보셨는데 그때마다 시간을 1초의 오차도 없이 정확히 지키셨습니다.

사부님께서 보도원에게 창춘 대법제자들이 대법을 암기하는 열기를 일으키는 데 앞장서 달라고 당부하셨습니다. 우리는 돌아와 여러 수련생에게 알렸고, A는 작은 팀으로 나눠 각자 한 단락씩 외우다가 팀에서 익숙해지면 연공장에 가서 외우자고 제안했습니다. 보도원들은 팀마다 돌아가며 상황을 점검했습니다. 팀으로 가는 길에 하늘에서 연공음악이 들려오는데 사부님께서 저를 격려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그 무렵 새벽 연공할 때는 날이 어두워 앞이 보이지 않았는데, 못 외우면 밥 먹고 잠잘 때도 대법 외울 생각뿐이었습니다. 그때는 누구도 뒤처지길 원치 않았습니다.

​파룬궁을 배우고 싶어 하는 청소팀이 있었습니다. 매일 아침 청소부들과 함께 일을 마치고 사부님 설법 녹음을 틀어주며 연공도 가르쳤습니다. 나흘째 되는 날도 여느 때처럼 연공하고 새벽 2시에 아래층으로 내려가 수련생들과 합류했는데, 어두컴컴한 복도를 지나 마지막 계단을 내려가다 발을 헛디뎌 넘어져 버렸습니다. ‘쿵’ 소리에 수련생이 달려와 바닥에 앉아있는 저를 보고 “괜찮으세요?”하고 물었습니다. 발목이 아팠지만 어둠 속이라 상태를 볼 수 없었습니다. 저는 괜찮다며 출발했습니다. 그런데 발목 때문에 도저히 따라가질 못했습니다. 그래서 “참기 어려운 것도 참을 수 있고, 행하기 어려운 것도 행할 수 있다(難忍能忍, 難行能行)”라는 ‘전법륜’의 말씀을 되뇌며 버텼습니다. 날이 밝아서 보니 발목이 퉁퉁 부어 있었습니다. 다들 쉬라고 했지만 빗자루를 지팡이 삼아 걸었는데, 문득 고개를 들어보니 건너편에 흰 수염의 노인이 한쪽 다리를 올리고 지팡이를 들고 앉아 저를 향해 웃고 계셨습니다. 자세히 보려는 순간 홀연히 사라졌습니다. ‘아, 사부님께서 일깨워주신 거구나’ 싶었습니다. 할 수 있을 것 같아 여느 때처럼 청소하고 연공을 가르쳤습니다. 9일 학습반이 끝날 때쯤엔 발도 다 나았습니다.

1998년 어느 날, 여러 사람이 사부님께서 오신 것 같다고 했습니다. 몇몇 분이 저에게 와서 물어봤지만 저는 모른다고 했습니다. 사실 저도 느꼈지만 통보는 없었습니다. 오후 5시 반쯤 샹그릴라 호텔에서 7시 반에 회의가 있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일찍 도착해서 맨 앞자리에 앉아 기다렸는데, 누군가 7시 반이라고 하더니 바로 이어서 사부님께서 오신다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우리는 사부님이 오실 줄 몰랐는데 반응하고 보니 사부님께서는 이미 회의실 한가운데로 걸어오고 계셨습니다.

사부님은 5시간 넘게 물 한 모금 마시지 않고 설법하셨는데, 이후에 이 내용이 ‘창춘(長春)보도원법회 설법’으로 발표되었습니다. 너무 늦은 시간이라 사부님께서 떠나실 때 회의실 오른쪽으로 나가시며 한 명씩 악수를 해주셨는데, 저는 너무 어리둥절해 계속 박수만 치고 있었습니다. 정신을 차려보니 사부님께서 손을 내미시는 바람에 그제야 사부님과 악수를 했습니다. 그날 우리는 사부님께서 엘리베이터에 오르시는 모습을 아쉬운 마음으로 바라보았습니다. 사부님께서 떠나신 후에도 우리는 한참 동안 발길을 떼지 못했습니다.

이상은 제가 직접 겪은 일들입니다. 올해로 74세인 저는 31년간 대법을 수련하면서 갓 태어난 아기처럼 아무것도 모르는 제게 사부님께서 걷는 법, 사람이 되는 법, 좋은 사람이 되는 법, 수련하는 법, 제고하는 법, 표준에 도달하는 법을 가르쳐 주셨음을 절실히 느꼈습니다. 우리는 법공부와 수련을 진지하게 대하고 정말로 착실히 수련하며 해낼 수 있다면 기적이 주변에서 일어날 것입니다. 수련 중에 제 주변에서 일어난 신기한 일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많았고, 그 어떤 인간의 언어로도 사부님의 은혜에 감사드리기엔 부족합니다.

 

원문발표: 2024년 7월 11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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