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 대법제자
[명혜망] 어렸을 때부터 나는 책, 특히 문학 작품을 즐겨 읽었기 때문에, 내 많은 생각과 관념은 명성, 이익, 정(情), 색(色) 등의 더러운 물질에 오염됐지만 다른 한편으로 오늘날 내가 법을 실증하는 글을 쓸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주기도 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좋은 것을 표현해야 하고, 선(善)한 것을 표현해야 하며, 대법을 찬양하고 신을 찬양하는 것을 표현해야 한다.”(음악과미술창작회 설법-음악창작회 설법)
그때 나는 펜으로 법을 실증하며 사부님, 대법 그리고 대법제자들을 노래로 찬양하고 싶다는 소망을 가졌다. 펜으로 법을 실증하고 싶다는 제자의 소원을 보시고 사부님께서는 그런 수련 환경을 마련해주셨다.
글을 내리면서 깨달은 것
내 주변에 수련생 한 분이 있다. 그녀는 1999년 ‘7.20’ 이전에 대법을 얻은 노수련생으로서 수련이 매우 착실하고 사람 또한 아주 선량하고 순수하다. 그래서 그녀의 수련에 관한 많은 이야기는 훌륭하고 전설적이다. 그래서 나는 그녀를 원형으로 한 실화 작품을 써서 우리 매체 웹사이트에 게재했는데, 많은 사람의 관심을 받았고 중생을 구하는 데 한몫을 했다. 이에 나 자신도 자만했고 내 글이 좋은 글이며 많은 사람이 칭찬할 것이라는 생각에 명예욕이 한껏 부풀어 올랐다. 물론 나 자신도 진작부터 이런 사실을 알았으며 그것을 없애기 위해 정념을 내보냈지만 여전히 시도 때도 없이 밀려왔는데, 오랜 시간 동안 내가 키운 이 명예욕이 얼마나 비대해졌는지 알 수 있었다.
세부 사항에 대한 묘사의 오류로 나중에 수련생이 나에게 글을 내려달라고 요청했다. 나는 ‘수정하고 바로잡으면 되는 것을 왜 굳이 글을 내려야 하나’라는 생각에 매우 내키지 않았다. 하지만 수련생이 글을 내려달라고 고집해 어쩔 수 없이 동의할 수밖에 없었는데, 내심으로는 좋아하지 않았다. 그 글을 쓰기 위하여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였고 지금까지 쓴 글 중 최고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제자가 내려놓지 못함을 보신 사부님께서 꿈에 오시어 심성이 그 위치에 이르지 못하면 그곳에 머물 자격이 없다고 일깨워주셨다. 깜짝 놀라 꿈에서 깨어난 나는 수련의 엄숙함을 깨달았다. 평범한 사람들 사이에서는 평범하고 평상적인 수련 과정으로 보이는 것이, 다른 공간에서는 매우 빼어난 장관일 수 있고, 이 공간에서는 장렬하게 표현되는 일이 다른 공간에서는 평범할 수 있다. 사람의 이치와 신의 이치는 반대이기 때문이다. 우리 매체가 평범한 사회에서는 흔한 것으로 보이고, 심지어 일반 대중매체의 규모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작아 보일 수도 있지만, 다른 공간에서는 극히 신성하고 장엄하며 웅대하다. 내가 쓰는 글이 법을 실증하고 중생을 구하는 것이라도, 더러운 사람마음을 한가득 담고 있는데 어떻게 그 성스러운 플랫폼에 올려놓을 수 있겠는가?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당신들은 깨끗하지 못한 사람 마음으로 대법의 일을 하지 말라.”(정진요지3-청리)
이 말씀을 되새기니 부끄럽기 그지없었다. 나는 원래 그 수련생의 명예욕이 무겁다고 생각했는데, 그 수련생의 그런 표현은 사부님께서 나에게 보여주시려고 그렇게 하신 것이었다. 그토록 많고, 그토록 강렬한 사람 마음으로 그 신성한 자리에 어떻게 합당할 수 있겠는가? 표면적으로는 수련생이 그 글을 내려달라고 요청했지만 사실은 사부님과 신(神)들께서 그 글을 내리라고 요구하신 것이다. 나는 이 명예욕을 반드시 수련해 제거해야겠다고 마음속으로 결심했다.
기꺼이 붉은 꽃을 받쳐주는 푸른 잎이 되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수련이 잘된 수련생을 다시 만나 사부님과 대법을 칭송하고, 대법제자들이 대법을 실증하고 중생을 구하는 모습을 노래하는 장엄한 서사시를 완성하고 싶은 소망이 있었다. 사부님께서 내가 여전히 그런 소망을 품고 있음을 보시고 다시 한번 그런 기회를 마련해 주셨다.
노수련생 한 분이 외손자가 학교에 다니느라 우리집 근처 학군에 방을 빌려 살고 있었는데, 인연이 닿아 우리는 함께 하게 됐다. 그 노수련생과 처음 교류를 나눴을 때 나는 크게 감명받았다. 사부님과 대법에 대한 그녀의 경건함과 믿음으로 인해 수련 중에 그녀에게서 수많은 기적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그녀의 모든 이야기는 멋진 글감이었고 정말 신이 사람 속에 있는 듯했다. 나는 참지 못하고 “글로 써서 명혜망에 올리면 어떨까요?”라고 말했더니, 그녀가 이렇게 말했다. “몇 편은 써봤는데, 아직도 쓰지 않은 게 많아요. 2018년, 사부님께서 꿈에 저를 일깨워주셨어요. 하늘에서 거대한 신필(神筆)이 나타나더니 웅장하고 장엄한 기세로 단숨에 글씨를 내리쓰는 꿈을 꿨는데, 즉시 사부님의 시 ‘두려워 떨게 하다(震懾)’이 떠올랐죠. ‘신필(神筆)은 요괴인간 떨게 하고 쾌도(快刀)는 썩은 귀신 없애노라 낡은 세력이 법을 공경치 않으니 붓 휘둘러 사나운 파도 멸하노라’. 이것이 사부님께서 제가 글을 쓰도록 일깨워주신 것임을 알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글 쓰는 게 서툴러요. 4년 전에 손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고, 글을 잘 쓰는 현지 수련생이 고쳐줘서 명혜망에 올릴 수 있었죠. 제 수련 과정에서 발생한 신기한 일이 너무 많아서 한 권의 책이 될 정도인데 제가 글을 쓸 줄 몰라 괴로워요. 물론 이것은 다 사람마음이고 사부님께서 저에게 신필을 주셨는데 어떻게 아직도 쓸 줄 모른다고 할 수 있겠어요?”
나는 “글 쓰는 법을 모르셔도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도와드릴 테니 함께 중생 제도의 사명을 완수해요”라고 말했다. 나는 진심을 다해 그녀에게 말하며 동시에 자신에게도 경고했다. ‘이 일을 할 때 명예욕, 자신을 과시하려는 마음이나 사심을 품고 해선 안 된다. 우리가 하는 일은 우주에서 가장 신성하고 위대한 것이므로 마땅히 가장 깨끗하고 순수한 마음으로 해야 한다. 우리 각자의 능력은 모두 사부님과 대법에서 온 것이다. 우리가 실증하는 것은 대법이지, 우리 자신이 아니다. 대법제자가 대법을 실증하고 중생을 구하는 휘황함은 천상(天上)의 신이 기록하시겠지만, 인간 세상에 남겨지는 역사 기록은 우리 대법제자들이 직접 써서 후세에 남겨야 한다.’ 나중에야 깨달았는데 내 말 뒤에는 수련생과 나의 마음이 순수하지 않아서 내 글이 다시 내려질까 봐 두려워하는 집착이 숨어 있었다.
수련생은 매우 기뻐하며 즉시 자신의 메일함을 넘겨주었고 그녀가 작성해서 명혜망에 게재했던 원고를 모두 나에게 전해주었으며, 게재되지 않은 원고도 내가 수정할 수 있게 넘겨주었다. 메일함에서 그녀가 쓴 원고 일부를 봤는데 그녀가 구술해준 것처럼 생동감 있고 흥미진진하진 않았다. ‘이렇게 좋은 소재로 내가 글을 쓴다면 정말 감동적일 거야!’ 이는 원고를 다 읽고 난 뒤 맨 처음 떠오른 생각이었는데, 이 생각이 얼마나 거만하고 자만에 찬 생각인지, 하지만 그때는 그 생각을 잡아내지 못했고 없애버리지도 못했다. 내 마음에 명예욕이 그렇게 무거워진 이유는 사실 평소에 사악이 내 머릿속에 던져놓은 생각들이 오랫동안 쌓여서 형성된 두텁고 검은 업력의 물질장 때문이었다.
나중에 수련생에게서 글쓰기를 도와달라는 편지를 잇달아 두 통 더 받았다.
그리고 나는 수련생이 글쓰기 기초가 없어서 단기간에 좋은 글을 쓰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물론 이는 전적으로 사람의 기점, 사람의 각도, 사람의 사유방식과 관념에서 문제를 바라본 것이다. 대법은 초범적이며, 더욱이 그 수련생에게는 그렇게 많은 기적이 나타났고, 사부님께서 그녀에게 그런 거대한 신필을 주셨는데 어찌 좋은 글을 쓸 수 없겠는가? 물론 이것은 내가 나중에 심성을 제고한 후의 인식이다.
얼마 전 수련생으로부터 사부님께서 그녀에게 신필을 주셨다는 말을 들었을 때 나는 한편으로는 부러웠고, 다른 한편으로는 왜 사부님께서 나에게는 신필을 주시지 않았을까 하는 질투심이 들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소스라치게 놀랄 일이다. ‘난 신공표(申公豹)와 다를 바 없구나. 질투심이 너무 강렬해서 무서울 정도구나. 그것을 없애버려야겠다!’
그날 나는 수련생에게 편지를 써서 그녀가 법을 얻은 때부터 법을 수호하기 위해 베이징에 갔던 일, 그리고 지금까지의 모든 체험을 녹음해 달라고 요청했다. 글감으로 쓰려고 ‘7.20’ 때 우리 매체에 기고할 또 한 편의 장편 실화를 쓰려고 하니 자세할수록 좋겠다고 했다.
그런데 이 수련생은 전과 달리 열정이 사그라들며 그저 “다음에 만나서 얘기해요”라고 담담하게 말했다. 나는 수련생의 감정 변화를 민감하게 포착하고 자신을 돌아보니, 내가 그 글을 써서 법을 실증하려는 배후에는 여전히 명예욕, 과시심, 자아를 실증하려는 마음 등이 섞여 있음을 발견했다. 지난번 일로 이런 더러운 것들을 다 제거했다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제거하지 못하고 숨어있다가 기회만 되면 다시 드러나오려 했다. 나는 그럼 계속 제거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또 하나는 사심(私心)이다. 내가 쓰려는 글이 의미가 크고 더 많은 중생을 구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자신의 일을 우선시하고 수련생의 원고를 수정하는 일은 소홀히 했다.
그래서 나는 이미 쓰기 시작한 글을 내려놓고, 정성을 다해 수련생의 원고를 한 글자 한 글자 수정해서 그녀에게 전해주었다.
수련생을 다시 만났을 때 그녀는 매우 기뻐하며 내가 수정해준 원고가 매우 좋다고 하면서, 녹음한 내용은 스스로 깨달은 법리만 못하다고 말했다.(이 점은 나도 깊이 공감한다.) 그래서 앞으로는 녹음하지 않고 직접 쓰고 싶다고 했다.
그러고는 그녀는 미완성 초고 몇 편을 찾아내 내게 수정해달라고 부탁했다. 이번에 나는 자아와 명예욕을 완전히 내려놓고 더는 나를 위해 글 쓰려고 생각하지 않았으며, 기꺼이 붉은 꽃을 받쳐주는 푸른 잎이 되고자 했다.
원고를 수정하는 과정에서 아마도 집착을 내려놓고 심성을 제고해서 그런지 사부님께서 나에게 매우 많은 것을 주셨다. 우선 원고를 보는 중에 수련생이 착실히 수련하는 중에서 펼쳐 보인 사부님과 법에 대한 정념과 경건함에 깊이 감동했고, 나와 비교해보니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다. 또한 수련생이 시련을 겪을 때 사부님과 법을 믿음으로써 펼쳐 보인 기적에 놀랐다.
더 중요한 것은 사부님의 모든 배치가 가장 좋고, 주시는 것도 가장 좋으며, 배치 역시 가장 정교하다는 것을 깨달은 점이다. 우리는 그저 사부님께서 요구하시는 대로 하면 그것이 가장 좋은 원융이다. 예를 들어, 수련생이 말해준 일을 토대로 내가 쓴 짧은 글은 수련생의 초고를 바탕으로 내가 수정한 글보다 훨씬 생동감 있고 감동적이며, 법리상으로도 명확하고 이해하기 쉬웠다.
다음으로, 원고를 수정하는 과정에서 나 자신도 거기에 녹아들어 마치 내가 그 일을 겪는 것처럼 원고에 등장하는 모든 난관을 절실히 체험했다. 글의 주인공은 더는 수련생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이었다. 이런 시련에 부딪혔을 때 내가 어떻게 관을 넘어야 하는지, 법에서는 어떻게 말씀하셨는지,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체득했다.
더욱 신기한 것은 수련생이 난관 속에서 오히려 깨닫지 못했던, 정확히 말하면 표현하지 못했던 법리를, 내가 갑자기 원고를 수정하는 동안 깨달았으며, 대법의 내포가 끊임없이 내 앞에 펼쳐지고 끊임없이 연장되고 또 연장된 것이었다. 그리고 많은 사람마음과 집착, 관념을 찾아내게 해주었다. 내가 수정한 거의 모든 원고에는 내가 깨달은 법리가 실려 있었다. 그래서 내가 깨달은 이런 법리들을 모두 수정한 글 속에 써넣었더니, 대법 때문에 평범했던 글이 갑자기 풍만해지고 원숙해졌으며, 정신뿐만 아니라 영혼까지 갖추게 되어 내가 보기에도 몹시 감동적이었다.
물론 원고를 수정하는 동안 가장 많이 얻고 수확한 사람은 바로 나였다.
원고를 정리하면서 사부님의 법리가 끊임없이 내게 펼쳐진 것 외에도, 사부님과 법을 믿고 공경하는 일의 엄숙함을 절실히 느꼈다. 또한 사부님의 홍대한 자비와 불법(佛法)의 무량함을 몸소 느꼈으며, 사부님께서 시시각각 우리 곁에 계시면서 우리를 보호하시고 보살펴주시며, 귀환의 하늘사다리에 오르도록 이끌어주심을 더욱 느꼈다.
사부님의 자비와 무량한 은혜는 인간의 그 어떤 언어로도 그 만분의 일조차 표현할 수 없다. 그저 조금만 내려놓았을 뿐인데 사부님께서 나에게 그토록 많이 주셨다. 사부님께서는 내 손을 잡고 귀환의 하늘사다리로 한 걸음 한 걸음 인도해주시는 것이다. 그동안 대법 속에서 그럭저럭 일만 하면서 하는 일을 수련으로 여기고, 착실히 수련하지 못한 것이 너무나 후회스럽다. 이제부터 뒤늦게라도 만회해야겠다.
이 글을 쓰는 도중에 일어난 신기한 일
저녁 식사 후 갑자기 이 글을 쓰고 싶었던 것은 그간 수련하면서 많은 것들을 느꼈기 때문이다. 나는 컴퓨터 타자가 서툰 독수리 타법이라 손으로 쓰는 것보다 훨씬 느리다. 그래서 모든 기사를 휴대폰으로 작성하는데 손으로 한 획 한 획씩 글자를 쓴다. 나는 전화를 사용하지 않고 전화 카드도 없다. 내가 사용하는 것은 10년 전 진상 전용 휴대폰 레노버(聯想) 936인데, 메모리는 1G, 저장 용량은 8G에 불과하지만, TF 소형 검은색 저장 카드를 사용할 수 있다. 이 휴대폰은 수년간 나와 함께 해왔으며 매우 편리하다. 나는 이 휴대폰을 켜서 사부님 설법을 재생하고, 동영상 보고, 파룬궁수련생 교류 문장을 듣고, 전자책으로 법을 배우며, 연공하고, 전에는 명혜망에 접속할 때도 사용했다. 더 중요한 것은 내가 기사를 쓸 때 사용한다는 점이다. 수년 동안 거의 모든 기사를 이걸로 썼다.
이 휴대폰은 매우 신통해서 지난 10년간 거의 문제가 없었으며, 현재 유일한 단점은 배터리 내구성이 좋지 않은 것이다. 교체하고 싶지만 이 모델이 너무나 오래되어 더는 그런 배터리를 구입할 수 없다. 또 메모리 부족으로 인해 기사를 작성할 때 갑자기 자동으로 파일을 닫았다가 다시 복구하는 경우가 있는데, 제때 저장하지 않으면 일부 파일이 손상됐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그것을 좋아하고 아끼며 버리기 아까워했다. 나는 그것과 여러 번 소통하고 교류하여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真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를 기억하게 하고, 법에 동화되도록 하여, 정법(正法)이 끝날 때까지 나와 동행한 다음 함께 천국의 정원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했다.
이 글을 다 썼을 때는 이미 밤 1시 30분이 넘어서 매우 피곤했다. 마지막 문단을 수정할 때 글의 어떤 부분도 움직이고 싶지 않았는데, 갑자기 휴대폰 화면이 하얗게 변하면서 문서를 저장할 것인지 묻는 메시지가 떴다. 졸린 탓에 머리가 잘 돌아가지 않았지만 방금 수정한 텍스트를 잃을 수는 없다는 생각에 저장을 클릭했다. 파일이 닫힌 후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들었고 흰색 화면에서 뭔가 잘못되었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다시 열어보니 문서 전체가 텅 비었고 단어 하나도 없었으며 몇 시간 동안 열심히 작업한 내용이 모두 지워졌다. 과거에는 문서가 갑자기 닫혔다가 복원되면 문서 옆에 백업 파일, 즉 중복 파일이 나타났었는데 이번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다시 작성하려면 시간이 걸릴 뿐만 아니라 내가 다시 쓴 내용이 지워진 것이 똑같지도 않을 것이다.
이것이 구세력의 교란, 파괴임을 알았지만 왜 교란할 수 있었던 걸까? 아직도 명예욕이 있는 건 아닌지 찾아보니 무겁지는 않지만 여전히 남아있었다. 또 환희심도 있었으며, 더 중요한 건 사악이 사부님에 대한 나의 믿음 정도를 시험하기 위해 이 일을 악용하는 것 같았다. 즉, 이런 문서를 잃어버렸을 때 내가 운반공을 사용해서 원고를 복구할 수 있는지 하는 것은 바로 내가 정념으로 신통을 사용하는 능력을 시험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최근에 신통력을 사용하면서 관념을 어느 정도 돌파했기 때문이다.
나는 운반공을 운용하여 문서를 복원하기로 했다. 내가 신통력을 운용할 때 가장 큰 집착은 내 마음이 불안정해 잘 될지 안 될지 의심스러워하는 것임을 분명히 알고 있다. 이것이 내가 예전에 신통력을 운용하지 못한 주된 이유이기도 하다. 바로 사부님과 대법을 믿는 정도가 부족했고, 그래서 구세력이 트집을 잡아 날 시험한 것이며, 이것이 문서가 지워진 주요 원인 중 하나였던 것 같다. 하지만 이번에는 반드시 사부님과 대법을 믿어야 하고 내 신통력이 작용할 것이라고 믿어야 한다. 그래서 정념을 보낼 때 사악을 제거해야 할 뿐만 아니라 이러한 의심도 제거해야 한다.
방금 5분 동안 정념을 보냈는데 그 결과를 빨리 보고 싶어서 파일을 다시 열어봤더니 여전히 지워져 있었다. 이것은 구세력이 나에게 조성한 가상임을 알았고 나는 정념의 작용에 대해 의심했으며 발정념에 대한 자신감을 잃었다. 그런데도 이번에는 파일이 복구될 것이라고 굳게 믿었는데, 그 순간 갑자기 중국에서 공을 전하고 설법하시던 사부님 음성이 내 마음속에 떠올랐다. “왜 사부를 찾지 않는가? 어려울 때 사부에게 간청하는 것도 대법과 사부에 대한 당신의 믿음을 시험하는 것이 아닌가?” 나는 평소에 사부님께 부탁드리는 일이 적었는데, 수련을 사람마음으로 대했고 사부님께 번거로움을 끼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즉시 마음속으로 “사부님, 원고를 복구할 수 있도록 제자를 도와주세요”라고 간청드렸다. 1분도 채 지나지 않아 휴대폰을 다시 보니 빈 문서 옆에 명칭이 바뀐 문서가 나타났다. 파일을 열어서 보니 수정하기 전과 똑같은 파일이 복구되어 있었고, 화면에는 텍스트가 가득 차 있었다.
나중에 휴대폰에서 빈 파일을 삭제했을 때 대화 상자에 ‘이 파일은 삭제되었거나 다른 위치로 전송되었습니다’라는 메시지가 표시되었다. 과연 구세력이 소란을 피우고 있었다.
이번 운반공 운용에서 사부님과 대법을 믿는 마음으로 시험에 합격했지만 아직 만점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알고 있다. 앞으로도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다시 한번 위대하신 사존께서 베푸시는 자비로운 고도(苦度)에 감사드립니다!
원문발표: 2024년 7월 1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4/7/1/478273.html
简体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4/7/1/478273.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