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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난 속에서 각성하고 바로잡으며 속죄하자

글/ 해외 대법제자

[명혜망] 경탄, 충격, 각성…사부님의 새 경문 ‘법난(法難)’과 ‘각성하라(驚醒)’를 읽은 후 가장 빠르고 선명하게 다가온 느낌이었다.

경탄은 매체 항목에 거대한 재난이 다가온 위급한 순간에 사존께서 하늘에서 내려와 재난을 막으셨기 때문이다. 충격은 사존께서 처음으로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박해와 압력에 ‘법난(法難)’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셨기 때문이다. 더 충격적이고 부끄러운 것은 이번 법난이 우리 대법제자들이 잘하지 못하고 장기간 심성에 누락이 있어 초래됐고, 사존과 션윈예술단에까지 영향 주어 박해받게 했다는 사실이다.

각성하게 된 것은, 사존께서 경문에서 지적하신 다양한 수련의 누락과 부족점이 사실 그동안 우리에게 끊임없이 말씀해주신 법리였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개인을 공격하지 말고, 적을 만들지 말라” “당신은 나를 욕할 수 있지만, 나는 당신을 욕하지 않고 누구에게나 선하게 대하겠다.”(각지 설법15-에포크타임스·엔티디 매체법회 설법) 그러나 제자인 우리는 이런 말씀을 듣지 않았고, 실천하지 않았으며, 잘 수련하지 않아 결국 사부님과 션윈에 박해와 어려움을 가져왔다. 이는 ‘대법제자’라는 호칭에 부끄럽고, 사부님의 자비롭고 고생스러운 제도에 부끄러운 일이 아닌가?

1. 사부님의 감당과 자비

사부님의 두 편의 신경문은 명혜망뿐만 아니라 몇 개 주요 매체를 통해 세인들에게 전해졌다. 나는 사존께서 존귀하신 창세주의 몸으로 세간에 직접 나타나 이번 거대한 난과 박해를 감당하시고, 매체와 대법제자들을 살려내셨음을 깨달았다. 더 중요한 것은, 사존께서 향후 매체를 통해 구원받아야 할 대량의 인연 있는 중생을 살리려 하심을 깨달았다. 다시 말해 사부님의 신경문은 신의 몸으로 제자들과 매체, 중생을 위해 속죄하심으로써 중생의 미래를 바꿔 오신 것이다.

이밖에 사존께서는 신의 몸으로 거대한 업을 막아주신 동시에, 제자들을 간곡하게 타이르시고, 틀린 것을 바로잡게 하시며, 단 한 명의 제자도 포기하지 않으셨다. 또 세인들에게 대법제자들의 반(反)박해 진상, 션윈이 중생을 구하는 진상을 자세히 설명하여 그들의 양심과 선념을 일으키고, 옳고 그름을 판단하도록 설득하셨으며, 사악에게 이용당해 죄업을 짓지 않도록 하셨다.

사존의 이 모든 것은 과거에 있어 본 적 없는 홍대한 자비다. 또 이는 제자들에게 사존의 말과 행동으로 “누구에게든 慈悲(츠뻬이)하게 할 수 있고, 누구에게든 사랑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는 이것은 정말로 일반인이 해낼 수 있는 것이 아닌데”(각성하라)라는 말씀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직접 보여주신 것이다. 동시에 사존께서는 매체와 제자들을 공개적으로 지적하고 바로잡게 하시어, 대법의 순정(純正), 순선(純善)함과 정정당당함을 친히 보여주셨다. 우리가 법리에 따라 자신을 바로잡고 잘못을 만회하며 참회한다면, 이 모든 것은 또다시 사악한 박해에 대한 ‘장계취계(將計就計)’가 되고 ‘전화위복’이 될 것이다.

사존의 호탕한 은혜에 우리는 영원히 보답할 수 없을 것이다.

2. 법난은 왜 발생했나

나는 두 편의 신경문을 통해 이번 법난이 주로 세 가지 원인에서 비롯됐음을 깨달았다.

1) 중생의 업과 대법제자의 업력
2) 수련생들의 잘못
3) 중생에 대한 수련생들의 자비심과 선념의 부족

첫 번째는 업력이다. 사존께서는 ‘법난’에서 말씀하셨다. “사실 나는 우리가 사람을 구하고 있는 동시에, 아직도 15%의 업력을 없애지 못했음을 알고 있다. 이것은 중생구도 20여 년간 남겨진 것으로, 이는 매우 거대한데, 나는 알고 있다.”

왜 15%의 업력이 있는가? 이는 천기이므로 여기서 함부로 추측하지 않겠다.

두 번째는 수련생들의 잘못 때문이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매체뿐만이 아니라, 매 대법제자는 모두 생각해 보아야 하는바, 우리는 대법수련인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것을 하고 있는가? 돌이켜보면 나조차도 나중에 두려움을 느꼈는바, 많은 사람이 장기간 자신의 수련을 느슨히 하고 일을 함에 또 속인과 같은데, 이는 대법제자의 상태인가?”(각성하라)

이번 법난 앞에서 자신을 수련생이나 대법제자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모두 안으로 찾아 수련 상태를 바로잡아야 한다. 나도 지난 몇 년간 매체에 있으면서 겪은 일을 되돌아보고 안으로 찾아보니, 우리 매체 환경에 장기간 몇 가지 누락이 있었음을 발견했다. 이런 누락은 우리 정체(整體)가 더 높은 자비와 선념이 나오지 못하게 억제했는데, 이는 뒤에서 설명하겠다.

1) 자비와 선념이 부족해 신의 상태에서 벗어났다

그동안 사존께서는 주요 매체와 1인 미디어에 여러 번 관련 법리를 알려주셨다. 즉 속인의 정치에 개입하지 말고, 어떤 정당이나 개인도 공격하지 말며, 가급적 모든 중생을 구해야 한다고 하셨다. 그런데 왜 이번 법난이 여전히 일어났는가? 이는 우리가 정체적으로 사존의 법리에 따라 하지 않고, ‘듣는 것 따로, 하는 것 따로’였음을 설명한다. 이 때문에 사악에게 구실을 잡혀 빈틈을 타게 함으로써 거대한 죄업과 법난을 초래했다. 우리가 무조건 법리에 따라 하지 않는다면 정말 신사신법(信師信法)하는 것인가? 정말 대법을 실증하고 중생을 구하는 것인가?

더 깊이 들여다보면 왜 우리는 신사신법하지 않고 법리에 따라 하지 않았는가? 클릭 수와 명예, 이익 때문이었는가? 특정 정당에 대한 사람의 정이나 원한 때문이었는가? 아니면 마음속으로 세간의 득실을 대법 정체의 득실, 중생의 득실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했기 때문이었는가? 우리는 이처럼 오랜 세월 수련해 왔는데, 우리의 생명 특징은 이타적인가 아니면 이기적인가? 우리 중 몇 퍼센트가 신우주로 들어갔고, 몇 퍼센트가 여전히 구우주에서 길을 잃고 헤매고 있는가? 이런 문제를 우리는 모두 깊이 뿌리를 파 보아야 한다.

자비가 없으면 신이 될 수 없고, 선(善)이 없으면 중생을 구할 수 없으며, 심지어 사람마음이 마에게 이용당해 도리어 중생을 망치고 대법의 제도를 방해하게 된다.

2) 사소한 일을 중시하지 않아 크게 넘어졌다

우리 매체의 많은 수련생은 모두 능력이 있고 큰 포부를 갖고 있다. 그래서 대법 항목을 대대적으로 추진해 더 많은 중생을 구하려는 소원을 품고 있다. 하지만 조금 안타깝게도 구체적으로 실행할 때면 사소한 일을 중시하지 않거나 빠른 펀치를 날리고 싶어 한다. 이 때문에 일의 편의를 위해, 혹은 빠른 성공을 위해 바르지 않거나 위험한 방법을 선택한다.

바르지 않은 한 걸음을 뗐을 때 세인들은 알아채지 못할 수 있지만, 온 하늘의 신과 부처는 똑똑히 보고 있고, 우리를 호시탐탐 노리는 구세력은 하나하나 구실로 삼는다. 구세력은 사소한 것을 중시하지 않는 수련생들의 마음가짐을 이용하고 명예, 이익, 정으로 유혹해 우리를 한 걸음 한 걸음 잘못된 길로 가게 하며, 우리가 기쁘게 큰 걸음을 내디디려고 할 때 일거에 맹공을 퍼부어 쓰러지게 만든다.

안으로 깊이 찾아보면 왜 우리의 공간장에 바르지 못한 염두가 나타날 수 있었는가? 우리 정체의 마당이 이미 엇나가고, 불순하며, 바르지 못하기 때문이 아닌가? 이 때문에 크고 작은 바르지 않은 염두가 생존할 곳을 찾게 된 것이 아닐까? 우리는 알고 있다. 백 퍼센트 순수한 공간장에는 어떤 사악한 생명도 감히 침입할 수 없으며 침입하면 바로 해체된다.

달리 말하면 사소한 것을 중시하지 않고, 속인의 규범에 어긋나는 모험이나 투기를 하려는 태도는 중생에 대한 자비심이 부족하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매 한 걸음 모두 올바르게 걸어야만 중생을 탄복하게 할 수 있다. 나의 층차에서는 올바르게 걷는 것도 자비심의 표현이다.

3) 속인의 원칙을 따르려고 하지 않는다

우리는 모두 ‘정념정행(正念正行)’을 알고 있다. 하지만 때로는 입으로는 정념을 말하지만, 행동이나 실천에서는 속인의 원칙과 법규를 따르려 하지 않으며, 중생이 받아들일 수 있는지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 그 결과 종종 일이 순조롭게 진행되지 않고 결국 엉망이 되며, 대법제자의 자비심도 체현하지 못한다.

표면적인 이유를 보면, 번거로운 것을 싫어하는 마음, 자신을 개변하지 않고 다른 사람만 개변시키고 싶어 하는 마음, 지적받기 싫어하는 마음 등이 있다. 심지어 수련생들이 지적하고 교류해도 “당신은 정념이 부족하다”, “당신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있다”, “속인의 규정에 얽매이지 말라”고 하면서 자신을 변호하거나 상대방을 비난한다.

그러나 더 깊이 들여다보면, 우리는 사람마음으로 법을 이해하는 경우가 많으며, 늘 초범적인 정념과 사부님의 가지(加持)로 저층 인류 공간에서 해야 하는 노동과 수고를 대신하려 하거나, 자신을 변화시키지 않고 자신의 것을 고수하려는 안일심을 덮어 감추려고 한다.

정념은 결코 불타오르는 분노나 끓어 넘치는 열정이 아니다. 진정한 정념은 우주의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모든 층차를 관통할 수 있고, 모든 층차의 법리를 모두 원융할 수 있는 지혜와 자비다.

4) 이해할 수 없는 말을 하여 비정상적으로 보이다

수련인으로서 우리는 신을 믿으며, 일하는 과정에 기적도 자주 나타난다. 그러나 우리의 뉴스는 속인에게 보여주고 중생을 구하는 용도임을 알아야 한다. 따라서 뉴스와 다른 프로그램은 내용이 너무 높아서는 안 된다. 그렇지 않으면 속인들이 쉽게 오해하고 의심하여 결국 외면받을 수 있다. 이러면 중생과 멀어질 뿐만 아니라 수련인의 자비, 선념과 사랑을 보여줄 수 없다.

예를 들어, 우리의 일부 뉴스는 중국의 자연재해나 기상이변을 보도할 때, 때로는 귀신 이야기를 하듯 자신도 모르게 이해할 수 없는 말을 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증거를 바탕으로 하는 뉴스와는 거리가 멀다. 이 때문에 시청자와 독자들은 댓글이나 소셜미디어에서 우리가 객관적이지 않고 이성적이지 않다고 비판했다.

안으로 찾아보면 일부 수련생들은 장기간 수련생들 속에서 생활하면서 속인사회와 접촉이 적거나 전혀 없기 때문에 수련생과 교류하는 언어와 사유로 뉴스를 만들고 있다.

오랫동안 매체 항목을 하면서 속인과 많이 접촉하지 않아 본인이 하고 싶은 말만 하는 습관이 생겼을 수도 있다. 속인이 이해할 수 있는지 고려하지 않으면 초범적인 이치를 말하려다 비정상적으로 보일 수 있다. 이러면 신뢰할 수 있는 매체가 될 수 없고, 심지어 자기도 모르게 속인에게 미움을 사고 중생과 멀어질 수 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하지만 항목 자체와 당신들이 일을 하는 방식은 세인들이 이해할 수 있게끔 해야 한다. 사람에게 이해되도록 하는 것이지, 신에게 이해되도록 하는 것이 아니다. 사람은 표면만 보며, 사람은 단지 표면적으로 문제를 이해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당신들은 표면적인 형식에서 반드시 속인 사회의 표현행위에 부합되어야 한다.”[각지 설법9-엔티디(NTD) 방송토론회설법]

우리는 사존의 가르침을 엄숙하게 대해야 한다.

5) 오만하고 기능 제고를 꺼린다

우리는 매체에서 오래 일하다 보면 자격을 갖췄다고 착각하기 쉽다. 하지만 장기간 전문 기능을 향상시키지 않고, 장기간 자신을 발전시키지 않으면 ‘오랜 경력’은 오히려 수련 제고와 중생 제도를 교란하는 ‘장기적인 족쇄’가 될 수 있다.

안으로 찾아보면, 장기간 기능을 향상하지 않는 것은 자비심 부족, 안일을 추구하는 마음, 고생을 싫어하는 마음, 지적받기 싫어하는 마음, 자신은 개변하지 않고 다른 사람만 개변시키려는 마음 등 수련 중의 허점 때문으로, 이는 제고되어야 할 수련의 관문이기도 하다.

달리 생각해보면, 우리가 중생을 구하는 데 필요한 전문 기능을 향상시키려 하지 않고, 중생이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규범과 방식을 배워 그들을 구하려 하지 않는다면 어찌 세인에게 대법의 자비와 지혜를 실증할 수 있겠는가?

6) 수련과 일을 대립시키다

일부 수련생들은 수련과 기능 전문화를 별도로 보며, 이 두 가지의 관계를 ‘제로섬 게임’으로 본다. 즉, 수련을 중시하면 기능을 향상시킬 시간이 없고, 기능을 향상시키려면 수련을 느슨히 하게 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는 명백한 인지적 오해다.

션윈을 예로 들면, 션윈 예술가들은 매일 대량의 시간과 노력을 들여 무용 기술을 익히지만 법공부와 연공, 심성 수련을 홀시하지 않는다. 매체 항목의 훌륭한 기자, 편집자와 진행자들 중에도 정진하고 착실히 수련하는 수련생이 적지 않다. 그들은 휴식 시간이 거의 없지만 수련과 속인 기능 모두 끊임없이 향상시키고 있다.

개인적으로 깨달은 것은, 수련과 일은 상호 배타적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수련 경지가 높을수록 자비심과 홍대한 염원을 갖고 전문 기능을 향상시키려고 하며, 중생을 구하기 위해 기꺼이 고생하고 희생하려 한다.

7) 공산당 문화의 오염

매체의 많은 수련생은 해외에 온 지 꽤 됐지만 중국공산당 문화의 오염 때문에 수련과 법 실증, 자비심 표현에 어느 정도 영향을 받고 있다. 이 때문에 매체와 1인 미디어에서 다음과 같은 문제가 나타났다.

첫째, 완성되지 않았거나 위험한 기술로 지름길을 달려 사악이 틈을 탈 수 있는 불씨가 된다.

둘째, 때로는 이름을 날리거나 클릭 수를 높이기 위해 증거도 없이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과장된 말을 하는데, 이는 증거를 바탕으로 말하는 전통 매체의 규범에 위배되는 것이다. 이는 매체의 신뢰도나 개인의 신뢰도를 잃게 할 뿐만 아니라, ‘거짓되고 과장되고 공허한 말[假大空]’을 하는 중공의 나쁜 습관을 퍼뜨리는 것이기도 하다.

셋째, 매체의 발언권을 남용하면서 책임은 무시했다. 매체는 중공이 가장 중시하는 여론 도구이자 이념 선전 무기이기 때문에 중공은 자주 언론 독점을 이용해 적이나 반대 인물을 제멋대로 공격하고 비방한다. 그러나 우리도 가끔 이렇게 했다. 우리는 우리에게 있는 발언권을 이용해 뉴스 보도나 프로그램에서 싫어하는 사람(심지어 서방 정치인)과 사물을 비판하고 공격했지만, 모든 권력에는 상응하는 책임이 있다는 사실을 무시했다. 발언권에는 발언에 대한 책임이 따르고, 사회적 책임과 법적 책임도 있는데, 우리는 대법 수련자가 가져야 할 자비와 선념을 체현하지 못했다.

3. 법난에서 벗어나는 과정에서 자신을 잘 수련해야

한 수련생은 며칠 전 가부좌를 할 때 본 장면을 나에게 들려줬다. 한 거대한 천체가 불꽃을 사방에 튕기며 사분오열했고 추락하기 직전이었는데 사존께서 두 손으로 받쳐 드셨다. 수련생이 본 것이 진상이 아닐 수도 있고 일종의 암시일 수도 있지만 나는 사존께서 신의 몸으로 거대한 난을 감당하시고 매체, 제자들과 중생을 위해 이번 재앙을 막음으로써 방대한 천체를 살려내셨음을 깨달았다. 따라서 이제 제자들은 착실한 수련으로 자신을 바로잡고 훼손된 천체를 보수해야만 중생을 수호하고 새로운 우주를 수호하는 사명을 완성할 수 있다.

그러므로 나는 개인적으로 우리가 우선 마음을 바로잡고 신사신법(信師信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과거의 4.25나 7.20 큰 시험 때처럼 이번 법난 앞에서 사존과 대법에 대한 바른 믿음을 지켜야 한다. “하나의 부동(不動)이 만(萬)가지 움직임을 제약하는 것이다!”(미국중부법회 설법)

동시에 우리는 법 속에서 자신을 되돌아보고 안으로 찾으며, 빗나간 각종 사람마음과 집착, 관념을 바로잡아야 한다. 특히 우리는 우리의 ‘선(善)’을 순정하게 하고 자비를 확장해야 한다. 우선 우리 자신의 공간장을 정화해야만 불광이 널리 비춰 자신과 타인을 구할 수 있다.

둘째, 모든 난(難)은 수련인의 심성과 경지에 대한 시험임을 알아야 한다. 매체 항목에 이처럼 큰 난이 닥쳤는데 우리는 마음을 어떻게 쓰고 있는가?

우리는 어떤 대법 항목에 참여하고 있든 조용히 자신에게 물어보아야 한다. 내가 애초 이 항목에 참여한 목적은 무엇이었는가? 지금 여전히 초심을 지키고 있는가? 아직도 처음처럼 수련하고 있는가? 은폐적인 사람마음, 관념과 집착이 늘어나지 않았는가?


추가 교류: 미 의회에서 ‘파룬궁 보호법’이 통과된 것에 관해

최근 미 하원에서 ‘파룬궁 보호법’이 통과됐는데, 이는 미국이 중국 인권 보호와 중공의 반인류적 박해 중단을 위해 내디딘 중요한 한 걸음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최근 일부 1인 미디어와 매체 수련생들은 이 법안으로 대법을 박해하는 중국공산당 관리들을 조사 처벌하고, 중공의 해외 선전 행위를 처벌하는 방법에 대해 공개적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이런 발언에는 쟁투심, 복수심과 환희심이 선명하게 담겨 있어 개인적으로 부적절하다고 생각한다.

사존께서 말씀하셨다. “박해 중에서 여러분은 중공사당을 증오할 수도 있는데, 심지어 어떤 사람은 기회만 있으면 그들과 목숨을 걸려고 한다. 가치가 없다.” “아니다. 나는 종래로 중공사당과 싸운다고 말한 적이 없다. 그것(중공사당)은 가치가 없다.”(각지 설법13-2014년 샌프란시스코 법회 설법)

“중공사당을 타도하는 것은 수련의 목적이 아니며, 대법제자가 수련 원만에 이르는 것이 비로소 수련의 최종 목적이다.”[정진요지3-청리(淸理)]

사존께서는 이미 대법제자는 공산당 해체를 목표로 하지 않는다고 가르치셨다. 우리의 진정한 사명은 수련 원만과 중생 제도다. 사존께서는 신경문 두 편에서 우리가 자비심이 부족하고 사람마음이 너무 무거우며 속인과 혼동한다고 여러 번 지적하셨다. 이 시각 우리는 사존의 가르침을 명심해야 한다. “이지(理智)로 법을 실증하고, 지혜로 진상(真相)을 똑바로 알리며, 慈悲(츠뻬이)로 홍법(洪法)하고 세인을 구도하는, 이것이 바로 각자(覺者)의 위덕을 세우는 것이다.”[정진요지2-이성(理性)]

이상 개인의 제한된 깨달음이니 법에 부합하지 않는 부분이 있다면 자비롭게 지적해주시길 바란다.

 

원문발표: 2024년 7월 4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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