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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련 속에서 사부님을 굳게 믿으며 전진하다

글/ 중국 대법제자

[명혜망] 나는 1998년에 법을 얻은 대법제자다. 20여 년의 수련 경험을 써내어 사부님께 보고드리고 수련생들과 교류하고자 한다.

1998년 봄, 아내가 몸이 아파 파룬궁 수련을 시작했는데 일주일 만에 커다란 변화가 있었다. 더는 날마다 고통과 가려움으로 소리치지 않았고, 과거와 달리 활력이 생겨 항상 즐거워했다. 질병으로 침울했던 얼굴도 어두운 구름이 걷힌 듯 밝아졌고, 집안에도 오랜만에 즐거움이 돌아왔다.

아내의 변화를 보며 놀랍고 궁금해 파룬궁이 도대체 무엇인지 살펴보고 싶었다. 어느 날 아내를 따라 광장에 가보니 사람들이 평화롭게 앉아 명상하고 있었고 은은한 음악이 흘렀다. 그때 느낌이 무척 편안했다.

마침 옆에 있던 백발의 노부인이 파룬궁의 특징을 소개하는 것을 들었는데, 이 공법이 다른 기공과 많이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 노부인에게 책을 달라고 했는데 제목이 ‘전법륜(轉法輪)’이었다. 나도 12위안을 주고 한 권 샀다.

집에 와서 보니 예사롭지 않았다. 단번에 빠져들었고 우둔한 머리가 순식간에 트이는 듯했다. 책의 모든 구절이 바른 이치였고 좋은 사람이 되도록 가르쳤으며, 내가 생각하는 인간의 도리와 일치했다. 그때부터 나는 대법 수련의 길에 들어섰다.

1. 사부님 믿으니 기적 나타나

처음 파룬따파 수련을 시작했을 때 우리 직장은 수익이 좋지 않아 임금을 주지 못했다. 나는 거의 2년간 은퇴(실업) 상태였고, 작은 사업을 했지만 실적이 없어 생활이 몹시 어려웠다. 동서가 의류 사업을 하며 우한(武漢)에 물건을 사러 다녔는데, 어려움이 생기면 나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우한의 여름은 화로 같았지만 우리는 돈을 아끼려고 작은 침대 하나에 함께 누워 몸조차 뒤척일 수 없었다. 며칠 동안 배가 몹시 아팠지만 억지로 참으며 불평하지 않았다.

우한에서 돌아오니 복통이 더 심해졌다. 밤에는 칼로 찌르는 듯 아파 잠을 이루지 못했고 온몸에 땀이 흘렀다. 하지만 나는 병이 없으니 충분히 아프면 나아질 거라 생각했다.

아내가 가부좌를 하라고 해서 다리를 꼬고 앉았는데, 처음 해보는 터라 극심한 통증이 왔다. 배가 아픈지 다리가 아픈지 구분도 안 됐고, 땀이 쉴 새 없이 흘러 옷이 흠뻑 젖었다. 그렇게 일분일초를 참으며 버텼다. 어느새 천천히 마비된 듯 감각이 없어지더니 혼미해져 잠든 것 같았다.

깨어나 보니 아직도 가부좌를 하고 있어 놀랐다. 천천히 일어나 화장실에 갔더니 뜻밖에 소변에서 모서리가 있는 결정 모양의 딱딱한 알갱이 두 개가 나왔다. 하나는 메주콩만 하고 다른 하나는 녹두 크기였다. 문득 어릴 때 요로결석으로 입원했던 기억이 났다. 가부좌가 뜻밖에 결석 배출에 도움이 된 것이다. 이는 사부님께서 내 몸을 정화해주신 것이며 파룬따파의 신기함을 보여준 것이었다.

사부님의 대법은 진실하고 거짓이 없으며 말씀대로 이뤄진다. 우리가 진심으로 수련하면 사부님께서 정말로 보살펴주신다. 사부님이 구해주시지 않았다면 병원에 가서 수술을 받았을 것이고, 돈은 둘째 치고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사부님께서는 어릴 적부터 앓던 고질병인 요로결석을 제거해 주시고 큰 업 하나를 없애주셨다. 사부님, 감사합니다!

사부님께서는 병을 치료해주시고 업을 없애주셨을 뿐 아니라 나를 진정한 수련인으로 만들어주셨고 운명도 바꿔주셨다.

대법을 얻은 지 1년도 채 되지 않아 우연한 기회에 친척의 도움으로 새 직장을 얻게 됐다. 2년 넘게 실업자였던 내가 다시 일자리를 갖게 된 것이다. 이 귀중한 기회가 대법 사부님의 안배임을 알았기에 더욱 소중히 여겼다. 직장에서 수련인의 표준을 지키며 기술을 계속 향상시켰고 맡은 일에 진지하고 책임감 있게 임했다. 그 결과 상사의 인정을 받아 얼마 지나지 않아 간부로 발탁됐다.

나는 사부님 말씀을 따르며 큰 확신을 갖고 사부님께서 안배하신 수련의 길을 계속 걸어갔다.

2. 변하는 정세 속에서 꿋꿋이 수련하다

1999년 7월 20일, 장쩌민 정권이 파룬궁에 대한 피비린내 나는 탄압을 시작하고 대법제자들을 박해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는 동요하지 않고 계속해서 법공부와 연공을 했다. 시간 날 때마다 현장 노동자들과 농민공들에게 대법 진상을 알리고 중공 악당이 사람들 머릿속에 주입한 독소를 제거했다. 그들에게 대법은 사람들이 마음을 닦아 좋은 사람이 되도록 가르친다는 것과 내가 직접 경험한 대법의 신기함을 알렸다. 또한 진선인(真·善·忍)의 기준에 따라 살고 일하려 노력했으며, 대법 수련자가 세상에서 가장 좋은 사람임을 실제 행동으로 증명했다.

타지에서 일하며 자주 이사를 다녀 수련 환경이 없어 늘 혼자 수련하는 상태였다. 그래서 직장에서 매일 꾸준히 법공부를 하고 여러 가지 방식으로 진상을 알렸으며, 세 가지 일도 업무에 녹여 넣으려 노력했다.

탈당 물결이 일어났을 때 나는 직장의 유리한 조건을 이용해 ‘공산당에 대한 9가지 평론(9평 공산당)’을 인쇄하고 직접 배포했다. 한번은 ‘9평’을 현 위원회 게시판에 붙이다 나쁜 사람에게 발각돼 사무실까지 미행당했다. 아주 위험한 상황이었지만 사부님의 보호 아래 무사히 벗어났다. 그들은 내 정보를 알아내지 못했고 난관을 넘길 수 있었다.

이후에 타지에서도 사부님의 안배로 모르던 수련생을 만나 함께 자료를 배포하며 사람들을 구할 수 있었다. 대규모로 자료를 배포할 기회도 얻어 그 지역의 중생들을 구했다. 일터가 바뀔 때마다 사람을 구하는 자료도 함께 배포했고, 제한된 조건 속에서도 내가 해야 할 세 가지 일에 최선을 다했다.

3. 처음 방문한 베이징에서 청원에 도전하다

2006년 봄, 아내가 사악한 세력에 납치돼 박해받았고 아이들도 연루되어 학교에서 불이익을 당했다. 나는 불법 감금된 아내를 구하기 위해 외지에서 돌아와 그녀의 행방을 찾아 곳곳을 뛰어다녔다. 당시 해외 대법제자들이 중국에서 파룬궁수련생들이 생체 장기적출을 당하고 있다는 소식을 폭로했는데, 그때 아내가 납치당하니 가족과 주변 수련생들이 특히 큰 압박을 받았다. 아내의 행방을 알 수 없어 내 음식과 거처도 더욱 불안정해졌다. 나는 아내를 구하기 위해 베이징으로 가서 청원하기로 결심했다.

당시 주변 수련생들은 모두 내가 가는 것을 반대했다. “지금 가면 너무 위험해요. 사악이 너무 악독한데 당신 장기를 적출하면 어떻게 해요?”, “아이와 노인은 어떻게 하고요? 누가 돌보겠어요?” 등의 말을 했고, 생체 장기적출 관련 CD를 보여주며 내가 청원하러 가는 것을 말리려 했다. 기차역에서도 나를 막아서며 가지 못하게 했다. 나는 그들에게 말했다. “저는 단지 대법을 대신해 공정한 말을 하러 가는 겁니다. 대법제자는 좋은 사람이니 제 아내를 집으로 돌려보내 달라고 할 뿐입니다. 지금 제 아내가 어디에 갇혀 있는지도 모르고 생사조차 알 수 없는데, 제가 어떻게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있겠어요? 걱정하지 마세요. 사부님의 보호가 있으니 누구도 저를 해칠 수 없습니다. 누가 감히 제 장기를 적출하려 든다면 저는 웃으며 ‘고맙습니다!’라고 하겠습니다.” 수련생들은 내가 모든 것을 내려놓고 결심을 굳혔음을 보고 더 이상 말리지 않았다.

나는 생사를 초월하고 당당하게 베이징행 열차에 올랐다. 베이징에 도착해 청원자들을 따라 중난하이 청원사무소 대문으로 들어갔다. 그 순간 마치 귀신의 문을 들어선 것 같았다. 머리가 긴장되고 온몸의 털이 곧두서는 듯했다. 다른 공간의 사악한 것들이 호시탐탐 노리는 듯했고, 보이지 않는 압박감에 숨이 막힐 것 같았다. 오기 전에 봤던 CD의 장면들이 눈앞에 떠올라 마음이 떨리고 두려움이 극에 달했다. 하지만 곧 마음을 다잡았다. ‘내가 왜 왔지? 나는 대법제자이고, 아내가 불법 감금됐으니 진상을 알려야 해. 진상만이 그녀를 집으로 돌아오게 할 수 있어.’ 그렇게 기다렸다. 접견실에서는 한 명씩 이름을 불러 접견했다. 대부분 사전에 예약하고 등록한 사람들이었고, 등록하지 않은 사람들도 많이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예약도 등록도 하지 않았기에 인내심을 갖고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오후가 되자 차가 한 대 와서 호명되지 않은 사람들을 등록하고 사진을 찍은 후 차에 태워 먼 곳으로 데려갔다. 그리고 길가에 내려주고는 떠나버렸다.

첫 베이징 청원이 이렇게 끝났다. 비록 접견도 받지 못하고 진상도 알리지 못했지만, 가장 큰 수확은 두려움을 내려놓고 생사의 관문을 넘었다는 것이었다. 헛된 여정은 아니었다.

4. 두 번째 방문한 베이징에서 진상을 알리다

베이징에서 돌아온 후 나는 계속 법공부를 하며 안으로 찾았다. 많은 법공부를 통해 대법이 나에게 방향을 제시해주었고 사부님께서 거대한 힘을 북돋아 주셨다. 나는 짐을 싸고 큰 흰색 조끼를 샀다. 앞면에는 검은 펜으로 “파룬따파는 좋습니다!”라고 쓰고 뒷면에는 “탈당하여 평안을 보존하세요!”라고 썼다. 대법 서적 몇 권도 넣고 두 번째로 베이징행 열차에 올랐다.

2006년 7월 1일, 한여름 불볕더위가 톈안먼 광장을 달궜다. 이번엔 중난하이 청원사무소에 가지 않고 곧바로 톈안먼 광장으로 갔다. 작은 기념품을 파는 여성에게 청원할 곳을 물었더니 그녀가 무슨 청원이냐고 물었다.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제 아내가 파룬궁을 수련한다는 이유로 성의 610 사무실(파룬궁 탄압기구)에 잡혀갔습니다. 아내는 좋은 사람인데 왜 610 사무실이 좋은 사람을 잡아가는지 물으러 왔습니다.”

그녀는 톈안먼 광장의 순찰 경찰을 불렀고, 경찰은 내 가방을 검사해 “파룬따파는 좋습니다!”, “탈당하여 평안을 보존하세요!” 문구가 적힌 흰색 조끼와 대법 서적을 발견했다. 그들은 날 차에 태워 흰색 조끼와 대법 책을 들고 있는 내 사진을 찍었다.

그때 몇몇 기자들도 내 사진을 찍었다. 나는 그들에게 말했다. “제가 여기 온 이유는 우리 지역 610 사무실이 파룬궁을 수련하는 좋은 사람들을 잡아가고, 어디에 가두었는지 가족에게 알리지도 않아서입니다. 제 아내를 찾을 수 없어 정부에 사람을 찾으러 왔습니다.”

나는 또 말했다. “우리 가족 세 명 모두 파룬궁을 수련합니다. 우리는 ‘진선인’ 가족입니다.”

말을 마치자 차가 그들은 나를 첸먼 파출소로 데려갔고 책임자로 보이는 당직 경찰이 나를 맞이했다. 그가 말했다. “이런 물건들을 가지고 톈안먼에 온 데는 이유가 있겠죠?” 나는 대답했다. “정부가 왜 좋은 사람을 잡아가는지 묻고 싶었습니다. 제 아내는 우수한 초등학교 교사로, 30년간 성실히 가르치고 남편과 아이를 돌보며 노인을 공경했습니다. 파룬궁 수련으로 건강해지고 좋은 사람이 됐다는 이유로 잡혀갔습니다. 아내에게 무슨 잘못이 있습니까? 지금 어디에 갇혀 있고 생사는 어떤지 모릅니다. 남편으로서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는 “혼자 와서 청원해봐야 큰 효과가 없을 텐데 헛수고 아닙니까?”라고 말했다. 내가 답했다. “어떻게 헛수고겠습니까? 저는 진상을 알리러 왔습니다. ‘파룬따파는 좋습니다’라는 것을 당신 한 사람이라도 이해하고, 파룬궁수련자들이 모두 좋은 사람이라는 걸 알고 좋은 사람을 박해하는 일에 가담하지 않게 된다면, 제게는 의미 있는 일이고 헛되이 온 게 아닙니다.”

그때 그가 갑자기 책상에 엎드렸다. 한참 후에 고개를 들었는데 눈에 눈물이 고여 있었다. 나도 매우 감동했다. 아마도 내 선한 마음이 그를 감동시켰고 그의 명백한 면이 깨어난 것 같았다. 나는 사부님의 도움에 깊이 감사드렸고 눈물이 흘러내렸다. 이번에 헛되이 오지 않았다. 한 생명이 깨어나 대법 진상을 알게 되었으니 헛된 여정이 아니었다!

그는 전화를 들어 우리 성(省)의 610 사무실에 전화를 걸어 내 아내의 정보를 물었다. 상대방이 그런 사람이 없다고 대답하자 그는 크게 화를 내며 곧바로 성장 사무실로 전화를 걸었다. “610 사무실 사건 담당자들이 어떻게 일하는 거요? 사람을 잡아놓고 행방을 모른다니, 어떻게 된 일이오? 남편이 톈안먼 광장에 와서 진상을 알리고 사람을 찾고 있소. 빨리 찾아서 즉시 답변하시오!”

그는 전화를 끊고 나를 위로하며 말했다. “곧 답변이 올 거예요. 걱정하지 마세요. 혼자 오셨고 별다른 사회적 영향도 없었으니 처벌 면제 서류를 써드리겠습니다. 이걸 가지고 돌아가세요.”

잠시 후 답변이 왔는데, 내 아내가 현재 우리 성의 노동수용소에 있다고 했다. 그는 이어서 베이징에 주재하는 우리 성 사무소의 접견소 사람과 연락해 나를 우리 성 사무소 초대소로 보냈다. 다음 날 우리 직장 공안처에서 차를 보내 날 베이징에서 데려갔다.

직장 공안처로 돌아오니, 내가 이번에 베이징에 간 것 때문에 직장에 큰 문제(중공 악당이 직장에 압력을 가함)를 일으켰다며 공안처 간부들이 날 비난했다. 그들은 나에게 ‘보증서’를 쓰라며 압력을 가했다. 나는 “뭘 보증하라는 거죠? 앞으로 좋은 사람이 되지 말고 나쁜 사람이 되겠다고 보증하라는 건가요?”라고 말했다. 기록하던 말단 경찰이 눈을 부릅뜨고 화를 내며 말했다. “안 쓰면 호랑이 의자에 앉힐 거야!” 나는 벌떡 일어서며 말했다. “당신이 날 호랑이 의자에 앉히는 걸 우리 사부님은 용납하지 않으실 겁니다!” 그 경찰은 즉시 말투를 부드럽게 바꾸며 연달아 말했다. “당신 사부님은 대단하시군요! 당신 사부님은 대단하세요!”

나는 그 일을 통해 대법 사부님의 위엄을 직접 목격하게 됐다. 사실 사부님께서는 항상 곁에서 나를 지켜주시고 보호해주신다! 내가 사부님과 법을 굳게 믿기만 하면 위기가 닥쳤을 때 사부님께서 조치를 취하셔서 경찰 뒤에 있는 사악을 단번에 제거하실 것이고, 즉시 위험이 행운으로 바뀔 것이다.

나중에 내가 깊이 있게 진상을 알렸고, 게다가 내가 진상을 아는 톈안먼 광장 당직 경찰로부터 받은 처벌 면제 서류를 가지고 있으니 그들은 날 어떻게 하지 못하고 직장으로 돌려보내 정상적으로 근무하게 했다.

두 차례의 베이징 청원에서 사부님의 보살핌 덕분에 대법의 위엄을 실증했고 대법의 진상을 알렸다. 비록 아내는 구해내지 못했지만 다른 공간에서 대법제자를 박해하던 사악한 귀신들을 해체하며 세간의 악인들을 놀라서 떨게 했고, 검은 소굴에 있던 아내 수련생에 대한 압력을 감소시켜 더는 사악한 경찰이 동료 수련생에게 감히 함부로 악행을 저지르지 못하게 했다. 아내는 별다른 박해를 받지 않고 곧바로 출소해 집으로 돌아왔다.

5. 심성을 닦고 중생을 구하다

베이징에 가서 청원하고 직장으로 돌아온 후, 내가 직장의 간부들에게 많은 곤란을 겪게 했음에도 나의 인기는 예상과 다르게 크게 높아져 있었다. 많은 사람이 나에게 엄지를 치켜세우며 은근히 칭찬했다. “장(張) 기사님은 용감하고 대단해요! 요즘 시기에 감히 목숨 걸고 베이징에 가서 아내의 억울함을 호소해 의리를 지키고 말을 실천하셨네요. 대장부예요!” 한 여직원은 이렇게 말했다. “저는 이런 남자를 찾아야 하는데, 지금은 너무 드물어서 등불을 들어도 찾기 힘들어요!”

사실 이 사람들은 대법제자의 도량이 얼마나 큰지를 모른다. 나는 단지 아내의 억울함을 호소하기 위해 베이징에 간 것이 아니며, 더 중요한 것은 사명이 있어서였다. 나는 사부님의 정법을 돕고, 박해에 맞서고, 세인을 구하기 위해 비로소 그렇게 한 것이었다!

평소에 직장 간부들에게 진상을 알리는 데 중점을 두었으므로 그들은 모두 대법을 깊이 인정했다. 일부 간부와 직원은 대법 서적인 ‘전법륜’도 읽었고, 진상을 알게 된 후 개인적으로 여러 가지 이익을 얻었으며, 모두가 비밀리에 나를 보호해주었다. 가끔 610 사무실과 공안처 등에서 소란을 피우는 전화가 와도 직장 간부들에게 차단됐다. 나는 스스로 비교적 여유로운 수련 환경을 만들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真(쩐)・善(싼)・忍(런)은 좋고 나쁜 사람을 가늠하는 유일한 표준이다.”(전법륜)

나는 이 표준을 적용해 행동하고 일했으므로 직장의 모든 사람이 날 좋은 사람이라고 했다. 연공인이고 대법과의 약속이 있기에 나는 술을 마시거나, 마작을 한 적이 없고, 여색을 멀리했다. 상사의 신임 덕분에 나는 아주 중요한 직책을 맡았고 억대의 자산을 관리하게 됐다. 크게는 항목에 필요한 철근과 시멘트부터 작게는 직원의 의복, 식품, 주거, 교통까지 모든 것이 내 손을 거쳤다. 내가 마음을 써서 관리하니 장부가 일목요연했고 모든 항목에 근거가 있었다. 업무 중에는 부지런하고 성실했으며 조금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상품 경제가 번영하고 물욕이 만연한 현실 속에서 수련인의 마음은 매 순간 시험을 받았다. 특히 건축자재의 판로를 확장하려는 판매원들은 끊임없이 주마등처럼 오고 갔다. 형형색색의 사람들이 온갖 방법으로 돈과 이익을 좇아 찾아왔는데, 영접할 겨를이 없었고, 판매 과정에 숨겨진 규칙과 수수료 등등도 있었다. 나는 속인과의 관계를 바로잡았고 돈으로 뇌물을 주든, 미녀로 유혹하든, 천 가지 묘책이 있어도 나에게는 일정한 규칙이 있었다.

만나는 것이 인연이고 사부님의 도움이 있었으므로 나는 대법 진상을 알리고 삼퇴(중공의 3대 조직인 공산당, 공청단, 소선대 탈퇴)를 권했다. 그들이 나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상황이라 나는 유리한 상황을 이용해 많은 사람을 구할 수 있는 장이 생긴 것이었다. 나의 ‘삼퇴’ 방법은 아주 간단했고 쉽고 자연스러우며 효과도 나쁘지 않았다.

우리 직장에서는 제품 구매를 항상 경쟁 입찰로 했는데, 판매자는 입찰만 하면 되며 낙찰 여부는 운명에 달려 있었고 대법에 대한 믿음의 정도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렇게 사람들의 마음을 변화시키고 생명을 구했으며 업계의 불건전한 풍토에서 본보기가 됐다.

한번은 방범문을 파는 한 청년이 와서는 맥이 빠진 듯 탄식을 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오랫동안 실적이 없어 생활비 지출이 어렵다고 했다. 최근에는 또 아내와 말다툼했는데 아내가 화를 내며 두 아이를 버리고 친정으로 갔다고 했다. 그는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어 도움을 청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자비심이 일어나 그를 깨우쳐 주면서 대법의 아름다움과 악당의 박해 진상을 알려주었다. 그는 충만한 지혜로 단번에 진상을 깨우쳤다. 삼퇴 후에 그는 수련을 하고 싶다고 했고, 나는 그에게 내 책을 빌려주면서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真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 아홉 자 진언을 늘 외우라고 당부했다.

그 청년은 집에 돌아가자마자 외우기 시작해 밤낮으로 멈추지 않고 큰소리로 외우는 바람에 이웃이 집으로 찾아와 자제를 요청하기도 했다. 그가 나에게 와서 이 이야기를 했을 때 내가 말했다. “그건 잘못된 거예요. 대법을 배워서 좋은 사람이 되면 항상 다른 사람을 생각해야죠.” 그가 연공도 배우려 해서 나는 그에게 ‘다섯 가지 공법’과 ‘설법’이 담긴 mp3를 주며 동작을 가르쳐주었고 그는 집으로 돌아갔다.

그의 회사 방범문은 입찰에서 떨어졌지만 그는 천 년에도 만나기 어려운 대법을 얻었다. 그는 좋은 사람이 되는 법을 배웠고 아내를 처가에서 데려왔다. 반년이 더 흐른 후, 청년은 차에 아내를 태우고 날 만나러 와서 신난 표정으로 말했다. “대법을 배워서 정말 좋고 우리 가족은 복을 받았습니다! 저는 최근에 수백만 위안의 큰 계약을 했습니다. 대법 사부님께 정말 감사드립니다!”

6. 세 번째 방문한 베이징에서 악령 제거

2015년, 아내는 다시 3년 6개월의 부당한 투옥을 당했다. 당시 중국 수련생들에 의한 ‘장쩌민 고소’의 큰 조류가 시작됐고, 나는 아내가 불법 감금되어 고소장을 쓸 수 없다고 생각했다. ‘장쩌민 고소’는 모든 중국 대법제자의 책임이었고 모두가 가능한 한 빨리 마귀 우두머리를 법으로 심판해 박해를 끝내기를 희망했다. 그것은 아내의 소원이었고 나는 그녀가 그것을 완수하도록 도와야 했다. 그 일념이 생기자 사부님께서 날 도와주셨다.

2016년 말, 나는 물욕이 횡행하는 직책에서 더는 시달리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일찍 퇴직하고 싶어 여러 차례 직장에 요청하자 상사는 마침내 나의 은퇴에 동의했다. 집에 돌아와 가장 먼저 하고 싶었던 일은 베이징으로 가서 아내의 고소장을 최고검찰원과 최고법원에 보내는 것이었다. 어떻게 하면 아내의 ‘장쩌민 고소장’을 직접 두 기관에 전달할 수 있을까? 2016년 음력 12월, 설날을 불과 며칠 앞두고 나는 다시 베이징행 기차에 올랐다.

나는 동료 수련생이나 지인과 연락할 수 없었으므로 며칠 동안 베이징 거리를 헤맸고 ‘고소장’도 제출하지 않았다. 내가 직접 전달하면 틀림없이 위험에 처하거나 구금될 것이니 이번에는 이성적이고 적절하게 전달해야 했다. 하지만 섣달 30일이 되어도 일이 풀리지 않아 애간장이 탔다!

나는 베이징 기차역을 왔다 갔다 하며 집에 갈지, 아니면 기회를 기다릴지 생각했다. 기차는 차례차례 출발했고, 내가 여전히 결단을 내리지 못하는 사이에 새해 종소리가 울렸다. 나는 역 앞 광장의 한적한 곳을 찾아 가부좌를 하고 발정념을 시작했다. 따뜻한 기운 한 줄기가 단번에 전신으로 퍼져나갔고 나는 그것이 사부님께서 날 격려하시는 것임을 알았다.

베이징의 밤하늘을 바라보니 먹구름이 두껍게 덮이고, 찬바람 소리가 그치지 않는 가운데 옅은 눈이 내리고 있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만감이 교차하며 눈물이 쏟아진다. 섣달그믐날은 원래 전국 각지의 가족들이 모여 축하하는 날이지만, 장쩌민 귀신과 사악한 당의 탄압과 박해로 인해 우리 가족은 뿔뿔이 흩어져 산산조각이 나 있었다. 아이는 바다를 사이에 두고 멀리 떨어져 있어 집이 있어도 돌아올 수 없었다. 아내는 두 차례 납치되어 박해받았고 영어의 몸이었다. 나는 혼자서 아무도 모르는 구석에 외롭게 앉아 배고픔과 매서운 찬바람에 시달리고 있었다.

‘자비로우신 사부님! 사부님께서는 항상 제자들을 보살펴주시며 제가 시련을 당할 때마다 봄처럼 따뜻한 큰 손으로 저를 받쳐주시고 정념과 용기를 주셨습니다.’ 나는 수련 초기에 사부님께서 내 몸을 정화해주신 것을 생각했다. 사부님께서는 나에게 위기가 닥쳤을 때 위기를 해결해주셨고, 생생세세의 업력을 제거해주셨고, 한 차례 한 차례 나를 진흙 구덩이에서 끌어올려주셨다. 생각하니 슬픔도 괴로움도 잊혀졌고 찬바람과 흩날리는 눈도 점점 옅어졌다. 날이 밝아오자 내 마음은 다시 희망으로 가득 차게 됐다.

오랜 세월 동안 많은 대법제자가 오늘의 나와 같은 상황에 처했지만 그들은 낙담하지 않고 슬퍼하지 않았으며, 주저 없이 법을 실증하는 길을 걸었다. 나는 용기를 내어 다시 톈안먼 광장으로 갔다. 작은 기념품을 파는 노점상들이 많이 보였고 그녀들에게 내가 베이징에 며칠 동안 머물고 싶은데 저렴하게 숙식할 수 있는 곳이 어디에 있는지 물었다.

그들을 노점상으로만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다음날 그녀들은 근처에 호텔이 있는데 아침 식사를 준비할 요리사가 필요하다며 당신이 할 수 있겠느냐고 했다. 나는 두말없이 그곳으로 갔다. 하루 동안의 테스트 끝에 주인은 숙식과 월급 4천 위안으로 나와 고용 계약을 체결했다. 세상에 어찌 이런 우연이 있을까? 그것은 분명 사부님께서 대법을 실증하려는 나의 마음을 보시고 나에게 모든 것을 안배해주신 것이었다.

잠시 거처할 곳도 생기고 생활도 안정됐지만, 여기에서 일해 돈을 벌 생각을 어떻게 할 수 있겠는가?! 나에겐 아직 완수해야 할 큰일이 있었다. 나는 되도록 빨리 아내의 ‘장쩌민 고소장’을 두 기관에 보내야 했다. 나중에 안전상의 이유로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 3백 위안을 들여 현지인을 고용하고, 그의 신분증을 이용해 마침내 ‘고소장’을 두 기관에 보냈다. 당시 아내가 불법 구금 상태였기 때문에 감옥에서는 아내가 받은 접수증에 대해 통지하지 않았다.

나는 첸먼 호텔에서 사장과 6개월 계약을 맺었고 매달 나흘씩 휴가를 쓰며 고향으로 돌아가 불법 감금된 아내를 면회해 아내의 근황을 파악하고, 아내의 정념을 강화해주었다. 베이징에 돌아오면 매일 하는 일 외에도 톈안먼 광장을 대상으로 모든 정력을 집중해 발정념을 함으로써 사악한 세력과 악령을 제거했다.

20여 년 동안 곡절 많았던 수련의 길을 돌이켜보면, 세 번의 베이징 여정에 사부님의 보호가 있었던 것을 포함해 앞으로 나아가는 매 한걸음에 사부님의 세심한 안배가 있었다. 비록 다른 수련생을 구해내지 못했지만 다른 공간에서 대법제자를 박해하는 악령을 확실히 해체했고, 검은 소굴에 갇힌 수련생에 대한 박해의 압력을 완화시켰으며, 악인과 경찰을 두려워 떨게 했다.

우리가 대법제자의 가족으로서 모두가 걸어 나와 가족과 정의를 위해 목소리를 낼 수 있다고 상상해 보자. 그러면 가족에 대한 사악한 박해를 해체시킬 수 있고, 그렇게 많은 대법제자가 박해로 인해 불구가 되고, 미치고, 심지어 귀중한 생명을 잃지는 않을 것이다. 오늘날까지도 대법제자에 대한 악당의 박해는 계속되고 있다. 대법제자인 우리에게는 걸어 나와 정의를 지키고, 가족의 생명을 보호하며, 대법제자에 대한 잔혹한 박해를 하루빨리 종식시켜야 할 책임이 있다.

정법 시간이 얼마나 길든, 노정이 얼마나 멀든, 우리는 사부님의 정법 노정을 바짝 뒤따르며 세간에서 사부님의 활동을 도와드려야 한다. 사부님의 손을 꼭 잡고 앞으로 앞으로 걸어가자. 천국 정원의 대문으로 들어갈 때까지!

 

원문발표: 2024년 6월 28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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