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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대법제자 “수련의 길을 잘 걸어가자”

글/ 중국 청년 대법제자

[명혜망] 세월이 쏜살처럼 빠르게 지나갔습니다. 저는 사리를 분별하지 못하는 어린아이에서 16년간의 수련을 거쳐 이제 활기 넘치는 청년 대법제자가 됐습니다. 이 길을 사부님과 대법의 도움 아래 순조롭게 걸어왔고, 또 흔들림 없이 앞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사부님께서는 모든 수련생에게 각자 고유한 수련의 길을 안배해 주셨습니다.

1. 어린 제자가 수련의 문에 들어서다

집안의 연로하신 수련생 말씀으로는, 제가 기억도 못 할 때부터 수련생의 인도 하에 가부좌를 하고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를 외웠다고 합니다. 그때부터 이미 대법과 인연을 맺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사리를 분별할 나이가 되자 99년 7월 사악이 대법을 비방하고 중상한 것과 함께, 중공 악당의 끊임없는 거짓 선전과 주입으로 인해 저는 대법에 대해 극도로 편견을 갖게 됐고, 집안 수련생들도 잘 이해하지 못했으며, 심지어 대법에 관한 얘기만 들으면 고개를 돌리고 가버렸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대법에 대해 편견을 가진 저였지만, 2007년 초등학교를 졸업한 여름 우연한 기회에 수련의 길에 들어섰습니다.

어느 날 오후, 수련생들이 함께 법공부를 하고 있었는데, 연로하신 수련생께서 저에게도 《전법륜(轉法輪)》을 한 단락 읽어보라고 하셨습니다. 평소 같았으면 아마도 화를 내며 문을 쾅 닫고 나갔을 텐데 그때는 마치 어떤 힘이 제 마음속 편견을 깨뜨린 듯 조용히 앉아서 법공부를 시작했습니다. 한 단락, 두 단락, 세 단락… 이렇게 그날 법공부에 처음부터 끝까지 참여했습니다. 대법에 대한 편견도 그날 갑자기 사라진 것 같았습니다. 알고 보니 대법이 책에서 말하는 것은 사악한 당이 선전하는 것과는 전혀 달랐고, 제 편견은 오히려 책에서 말하는 ‘진선인(真·善·忍)’에 따라 어떻게 좋은 사람이 되는가로 대체됐습니다. 10여 년이 지난 오늘 그날 오후를 다시 생각해보니, 저는 사부님의 가지(加持)로 인해 평소와 달리 앉아서 법공부를 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사부님께서 저에게 주신 기연(機緣)이었습니다. 제 수련의 길이 시작된 것입니다.

그해 여름에 저는 수련생들의 도움과 감독 하에 《전법륜》과 설법 비디오를 공부했고, 5가지 공법도 배웠습니다. 가을 개학 후 저는 ‘진선인’의 기준에 따라 자신의 행동을 평가하고, 높은 기준으로 자신을 요구하는 수련인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학교는 사회에 물들어 많은 불량한 기풍이 만연해 있었고, 이는 아직 백지상태인 학생들에게 극도로 악영향을 미쳤습니다. 하지만 대법의 도움 아래 저는 여전히 좋고 나쁨을 구별할 수 있었고, 대부분 학생들처럼 대세를 따라 자포자기하지 않았습니다. 저라는 이 작은 새싹은 사부님의 보호 아래 늘 올바른 인생길에서, 더 나아가 수련의 길에서 전진했습니다. 일이 생기면 안으로 찾고, 친구들에게 양보하며, 작은 이익을 탐하지 않는 등 이런 처신의 원칙들이 대법의 가르침 속에서 제 내면에 스며들었습니다.

저는 수련에 입문할 때 시험도 겪었습니다. 어느 날 밤 법공부를 마치고 나가는 길을 뛰어가다가 앞에 있는 공사장 모래더미를 보지 못해 넘어져 뒤로 자빠졌고, 손바닥과 팔에서 피가 많이 났으며, 심지어 손에서 살점이 떨어져 나갔습니다. 하지만 당시에는 두렵지 않았고 가족 수련생들도 우리는 수련인이니 괜찮다고 격려해주셨습니다. 저는 《전법륜》에서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좋고 나쁨은 사람의 일념(一念)에서 나오며, 이 일념의 차이가 부동(不同)한 후과(後果)를 가져올 수도 있다”는 구절이 생각났습니다. 병원에 가서 간단히 상처를 씻고 붕대를 감은 후 가볍게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제가 수련을 시작한 후 얼마 되지 않아 저는 운 좋게도 꿈에서 사부님을 뵈었습니다. 꿈속에서 저는 땅에 뱀에 휘감겨 있었고 당황해서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이때 사부님께서 나타나셨는데 법상(法像)에서 본 것과 비슷한 부처님의 옷을 입고 계셨고, 발 아래에는 연꽃좌, 뒤에는 금빛 찬란한 광환이 있었습니다. 사부님께서는 손을 뻗어 저를 도와 이런 더러운 것들을 해소시켜 주셨고, 속인 중의 모든 집착을 버리라고 당부하셨습니다. 저는 제가 수련에 막 입문했기에 아직 많은 집착심을 버리지 못했고, 앞으로도 속인사회의 큰 물감통에서 형형색색의 유혹에 직면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저 자신은 법의 기준을 엄격히 따라 자신의 언행을 요구해야 하며 “마음 닦고 욕구 끊어 집착을 버려야 한다”(홍음-누가 과감히 속인마음을 버릴 수 있으랴)는 것을 알았습니다.

고등학교에 다니면서 기숙사 생활을 시작했고 학습도 긴장되어 이전처럼 자주 단체로 법공부를 할 수 없었으며, 심지어 기숙사에서 법공부를 하는 것도 문제가 됐습니다. 고등학생 단체는 더욱 혼란해졌고 사회 풍조도 갈수록 난잡해졌습니다. 이런 배경에서 저는 점차 법공부 환경에서 멀어졌고 첫 학년을 그렇게 허비했습니다. 2학년에 새로운 학교로 전학을 갔는데 학습 분위기와 교풍이 크게 바뀌었습니다. 저는 이것이 사부님께서 제게 만들어주신 수련 조건임을 알았고, 눈앞의 환경을 더욱 소중히 여겼습니다. 주말에 집에 돌아가면 시간을 내어 대법 시 한두 편을 외웠고, 학교에서도 작은 《홍음》 책을 가져가 매일 밤 자기 전에 손전등으로 공부하고 외웠습니다. 그때의 저는 법이 마음속에 있음을 느꼈고, 비록 법공부 소그룹에서 멀어졌지만 사부님께서는 항상 곁에 계셨습니다. 대법의 가지 아래 제 학습도 비약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해 저는 거의 매번 시험마다 학년 순위가 100등씩 올랐습니다. 저는 이것이 수련 상태가 좋아서 얻은 ‘부산물’임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한동안 매우 바람이 많이 불었던 때가 기억납니다. 여름이라 날씨가 무더웠는데, 창가에 앉은 우리 학생들은 바람이 불어 머리가 아프다고 느꼈고, 안쪽에 앉은 학생들은 창문을 닫으면 시원한 바람을 쐬지 못한다고 불평했습니다. 일이 생기면 다른 사람을 고려한다는 원칙에 따라 저는 여전히 편의를 반 친구들에게 양보하고 저 자신은 모자를 준비했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계속 정면에서 부는 바람을 육체적으로 견디기 힘들 뿐만 아니라 심리적으로도 초조함을 느꼈고, 그 기간에는 수업을 거의 듣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여전히 일이 생기면 자신을 돌아보고, 수련인은 참음을 해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중간고사 때까지 지냈습니다. 원래는 오랫동안 상태가 좋지 않아 성적이 크게 떨어질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뜻밖에도 각 과목 성적이 모두 아주 우수했고 순위도 크게 올랐습니다. 그 순간 저는 비로소 수련인이 자신의 본분을 다하고 교란을 인정하지 않으면 사실 아무것도 지체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저는 이것 또한 자신의 몸으로 대법을 실증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시험이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모두가 약속이나 한 듯이 창문을 작게 열었고, 저도 더 이상 바람 때문에 머리가 아프지 않았습니다. 저는 이 관문을 통과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비록 다소 길었지만 시험을 견뎌냈습니다.

2. 청년기에 들어서며 연이은 진학 시험에 직면하다

대학에 진학해 고향을 떠나 타지에서 공부하게 됐는데, 조건의 제한으로 연공을 할 수 없어서 전자책을 갖고 다니며 법공부를 했습니다. 이 기간에도 자주 시험을 겪었고 저는 편안하고 안락한 것은 수련이 아님을 알고 있었습니다. 대학 입학 이후 단계에서는 시험이 한 번도 중단된 적이 없는 것 같았습니다. 저는 원래 학습 능력이 특별히 뛰어난 학생은 아니었지만 대법의 가지 아래에서 국가 장학금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진학 관문’의 시험도 통과해 석사와 박사 학위를 공부할 기회를 얻었습니다. 아마도 이것이 제가 겪어야 할 단련 과정일 것입니다. 다음은 제가 연이어 ‘진학 관문’을 통과한 체득을 여러분과 나누고 싶습니다.

우리 전공은 학교 요구에 따라 학부 마지막 학년에 기관에 가서 실습을 해야 했는데, 이 시기에 대학원 시험도 준비해야 했습니다. 각 실습지의 업무 강도가 서로 달랐기 때문에 실습지를 선택하는 것은 대학원에 합격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적 여유를 가질 수 있는지를 크게 좌우했습니다. 모두가 학교에서 가장 가까운 A와 B 두 곳 기관에 남기를 희망했지만 인원은 제한되어 있었습니다. 이를 위해 많은 동기들이 여기저기 인맥을 알아봤고 심지어 어떤 동기는 좋은 실습지에 가기 위해 학장의 운전기사까지 찾아갔습니다. 당시 제 마음가짐도 동기들의 동요와 대학원 시험의 압력으로 불안했지만, 계속된 법공부를 통해 점차 마음을 안정시켰습니다. 모든 것은 사부님께서 안배하신 것이고, 내 것이라면 잃지 않을 것이며 내 것이 아니라면 쟁취해도 얻을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저는 담담하게 실습 기관을 지원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결과가 공시됐고 저는 순조롭게 A 기관에 배정되어 실습을 하게 됐습니다. 극적인 것은 많은 동기들이 모두 B 기관을 지원했고 심지어 많은 동기들이 더 먼 실습지를 지원했다는 것입니다. 모두가 1차 지원에서 떨어져 더 먼 곳으로 배정될까 두려워 A 기관을 지원할 엄두를 못 냈고, 저는 그렇게 A 기관에 들어갔습니다. 하지만 저는 법의 요구에 따라 행동해야만 수련의 길을 바르게 걸을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이후 일이 순조롭게 진행되어 저는 원하던 대로 대학원에 합격했습니다. 되돌아보면 만약 당시에도 속인사회의 타락한 기준으로 자신을 요구하고 속인처럼 인맥을 찾았다면, 아마도 어떤 동기들처럼 비교적 좋지 않은 기관으로 배치되어 진학 결과가 뜻대로 되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일념(一念)의 차이가 가져오는 결과는 크게 다릅니다.

대학원 졸업을 앞두고 저는 계속해서 박사과정을 공부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러나 이 관문은 더욱 어려운 것 같았습니다. 마치 큰 산이 가슴을 누르는 듯했고, 게다가 시간이 촉박하여 법공부를 적게 하니 혼란과 불안감이 더욱 밀려왔습니다. 그 시기에는 정말로 “고비마다 반드시 넘어야 하는데 곳곳마다 마(魔)로다”(홍음-마음 고생)라고 느꼈습니다. 지도교수를 연락하고 학교에 지원하는 과정에서 심각한 문제가 있는 선생님을 만났는데, 이는 나중에야 알게 됐습니다. 원래는 제 성적과 지원한 지도교수의 인정으로 볼 때 합격은 거의 확실한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이상하게도 면접 때 심사위원이 전문적인 질문을 하지 않고 대충 끝내버려 결과적으로 합격하지 못했습니다. 당시에는 왜 그런지 의아했지만 나중에야 이것이 제게 안배된 길이 아니었음을 알게 됐습니다. 아마도 어딘가에서 사부님께서 이 난관을 막아주셨을 것입니다.

이후 학교 지원 과정에서 대부분 지도교수들은 자신의 학생들도 계속 공부해야 해서 여분의 자리가 없다고 답변했습니다. 여러 번 시도했지만 모두 실패로 끝나자 저는 매우 혼란스럽고 불안했습니다. 마치 진학 실패를 받아들일 수 없는 것 같았습니다. 그 시기에 자주 가족 수련생들과 의견을 교환했고, 수련생들과의 교류를 통해 점차 진학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았습니다. 길은 모두 사부님께서 안배하신 것이니 자신이 바르게 걸어가기만 하면 됩니다. 어디에 있든 자신이 맺어야 할 인연과 구해야 할 중생이 있으며, 천만년의 기다림은 이 큰 연극 속의 개인적 명예와 이익을 위한 것이 아니라 서약을 이행하기 위한 것임을 알았습니다.

더 이상 집착하지 않게 되면서 마치 국면이 갑자기 열린 것 같았고, 더 이상 진학 문제에 연연하지 않게 됐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저 순리대로 학교를 지원하고 시험을 준비했습니다. 법에 따라 행동하면 결과가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운명은 신기한 것입니다. 그것을 생각하지 않을 때 오히려 그것이 찾아오기도 합니다. 저는 최종적으로 어떤 명문대학의 희망하던 지도교수님께 합격했습니다! 하지만 박사 합격 통지서를 받고도 속인들의 흥분이나 고비를 넘긴 것 같은 안도감은 없었습니다. 대신 평온한 마음가짐이 그 자리를 대신했습니다. 저는 이것이 법의 요구에 따라 행동해야만 얻을 수 있는 결과라는 것을 알았고, 또 한 단계 승화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다시 돌아보면 학업의 길에서 겪은 장면들, 아마도 이것이 사부님께서 제게 안배하신 수련의 길이고, 진학의 난관들을 통해 저를 시험해 소업(消業)하고 제고하게 하신 것 같습니다.

3. 학습과 업무 중 대법의 신기함이 드러나다

대법의 신기함은 어디에나 있습니다. 2023년, 제가 있는 층에 이미 많은 코로나 환자들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오전, 한 사무실을 지나갈 때 안에 있는 사람이 계속 급하게 기침했고 그 후 제 목에도 코로나 증상이 있는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제 정념은 매우 강해서 첫 번째 생각은 그것을 부정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대법제자이고 중공 바이러스는 중공 악당을 도태시키러 온 것이니 저와는 관계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평소처럼 해야 할 일을 했습니다. 그런데 사탕을 먹다가 갑자기 목이 칼칼해지면서 기침과 구토가 함께 나와 한동안 괴로웠습니다. 저는 사부님께서 제 신체를 조절해 주시는 것을 알았고, 아마도 다른 공간의 조절이 표면으로 반영되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저는 또한 점심 휴식 시간을 이용해 제1장 공법을 연마했고, 여유 시간을 이용해 정념을 발했습니다. 오후가 되자 많이 좋아졌고 다음 날에는 아무 느낌이 없었으며, 많은 사람이 겪는 2차, 심지어 3차 감염의 심각한 고열 증상도 없었습니다.

사부님께서 저를 보호해주신 예는 아직 많이 있습니다. 작년 여름에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주차장 입구를 지날 때 안에서 갑자기 승용차가 나왔는데, 만나는 순간 속도를 줄이지 않고 곧장 저를 들이받아 저와 자전거를 땅에 쓰러뜨렸습니다. 사부님께서 《전법륜》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는 흔히 이런 일들에 부닥쳐도 모두 두려워하지 않는데”, 저도 그때 두렵지 않았고 심지어 첫 반응은 제 자전거가 상대방 승용차 도색을 긁지는 않았을까, 얼마나 보상해야 할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때 차에서 운전자가 내렸는데 절뚝거리며 저에게 다가와 약간 당황한 듯이 제가 다치지 않았는지 물었고, 자신이 통풍으로 브레이크를 밟지 못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저는 그를 책망하지 않고 옷에 묻은 흙을 털며 괜찮다고 말했고, 그의 승용차는 괜찮은지 물어보는 것도 잊지 않았습니다. 운전자는 미안해하며 사람이 다치지 않아 다행이라고 말하며 차는 괜찮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저는 아무 탈 없이 그를 보냈습니다. 다만 나중에 생각해보니 그때 운전자에게 진상을 알렸다면 대법을 더욱 실증할 수 있었을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저는 시간을 기준으로 제 수련 길에 대한 체득을 서술했습니다. 수련생 여러분, 특히 아직 학교에 다니고 있는 청년 수련자들과 교류하고 함께 정진하고 싶습니다. 저는 제가 수련 중에 아직 많은 부족함이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질투심, 놀고 싶어 하는 마음, 색욕심, 좌절감 등 많은 집착심을 아직 버리지 못했습니다. 진상을 알리고 사람을 구하는 면에서도 여전히 비교적 부족합니다. 교류를 통해 수련생 여러분의 법리에 대한 깨달음과 세 가지 일을 잘하는 경험을 더 많이 들을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또한 이 기회를 빌어 저 자신과 여러 수련생 여러분들이 더욱 잘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개인의 수련 층차가 한정되어 있어 부족한 점이 있다면 수련생 여러분의 자비로운 지적을 부탁드립니다.

 

원문발표: 2024년 6월 21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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