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하게 수련하는 것이 시련을 벗어나는 유일한 길’을 읽은 소감
글/ 중국 대법제자
[명혜망] 2024년 6월 22일 올해 명혜망 ‘경축 5.13’ 원고로 올라온 ‘진정하게 수련하는 것이 시련을 벗어나는 유일한 길‘이라는 글을 읽고 감동했습니다. 필자의 솔직함, 수련에 대한 갈망과 수련의 고난에 깊이 감명했습니다. 어떻게 수련하고 견지해도 결국엔 늘 믿음에서 의심과 원망으로, 마지막엔 포기하기까지 하는 이런 괴이한 순환에 빠지게 되는 걸까요? 제 수련 과정을 돌이켜 보며 약간의 생각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실제 상황은 그렇지 않을 수도 있고, 잘못된 부분이 있다면 널리 이해해주시길 바랍니다.
“저는 천목으로 무언가를 본 적이 없고, 심지어 연공으로 낫는 ‘난치병’도 하나도 없었습니다. 오랫동안 이런 상태였기에 믿을 것인지, 믿지 말 것인지 하는 문제가 늘 제 앞에 놓여 있었는데, 이것이 바로 보이지 않는 어려움이었습니다.”(진정하게 수련하는 것이 시련을 벗어나는 유일한 길)
우리가 대법에 들어설 때, 천고에 만나기 어려운 우주 대법을 받을 자격이 있으려면, 대법 중에서 수련할 자격이 있으려면 어떤 마음가짐을 가져야 할까요? 제 생각에 대법을 대할 때는 순수하고 경건하며 겸손한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절대 떠보는 마음이나 체험하고 느끼려는 마음으로 법을 얻어선 안 됩니다. 떠보는 마음을 갖고 온다면 대법 수련 중에서 사람마음과 사람의 이치(혹은 다른 법문의 것들)로 만나는 모든 것을 가늠하게 됩니다. 설령 대법의 요구에 따라 연공, 법공부, 법 암기, 안으로 찾기, 심성 제고 등을 했더라도 내심 깊은 곳에선 이것들이 모두 진위를 판단 내리기 위한 것이 됩니다. 대법이 과연 병을 제거할 수 있을까? 대법 수련이 정말 복을 가져다줄까? 대법 수련을 하면 신기한 광경이나 기적이 정말 나타날까? 이런 것들로 판단해 계속 수련할 만한 가치가 있는지 결정하려 들겠지요.
이런 마음가짐이 일반적인 소도(小道)에는 통할지 모르나 대법에 대해선 매우 불경하고 더러운 마음입니다. 이런 태도로 법을 얻으려 한다면 법 얻는 과정의 신성함, 오랫동안 고대하던 법을 얻은 기쁨, 신체가 정화되는 오묘함과 감사함, 대법의 박대(博大)한 법리로 깨끗이 씻긴 후 순간적으로 달라진 세계관에서 오는 충격을 느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사부님께서 이 필자를 위해 신체를 정화해주실 때, 사람마음의 가로막음으로 과정이 늦춰지자 오히려 이를 ‘성가신’ 일로 여겨 믿음이 크게 떨어져 포기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왜 평범한 사람이라도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를 진심으로 염하기만 해도 건강한 몸과 복을 받을 수 있을까요? 그것은 그가 내심에서 우러나온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저에게 사부님께서 평론하신 글 ‘금부처(金佛)’에 나오는 이야기를 떠올리게 합니다. 두 수행자가 서쪽으로 가서 부처를 만났는데, 부처는 펄펄 끓는 물이 가득 찬 커다란 가마를 가리키며 그들에게 뛰어들 용기가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두 사람은 매우 망설였고 먼저 백정의 진심(眞心)을 던져 넣어 시험해 보기로 했습니다. 그랬더니 그것이 금부처로 변했습니다. 이것을 본 두 사람도 곧바로 뛰어들었는데 튀김 두 개로 변하고 말았습니다. 다른 경지가 다른 결과를 낳은 것이지요. ‘보고 나서야 믿는다’는 것은 사람의 이치입니다. 수련에선 믿음과 깨달음이 먼저입니다. 사람마음으로 대법을 가늠하면 영원히 진상을 보지 못하고 결국엔 장님 코끼리 만지듯, 물에 비친 달 잡으려 하듯 헛수고만 하고 말 것입니다.
올해 ‘경축 5.13’ 원고에는 수련 8개월 된 서양인 신수련생의 ‘모든 것은 법을 얻기 위함이었다‘라는 글이 있었습니다. 수련을 대하는 신수련생의 순수한 마음가짐, 모든 것을 법으로 비춰보는 자세, 매번 교란과 시련, 유혹을 모두 자신의 득법(得法)과 신법(信法)에 대한 시험으로, 평범한 사람으로 남을지 수련자의 길을 갈지 선택하는 기회로 여기는 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고통스러운 일을 겪으면서 집착이 폭로되고 강화되어도 사부님과 대법에 대한 나의 믿음은 더욱 강해질 뿐”이라고 말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또 한 편의 노수련생이 쓴 병업의 생사관을 넘긴 체험담 ‘사부님께서 내 생명을 다시 한번 연장해주시다‘에서 그녀는 대법 수련을 시작한 후로는 법을 떠날 생각을 한 적이 없었습니다. 수련과정에서 이미 나은 유전성 난치병이 갑자기 ‘재발’하여 목숨을 앗아가려 할 때도, 그녀는 대법을 의심하지 않고 자신이 생생세세 빚어온 죄업과 위대하신 사부님께서 자신을 위해 감당하신 은혜를 떠올리며 안으로 찾고 자신을 바로잡았습니다. 극심한 고통 속에서도 법공부를 견지했고, 견디기 어려운 고난의 순간에도 ‘오늘 죽더라도 사부님의 대법을 품에 안고 당당하게 떠나겠다! 죽어도 후회하지 않겠다!’라는 생각뿐이었습니다. 법에 대한 경건하고도 확고한 이 일념이 그녀에게 고비를 차례차례 넘기고, 신체를 정화하며, 병마와 사신(死神)을 계속 이겨내게 했던 것입니다.
사존께서 ‘전법륜’에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진정한 수련은 수련생의 心性(씬씽)에 대한 요구도 높게 마련이다. 우리 여기에 앉아 있는 사람들은 대법(大法)을 배우러 온 것이다. 그렇다면 당신은 자신을 진정한 연공인(煉功人)으로 여기고 여기에 앉아 있어야 하며, 당신은 집착심을 버려야 한다. 당신이 각종 구하려는 목적을 품고 와서 공(功)을 배우고 대법(大法)을 배우려고 한다면, 당신은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법을 배우십시오. 대법은 당신의 의혹을 풀어줄 수 있습니다. ‘진정하게 수련하는 것이 시련을 벗어나는 유일한 길’이라는 글의 필자가 하루빨리 마음을 평온히 하고 법공부에 매진해 진정한 대법제자가 되기를 진심으로 희망합니다.
개인적인 인식이니 잘못된 부분이 있다면 자비롭게 지적해주시길 바랍니다.
원문발표: 2024년 6월 22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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