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 대법제자
[명혜망] 19년 전, 고향의 ‘610’(파룬궁 탄압기구) 직원들이 제 학교에 왔습니다. 그들의 목적은 두 가지였습니다. 하나는 저와 함께 휴가를 보내던 아내를 세뇌반에 참가시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제가 협조하지 않는다는 것을 제 직장에 알려 압박을 가하는 것이었습니다. 아내가 파룬궁을 수련하기 때문에 저는 고향에서 이미 아내의 직장 및 610과 여러 번 대면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는 정념이 부족해서 연이은 시련에 직면했을 때 모두 인간의 관념과 공산당 문화가 섞인 사고방식으로 처리하고 대응했습니다. 이러니 결과가 어땠을지 상상할 수 있으실 것입니다.
그전에는 아내가 파룬궁을 수련한다는 사실과 고향에서 일어난 일들을 직장에 알리지 않았습니다. 610 직원들의 갑작스러운 방문에 학과 정치위원은 매우 화가 났습니다. 그는 가장 문제가 없을 것 같았던 직원이 갑자기 이렇게 ‘큰 문제를 일으킬’ 줄은 몰랐습니다. 학과에서는 이 일로 여러 차례 회의를 열어 비판했고 제 당성(黨性)과 정치적 각성에 문제가 있다고 여겼습니다. 그때 저는 학과에서 선발되어 외부에서 박사 과정을 공부하고 있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학과 정치위원이 저에게 조언했습니다. “자신의 미래를 위해 아내와 이혼을 고려하세요.” 당시 상황은 마치 폭풍우가 오기 전 머리 위에서 휘몰아치는 먹구름 같았고, 점점 더 낮게 내려왔습니다. 온몸에 알 수 없는 거대한 압박감이 느껴졌습니다. 이상하게도 당시에는 그다지 두려움이나 공포를 느끼지 않았고, 어떤 힘이 내면 깊숙한 곳의 본성을 지키고 있다는 것을 희미하게 느꼈습니다. 그 힘은 눈앞에 다가오는 태산 같은 어둠에 맞서 필사적으로 저항하고 있었습니다. 어렴풋이 저는 인생의 중대한 선택을 해야 한다고 느꼈습니다.
조금씩 견디며 어느새 19년이 지나갔고 많은 일을 겪었습니다. 아내는 1999년 이전에 법을 얻고 수련을 시작했는데, 그때 저는 아직 수련을 시작하지 않았고 단지 가끔 그녀와 함께 대법 활동에 참여할 뿐이었습니다. 1999년 7월 중공(중국공산당)이 대법에 대한 불법적인 탄압과 사악한 박해를 시작한 후, 아내는 여러 차례 세뇌반에 보내졌습니다. 특히 610 직원들이 제 직장에 온 후에 그랬습니다. 한 수련생은 여러 차례 세뇌반에 갇힌 후 대법을 포기하고 불교에 빠졌는데 결과적으로 제 아내도 불교로 끌어들였습니다. 제가 박사 과정을 공부하는 동안 저는 불교를 약간 연구하긴 했지만 깊이 생각한 끝에 결국 대법 수련의 길로 들어서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때부터 인생에 나침반이 생겼고 무엇을 만나든 방향을 잃지 않게 됐습니다. 설령 잘못된 길로 가더라도 빨리 바른길로 돌아올 수 있게 됐습니다.
모든 대법제자에게 인생의 각종 상황은 사부님께서 마련해 주신 특별한 수련 환경입니다. 제가 자란 가정 환경은 좀 특별했습니다. 어머니는 제가 중학교 2학년 때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형이 한 명 더 있는데 태어날 때부터 건강이 좋지 않아 중학교를 졸업하고 더 이상 공부하지 않았습니다. 아버지는 나중에 새어머니를 맞이했고 새어머니는 자식이 없어서 여동생 한 명을 입양하셨습니다. 형은 정식 직업이 없어서 계속 부모님과 함께 살았습니다. 오랫동안 가족 관계가 매우 미묘했습니다. 이런 상황을 개선하고 싶었지만 마음은 있어도 힘이 부족했습니다. 장모님은 저 개인에 대해서는 의견이 없었지만 저희 가정에 대해서는 불만이셨습니다. 딸이 우리집에 시집가면 고생할 것이고 아이를 돌볼 사람이 없을 거라고 생각하셨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결혼하기도 전에 아내의 부모님이 돌아가셨습니다. 법을 배우고 수련한 후에야 인생의 모든 것이 전생에 쌓은 인연과 업력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부모님 연세가 많아지면서 효도하고 진상을 알려드리고 싶은 마음이 날로 커졌습니다. 그것이 그분들을 인생의 고통에서 벗어나게 할 수 있는 유일한 영약(靈藥)이기 때문입니다. 나중에 저는 스스로 직업을 선택해 고향에서 일자리를 찾아 부모님과 형과 함께 살았습니다. 이때 여동생은 이미 결혼해서 집을 나갔습니다. 가족들의 걱정을 덜기 위해 저는 그들에게 부모님의 재산을 한 푼도 갖지 않고 모두 형과 여동생에게 주겠다고 말했습니다. 집에서 진상을 알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첫째, 부모님과 형은 공산당 문화와 중공 거짓말의 영향을 깊이 받아 무신론자였습니다. 특히 새어머니는 중공의 부패한 일들을 알고 있어 매우 증오하셨지만 또한 거짓말에 깊이 속았습니다. 둘째, 아내가 고향에서 610에 의해 박해받은 일이 그분들에게 깊은 공포를 안겼고, 공산당에게 저항하는 것은 계란으로 바위치기라고 생각하며, 고생을 자초한다고 여기셨습니다.
재작년 연말, 중공의 3년 제로 코로나 정책이 비참하게 끝나고 아버지가 코로나에 감염돼 폐렴이 발생했습니다. 겨우 인맥을 동원해 병원에 입원시켰습니다. 중공 악당의 부패와 거짓말 때문에 많은 사람이 ‘중공 바이러스’와 그 합병증으로 사망했고, 약품도 부족해서 전 사회가 공포에 휩싸였습니다. 가족들은 먼저 몇몇 어른들의 조언을 듣고 비싼 값을 주고 ‘안궁우황환(安宮牛黃丸)’과 ‘알부빈’을 샀고, 나중에는 또 의사의 조언을 듣고 비싼 값을 주고 ‘아즈부딘(Azvudine)’을 샀습니다. 저는 의사에게 이 몇 가지 약을 써도 되는지 물었습니다. ‘안궁우황환’에 대해서는 의사가 답을 주지 않았고, ‘알부빈’과 ‘아즈부딘’에 대해서는 문제없을 거라고 했습니다. 저는 또 의사에게 물었습니다. “아즈부딘은 2상 임상시험만 했고 노인 대상 시험은 하지 않았으며, 효과가 알려지지 않았고 부작용도 적지 않지 않나요?” 아마도 이런 질문을 하는 사람이 거의 없어서인지 의사는 약간 놀라 잠시 멈칫하더니 대답했습니다. “국가 정부가 추천하고 많은 사람이 사용하고 있으니 효과가 있을 것이고 문제는 없을 겁니다.” 그래서 먼저 ‘안궁우황환’을 한 알 먹었는데 뇌졸중처럼 걷는 것이 더 불편해져서 즉시 중단했습니다.
병원에 며칠 입원하신 후 아버지는 전신에 알레르기가 생겨 붉은 발진이 나고 얼굴이 붉어졌습니다. 의사는 서둘러 몇 가지 약을 더 처방해 경구 복용과 주사로 알레르기 치료를 했습니다. 하지만 알레르기의 원인을 알 수 없어 정형화된 방식으로 처리했을 뿐입니다. 나중에 제가 아버지가 사용한 여러 약의 설명서를 확인해보니 알레르기 증상이 ‘알부빈’과 ‘아즈부딘’의 부작용과 매우 비슷했습니다. 몇몇 의사와 간호사와 의견을 교환했는데 그들의 반응은 좀 무감각해 보였습니다. 그들이 매일 일상적인 일을 하듯이 일하는 느낌이 들었고, 이미 습관이 되어 습관 밖의 것을 받아들이기 어려워 보였습니다. 4번째인지 5번째 의사를 만났을 때 제 분석이 어느 정도 이치가 있다는 것을 깨닫고 약물이 알레르기의 원인일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즉시 ‘알부빈’, ‘아즈부딘’ 및 몇 가지 경구 복용과 주사 항알레르기 약을 중단했습니다. 이렇게 며칠 지나자 아버지의 전신 피부 알레르기 증상이 사라졌습니다. 이전에 저는 새어머니께 아버지에게 ‘아즈부딘’을 드리지 말라고 했는데, 새어머니는 매우 흥분해서 아버지가 먹지 않으면 자신이 먹겠다며 정부와 공산당을 믿는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이것이 새어머니 뒤에 있는 공산악령이 장난치는 것이며 최후의 발악을 하는 것임을 알았습니다. 저는 희미하게 제 선택이 조금씩 희망을 보이고 있다고 느꼈습니다.
아버지는 원래 일찍 퇴원할 수 있었지만 새어머니의 주장으로 설날 전날에야 퇴원하셨습니다. 이번에 저는 더 충분히 준비했습니다. 동서양(황제내경과 세계보건기구)의 심리, 생활 습관에 관한 건강 이념을 종합해 일상 재활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중 한 가지는 두뇌 훈련인데, 이는 병원 노년과 전문의가 거듭 강조한 것이며 새어머니도 이 점을 알고 계셨습니다. 효과는 환자 개인과 가족의 지속적인 노력에 달려 있었습니다. 저는 이를 통해 아버지가 매일 법을 읽고 9자 진언(眞言)을 외우도록 천천히 인도하고 싶었습니다. 시련은 곧바로 찾아왔습니다. 먼저 아내가 아버지께 ‘아미타불’을 외우라고 열심히 권했고 제가 아버지께 대법 진상을 말하기 시작하면 아내는 즉시 반대 의견을 내놓았습니다. 파룬궁이 이미 금지됐고 공법을 연마하면 체포될 것이라고 하거나, ‘아미타불’은 4글자뿐이라 9자진언보다 간단하고 효과적이라고 말했습니다. 방해가 있었지만 이제 저는 집에서 파룬궁을 언급할 수 있게 됐습니다. 전에는 감히 언급도 못했습니다. 새어머니는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둘 중 한 사람은 ‘아미타불’이 좋다고 하고, 다른 한 사람은 ‘파룬따파하오’가 좋다고 하니, 네 아버지가 어느 쪽을 선택하는지 보자.” 얼마 지나지 않아 이 일이 집안의 몇몇 어른들 귀에 들어갔고 그들은 이해하기 어려워했습니다. 예전에 한 어른이 암에 걸렸는데 병원에서 속수무책이었고 그의 가족들이 신께 기도를 올렸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행동과 의식이 많은 친척들의 반감을 샀는데, 결국 생명을 구하지 못했고 매우 부정적인 인상만 남겼습니다.
저는 이러한 갈등들이 갑자기 나타났지만 우연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제 수련 환경이며 또한 제가 진상을 알려야 할 곳입니다. 여기에 제가 구해야 할 인연 있는 중생들이 있습니다. 새어머니의 의견에 따라 아버지는 몇 번 더 입원하셨고 저는 천천히 건강과 양생에 대한 이념(좋은 마음가짐과 생활 습관 유지에 중점을 둠)을 말씀드렸습니다. 동시에 대법 진상도 조금씩 말씀드리며 진선인(真·善·忍)에 따라 좋은 사람이 될 수 있고 마음가짐이 좋으면 몸도 좋아진다고 했습니다. 점차 그분들은 노인이 장기간 병원에 입원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는 것을 깨달으셨습니다. 이런 유의 노인성 질병은 불가역적입니다. 돈은 돈대로 들고 사람은 고통받고, 주변에 신음하고 고통받는 환자들로 둘러싸여 있어 정신적으로도 고통받습니다. 그래서 새어머니도 더 이상 아버지의 장기 입원을 고집하지 않으셨고, 집에 돌아온 후 제가 작성한 재활 양생 계획을 천천히 받아들이기 시작하셨습니다. 이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각자 오랫동안 형성된 생활 습관과 사고방식을 바꾸는 것은 매우 어렵기 때문입니다. 시련이 많았지만 중요한 것은 포용과 인내, 법을 스승으로 삼는 것입니다. 그러자 상황이 조금씩 변했습니다.
형은 제가 준 몇몇 진상 자료를 보고 중공 악당에 대해 깨달음을 얻었고, 중공이 거짓말과 폭력으로 수많은 악행을 저질렀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아내가 ‘아미타불’을 외우면서 동시에 “공산당은 전심전력으로 인민을 위해 봉사합니다”라는 식의 말을 하자 형은 매우 화를 냈습니다. 특히 아내가 아버지에게 불교를 가르치려 할 때마다 형은 크게 화를 냈습니다. 저는 이것이 사부님의 배치라고 느꼈습니다. 그래서 점차 아내가 아버지께 불교를 가르치는 횟수가 줄어들었고 동시에 제가 법공부하고 공법을 연마하는 것을 방해하는 일도 줄어들었습니다. 제가 자료를 인쇄해도 더 이상 간섭하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아버지의 팔에 홍반이 나타났고 오랫동안 지속되어 새어머니는 다시 조급해지셨습니다. 고향에서 가장 좋은 피부과 전문의를 찾아 총 세 번을 갔습니다. 처음 두 번은 많은 약을 처방받았는데, 경구용과 외용제가 모두 있었습니다. 이런 증상은 원인이 많아 정확한 진단과 치료가 어려워 생각나는 모든 약을 한 번씩 처방한 것 같았습니다. 두 번째 진료 후 새어머니는 매일 여러 차례 아버지께 약을 발랐는데, 두껍게 한 겹 바르고 마르기도 전에 또 한 겹 발랐습니다. 그녀는 전문의가 많이 발라야 한다고 말했다고 했지만 결과적으로 역효과가 났고 홍반은 천천히 확대됐습니다. 저는 새어머니께 이치를 설명했습니다. 아이의 키를 크게 하려고 해도 하루에 세 끼만 먹을 수 있고, 매 끼니의 양도 적당해야 하는 것처럼, 하루에 다섯 끼, 열 끼를 먹는다고 해서 몸이 잘 자라는 것은 아니라고 말입니다. 세 번째 방문 때 전문의는 한 가지 약만 처방했는데 면역력을 높이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 기간 가족들은 아버지의 건강을 보충하기 위해 각종 방법을 시도했는데 일주일에 해삼 몇 개를 먹이는 것도 포함됐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일부 사람들은 해삼에 알레르기가 있어서 먹으면 피부에 홍반 등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고 합니다. 또한 담백한 식사는 자극이 적어 아버지의 알레르기성 피부 발진 위험을 줄일 수 있었습니다. 저는 이 사실들을 부모님께 알려드리고 그들이 직접 결정하도록 했습니다. 나중에 그들은 스스로 해삼을 드시지 않기로 결정했고 음식도 최대한 담백하게 드시기로 했습니다. 저는 이것이 기회라고 느꼈습니다. 법을 읽고 9자 진언을 외우면 더 높은 지혜와 에너지를 얻을 수 있어 마음가짐과 정서 조절에 도움이 되고 면역 체계 향상에도 도움이 되기 때문입니다.
이제 저는 매일 퇴근 후 집에 와서 부모님과 함께 저녁 식사를 하고, 그 후 그들과 잠시 대화를 나눕니다. 마지막으로 아버지와 함께 《전법륜》을 몇 페이지 읽고, 9자 진언을 잊지 말라고 상기시켜드립니다. 아버지는 항상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십니다. 때때로 새어머니가 아버지와 함께 책을 읽고 두뇌를 훈련하라고 저에게 상기시키기도 합니다. 어느새 기대했던 일들이 조금씩 실현되어 갔습니다.
비록 제가 은밀히 수련하고 있지만 사부님께서는 때때로 교묘한 안배로 일깨워주셔서 사부님께서 바로 곁에 계시다는 것을 깊이 느끼게 해주시고, 조금씩 제 수련에 대한 신념을 강화시켜 주십니다. 지금 아들의 성장 과정을 되돌아보면 정말 신기한 일이 몇 가지 있었습니다. 중학교 졸업 시험 전 마지막 전 시 모의고사에서 아들의 성적이 좋지 않았습니다. 한 성(省) 중점 고등학교에 안정적으로 합격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결국 떨어져서 그에게 큰 타격을 주었습니다. 다른 방법이 없는 상황에서 저는 그에게 매일 법을 읽고 마음을 조절해 평정을 되찾으며, 최선을 다하고 순리에 따르라고 제안했습니다. 마침 중학교 졸업 시험까지 60일이 남았고 《전법륜》 9강이 정확히 60절이었습니다. 아들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하지만 과정은 쉽지 않았고 주요 방해는 아내에게서 왔습니다. 그러나 아들은 제가 상상했던 것보다 더 확고했습니다. 어머니의 방해가 적어지면 설득한 후 법을 읽었고, 방해가 너무 커서 법을 읽을 수 없으면 나중에 시간을 내 보충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거의 정확히 중학교 졸업 시험 전까지 《전법륜》 전체를 읽었습니다. 이과(만점 120점) 시험을 마친 후 아들은 잘 보지 못했다고 느꼈습니다. 그는 이과 점수가 100점이 나오면 앞으로 저와 함께 수련하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그의 중학교 졸업 시험 성적은 중학교 3년간 가장 좋은 성적이었고, 이과 성적은 정확히 100점이었습니다. 저는 아들에게 “이것은 사부님께서 네가 진정으로 수련하기를 바라신다는 뜻이야”라고 말했습니다. 나중에 그가 게을러져서 법공부를 하고 싶어 하지 않을 때마다 저는 이 일을 상기시켜 초심을 잊지 말라고 했습니다.
이번 생에 법을 얻을 수 있어 매우 다행스럽고 당시에 어렴풋이나마 올바른 선택을 했다는 것이 더욱 다행스럽습니다. 저는 자연스럽게 원래 직장의 한 동료를 떠올렸습니다. 그는 저보다 몇 살 더 많았고 저와 비슷한 상황이었으며 아내도 파룬궁을 수련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다른 길을 선택했고 아내와 이혼했습니다. 나중에 그는 몇 번의 결혼을 더 경험했고 50세가 되기도 전에 암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정말 안타까운 일입니다. 인연 있는 중생들이 모두 진상을 알고 중공 악당에서 멀어져 아름다운 미래를 선택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10여 년간 저는 거의 혼자서, 그리고 은밀히 수련해왔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아무것도 볼 수 없지만 마음속은 점점 더 평온해지고 희망을 느낄 수 있습니다. 저는 사부님께서 바로 곁에 계신다는 것을 압니다. “수련은 자신에게 달렸고(修在自己), 공은 사부에게 달렸다(功在師父).”(전법륜). 법공부를 많이 하는 것이 심성을 높이는 핵심입니다. 공부하기만 하면 조금씩 모르는 사이에 향상됩니다. 마음에 담은 법이 많을수록 지혜도 더 많아집니다. 수련인이 매일 법공부를 잊거나 법공부하고 싶지 않은 생각이 들면, 그것은 세속의 명예, 이익, 정(情)과 업력에 의해 조금씩 마음이 갉아 먹히고 있는 것이며 내리막길을 걷고 있는 것입니다.
명혜망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명혜망 덕분에 저는 처음의 고독하고 무력한 상태에서 점차 대법제자가 하나의 정체(整體)라는 것을 느끼게 됐습니다. 모든 대법제자의 기연(機緣), 서약, 근기, 오성과 짊어진 사명이 다르고 수련 환경과 마주치는 시련도 다르지만, 모두 사부님의 보살핌 아래에서 자기만의 수련의 길을 걸으며 자신의 인연 있는 중생들을 구하고 있습니다. 진정으로 사부님을 믿고 법을 믿으며 세 가지 일을 잘하기만 하면 집착은 점점 줄어들고, 마음가짐은 점점 더 바르게 되며, 지혜는 점점 더 많아지고, 신념은 점점 더 강해질 것입니다.
원문발표: 2024년 6월 19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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