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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를 도와 병업관을 넘으며 진정한 나를 되찾다

글/ 랴오닝성 청년 대법제자

[명혜망] 저는 랴오닝성의 젊은 대법제자입니다. 3살 때 부모님을 따라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를 수련했지만 진정한 수련이 무엇인지 계속 깨닫지 못해 중학교에 올라간 후에는 거의 수련하지 않았습니다. 2020년 초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다시 수련의 길로 돌아왔습니다. 저는 이 몇 년간의 수련 과정을 사부님께 보고드리고 수련생들과 교류하고 싶습니다.

1. 첫 시련을 만나 수련으로 돌아가다

2020년 초, 어머니에게 갑자기 심각한 병업(病業)이 나타났습니다. 저는 어머니의 병이 나았으면 하는 간절한 마음을 품고 다시 수련의 길로 돌아왔습니다.

그날 어머니는 저녁밥을 막 지으셨는데 온몸에 기운이 없어 그냥 누워만 계셨습니다. 우리는 모두 어머니가 피곤해서 쉬면 곧 회복될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어머니는 배가 아파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하셨고, 화장실에 가는 것 외에는 거의 내내 누워 계셨습니다. 며칠이 지나자 어머니는 야위어 갔고 배 왼쪽에는 아기 머리만 한 큰 혹이 자라났습니다. 이를 보며 저는 딸로서, 수련생으로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저희 식구들은 이 몇 년간 수련을 하는둥 마는둥 해왔지만, 사부님께서는 저희를 계속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2014년, 사부님께서는 한 언니 수련생을 저희 집으로 보내 법공부를 하게 하셨고, 이후에 언니 수련생의 어머니도 우리 법공부 모임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이번에 제가 어머니와 함께 난을 넘을 수 있었던 데에는 수련생들의 도움이 컸습니다.

중공 바이러스(우한폐렴) 전염병이 발생하기 전인 2019년, 저는 일하던 직장을 그만둔 후 사부님의 배치로 집에서 아이들에게 온라인 수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어머니의 병업이 나타난 후에야 깨달았습니다. 이는 제가 다시 수련으로 돌아오도록 사부님께서 미리 길을 닦아주신 것이었습니다. 재택근무 덕분에 저는 더 많은 시간을 세 가지 일에 쓸 수 있었고 어머니와 함께 난관을 넘을 수 있었습니다.

속인 속에서 혼미했던 그 몇 년간 저는 명예와 이익을 좇느라 바빴습니다. 마음속으로는 대법이 좋다는 걸 알고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 했으며, 반본귀진(返本歸眞)이 세상에 온 진짜 목적임을 깊이 알고 있었습니다. 또한 수련은 고생을 겪어야 한다는 것도 내심 깨닫고 있었습니다. 내심에 이런 모순들이 가득했기에 저는 ‘잠자는 척하는’ 사람이 되기로 선택했고 자신을 방임하며 속인사회를 따라 내려갔습니다. 지금 저는 다시 수련의 길로 돌아왔고 완전히 잊었다고 생각했던 법도 다시 떠올랐습니다. 어머니 배의 큰 혹을 보며 이제 다시 깨어나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먼저 저와 어머니는 병원에 가지 않기로 했습니다. 수련은 엄숙한 것이므로 관을 넘는 걸 포기하고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든지, 아니면 수련인으로서 당당하게 관을 넘어야 했습니다. 제가 어머니를 도와 관을 넘는다고 했지만, 사실 이 또한 저 자신의 관이었습니다. 우리는 한 정체(整體)이고 어머니에게 이렇게 심각한 병업이 나타난 것은 저에게도 큰 빈틈이 있음을 말해줍니다. 어릴 때부터 법을 얻은 제자로서 저는 대법 중에서 바르게 수련하지 못했고, 세 가지 일을 잘하지 못했으며, 자신의 역사적 책임을 회피했습니다. 사부님께서는 우리를 징벌하지 않으셨지만 구세력은 우리를 쉽사리 놓아주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어머니께 법을 읽어드리기 시작했고 가끔 어머니가 잠들면 저 혼자서 계속 법공부를 했습니다. 수련생들도 우리를 도와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병업관에 대한 법을 찾아주었습니다. 계속해서 깊이 법공부를 하면서 우리는 진정한 수련이란 안으로 찾는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이전까지 우리는 줄곧 착한 사람이 되는 단계에만 머물러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자신의 가장 근본적인 집착, 즉 아버지에 대한 원망을 찾아냈고, 이에 더해 아름다운 삶을 추구하는 편안함을 탐하는 마음, 색욕, 이익에 대한 집착 등을 발견하셨습니다.

어머니를 돌보는 과정에서 저의 많은 집착심도 드러났습니다. 가장 강한 마음은 바로 어머니가 병을 없앨 수 있으리라는 집착이었습니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당신은 무의식중에 당신의 장(場) 범위 내에 있는 사람, 그의 신체를 조정해 줄 수 있는데, 이런 장은 일체 바르지 않은(不正確) 상태를 바로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전법륜) 저는 제가 잘 수련함으로써 어머니가 바르지 않은 상태를 바로잡도록 도와주고 싶었습니다. 저는 수련생들이 병업관을 넘는 체험을 많이 읽었고 언젠가 우리도 어떤 마음을 제대로 찾아내 어머니가 기적적으로 낫기를 바랐습니다. 저는 스스로 똑똑한 척하며 대법을 이용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때의 제 모습을 돌이켜보면 참으로 사부님께 부끄럽습니다. 이런 더러운 마음은 어머니가 병업관을 넘는 전 과정에 걸쳐 있었고, 어머니에게 심각한 상황이 다시 나타났을 때에야 비로소 진정으로 버릴 수 있었습니다. 비록 제가 이런 마음을 가졌지만 사부님께서는 계속 자비롭게 저를 깨우쳐주셨습니다.

어머니가 병업 관을 넘은 지 2, 3개월쯤 되었을 때, 어느 날 저녁 어머니의 상태가 매우 괴로워 보였고 얼굴색이 새파랗게 변하셨습니다. 우리는 안으로 찾을 만한 건 다 찾아봤는데 이런 정황이 나타난 걸 보니 틀림없이 우리가 놓친 집착이 있는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도무지 찾을 수가 없어 사부님께 간청드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눈을 감고 마음속으로 사부님께 말씀드렸습니다. “제자는 정말로 어떤 마음인지 모르겠습니다. 사부님께서 가르쳐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나서 ‘전법륜’을 펼쳤더니 “마음이 반드시 똑발라야 한다”는 구절을 보았습니다.

법을 읽으며, 제 머릿속에는 마치 두 편의 영화가 동시에 상영되는 듯했습니다. 하나는 제가 지금 법을 읽는 장면이고, 다른 하나는 우리가 찾지 못한 그 집착이었습니다. 그 집착은 바로 어머니가 매일 주무시는 침대였습니다. 이 침대 매트리스는 자기장 기능이 있다면서 온갖 건강에 좋다는 효능을 광고했습니다. 예전에 수련을 정진하지 않을 때는, 이 정도야 약 먹는 것도 아니고 피로를 덜어주니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여겼습니다. 하지만 이는 사실 치료에 대한 마음을 감추려는 자기기만에 불과했습니다. 그 침대를 산 지 벌써 몇 년이 지났는데 사부님의 일깨움이 아니었다면 그때 침대를 살 때의 마음가짐을 정말 떠올리지 못했을 것입니다. 저는 어머니와 의논한 후, 다음 날 그 매트리스를 치웠습니다. 두어 달 동안 누워만 계시던 어머니도 마침내 일어나 걸으실 수 있게 됐습니다.

집에서 일하다 보니 어머니와 오래 부딪히게 되면서 저희 사이에도 자주 갈등이 생기곤 했습니다. 때로는 서로 불편한 감정을 품은 채 지내기도 했습니다. 몇 번 그런 일을 겪은 후 저는 자신의 부족함을 반성하기 시작했습니다. 어쨌든 수련생은 자신을 비추는 거울인 것입니다. 예를 들어 어머니는 냉담한 어조로 아버지께 말씀드리곤 했는데, 저 역시 학습 속도가 느린 아이들에게 어투가 좋지 않다는 걸 발견했습니다. 또 어머니는 무슨 일이든 아버지와 시비를 가리곤 했는데, 이런 면에서 저 역시 다툼을 좋아하는 마음이 강했습니다. 그 후로는 갈등이 생길 때마다 우선 자신을 수련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안으로 찾으니 어머니와도 평화롭게 교류할 수 있게 됐습니다.

어머니와 지내면서, 저는 병업 중에 있으면서도 굉장히 강한 성격을 보이는 일부 수련생들을 점차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그런 수련생들은 속인 사회에서 유능하고 가정에서도 발언권이 강해서 그 어떤 일에서도 머리를 숙인 적이 없을 겁니다. 하지만 병업 가상 앞에서 그들의 ‘강인함’은 무용지물이 되고 맙니다. 우리는 속인사회에서 많든 적든 체면을 차리는 마음을 키우게 되는데, 강한 수련생일수록 체면에 대한 집착이 더 강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수련생을 도우려면 더 많은 선념과 인내심이 필요합니다. 그들을 충분히 존중해야 하고, 교류할 때도 말투가 부드러워야 하며 정면으로 부딪치면 안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자존심이 상할까 봐 교류 자체를 거부할 수도 있습니다. 또한 그들이 겉보기에 강해보인다는 이유로 도움을 포기해선 안 됩니다. 겉모습이 강할수록 그들의 내면이 얼마나 무력한지 말해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럴 때 그들이 진정으로 착실한 수련을 하고 안으로 찾기만 한다면 대법 법리가 모든 바르지 않은 요소들을 바로잡아 줄 것이라 믿습니다!

어머니는 비교적 강한 유형에 속합니다. 자신이 근면하고 능력 있으며 마음씨가 착하다고 여겼지만, 진취심이 부족한 남편을 만나 지금과 같은 처지가 된 거라 생각하셨기에 아버지에 대한 원망이 컸던 것입니다. 자신에게 이토록 큰 병업이 나타난 것 모두 아버지 때문이라고 여기셨습니다. 또 아버지의 색욕이 너무 강해 가정에 갈등이 생기지 않도록 하려다 보니, 색욕이 담담한 어머니도 맞춰줄 수밖에 없었습니다. 어머니로서는 이 나이에 부부싸움까지 하는 게 매우 창피하다고 느끼셨을 겁니다. 또 아버지가 돈을 많이 벌지 못해 자신이 고된 일을 해야만 했고, 그러다 보니 법공부와 수련을 잘하지 못했다고 여기셨습니다. 아버지가 자신을 헤아리고 보살펴주지 않아 늘 불행했다는 등등의 마음으로 원망하셨습니다.

‘전법륜’ 제4강을 배우면서 어머니의 마음가짐이 달라지셨습니다. 부부의 인연은 모두 신이 배치한 것이며, 고난은 자신의 업력으로 인한 것이지 남 탓이 아님을 깨달았습니다. 비록 단번에 원망을 없앨 순 없었지만 원망의 물질을 주동적으로 제거하려 노력하셨습니다. 원망의 근원을 하나하나 안에서 찾아보니, 색욕 역시 자신의 공간장이 청정하지 못해 빈틈을 열어준 탓이었고, 남편이 돈을 적게 버는 걸 탓한 건 이익심과 허영심이 작용한 것이었으며, 바빠서 법공부할 시간이 없었다는 건 시간 분배를 잘못한 자신의 책임이었습니다. 보살핌받고 싶은 마음은 사실 정에 대한 집착이었습니다. 저는 어머니께 여쭈었습니다. “지금 행복한 결혼생활과 많은 재산이 있다 해도 그게 평생 추구할 만한 것인가요?” 어머니는 “아니야, 수련 원만이 진정한 목표야!”라고 대답하셨습니다.

사부님께서 제자들을 위해 엄청난 난을 감당하고 계시고, 그토록 많은 중생이 우리의 구원을 기다리고 있다는 걸 생각하면, 어찌 속인 중의 그 무엇이 정법시기 대법제자의 걸림돌이 될 수 있겠습니까? 어머니는 원망에서 벗어나 남편을 인연 있는 중생으로 여기게 되셨습니다. 아버지는 아직 대법 속으로 돌아오지 못해 마음속으로 많이 괴로워하실 겁니다. 저희 모자가 잘 수련해야만 아버지도 수련의 아름다움을 진정으로 체험하고 아무 조건 없이 대법으로 다시 돌아오실 수 있을 것입니다.

사실 색욕은 부부 수련생 사이에서뿐만 아니라 젊은 대법제자들 사이에서도 마찬가지로 존재합니다. 속인사회와 인터넷의 오염에 물들어, 수련으로 돌아오기 전 몇 년간 저는 색욕을 통제하지 못했고, 꿈속에서 늘 거대한 공장에 가 보면 일렬로 늘어선 게 모두 화장실뿐이었습니다. 이는 저를 몹시 자책하게 만들었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습니다. 수련인으로서 이래선 안 된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수련을 다시 시작한 첫날 사부님 법상 앞에 무릎 꿇고 말씀드렸습니다. “사부님, 저를 도와주세요. 색욕을 제거할 수 있게 해주세요. 제자는 더는 그렇게 살고 싶지 않습니다.” 사부님께서는 새로 잘해보겠다는 제 진심을 보시고 정말로 색욕을 없애주셨습니다. 그로부터 3년이 넘도록 다시는 색욕에 휘둘리지 않았습니다. 수련생들이 저희에게 수심단욕(修心斷慾) 교류 글을 주셨고, 어머니와 저는 자주 보면서 색욕에 대해 더 깊이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일상에서도 색욕을 없애려 늘 주의를 기울였습니다. 훌륭해 보이는 이성을 보면 무의식중에 좋은 모습만 보여주고 싶어 했는데, 법공부를 통해 우리와 속인은 구원하고 구원받는 관계여야 함을 깨달았습니다. 멋진 옷을 입은 여성을 보면 나중에 같은 옷을 사야지 하고 생각했는데 이 역시 색욕이었습니다. 저는 제게 외모로 사람을 평가하지 말고, 마음 닦는 데 중점을 두되 겉모습은 깔끔하고 단정하기만 하면 된다고 일깨웠습니다. 또한 수련으로 돌아오기 전 남녀관계에서 저지른 잘못들을 모두 폭로했는데 이는 저로 하여금 수련에 더욱 확고해지게 했고, 더는 자괴감에 빠지지 않고 대법의 은혜 속에 잠길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2021년 새해가 되기 전, 어머니 배의 큰 혹은 이미 피부를 뚫을 듯 팽팽해졌고 혹이 난 부위는 붉게 달아올라 혈관이 비쳤습니다. 새해 이튿날 저녁, 어머니는 부푼 배를 껴안고 괴로워하며 누워계셨습니다. 그때 문득 사부님께서는 전능하시고 대법 또한 전능하니 반드시 이 관을 넘을 수 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습니다. 바로 그 사부님을 믿고 법을 믿는 일념에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큰 혹에 작은 구멍이 생기더니 주변을 누르자 고름이 흘러나왔습니다. 그날 밤 엄청난 양의 고름을 짜냈고, 큰 혹은 작아졌으며 어머니의 통증도 한결 가셨습니다. 병업관을 넘기 시작한 지 9개월 만에 어머니는 드디어 걸을 수 있게 되셨습니다. 사부님께서 어머니의 그토록 큰 업력을 제거해주셨던 것입니다.

2. 다시 시련을 만났지만 정념을 단호히 하다

설을 지낸 후 어머니의 배에서는 계속 고름이 흘러나왔습니다. 이런 상태가 9월까지 지속됐고 어머니의 두 발이 붓기 시작하셨습니다. 며칠이 지나지 않아 허리까지 부어올라 거의 마비가 왔고, 일어나 앉거나 몸을 뒤집는 것도 저와 아버지의 도움이 필요했습니다. 어머니는 온몸이 부어 스스로 생활하실 수 없었습니다. 아버지의 일도 육체적으로 힘든 일이어서 집에 돌아와 이런 아내를 마주하니 스트레스가 매우 컸습니다. 그래서 저는 어머니를 돌보는 동시에 가사일도 도맡았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행하기란 쉽지 않았습니다. 온라인 수업도 해야 했고, 가사일을 하고 어머니를 부축해 화장실에 다녀오고, 아래층에 내려가 시장을 보는 일은 수업이 끝난 사이사이에 해야 했습니다. 낮에 일이 끝난 후 저녁에는 또 어머니와 함께 법공부를 해야 했습니다. 바쁜 일상에서 저는 마치 팽이처럼 느껴졌고 고달프고 지쳤습니다. 같은 나이 또래 친구들은 모두 각자의 여가생활을 즐기는데, 저는 매일 집에서 어머니를 돌보느라 문밖으로 나가는 것조차 오랜 시간 할 수 없었습니다. 우울한 감정이 저를 감싸고 있었습니다.

저는 저 자신이 안일함에 익숙해져서 조금만 고생해도 괴로워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어머니와 대량으로 법공부를 하고 사부님의 각지 설법을 읽으면서 저는 정념을 강화했습니다. 수련 중에 마주한 모든 것은 사부님의 배치라고 믿었으며, 조건 없이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머니의 이번 병업으로 인해 저는 많은 심성관(心性關)을 넘었는데, 가장 심각한 것은 남에게 지적받는 것을 견디지 못하는 마음이었습니다. 어머니는 움직이실 수 없었기에 제가 집안일을 할 때면 어머니는 늘 저에게 제안을 하거나 제가 어디를 잘못했다고 지적하셨습니다. 저는 인내심이 없어서 반박했고 어머니와 자주 말다툼을 했습니다. 안으로 찾아보니 이는 당문화(黨文化, 공산당 문화)가 아주 강하게 반영된 것이었습니다. 우리 젊은 세대는 어릴 때부터 금전과 능력이 모든 것을 좌우한다는 관념이 주입되었습니다. 저 역시 당문화의 사고방식에 따라 지금 행동 능력이 없는 어머니는 발언권이 없다고 여겼는데, 이런 생각은 너무나 사악했습니다.

저는 ‘해체 당문화’ 녹음을 듣기 시작했습니다. 각지 설법에서 사부님께서도 남에게 지적받는 것을 견디지 못하는 마음은 반드시 제거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비록 법리는 알고 있었지만, 어머니가 저를 말씀하실 때면 여전히 마음이 매우 괴로웠습니다. 스스로 비판을 받아들이려 애썼지만 오히려 더 괴로웠습니다. 어머니의 입을 막기 위해 저는 모든 일을 미리 해놓았습니다. 어머니가 말씀하시기도 전에 모두 해놓은 것입니다. 저는 어머니 앞에서 제가 그동안 얼마나 정성껏 어머니를 돌봤는지 과시하며 어머니의 칭찬을 받을 수 있을 거라 여겼습니다. 그러나 어머니는 제 관심이 가짜라고 하셨습니다. 순식간에 저는 억울함에 눈물이 줄줄 흘렀고 어머니를 싫어한 적이 없다고 해명했습니다. 울면서 안으로 찾아보았습니다. 왜 모욕을 당하자 이렇게 괴로운 걸까요? 자신의 허영심과 체면이 상처받은 것이었습니다. 지금까지 어머니에게 잘못을 지적받지 않기 위해 최대한 실수를 하지 않으려 했던 것은, 사실 비판과 질책을 듣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잘못했다면 마땅히 겸허하게 고쳐야 합니다. 나중에 저는 어머니와 법에서 교류했고 우리는 이 고비를 함께 넘겼습니다.

이 시기에 어린 친구들에게 온라인 수업을 하려면 교사 자격증 시험에 합격해야 했고, 자격증이 없는 선생님은 해고될 위험이 있었습니다. 시험은 한 달 뒤에 예정되어 있었는데 저는 모든 과목을 단번에 통과해야만 했습니다. 매일 수업을 하고 집안일을 하느라 휴식할 시간이 많지 않았습니다. 거기에 매일 법공부와 연공도 해야 했습니다. 저는 늘 시간을 쪼개 시험 준비를 했지만 그래도 시간이 부족했습니다. 법공부할 때도 늘 빨리 마치고 시험 문제를 외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머니는 사부님의 법을 환기시켜 주셨습니다. “당신의 것이라면 잃지 않을 것이고, 당신의 것이 아니라면 당신은 다퉈서도 얻지 못한다.”(전법륜) 저는 자신의 이익에 대한 집착이 강해 일자리를 잃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사부님께서는 저를 시험하시며 제가 무엇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지 보고 계셨습니다. 저는 법을 우선시하기로 선택했습니다. 어머니는 지금 도움이 절실히 필요한 시기인데 자신의 일자리만 생각해서는 안 된다고 여겼습니다. 설령 정말 일자리를 잃게 된다 해도 후회하지 않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매일 법공부와 연공을 보장한 뒤에 시간이 있으면 시험 문제를 외웠습니다. 시간이 없으면 그냥 넘겼고, 시험 보기 전에는 모든 과목의 해설 영상을 보는 것으로 대신했습니다. 시험 전날 밤에는 출제 문제를 외웠고 이런 식으로 시험에 임했습니다. 시험장에 들어가 먼저 정념을 발하고 사부님께 제자가 초범적인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가지해주시길 청했습니다. 답안을 적을 때 사고가 매우 민첩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저는 다들 매우 어렵다고 하는 교사 자격증을 한 번에 취득할 수 있었습니다.

시험을 준비하는 동안 어머니의 부기는 허리에서 얼굴과 손으로까지 번졌습니다. 우리는 수련생들과 교류하면서 법공부 모임 횟수를 매주 두 번씩 더 늘리기로 했고, 수련생들도 적극적으로 협조해주었습니다. 매번 법공부가 끝나면 모두들 어머니와 교류하며, 어머니가 사부님과 대법을 굳게 믿도록 격려해주었습니다. 어머니도 자신의 일사일념(一思一念)을 주의하시기 시작하셨습니다. 부기가 더 심해보였지만 어머니의 정념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부터인가 어머니의 발목에서 물이 밖으로 새기 시작했는데, 뚜렷한 상처는 없었습니다. 발목에 화장지를 대어 보면 금세 물에 젖었습니다. 저는 물이 새어 나와 피부가 괴사될까 봐 걱정되어 자꾸 어머니의 다리 상태를 살폈습니다. 어머니는 “이는 모두 좋은 일이니 신경 쓰지 말자”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머니의 확고함은 저의 정념을 강화해주었습니다. 그 후 전환점이 나타났습니다. 어머니는 화장실에 자주 가기 시작하시더니, 물을 마시지 않아도 계속 화장실에 다녀오셨습니다. 며칠이 지나자 우리는 사부님께서 이런 방식으로 어머니의 부종을 제거해주시는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니는 갑자기 혼자 일어설 수 있게 되셨습니다. 우리 가족은 모두 기뻐했고 다시 한번 대법의 신기함을 목격하게 되었습니다.

3. 또 시련을 만난 후 진정한 나를 되찾다

2021년 12월 말, 어머니의 부종은 완전히 가라앉았습니다. 저는 이번에야말로 어머니가 병업관을 완전히 넘기셨다고 생각했고, 함께 밖에 나가 진상 자료를 배포하자고 권했습니다. 자료를 배포하고 막 집에 돌아왔을 때, 어머니는 기침을 하기 시작하셨고 그 후로 거의 24시간 쉬지 않고 기침을 해대며 악취 나는 가래를 뱉어내셨습니다. 이런 상태가 두 달 넘게 지속되었습니다. 그 기간 어머니는 30분 이상 제대로 주무시지 못했고, 머리카락은 거의 다 빠져 작은 술로 묶으면 새끼손가락만큼 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병업관에 들어가기 전 어머니의 체중은 65kg이었는데, 지금은 40kg으로 줄어들었고 허리가 구부정하게 걸으셨습니다. 50대이신 어머니는 마치 80대처럼 보였습니다.

저와 어머니는 안으로 찾아보며 진상 자료를 배포했던 그날 일을 되짚어보았습니다. 두려운 마음 때문에 어머니가 구세력에게 빌미를 잡히고 만 것이었습니다. 그날 제가 위층에 올라가 자료를 배포하는 동안, 어머니는 아파트 입구에서 저를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제가 막 올라간 지 얼마 되지 않아 경찰 패딩을 입은 여성이 들어왔고 어머니는 당황하며 급히 저를 부르셨습니다. 나중에 자세히 생각해보니 그 여성은 경찰이 아니라 구세력이 가상을 이용해 어머니를 놀라게 한 것 같았습니다. 어머니도 스스로 분명 두려운 마음이 있었다고 인정하셨습니다. 아버지가 부당하게 강제노동을 받았을 때 어머니도 붙잡혀가셨고, 그 후로 줄곧 경찰에 대한 공포심이 있었던 것입니다. 저는 가끔 집에서 법을 조금 큰 소리로 읽으면 어머니는 두려워하셨고, 연공이나 발정념을 할 때도 항상 커튼을 꼭 쳐놓으셨습니다.

이 두려운 마음을 찾아낸 후, 저희는 발정념을 늘려 자신에게 있는 두려움의 물질을 제거했습니다. 우리는 중생들의 희망이자 가장 신성한 일을 하고 있습니다. 다른 수련생이 법률 관련 자료들을 구해주기도 했습니다. 속인의 관점에서 보더라도 중공 악당이 대법제자를 박해하고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고 두려워해야 할 쪽은 오히려 그들입니다.

어머니가 한밤중에 괴로워하실 때면 저는 곁에서 법을 읽어드리고 발정념을 해드렸습니다. 2022년 4월 말에 이르러서야 어머니의 기침이 조금 완화되기 시작했습니다. 밤에는 여전히 심각했지만 낮에는 몇 시간 정도 잠을 주무실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제 점점 나아지실 거라 생각했지만 11월이 되어도 어머니는 여전히 끊임없이 기침하셨고 몸무게도 더 줄어들었습니다.

저는 심지어 두려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언젠가 밤에 어머니가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해 그대로 돌아가실까 봐 무서웠습니다. 가끔 밤에 어머니의 기침 소리가 들리지 않으면 황급히 달려가 어머니가 아직 살아 계신지 확인했습니다. 연공을 하거나 발정념을 할 때도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는 장면이 머릿속에 떠올랐습니다. 저는 이런 것들이 저의 생각이 아니라고 부정했고 마(魔)의 교란이라고 여겼습니다. 저는 그런 부정적인 염두에게 말했습니다. “너는 가짜야. 넌 우리 어머니의 미래를 볼 수 없어.”

그 후로 저는 이런 부정적인 사상을 배제하는 데 굉장히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스스로가 매일 어머니가 돌아가실까 봐 걱정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표면적으로는 어머니가 돌아가시면 대법에 안 좋은 영향을 미칠까 봐, 친척들이 이를 빌미로 대법을 비방할까 봐 걱정했습니다. 하지만 깊이 파고들어 보니 제 안에 숨겨진 사심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어머니가 안 계시면 이 세상에서 저와 가장 가까운 분을 잃게 되고, 어머니처럼 저를 아껴주실 분이 없어질 것이라는 두려움 때문이었습니다. 가족 정은 버리기 쉽지 않습니다! 저는 처음에 어머니의 병이 나을 수 있으리라는 바람에서 대법 수련으로 돌아왔지만 2년 넘게 계속 병업만 뒤쫓아 다녔습니다. 마치 구세력이 배치해 놓은 길을 가고 있는 듯했습니다.

저는 자신에게 물었습니다. ‘만약 어머니가 지금 병이 나으시면 계속 수련할 거야?’ ‘만약 어머니가 돌아가시면 계속 수련할 거야?’ ‘어머니가 계속 병업관을 겪으신다면 그래도 계속 수련할 거야?’ ‘대법제자로서 수련 중에 고생도 해야 하고 집착도 없애야 하는데, 그래도 계속 수련할 거야?’ 저의 대답은 ‘수련하겠다’였습니다. 이번에는 정말로 저 자신을 위해 수련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사부님께서 제가 대법 안에서 수련할 수 있게 해주신 것만으로도 이미 가장 큰 행운입니다. 설령 어머니와의 인연이 다한다 해도 저는 계속 수련의 길을 걸을 것입니다. 사부님과 대법이 있는 한 제가 넘지 못할 고비와 어려움은 없습니다.

비록 저의 정념은 더 견고해졌지만 어머니의 병업 가상은 오히려 더 심각해진 듯 보였습니다. 어머니 아랫배에 또 작은 혹이 생기고 구멍이 나서 고름이 흘러나왔고, 배꼽에서도 피가 배어 나왔습니다. 어머니가 기침하실 때마다 작은 구멍에서 피가 배어 나오곤 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가상들은 더 이상 저희를 미혹하지 못했습니다. 어머니는 배가 어떻게 되든 상관하지 않으셨고, 저에게 보여주지도 않으셨습니다. 저희는 오로지 한마음으로 법공부에 매진했습니다. 매일을 어머니와의 마지막 날인 것처럼 여기며 소중히 여겼고 시간만 나면 법공부를 했습니다. 어머니가 정말 돌아가신다 해도 더 많은 법을 갖고 가실 수 있도록 할 생각이었습니다. 어머니의 장래가 어찌 되든, 수련인으로서 저는 최선을 다하리라 생각했습니다.

끊임없는 법공부 속에서 어머니의 상태는 호전되기 시작하셨습니다. 2023년 4월경부터는 어머니는 기침을 거의 하지 않게 되셨고, 혹도 가라앉았으며, 고름이 나오던 구멍도 오목한 자국만 남았습니다. 8월에 이르러 어머니의 머리카락은 다시 자라났고, 체중도 62kg으로 늘었습니다. 어머니의 놀라운 변화를 지켜본 친척들은 모두 대법의 신기함에 감탄했습니다.

맺음말

지난 3년을 돌이켜보면, 사실 매 한 걸음이 모두 사부님께서 우리를 위해 잘 배치해주신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우리가 안으로 찾고 법공부를 많이 하기만 하면 난관을 넘을 수 있었고, 저와 어머니는 새로운 삶을 얻었습니다. 최후의 순간까지도 사부님께서는 여전히 저희에게 기회를 주시고, 저희를 이끌어주시며, 저희를 대신해 많은 죄업을 감당해주셨습니다. 또한 다른 수련생들을 통해서도 도움을 주셨습니다. 그 어떤 말로도 사부님께 대한 감사를 다 표현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현재 저와 어머니는 아직 자신을 수련하는 데 힘쓰고 있고, 중생을 구하는 방면에서는 진상 자료 배포와 진상 지폐 사용에 그치고 있습니다. 정진하는 다른 수련생들에 비하면 많이 부족하지만 저희는 계속 노력할 것입니다. 아버지도 언젠가는 대법 수련의 길로 돌아오시리라 믿습니다.

사부님, 걱정 마십시오. 제자는 반드시 사부님을 따라 끝까지 수련해 사부님의 자비로운 제도에 보답하겠습니다. 사부님께 절을 올립니다.

이 체험담은 처음 써보는 것이라 부족한 점이 있다면 수련생 여러분의 자비로운 지적을 부탁드립니다.

 

원문발표: 2024년 6월 11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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