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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투심을 층층이 닦아 버리다

글/ 중국 대법제자

[명혜망] 1995년 대법을 수련하기 시작했을 때 저는 중학생이었습니다. 근 30년간의 수련 중 끊임없이 대법의 신묘함을 느꼈고, 고비를 넘을 때는 힘들고 괴롭다고 느낄 때도 있었지만, 매번 제고된 후 생명의 영원한 즐거움을 느꼈습니다. 박해의 압력을 감당하고 중생을 구하는 사명을 짊어지면서도 늘 수련자만이 누릴 수 있는 즐거움을 얻을 수 있었는데, 이는 속인으로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수련은 이 세상에서 가장 기쁜 일입니다.

명리정(名利情-명예, 이익, 정)이 무엇인지 모르던 때부터 그것에 젖어 익숙해지기까지, 그리고 다시 서서히 그것에서 벗어나기까지 온갖 고비를 겪었습니다. 그중에서도 질투심은 특히 없애기 힘든 마음이었는데 거듭 각종 형태로 나타났습니다.

1. 불평불만은 질투심일까?

대학을 졸업한 후 막 창업한 회사에 입사해 1년 반 만에 부서장으로 승진했는데 순풍에 돛 단 듯했습니다. 이후에 회사에 명문대 출신 여직원 D가 들어와 저와 같은 기숙사에서 지냈고 다른 부서에 배치됐습니다. 나이가 비슷해 늘 함께 지내다 보니 절친한 친구가 됐고, 늘 함께 출퇴근하는 바람에 동료들이 보기에 우리 사이는 매우 좋아 보였습니다. D는 매우 유능해서 1년도 안 돼 사장 보좌관으로 승진했고 직급이 저보다 높았습니다.

D는 일을 공정하고 엄격하게 처리하며 사사로움이 없었는데, 비록 대법 수련을 하지는 않았지만 제가 보기에는 흔치 않은 사람이어서 그녀와 가까이 지내고 싶었습니다. 어느 날 D가 한 가지 일로 동료와 의견 차이가 생겼습니다. 저는 뒤에서 D에게 불리한 말을 하기 시작했고 D의 처지를 어렵게 만들었습니다. 이는 D가 승진한 후 제가 처음으로 문제를 일으킨 것이었습니다.

비슷한 일이 몇 번 일어나자 D는 매우 괴로워했습니다. 한번은 충돌이 있은 후 저는 제가 D를 질투하고 있다는 것을 의식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질투심 때문에 저는 이성을 잃었고 마음속으로는 늘 불평이 있었습니다. ‘왜 그녀는 그 자리에 앉을 수 있는데 나는 안 되는 거지?’ 제가 잘못했다는 것을 알고는 행동을 강제로 고치기 시작했습니다. 더는 동료들과 함께 문제를 일으키지 않았고, 얼마 후 마음속의 불평불만은 서서히 가라앉았습니다.

당시 저는 질투심 고비를 넘겼다고 생각해 좀 자만했습니다. 그러나 이는 시작에 불과했고, 이후 10여 년의 직장생활에서 그림자처럼 따라다녔습니다.

2. ‘불공평하다’고 느끼는 것은 질투심일까?

그 후 저는 새 회사로 이직했고 부서도 몇 번 바뀌었으며 직속 상사도 여러 번 교체됐지만, C는 계속 저를 관리하는 윗사람이었습니다. 저는 10여 년 동안 승진할 기회가 있었지만 C는 방법을 동원해 저를 강등시켰습니다. 저는 그의 능력이 제한적이고 질투심이 많아 저를 이렇게 대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특히 C가 몇 번이나 저를 끌어들여 다른 사람을 겨냥하려 했지만 제가 동의하지 않아서 상황은 더 어려워졌습니다. 저는 제가 옳고 C는 그 자리에 앉기에는 덕이 모자란다고 더욱 확신하게 됐습니다. 그가 회사에서 파벌을 만들었으니까요. 오랜 시간이 지나자 승진할 마음은 없어졌고 오히려 C의 직위는 점점 더 높아졌습니다. 표면적으로는 그럭저럭 지냈지만 마음속으로는 C를 매우 원망했습니다.

전염병 기간에 C는 여러 번 바이러스에 감염된 후에 기침하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처음에는 고소하게 여겼지만 나중에는 마음에 걸렸습니다. ‘이 생명이 내 곁에 온 것도 구원받으러 온 것인데 내가 원한을 품고 일부러 그와 소원해진 탓에 이 생명이 정말 구원받지 못하다면 난 얼마나 후회하게 될까?’ 저는 안으로 찾기 시작했습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악자(惡者)는 질투심의 소치로 자신을 위하고, 화를 내며, 불공평하다고 한다.”(정진요지-경지)

제가 느끼기에 C가 저를 불공평하게 대했는데 그렇다면 이것이 질투심에서 비롯된 것일까요? 제가 악한 자일까요? 대답은 명백합니다.

십여 년이 흘러도 저는 제가 질투하고 있다고 여기지 않았습니다. C의 표현이 옳지 않았으니까요. 저는 “C가 틀렸고 내가 맞다”는 순환 고리에 깊이 빠져 있었습니다. 여기까지 보신 수련생들은 아마 실소를 짓고 계실 겁니다. 이렇게 명백한 문제를 두고 그 속에 빠져 있던 저는 10여 년 동안 자책만 하면서도 깨닫지 못했으니까요. 그래서 10여 년을 헤맸던 것입니다.

그 고리에서 벗어나서야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제가 보기에 C가 제 능력을 질투한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C는 저에게 보여주고 있었던 것입니다. 제게 질투심이 있었기에 다른 사람의 질투심을 보게 된 것이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저는 몇 년간 질투심으로 형성된 물질을 끊임없이 제거했지만 자주 드러나곤 했고, C는 제가 보기 싫어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제 마음에 기복을 일으켰습니다. 이 생명의 빛나는 면을 볼 때까지 부정적인 생각을 부단히 부정했습니다. ‘C는 아주 선량하고 남을 잘 포용한다.’ 제가 이 생명을 인정하자 마음속 원망이 사라졌습니다. 일하는 환경도 서서히 좋아졌고 지금까지 C의 기침 소리도 듣지 못했습니다.

이 과정은 지금 말로 하기에는 간단하지만 실제로는 우여곡절이 많았고 저에게 깊은 교훈을 남겼습니다. 질투심은 너무나 무서운 것이어서 반드시 경계해야 합니다.

3. 남을 부러워하는 것은 질투심일까?

제 곁에는 20여 년간 함께 고생한 수련생 Y가 있습니다. 우리는 비바람을 함께 겪으며 많은 일을 겪었습니다. 이상하게도 저는 늘 그녀 몸에서 나는 냄새를 맡을 수 있었는데, 다른 수련생은 못 맡고 그녀 자신도 맡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그 냄새는 자주 저를 괴롭혔습니다. 한 방, 한 차에 같이 있으면 그 냄새로 인해 두통이 오곤 했기 때문입니다. Y는 아주 너그러워서 제게 올 때마다 일부러 샤워하고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어 가끔은 괜찮기도 했습니다.

Y는 그동안 여러 차례 노동수용소, 세뇌반, 구치소로 끌려가 매우 고생스러운 길을 걸었습니다. 작년에 다시 유치장에 한 달간 갇혔다가 보석으로 풀려난 뒤 직장을 잃었습니다. Y가 다시 일자리를 구할 때는 순탄치 않았습니다.

한번은 이 일에 대해 깊이 교류를 나눴는데, Y는 도대체 어떤 집착심 때문에 이런 상황이 생긴 건지 진솔하게 안으로 찾았습니다.

질투심에 대해 말할 때 Y는 자신에게는 질투심이 없다고 했습니다. 저는 일상생활에서 몇 가지 문제를 느꼈지만 체면 때문에 말하지 않았는데, 지금 수련생의 상황이 이러한데 또 말하지 않는다면 너무 무책임한 일이라 Y에게 다시 물었습니다. “당신은 날 질투하는 게 아닌가요?”

최근 몇 년간 저는 그런대로 괜찮은 직장생활을 했고 이후에 회사가 상장되어 집을 사고 늘 자가용을 탔습니다. Y는 현지인이고 철거민 보상금도 적지 않았지만 다니는 회사가 비교적 작아 수입은 높지 않았습니다. 그 사이 더 체면 있는 직장으로 옮기고 싶어 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제가 동료에게 진상을 알리는 게 순조롭지 않아 Y에게 어떻게 해야 할지 상의하면서 회사의 일부 상황을 언급하면 Y는 매우 이상하게 반응했습니다. 점차 알게 된 건 일이나 집, 차 등은 물론 쇼핑 같은 사소한 일에서도 Y는 말로 저를 겨냥했고, 심지어 한동안은 저와의 교류를 꺼렸습니다.

Y가 대답했습니다. “부러워하는 걸 질투심이라고 할 수 있나요? 가끔 좀 부러워하긴 해요.”

부러움, 질투, 증오는 속인이 늘 함께 말하는 것입니다. 부러워해서 질투하고 질투해서 증오심이 생깁니다. 부러움에는 질투의 요소가 있습니다.

교류한 뒤로 Y가 저에 대해 느끼는 거부감이 눈에 띄게 줄었습니다. 그녀에게서 나던 그 냄새도 이후로 맡지 못했습니다. 어쩌면 그 냄새가 질투심의 냄새였는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제가 질투심 고비를 힘겹게 넘었기에 Y가 계속 일깨워준 것인지도 모릅니다. 이 과정은 제가 C와 고비를 넘던 때이기도 합니다.

4. 남의 기쁨을 함께 기뻐하지 않는 것은 질투심일까?

일 때문에 최근 몇 년 사이 한 경영대학원 교수를 알게 됐는데 늘 온라인으로 그의 몇몇 강의를 듣고 그의 사고방식을 서서히 알게 됐으며, 일부 문제에 대한 견해도 공감대를 형성해 매우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 작년에 마침 한 가지 문제에 대해 그가 연구하고 있었고 저 역시 그 문제에 주목하고 있었습니다. 이번 달 그의 강의를 다시 들었는데 그는 이미 돌파구를 찾았고 그의 사고의 연결고리를 완전히 형성했으며 실천 효과도 매우 좋았습니다. 그러나 저는 진전이 별로 없었고 그래서 엄청난 압박감에 시달리며 며칠간 우울하고 자신감을 잃었습니다.

부정적인 감정과 생각이 생긴 후 저는 그것이 옳지 않음을 깨닫고 안으로 찾았습니다. ‘다른 사람이 돌파구를 찾았으니 마땅히 기뻐해야 하는데 왜 남의 기쁨을 함께 기뻐하지 않고 오히려 압박감을 느끼는 걸까? 왜 나는 안 되는데 그는 되는 거지?’ 바로 이것이 질투심입니다.

《전법륜》에서 사부님께서는 질투심을 언급하실 때 어린아이가 100점을 받은 예를 드셨습니다. 외국 이웃은 축하해주고 격려해주는데 그것이야말로 사람의 정상적인 상태입니다. 공산당 문화의 환경에서 너무 오래 살다 보니 사고방식의 변이를 의식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남의 기쁨을 함께 기뻐하지 않는 것 역시 질투심입니다.

5. 질투심의 근원은 무엇일까?

생로병사는 마(魔)이고 명예와 이익, 정(情)도 마이며 이런 것들은 모두 삼계의 이치를 수호하는 마입니다. 수련인이 속인사회에서 끊임없이 심성을 제고하는 과정은 삼계 내 각종 마의 통제에서 벗어나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사부님께서는 “질투심을 버리지 못하면 사람이 수련한 모든 마음이 모두 아주 취약하게 변해 버린다”(전법륜)라고 하셨습니다. 왜 질투심에는 이렇게 강한 ‘힘’이 있어 수련인의 심성을 약화시키는 걸까요? 그 근원은 무엇일까요?

장쩌민 마귀가 대법제자를 박해하는 만고의 죄악을 저지른 것은 질투심 때문입니다. 구세력은 대법제자에게 빈틈이 있고 대법제자를 표준에 도달하게 하려 한다는 명목으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박해를 가해왔는데 이것 또한 질투심의 발로가 아닐까요?

질투심은 다양한 모습으로 변해가며 수련인에게 영향을 주는데 매우 교활합니다. 끊임없이 돌파해 나가는 과정에서 층층이 돌파해도 층층이 질투심이 다양하게 반영됩니다. 사람을 만나면 마음이 즐거워진 후에야 선과 자비의 힘을 느낄 수 있습니다. 질투심이 있으면 자비심 역시 수련해내기 어렵습니다.

이 체험을 나눔으로써 수련생들에게 최후 단계에서 반드시 질투심을 경계하고 남은 길을 잘 걸어갈 수 있기를 일깨우고자 합니다.

개인적인 깨달음으로 층차에 한계가 있습니다.

 

원문발표: 2024년 6월 6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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