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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축 5.13] 청년제자의 수련의 길, 박해는 바른 믿음 쓰러뜨리지 못해

글/ 중국 대법제자 샤오커(小可)

[명혜망] 제가 아주 어렸을 때, 집안 어른들이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를 수련하기 시작하셨습니다. 제가 다섯 살 때 가족을 따라 ‘논어’, ‘홍음’과 같은 대법 경문을 암송했던 기억이 납니다. 나이가 어려서 정식으로 수련을 시작하지 않았지만, 그때부터 진선인(真·善·忍)의 씨앗이 제 마음속에 깊이 묻혔습니다. 20년이 넘는 세월이 흘러 저는 어린아이에서 청년으로, 무지와 천진함에서 이성적이고 성숙해졌습니다. 이제 저는 이익과 손실을 담담히 보고 남을 배려하며, 양심을 지키는 진정한 대법 수련자가 되었습니다. 우주 진선인의 법리가 인도하고 자비로운 사존께서 항상 보호하셔서 저는 많은 어려움을 극복하고 인생의 귀로에 올랐고 무한한 광명을 얻었습니다.

1. 어린 시절 대법의 아름다움을 느끼고 마음속에 법 얻을 기연을 심다

1996년에 외할아버지는 노인성 치매 징후를 보이셨습니다. 무슨 일을 하든 건망증이 심했는데, 가족들과 마작을 하다가도 본인이 뭘 하는지를 잊어버리셨습니다. 외할아버지는 의사였기에 의학으로는 본인의 질병을 치료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기공 열풍이 불던 1990년대, 외할아버지는 지푸라기라도 잡으려고 공원에서 각종 기공을 배우기 시작하셨지만 치매를 치료하실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외할아버지가 파룬따파 수련을 시작하셨는데 아주 빨리 회복되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외할아버지 심신의 변화를 보고 온 가족이 파룬따파가 좋다는 걸 느꼈습니다. 그때부터 우리 가족은 잇따라 대법 수련에 들어섰습니다.

어머니는 법을 얻기 전에 성격이 매우 급했고 할머니는 까다롭기로 소문난 분이라 무슨 일에든 다 참견하셨습니다. 요리할 때 기름을 좀 많이 쓰면 뭐라고 하시고, 설거지할 때 물을 좀 많이 써도 뭐하고 하시고, 집안일도 매일 옆에서 감시하셨습니다. 그때 어머니와 할머니의 관계는 매우 긴장했습니다. 어머니는 파룬따파를 수련한 후 매사에 진선인의 표준으로 자신을 요구하고 가족을 관심했으며 시부모님을 공경하셨습니다. 특히 할머니와의 관계도 화목해졌습니다. 한번은 할머니가 병에 걸려 바닥에 내려오지 못하고 대소변을 스스로 보실 수 없었는데 어머니는 불평 없이 할머니 대소변을 받고 목욕시켜드리고 빨래를 해드렸으며, 맛있는 음식도 해드렸습니다. 어머니의 반년 넘는 세심한 보살핌과 관심 끝에 할머니는 마침내 건강을 회복하셨습니다. 그때부터 할머니는 만나는 사람마다 “우리 며느리는 딸보다 더 가까워!”라고 칭찬하셨습니다.

우리 가족은 매일 아침 연공장에 가서 함께 연공하고, 돌아와서 함께 법 공부했습니다. 법공부한 후 교류하는 내용은 내가 오늘 잘하지 못한 부분은 무엇이고, 아직 제거하지 못한 집착은 무엇이며, 다른 사람을 배려하지 못한 부분은 무엇인지 등등입니다. 우리 각자는 자신도 모르게 변화했고 마음은 더욱 평화롭고 조용해졌습니다. 우리집도 따뜻하고 화목하며 행복해졌고 가족은 매일 파룬따파의 불광(佛光) 속에 젖어있었습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땐 정말 제 어린 시절 중 가장 행복한 시절이었습니다. 어머니가 자주 저를 데리고 법공부를 하셨기에 법에서 인간으로서 지켜야 할 도리와 도덕적 원칙을 알게 됐습니다. 그 당시 저는 진정으로 수련하지 않았지만 진선인의 씨앗이 제 마음속 깊은 곳에 조용히 묻혀서 어떻게 정직하고 착한 사람이 되는지 알게 됐습니다.

2. 고난 속에서 바른 믿음을 지키자 사부님께서 보호해주셔서 고난을 넘다

그러나 1999년 장쩌민 정권이 파룬궁 박해를 시작한 후 우리 가족의 행복한 삶은 갑자기 멈췄습니다. 대법에 대한 천지를 뒤덮을 듯한 비방과 모든 중생이 거짓말에 중독되어 위험에 처해 있는 사실에 직면하여, 우리 가족은 많은 대법 제자처럼 가혹한 박해 속에서도 위험과 압력을 무릅쓰고 용감하게 진실을 밝히고 진상을 알렸습니다. 제가 중학교 2학년이 되었을 때 어머니는 사람들에게 진상을 알렸다는 이유로 7년 형 선고받았습니다. 아버지는 속아 파출소에 가서 조서를 쓰고 불법적으로 구치소에 2달 넘게 갇혀 있었습니다. 집에는 저와 70이 넘는 외할아버지만 남게 됐습니다. 그때 저는 수련할 줄 몰랐고 어머니가 곁에 없는 상황에서 속인사회의 유혹에 점점 빠져들며 대법에서 멀어졌습니다. 하지만 마음속으로는 항상 대법의 아름다움을 알고 있었습니다.

어머니를 만나러 처음 감옥에 갔을 때가 떠오릅니다. 당시 저는 흐느끼며 울었고 어머니가 빨리 나오시길 바라면서도 그 순간 정념을 북돋아 드려야겠다는 생각에 “엄마, 전향(수련 포기)하시면 안 돼요. 정념으로 걸어 나오셔야 해요”라고 격려의 말을 건넸습니다. 어머니도 울먹이며 “알았어”라고 대답하셨습니다. 이후 어머니와 6년 반이나 만나지 못하게 될 줄은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신념을 버리지 않았던 어머니는 감옥에서 심한 고문을 당하셨습니다. 간수들은 바오자(包夾, 수감자로 이뤄진 밀착 감시원)를 시켜 어머니를 자지 못하게 했고, 추운 날 알몸으로 서 있게 해서 발이 검게 변할 정도였습니다. 찬물을 끼얹고 페트병에 물을 담아 눈을 내리쳐 눈이 부어오르고 앞니 두 개가 부러지기도 했습니다. 어머니는 3년 동안 독방에 갇혀 다른 사람과 접촉조차 하지 못했고, 하루 12시간씩 노역을 강요당하셨습니다. 결국 생명이 위독해지자 감옥 측은 책임을 회피하려 어머니를 병보석으로 풀어주었습니다. 집에 돌아와 법공부와 연공으로 몸이 조금 회복되어 가던 찰나, 현지 파출소의 무법 경찰들이 또다시 괴롭히고 위협하면서 병세가 급격히 악화되더니 끝내 세상을 떠나시고 말았습니다. 저는 그 후로도 한동안 밤마다 혼자 전등을 켜놓은 채 어머니를 그리워하며 마음 아파했습니다.

착하고 인자하신 어머니가 박해로 목숨을 잃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충직하고 정직한 아버지마저 신념을 지킨다는 이유로 다시 붙잡혀가셨습니다. 저는 슬픔과 분노가 끓어올라 불법 가택수색을 하러 온 경찰들에게 “우리 부모님이 진선인을 믿고 좋은 사람이 되려 했을 뿐인데 무슨 잘못이 있나요?”라며 따졌습니다. 경찰들은 저에게서 빌미를 찾아 모함할 구실을 만들려 했고, 불법 심문은 물론 인턴 중이던 직장에 가서 어떻게 하겠다고 위협까지 했습니다.

저는 단호한 어조로 말했습니다. “좋아요, 절 못살게 굴 테면 해보시죠. 어머니도 돌아가셨고 아버지도 당신들이 잡아갔으니 전 혼자 살든 죽든 상관없어요. 당신들과 함께 죽어도 좋다구요!” 제 확고한 태도에 경찰들도 뒤로 물러섰고 중요한 대법 자료들을 지켜낼 수 있었습니다.

아버지가 구금된 후 경찰은 우리집에 깡패들을 보내 다른 수련생들까지 붙잡으려 했습니다. 저는 수련생들을 연루시키면 안 된다는 생각에 쇼핑을 핑계로 집을 나섰습니다. 그들과 어떻게 연락할까 궁리하던 찰나, 마침 우리집에 법공부 하러 오시던 한 가족을 만나 사태를 알릴 수 있었습니다. 더 큰 피해를 막을 수 있도록 절묘하게 마련해주신 사부님께 그저 감사할 따름이었습니다.

이후 해외 수련생들의 도움으로 우리집을 감시하던 자들은 전화를 받았는데, 시민의 사택을 침입한 그들의 행위는 불법으로 반드시 책임을 추궁당할 거라는 경고였습니다. 상당한 압박을 느꼈는지 그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떠났습니다.

그즈음 집에는 외할아버지와 저, 단 두 사람만 남게 되었습니다. 너무 많은 일들에 놀라고 충격받은 할아버지는 치매 증상이 악화되어 대소변도 못 가리고 집을 나가면 길을 잃을 지경이 되셨습니다. 저는 할아버지를 돌보느라 한동안 휴직했고 삼촌이 퇴근 후 매일 들러주었습니다. 결국 삼촌도 간병인을 구해줬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신념을 지킨다는 이유로 삼촌마저 잡혀가 부당한 형을 선고받았습니다. 이렇게 할아버지와 저를 도와줄 유일한 친척마저 없어졌습니다.

어느 날 밤 꿈에 할아버지의 남자 간병인이 악한 마음을 품고 제 방문을 부수고 들어와 이불을 젖히는 모습이 선명하게 나타났습니다. 깨어나니 온몸에 식은땀이 흥건했습니다. 다음 날 집에 돌아가는 것이 두려워 한 아주머니 댁에서 하룻밤 묵었더니, 이튿날 아침 친절한 이웃이 찬바람 속에 서서 절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분은 “아가씨, 당분간 집에 들어가지 마세요. 당신네 집 그 남자 간병인이 아가씨한테 무슨 짓을 하려고 해요”라고 경고해주셨습니다.

제가 놀라서 어떻게 아셨냐고 묻자 이웃분은 사실을 털어놨습니다. 그 간병인은 성폭행 전과자로 6년간 감옥살이를 했던 자였던 겁니다. 근처 사람들과 얘기할 때도 제게 해코지를 하겠다고 떠벌리곤 했다고 합니다. 정의감이 있던 이 이웃은 제 방에 CCTV가 있으니 경솔히 행동하지 말라고 엄포를 놓기도 했다고 합니다. 어느 날은 그 간병인은 또 제 방문 자물쇠가 고장 나서 문만 밀어도 들어갈 수 있다고 했다며, 그의 태도로 봐선 이번엔 정말로 사고를 칠 작정인 것 같다고 하셨습니다.

온몸에 소름이 돋으면서도 한편으론 사부님께서 절 지켜주고 계심을 절실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간병인을 해고하고 외할아버지와 다시 단둘이 살게 되었습니다. 병든 할아버지의 식사며 옷 갈아입히기, 이부자리 정리까지 온갖 일을 도맡아 했습니다. 한동안 감히 전등을 끄지도 못한 채 밤을 지새웠고, 너무 무서울 땐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真善忍-진선인은 좋습니다)’를 염하곤 했습니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마음이 평온해져 잠이 들곤 했습니다.

저는 수련생의 도움으로 아버지에게 변호사를 선임해 드렸고, 그 변호사를 통해 사부님의 새로운 경문을 모두 아버지께 전해드렸습니다. 아버지께 확고한 마음을 갖고 감옥 안에서 절대 ‘전향’하지 말라고 당부드렸습니다. 제가 할아버지를 잘 돌볼 테니 걱정 마시라고도 했습니다. 그때 저는 비록 직접 법공부를 하진 않았지만 가족의 수련은 한결같이 확고하게 지지했습니다. 부모님이 자주 박해당한다고 해서 원망한 적도 없었습니다. 저는 대법에는 잘못이 없으며 부모님이 진선인을 믿고 좋은 사람이 되는 것에 문제가 없다는 걸 알고 있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옳고 그름, 바른 것과 사악한 것, 선과 악을 분별할 줄 알았던 것을 다행으로 여깁니다. 그래서 칠흑 같은 암운이 드리운 잔혹한 박해 속에서도 개인의 사심으로 부모님의 견고한 정념을 흔들지 않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수련생 아주머니의 도움으로 저는 실명으로 장쩌민을 고소하는 데 동참했고, 재판장에게 진심이 담긴 편지를 써서 우리 가족이 처한 상황을 알렸습니다. “어머니가 박해로 세상을 뜬 지 얼마 되지 않아 아버지마저 다시 잡혀가고, 집에는 돌봐줄 사람 없이 80세의 할아버지만 계신 상황입니다. 아버지는 그저 진선인을 믿고 좋은 사람이 되려 했을 뿐인데….” 그런데도 아버지는 결국 불법적으로 3년 형을 선고받고 먼 지방의 감옥에 수감되고 말았습니다. 그 기간 저는 매달 한 번씩 아버지를 면회하러 다녔습니다. 그 험난한 길을 얼마나 오갔는지 모릅니다.

2014년 늦가을, 유난히 추위가 일찍 찾아왔습니다. 난방비 납부 기한이 다가오는데 집안 구석구석을 뒤져도 카드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정신이 혼미해진 할아버지에겐 찾아달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저는 그 카드가 마지막 지푸라기처럼 느껴져 더는 고난을 견딜 자신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마치 정신이 번쩍 든 듯 할아버지가 “그 카드 찾는 거냐?”라고 물어보셨습니다. 결국 카드를 찾아 기한 내 난방비를 납부할 수 있었습니다. 눈물을 흘리며 또 한 번 사부님의 자비로운 보호에 감사드렸죠. 난관을 헤쳐 나갈 수 있도록 도와주신 사부님께 말로 다 할 수 없는 감사를 느꼈습니다.

2015년 어느 날, 육체적 정신적 고통 속에 지쳐가던 할아버지마저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아버지와 삼촌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다 눈을 감으신 겁니다. 하지만 더는 놀라거나 고통받지 않아도 되어서 그러신지 무척 평온해 보이셨습니다.

그런 고난과 역경 속에서 제 처지가 서글프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다른 젊은 여자들은 사탕과 꽃과 행복을 즐기며 청춘을 보내는데 나는 가장 좋은 시절에 가족과 이별하는 아픔 속에서 보내야 하다니.’ 그간 겪을 일 속에서 저는 인심의 변화와 세상의 각박함이 절실히 와 닿았습니다. 마음에 대법이 없었다면 그 암울한 시기를 결코 이겨내지 못했을 겁니다. 마음 깊이 남아있던 법리가 저를 지탱해준 덕분에 힘겨운 나날을 견뎌낼 수 있었습니다. 사부님의 가르침을 늘 되새기며 아무리 괴롭고 막막해도 나쁜 짓만큼은 하지 않겠다 다짐했습니다.

지금 저는 이 어려운 상황에서 저와 제 가족을 도와준 대법제자에게 감사를 표하고 싶습니다. 그분들은 우리에게 물질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사심 없이 도움을 주었습니다. 자주 찾아오시는 분도 계시고, 생활비를 가져다주시는 분도 계셨으며, 생필품 구매를 도와주시는 분도 계셨고, 아버지를 위해 변호사 선임을 도와주신 분도 계셨으며, 할아버지 간호를 도와주신 분도 계셨습니다. 어떤 분은 지금까지도 성씨며 이름이 뭔지도 모르고 심지어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분도 계십니다. 제가 곤경에 처했을 때 아무런 대가 없이 전심으로 도와주는 이들은 오로지 진선인을 믿는 대법제자뿐이란 걸 새삼 깨달았습니다. 저는 감개무량했습니다. 인간사회 곳곳에선 이익과 안위를 위해 다투는데, 오직 파룬궁수련생들만이 정토를 이루고 있음을 절감했습니다!

3. 우여곡절 끝에 속세의 꿈에서 깨어난 후 인연이 닿아 대법 수련을 시작하다

가정에서 겪은 고난과 사회에서 겪은 세태의 변화, 그리고 복잡한 인간관계 속에서 저는 한때 출세해 남들 앞에서 당당히 고개를 들 수 있어야만 인정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모든 힘을 쏟아부어 일에 매진했고, 뛰어난 성과를 내서 모두에게 인정받고 싶었습니다. 탁월한 업무 능력과 기회가 찾아와 곧 간부로 승진했고, 1년 만에 실적이 두 배 이상 늘었습니다. 이후에는 남 밑에서 일하는 것이 내키지 않아 직접 회사를 차려 상당한 수익을 올렸습니다. 그러나 저는 명예욕과 이익에 사로잡혀 점점 대법에서 멀어지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인생의 길은 예측할 수 없는 풍운과 화복이 교차합니다. 사업이 날로 번창하던 어느 날, 뜻하지 않은 재앙이 닥쳤습니다. 누군가의 거짓 신고로 사소한 일이 문제가 되어 현지 공안은 이를 빌미로 제게 거액을 뜯어내려 했습니다. 그들의 계획대로라면 저는 우선 유죄 판결을 받고 감옥에 가게 될 형편이었습니다. 한 친구가 공안 내부에 있는 친척에게 사건 해결을 부탁했지만 그 친척도 어쩔 수 없다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중국에선 누군가 길바닥에 떨어진 종이쪼가리를 주워 당신 손에 쥐어주며 범죄 증거라고 하면, 그것이 바로 범죄 증거가 되는 겁니다.” 이 말을 듣고서야 중국공산당의 사악함을 더욱 깨달았습니다! 갑작스럽게 닥친 이 재난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저는 대법을 떠난 지 오래되었지만 마음속으로는 늘 바른 일만 하리라 다짐해왔기에 불법을 저지르지는 않았습니다. 도둑질도 강탈도 하지 않고 오로지 자신의 노력으로 고생 끝에 번 돈인데, 어찌 이런 결과를 맞이해야 하는 걸까요?! 만약 정말 이 일로 감옥에 가게 된다면 아버지와 친척, 친구들을 어떻게 대면해야 할까요? 마음이 괴롭고 두려웠습니다.

절체절명의 그 순간, 문득 파룬따파 사부님이 떠올랐습니다. 간절한 마음으로 사부님께 빌었습니다. ‘사부님, 이 난관을 잘 넘길 수 있도록 도와주신다면 저는 다시는 마음을 동요하지 않고 대법을 잘 수련하겠습니다. 만약 이것이 제가 당연히 감내해야 할 고난이라면 저는 담담히 받아들이겠습니다.’

비록 당시에는 순수하지 못한 마음으로 소원을 빈 것이었지만 그래도 사부님의 크나큰 불은(佛恩)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전법륜』에서 하신 말씀과 같았습니다. ““불성이 나오면 시방세계(十方世界)를 진동한다.” 누가 보든지 모두 그를 도와주려 하며, 조건 없이 그를 도와준다.” 아마도 사부님께서는 저에게 아직 대법으로 돌아가 수련할 마음이 있음을 아시고 자비롭게 도와주신 것 같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기적처럼 사건에 전환이 생겼습니다. 다른 지역 경찰의 개입으로 현지 공안은 ‘사건 해결 계획’을 취소할 수밖에 없었고 저는 무사할 수 있었습니다. 이 일을 아는 사람들은 모두 믿기지 않는다는 반응이었지만, 저는 자비롭고 위대하신 사부님께서 보호해주셨기에 화를 면하고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음을 알았습니다. 사부님의 자비로운 제도에 감사드립니다! 그때부터 저는 확고하게 대법 수련을 시작했습니다.

사악한 중공의 박해로 제 행복했던 가정은 산산조각 났습니다. 가족을 잃은 슬픔과 외로움에 상처받아, 저는 늘 의지할 사람을 찾고 싶었습니다. 세 명의 남자친구와 만나봤지만 모두 원하는 결실을 맺지 못했습니다. 첫 번째 남자친구를 만날 때는 어머니가 박해로 돌아가시고 아버지마저 잡혀가셨을 때라, 그의 부모님이 저희 집안 사정을 아시고는 교제를 반대하셨습니다.

두 번째 남자친구는 제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 많은 도움을 주었기에 의지할 만한 사람을 만난 줄 알았습니다. 제가 대법 수련을 시작하자 처음에는 이해하지 못하다가 나중에는 묵인하는 태도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제가 밖에 나가 진상을 알리고 사람을 구하는 일을 도저히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그가 중생 중 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기에 저는 이렇게 진상을 알려주었습니다. “중공은 전국의 선전기구를 동원해 대법을 모함하고 우리의 호소 기회를 원천 봉쇄했어. 파룬궁수련생들이 분신자살한다는 거짓 선전이 온 나라를 뒤덮을 때, 분명 그것이 날조된 것임을 알면서도 대법의 은혜를 입은 사람으로서 어떻게 나서서 한마디 공정한 말도 하지 않을 수 있겠어? 만약 세인들이 거짓에 속아 불법(佛法)을 미워하고 악의 편에 선다면 그 생명은 위태로워질 거야. 지금 빈번한 천재지변과 각종 사고들은 모두 세인에 대한 경고야. 나는 진선인을 믿는 사람인데, 어찌 자신만 보호하려고 다른 이의 고통은 외면할 수 있겠어? 내가 진상을 알리러 나가는 것은 사람을 구하려는 거야….” 이 말을 듣고 남자친구도 더는 반대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어려서부터 파룬따파를 접했기에 진선인의 법리가 이미 마음에 뿌리내렸습니다. 사부님께서 해서는 안 된다고 하신 잘못은 결코 저지르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늘 간직해 왔습니다. 그래서 이성친구를 사귈 때도 미혼 남녀가 지켜야 할 선을 지키려고 노력했습니다. 제 남자친구는 요즘 같은 경박한 사회에서 저처럼 순수한 여성은 찾기 힘들다며 저를 매우 아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가치관 차이가 점점 벌어져 합의점을 찾지 못하자 결국 헤어지고 말았습니다.

세 번째 남자친구는 만난 지 보름 만에 파티가 끝난 후 음주운전을 하다 사고로 목숨을 잃었습니다. 이후에 섬뜩함을 느꼈습니다. 사실 그날 제가 남자친구와 함께 파티에 가기로 했었는데, 퇴근 후 너무 피곤해서 참석하지 않았기에 화를 면하게 된 것입니다. 자비로우신 사부님께서 또 한 번 저를 보호해주신 것임을 잘 알았습니다.

이 일을 통해 저는 인간 세상의 무상함을 통감했습니다. 인생에는 영원한 아름다움이란 없습니다. 사람의 몸을 얻기도 어려운데 오직 수련을 통해 반본귀진(返本歸眞, 진정한 자신의 본원으로 돌아감)의 길을 걷는 것만이 이 세상에 온 진정한 목적입니다. 중토(中土, 중국)에 태어나기도 쉽지 않고 정법(正法)을 만나기는 더욱 어려운데, 파룬따파를 배우고 정진하고 착실히 수련해야만 자신의 진정한 집으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그것이야말로 생명의 영원한 아름다움입니다! 이에 저는 주저 없이 이 수련의 길을 계속 걸어가기로 더욱 굳게 마음먹었습니다.

4. 뜻이 맞는 사람과 함께 정진하며 원망 없이 초지일관하다

기회와 인연이 딱 들어맞아 저는 수련생인 지금의 남편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우리 둘 다 분명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도 마치 수십 년을 함께 해온 것처럼 친숙하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유유한 만세의 인연은 대법이 한 줄로 이끈 것이네”(홍음2-신의 길은 어렵나니)임을 실감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저와 남편 사이의 부부 인연이자 더욱 신성한 법연(法緣)인 것 같습니다.

남편은 심성이 아주 좋은 사람입니다. 그는 늘 하늘을 공경하고 신을 믿으며, 선량하고 본분을 지키는 한편 전통적인 도덕관을 굳건히 지켰습니다. 파룬따파 수련을 시작한 후로는 자신에게 더욱 엄격하게 요구하면서도 저를 너그럽게 감싸주고 세심하게 배려해주었습니다. 우리는 여러모로 서로의 부족한 점을 보완해주는 관계였기에 결혼 후 매우 조화롭게 잘 지냈습니다.

저와 남편은 대화를 나누지 않아도 많은 부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어서 여러 일을 의논하지 않고도 의견 일치를 보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우리는 모두 진선인의 표준으로 자신을 규율하며 상호 존중하고 사랑했으며, 서로를 귀한 손님 대하듯 공경했습니다. 수련 중에는 서로 잘못된 점을 고쳐주면서 함께 정진했는데, 그 과정이 너무나 평화롭고 아름다웠습니다. 왜냐하면 어떤 조건 없이 오로지 상대방을 위해 생각하는 마음, 속인의 탐욕이나 점유욕을 초월한 경지였기 때문입니다.

우리 사이에는 속세의 욕망에서 벗어난 맑고 깨끗한 수련 상태가 자리 잡고 있었는데, 이는 오직 진정으로 수련하는 사람만이 체험할 수 있는 신성하고 아름다운 경지입니다. 주변 사람들 눈에는 우리가 마치 신선 부부처럼 비쳤나 봅니다. 시어머니께서도 우리의 모습을 보시고는 “너희가 이렇게 화목하게 사는 걸 보니 마음이 놓인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모든 게 다 사부님의 세심한 배려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부님께서는 제가 진정으로 수련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음을 아시고 뜻이 통하는 좋은 배우자를 만나게 해주셨을 뿐만 아니라, 함께 정진하며 서로 도와가며 수련의 길을 걸어갈 수 있도록 이끌어 주셨습니다. 다시 한번 사부님의 자비로운 제도와 안배에 감사드립니다.

남편과 저는 2021년에 비로소 파룬따파 수련에 정식으로 입문했습니다. 비록 수련 기한은 길지 않지만, 우리는 늘 자신의 책임과 사명을 명심하며 시간을 쪼개어 진상을 알리고 사람들을 구하는 일에 매진하고 있습니다. 중공 악당이 거짓말로 세인들을 미혹하고 해치고 있기에 우리는 반드시 진상을 전해 그들의 마음을 정화해야 합니다.

우리 부부는 서로 협력하여 지역 주민들에게 진상 자료를 전했는데, 주변의 크고 작은 아파트 단지는 거의 다 돌아다녔습니다. 밤새 20~30층 높이의 아파트를 오르내려도 전혀 힘들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진상을 모르는 사람의 악의적인 신고로 인해 저와 남편은 부당하게 납치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계속 굳건한 정념으로 사악한 세력이 우리의 믿음을 꺾으려는 시도를 물리쳤고, 부당한 구금 기간에도 중생 제도의 사명을 잊지 않고 진상을 전파해 수많은 인연 있는 사람들이 진상을 알게 되고 구원받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 부부는 함께 정념정행(正念正行)하여 부당한 감옥살이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이번에 직접 박해의 부당함을 몸소 체험하면서 수련에 대한 신념은 더욱 확고해졌습니다. 사악한 세력의 박해로는 결코 수련인의 바른 믿음을 꺾을 수 없습니다. 파룬따파는 불법(佛法)으로서, 중공 악당의 그 어떤 수단으로도 결코 타도할 수 없습니다. 비바람 속에서도 우리 가족은 한결같이 원망과 후회 없이 대법(大法)을 믿는 마음을 굳건히 지켜갈 것입니다.

 

원문발표: 2024년 5월 29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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