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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3 원고 투고 과정에서 자아를 내려놓다

글/ 중국 대법제자

[명혜망] 저는 62세이며, 주변에는 70세 이상의 나이 든 수련생들이 많이 있습니다. 대부분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초등학교 졸업 수준이라 글을 쓰거나 구두점을 제대로 활용할 줄 모릅니다. 저 역시 초등학교밖에 졸업하지 못했고 글쓰기가 서툴며 심지어 구두점 사용조차 미숙합니다. 올해 5월 13일에 원고모집 공고가 발표된 후, 저는 이번에는 꼭 참가하고 싶었습니다. 이것이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수련의 길에서 주신 귀중한 제고의 기회라고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저의 평범한 수련 과정에는 글로 남길 만한 내용이 없었기에 사부님께 감사하는 마음을 적어 인터넷에 올려줄 수 있는 수련생에게 보냈습니다. 그러자 그 수련생이 이렇게 답장을 보내왔습니다. “당신의 글이 좀 형식적인 것 같아요. 20년 넘게 수련하면서 쓸 게 없다니 말이 안 되잖아요.” 수련생이 그렇게 말해서 저는 다시 글을 써보기로 했습니다. 원고 요건을 꼼꼼히 살펴보고 글을 완성한 뒤 수련생에게 보냈더니, 이번에는 부정적인 내용이 너무 많다며 몇 가지 힌트를 주면서 다시 수정할 수 있겠냐고 물었습니다. 저는 수련생의 조언에 따라 원고를 또 한 번 손보고 보냈는데, 이번에는 아무 말 없이 명혜망에 제출하는 것을 도와주었습니다.

이번 원고 교정 과정을 통해 저는 제 안의 사람의 관념이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음을 절실히 느꼈습니다. 아직 사부님과 법에 대한 믿음이 100%가 아니고, 진정한 자아와 거짓 자아를 분명히 구분 짓지 못하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글을 쓰는 과정 자체가 사람의 관념을 부단히 변화시키고, 그동안 인식하지 못했던 집착심을 찾아내는 과정임을 깊이 느꼈습니다. 이에 저는 주변 수련생들에게도 이번 5·13 원고모집에 참여하도록 독려하여 함께 제고하고 승화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수련생들에게 제 뜻을 전하자 모두들 기뻐하며 참가하고 싶다고 했지만 글쓰기를 도와줄 사람이 없다는 걸 안타까워했습니다. 한 수련생은 “사부님께서 우리를 도우라고 당신을 보내신 게 분명해요. 우리는 그동안 한 번도 글을 써본 적이 없거든요”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저도 글 잘 쓰는 편이 아닙니다. 그저 자료를 정리해서 온라인에 올려주시는 수련생 분들을 도울 수 있을 뿐이에요”라고 답했습니다. 그렇게 저는 수련생들과 의논하고 교류하기 시작했고 그 과정에서 많은 사람마음을 닦아내고 평소에는 발견하지 못했던 집착심을 찾아낼 수 있었습니다. 자아를 내려놓고 진정한 자신과 감사함을 되찾을 수 있었습니다.

저와 같은 법공부 팀에 속한 수련생 A는 원고를 쓰겠다고 했습니다. 공고가 발표된 후 저는 “우리 어서 글쓰기를 시작해요. 명혜망 수련생들을 생각해서라도 그분들이 원고 정리할 시간을 좀 더 드리는 게 좋겠어요”라고 말했습니다. 한 달 뒤 그 수련생에게 글을 썼냐고 물었더니 아직 시작도 못 했다며 영감이 없어 도무지 쓸 수가 없다고 토로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마감일이 앞당겨졌어요. 제가 이곳 수련생들 원고를 다 정리하고 고향에 가서 그쪽 수련생들 것도 좀 도와줘야겠어요. 당신 것은 다 쓰면 다른 수련생한테 부탁해서 올려달라고 하세요”라고 말했습니다.

고향에서 돌아왔을 때는 벌써 4월 10일이 되어 마감까지 5일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집에서 고향 수련생들 원고 정리로 바쁜데 A에게서 연락이 와 자기 집으로 좀 와달라고 했습니다. “알겠어요. 오늘은 시간이 없으니 내일 가지요.” 저는 그 수련생 집까지 전동 스쿠터로 왕복 2시간이나 걸리기 때문에 그렇게 말했습니다.

이튿날 A의 집에 갔더니 자기 원고를 수련생 C에게 보냈다고 하면서, C가 원고를 손봤는데 자기 마음에 들지 않아 앞뒤로 많이 고쳤다고 합니다. 그리고 C에게 다시 올려달라고 부탁했더니 같은 원고를 두 번 올릴 순 없다고 해서 저에게 온 거라고 했습니다. 저는 “C의 말이 맞아요. 별로 큰 차이가 없다면 다시 올리는 건 좋지 않겠어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A는 “제가 또 엄청 많이 손봤으니 다시 한번 올려주면 안 될까요? 가급적 제 글을 그대로 두세요. 이건 제가 사부님께 드리는 숙제예요. 고치면 제 글이 아니게 되니까요”라고 했습니다. 저는 다른 일이 있어서 원고는 읽어보지도 않고 그냥 가져왔습니다. 집에 돌아와 자세히 살펴보니 그대로는 도저히 올릴 수가 없었고, 그대로 올리면 무책임한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A가 이 원고를 쓰느라 얼마나 애를 썼는지는 알 것 같았습니다. 그녀는 최선을 다해 작성한 원고가 사부님께 만족스러운 답안지가 되리라 여기고 있었습니다. 좋고 나쁨을 떠나 사부님께서는 우리가 일하면서 진심을 다하는지 보고 계십니다. 제가 만약 A의 원고 제출을 도와주지 않으면 그녀는 많이 실망할 것이고, 그녀에게 상처 주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그녀 나름대로 온 힘을 쏟았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A의 자아가 너무 강하다고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당신들이 마주친 일마다 모두 우연한 것이 아닌데, 매 한 가지 일이 모두 역사상에서 바로 그렇게 배치한 것일 가능성이 아주 크다. 그러므로 당신들이 한 일을 가벼이 보지 말라. 매 한 가지 일이 보기에는 모두 속인의 일과 같고, 경중이 없는 것 같지만 다른 공간에서는 오히려 거대한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각지 설법 11-2010년 뉴욕법회 설법)

법에서 저는 수련생의 표현이 우연이 아님을 깨달았고 이 기회를 빌려 반드시 스스로를 수련해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A는 제 모습을 비추는 거울과도 같습니다. 그녀가 자아를 고집하는 걸 보면서 저 역시 자아를 내려놓아야 함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A의 원고를 그녀가 원하는 대로 있는 그대로 타이핑해 제 협력 파트너인 수련생 B에게 보내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그다음 날, 저는 A를 다시 찾아가 그녀가 쓴 원고 그대로를 보여주며 내용에 손대지 않았음을 알려주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자아에 매몰되어선 안 됩니다. 우리가 이 일을 하는 건 대법을 널리 알리고자 함이고, 정체(整體) 속에서 자신을 수련하는 과정이에요. 그리고 B에게 당신 원고를 보냈어요. 저는 항상 원고 정리가 끝나면 B에게 보내서 다시 손본 후 명혜망에 제출해달라고 부탁하거든요.” 그러자 A는 “안 돼요, B에게 절대로 바꾸지 말라고 해줘요. 제가 쓴 글에 쓸데없는 말은 한마디도 없어요”라고 했습니다. 순간 마음이 좀 불편해졌습니다. A의 고집이 너무 세다고 여겨졌습니다. ‘설마 명혜망 수련생들한테까지 당신 글을 건드리지 말라고 해야 해요?’라는 생각까지 들더군요. 그러나 곧바로 이건 쟁투심임을 깨닫고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B가 정리를 끝내면 다시 얘기하지요”라는 말만 남기고 돌아왔습니다.

집에 와서 저는 A가 했던 말을 그대로 B에게 전했습니다. 그러면서 B에게 “그냥 A의 원고는 신경 쓰지 마세요. 어차피 이미 한 번 올렸어요”라고 하면서 저로서는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도 마음 한구석이 찜찜했습니다. 내심 ‘왜 이렇게 불편할까?’를 되짚어보니 A의 행동이 모두 가상임을 알게 됐습니다. 수련이 잘된 면은 보이지 않고 작은 사람마음만 드러나 저의 제고를 도와주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 모든 게 제 수련의 길을 열어주는 과정 아닐까요? 수련생의 부족한 면은 보지 말고 자신을 수련해야 합니다. 왜 불편해하며 먼 길을 오가며 시간만 낭비한다고 생각했을까요? 저는 항상 ‘무슨 일을 하든 모두 나 자신을 위해 하는 것’이라고 말하지 않았나요? 이것이야말로 겉과 속이 다른 이중성 아닙니까? 여기까지 생각하니 더는 마음에 불편함이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B가 수정을 마친 원고를 저에게 보내주었습니다. B는 “A의 원고를 한 글자도 손대지 않기란 불가능했어요. 제가 할 수 있는 건 여기까지예요. 이걸 명혜망에 올릴지 말지는 당신이 결정하세요”라고 했습니다. 읽어보니 B가 정말 잘 정리해주었더군요. 그냥 이대로 명혜망에 올리면 A를 다시 만날 필요도 없겠다 싶었습니다. 하지만 수련에 사소한 것은 없습니다. 반드시 착실하게 임해야지 얼버무려선 안 됩니다. 저는 B가 수정한 원고를 출력해 전동 스쿠터를 타고 A의 집으로 향했습니다.

이번에는 A에게 책임감을 갖고 그저 자아만 고집하게 두진 않으려 했습니다. 다른 이들처럼 수련 층차를 높여야 할 때입니다. 그래서 A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오늘이 벌써 13일이에요. 더 늦으면 시간이 없어요. B가 잘 다듬어줬으니 한번 보세요. 괜찮다 싶으시면 제가 명혜망에 올리는 걸 도와드릴게요.” 그러자 A가 “사실 고칠 것도 없어요”라고 하기에 저는 “그건 당신 생각이고, 수련인은 자신이 하는 일의 옳고 그름을 법의 기준으로 가늠해야 해요. 무슨 일이든 책임감 있게 해야죠”라고 타일렀습니다. 그녀가 원고를 한참 들여다보더니 “사실 이 문장이랑 이 단어 두 개는 빼면 안 돼요”라고 하는 겁니다. 나는 오타만 지적해달라고 했고, 동의하면 이대로 글을 올리고 동의하지 않으면 더 이상 도울 수 있는 일은 없다고 못 박았습니다.

그런데 원고를 다 읽은 A가 돌연 태도를 바꾸더니 “B가 너무 잘 다듬어줬어요. 정말 고마워요. 그 수련생에게 꼭 감사의 인사 전해주세요!”라고 하는 게 아니겠습니까. 저는 “우리가 글을 쓰는 건 발표 여부가 중요한 게 아니에요. 이 과정에서 드러난 사람마음을 없애는 게 제일 중요하죠. 제가 정리를 도운 수련생 중 두 분이 글을 건드리지 말라고 하더군요. 당신이 그중 한 분이에요. 하지만 당신들 덕분에 저도 자아를 찾아낼 수 있었어요. 저만 옳고 남은 다 모른다는 그 독선, 우월감, 질투심이 드러났거든요…”라고 말하는데 A가 끼어들었습니다. “그럼 당신은 정말 제게 감사해야겠네요!” 저는 “당연하죠. 진심으로 고마워요”라고 화답했고, 그녀는 “앞으로는 저도 이 자아를 없애도록 주의해야겠어요”라고 말했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마음이 몹시 가벼워졌습니다. 제고할 기회를 준 수련생들에게 마음속으로 깊이 감사드렸습니다.

돌이켜보니 A와의 대화에서 제 언행에 선의가 부족했고 말투도 강압적이었습니다. 표면상으로는 상대를 위한다고 하면서도 잠재의식 속에는 거만함과 공산당 문화의 잔재인 자신만 옳다는 독선과 강요가 남아있었던 것입니다. 수련인의 자비는커녕 진정한 선(善)조차 실천하지 못했습니다.

법의 요구에 비해 아직 너무나 부족한 제 수련 상태를 절감했습니다. 사부님께서 거대한 감당으로 우리에게 마련해주신 귀중한 시간을 소중히 여기고, 대법에 부합하지 않는 일사일념을 모두 제거해 순수하고 선량한 진아(眞我)를 되찾겠습니다. 오직 자신을 잘 수련해야만 진정으로 정법을 도울 수 있고 마땅히 짊어져야 할 책임을 완수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존의 고심하신 배치에 감사드리며 제고의 기회를 주신 수련생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또한 성심껏 원고 정리를 도와주신 수련생분들께도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법에 어긋나는 점이 있다면 많은 지적 부탁드립니다.

허스(合十)

 

원문발표: 2024년 6월 2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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