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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축 5.13] 대법 수련을 통해 무신론을 철저히 버리다

글/ 중국 대법제자

[명혜망] 시골에서 태어난 저는 어릴 적부터 어른들이 들려주시는 신화 이야기를 즐겨 들었습니다. 여름밤 밖에서 선선한 바람을 맞으며 변화무쌍한 하늘의 구름을 보면 늘 사색에 잠기곤 했죠. ‘하늘에는 정말 신선이 살고 있을까? 그들은 어떤 모습일까? 달나라에 정말 항아와 옥토끼가 있을까?’ 하는 생각에 빠지곤 했습니다. 또 ‘서유기’나 ‘나타 이야기’ 같은 신화를 소재로 한 이야기는 몇 번을 봐도 질리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학교에 다니면서 선생님들께 “신은 존재하지 않고 보살상은 진흙으로 빚어낸 것이며, 운명을 하늘에 맡기는 것은 지배계급이 민중을 마비시키려는 아편과도 같은 봉건적 미신에 불과해. 사람은 평생 열심히 노력해야만 무언가를 얻을 수 있어”라는 말씀을 듣게 되었습니다. 어린 시절 음악 시간에 배운 ‘인터내셔널가’의 가사 중 “애초에 어떤 구세주도 없었으며 신선이나 황제도 믿지 않았네”라는 구절이 머릿속에 깊이 각인되면서 어린 마음속에서 서서히 무신론의 씨앗이 자라나기 시작했고, 성인이 되어서는 완전한 무신론자가 되고 말았습니다. 설이나 명절이 되면 어머니가 향을 피우고 절을 하며 하늘과 땅에 제사를 지내시는 모습을 보고 속으로 어머니의 무지함을 비웃곤 했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교사가 된 후로는 명예와 이익을 좇아 분주히 살아갔습니다. 허명을 위해 제자들을 일찍 등교시키고 늦게까지 남게 했으며, 매일 숙제를 잔뜩 내주면서도 아이들의 심신 건강이나 학부모들의 마음은 아랑곳하지 않았습니다. 모범교사가 되려고 교육청에 가서 교장 선생님을 고발하기도 했고, 승진을 위해서라면 동료들과의 관계도 망칠 수 있었습니다. 일상에서는 “자신을 위하지 않으면 하늘이 벌하고 땅이 멸할 것”이라는 말을 좌우명 삼아 살았고 인과응보의 천리를 믿지 않았습니다. 직장에서는 “네가 날 건드리지 않으면 나도 널 건드리지 않겠지만, 네가 날 건드리면 나는 반드시 널 건드릴 것”이라는 투쟁 이념을 갖고 늘 피곤하고 힘겹게 살아갔습니다.

1. 갑자기 불치병에 걸리다

인생의 길흉화복은 변화무쌍한 것처럼, 1998년 여름 출산휴가를 보내던 중 어느 날 갑자기 허리와 오른쪽 무릎 아래가 심하게 아프기 시작했습니다. 너무 아파서 견딜 수가 없었고 밤에는 잠도 잘 수 없었죠. 당시에는 현대의학을 굳게 믿고 있었기에 과학이 이토록 발달한 마당에 병원에서는 분명 제 병을 고쳐줄 수 있으리라 여겼습니다. 그래서 이곳저곳 다니며 치료를 받아 보았습니다. 검사를 하고 전기치료도 받고 마사지와 파스, 약 등 안 해본 게 없었습니다. 좋다는 수입약까지 구해 먹어보며 적잖은 돈도 썼지만 고통은 조금도 가시지 않고 오히려 점점 더 심해져만 갔습니다.

점차 허리를 펴기조차 어려워졌고 제대로 걸을 수도 없게 되어 지팡이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침대에 앉아있을 때는 오른쪽 다리를 쭉 펴거나 옆으로 벌릴 수밖에 없었고, 왼쪽으로 몸을 굽히거나 가부좌를 틀 수 없었습니다. 몸도 점점 변형되어 갔습니다. 상체 전체가 왼쪽으로 기울어지면서 뒤틀리고, 왼쪽 어깨는 처지고 오른쪽 어깨는 올라갔습니다. 곁에 있는 어린 아이를 바라보며 고통에 절망하여 눈물로 세월을 보냈으며, 이 고통의 나날이 과연 언제쯤 끝날지 몰랐습니다.

2. 기쁘게 대법을 만나 심신이 편해지다

그러던 어느 날, 언니 직장의 파룬궁수련생이 제가 중병에 시달리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는 언니에게 수련서 ‘전법륜(轉法輪)’을 빌려주며 제게 전해달라고 했습니다. 언니는 집에 와서 아무 말 없이 그 책을 제 침대맡에 놓고 갔습니다. 별생각 없이 책을 집어 들어 펼쳐보니 책 속 저자의 사진이 눈에 들어왔고 그 순간 묘한 친근감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단숨에 ‘전법륜’을 다 읽어버렸습니다. 진귀한 보물을 얻은 것 같았지만 왜 이제야 만났는지 너무나 아쉬웠습니다.

저는 책을 통해 많은 이치를 깨닫게 됐고 인생의 진정한 목적이 바로 반본귀진(返本歸眞), 즉 근본으로 돌아가 자신의 참모습을 되찾는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또 사람이 선행을 하면 백색물질인 덕(德)을, 악행을 저지르면 흑색물질인 업력(業力)을 얻는다는 것과, 덕은 복과 수명을 가져다주는 반면, 업력은 재난을 불러온다는 것도 알게 됐습니다. 사람이 겪는 온갖 고통과 질병은 모두 자신의 업력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깨닫자, 나쁜 짓을 하면 결코 자신에게 좋을 리 없다는 깨달음도 얻었습니다. 아울러 삶에서 무엇을 얻고 잃는지에 대해서도 명확해졌습니다. 저는 책에서 가르치는 대로 진선인(真·善·忍)을 수련하고 좋은 사람이 되어 최후에는 반본귀진 하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그랬더니 신기하게도 ‘전법륜’을 다 읽은 후 어느새 그토록 견디기 힘들었던 몸의 고통이 사라지고 허리를 곧게 펼 수 있게 됐으며, 걸을 수 있을 뿐 아니라 자전거도 탈 수 있게 됐습니다. 몸이 왼쪽으로 기울어진 것도 조금씩 바로잡히고 있었죠. 게다가 오랫동안 앓아왔던 위장병도 나아 예전엔 감히 먹지 못하던 음식도 먹을 수 있게 되자 너무나 감격스러웠습니다.

제 몸의 변화를 지켜보던 남편은 제가 대법을 수련하는 것을 적극 지지했고 심지어 베이징에 가서 대법 책을 전부 사 왔습니다. 집에 돌아와서는 깨끗한 흰 종이로 한 권 한 권 겉표지를 씌워주고 위에는 책 이름을 또박또박 써주었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매일 밤 법공부를 하며 마음이 점점 넓어짐을 느꼈고 새벽 4시면 일어나 연공을 했습니다. 여름 낮에도 한 번도 낮잠을 잔 적이 없었고 기력이 충만해 온몸에 힘이 넘쳤습니다.

지금까지 벌써 파룬궁을 수련한 지 26년이 됐습니다. 그동안 약 한 알 먹어본 적 없고 주사 한 대 맞아본 적 없으며 입원은 꿈에도 해본 적 없습니다. 대법은 제게 건강한 몸을 주셨을 뿐만 아니라 명예와 이익을 담담히 바라보게 해주었습니다. 지금은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자유롭고 평화로운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3. 아들이 내 수련으로 혜택을 보다

사부님께서 ‘전법륜(轉法輪)’에서 말씀하신 “한 사람이 연공(煉功)하면 다른 사람은 이익을 얻는다”고 하셨는데 이 점은 제가 몸소 체험한 바입니다.

아들이 세 살 되기 전에 사부님께서는 세 차례나 아들의 몸을 정화해 주셨습니다. 첫 번째는 아들이 여덟 달 됐을 때였습니다. 어느 날 아침, 곤히 자던 아들이 갑자기 엉엉 울며 보채기 시작했는데 한 5분쯤 지나자 아들 왼쪽 귀에서 고름이 왕왕 쏟아져 나오는 게 보였습니다.(생후 두 달 때 아들은 중이염을 앓은 적이 있었음) 저는 급히 면봉을 찾으러 갔다 와 보니 아들은 이미 울음을 그치고 다시 잠들어 있었습니다. 귀를 살펴보니 고름은 자취도 없이 사라지고 깨끗이 나아 있었습니다.

두 번째는 돌이 갓 지난 때였습니다. 아들에게 설사가 나기 시작하더니 하루에 대여섯 번씩 변을 보는 데다 꼬박 닷새를 지속했습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아들은 아무 탈이 없이 여느 때처럼 잘 먹고 잘 놀고 잘 자더니 엿새째 되던 날 설사가 싹 그쳐버렸습니다.

세 번째는 아들이 두 살 반쯤 되었을 때 있었던 일입니다. 아들 양쪽 눈꺼풀 위에 갑자기 메추리알만 한 혹이 하나씩 솟아 두 눈이 가느다란 실눈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런데도 아들은 가렵다고 긁지도 않고 칭얼거리지도 않은 채 늘 그랬듯 신나게 뛰어놀았습니다. 그때 누군가는 혹 안에 덩어리가 있을 수 있으니 수술을 해야 할 거라고 했습니다. 잘못하다간 흉터가 남을 수도 있다고 했습니다. 또 누군가는 혹에 물이 찼을 테니 어서 병원에 가 수술을 받아야 한다고, 늦추면 안 된다고들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조금도 마음이 동요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보름쯤 지났는데 아들 양쪽 눈꺼풀의 혹은 어느새 사라져 말끔히 나았습니다.

아들을 통해 겪은 이 세 가지 신기한 일은 대법의 위력을 다시금 실감케 해주었고, 대법과 사부님을 향한 바른 믿음 역시 더욱 공고해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4. 교통사고에서 대법의 가호로 살아나다

어느 겨울날 아침, 늦잠을 자서 일어나자마자 허둥지둥 아침을 먹고 패딩을 걸친 채 자전거에 올라탔습니다. 출근할 시간이 다 되어 서둘러야 했습니다. 전방에 사거리가 나타났는데 도로변에 주차된 대형 트럭이 시야를 가로막고 있었습니다. 저는 왼쪽으로 꺾어야 했는데 (그때 새로 난 길이라 신호등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너무 급한 나머지 지름길을 택하려고 트럭 뒤편에서 꺾어 들어갔습니다.

그때 귓가에 ‘자전거를 버려!’라는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그때는 그 길에 저 혼자밖에 없었고 앞으로 닥칠 위험도 전혀 예감하지 못했었습니다.) 그 목소리에 저도 모르게 반응하고 보니 제가 이미 길가에 서 있더군요. 자전거에서 어떻게 내렸는지도 모르게 말입니다. 자전거는 관성을 따라 앞으로 나아갔고 바로 그 순간 맞은편에서 또 다른 대형 트럭이 미친 듯이 달려와 제 앞가슴을 스쳐 지나가며 자전거를 덮쳐버렸습니다.

기사는 급히 브레이크를 밟고 차에서 뛰어내렸습니다. 겁에 질린 그는 “아주머니, 괜찮으세요? 어디 다치신 데는 없죠? 병원에 모시고 가야 하는데…”라고 물었습니다. 그 순간 제 목숨을 구해주신 분이 바로 사부님이심을 깨달았습니다. 사부님이 아니었다면 저는 그 자리에서 즉사했을 겁니다. 그래서 저는 평온한 어조로 기사에게 말했습니다. “아뇨, 괜찮습니다. 저는 아무 이상 없으니 걱정 마시고 그냥 가세요.”

5. 사부님께서 보호해 주셔 검은 소굴을 벗어나다

1999년 7월, 중공 우두머리 장쩌민은 당시 파룬궁수련자 수가 공산당 당원 수보다 많아진 것에 대한 질투심에 사로잡혀 중국 전역에서 광적으로 파룬궁 탄압을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선량하고 죄 없는 수많은 파룬궁수련생들이 세뇌반과 정신병원, 노동수용소, 감옥 등으로 끌려가 ‘전향(수련 포기)’을 강요당했습니다.

저 역시 진실을 말하고 진선인(真·善·忍)에 대한 믿음을 저버리지 않아 박해를 받았습니다. 2001년, 현지 ‘610 사무실(파룬궁 탄압기구)’ 직원들에 의해 납치돼 세뇌반에 끌려갔고 거의 4년간 불법적으로 감금되었습니다.

세뇌반에서 그들은 날마다 우리에게 대법을 비방하는 서적과 CCTV ‘초점 인터뷰’ 특집에서 만들어낸 ‘천안문 분신자살’ 날조극을 비롯해 파룬궁을 중상모략하는 가짜 영상들을 강제로 시청하게 했습니다. 우리에게 그 가짜 선전 내용들을 받아들이고 파룬궁을 비판하는 글을 쓰라고 강요했습니다. 이에 굴복하지 않으면 갖은 방법으로 고문하고 괴롭혔습니다. 그들은 매일 우리를 감옥과 다름없는 방에 가둬두고(창문과 복도를 철조망과 쇠창살을 용접함) 가족들과의 면회조차 끊어버렸죠. 오히려 가족들에겐 마치 우리가 집으로 돌아가길 거부하고 가족도 돌보지 않는, 인정도 없는 사람들로 날조해 가족들이 파룬궁과 우리를 증오하도록 만들었습니다.

화장실에 가는 것조차 통제하며 방 안에서 용변을 보게 한 뒤 우리 손으로 직접 변기통을 들고 밖에 나가 버리게 했습니다. (반나절에 한 번씩 변기통을 비우게 했죠.) 겨울엔 혹한에 얼어붙게 하고 여름엔 찌는 듯한 폭염에 시달리게 했습니다. 작열하는 태양 아래서 우리에게 모래주머니를 들고 운동장을 뛰게 하면서 그걸 ‘신체 단련’이라 우겼습니다. 더운물 한 모금 주지 않고 목욕도 시키지 않았으며, 굶주림에 시달리게 하면서도 터무니없는 식대를 내라 강요했습니다. 급기야 (직장이 있는) 파룬궁수련생들의 월급마저 몽땅 끊어버렸습니다. 마지막엔 더는 우릴 어찌할 도리가 없자 잠조차 재우지 않고 사흘 밤낮을 꼬박 차가운 시멘트 바닥에 앉아있게 했습니다. 조는 눈치만 보여도 매질이 따랐습니다. 직원들은 3교대로 돌아가며 우릴 감시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저는 한 수련생과 함께 탈출을 결심했습니다. 그 수련생은 연공을 고수한다는 이유로 50번도 넘게 심한 구타를 당했던 분이었습니다. 사부님의 가호 속에 기적처럼 자물쇠를 따고 몇 번의 우여곡절 끝에 우리는 마침내 4층 건물에서 뛰어내려 1층 안마당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높은 담장을 넘어 밖으로 빠져나왔는데, 놀랍게도 바로 담장 밖에 인력거 한 대가 서 있었습니다. 달빛에 비친 인력거 위에는 중년 남자가 앉아있었습니다. 더 생각할 여유도 없이 우리는 그 인력거를 타고 시내를 벗어났습니다.

인력거에서 내리자마자 갑자기 뒤에서 자동차 한 대가 다가와 우리 곁에 멈춰 섰습니다. 우리는 또다시 순조롭게 그 차에 올라탈 수 있었습니다. 차에서 내린 후 기사에게 고마움을 표하고 우린 도로를 따라 걷기 시작했습니다.

그 길에 요금소가 두 군데나 있었다는 건 우리도 몰랐던 사실입니다. 첫 번째 요금소에서 200미터쯤 떨어진 곳에 다다랐을 때, 불이 확 꺼지더니 길에 있던 경찰들이 모두 요금소 안으로 들어가 전기 설비를 점검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우린 아무 탈 없이 그들을 지나쳤고 200미터쯤 걸어간 후에야 다시 불이 켜졌습니다.

두 번째 요금소에 이를 즈음에도 같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200미터 정도 앞에서 갑자기 정전이 일어나 경찰들이 모두 요금소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우리가 그곳을 무사히 통과하고 200여 미터를 더 걸었을 때 불이 또다시 들어왔습니다. 그렇게 두 차례 갑작스러운 정전 덕분에 우리는 요금소의 감시카메라 망을 피해 무사히 빠져나올 수 있었습니다.

날이 밝아오기 시작해 더는 대로로는 갈 수 없었습니다. 시외로 나가기로 마음먹고 택시를 잡기 위해 근처 마을로 들어섰습니다. 마침 대문이 열려있는 집이 있어 들어가 사정을 말씀드렸더니, 그 집 여주인이 하시는 말씀이 온 마을에 택시가 고작 두 대밖에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한 대는 자기 집 것이고 다른 한 대는 이웃집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안타깝게도 자기 집 택시는 고장 나 먼 데 가기는 어렵다며 이웃집 문을 두드려 택시를 불러주셨습니다. 이 여주인의 도움으로 우리는 순조롭게 택시를 타고 다른 지역에 사는 수련생 집으로 향할 수 있었습니다. 그날 밤 탈출 전 과정은 단 1분의 지체도, 단 한 걸음의 헛걸음도 없이 신기할 정도로 순조롭게 이뤄졌습니다.

다른 지역 수련생 집에 도착해서야 우리는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습니다. 그 수련생이 어떻게 탈출했냐고 묻자 우리는 식사하면서 그날 밤의 기적 같은 탈출 과정을 줄줄이 늘어놓았습니다. 제가 “한밤중에 담장 밖에 왜 인력거가 있었을까요? 그 자동차는 또 왜 하필 우리 옆에 와 섰던 걸까요? 어찌 된 일인지 두 요금소 모두 순간 정전이 발생했고 덕분에 저희는 그리 큰 어려움 없이 그곳을 빠져나올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뿐만이 아니에요. 마을에 들어서자마자 택시를 만나다니, 이게 다 우연의 일치라고 보기엔 너무 신기하죠”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저와 함께 탈출한 수련생이 말을 받았습니다. “맞아요, 이건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그 말을 듣던 그 지역 수련생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건 바로 사부님의 법신이 여러분을 내내 보호해주셨기 때문이에요!”

나중에 알고 보니 그날 밤 우리가 도망친 후 그 지역 610 사무실과 공안들이 온 시내를 샅샅이 뒤졌다고 합니다. 우리 친척 집이란 친척 집은 모조리 다 뒤져 찾아다녔는데, 사부님의 법신이 함께 해주시지 않으셨다면 그날 밤 우리는 백 퍼센트 도망치지 못했을 겁니다.

이 일련의 신기한 경험들은 제 인생관과 세계관에 큰 변화를 가져다주었습니다. 사람이 이 우주에서 유일하게 지혜로운 고등 생명체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사람들은 흔히 과학이 많이 발전했다고 여기지만, 과학으로는 눈에 보이지 않는 신과 부처의 존재를 증명해내지 못합니다. 대법을 수련하면서 저는 이 우주에 인류보다 훨씬 더 높은 지혜를 갖춘 고차원 생명이 분명 존재한다는 것을 절실히 느꼈습니다. 그리고 사람 역시 수련을 통해 도덕적으로 승화하고 우주의 특성인 ‘진선인(真·善·忍)과 동화됨으로써 신과 같은 경지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도 깨달았습니다. 지금의 저는 백여 년간 사람의 마음을 어지럽혀 온 무신론을 완전히 떨쳐버렸습니다. 사실 이외에도 제게 일어난 신기한 일들이 많지만 지면 관계상 일일이 다 열거하진 않겠습니다.

이 글을 쓴 것은 저를 자비롭게 제도해주신 사부님의 은혜에 감사드리고, 대법의 신비로움과 사부님의 위대함을 증명하기 위해서입니다. 아울러 세상 사람들에게 대법의 진실을 알리고 사악을 폭로함으로써, 아직도 미혹 속에 빠져 있는 이들이 하루빨리 그 악에서 벗어나 중공의 당단대 조직에서 탈퇴해 다가올 큰 재난을 무사히 피할 수 있게 하려는 마음에서입니다.

(명혜망 5.13 세계 파룬따파의 날 응모작)

 

원문발표: 2024년 5월 29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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