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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해 및 반복해 박해당하는 원인에 대한 개인 인식

글/ 중국 대법제자

[명혜망] 최근 몇 년간 일부 대법제자가 박해와 반복적인 박해를 당하는 것을 보고 개인적으로 본 박해의 원인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우리 모두 빈틈을 보완하고 교훈을 얻어 앞으로 더 안정적으로 걸어가는 데 도움이 되길 바란다. 여기서 말하는 박해는 주로 중공 악당이 직접 구치소에 가둬 세뇌 박해하는 것을 말한다.

초기에는 우리 모두는 아직 성숙하지 못해 많은 사람이 법을 실증하러 나가면 붙잡힐 거라고 여기거나, 내가 만약 잡히면 어떻게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결국 이런 사상으로 인해 많은 대법제자가 박해당했다. 이후에 수련이 성숙해지면서 이런 사상은 거의 나타나지 않게 됐다.

다음으로 감금 기간이 비교적 긴 두 가지 박해에 대해 말하겠다. 첫 번째는 색욕심에 의한 경우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색욕은 수련인에 대해 반드시 넘어야 할 관(死關)이라고 나는 벌써 말하였다.”(각지 설법5-2004년 미국서부법회 설법)

색욕심을 제거하지 못해, 예를 들어 사상 속에서 음란한 상상이 끊이지 않고 온갖 헛된 생각을 하거나 더 심하게는 실제 행위까지 있게 되면, 이런 경우는 모두 사악에 의해 직접 박해받게 되고 많은 경우 가볍지 않은 형량을 받는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서 박해당한 수련생은 사실 대부분 자신이 이런 잘못을 저질렀음을 알고 있다. 감옥에 들어간 후 자신을 반성하고 이런 잘못을 다시는 범하지 않겠다고 단호히 마음먹기만 하면 사악이 물러서기 시작한다. 그 외의 상황에서는 자신이 확고한 일념만 지키면 된다. 즉, 구세력의 박해를 인정하지 않으면 구세력도 감히 건드리지 못하며 일반적으로 곧 풀려나게 된다. 하지만 이 일념은 반드시 매우 확고해야 하며 정말 견딜 수 없을 때도 항상 이를 생각해야 한다. 꼬투리가 없고 또 구세력의 박해를 부정했기에 구세력도 감히 박해하지 못한다. 그러나 한 가지 경우는 부정하기가 좀 어려운데, 수련생과 색욕을 저지르거나 심지어 상대 수련생이 이로 인해 박해받아 사망에 이르게 한 경우다. 보통 사람과 잘못을 저지른 것은 색욕이지만 수련생과 색욕을 저지른 것은 수련생의 수련을 교란한 것이다. 이는 두 가지 잘못이니, 하나는 인식해야 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더욱 강한 정념으로 박해를 부정해야만 성공할 수 있다.

또 다른 상황은 난법(亂法)이다. 많은 수련생이 박해받고 심지어 여러 차례 박해받은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주변 수련생들의 이런저런 사례는 정말 너무나 많다. 나는 정견망에 윤회에 대한 글을 장기간 발표한 수련생을 보았는데 그가 박해받은 원인 중 하나에 이것도 있었다. 천목으로 본 것은 원래부터 진짜일 수도 가짜일 수도 있는데, 이런 정보는 매우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이와 별개로 환생한 수련생들을 특정인과 연결 짓는 것, 예를 들어 역사상 누구누구가 내 주변의 어떤 아주머니라거나, 누구에게 역사상 무슨 일을 한 적이 있다고 알려주는 것 등을 주의해야 한다.

이런 것을 조심하지 않고 한 번 말한 것은 구세력이 용서할 수도 있지만, 두 번 이상의 잘못을 저지르면 구세력은 반드시 장부에 기록하기 시작한다. 이는 이미 다른 수련생의 수련을 교란한 행위다. 왜냐하면 대다수 사람들은 자신의 과거를 알게 되면 각종 집착심이 생겨나기 때문이다. ‘내가 원래 그렇게 대단했구나, 나는 역사적 인물이었어.’ 심지어 그 역사적 인물의 생애에 매우 집착하고 마음을 쓰게 된다. 이런 집착심을 어떻게 제거하겠는가?

법에서 우리는 매 하나의 생각마저도 원만에 이르지 못하게 하는 관(關)임을 알고 있다. 그런데 이런 생각들은 천목이 열린 수련생에 의해 유발된 것이다. 내가 법에서 본 바로는 수련생의 수련을 교란하는 것은 수련에서의 큰 죄악인데, 이 역시 구세력이 박해할 구실이 된다. 만약 글의 내용이 진실한 것이라면 그나마 낫지만, 만약 본 것 자체가 구세력이 연출해낸 것이라면 더더욱 안 된다. 내가 보기에 어떤 글들은 정말 문제가 있는데 왜 발표하는 걸까? 정견망 편집자도 엄격히 파악하지 못한다면 편집자 자신의 수련에도 해롭다. 이는 난법을 저지른 수련생과 한통속이 되는 것이다.

수련은 매우 엄숙한 일이며 잘하면 위덕이 되지만 잘못하면 죄가 되니 매우 조심해야 한다. 윤회에 관한 글을 쓰는 것 자체는 잘못된 것이 아니다. 예를 들어 그런 글을 통해 법을 얻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과 사부님께서 역사적으로 많은 것을 배치하신 것이 쉽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고, 또한 사람들이 선악에는 보응이 있다는 것을 보게 하여 수련의 기회와 인연을 더욱 소중히 여길 수 있게 한다. 하지만 반드시 이성적이어야 하며, 이상한 내용의 글을 쓰거나 자신이 높다는 것을 선전하는 글을 써서는 안 되고 다른 수련생의 집착심을 불러일으켜서도 안 된다. 수련생들이 역사적으로 맡았던 역할을 밝혀서도 안 되고, 더욱이 이런 일을 사적으로 이용해 수련생들 사이에서 돌아다니거나 연설해서는 안 되며, 각지에서 각종 명목으로 초청받아 이동하거나 여행하고 교류하는 등의 행위도 해서는 안 된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일단 과시하기만 하면 그런 것은 아무것도 아니니, 이런 것에 집착하지 말며, 당신이 본 것을 곳곳에 수련생 중에서 사람의 마음을 갖고 퍼뜨려서는 더욱 안 된다. 사실 이런 것을 수련인 속에 말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또한 공능이 있으면 안 되는 것이 아니라, 관건은 어떤 마음을 쓰는지이다. 바르게 사용(正用)하는 것은 대법제자에게 좋은 점이 있지만, 과시하면 바로 당신이 교란 작용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각지 설법5-2004년 미국서부법회 설법)

많은 수련생이 난법으로 인해 수감됐지만 감금된 후에도 자신이 어디서 잘못했는지 모른다. 물론 안으로 찾아보기는 했지만 정확히 짚어내지 못해 박해를 부정하는 데 실패한다. 심지어 박해당하고 나온 후에도 난법 때문에 잡혀 들어갔다고 말해주어도 믿지 않는다. 마치 병에 맞는 약을 처방받지 못한 것처럼, 찾는 것이 정확하지 않으면 구세력도 물러나지 않는다.

한 수련생은 난법 때문에 박해당해 감금됐는데 감옥에서 매일 안으로 찾다 보니 색욕심 때문에 박해받은 것 같았다. 풀려난 후 내가 물었다. “어떤 색욕이 있었나요? 끊임없이 음란한 상상을 했거나 실제 행위가 있었나요?” 그녀는 전혀 없었지만 색욕심을 느꼈다고 한다. 이는 정확히 찾지 못한 것이다. 잘못 찾으면 빠져나오기 어렵다. 사실 그녀는 다른 수련생의 수련을 교란한 죄로 박해당한 것이지 색욕 때문이 아니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오늘날 대법제자는 모두 법을 실증하는 중에서 그들의 지고 무상한 영예(榮耀)와 과위를 원만 시키고 있는데, 어떠한 것이든 끼어들어서는 안 되며 누가 끼어들면 그가 바로 죄를 범하고 있는 것으로, 절대로 허락할 수 없다. 한 번 두 번 듣지 않고, 시간이 길어지면 틀림없이 구세력이 당신을 대립 면으로 밀고 가려고 하며 당신은 비로소 이렇게 하는데, 당신은 바로 이런 작용을 일으키고 있는바, 정말로 이 한걸음에 이르렀다면 이미 구할 수 없는 이에 속한다.”(각지 설법5-2004년 미국서부법회 설법)

한 수련생 A는 여러 해 감금되었다가 나와서는 당시 어떤 수련생 집에 갔다가 연루되어 잡혀 들어갔다고 한다. 내가 그녀에게, “당신은 농촌 수련생 집을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난법을 저질러 그렇게 된 거예요”라고 말해줬지만 그녀는 아무리 말해도 믿지 않았다. 수련생과 연락한 것 때문에 박해를 당했다고 잘못 여겨, 앞으로는 아무하고도 연락하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그러나 하필 난법에 참여했던 수련생이 기어코 그녀를 찾아와 결국 A는 안전을 위해 아무하고도 연락하지 않고 오직 난법을 저지른 수련생하고만 연락하게 되고 말았다. 달리 방법이 없었기에 나는 그녀에게 ‘정진요지’를 건네주며 외워보라고 했다.

수련생 B는 1년간 박해를 당했는데, 당시 박해받기 전에 남편인 수련생을 매우 모질게 대하고 생활에서 가혹하게 굴었다. 결국 남편은 한 푼 없어서 어쩔 수 없이 다른 사람의 도움에 의지해 살게 됐다. 이런 행위는 이미 남편의 수련을 심각하게 교란한 것이다. 문제는 수련생 B가 이를 인정하지 않고 변명만 늘어놓은 것이다. 법공부 모임 수련생들이 보다 못해 그녀 남편에게 약간의 용돈을 주었고 B에게도 그러지 말라고 타일렀지만 그녀는 전혀 귀담아듣지 않았다. 결국 밖에서 진상을 알리다 신고당해 실형을 선고받았다. 어떤 수련생은 이것이 작은 일이라고 여길지 모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사부님께서 관련 법을 말씀하신 적이 있다.

또 다른 상황은 C 무리가 연설을 통해 난법을 저지르자 일부 수련생들이 이를 반대하고 나섰다. 연설 방식에 반대하고 그 무리에게 시장을 주지 않는 것으로 족했을 것이다. 그런데 결국 이 수련생들은 사람마음의 작용으로 하나의 세력을 형성하더니, 도처에 다니며 C의 행위에 반대해야 한다고 말하기 시작했다. 이는 난법의 형식으로 난법에 반대한 것이나 다름없다. 결국 이 수련생들 역시 박해당했는데 들으니 어떤 수련생은 박해로 목숨까지 잃었다고 한다. 참으로 가슴 아픈 일이 아닐 수 없다.

물론 협조인이 박해받는 경우도 있다. 내가 보기에 주위에는 많은 협조인들이 박해당하고 있는데 사실 그들 중 상당수가 여러 가지 난법 행위를 저질렀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내가 사는 지역의 한 협조인 왕우(王五)는 박해받기 전에 이미 별별 난법 행위를 다 저질렀다. 가령 다른 수련생들에게 쪽지를 써서 보내고는 했는데, 그것도 여러 법공부 팀에 돌렸다. 그런 쪽지가 나에게 올 때마다 보면 모두 개인적인 인식일뿐이었다. 그 내용의 시비를 따지기에 앞서, 어떻게 아무런 검토도 없이 그대로 아래로 하달할 수 있단 말인가? 이런 행위는 잘못된 것이다. 사부님께서도 ‘정진요지’에서 말씀하신 바 있다.

그래서 나는 매번 나에게 쪽지를 전해 준 아주머니에게 그것을 되돌려 주면서 사부님께서 법에서 뭐라고 말씀하셨는지, 이런 행위가 어떻게 법에 부합하지 않는지 등, 그것이 난법 행위임을 일러주곤 했다. 기억에 한두 주에 한 번꼴로 쪽지를 받았던 것 같다. 그럴 때마다 나는 한 번씩 되돌려 주었고 나에게 쪽지를 전해 준 아주머니에게 그 협조인에게 이런 것을 발송해서는 안 되며 그 이유가 무엇인지 전해 달라고 했다. 그런데도 갖가지 형식의 쪽지가 아래로 계속 전해졌다. 이번에는 이런 일을 알리더니 다음번에는 또 저런 일을 알리는 식이었다. 다행히 내가 법을 많이 외워 두어서 중요한 시각마다 사부님의 법이 떠올랐고, 그래서 이런 법에 어긋나는 행위들을 저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 협조인은 다른 법공부 팀들과도 연락이 많았던 지라, 아마 많은 곳에서 그런 쪽지를 받아온 것 같았다.

협조인은 난법을 저지른 것이고 그런 쪽지를 받아들인 이들은 수동적으로 난법에 일조한 것이니, 결국 무심코 사방에 혼란을 초래하고 만 것이다. 이후에 그는 또 멋대로 개자표(改字表)를 만들어 내기도 했다.(이는 명혜망에서 정리한 것이 아니라 그가 사사로이 정리한 것) 나중에 그 협조인과 한 차례 교류를 나눴지만 아무런 효과도 없었다. 그는 계속해서 요구 사항에 부합하지 않는 전자책 등을 대량 유포했다. 그러다가 마침내 진상을 알리러 나갔다가 신고당해 7년 형을 선고받고 말았다. 7년 후 출소했을 때 일부 수련생들은 왕우가 일하는 마음 때문에 박해당한 것이라고 말했다. 나는 마음이 몹시 아팠다. 무슨 일하는 마음이란 말인가!

대법 중에서 수련한다면 진상을 알리는 것은 가장 바른 일이고 일하는 것 또한 바른 일이다. 일의 경중과 박해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그런 중형은 사악이 수련생의 약점을 틀어쥐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수련생의 난법 행위로 인해 다른 공간에는 이미 하늘을 찌를 듯한 업력이 쌓여 있었고, 구세력은 바로 이런 수련생들의 허점과 빚어진 업력을 이용해 박해하고 있다. 만약 자신의 문제를 똑바로 인식하지 못한다면 박해를 부정하기란 매우 어려울 것이다.

여기서 쪽지 전달 문제와 관련해 사부님 한 말씀을 인용하겠다. “앞으로 어떤 사람이든지, 어떤 대법(大法) 각 지역 책임자 또는 어떤 제자가 한 말을 녹음하거나 비디오를 찍을 수 없으며, 더욱이 문자로 정리하거나 또는 서로 전하여 보게 할 수 없다. 이는 어느 한 사람의 문제가 아니며 또 어느 한 사람을 비평하는 것이 아니라, 대법(大法)을 수정(修正)하는 것이다. 대법(大法) 수련생의 법학습교류회와 총회(總會)에서 동의한 각지 총보도소의 활동을 제외하고, 대법(大法) 중에서 유전되고 있는 대법(大法)의 것이 아닌 어떠한 것도 모두 대법(大法)을 파괴하는 것임을 기억하라!”(정진요지-영원히 기억하라)

내 주위에는 또 이런 수련생이 있다. 그녀는 한 눈먼 수련생을 동정한 나머지 그를 위해 사부님의 ‘호주 수련생들에 대한 설법’을 MP3 형식으로 전환해 주었고, 동시에 명혜망 문장을 전자 소프트웨어를 이용해 음성(기계음)으로 바꿔 주기도 했다. 모금 사기도 당한 것 같은데 그 일로 1년간 감금되고 말았다. 출소 후 그녀와 교류했을 때, 처음에는 역시 그 일 때문에 박해받은 것이 아니라고 믿으려 들지 않았다. 입이 닳도록 타일러 마침내 겨우 조금 믿게 되더니, 스스로 난법을 저질렀음을 인정하고 돌아가 성명을 쓰겠노라 약속했다. 다음 날 와서는 이제 믿게 되었다면서 가부좌를 30분 동안이나 할 수 있게 되었다고 자랑했다. 노동수용소에서 나왔을 때만 해도 전혀 가부좌할 수 없었다고 한다.

또 다른 남성 수련생의 경우를 들면, 그는 너무도 심각한 박해를 겪었고 영향 또한 적지 않았다. 안타깝게도 그는 지금껏 왜 자신이 박해를 당했는지 알지 못하고 있다. 나중에 그가 외지로 가긴 했지만 계속해서 자신의 문제가 어디에 있는지 깨닫지 못한 채로 있었다. 이것이 바로 그의 풀기 어려운 매듭이 되어 버렸다. 나는 인터넷을 통해 그가 또다시 박해당했다는 소식을 읽고도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저 명혜망을 매개로 그와 간접적으로나마 교류할 수 있기를 바랄 뿐이었다. 즉 그가 박해받은 근본 원인은 바로 연설난법 때문임을 그에게 알려주고 싶었다.

당초 그가 진상 전화를 거는 일을 할 때만 해도 꽤 잘했었다. 그러나 그 후 자만심이 생기면서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자신의 진상 전화 경험을 선전하기 시작했다. 선전할 때면 그는 한 여성 수련생을 차에 태우고 다녔는데 주된 강연을 그녀에게 맡겼다. 이는 연설 형식을 통해 난법을 저지른 것이다. 설사 그 내용이 법에 부합한다 해도 역시 잘못된 것인데 그 형식 자체가 난법이기 때문이다. 이를 듣고 참여한 이들은 모두 당시 자신들의 그릇됨을 똑바로 인식해야 한다. 강연한 사람은 말할 것도 없이 그 연루에서 벗어날 수 없다. 반드시 자신의 잘못을 똑바로 인식해야만 비로소 진정으로 안전해질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리 숨어 다닌들 결코 안전하지 않을 것이다.

그에게 이 모든 불행이 닥치기 전, 나는 꿈에서 그가 석탄 하치장 앞에 서 있는 것을 보았다. 하치장 너머로는 검고 높다란 석탄산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그때는 도무지 그것이 의미하는 바를 몰랐는데 훗날에야 깨닫게 되었다. 난법으로 인해 빚어진 그의 업력이 산처럼 쌓여 있었던 것이며 위험이 이미 닥쳐오고 있었던 것이다.

구체적인 사례는 이쯤에서 그만 들겠다. 너무나 많아 일일이 다 열거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 하나하나가 모두 피의 교훈이요, 사례마다 그 이면에는 수련생이 감금과 박해 속에서 감당해야만 했던 이루 말할 수 없이 큰 고통이 있었다.

수련생이 장기간 감금되었을 때 자세히 캐물어 보면 대개는 이 몇 가지 이유에서 비롯된 것들이다. 그중에서도 난법이 다수를 차지하는데, 그 형식은 각양각색이다. 물론 색욕이 원인이 된 경우도 일부 존재한다. 색욕의 문제는 비교적 찾아내기 쉬운데, 대체로 명백하기 때문이다. 난법의 형식과 표현상의 모습은 제각각이지만, 대체로는 모두 사부님의 정법을 교란하고, 다른 수련생의 수련을 방해하며, 중생 제도에 저애를 초래하고, 수련의 원칙을 위배한 것들이다. 내가 현재의 수련 층차에서 본 바로는 기본적으로 이러한 것들이 그 원인이 되고 있다. 만약 큰 허점이 없었다면 사악 역시 감히 박해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사악의 박해는 결코 무질서한 것이 아니며 구세력의 배치 또한 매우 질서정연하다. 이유 없이 박해당하는 일이 어디 있겠는가. 감히 장기간에 걸쳐 박해를 감행한다는 것은 사악이 수련생의 약점을 틀어쥐었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박해당한 원인을 반드시 찾아내 구세력에게 빌미를 주어서는 안 된다. 만약 그 원인을 정확히 짚어내지 못한다면 스스로 극도로 강한 두려움이 생길 것이니, 이는 진실로 앞으로 자신의 수련과 세 가지 일을 바로잡는 데 있어 장애가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다음으로는 비교적 작은 교란과 박해에 대해 말해보겠다. 이런 것들은 대개 이런저런 사람마음에서 비롯된 것들이라 할 수 있다. 만약 원칙상 큰 허물은 없는 상황이라면 이렇듯 사람마음을 노리고 들어오는 교란과 박해에 대해서는 사실 사악이 수련생을 단지 겁주려는 것에 불과하다. 두려움을 이용해 위협을 가하는 것이다. 그러나 정념이 확고하기만 하다면, 혹은 그저 아주 확고하게 이런 교란을 승인하지 않기만 해도, 결코 이를 인정하지 않고 사상이 확고하기만 하다면 사악 역시 감히 접근하지 못할 것이다.

교란 중에는 과시심에서 비롯된 것도 있고, 원망심에서 비롯된 것도 있다. 그러나 이런 외부에서 오는 박해의 역량은 그리 크지 않아 일반적으로는 심하게 박해할 엄두를 내지 못한다. 경찰이 와서 문을 두드리는 정도이고, 주민센터에서 찾아와 문을 두드리거나 전화를 해대는 정도이며, 며칠씩 감금하는 수준이다. 이런 경우도 이미 집착심이 크게 부풀어 올랐을 때나 잠시 동안 구금되는 것이지, 보통은 감히 실제로 심하게 박해하지는 못한다. 이런 사례 또한 여기저기서 흔히 찾아볼 수 있다.

또 하나는 병업(病業)의 박해 문제다. 내가 접촉한 수련생의 경우만 보더라도 물론 그 원인이 매우 다양해서 일률로 논하기는 어렵다. 어떤 이는 수명이 다한 것이고, 어떤 이는 무심코 이를 승인해버린 것이며, 또 어떤 이는 한순간의 잘못된 생각 때문이었고, 어떤 이는 원망심이 너무 깊어서 생긴 일이며, 그 외에도 여러 가지 원인이 있다. 난법에서 말미암은 경우 역시 존재한다. 심지어 수련 초기에 발생한 일까지도 구세력은 장부에 기록해 두고 있으니 우리는 반드시 이런 것들을 다 씻어내고 자신의 부족함을 인식해 그것을 부정해야 한다.

아울러 여러 형태의 보이지 않는 박해가 존재하는데, 그 형식은 음험하고 쉽게 발견하기 어렵다. 가령 가정에서의 심각한 폭력이 그렇다. 수련생이 다년간 구타당해 이미 반쯤 죽어 가고 있음에도, 주위 수련생들은 오히려 참고 견디라고만 한다. 이는 사실상 악인의 횡포를 도와주는 꼴인데도 이를 분간하지 못하고 있다. 또 그 외에도 갖가지 방식의 박해가 있는데, 가장 분간하기 힘들면서도 그 파괴력은 가장 크다. 얼마나 많은 수련생이 이로 인해 미끄러져 내려갔던가. 분별하기 어려운 그런 수련생들은 차라리 자신의 의견을 발표하지 않는 편이 나을 듯하다. 그래야만 갖가지 비극이 되풀이되는 일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법은 일체 집착을 타파할 수 있고, 법은 일체 사악을 타파할 수 있으며, 법은 일체 거짓말을 타파해 버릴 수 있고, 법은 정념(正念)을 확고히 할 수 있다.”(정진요지2-교란을 배제하자)

자신의 그 난법 행위를 똑바로 인식하려면 오직 법에 의지하는 길밖에 없다. 나는 장기간에 걸쳐 박해당했던 수련생들에게 돌아온 후에는 사부님의 ‘정진요지’와 ‘정진요지2’를 암기하는 것이 좋겠다고 제안하는 바이다. 아울러 최근 몇 년간 명혜편집부에서 발표한 문장들도 모두 암기하는 것이 좋다. 사부님의 법을 기준으로 삼아 비교해 본다면 그 요마귀괴(妖魔鬼怪), 사악난귀(邪惡爛鬼)들이 숨을 만한 곳이 없어질 것이다. 외우는 과정에서 자연스레 자신이 저질렀던 온갖 난법의 허물을 똑똑히 알아챌 수 있을 것이며, 그래야만 비로소 자신이 박해당한 근원을 찾아내고 자신의 사상과 행위를 바로잡을 수 있을 것이다.

나 역시 그 당시 《정진요지》와 《정진요지2》를 비롯해 편집부에서 발표한 문장들을 대량으로 암기했었다. 여러 난법 행위에 봉착할 때마다 매번 법이 직접 내 머릿속에 나타나곤 했고, 법이 직접 내게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알려주었다. 사실 바로 법을 암송한 뒤라야 진정으로 법을 기억하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중요한 시각마다 법이 나타날 수 있었던 것이다. 사람이 인위적으로 무언가 깨닫고자 애쓸 필요가 없었다. 사람이 무엇을 깨달을 수 있겠는가. 사부님의 가호 아래 많은 난법을 모면할 수 있었다. 물론 나도 무심결에 저지른 잘못이 조금 있기는 했다. 하지만 이후에는 거의 모두 찾아내 깨끗이 제거할 수 있었다. 만약 사상 중에 법이 자리 잡고 있지 않다면, 그 모든 난법 행위를 바로 인식하려 한들 그것은 마치 꿈속의 헛소리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물론 이상의 내용은 주로 내가 현지에서 본 일부 정황일 뿐, 모든 상황이 다 이러하다는 것은 아니다. 구체적으로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는 역시 스스로 체득하고 분석해 보아야 할 것이다. 이 글을 쓰면서 나에겐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즉 사악의 박해는 결코 두려운 것이 아니며, 우리에겐 얼마든지 이를 없앨 수 있다는 것이다.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다만 문제가 어디에 있는지 찾아내고 정념을 확고히 하기만 한다면 사부님께서 반드시 책임져주실 것이니, 그렇게 한다면 정말로 아주 안전할 것이다.

이상은 개인의 체득에 불과하며 층차 또한 제한적이어서 미흡한 점이 있을 것이다. 부디 수련생 여러분께서 자비로운 마음으로 지적해주시길 바라는 바이다.

 

원문발표: 2024년 5월 29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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